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을 잃는다는 건 선택과 자유, 그리고 인간성을 잃는다는 것과 동일하다, 는 생각에서 이 소설은 시작한다. 어딘지 괴짜인 열두 살 소년. 빨간 두건으로 얼굴 가리고 다니는 130년 후 미래 세상의 아이. 핵전쟁 참사 후 100년의 암흑기를 지났고 남아있는 인간들이 모여들어 하나의 통합국 '미르국'을 세워 평화롭게 살고있다. (왜 미르, 하면 자꾸 다른 사람이 생각나고 그르지요?) 저 바깥 세상은 오염되고 황폐한 곳이라 안전한 미르국 '내'에서만 첨단 기술과 완벽한 기술 및 제도로 보호받는 인간들. 그런줄 알았지만. 띠로리.

 

상민의 엄마는 로봇, 할리의 제조자였고 늘 바쁘고 차가운 엄마였다. 큰 일 하시는 분이니 방해를 해서도 투정을 부려서도 안됐다. 그나마 친절한 운전사 할리 제이슨이 상민의 곁을 지켜준다. 아침마다 학교에서 강제로 급식하는 바누슈슈, 의식을 잃었던 친구 제제가 할리가 된 사실과 새 대통령이 실은 할리라는 비밀을 알게된 상민이는 도망쳐 나와버린다. 제이슨과 함께. 가출 서사. 빠라밤.

 

이제 어디로 가는가. 미르국 바깥으로. 방사능 오염으로 찌든 불모의 땅인줄만 알았던 바깥에 바다가, 깨끗한 해변의 우사카 섬이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에 형형색색의 숲과 동물들. 그리고 자연치유까지. 마더 어셈블러 기계와 여왕 개미의 비유, 할리와 인간. 문명과 자연의 이분법으로 보이지만 결국 전쟁과 화합이라는 무거운 주제,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까지 안겨주며 소설은 끝난다.

 

한 줄에 한 문장. 짧고 빠른 호흡,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독자를 몰아가기 때문에 우리집 열두 살 소년은 흠뻑 빠져서 읽고 '엄마, 이거 읽으세요. 꼭 읽으세요' 독촉했다. 읽다보니 아이의 마음을 알 것도 같더라. 냉정한 엄마, 자신의 복제품으로서의 자식을 원하는 엄마, 뜻대로 되지 않을 땐 자식을 '죽여 버리'기도 하는 엄마 이야기. 하하하 공부가 그리 싫고 매일매일이 섪더냐.

 

사랑을 믿고, 모든 걸 의심하고 네 자신을 찾아라. 이건 뭐 코기토 에르고 숨. ...  지나치게 안전하고 건전한 주제다. 그런데 책을 읽는 내내 초반부터 (제이슨 (본?)의 아이덴디티는 눈치챘고) the Giver 기억전달자달빛 마신 소녀와 비슷해서 몰입이 힘들었다. 초반에 던져놓은 여러 소재들을 정리하지 않고 그냥 끝내버리고 한국 특유의 정서, 핏줄이 최고,라는 믿음은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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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8-04-12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저도 읽자마자 뭔가 어디서 읽고 많이 붙여 놓은 동화같단 생각을 했어요.-0-마지막에 유부만두님께서 하신 말씀 제가 쓴 글인줄..그래도 꼭 애들이랑 읽어보고 싶네요.^^

유부만두 2018-04-12 20:05   좋아요 0 | URL
제가 클라이막스는 일부러 숨겼어요. 흐름이 빠르고 감정표현이 즉각적이라 아이들이 ‘시원하게’ 여기며 읽어요. ^^

단발머리 2018-04-12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빛 마신 소녀>는 사 놓기만 하고 아직 못 읽었고, <더 기버>라면....
아아~~ <더 기버>는 정말 인생책이죠. 전 참 좋더라구요.
불편하신 지점은 공감이 되지만, 열두살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완전 귀가 쫑긋해지네요. 저희 집 소년의 마음도 좀 사로잡아달라~~~
컬러보이에게 부탁하고 싶어요^^

유부만두 2018-04-12 20:09   좋아요 0 | URL
더 기버!!! 인생책이죠!

달빛...은 좀 지루하고 번역도 쫌 그래요. 큰 기대는 접어두고 읽으세요. 컬러보이는 아이들이 재밌어하고 읽을거에요.

단발머리 2018-04-12 20:30   좋아요 1 | URL
오늘아침에 도서관에 컬러보이를 상호대차 신청했어요. 브이^^

유부만두 2018-04-12 20:36   좋아요 0 | URL
빠르시군요! 피쓰~!
 

단편 수록작 '나무괘 사랑' 은 시간을 크게 뛰어 넘는 두 사람의 문자 교환이다. '너의 이름은' 에서 메모로 서로에게 남기는 짧은 일기와 사진은 저 쪽에서, 지금이 아닌 다른 시간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런데 그 소통의 상대가 에도시대, 몇 백년이나 전 시대의 사람이라면, 스마트 폰 대신 골동품 궤짝에서 나온 판자에 고어로 나도 모르게 적어보는 몇 줄이라면, 다만 그가 내 나이 또래 스무 살이라면 (아, 저 말고, 주인공 다마미 말입니다....). 사랑, 이라면. 그 자리에 가지 말아요. 그곳에선 대학살이 벌어집니다. 그러니 님하, 그 강 건너지 마오. 공무도하.

