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400. 종이달 (가쿠다 미쓰요)

 

영화 <종이달>을 먼저 보았는데, 갑갑하면서도 당당한(뻔뻔한?) 주인공이 마음에 들었다. 대책없는 내리막길을 내닫지만 어쩐지 미워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소설 속 리카는 다르다. 남편과의 관계나 고타와의 교제에서도 너무 속이 빤히 보인다. 물론 리카 부분에선 1인칭 시점으로 속 이야기를 다 서술하고 있긴 하지만, 반복되는 표현 '모르겠다' 만큼이나 생각 없는 속셈(?)이 다 드러나 영화 판 리카가 지녔던 신비감이 사라졌다. 소설은 지루했다.

 

어린시절 부터 리카는 엉뚱할 정도로 우직함을 갖고있었는데 살짝 그 방향이 틀어지고, 엄청난, 하지만 소설 초반부에 언급되는 금융사기에 비하면 그 액수가 미미한, 사건을 저질러버렸다. 횡령에도 순진하게, 불륜도 순진하게, 저질러버리고는 아, 누가 좀 알아채줘, 라고 어리광을 피운다. 소설의 구성은 리카의 과거 지인들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는데 각자가 돈 문제로 겪는 생활 속의 갈등이 묘사되는 그 부분들이 리카의 이야기보다 더 눈길을 끈다. 빨간책방의 두 사회자가 극찬을 해서 찾아 읽었는데, 역시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구나, 싶었다. 남편과의 관계가 변화하는 것은 흥미롭지만, 쇼핑과 계산 장면이 반복된다. 결국 돈과 힘의 이야기인가.

 

이 책에는 등장인물 이름 만큼이나 낯선 일본식 표현이 자꾸 나와서 일본소설임을 강조하고 있다. 번역가가 일본식 한자어 표현을 원고에 남기면 편집자가 독자와 번역자 사이에 서서 다시 손 봐야 하지 않을까.

 

거울 앞에서 옷을 대보고 있던 자신에게 점원이 시착을 권해, 시키는 대로 시착실에 들어가 시착을 하고 나왔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며, 잘 어울리세요, 손님 스타일이 좋으셔서, 하는 점원의 말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132)

 

갑자기 리카는 손가락 끝까지 가득 차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만족감이라기보다는 만능감 萬能感에 가까웠다. 어디로든 가려고 생각한 곳으로 갈 수 있고, 어떻게든 하려고 생각한 것을 할 수 있다.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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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6-02-20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책에서 2015년 결산하는데 이책이 나오길래 구입해서 읽었는데 나도 실망했어. 이 리뷰먼저 읽었으면 안샀을것을...읽고나서 빨책을 들어보고있는데 영화가 더 나았을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 연달아 유부만두가 추천해준 나오미와 가나코를 읽었는데 그게 더 재미있더라구.

유부만두 2016-02-21 10:13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데 전 나오미~ 를 안읽었어요;;;

psyche 2016-02-21 10:49   좋아요 0 | URL
여름에 유부만두가 추천해줘서 난 읽은줄.....
 

278/400. 마당 씨의 식탁 (홍연식)
279/400. 불편하고 행복하게1
280/400. 불편하고 행복하게 2


유행하는 전원생활 + 집밥 찬양 만화책 인줄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어른들의 진짜` 생활의 갈등과 인생의 고민이 담겨있었다. 어린시절의 추억을 말할 땐 BGM 으로 '양화대교'가 흐르는 듯.... 하지만 판타지가 아닌 `리얼 다크` 하루하루의 성실한 삶이 보인다. 홍연식 작가의 솔직하고 우직한 태도에 감탄했다. 억지 감동은 하나도 없다.
홍작가의 부인 이민희 그림책 작가 이야기도 나오는데, 찾아 읽어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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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400. 안녕 도쿄 1 (완두)


도쿄 지역의 생활 경험을 기록한 생활툰. 색도 선도 예쁘다. 내용은 별다를 것 없이 일본인들이 (도쿄인이) 조용하고 예의바르다, 라는 내용이 많은데 `살아남기` 보다는 `그리워하기` 만화. 광복절 독서로는 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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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400. 역마 (김동리)

 

첫 두어 쪽을 읽고, 노인의 서른 여섯 해 전에 하룻밤, 이야기를 보는 순간, 메밀꽃 필 무렵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 이후에 벌어지는 성기와 계연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가 설레지 않았다. 아무렴, 김동리 소설에서 근친상간을 발전시킬 리가 없지. 은근히 아쉽기도 했다. 젊은 느티나무, 를 읽다가 울어버린 나의 중2 시절을 떠올리면 못 이룰 사랑에 가슴 아파야 했는데, 이 소설은 그러기엔 참신하지도 않고 그저 그랬기 때문이다. 광복이 되고 난리가 났는데, 화개장터에는 조영남의 노래만 커다랗게 울려퍼지고 있다.

 

김동리 작가의 단편을 읽으며 불편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건 소설 소재의 친숙함이 아니라 역사적 정치적 의미 때문이었다. 황석영 작가의 설명이 간결하게 나의 불편함을 이해시켜 주었다. 많은 작가들이 월북한 이후, 김동리는 '남한 정부의 이념적 동반자로서 말년까지 두 차례의 군사정권과 함께 했다.' (197)

 

 

누군가 `현실과 정치에 전혀 관심 없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자신의 또다른 `정치적 견해`를 말하는 함정에 빠진다. (황석영 해설,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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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400. 별을 헨다 (계용묵)

광복 직후 어지러운 세상에선 목소리 큰 사람이 주인이다. 쭈뼛쭈뼛 소심하게 집을 찾는 주인공은 고국에 돌아와도 지붕 하나 구하질 못한다. 북으로 가볼까 했더니 그곳사정도 나쁘다고 들었다. 계속 별을 헤겠구나, 이 사람. 70년 전 소설인데도 요즘 세상 이야기같다. `반편이야 태만 길러서`의 축에 속하는 나는 움찔, 했다.

"[...] 글쎄 외투루부터 저구리, 바지 차례루 다들 팔아자시군 쪽 발가벗고들 눈이 멀똥멀똥하야 누어서 천정에 파리똥만 세구 있는 사람두 있대나? 하하. 자네도 이런 데 눈뜨지 않으믄 파리똥 세게 되네. 괜히."
"파리똥두 집이 있어야 헤지. 난 별만 헤네."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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