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의 역사 북멘토 그래픽노블 톡 1
리쿤우 지음, 김택규 옮김 / 북멘토(도서출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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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내 가족의 역사』는 전쟁에 대한 장편만화다. 작가는 이 책에서 항일전쟁(중일전쟁의 중국식 명칭)에 대한 단편적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골동품 시장에서 우연히 일본과 청나라가 싸우는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일본인이 그린 39컷의 그림. 자신들 중국을 침략한 적국의 시각으로 전쟁을 접근한 그림을 통해, 일본이 중국과의 전쟁, 즉 청일전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일본은 그 전쟁을 침략전쟁이 아닌, 정벌전쟁이라 이해했던 것.

 

정벌과 침략의 차이는 무엇일까?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침략에 대해선, “남의 나라를 침범하여 영토를 빼앗음”이라 되어 있다. 반면, 정벌은 “다른 나라나 죄 있는 집단을 무력으로 침”이라 되어 있다. 그러니 같은 의미인 듯싶지만, 많은 차이가 있는 다른 의미인 것. 침략전쟁이라면, 탐욕에 의해 벌인 더러운 전쟁인 반면, 정벌전쟁이라면, 상대가 죄가 있어 무력으로 혼을 내준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즉, 청나라 정부가 부패하고 무능하였기에 자신들이 정벌하였다는 것이다. 일본은 자신들의 침략전쟁을 정당화시키는 그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정벌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챙겨갔다. 결국 침략전쟁이었던 것. 그리고 이때 맛본 것을 잊지 못해, 30년 뒤 다시 중일전쟁을 벌이게 된 것.

 

주인공은 골동품점에서 발견한 이처럼 귀중한 그림을 빌려 보게 되고 나중에는 중일전쟁 당시의 일본기자들이 찍은 수많은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 그 수많은 사진들을 다시 옮겨 찍고, 그 사진들을 정리하며, 주인공은 전쟁에 대해 돌아보게 되며, 아울러 그 전쟁이 자신과 무관한 먼 역사의 한 페이지만이 아닌, 바로 본인의 장인어른의 다리를 앗아갔던 역사, 가족의 역사였음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다.

 

작가는 이렇게 전쟁을 자신 가정의 역사와 연관 짓는다. 그래서 책 제목이 『내 가족의 역사』인가 보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 장편만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걸까? 아마도 전쟁은 결코 나와 별개의 것이 아님을 말하고자 함이 아닐까? 전쟁의 아픔은 바로 내 가족의 아픔이다. 아울러 이것은 전쟁을 경험한 모든 중국인들의 아픔이다. 더 나아가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오늘 우리들의 아픔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는 전쟁을 경험한 분들보다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더 많은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전쟁은 나와 관계가 없는 역사책에서나 보는 한 사건에 불과하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런 우리들에게 작가는 그 아픔의 역사가 결코 나와 관계없는, 그저 역사책 속의 지나가버린 시간들이 아님을 말한다. 무관한 듯싶지만, 이처럼 바로 나 자신의 가족의 역사이기도 하며, 친지의 가족의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어쩌면 이미 지나가버린 케케묵은 책속의 한 줄 내용에 불과한 것으로 전쟁을 생각하는 오늘 우리들을 향한 작가의 사자후가 아닐까?

 

아울러, 작가는 이처럼 지난 역사를 끄집어내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해묵은 감정을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억을 되새기는 것이다. 건드릴 수 없는 상처가 가장 아프다. 중국인도 그렇고 일본인 역시 마찬가지다.” 작가는 지나간 역사, 지나간 아픔을 다시 끄집어냄으로 오히려 중국과 일본 간의 해묵은 감정을 풀기를 원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입 다물고 모르쇠로 일관해서는 서로간의 해묵은 감정이 풀릴 리 만무하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와 일본의 해묵은 감정이 해결되었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변질되고 악화되고 있지 않나? 그렇다면 작가의 말처럼, 다시 끄집어내야 한다. 그 일이 우리의 아픈 상처를 건드는 일이라 할지라도, 다시 끄집어냄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해결하고, 감정이 정리되지 않을까? 작가의 장인이 당시 일본군의 민간인 폭격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 오랫동안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큰 돌덩이를 내려놓은 것처럼 말이다.

