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의 1장을 겨우 읽고 기쁨에 겨워 마들렌느를 한 개 (아니고 다섯 개)를 홍차에 적셔 먹기 까지 했으면서 오래 덮어 두었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큰아이 군복무 기간 21개월 동안 7권을 완독 하려면 1권을 석달 동안, 즉 1부는 2월말에 완독해야 시간표에 맞다. 하지만 계산에 맞게만 읽었다면 내게 왜 '오딧세이아'가 세 권이나 안 읽힌 채로 있겠으며 수 많은 전집들은 왜 먼지를 쓰고 있을까.

 

1부 마무리에서 레오나 숙모를 할머니의 자매님들이라고 (돌려 말하고 돌려 까기의 선수님들) 오해 했었는데, 어린 마르셀에게 일요일 오전, 미사 시간 전에 마들렌을 주신 분은 레오나 숙모님이셨다. 숙모님은 외할아버지의 사촌누이의 딸인데 남편과 사별후 친정인 콩브레에 내려와 두문불출하고 침대에만 머무르는 상태. 하지만 길 쪽으로 난 창을 통해 작은 동네에 자신이 모든 사건 사고(라고 해봤자, 아무개가 장봐서 가는데 아스파라거스가 팔뚝만하다, 아무개가 케익을 사서 어디로 가더라, 손님 맞이인 게다) 를 알아야 만족하는 분. 정보원으로 하녀를 심부름 보내서 가십을 들고 오게함. 입에는 늘 아, 난 글렀어, 곧 하늘로 가겠지, 라는 말을 달고 살고 이런 저런 약을 먹고, 절대 난 잠 들지 않았어, 를 자부심으로 내세우며 (우리 할머니 예전에 티비 켜놓고 누워계시기에 티비를 껐더니 '나 안잔다, 켜라' 라고 하시고 곧 코를 고셨지) 마을일과 집안일을 침대에서 지휘하시는 분. 그런데 묘하게 밉지는 않네. 마르셀의 가족은 콩브레에 오면 이 레오나 숙모님 댁에 머물렀는데 숙모님댁 하녀는 (1장에도 나오는) 프랑수와즈는 사실 기 세고 뻔뻔한 소녀가 아니라 은퇴할 나이가 된 할머니였다. 그 하녀에게 어린아이를 시켜 보너스로 돈을 건네는 장면은 서글프기도 하다.

 

나도 마들렌을 먹어서인지 (그것도 많이) 이제 슬슬 인물들의 관계와 나이, 모습들이 조금 더 자세히 보인다. 레오나 숙모님의 말투와 참견, 다른이들의 의견은 사양하는 모습이 다소 코믹하게 그려지지만 찻잔에 넣은 마른 잎 (보리수)이 바짝 말라있다가 서서히 물에 풀리는 모습, 햇살이 방 안의 공기를 덥히는 묘사는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정말. 레오나 숙모님이 마들렌을 주로 적셔 드시던 차는 홍차가 아니라 보리수차였다. 프루스트의 단어와 문장은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햇살이 방 안 공기를 빵을 굽듯한다는데 부풀리고 덥히고 구워서 표면이 바삭한 주름을 만드는 과정, 그리고 그 향기가 아아 내 코에도 와 닿는 것만 같다. 이런 너무 몰입하셨군요. 2장은 향기와 그림이다. (실은 아직 2장의 절반;;;) 콩브레의 교회 종탑의 묘사도 너무나 절묘한데 하늘을 콕 찌르는 창, 혹은 살짝 위로 올라가 구워진 브리오슈 같다고 하는데. 더는 참을 수가 없어! 빵집으로 달려 갔지만, 매일빵집 (뚜*쥬*)이나 막대빵집(빠**게*)에는 브리오슈가 없었다. 대신 그림으로 브리오슈를 찾아본다.

 

la Brioche (Chardin, 1763)

 

어제의 그 갈망을 누르고 (잃어버린 식욕을 찾아서, 같지만, 내 식욕은 늘 나와 함께 하지. 절대 떠나지 않아) 오늘 아침은 씨리얼. 이미 절판된 책 '그림과 함께 읽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을 중고 가격과 같은 원서 새책으로 주문했다. 진즉에 사둘껄. 글로 읽은 그림을 눈으로 보게 되겠지만, 그래도 프루스트의 글이 더 아름다울 게 (맛있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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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3-15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는 마들렌이 아니라 브리오슈까지!! 브리오슈 사러 어디로 달려가야하지?

유부만두 2018-03-15 17:35   좋아요 0 | URL
김0모 제과점에도 없네요;;;

라로 2018-03-18 16:08   좋아요 0 | URL
85도씨요. 사진과는 많이 달라보이는 약식 브리오슈.ㅎㅎㅎㅎ

psyche 2018-03-19 00:14   좋아요 0 | URL
저도 85도씨에서 브리오슈 종종 먹는데요. 이게 모양마다 이름이 다르더라구요. 브리오슈 어쩌구. 근데 저 동그란 모양이 제일 유명한건가봐요.

단발머리 2018-03-16 07: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을꺼예요~~
그래야 마들렌느에 홍차를 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18-03-16 08:44   좋아요 0 | URL
보리수차 대신 보리차에 마들렌 곁들이고요~ ^^
 

김란사 특집이라서 살펴보니 11월에 박정희 특집을 낸 잡지네;;;; 쎄 하다. 펴낸 곳은 꼬레아 우라. ‘우라’는 러시아어로 ‘만세’. (톨스토이를 읽고 배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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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3-14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이 잡지 완전 쎄 하네...

