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인대학교 낯가림학과 졸업하기 - 낯가림 심한 개그맨의 우왕좌왕 사회 적응기
와카바야시 마사야스 지음, 전경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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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상당히 독특하다. 『사회인대학교 낯가림학과 졸업하기』 그렇다면 이 책은 뭔가 소심한 사람, 적극적이지 못한 사람, 낯을 가리는 사람이 사회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일까? 물론,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이 책엔 이런 부제가 달려 있다. 「낯가림 심한 개그맨의 우왕좌왕 사회 적응기」 그렇다. 이 책의 저자는 개그맨이다. 오랜 세월 무명으로 있다가 2008년 일본의 만담 경연대회인 ‘M-1 그랑프리’에서 2위에 입상함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개그맨이라 한다. 하지만, 그에게 사회는 여전히 힘겹기만 하다. 도대체 룰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푸념할 만큼 저자는 힘겨워한다. 술자리에서는 재미없다고 선배에게 구박받기도 하고, 회의에서는 직설적으로 말한다고 소리 들어 돌려 말했더니 이번엔 너무 돌려 말한다고 소리 듣는다. 그에겐 여전히 ‘사회’라는 녀석에게 적응하기가 힘겹다.

 

그는 여전히 자신감이 없다. 여전히 낯을 가린다. 때론 자기비하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 이 책의 장점, 이 책의 진짜 힘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자신감을 가지라고 핏대를 세우며 외치지 않는다. 저자는 여전히 자신은 자신감 없고, 낯을 가리는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적응하기 힘겨운 ‘사회’에서 그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전히 ‘사회’는 그에게는 두려운 곳이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부딪치고 하나씩 해나간다. 비록 남들이 볼 때는 소심한 남자의 몸부림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저자는 말한다. 자신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기준을 둔다고. 결과가 뒤따르든 말든 그저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놀랍게도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물론, 남들이 볼 땐 여전히 소심맨이라도 말이다.

 

여전히 자신은 일 앞에 설 때, 긴장하고 더 나아가 우울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또 다시 일 앞에 선다고 한다. 이는 마치 제트코스터가 무서운 줄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줄을 서는 것과 같다고 한다. 두려운 마음에 제트코스터에 몸을 실었던 사람들은 절규하며 내려온다. 두 번 다시 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왠지 모를 충만감을 느끼기에 다시 제트코스터를 타려고 줄을 선다. 일을 하는 것은 이와 같다고 한다. 여전히 자신감 없고, 두렵고, 긴장되지만, 그럼에도 일이라는 제트코스터에 몸을 맡기고 해 나갈 때, 알 수 없는 충만감을 느끼기에 일 앞에 선다는 것. 소심함을 동반한 채 말이다.

 