 

우리 민족은 언제쯤 이 돌덩이를 내려놓을까? 일본의 성노예문제가 나와 상관없는 역사책 속의 이야기로만 이해되는가? 아니다. 바로 우리 가족의 역사, 우리 할머니들의 아픈 이야기이다. 작가의 장인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듯, 우리 할머니들의 짐도 내려놓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 일을 위해 작가의 말처럼 우리 역시 자꾸 아픈 역사를 끄집어내야 하지 않을까? 비로 그 일이 누군가를 부끄럽게 하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할지라도, 끄집어냄으로 상처를 진정으로 치유해 나가는 노력이 우리 모두에게 있길 소망한다.

 

[ 북멘토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

[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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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민주주의를 훔쳐 갔을까? - 현대사와 함께 읽는 진짜 정치 이야기 사회 시간에 세상 읽기 1
김은식 지음, 소복이 그림 / 이상미디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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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민주주의를 훔쳐 갔을까?』는 우리에게 민주주의에 대해 알려주는 좋은 책이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민주주의를 이뤄내기 위해 우리민족이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민주주의와 다수결은 서로 다른 개념이라고 말한다. 민주주의는 모든 구성원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 각각의 생각과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기본 이념이라고 설명한다. 그렇기에 최종적인 결정이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어진다 할지라도, 대화와 토론과 설득과 타협이라는 과정을 거친 후 다수결의 결정이 이뤄지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만약, 그 중간 과정이 빠진 다수결의 결정이라면,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닌, 다수의 지배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실제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다수결의 원칙을 내세움에도 비민주주적인 행태가 적지 않음을 알려준다.

 

본인은 이런 설명에 동의하며,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모든 구성원들 가운데 특별히 약자들의 소리가 반영되어지는 사회가 민주주의의 꽃이 핀 사회라고 생각한다. 기득권층, 힘 있는 자들, 가진 자들의 소리와 주장만이 반영되어지는 사회가 아닌,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는 약자들의 주장이 들려지고, 그 소리가 반영되어지는 사회야말로 민주주의가 아름답게 성숙한 사회가 아닐까?

 

또한 저자는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세워지기 위해 우리의 현대사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현대사야말로 민주주의를 찾아 투쟁했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정권으로 이어지는 독재정권들의 반민주적 행태를 고발하며, 이러한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국민들이 일구어낸 민주주의의 열매들을 설명한다.

 

이것을 위해, 제주도의 4.3사건, 4.19민주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언급하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과연 이런 사건들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그저 온 것이 아니다. 수많은 투쟁의 시간들을 통해,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흘린 핏방울과 땀방울이 일구어낸 결과이다. 물론, 아직 완전하다 말할 수는 없다. 때론 아무리 좋은 제도가 갖추어져 있다 할지라도, 그 안의 사람들이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후퇴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아니, 모든 제도가 그렇지 않겠는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품고, 우리의 선배들이 가꾸어놓은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고 계승시켜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지 않을까?

 

아울러 저자는 민주주의란 결국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나와 다른 의견을 내세우는 이들을 존중하는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에 볼테르가 했다고 알려진 말을 예로 들고 있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 이런 성숙한 생각이 결국 민주주의를 꽃피우게 한다. 나와 정치적 노선이 다르다고 해서, 세월호 침몰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해 단식 투쟁을 하는 희생자들 앞에서 폭식 투쟁을 하는 모습을 우리는 얼마 전 목도했다. 과연 이런 모습을 보며, 우리는 민주국가이니 누구든 자신의 권리를 내세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과 다른 소리를 낸다고 해서 무작정 비난하고 폄훼하며, 더 나아가 조롱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이 땅에서 민주주의는 말라버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들의 권리를 내세우며 폭식하는 그런 퍼포먼스 역시 누릴 수 없는 세상이 도래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을 많은 청소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럼으로 수많은 젊은 영혼들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위해 흘린 고귀한 핏방울들을 기억하며, 우리 역시 민주주의를 이루어가기 위해 애쓰는 노력들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누가 민주주의를 훔쳐 갔을까?』, 참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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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 바다에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전쟁터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그리고…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 살림지식총서 500
남정욱 지음 / 살림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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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지식총서가 어느덧 500권 째 출간되었다. 내가 살림지식총서를 좋아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분량이 길지 않다는 점이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는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시작된 살림지식총서이기에 이들 모두를 광의의 인문학이라 말할 수 있다. 인문학, 딱딱하고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다 분량까지 길다고 한다면 머리가 지끈지끈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살림지식총서는 분량이 짧다는 장점이 있다.

