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딸이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고 집 밖에선 다른 모습으로 행동한다. 사교생활도 없이 착실한 직장인으로 딸만 바라보며 엄격하게 살아온 엄마는 가슴이, 생활과 믿음이 한꺼번에 무너져 버린다. 하지만 딸은 엄마와 마찬가지로 '사람'이고 운명과 바깥 세상에 당하기만 하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라 욕망하고 선택하고, 실수에서 천천히 배워가는 중이었다. 실은, 엄마도 그렇다. 그 지독한 여름, 딸과 엄마는 자라난다. 먼 훗날, 그 여름을 그들은 각각 다른 의미로 기억할것이다.

 

소설은 아주 재미있다. 99년에 나온 스트라우트의 초기 소설이라 최근작 Lucy Barton에서 보이는 절제된 호흡과는 다른 식으로 이야기를 쏟아낸다. 내밀한, 그리고 농염한 묘사가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뭐 어때? 욕망하고 놓치고 아파하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부끄러운 건 아니다. 미니시리즈 같은 (미국 모녀인데 어쩐지 한국 엄마딸 같았다, 특히 가위 장면) 딸과 엄마의 이야기가 강하고 아프게 와닿는다. 곧 개정된 번역판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새를 못 참고 읽어버렸다. 아, 나의 토요일 밤을 하얗게 불태웠어. 에이미가 에미(엄마)가 아니라 딸이름이라고 쓰면 아짐개그라고 돌맞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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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6-04-26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책 하나도 안 읽고 있는데 이 책 떙기네.. 언제 읽을지 모르지만 일단 위시 리스트에!
에이미가 에미가 아니라 딸이름이라는 개그에 풋 했으니 나도 역시 아짐...ㅎㅎ

유부만두 2016-04-26 07:30   좋아요 0 | URL
이야기 틀은 흔한 드라마인듯하지만 인물들 속내 묘사가 압권이에요. 재밌게 읽었어요! (딸이 없는 에미지만요;;;;)

2016-04-27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부만두 2016-04-27 23:03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합니다♡
 

책에 대한 책은 위험하다. 아직도 내 책장이 엉성하고, 내가 몰랐던 책들이 이렇게나 많고, 내가 지금 해야할 일은 서점이나 도서관으로 가는 거라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책읽기가 얼마나 개인적인 즐거움인지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오롯이 내것인 즐거움, 책읽기에 좋은 날은 바로 오늘.

 

그래서 내가 찜한 책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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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4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부만두 2016-04-25 06:53   좋아요 0 | URL
저도 읽으려 찜했어요. ^^

psyche 2016-04-26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중에 사놓고 안읽은 책 세권, 나머지는 처음보는 책인데 또 끌리네 어쩌지? 책 읽지는 않으면서 리스트만 쭉 길어지고 있으니

유부만두 2016-04-26 07:31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 증세는 익숙해요
 

이렇게 솔직하게 개인의 이야기를, 어머니와 인생의 이야기를 풀어놓아도 될까, 싶었다. 살구와 엉킨 실타래 같은 이야기들은 개인의 몸 속, 작은 세포에서부터 저 멀리 우주의 별자리, 그리고 먼 과거와 설화 속의 사냥까지 그 끝이 닿아있다. 내가 읽는 이 페이지의 이 문장이 어느 시대의 공간을 두드릴지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한없이 쪼그라들다 한없이 멀리 멀리 뻗어나가는 경험을 했다.

 

중반부는 읽기가 조금 버거웠지만 견디고 끝까지 읽을만한 책이다. 작년에 읽은 <새벽의 인문학>이 생각났지만, 그보다 더 진하고 더 아름답다. 각 장마다 이어지는 눈물 마시는 나방 이야기는 따로 한 번 더 읽어야했다. 이런 책 한 권이 살아가는 일을 더욱 빛나게 한다.

 

다만 저자가 언급하는 책들에 대한 정보가 index나 주석으로 나오지 않아서 아쉽다. 이렇게 아름다운 책에서 뻗어나가는 그 다음 도서목록은 꽤 풍성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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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환상의 빛> 보다는 덜한 감동이다. 아름다운 표지와 매끄러운 문장으로 짧은 시간에 읽어버려서 조금 아깝기도 한 소설. 부부 사이였던 이 두 사람은 편지로 대화를 나눈다기 보다는 각자의 독백을 써내려간다. 남편이었던 아리마는 다른 여인과의 일화를 은밀한 부분까지 필요이상으로 묘사하기까지 한다. 이들은 상대방 보다는 독자를, 그보다는 자기 자신들을 더 의식한다. 하지만 업보라는 개념은 영 불편했고 그 책임을 아이의 어머니가 짊어지겠다고 (싸워나가겠다고) 결심하는 장면은 답답한 기분 마저 들게 한다.

 

인형 같은, 아니면 아리마의 꿈 속에 나오는 다섯 살 어린 소녀의 여주인공 아키는 아버지, 남편들, 그리고 불편한 몸으로 태어난 아들까지, 삼종지도를 떠올리게 하는 인간관계 속에 서 있다. (남자 작가라서 그런걸까, 나약하고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판타지가 등장 여자 인물들에 노골적으로 드러나있다) 소설 말미에 어머니 묘소 앞에서 결단을 (아버지와 함께) 내리는 아키, 그녀의 앞길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편지로 쓰는 독백 없이 혼자서, 아니 느리지만 성장해 나가는 아들도 함께 씩씩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이제 그녀의 진짜 목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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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은 모디아노의 소설이다. 되풀이된다는 그의 기억/탐정/안개 등이 내게는 새로웠다. 노년이라는 주제가 다른 작가나 소설을 떠올리게 했지만 모디아노의 이 소설은 해결되거나 설명되지 않고 남겨놓은 부분들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고, 적당한 긴장감도 소설 말미까지 이어졌다. 서둘지 않고 느긋하게 시간과 공간을 오가는 화자는 조급하게 보채는 그 젊은 커플과 대조적이다. 꼬맹이 쟝은 어른 작가가 되었지만 그의 조각난 기억들은 아직도 이어지지 않고 그리운 사람들도 지금 드러나지 않은 채 남아있다. 하지만 '십오 년의 차를 두고 방 한 켠에서 맞은 편으로 옮겨간 느낌'이라는 표현이 가슴에 남는다. 그는 과거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지 않고 여기 이 자리에서 저 편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쓴다.

 

아이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종이에 주소를 적어주는 (아직은 너무 젊은) 어른. 불어 접속법 te perdes 길을 잃는다는 표현은 단순히 길을 잃을 뿐 아니라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뜻이라 옛 거리를 걸으면서 자신을, 기억을, 어린 시절의 그 사람들을 더듬는 작가의 심정이 더 애잔하다. 어쩌면 '그 사건'이나 감옥살이, 장의 부모와 지인들의 관계를 밝혀내는 건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소설을 다 읽고, 해설을 읽고, 그 뒤에 나오는 작가연보를 읽고 책을 덮을 때 까지도 소설은 계속 이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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