여기에 이 책의 힘이 담겨 있다. 굳이 소심함을 떨쳐버리라거나, 얼굴에 철판을 깔라고 주문하지 않는다. 자신감을 갖고 가슴을 쫙 펴라고 외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후엔 독자의 한 사람으로 왠지 조금은 자신감을 갖게 되는 느낌이다. 이처럼 소심한 개그맨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웃길뿐더러, 그토록 소심한 마음으로도 여전히 부딪히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뭔가 내 안의 소심함과 이별을 하려 이 책을 선택하신 분들은 어쩌면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뭔가 깊은 곳에서 끌어 오르는 엄청난 자신감을 갖길 원하는 분들 역시 실망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묘한 자신감을 선물한다. 그것이 이 책의 방식이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혹시 서평을 이렇게 썼다고 해서 이 책을 자기계발서로 생각하시면 안 된다. 이 책은 한 소심맨의 에세이다. 물론, 그 에세이 안에 자신의 소심함, 낯가림, 사회부적응적인 면들을 소개하며 묘한 방식으로 자신감을 전해주지만, 그 외에도 주옥같은 삶의 단상들이 많다. 개그맨이 쓴 글이라 생각하지 말고 이 책을 읽으면 더 좋겠단 생각도 든다. 저자가 써내려가는 솔직한 행간 사이에 감춰진 깊은 사유(소심한 사람이니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겠나?^^)에서 나오는 단상들이 상당히 힘이 있게 다가오는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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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느 별에서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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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각자의 글쓰기 스타일이 있게 마련이다. 어떤 분들의 글은 어려운 말들을 잔뜩 늘어놓는 가운데 삶의 통찰력을 느끼게 하는 글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들은 참 편안하게 읽히는 가운데 그 안에 깊은 통찰력이 감춰져 있는 경우도 있다. 물론 괜히 어렵기만 한 글도 있을 것이고, 쉽기만 하면서 별 내용 없는 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경우는 빼고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 조금 어렵게 읽히는 글과 쉽게 읽히는 경우를 생각해본다면, 당연히 쉬우면서도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글이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별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정호승 시인의 글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정호승 시인의 글은 쉽고 편안하면서도 그 안에 감동이 있고, 삶을 향한 깊은 통찰력이 담겨 있다. 벌써 3번째 개정증보판으로 새롭게 출간된 이 책은 꽤나 파란만장한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1996)』⇨『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2001)』⇨『위안(2003)』⇨『우리가 어느 별에서(2015)』 책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처음 글들에 조금씩 더 많은 살이 붙음으로, 그 풍만한 자태를 자랑하는 에세이 책이 된 게다. 이러한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책이지만, 그 내용은 잔잔한 감동을 주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대체로 짧은 글들로 이루어진 그의 산문들은 무엇보다 잔잔하다. 때론 일상의 삶 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한 사색을 담고 있기도 하고, 때론 그리운 지인들을 생각하며 글을 쓰기도 한다. 때론 본인의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내며 솔직한 자기반성을 담아내기도 하며, 때론 사랑, 고통, 죽음 등에 대한 시인의 통찰력을 풀어내기도 한다. 때론 자신이 읽은 책들에 대한 내용에서 생각을 더 발전시킨 이야기들도 있다. 이러한 내용들이 때론 우습기도 하고, 때론 뭉클하기도 하며, 때론 우리의 삶을 향한 꾸짖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생각나는 글들이 많지만, 먼저 우스운 글로 「역반하장(?)」이란 글이 있다. 자신의 소중한 원고들을 다 물에 적셔놓게 해 놓은 위층 아주머니. 너무 화가나 달려갔지만, 사과하기는커녕 뻔뻔하기만 한 그 모습에 화가 치밀어 어쩌면 분노를 실어 시인은 힘 있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하지만, 모양새 빠지게 그 말은 “이 여자가 정말 역반하장이네.”였단다. 그러자, 그 뻔뻔한 아줌마는 이 약점을 놓치지 않고 “적반하장이에요.”하고는 문을 탁 닫고 들어갔단다.

 

왠지 내가 그 실수의 주인공인 듯싶어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고, 그래서 더 분하기도 하다. 얼마나 분했으면... 하지만, 진심은 우습다. 시인에겐 미안하지만 말이다. 아니 어쩌면 시인은 이런 글을 통해, 웃을 일없는 세상에서 한번 웃으라고 자신을 희생한 건 아닐까?

 

담담하지만, 자신의 부끄러운 일을 고백하는 글도 기억에 남는다. 백두산 천지에서 오줌을 누었고, 돌 하나 몰래 집어 온 그 부끄러운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그 용기가 멋스럽다. 엄청난 잘못을 행하고도 반성은커녕 도리어 더 큰소리를 치고, 더 많은 악행을 행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시대에 자신의 체면과 권위가 깎일 수 있지만, 그런 소소한(?) 잘못을 고백할 수 있는 용기. 이러한 용기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면 이 사회는 분명 더 멋스러운 사회로 변모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땅 위의 직업」이란 글이다. 이 글을 읽으며, 아, 그래. 세상에는 땅위의 직업을 갖는 그것이 소원인 분들도 있구나 싶었다. 우린 언제나 힘들다 힘들다 말하지만, 그 힘겨운 삶이라할지라도 이미 누군가의 소원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작가의 말처럼 위안을 받을뿐더러, 왠지 투정부리며 살아가는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또한 각오를 다지게 된 글이기도 하다. 그렇다. 어쩌면, 나의 지금의 힘겨운 삶은 이미 누군가가 간절히 소망하는 소원을 이룬 모습일 수 있음을 기억하며 오늘도 힘차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에세이집이 대체로 그렇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通讀)하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책을 곁에 두고 그 때 그 때 잡히는 부분을 골라 적독(摘讀)하는 것도 좋겠다. 아니 어쩌면 이런 적독을 통한 정독(精讀)이 좋겠다. 그저 한 부분이라도 찬찬히 음미하며 읽을 때, 작가의 사색의 결과가 내 것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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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생존 -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 이야기
레이첼 서스만 지음, 김승진 옮김 / 윌북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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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서스만의 『위대한 생존』이란 책을 읽으며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말이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요즘처럼 삶이 힘겨운 시기이기에 더욱 가슴을 울리는 말이 아닌가 싶다.

