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진설 - 근황 인문학 수프 시리즈 6
양선규 지음 / 작가와비평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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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 『소가진설』은 소설의 어원을 밝힐 때 사용되는 말이라고 한다. 소설 쓰기는 작고 ‘가벼운 이야기’로 ‘생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란 의미로 이 제목이 사용되어진 듯하다.

 

그러니, 이 책은 삶 속의 ‘가벼운 이야기’들을 주제로 삼는다. 때론 tv 프로그램을 보다, 때론 잡지를 보다, 때론 책을 보다, 때론 영화를 보다가, 때론 가요를 듣다가, 때론 산책을 하다 떠오른 생각들을 주제로 삼는다. 말 그대로 일상의 ‘가벼운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이처럼 ‘가벼운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생의 진실’을 밝힌다. 그가 표현한 것처럼 거창하게 ‘생의 진실’을 밝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일상의 가벼운 주제에서 출발하여 연관된 추억을 회상하기도 하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도출해내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생의 진실을 찾는 작업)을 저자는 “인문학 수프”라 표현하나보다. 그래서 이 책은 그의 작업인, “인문학 수프 시리즈” 여섯 번째 책이다.

 

에세이집이라 말할 수도 있고, 수필집, 산문집이라 말할 수도 있다. 왠지, 에세이집이란 표현보다는 수필집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성 싶다.

 

저자는 유독 사자성어를 좋아하는 듯싶다. 어떤 부분에서는 사자성어가 글을 필요이상으로 예스럽게 만들고, 때론 글의 무게를 가볍게 하기도 하며, 또 어떤 부분에서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느껴지게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사자성어 사용을 포기하지 않는다. 책 제목도, “소가진설” 아닌가!

 

저자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서 솔직히 책 표지와 책 제목은 선뜻 이 책 집어 들기를 망설이게 하는 그런 디자인과 제목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디자인도, 제목도 왠지 어울리는 느낌을 받게 된다. 왠지 상업적인 호객행위는 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느껴지기도...

 

수필집이기에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주제가 뭘까 생각하진 않겠다. 단지 유독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이 저자의 글의 전체적인 느낌을 대변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글공부의 목적이란 사람 되는 공부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사람 되기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글 자체에만 집착하는 이가 있다면, 이런 이들을 “글자 병신”, “책 귀신”이라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가 끓이는 인문학 수프의 목적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렇다. 우리의 모든 글공부, 책읽기는 사람됨을 지향한다. 그럼에도 사람됨에는 관심 없이, 내가 책을 천권 읽었노라. 2천권 읽었노라 하는 것을 훈장처럼 여긴다면, 이 역시 책 귀신이 되는 모습 아닐까? 분량을 떠나 사람됨을 지향하는 책읽기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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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오후의 마들렌
박진희 지음 / 리즈앤북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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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 프루스트 현상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에서 홍차에 적신 마들렌 냄새를 맡으며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유래한 말인데, 냄새를 통해 과거의 일을 기억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프루스트 현상’ 또는 ‘마들렌 효과’라 부른다고도 한다.

 

바로 이런 모티브에서 이 책의 제목, 『나른한 오후의 마들렌』이 나왔나 보다. 마들렌의 달콤한 향, 촉촉하고 부드러운 그 느낌에 젖어 옛 추억을 회상하며 가볍게 적어낸 에세이집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을까 싶다.

 

먼저, 이 책은 무겁지 않다. 거창한 철학적 에세이집도 아니고, 연구 에세이집도 아니다. 특별히, 어떤 주제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일상에서 떠오른 생각들을 쉬운 언어로 적어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주된 주제가 있는데, 바로 사랑이다. 저자는 마치 차 한 잔 마시며 옛 사랑의 추억을 회상하듯 사랑에 얽힌 추억을 꺼내기도 하며, 사랑에 대한, 그리고 결혼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풀어낸다. 아울러 이러한 이야기를 영화 이야기와 함께, 그리고 술에 얽힌 추억들도 함께 말하기도 한다.