 

둘째, 내용이 좋다. 분량이 짧다고 별다른 내용을 담고 있지 못하다면, 이것 역시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살림지식총서의 책들은 엄선하여 출판하는 까닭인지, 대체로 내용이 좋다. 짧지만, 한 주제에 있어 짜임새 있게 내용을 전달해 주고 있다.

 

셋째, 국내 저자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일부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살림지식총서는 모두 국내 집필자로만 이루어져 있다. 이 말은 책의 이해도가 높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번역서들이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는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것도 있으며, 그네들과 우리의 글쓰기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번역서들은 원서를 그대로 번역하니, 한글이 더 어렵게 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본인들이 소화한 내용들을 한국인의 글로 풀어놓기에 이해도가 높다.

 

그래서 평소에도 자주 읽던 살림지식총서가 이제 500권을 채우게 되었다. 제500권의 주제는 바로 “결혼”이다. 이 책 역시 참 흥미롭다. 이 책은 결혼에 대한 문화사라 말할 수 있겠다. 결혼의 역사에 대해 먼저 언급한 후(서양, 우리 순), 오늘 결혼이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그리고 오늘날 결혼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울러 장차 결혼이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 지 등을 언급하고 있다.

 

결혼에 대한 흥미로운 접근은 결혼은 크게 ‘약탈혼’과 ‘매매혼’의 형태로 시작되었다는 견해다. 상당히 개연성이 있으며, 재미난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네 결혼은 어떤 형태인가? 책의 중반부쯤에 저자는 이런 결론을 미리 내린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서양 결혼식에 전통이 섞여 있고 그나마 전통이 콩가루가 되어가는 가운데 매매혼과 정략혼과 지참금 제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국적 불명, 시대 불명의 결혼 제도가 성행 중이다. 한마디로 줄이면 ‘최악’이다. 나쁜 것이란 나쁜 것은 다 모여 있으니 인류 역사상 최악이라고 말해도 좋다.(p.84)”

 

그렇다면 가장 신성해야 할 결혼이 왜 이렇게 최악이 되었을까? 그 이유는 저자가 말하고 있는 내용들처럼 결혼의 출발이 결코 신성한 이유가 아닌 대단히 세속적 이유로 인해 출발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으로 출발하기보다는 성욕의 대상으로, 그리고 가문의 이익창출과 권력 유지 수단으로 사용되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 우리네 결혼 역시 여기에서 별반 달라지지 않았음이 문제일 것이다. 물론, 보다 더 세련된 모습으로 포장이 되고 있지만 말이다. 여전히 가진 자들은 결혼이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들의 왕국을 더욱 견고히 해 나간다.

 

또한 저자가 예상하는 앞으로 결혼의 형태에 대한 전망 역시 충격적 내용을 품고 있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구나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가 마치며 덧붙이는 부분을 보면, 저자의 소망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 결국, 결혼의 근본은 사랑이다. 비록 다른 것들이 이 사이에 끼어들며, 결혼을 변질시켜나간다 할지라도, 또한 결혼은 현실이며 삶이기에 삶 속에서 수많은 문제들이 도출된다 할지라도, 결국엔 사랑으로 묶여지는 것이 아닐까?

 

비록 결혼생활은 이상이 아닌 현실이다.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 가운데서도 또한 수많은 축복의 순간들이 결혼을 통해 주어짐도 기억하면 좋겠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세태가 바뀐다 할지라도 결혼은 앞으로 맞닥뜨릴 수많은 힘겨운 순간마저 함께 하기 위한 서약이 아닐까?

