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시대 - 에리히 케스트너의 삶과 문학 / 클라우스 코르돈 지음, 시와 진실 Die Zeit ist kaputt
우연히 발견하고 기뻤다. 에리히 케스트너의 삶과 문학을 다룬 책을 한국어로 읽을 수 있다니. 눈에 띄지 않은 책이지만 에리히 케스트너에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읽어볼만 하다. 에리히 케스트너 살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독일의 현실도 공감가는 부분이 많다. 본질적으로 자유를 억압받는 시대에 지식인이 겪어야 했던 갈등과 고난은 비슷한 법이다.
작품을 읽고나면, 작가가 궁금해진다. 에리히 케스트너는 <로테와 루이제>, <하늘을 나는 교실>처럼 한없이 유쾌한 작품을 쓴 사람의 인생을 어떨까. 상당히 인생은 꼬여있다. 케스트너는 어느 패거리에도 들어가지 않고, '홀로'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권력에 대해 글과 행동으로 싸운 -그리고 드물게 끝까지 변절하지 않은- 투사의 면모가 있으면서, 개인적으로-특히 여자관계에서는- 한심한 마마보이에 바람둥이다. 그가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여자를 대하는 태도는 정말 '최하'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그를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확실히 여자는 유쾌하고 말 잘하는 '질 나쁜'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나 보다.
아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어머니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받아 20대에 이미 저널리스트, 작가, 평론가로 문명을 날리며 살았던 에리히 케스트너는 개인적인 삶은 -모든 평범한 사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불행했다. 에리히 케스트너는 유부녀였던 어머니가 유부남이었던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어 태어났고, 그것때문은 아니었지만 어머니와 법률상 아버지는 사이가 극도로 좋지 않았다. 싸운 것이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부부로 살게되면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냉랭한 무시.. 그리고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집착, 8년동안 사귄 여자에게 버림받는다. 나치의 치하 아래 글쓰기를 금지 당하고, 자신의 작품이 불태워지는 것을 직접 목도한다. 극도의 경제적 궁핍과 목숨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그곳에서 버텼다. 평생 결혼하지 않았지만 두 여자와 내연의 관계를 유지했고, 그 중 한 여자가 그의 아들을 낳았다.
처음에는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책을 읽었지만, 점점 페이지를 넘길수록 '인간' 에리히 케스트너의 복잡성에 끌린다. 요컨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은 한길 사람 속이란 거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독일 문학사, 독일사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생소한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한마디로 독일색이 강하다는 게다- 읽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에리히 케스트너란 재미있는 인간과 그만큼 재미있던 시절-역설적이든 아니든-이 엮어내는 이야기가 정말 한 편의 소설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