유부만두 2018-03-14 07:46   좋아요 0 | URL
그래서 읽고 싶어요, 도 하려다 관두고요, 책링크도 안 걸었어요.
 

3.1절 기념으로 3권 셋트를 사서 읽기 시작했다. 마음이 무겁고 머리도 아프다. 그림체가 바뀐 건지, 일제강점기 전체 개요와 국제 정세를 설명하기 때문인지 중반부까지 읽으면서 박시백 작가의 '조선왕조 실록' 대신 '먼나라 이웃나라'가 떠올랐다.

 

과하게 감정에 호소하려고는 들지 않지만 사이사이 말풍선으로 투덜거림 혹은 숨고르기로 이 숨막히는 세월, 끔찍하고 한탄스러운 역사를 그려낸다. 일본이 어떻게 정치 외교에서 시작해서 조선의 땅과 쌀을 야금야금 먹어들어갔는지, 조선인들은 견디다 못해 도망자, 망명인이 되었는지, 그 시대의 지도자들은 어떻게 행동했는지 배웠다. 한반도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권력 관계를 보여주고 권말에는 꽤 비중있게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3.1절은 2권에 나온다. 8월까지 천천히 곱씹으면서 읽어야겠다.

 

서울교육박물관에서 '김란사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유학생이며 유관순을 비롯한 여학생들을 교육켰고 독립운동에 앞장 선 지식인이었으나 북경에서 의문사했다. 유감스럽게도 김란사(김하란사)는 35년 책의 인명부에는 실려있지 않다.

 

http://edumuseum.sen.go.kr/edumuseum/index.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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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3-13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란사 지금 여기서 처음 알게 되었네. 아 이런 분이 계셨구나

유부만두 2018-03-13 21:54   좋아요 0 | URL
저도요....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죠.

hnine 2018-03-13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까지 ‘하란사‘라는 이름에 익숙해져 있었어요. 이제 ‘김란사‘라고 해야겠군요.

유부만두 2018-03-13 21:55   좋아요 0 | URL
전 아예 처음 만나는 위인이에요. 계속 배우고 읽고 만나고 싶어요.
 

일요일 아침, 식구들은 늦잠을 자는데 나는 괜히 일찍 일어나서 부엌을 서성거렸다. 어젠 만보를 넘게 걸었더니 아직도 발바닥이 아프다. 다리가 짝짝이라 그런가, 운동 부족 탓인가 잠시 생각하다가 읽던 책 '모모푸쿠'를 마저 읽었다. 입에 침이 고인다. 뭐람 이런 파블로프의 개 같은 상황.

 

 

좋은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전통에 집착하기 보다는 재미있게 창의적으로, 때론 또라이 같은 방법으로, 보다 낮은 가격에 많은 양을,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식당을 만드는, 그것도 지쳐 나가떨어지게 열정을 쏟아부은 (어쩌면 우리 나라 백종원 같은 느낌도 드는 조금 더 젊은) 데이비드 챙. 그가 들려준 식당 열기와 음식 메뉴 이야기는 재미있고 맛도 있(어보인)다.

 

'밑줄긋기'

지방에 지방만큼 더 좋은 짝이 없다.

 

연습을 많이 할 수록 운이 좋아지는 거겠죠.

 

너무 숭고한 나머지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요리란 없다고 생각한다.

 

---

 

어제 마신 커피는 체인점이었지만 꽤 맛있었다. 오랜만에 마신 시고 쓰고 단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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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 초등학생일 때도 함께 읽었고, 이번엔 막내 학교 필독서라 다시 읽었다. 예전 책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 다시 샀는데 연두색 표지를 기억했지만 노란색 책이다. 밝고 밝은 노란색.

 

의미없는 먹고 먹는 삶을 살다 '생각'을 하게 되는 호랑 애벌레. 길을 떠나서 벌레들의 기둥에 끼어들고 악착같이 기어 오른다. 짓밟고 엉키는 와중에 노란 애벌레의 눈과 만난다. 둘이서 내려와 편안한 자연의 삶을 잠시 즐기다가 호랑 애벌레는 다시 '생각'을 하고 '의미'에 대해 고민한다. 다시 기둥으로 돌아가는 호랑 애벌레. 의미는 다른 곳, 자신에게 있다는 걸 깨닫고 용기를 내서 꼬치를 짓는 노란 애벌레.

 

해피 엔딩, 수천 개의 기둥 들은 허물어지고 짓밟히고 떨어져 죽을 수 있었던 애벌레들은 나비가 된다. 꽃들에게 희망을 줄 '의미'를 품은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마지막 장면.

 

학교에서 이 책을 함께 읽는 아이들은 경쟁의 기둥을 입시경쟁으로 받아들이겠지. 그럼 애벌레가 되기 위해 참고 고립하는 일시적인 죽음, 꼬치 단계는 무어라 이해할까. (제발 고3이라고 말하지 말아줘) 막내의 애창곡 '나는 나비'가 생각난다. 샤우팅 창법으로 연달아 세 번 부르고 목이 쉬어버리는 막내. 나비란다. 그래 나비. 훨훨 날아야지. 노래하고 춤추는 아름다운 나비. 거미줄과 사마귀를 피해서 날아서 꽃을 찾아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 지금은 토요일 늦잠을 즐기며 애벌레처럼 이불로 몸을 싸매고 누워있는 나의 나비.

 

 

https://youtu.be/OLAqv_Zbo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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