 

『위대한 생존』은 사진 에세이라 말할 수 있겠다. 작가가 직접 지구 곳곳에 생존하고 있는 최소 2,000살이 넘은 생물들을 찾아다니며 촬영한 사진과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일어난 에피소드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 부제로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 이야기>라고 되어 있지만, 나무만을 다룬 것은 아니다. 자이언트 세쿼이아나 조몬 삼나무, 상원의원 나무처럼 거대한 나무에서부터 산호, 지의류, 이끼 등도 포함되어 있다. 최소 2,000살을 살아온 것들부터 많게는 수 만년을 살아온 생명체들도 있다. 그 엄청난 시간을 살아왔음에 자연스레 경외감이 들게 된다.

 

그럼에도 또 몇몇 개체들은 작가가 직접 찾아가 생존을 확인하고 촬영한 이후에 죽은 것들도 있다. 수천 년을 견뎌오며 살아남았음에도 불과 몇 년을 견디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 책을 통해, 30가지 이상의 오랜 세월을 살아온 생명체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내용이 있다. 그건, 오랜 세월을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나무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생존에 유리하였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척박한 환경이기에 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피나는 투쟁이 그들을 강한 자로 만들었다는 거다. 작가의 말처럼, “극단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생존해온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조건 ‘덕분에’ 생존했다.”(49쪽)

 

게다가, 몇몇 커다란 나무들이 목재로 잘려나가지 않고 수천 년을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의 몸통에 구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오랫동안 벌목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위대한 생존을 할 수 있었던 조건이 많은 경우, 부족함에 있다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될뿐더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삶의 조건들이 풍족하여서 강하여 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척박한 상황들 덕분에 강해지는 것이 아닐까? 삶의 상황에 지배당하기보다는 그 상황을 지배하며 나아갈 때, 위대한 생존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그러한 위대한 생존이 될 수 있길 소망한다.

 

아울러, 수천 년에서 수만 년을 생존한 생명들이 그 생을 마감하게 되는 많은 경우는 다름 아닌 갑자기 바뀌게 되는 기후조건과 사람들의 훼손에 있다는 점 역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점이다. 결국 이렇게 수년에 걸쳐 세계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촬영하고, 이런 작품을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목적은 결국 환경을 향한 우리들의 자각이 아닐까 싶다. 물론, 오래 생존해왔다고 해서 그 개체들이 위대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수천 년, 수만 년을 힘겹게 투쟁하여 생존해 온 개체들조차 우리 인간의 만행 앞에 스러져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왠지 사람됨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오랜 세월을 위대한 생존의 투쟁을 하며 버텨온 생명체들이 더 오랜 시간을 생존할 수 있는 환경조건을 우리가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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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잡담
박세현 지음 / 작가와비평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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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雜談)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이렇게 설명한다. “쓸데없이 지껄이는 말.” 그렇다. 이 책은 제목처럼 시인이 쓸데없이 지껄이는 말이다. 그래서 잡담이 맞다. 일부로 아는 척하지도 않고, 일부로 아름답고, 선하게 말을 꾸미지도 않는다. 그래서 ‘잡담’이다.

 

처음, 시인의 글을 읽어가며, ‘뭐, 이런 글이 다 있지?’ 싶었다. 왠지 종편 시사 프로그램에서 패널들이 쓸데없는 소리를 지절대는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은 산만함과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뱉어낸 듯한 언어들이 독자를 당혹케 한다. 하지만, 점차 읽어가는 가운데 묘하게 빠져든다.

