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같은듯 다른 두 편의 소설을 다시 읽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라쇼몬'은 궁핍한 800년 대 헤이안 시기의 교토 모습을 보여준다. 비오는 날, 쫒겨난 하인은 생계가 막막하다. 앞으로 어찌 살아가나, 그래도 사람이니 착하게 살아야지 맘먹고 라쇼몬 위쪽으로 올라가는데 그곳엔 사람들이 (얼마나 살기 힘들면) 시신을 내다 버려두었다. 시체들 틈에 웅크리고 앉아 시체에서 머리칼을 뽑는 노파. 시체 파먹는 여우보다 더 끔찍하게 보이는 이 '사람'의 행위. 그걸 보고 이제사 뒤늦게 내 밥은 내가 지킨다, 라는 법칙을 깨닫는 하인. 서둘러 자기 몫을 챙긴다

 

이 모든 것을 말없이 보고 끌어안는 라쇼몬. 비는 추적 추적 내리고 이 찜찜하고 기괴한 이야기는 단편 '덤불 속'으로 이어진다. 사건 후 교토의 유명한 절 청수사(기요미즈데라)에 숨어있던 여인이 재판에 나와 증언한다. 자신이 남편을 죽였노라고. 사무라이의 경멸하는 눈빛을 견딜 수 없었노라고. 악행을 저지르고 감당 못해 기절해 버렸고, 자살을 할 수도 없었는데 이제 어쩌면 좋으냐고. 흑흑흑. 덤불 속에서 발견된 어느 젊은 사무라이의 시체.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악명 높은 도둑 다조마루는 허망하게 욕심에 속아서 아내도 목숨도 잃은 사무라이를 비난하지만 그는 죽을 때 자신과 용감하게 겨루었고 자신은 사무라이를 능가한다고 허세를 부린다. 무당의 입을 빌어 원망을 쏟는 사무라이는 도둑과 요망한 부인의 모욕을 견딜 수 없어서 자결했노라 한다. 생명을 빼앗는 중요한 행위를 누가누가 했을까, 그 주인공 찾기의 무대가 된 재판정. 구경꾼 역인 승려와 나뭇꾼은 '알 수가 없네'고 읊조린다.

    

 도서관 책으로 읽었는데, 그래 사야겠구나 이 단편집은. 인간에게 기대와 희망을 품고 싶을 때 읽고 냉소적인 만두가 될 수 있겠다. 내 나이에 다른 인간을 믿고 좋아하다가 상처받으면 약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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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쇼몽'을 찾아 봤다. 단편 '라쇼몬'의 섬뜩한 느낌, 그 비내리는 폐허의 잔상이 길고 깊어서다. 옛영화 특유의 크게 울리는 음악이 내내 사람을 긴장 시켰다.

 

https://youtu.be/xCZ9TguVOIA

 

영화는 오늘처럼 비오는 날, 교토의 남대문인 라쇼몬, 지붕 위쪽은 반쯤 허물어져 살아있는 사람 보다는 시체에 어울리는 장소에서 시작한다. 백년 전의 소설가가 그보다 백년 앞선 황폐한 시대의 인간 맨얼굴을 그렸다. 비에 젖어, 낮에 쨍한 관가 마당에서 했던 증언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승려와 나뭇꾼.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소설 덤불 속의 사건의 증인들이다. 승려는 길에서 지나가던 사무라이와 부인을 봤고 나뭇꾼은 사무라이의 시체를 발견했다. 영화는 소설과 동일한데 그들의 증언이 영상으로, 한낮의 맑고 무더운 날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두 남자, 도적 다조마루와 점잖은 체 하지만 얄팍한 속임수에 욕심으로 넘어가버리는 사무라이, 그 둘 사이에 성취물처럼 놓여있는 여인. 서로 차지하려 싸우다가 한쪽이 버리니 나머지도 금세 입맛을 잃는다. 소설에서는 끝까지 이제 어쩌냐며 울어버리는 여인이지만 영화에서는 미친 듯이 웃어제끼며 둘을 싸움 붙인다. 자존심을 부추키며. 둘다 지쳐 나가떨어질 땐 여인은 사라지고 없다.