 

영화 '시월애'에서 가슴 저린 기다림과 엇갈림에 한숨을 쉬었고, 알고 보니 한동네 주민이었던 남편을 보면 역시 모든 건 타이밍인가 싶다. 타임슬립이 흔한 소재라지만 시간의 엇갈림 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다. 만일 그 때, 미래의 누군가가 내게 쪽지를 건네주었더라면, 상상해 보는 황사의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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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4-11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사가 심한가요? 어젯밤 동생이랑 문자를 하는데 삼한사온이라고 하든디.

유부만두 2018-04-12 07:57   좋아요 0 | URL
이젠 봄엔 대기예보랑 마스크 챙기는 건 일상이에요.
삼한사온...맞네요. 꽃샘추위 라기엔 꽤 추웠어요. 그러다 어제 그제는 따뜻하고요. 주말에 비온다고 하니 삼한사온. ^^

비연 2018-04-11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기가 넘 나쁘네요..ㅜㅜ;;;

유부만두 2018-04-12 07:57   좋아요 0 | URL
네 마스크 챙기시고 건강 조심하세요.
 

마키메 마나부의 단편 '연애편지와 레몬'에 언급되는 스님이 나오는 소설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코'이다. '코'라면 고골, 허위의 상징이고 기괴한 과장과 풍자로 만난 기억이 있는데 이번 코는 소심한 자의식이고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이다.

 

 

 

코를 닮아서 스프링 롤을 만든 건 아니었다. 내가 엽기지만 그정도는 아니...

 

스님의 코 치료는 징그럽고도 우습다. 찜질에 뽑아내는 실...이라니 이건 모낭충인가, 아니면 화이트 헤드 제거하는 코팩이려나. 느긋하게 시침 떼고 펼쳐지는 묘사에 아, 이러다 스님 먼길 가시겠네, 싶었다. 우스꽝스러운 치료 과정은 사람, 특히 스님을 대하는 게 아니라 '고기', 아주 하찮은 덩어리 하나를 처리하는 모습일 뿐이다. 실은 그 덩어리가 스님의 고고한 인격에 한 줄 흠이었는데도.  치료된 모습에 경멸을 보이는 사람들의 속성은 어쩜 이리 날카로운지. 그에 휘둘려 더 괴로워하는 스님. 수양이 부족하십니다...만, 그 맘을 저도 알겠어요. 날카롭고 우스운만큼 무서운 이야기를 쓴 아쿠타가와 (문학상 이름으로 먼저 알았습니다) 류노스케, 그의 단편집을 마저 읽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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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4-10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쇼몬, 랴쇼몬, 랴쇼몬,
라쇼몬을 외우는 아침입니다. ^^

스프링 롤과 월남쌈의 제일 중요한 차이는 무엇일까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유부만두 2018-04-10 08:58   좋아요 0 | URL
갸가 갸에요. ㅎㅎㅎ
 

주말을 달렸다. 칼로리를 넉넉히 적립해놔서 한동안 걱정 없겠지만, 입맛은 펄펄 살아있어서 다음주도 어쩔지 나는 모른다. 막내와 밀떡으로 떡볶이를, 어묵과 버섯을 넉넉히 넣은 우동을, 맑은 콩나물국을 곁들인 낚지볶음밥을, 입가심으로는 치즈케익과 커피, 그리고 드디어 5승을 이뤄서 공동 8위를 한 엘지팀을 축하하며 통닭을 ...

 

그러느라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로 시작해서 교토 소설들을 읽으려 한다. 동아리 대학생들과 도깨비인지 어떤 정령들인지 대거 나오는 단편소설집. '가오가마 소 호루모'는 열명의 대표 선수들이 천 마리의 미니 도깨비들을 이끌고 대학별 대전을 펼치는데 두 여학생들의 우정이 귀엽기도 별나기도하다. 포켓볼을 한번에 내던지며 '가랏, 피카추우~~~' 하면 저 짝에서 '네 차례야, 이상해 씨이!' 다만 이 몬스터들은 귀여운 외모가 아니고 건포도를 먹어야 기운이 솟는다고. 교토의 상징이라는 가모가와 강변에서 비오는 날 벌어지는 대전, 사다코와 쇼코의 우정의 확인. 시스터 후드.