 

내가 결혼할 때, 교회 청년들이 축가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찬양을 연습하기에 내가 듣고 싶은 축가를 정해준 기억이 있다. 그 곡은 김남주 시인의 노랫말, 안치환이 부른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란 곡이었다.

 

그렇다. 결혼이란 함께 가는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이 길을 말이다. 부부가 함께 가며, 신앙인이기에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아울러 이웃과 더불어 부대끼며 가는 것이 결혼이라 생각한다. 난 결혼을 함께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부부가 함께 가고, 가족이 함께 가는 것이 결혼생활이다. 그 길에 설령 어려움이 있다면, 함께 다리를 주물러주기도 하고, 서로 기대기도 하면서 결국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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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조실록 2 신라왕조실록 2
한국인물사연구원 엮음 / 타오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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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가운데 천년을 이어간 나라는 신라가 유일하다. 이것만 보더라도 신라가 얼마나 위대한 나라였는지를 알 수 있다. 신라가 천년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포용력이 아닐까? ‘신라’라는 국호 자체가 이러한 포용력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신’은 덕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라’는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날로 새로워지는 덕으로 사방을 망라하는 나라 신라, 그 방대한 역사 작업을 저자는 감행한다. 그 업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저자를 통한 신라 역사의 재구성은 삼국시대에 대한 역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그리고 자신의 발에 근거를 두고 있다. 즉 저자는 문서자료에만 의지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유적지들을 수없이 답사함으로 신라왕조실록 1-4권에 생명을 불어 놓고 있다. 이처럼 발로 뛴 역사를 잘 보여주는 것들이 신라시대 유적들에 대한 많은 설명과 사진들이다. 특히, 풍성한 사진들을 각권마다 앞부분에 싣고 있어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역사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물론 아쉬운 점은 사진의 해상도가 그리 높지 않은 사진들이 꽤 있다는 점이긴 하지만 말이다.

 

1권에서는 신라의 역사를 개관한다. 제6기로 나눌 수 있는 신라의 시대구분, 그리고 국가의 성립과 발전을 지나 쇠퇴와 멸망에 이르기까지를 개관한다. 신라의 신분제도인 골품제도와 그 외의 정치, 군사, 경제제도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는 꽤 많은 분량에 걸쳐 신라시대 주요 유물 및 유적들을 설명한 후, 본격적으로 56명의 왕들을 순차적으로 설명한다.

 

각 왕들마다 왕의 가계도를 먼저 그려줌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접근을 용이하게 한다. 그리고는 왕에 대한 주요 내용들을 다룬 후, 그 시대의 대표적 인물들을 다루고, 동시대의 동서양의 대표적 역사를 함께 기록해주고 있음도 신라의 역사를 이해함에 유익한 부분이다.

 

아울러 저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각 왕들에 대한 야사 역시 다루고 있음도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예를 든다면, 지증왕의 경우, 양물이 너무 커서 아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후사를 얻을 수 없었는데, 하루는 개 두 마리가 커다란 북의 크기인 똥덩어리를 두고 서로 싸우는 모습에 그 변의 임자를 찾았더니 마침 그 주인공이 마을 재상의 딸이어서 혼례를 올리고 드디어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이야기들로 인해 신라왕조실록은 딱딱하지 않고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라 장군 이사부의 우산국(울릉도) 정복사건(위에서 언급한 지증왕 시대), 불교를 공인받게 한 결정적 사건인 이차돈의 순교(지증왕 다음 대인 법흥왕 시대) 등 드라마틱한 이야기들도 살펴볼 수 있어 또 다른 재미를 얻게 될 것이다.

 

대단한 작업을 감행한 저자의 수고는 치하해 마지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언뜻 언뜻 드러나는 저자의 가치관에는 뜨악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든다면,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을 이야기하며, 이런 언급이 있다. “신라는 여자를 모셔 세우고 왕위에 처하게 하였으니, 이를 살펴보면 이는 참말로 난세의 일이며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2권 197쪽)” 저자의 이런 가치관은 본인의 훌륭한 성과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런 견해들이 훌륭한 작업에도 불구하고, 미래지향적인 역사접근이라기보다 구시대의 역사 푸념으로 받아들이게 할까 저어하다.

