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400. 마션 (앤디 위어)
책장을 계속 넘기게 하는 소설. 600쪽 짜리 소설에서 400쪽에 이르는 과학 설명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니까, 영화의 예고에서 받은 인상과는 매우 다르다. 소설 속 마크는 지구의 가족이나 친구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는다. 화성에 외따로 떨어진 그는 우주인이다. 뼈 속까지. 뼈주인. 아마 지구에서도 그는 우주인이었을거다. 마크는 화성에서 몇백일 이후의 탈출과 임무를 되새기며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나간다. 인간의 고뇌, 좌절, 그리고 동료들에 대한 회한이나 그리움은 별로 느낄 틈이 없다. 그는 씩씩하고 용감하고 아주 밝다. 적어도 여기 드러난 그의 '기록'에서. 그의 기록은 지구인이라기 보다 우주인의 기록.
하지만 그런 기록이, 우습게도 너무나 리얼하다고 말하는 광고처럼, 생생하게 재미있다. (과학 내용을 이해도 못하면서) 이 모든 미션이 실패하면 어쩌나? 산소가 너무 많거나 식량이 떨어지면 어쩌나? 혹여나 외계생명체 화성인이 나타나면 어쩌나? 독자인 나는 걱정이 드는데, 마크는 물건을 마구 부수거나 자폭하지 않고, 쿨하게 죽지, 머, 하고 말한다. 그리고 계속 나 똑똑함 그치? 라고 말하며 자신의 배설물을 차곡차곡 모아서 물환원기에 넣는다. 소설의 초반에서 산소와 수소로 물을 만드느라 애쓰고 마지막 부분에선 다시 물을 분해해서 수소를 얻어내는 과정이 나온다. 에이치 투 오. 내가 기억하는 몇 안 되는 화학 지식;;;
책을 읽는 동안은 화성에 아직 유인 탐사선이 간 적이 없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마크가 우주복을 입고 화성의 돌을 나르는 것을 그저 구경하면서 모래바람 속을 걸었다. (목도 마르고 숨도 막히는 기분도 들었...) 마크처럼 똑똑하지도 못하고 화초는 다 죽여버리는 나는 화성에서 단 사흘도 견디지 못하겠지, 하지만 나는 화성에 갈 일도 없으니, 뭐, .. 얼마나 다행인지. 감자를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지금 나는 아주 긍정적이다. 이 행성에서 살아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그날을 위해 선외 활동을 할 때마다 토양과 암석 표본을 채취한다.
처음에는 의무라고 생각했다. 내가 구조된다면 지질학자들에게 사랑받을테니까. 하지만 그러다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지금은 로버를 몰 때마다 암석을 채취하는 단순한 활동이 몹시 기다려진다.
다시 우주비행사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바로 그거였다. 마지못해 농사를 짓는 농부도 아니고, 전기공학자도 아니고, 장거리 화물차 운전자도 아니다. 우주비행사. 나는 우주비행사들이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얼마나 그리웠던 일인가. (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