 

정신을 차려야겠다. 주말엔 뭣에 홀린듯 달렸다. 월요일, 일탈은 그만, 정상으로 돌아오자. 일단 브런치 라면 물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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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4-09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떡볶이는 가능한데, 낙지볶음밥은 못 해서요. 완전 침이 고입니다.
LG 공동 8위 축하드려요~~ 8위에 통닭이니까, 1위 하면~~~ 으흠~~~~~~~^^

유부만두 2018-04-10 08:19   좋아요 0 | URL
ㅋㅋㅋ 기둥 뽑을까봐 LG는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아.... 속 터지는 애증의 팀이죠. 낙지 볶음밥은 (실은 남은 양념에 낙지 쪼끔만 넣고 빨리 볶아 버린 거에요. 양이 적어서 계란을 세 개나 부쳐서 얹었고요)

목나무 2018-04-09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는 게 남는거죠. ㅎㅎ
저도 주말에 배를 든든히 채웠는데 지금은 텅텅 비었어요. ㅜㅜ
빨랑 퇴근해서 또 채워야징. . ㅋㅋ
맛저녁하셔요. ^^

유부만두 2018-04-10 08:2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요즘 식욕 돋는 막내 덕에 반강제 요리사입니다. ^^
해목씨는 더 드셔야해! 그렇게 말라서 어쩌우. (이건 참견 잘하는 아줌마 모드로 썼음)

꼬마요정 2018-04-09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뷰만두님~ 블루보틀 서울에 삼청동이랑 명동성당이랑 또 어디 들어온다더라구요~
반가운 소식이라 달려왔어요 ㅎㅎㅎ

엘지를 응원하시는군요 ㅎㅎ 저는 롯데연고지라 야구 끊었습니다 ㅎㅎㅎ

유부만두 2018-04-10 08:21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블루보틀 궁금하네요. ^^

롯데....하....지난 주말 없이 사는 팀 끼리 참 맘이 짠했어요. 서로 누가누가 못하나 ... 이래서 엘롯...이라고 부르나봐요. 야구를 끊으시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그 비법은요?

psyche 2018-04-16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로야구 팀이 전부 몇개야? 나는 한 8팀 정도인줄 알았는데 공동 8위라고 하는걸 보니 최소 꼴찌는 아니라는 듯?

유부만두 2018-04-16 07:49   좋아요 0 | URL
총 10개에요. 요 며칠 잘해서 4위로 올라섰고요.
 

지난달에 갔던 어린이책 강연회에서 강사님의 추천을 받은 윤승원 님의 만화 이야기 책을 구입했다. 날은 춥고, 토요일이지만 더 집안에만 있고 싶은 날. 부추전을 구워서 아이랑 먹었다. 많이 많이.  

 

 

'맹꽁이 서당'의 친구뻘인 '청개구리 글방' 에서 벌어지는 일이 엉성한듯 정겨운 그림체로 펼쳐지고 읽으면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아이들은 개구지고, 훈장님은 나이들어 노쇠한데 서로 모두 호호호. 담뱃대로 꽁꽁 꿀밤을 먹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결석도 안하고 이야기 (이바구) 듣겠다고 한자 외우기 숙제도 열심히 한다. (이쯤되면 판타지)

 

조선시대 기인으로, 혹은 효자나 충신으로 이름났던 (하지만 사회 역사 책에선 흔히 다루지 않았던) 인물에 대해 훈장님이 이야기 해주신다. 장사로 이름났지만 겉으론 약골이었다거나 귀신에게 홀려가던 아이가 어떻게 죽은 이도 살리는 神醫가 되었는지 등등의 이야기다. 한번에 내리 읽기에는 양도 질도 만만찮아서 나눠 읽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이 유교 스피릿의 조선 이야기라 충! 효! 하는 대목에선 거부감도 들고 (효자가 나쁜 사람일 리가 없다고요? 가족 이기주의 범죄가 조선시대라고 없다고요?) 부모 선생은 무조건 명령하달이고 아이들은 따르기만 한다는 법은 (이러면 애들이 책을 안읽는다고요!) 곰팡내가 난다. 그래도 훈장선생의 헐렝한 미소와 아이들을 대하는 넉넉한 마음은 '뭐 이런 시절도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한자도 중간중간 꽤 들어있어서 아이들이 관심을 가져줄 수도 있고 (제발) 흔한 학습만화 류 보다 훨씬 알차기에 초등 고학년은 우습게 여기겠지만 추천 추천.

 

 

함께 산 '아무튼 스릴러' 쬐끄만데 재미는 있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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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8-04-08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맹꽁이 서당, 요철 발명왕!! 이분이 아직도 책을 내시고 계신지 몰랐어요. 반가운 마음에 저도 이 책 주문해서 보기로 ^^

유부만두 2018-04-08 16:01   좋아요 0 | URL
어렸을 때 읽었던 생각도 나고 좋았어요. 요즘 스타일과는 다르지만 속깊은 맛이랄까요, 그런 느낌이 드는 만화에요. 아이 눈에는 설겠지만 읽어보게 하려고 샀어요. ^^ ‘한심이 표류기‘ 찾아봤더니 중고가격이 몇십 만원을 넘네요. 이런....

psyche 2018-04-16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그림 보니 반갑네!

유부만두 2018-04-16 07:48   좋아요 0 | URL
어린이 시절 .... 꺼벙이도 생각나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