프레이저가 빌리를 만났을 때 - 자폐증 아이와 길고양이의 특별한 우정
루이스 부스 지음, 김혜원 옮김 / 영림카디널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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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제공도서 서평

 

모든 부모는 아이가 들어서는 순간부터 한 가지 기도의 제목을 갖게 될 것이다. 바로 건강하게 태어나길 바라는 기도 말이다. 나 역시 두 아이의 아빠다. 늦둥이 둘째는 불과 한 달 전에 태어났다. 첫째 때는 아빠가 되었다는 감격에 온몸을 떨었다면, 늦둥이 둘째가 태어났을 땐, 아이의 손가락, 발가락이 다섯 개씩임이 감사하고 눈 코 입 귀가 제자리에 있음을 감사했다. 태어나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림이 감사하고, 방귀를 끼고, 대소변을 누게 됨이 감사했다. 이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길 기원한다.

 

세상 모든 부모들의 제1번 기도의 제목이 자녀의 건강이 아닐까? 오죽하면, 내가 자랄 때에는 이런 광고 카피가 있을 정도였다. “못생겨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그렇다. 자녀의 건강만큼 커다란 축복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프레이저가 빌리를 만났을 때』, 이 책의 주인공인 프레이저는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자폐증에 더하여 근긴장 저하증이라는 병까지. 이 아이의 장애로 인해, 그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 눈물과 한숨을 흘렸을지 눈에 훤하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사는 아이이기에 외부와의 접촉이 쉽지 않았다. 심지어 부모에게도 그 문은 닫혀 있곤 했다. 그 엄마의 고백처럼, 프레이저는 세상에 보이고 싶지 않은 그들만의 비밀이기도 했다. 그 점이 부모를 슬프게 한다.

 

그럼에도 프레이저를 세상으로 내어놓을 수 없음이 또 얼마나 힘겨웠을까? 그런 가정에 우연치 않게 찾아온 축복의 선물이 있었으니, 바로 빌리라는 고양이. 이 고양이는 프레이저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이끈다. 빌리는 프레이저의 친구가 되어주고, 프레이저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깨닫고, 그 도우미가 되어준다. 어쩌면, 프레이저와 빌리 사이에는 영적인 끈이 묶여 있지 않았을까?

 

프레이저와 빌리의 영적 교감을 통해,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일들이 그 가정에 펼쳐지게 된다. 결코 일반 초등학교에 들어갈 수 없다던 전문가(?)의 단언에도 불구하고, 프레이저는 결국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뿐 아니라, 조금씩 자기만의 세상 속으로 주변 인물들을 하나하나 받아들인다. 아니, 어쩌면, 세상 속으로 프레이저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일지도 모른다.

 

계단을 자신의 힘으로 오르기도 하고, 대소변을 가리기도 한다. 할로윈 축제에 참여하여 춤을 추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기뻐하기도 한다.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기도 한다. 친구의 생일 파티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다. 하지만, 프레이저의 가정에게는 결코 일상의 삶이 아닌, 기적과 같은 특별한 일들이다. 이 모든 일들이 빌리와의 작은 만남에서부터 시작되어 그들에게 허락된다.

 

이를 보며, 일상의 삶 속에서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큰 축복의 삶인지를 돌아보게 된다. 언제나 감사하자. 그리고 축복하자.

 

물론, 아직 프레이저가 해쳐나가야 할 인생길은 멀기만 하다. 하지만, 이제 자신만의 세상을 조금 열어 개방한 프레이저의 삶의 지평이 보다 더 넓어지게 될 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 앞길에서 또 다른 수많은 빌리들을 만나게 되길 소망하며, 우리 역시 이 땅에서 수많은 프레이저에게 빌리가 될 수 있길 바란다. 프레이저와 그 가정에 신의 축복이 함께 하길 조심스레 빌어본다.