 

시인이 적어 내려간 산문들은 논리적인 구성을 갖고 있지 않다. 산발적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하나의 제목으로 묶여 있는 글들이라고 해서 하나의 맥락을 가지고 있는 글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때로는 바로 앞 문장과 다음 문장이 안드로메다만큼의 간극이 있기도 하다. 그러니, 그저 펼쳐지는 부분을 읽어도 무방하다. 게다가 작가의 글이 때론 저속하기도 하며, 때론 말장난을 늘어놓기도 한다. 때론 비약이 심하여 이야기가 산으로, 삼천포로 빠지기도 한다. 때론 취중진담처럼 들리기도 하며, 때론 찌질한 소리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읽을수록 빠져드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글이 이 책의 특징이다.

 

책 제목처럼, 쓸데없는 지절거림과 같은 잡담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쓸데없진 않다. 쓸데없는 지절거림, 잡담 안에 시인의 깊은 통찰력이 담겨 있으며, 시인의 시를 향한 영혼이 담겨 있다. 시인은 자신의 잡담 속에서 무엇보다 시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내뱉는다. 그러한 고민들을 몇 가지 살펴보자.

 

시인에게 있어, 시는 없는 구멍에 뭔가를 자꾸 집어넣으려는 몸짓이란다(38쪽). 그러니 시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작업일지를 상상케 한다. 없는 구멍에 뭔가를 자꾸 집어넣으려는 어리석은 몸짓이라니.

 

게다가 시는 모호하다. 그래서 시인은 시는 오리무중이라 말한다(95쪽). 시는 불가피하게 오리무중을 오리무중으로 뚫고 나간다는 것. 심지어 너무 분명한 시는 시가 아니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독자로서 시를 잃고 이해되지 않을 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말할 때, 마침내 시는 시 같아진단다(15쪽).

 

아~~ 그래서 시들이 어려웠구나 생각해본다. 하지만, 너무 시인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있는 시는 솔직히 공감하기 어렵고 괜한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떨쳐낼 수 없다. 공감할 수 없는 문학은 글쎄다.

 

물론, 다양한 시에 대한 정의를 내려가며 시를 향해 접근하는 잡담들이지만, 결국 시인은 시는 정의할 수 없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또다시 시를 이렇게 정의한다.

 

“시는 정의하는 순간 틀어진다. 시는 정의하기 직전까지다. 마치 그대의 동의를 얻기 직전까지의 번뇌와 망설임과 괄호 안에 가둔 희열의 순간이 사랑을 생성시켜 주는 것처럼. 나에게 시는 강력한 현실이자 더없는 환상이다. 아무 것도 아니면서 그것 없이는 살아도 살아지지 않는 그 무엇이다.”(268쪽)

 

결국 시인에게 시란 그것 없이는 살아도 살아지지 않는 것, 다시 말해 시인에게 시란 정의할 수 없는 것이지만, 시인의 생명이라고 하면 과장된 표현일까?

 

시에 대한 시인의 정의 가운데 이러한 정의가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시는 언어에 묻어 있는 삶이다(210쪽). 그렇기에 시는 삶을 입는다(229족). 이 말을 바꿔, 삶을 입지 않은 추상적인 언어유희는 시로서 부적격하다는 의미로 봐도 될까? 삶과 괴리된 언어적 잔치는 참 시가 될 수 없다고 말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자기를 응시하는 것이고, 자기 삶의 미열과 증상을 문자 언어로 다스리려는 인문적 실천입니다. 시 쓰기는 언어와 언어의 문맥 속에 자기를 위치시키려는 자발성이지요.(302쪽)”

 