 

이 모든 장면을 영화에서는 나뭇꾼이 목격했지만 재판정에서는 말하지 않았다. 자기도 욕심으로 무언가를 훔쳤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상해, 사람들은 왜 그렇게 이야기 하는가라는 중얼거리는 승려와 나뭇꾼에서 시작하는데 그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인간 따위는 욕심으로 이루어졌고 체면 따위는 없는거라는 인물이 (아마도 소설 '라쇼몬'의 그 하인) 등장해서 이번엔 노파 대신 버려져 울고있는 아기에게서 옷과 포대기를 벗겨 갖고 떠나버린다. (비열하고 이기적인 이 인물은 '이야기는 재미있으면 그만, 진실은 내 알 바 아님, 이라고 말하는 ... 나 같았다.) 이제 이 아기는 어찌할 것인가, 최소한의 염치라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나뭇꾼이 속죄의 마음으로 (자신은 그리 말하지 않지만) 키우겠노라 약속하는 (처음엔 그 조차 의심하는 승려) 나뭇꾼. 영화는 어둡고 시끄럽고 강렬하게 비와 땀과 칼부림을 쏟아내지만 결말은 비가 그치고 그래도 인간, 약속이라도 작은 믿음이라도 보여주려한다. 이대근을 닮은 도둑 다조마루와 나약해 보이다가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르자  거의 미쳐 소리지르는 여인, 그리고 진짜 넋을 내준 무녀, 새침한 사무라이 등 각각의 인물들이 전형적이지만 생생하게 여러 감정을 보여주어서 기억에 남는다. 역시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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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4-23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래식의 클라쓰라고나 할까요.
고전으로 추앙 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라쇼몽의 핵심은 인간은 모두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사실만 보게 되더라 뭐 그런 게
아닐까요.

상이한 진술 가운데 진실을 찾아내는 일은
아마도 신의 영역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부만두 2018-04-23 21:13   좋아요 0 | URL
동감이에요. 진실은 결국 인간의 능력 밖에 있겠지요.
그러니 인간 독자들은 재미만 챙기기로 하겠습니다. ^^

클래식은 의미 만큼, 은근하게 묵직한 재미가 있었어요.
이 영화 추천하고 싶어요. (이미 보셨을듯)

레삭매냐 2018-04-24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기 전에 영화 보기에 미쳤었던 시절
이 있었습니다. 20년도 더 된 시절의 이야기네요.

한 때 씨네필이었는데 당근으로 봤습지요 ㅋㅋㅋ
 

아무튼 시리즈 중 '스릴러'와 '택시'를 읽었는데 두 책의 구성과 문체, 내용(은 당연하고), 남는 느낌도 매우 다르다. 시리즈를 묶는 공통점은 무얼까. 아무튼, 이건 시리즙니다.

 

금정연 작가는 가볍고 (아주 조금은 귀여운) 분위기로 자신이 얼마나 무해하고 착한지, 수동적이며 순진한 택시 승객인지 수다떨듯 책을 시작했다. 부인의 경험을 통해 여성 승객의 불편함을 건드리기도 했고, 택시 기사와 승객, 택시라는 공간의 밀폐된 폭력성을 영화와 소설을 가져다 풀어놓을 듯 하다 말았다. 결국 '혼자 혹은 따로' 타는 택시. 작년 일정 기간 동안 택시 만큼이나 그가 자주 탄 인생차 (모델명이 la vita), 한 무리의 아저씨 영화인들과의 경험이 묵직하다. 택시거나 인생이거나, 혼자거나 (억지로) 무리거나.

 

그에게도, 다른 승객이나 기사에게도 택시의 경험은 일상이라 아주 즐겁지도 뜻대로 되지도 않는다. 막히면 짜증나고 유턴금지에 사고도 나 있고, 금정연 작가의 글쓰기도 일상처럼 무슨 말을 끝까지 밀어붙여서 풀듯 하다가 그 기개에 제풀에 놀라 주저 앉으며 꿍얼거린다. 인생 이런거 아니겠냐고, 아무튼 일상, 아무튼 책이니 책장은 넘어가고 웃기도 하고. 저자 양반의 수다를 네, 네, 하고 건성으로 읽다보면 어딘지 목적지로 가긴 하겠지. 책값으로는 우리동네에서 택시 타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이 책을 시작하면서 어제, 나는 목적지를 말을 했던가, 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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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4-23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정연 작가는 요즘 활발히 활동하는 것 같아요. 괜히 반가운 작가네요. (괜히는 아니죠~~제가 금정연 마니아 17위더라고요!! ㅎㅎㅎㅎ)