빌리에게는 프레이저만이 속한 세상 속으로 들아갈 수 있는 어떤 능력이 있었다. 우리 중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그런 세상 말이다. 빌리 덕분에 프레이저는 자신이 갇힌 세상 속에서 덜 외로울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빌리는 그 고립된 세상 속에서 아이가 빠져나올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주었고, 아이는 점차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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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왔어 우리 딸 - 나는 이렇게 은재아빠가 되었다
서효인 지음 / 난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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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재는 작가의 딸이다. 은재는 다운 증후군이라는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은재는 장애아이다. 『잘 왔어 우리 딸』은 다운 증후군이라는 장애를 갖고 태어난 딸, 그 딸로 인해 비로소 아빠가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딸을 잉태함에서부터 딸의 출생을 기다리는 과정, 딸의 출생과 함께 시작된 슬픔, 슬픔 뒤의 행복을 찾아가는 길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며, 먹먹함에 짓눌린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축하 받아 마땅한 출생이 축하받지 못하는 모습이다. 아이의 잘못은 없다. 산모의 잘못도 없다. 아빠 역시 마찬가지. 그럼에도 어느 누구도 축하받지 못함에 마음 한 켠이 아려온다.

 

나도 두 아이의 아빠다. 늦둥이 둘째는 태어난 지 아직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아이를 갖게 되면, 가장 큰 기도의 제목은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는 것이다. 이는 여느 부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안도하고, 감사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아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났음을 알게 되면, 감사할 자리에 걱정과 원망, 슬픔이 자리하게 된다. 뿐 아니라, 자랑하고 싶은 아이에서 감추고 싶은 아이가 되어 버린다. 여기에 더하여 부모의 뭔가 알지 못할 잘못으로 인해,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난 것은 아닌지 자책하게도 된다.

 

저자 역시 마찬가지. 축복 가운데 태어나야 할 아이가 장애를 가졌음에 자신의 잘못 때문은 아닐지 반성한다. 어린 시절 장애우를 향한 조롱과 무관심의 대가는 아닌 지 말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아이의 출생을 기다렸을 부모, 온갖 희망의 풍선들을 쏘아 올렸을 부모, 첫 아이에 대한 부푼 기대를 설계했을 부모. 하지만, 장애를 가진 아이의 출생으로 이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린다.

 

자녀를 기르며, 자녀를 향한 부모의 기대가 조금씩 채워질 때, 부모는 행복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기대가 무너진 저자에게 찾아 온 것은 슬픔. 하지만, 그 슬픔 뒤, 기대감이 무너진 자리에, 아이를 있는 그대로 맞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딸의 존재 자체만으로 저자는 행복을 찾아간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기대, 부모의 기도는 마땅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 역시 어쩌면 부모의 기준에서, 부모의 눈으로 바라보는 기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 기대는 자칫 자녀를 꼭두각시로 만들 위험성을 내포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저자의 눈이 아닌 은재의 눈으로 은재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 역시, 어쩌면 슬픔 속에서 허락되는 예기치 못한 축복이 아닐까?

 

『잘 왔어 우리 딸』은 먹먹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먹먹함 뒤편에 아름다움이 감춰져 있다. 슬픔 가득한 글이지만, 역설적으로 저자의 글맛은 달다. 슬픔의 맛이라기보다는 행복의 맛이다. 딸 은재를 향한 아버지의 참 사랑, 아름다운 사랑이 버무려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은재의 앞길을 축복해 본다.

방금 아이가 완행열차를 탔다. 꽤 오래 달릴 것이다. 나와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창문을 보며 가야 할 것이다. p.92

은재야, 아프니?
나도 아프다.
그러고 보니 3월하고도 중순이 되었다. 창밖은 이미 봄이다.
은재의 옆구리에 보송보송한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상처가 깨끗하게 소독되는 중이다. p.172

나는 머릿속에 그렸던 그래프를 벗겨내 찢어버린다. 아이가 어디에 있든, 거기가 어디든, 유일하게 반짝이는 하나의 점이다. 무한한 면에 수많은 별이 반짝인다. 별들에게는 상하와 고저가 없다. 그곳은 수학책 그래프의 면이 아니다. 상상 밖의 아득한 우주다. 거기 어디에선가 아이들이 제 빛을 내고 있다.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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