산만한 잡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시인의 잡담에 묘하게 마음이 끌리는 이 책, 『시인의 잡담』을 통해, 시에 대한 시인의 자기 성찰에 귀기울여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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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아내가 있다 - 세상에 내 편인 오직 한 사람, 마녀 아내에게 바치는 시인 남편의 미련한 고백
전윤호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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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관계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이면서도 한번 관계가 틀어지면 자칫 세상에서 가장 먼 관계가 될 위험성을 내포한 관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부부관계는 혈연관계가 아닌 계약관계이기 때문이다. 혈연관계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인 반면, 계약관계는 서로간의 신뢰가 깨져버리면 언제라도 끊을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그렇기에 부모 자식 간의 관계와 달리 부부관계는 때론 위험하고 위태로운 줄타기가 연출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가 말하듯이 부부야말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있게 될 사이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부부 사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관계이다. 언제라도 깨어져버릴 수 있는 관계이면서도 또 한편으로 인생 가운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야만 하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요한 관계임에도 여전히 돌이켜 보면, 잘 해준 것보다는 못해준 아쉬움이 남는 사이가 부부사이가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이 책 『나에겐 아내가 있다』는 바로 그러한 부부관계, 특히, 시인인 남편이 아내를 바라보며 고백하는 시와 그 시 이면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시인들이 직접 타인의 시를 읽어주며 해설해주는 책들이 시중에는 참 많다. 그런 책들도 참 좋지만, 이 책은 그런 책들과는 다른 힘이 있다. 그건 시인이 직접 자신의 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이다.

 

남의 시를 해설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시인의 원래 의도와 달리 독자의 입장에서의 해석이 가미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시라는 것이 시인의 손을 떠나는 순간 독자의 것이 되기에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타인의 시에 대한 해설은 원 시와는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한계를 가지게 된다. 게다가 때론 시인이 말하고자 함과 다른 접근이 있을 수도 있겠고, 시가 전해주는 감정적 접근보다 분석과 해석이 많은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은 시인이 직접 그 시를 잉태하게 된 삶의 못자리들을 전해주기에 추상적이지도, 그리고 학문적이지도, 분석적이지도 않다. 시를 잉태한 삶, 그 삶에 대한 이야기를 그대로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뿐더러 시인의 시는 지나치게 추상적이지도, 함축적이지도 않다. 아내를 향한 시인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솔직하면서도 편안하게 읽혀지는 시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공감하게 되는 부분들이 많지 않나 여겨진다.

 

시인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다. 언제나 고생시키는 철부지 남편으로서의 미안함, 그리고 고생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안타까움과 애틋함이 많이 느껴진다.

 

“옛날에는 주인이 죽으면 부하나 하인들은 산 채로 순장되었다. 권력이 강한 자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순장되었다. 그런데 나처럼 못난 자에게도 순장자가 있다. 그 사실이 가슴 아프다. 도대체 난 무슨 권리로 그녀의 삶을 희생시킨 것일까.”(33쪽)

 

시인의 이 물음이 가슴을 울린다. “도대체 난 무슨 권리로 그녀의 삶을 희생시킨 것일까.” 나 역시 내 아내를 순장자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가 싶어 부끄러우며 미안한 마음이 가득해진다.

 

“사실 사직서는 나보다 아내가 더 쓰고 싶었을 게 분명하다. (중략) 그러니 아내는 아마 사직서를 회사보다는 내게 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도 내게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참고 참았을 뿐이다.”(124쪽)

 

이런 시인의 모습이 날 보는 것 같다. 부끄러운 남편이지만, 여전히 사직서를 내지 않고, 묵묵히 참아내고 있는 고마운 아내, 여전히 내 곁의 자리를 굳게 지켜주며, 세상 누구보다 더 큰 힘으로 날 응원하는 아내에게 미안함과 함께 고마움을 가득 느끼게 한다.

 

아마도 이 책은 남편이라면 모두 공감할 그런 내용들로 가득 담겨져 있지 않을까 싶다.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거짓말로 아내를 내 삶의 순장자로 만들고, 그럼에도 여전히 철부지 남편으로 아내를 힘겹게 하는 남편들이여. 이 책을 읽고 회개함이 어떨까? 아울러 언제나 나에게 사직서를 쓰지 않고 묵묵히 참아내는 강한 아내에게 진심을 담은 감사를 전하는 것은 어떨까?

 

난 신혼 때부터 아내를 ‘안해’라 불렀다. 안에 있는 태양이란 의미로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내를 향해,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안해’로 다가가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행복하게 안해. 잘해주지 안해. 가정에 충실하지 안해. 호강시키지 안해. 만약 그렇다면 곤란할 것이다. 왜?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부부관계는 계약관계니까. 언제나 적절한 긴장감을 잃지 말고, 영원한 내편인 안해에게 잘 하길 다짐해본다. 진정한 안해로 다시 떠오르게 되도록.

 

“나에게도 안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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