유부만두 2018-04-23 21:14   좋아요 0 | URL
금정연 작가는 친근한 방식의 글을 많이 쓰더라구요. 서평집이 몇 권 나와있는데 전 이번에 처음 단행본을 읽었고요 (전에 그의 글/말이 실린 책을 읽은 적은 있고요).
 

이 책은 살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사기도 하고 또 읽기 시작해서 재밌어하니 별일이지. 흔히 있는 별일.

 

택시를 자주 타고 좋아한다고 책 소개를 하는 방송을 들었을 때, 남자들은 택시를 편하게 타는구나 싶어서 짜증이 났다. 택시에 올라탈 때마다 기사 눈치를 보고, 난폭 운전이나 시끄러운 라디오 음악, 운전중 전화 통화를 참아야 했는데, 게다가 자꾸 이런 저런 수다를 절반쯤 반말로 던지는 기사는 어떻고. 이런 걱정 없이 오늘도, 랄랄라 나는 택시 타, 라고 일지와 가벼운 생활 엣세이를 써서 노란 표지 책을 엮어 내는 이 천진무구한 작가님이라니.

 

여성 독자들의 뜨악한 얼굴을 상상하지 못할 작가는 아니다. 그는 이미 여성 탑승객의 불편함, 혹은 불리함을 아내의 경험을 통해서 보고 글로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 글이 이 얇은 책 안에 다시 인용되어 있기도 하고.

 

어쟀거나, 이 책을 사지 않으려다 샀고, 어제 온 택배 상자를 아침에 열어서 읽고 있다. 함께 산 '복제인간 윤봉구' 보다 먼저. 노란색이 파란 표지를 이겼다. 어서 씻고 준비한 다음 아들녀석 면회를 가야한다. 군식당엔 순대가 나오지 않는다고, 순대를 사오라고 한다. 당면순대 말고 함경도식 아바이 순대를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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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4 0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4 0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복제인간 이야기. 승민은 교수인 아빠와 변호사인 엄마에 비해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몸은 건강하지만 머리는 평범한 아이. 하지만 부모님은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다. 실은 따로 5년전부터 완벽한 두뇌의 복제인간을 준비해 두어서 승민이는 최고의 두뇌를 이식받을 예정이다. 이 계획은 아직 부모님의 비밀이지만 승민이가 아빠의 컴퓨터를 몰래 열어 알게된 사실. (승민이 똑똑한걸?)

 

복제인간 생명권에 대한 이야기는 '네버 렛 미 고' 에서 가슴 아프게 읽었기에 이 아주 짧은 단편의 단순한 외침 '죽이면 안되잖아요' 라는 어린이 말로는 그닥 설득되지 않는다. '마이 시스터즈 키퍼'도 생각나고. 비슷한 설정의 이야기에 몰입하려면 디테일이 필요한데 많이 엉성하고 틈이 보인다. 수학이나 운동을 잘하려고 복제인간을 만들어서 부분을 쓰고 버린다, 90년 이후의 세상에서? 생명권을 언급하기 전에 경제성이 떨어진다. 병원에서의 두 아이를 착각하는 설정도 너무 어설프다. 한 세기 후 세상의 어린이들은 아직도 학교 등수와 공부 경쟁을 신경쓰며 재미 없게 살고 있을까? 복제인간 선택을 못하는 부모들과 아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왜 승민이만 복제인간 걱정을 하는걸까. 서로를 안타까워하는 승민과 미르. 이 두아이는 마음도 닮아 보인다. 어쩌면 그 마음도 복제가 된 걸까. 복제인간 혹은 쌍둥이 설정이 미래세상도 현재의 세상도 그려내지 못하는 것 같아서 실망이다. 함께 읽은 막내는 나름 반전이라고 놀라며 얼른 자기 왼쪽 겨드랑이를 살폈다. (표지그림처럼) 또다른 복제인간 이야기 봉구도 만나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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