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3.28 23:46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불안하고 연약하다고 하고
조금 아는 사람은 나를 강하고 용감하다고 한다
그리고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나를 어처구니없도록 연약하고
이해할 수 없도록 강하다고 한다.
모두 사실일 것이다.

오랫동안 모든 것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했었다.
이젠 삶에 대해 좀 덤덤해지고 싶다.
새로운 것과 사라지는 것 사이에서
잠시 머무는 것들 그것에 다정해지고 싶다.
민감하기보다는 사려 깊게,
좀 더 특별하고도 편안하게,

그래서 내면의 미소를 잃지 않은 균형 감각과
타자의 가치에 휘둘리지 않는
해방된 힘을 갖고 싶다.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전경린.

+ 의식하지 못하는, 웅크린 내면의 나,
그리고,
가족들이 바라보고 느끼는 나,
타인이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나,
그리고, 내가 모르는 나,
나, 나, 나,
무수히 많은 나.
그런 생각의 꼬리에 남는 건
낯선 감각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는 배신감이란 게 말이야-
그냥 속아서, 당해서,
그래서 억울한 거라고 생각했어.
이제 보니 그게 아니야.
배신감은 말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허물어. 그런 거였어.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어.
내가 과연 잘 살아온 건지,
지금도 잘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어.

- 빛의 제국, 김영하.

배신 없는 인생, 비밀 없는 인생... 흠.
상당히 지치고 힘들어 기진맥진 상태를
도저히 뿌리칠 수 없을 때,
살그머니 다가오던 흔적.
숨겨진 골목, 뱅뱅이 자전거 질주, 걸터앉던 바위 같은-
"김영하" 는 내게 있어 특별한 작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뭍이 없는 바다에서 혼자, 방향도 모른 채,
이유도 목적도 없이,
헤엄칠 줄 모르는데 헤엄쳐야 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더욱 비장한 것은
나는 뭍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는 것이다.
--------------------------------------------------------------------------------

어렸을 때, 내가 좋아하는 놀이 가운데,
한 자리에서 빙빙 도는 것이 있었다.
나는 혼자, 집 앞 골목길에서 그 놀이를 했다.
두 팔을 옆으로 좍 벌리고, 최대한 빨리, 빙빙 돌았다.
더 빨리, 더 더 빨리.
사방의 경치가 흐르고 흘러 가로줄 무늬가 되면서,
금방 몸의 중심을 잃었다.
뻗은 두 팔은 뻣뻣하고, 제멋대로 오르내리고, 내리려 해도 내릴 수 없었다.
그리고 한 자리에서 돌았다고 생각했는데
알지도 못하는 새 엉뚱한 곳으로 이동해 있었다.
그러다 벽이나 전신주에 부딪힌 일도 몇 번이나 있었다.
아아, 부딪히겠다, 부딪히겠다, 다가간다, 다가간다, 고
먼 의식으로는 알고 있는데, 멈출 수가 없었다.
부딪히거나 넘어진 후에는,
눈을 뜰 수가 없어 감고 있어도 주위가 빙빙 도는 것 같았다.
---
자신의 몸을 제어할 수 없어지는 순간과,
실제로 꿈틀거리는 세계를 몸으로 체감하기 전에는,
그 후의 불쾌함 따위 아무것도 아니었다.
---
제멋대로 돌아가는 세계에 아무도 손 댈 수 없고,
내 몸마저 내가 제어할 수 없는
강렬한 감각이 재밌었다는 것만 기억할 뿐이다.

 
- 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

 
*나도 어렸을 적 저런 놀이를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나는 혼자가 아니라 내 동생이랑 동네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놀았다는 것.
새삼 그리워지기도 한다.
자전거 질주 & 마당 & 숨겨진 골목 & 비가 오는 풍경.

2006.12.11 23: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는 그저 놀랄 뿐이다.
어제와 엊그제를 구별할 수 없다는 사실에.
내가 새긴 발자취가 그것을 확인할 틈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바람에 날려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에.


- 잠, 무라카미 하루키.


+ 언뜻 보면, 전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일과.
(스토리라인을 만드는 것, 노래 틀어놓고, 노래 부르고,
아트 잡지를 뒤적이는 취미생활& 일에 휘둘리는 것)
소소한 일상에서 조금 몰두해서 발견되어지는
어제와 오늘의 자그마한 차이(이를테면,
어제는 소설의 진전이 없었는데 오늘은 미량이 있었다는 것&
어제는 D의 노래를 들었는데, 오늘은 Wizard의 노래를
틀었다는 것& 문제집을 풀어야지 다짐했다는
타인이 보면 사소할 것들)를 생각했다.

2006.09.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가랑잎 색깔의 논이 평평하게 펼쳐져 있었고,
한참 먼 곳에는 하늘과 땅 사이에 선로가 있었다.
도화지에 그린 그림에 장난으로
지퍼를 그려놓은 것처럼 쭉 뻗은 직선이었다.
하얀 바탕에 빨간색 전철이 지나갔다.
마치 지퍼를 여는 것처럼.
열린 지퍼 건너편으로
뭔가 다른 경치가 펼쳐져 있지 않을까 하는
어린아이 같은 기대를 가지고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지만,
전철이 지나가자
익숙하게 보아 온 경치가 그 자리에 있었다.

- 공중정원, 가쿠타 미츠요.

 

 

--------------------------------------------------------------------------------

 


*표현과 영상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이고 곱씹으며 되짚었다.
개인적 견해로, 주제의식은 [전체적으로, 변함없는 일상]을
전철이 지나가는 장면으로 오버랩 시켜 담은 것 같다.
환상이 가득한 배경, 번쩍하는 풍경,

혹은 짜릿한 감각을 원하지만,
유유히 흘러가는 일상이 펼쳐지는 것처럼.

2007.01.02 22: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