 

쉽게 읽혀지는 내용이기에 제목 그대로 ‘나른한 오후’에 차 향기에 젖어 읽기에 적당한 에세이집이다. 아울러 그 내용에 심각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읽으면 좋을 듯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전반적인 글의 분위기는 따스하지 않다. 추억의 회상이라면 마땅히 따스한 느낌이 강할법한데, 그렇지 않은 이유는 기본적으로 저자의 사랑 관에서 유래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다. 자녀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어쩌면 이것이 저자가 표현한 것처럼, ‘여우의 신포도’일 수도 있다. 어쩌면, 저자의 자기 반응 논리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에세이집이면서 전체적인 느낌은 자기 변명, 자기 최면의 넋두리로 다가오기도 한다. 또한 때론 염세적이기도 하고, 자조적이기도 하다.

 

에세이집이 갖는 장점 가운데 하나는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따스함의 단상에 있지 않을까? 조금 더 세상을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바라 볼 수 있었다면, 더 좋은 글로 독자들에게 다가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다. 결혼생활이 물론 환상과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결혼생활 가운데 부정적 부분보다는 긍정적 부분이 훨씬 더 많다고 여겨진다. 아울러 모든 사람들이 결혼을 후회하며 살아가는 것도 아님을 저자는 잊어서는 안 된다.

 

자녀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녀가 부모에게 때론 눈물이 되고 한숨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자녀로 인해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감사하며, 축복으로 고백하며 살아가는 가정 역시 수없이 많다. 나 역시 언제나 자녀로 인해 감사하며 하루를 정리하고 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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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 故 하용조 목사의 따뜻하고 그리운 말모음
하용조 지음, 이성표 그림 / 두란노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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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도서, 『나의 사랑하는 여러분에게』는 고 하용조 목사님의 글을 모은 책이다. 8개의 큰 단원 아래 글들이 묶여 있지만, 도합 365개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도 편집자는 1년 365일 묵상할 수 있도록 의도한 듯하다. 이처럼 하루하루 묵상하기에 좋은 글귀들이 모여 있다.

 

많은 글들이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힘이 되고 위로가 되며, 큰 가르침을 준다.

 

특히, 교회에 대한 목사님의 가르침은 오늘 교회들이 많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교회는 프로그램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꿈을 따라가야 합니다.(43쪽)” 과연 오늘 이 땅의 수많은 교회들이 그렇게 하고 있을까? 목회자들은 더 좋은 프로그램 없을까?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기에 바쁘지 않은가? 성도들은 성도들대로 어느 교회에는 이런 좋은 프로그램들이 있던데 하며, 목회자를 압박하진 않은가? 뿐 아니라, 하나님 주신 꿈이라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목회자의 욕망의 발로에서 시작되는 일들이 가득하진 않은가? 목사님의 잔잔한 음성이 청천벽력처럼 들려 온다.

 

또한, “목사는 설교를 준비할 때 깊이 있게 묵상하고 성도에게 말씀을 빨리 전해 주고 싶어서 주일을 기다립니다.(45쪽)”라는 구절을 묵상하며, 이 땅의 목회자들이 깊이 새겨야 할 부분 아닐까 생각해본다. 설교표절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교회를 보며, 목사님은 어떤 생각을 하실까?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책임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기도에 대한 목사님의 생각도 다시 한 번 길을 제시한다. 기도는 대화다. 그런데, 우리는 말하기만 할 뿐 듣지는 않는다. 이를 목사님은 지적하신다. 이는 반쪽짜리라고 말이다. 나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하고 싶다. 누군가와 대화하며 자기 할 말만 하고 상대의 말은 듣지 않는 이가 있다면, 이는 아주 웃긴 사람, 밥맛이라고 말이다. 우리의 기도가 이처럼 밥맛 기도는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 내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날 향하신 하나님의 시간 등은 개인적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 특히,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대한 목사님의 글들이 많고, 이는 우리의 신앙에 많은 도움을 주리라 여겨진다.

 

이 책은 빠른 시간에 쑥 읽고 지나칠 책이 아니다. 하루에 한 구절 또는 몇 몇 구절만을 읽고 깊이 묵상하고 기도하며 이 책을 활용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는 가운데 아쉬움도 크다.

 

먼저, 거의 모든 메시지가 ‘나’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 시각이 ‘나’를 벗어나지 못한다. 날 향한 하나님의 일하심, 날 향한 하나님의 시간, 날 향한 하나님의 위로, 날 향하신... 모두 나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내가 중요하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맡기자고 하지만, 실상은 내가 중요하다.