 

그럼에도 저자의 노고로 우리에게 이토록 훌륭한 신라 역사 참고서를 갖게 됨은 큰 행복이 아닐까 여겨진다. 곁에 두고 문득문득 꺼내 참고할 가치가 있는 좋은 연구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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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4-11-10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에코 사전 - 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환경 교과서 꿈결 청소년 교양서 시리즈 꿈의 비행 8
강찬수 지음 / 꿈결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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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에코사전』은 중앙일보에서 환경전문기자로 20년간 근무한 저자가 이 시대의 환경생태분야 이슈를 정리한 책이다. 모두 74개의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했던 새만금사업인 간척사업으로부터 시작하여, 4대강 사업에 이르기까지 환경에 대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많은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새만금사업과 4대강사업은 환경만의 문제가 아닌, 정치적인 견해로 인해 국민들을 분열케 한 사업이기도 하다. 사실 가나다 순서로 한다면, 4대강에 대한 이슈가 첫 번째 이슈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일부러 제일 마지막 이슈로 정렬한 이유가 있진 않을까? 새만금에서 4대강으로 끝나려는...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다.

 

새만금사업은 바다의 허파를 도려낸 사업이었으며, 4대강사업은 “4대강 살리기”라는 말과는 달리 “4대강 죽이기”가 되었으며, 많은 부정을 낳았던 사업이기도 하다. 여전히 국민들 가운데는 이 두 사업에 대해 찬성하며, 그 엄청난 업적을 남긴 정부를 찬양하는 입장에 있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아마도 역사가 조만간 평가하리라 믿는다.

 

아울러 각 이슈마다 조금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을 소개하고 있어 도움이 되리라 여겨진다.

 

부제로 “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환경 교과서”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십대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알고, 더 나아가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이슈들임에 분명하다. 각 이슈들이 가나다 순서로 정리되어 있기에 ‘사전’이라 불릴 법한 책이다. 상당히 여러 이슈들을 다루고 있어 환경에 대한 생각을 하기에 적합하며, 그 때 그 때 관심 있는 이슈를 찾아 읽기에도 좋은 책이다.

 

단지, 기자출신이기 때문일까? 그래서 중립적인 글쓰기에 익숙해져서일까?(물론 기자들이 순수하게 중립적이진 않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각 이슈에 대한 저자의 관점, 견해에 대한 피력부분이 약하다고 느껴지는 주제들이 꽤 있다. 아울러 어떤 이슈들은 과연 저자는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 궁금해지는 것도 없진 않다. 하지만, 환경에 대한 접근에서 중립이 과연 필요할까 생각된다.

 

그럼에도 저자의 노력의 산물들을 통해, 환경에 대해 많은 것들을 광범위하게 알게 됨이 사실이다. 이 땅의 십대들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 책을 통해 좀 더 환경에 대한 여러 이슈들을 알고, 관심을 갖게 되길 소망한다.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만큼 이기적인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이기적인 인간들이라 할지라도 자기 자식은 생각한다. 예를 들면, 농약 범벅의 콩나물에 생산하여 남이야 그것을 먹고 탈이 나건 말건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 이기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콩나물을 자기 자식에게는 결코 먹이지 않을 것이며, 석회 두부를 만들어 팔아먹는 인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이기적인 인간들이라 할지라도 지 새끼는 생각하니까.

 

하지만,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농약범벅 콩나물이나 석회두부를 만드는 못된 인간들보다도 자기 자식들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환경을 파괴한 그 결과는 분명 자기 자식들의 세대에 그들에게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지구는 내 것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손들의 것을 미리 빌려 쓰고 있는 것이다. 빌려 쓰는 사람은 최대한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이것이 인간의 예의이다. 우리 조금만 예의를 지키는 것은 어떨까? 바로 내 아들딸들, 손주들에게 말이다. 아니 어쩌면 다음세대까지 가지도 않을 수도 있다. 바로 나에게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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