 

물론, 아주 극소수 주변을 향한 돌아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메시지 역시 통상적이고, 추상적인 소리에 불과하다. 과연 하용조 목사님이 그랬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어쩌면 편집자들의 신학적 편협함의 결과물일지도...

 

여기에서 또 하나의 문제제기가 있게 된다. 과연 이 책을 엮은 사람은 누구인가? 편집부에서 했나? 아니면, 누군가 책임을 지고 했나? 보통 이런 글 모음이면, 엮은이가 누구인지, 아니면 편집부에서 했는지, 표기가 있어야 하는데, 저자만 있고, 엮은이는 없다. 이는 이 책이 어쩌면, 고 하용조 목사님의 추모시기에 맞추기 위한 졸작이 될 수밖에 없는 원인이 아닐까?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임감 있게 목사님의 글들을 정리해야 하지 않았을까?

 

아울러 어떤 글들은 다른 주제 아래로 들어가면 더 좋았겠다 싶은 글들도 많았다. 굳이 이 책의 별점을 주자면, 글 내용은 4개, 편집 구성은 1개 정도가 될 것이다.

 

대 사회적 부분은 우리 한국교회의 오랜 약점 중 하나다. 여전히, 대 사회적 부분 없는 영성이 존재할 것이라는 착각 가운데 있다. 하지만, 그러한 영성은 온전치 않다.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요즘 교황의 방문으로 한국사회가 떠들썩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짧은 시간의 만남을 통해, 큰 위로를 받았다고들 한다. 왜 그럴까? 교황의 관심이 세상의 약자들, 가난한 자들, 억울한 일을 당한 자들, 존재의 주변부에 있기 때문이다. 요즘 교황에 대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데, 그 중, 이 책처럼 교황의 글들을 엮어 놓은 책자가 있다. 그 책과 이 책을 함께 읽었는데, 아무래도 많은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서로 장단점이 있는데, 교황의 글은 대 사회적 헌신, 특히, 가난한 자, 약자를 향한 돌아봄과 행동함에 대한 강조가 그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뿐 아니라, 기도와 말씀, 믿음, 전도 등 우리가 크게 신경 쓰는 이 부분 역시 강조함으로 균형 감각이 있었다.

 

이러한 신앙의 균형이 없다면, 그리고 특히, 대 사회적 돌아봄과 헌신, 행동함이 없다면, 이 땅의 교회는 병들 수밖에 없다. 입으로는 계속하여 고열량의 음식들을 섭취하는데, 이것이 밖으로 배출되지 않는다면 그 몸은 심각한 병에 들 수밖에 없다. 또한 아무리 좋은 것을 방에 담고 있다 할지라도, 그 방을 1년 2년 닫아만 둔다면, 그 방에서는 온통 곰팡이와 악취만이 가득하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이 일에 두란노 출판사처럼 많은 역량을 발휘할 곳도 흔치 않다. 이 균형을 맞추는 데에 많은 힘을 쏟아줄 것을 애정 어린 마음을 담아 부탁드리며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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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만나는 교황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 교황 지음, 주세페 코스타 엮음, 이영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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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황의 방문으로 한국사회가 떠들썩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짧은 시간의 만남을 통해, 큰 위로를 받았다고들 한다. 왜 그럴까? 교황의 마음이 언제나 약한 자들, 가난한 자들에게 있기 때문이 아닐까?

 

교황의 방한에 맞춰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수많은 책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때, 본서, 『사진으로 만나는 교황 프란치스코』 역시 출간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여타의 책들과 조금 차별성이 있다.

 

첫째, 교황의 활동을 담은 사진들이 가득하다. 이는 비록 현장에서 교황을 만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현장에서의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둘째, 여타의 책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책이라면, 본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어록이다. 사실, 그 사람에 대해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어떤 분인지를 제대로 알려주는 책이다.

 

무엇보다 교황의 관심은 가난한 사람들, 약자들을 향한 돌아봄, 행동함에 있다. 그랬기에 교황으로서의 이름 역시 ‘프란치스코’라 짓지 않았나! 하지만, 그는 이러한 대 사회적 부분만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이와 함께 본서에서 강조되어지는 것은 기도의 중요성, 그리고 믿음을 강조한다. 아울러 그리스도와의 하나됨, 복음을 강조한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균형감각 아닐까? 이처럼 신앙의 균형감각을 잘 보여주는 구절이 있어 소개한다. “가난한 자, 병든 자, 도움이 필요한 자, 어려움에 처한 형제 등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으로 우리를 이끌지 않는 기도는 헛되고 불완전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오로지 행동에만 신경을 쏟는다면, 세속적인 영향력․기능․체계는 더 좋아지겠지만 그리스도가 중심이라는 사실은 잊고 말 겁니다. 기도의 시간을 따로 마련하여 그리스도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면, 우리는 빈곤한 형제자매에게 깃들어 계신 하느님이 아니라 자신을 섬기는 꼴이 되고 말 겁니다.(p.130)”

 

이처럼 신앙의 균형감각은 대단히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가 놓치고 있는 부분 아닐까? 성경의 누가복음은 어느 복음서보다 가난한 자들을 향한 돌아봄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복음서이다. 하지만, 그뿐 아니라, 누가복음은 어느 복음서보다 기도에 대한 강조가 많은 복음서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명확하다. 신앙의 균형감각! 오늘 이 땅의 신앙인들이 추구해야할 바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천주교인 뿐 아니라 개신교인들조차 읽고 묵상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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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희망의 메시지
피트 윌슨 지음, 이지혜 옮김 / 아드폰테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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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괜찮지 않음에도 괜찮다는 자기 최면을 할 때가 많다. 때론, 신앙인은 괜찮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때로는 누군가 나의 괜찮지 않음을 알게 될까 두려워 애써 감추고 덮어두려 한다.

 

하지만, 저자는 결코 과거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괜찮지 않은 과거를 그냥 덮어 놔서도,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자기 최면을 걸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묻혀진 듯 여겨지는 과거는 현재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내면의 잡동사니들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수치심도, 후회도 내려놓아야 한다. 내 안의 죄도 내려놓아야 한다. 죄가 드러날까 두려워하고 감추기보다는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때, 용서를 체험하게 되고, 참 자유, 완전한 해방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유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을 체험하게 된다. 이렇게 내려놓음을 저자는 항복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내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항복할 때, 이것이야말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과거를 무시하거나 부인하지 않고, 과거를 내려놓고, 과거에 깨끗이 항복함으로 그 과거의 장벽을 넘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깨진 항아리와 같은 우리를 사용하시고, 우리의 암흑기조차 사용하시며, 우리의 상처마저 사용하시니, 굳이 그것들을 감추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관점은 옳다. 우리의 과거를 묻어두기보다는 과거를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그 과거를 넘어서는 축복이 있어야 한다. 과거의 흠을 넘어서게 하는 저자의 관점은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 책 제목처럼, 비록 우리의 삶이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용납하시며, 우리를 사용하실 테니까.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또 하나, 은혜는 자칫 위험할 수 있다. 저자는 공로주의를 경계한다. 이는 마땅하다. 공로주의는 경계해야만 한다. 우리의 행함이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하고, 우리의 행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는 것 역시 아니다. 은혜도 마땅하다. 우리의 강함 때문에 사용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약함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사용되어지며, 하나님의 그릇으로 빚어져 가는 것이다. 하지만, 자칫 저자의 주장이 위험할 수 있는 것은 은혜를 강조하는 저자의 견해는 자칫 값싼 은혜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저자의 주장들은 일정 부분 값싼 은혜 쪽에 치우친 듯한 느낌도 없지 않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두 가지 병이 있다. 그것은 공로주의와 값싼 은혜이다.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 아니다. 우리의 신앙의 행위들로 우리가 구원받는 것 역시 아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하지만, 이 믿음과 신뢰는 추상적인 것이 아님도 기억해야 한다. 믿음은 결코 행함을 배제하지 않는다. 저자의 견해는 자칫 이 부분을 놓치게 할 수 있다. 아마도 저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다시 회복됨을 말하기 위해, 행함을 경계하는 듯 싶다. 하지만, 행함이 없는 거짓 믿음, 거짓 은혜는 공로주의와 함께 한국교회의 두 개의 커다란 병폐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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