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지지 않는 실
사카키 쓰카사 지음, 인단비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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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혹자는 추리 소설이라고 했다.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7584

그런데, 주인공의 1년의 좌충우돌 세탁소 승계일지인 네 가지 이야기를 읽고 있는 동안 "추리"는 별로 안 하게 된다. 그저, 아..봄에는 이렇구나, 여름엔 차가운 맥주가 제맛이지,카페 로키의 커피는 얼마나 맛있을까, 본 가을 축제때 야끼우동은 맛있겠다, 그리고 겨울의 붕어빵...일본에는 그 안에 삶은 계란 반쪽을 넣기도 하는구나, 하는 잡다하고 (거의 먹을거리에 집중되는 나의 일차원적 관심이란 - - ;;) 일상적인 생각이 들 뿐이다.

추리라고 해봤자, 그 흔한 살인사건이나 도난사건도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저, 가정불화 (아, 큰일이긴 하구나.) 패션이 어색한 막 독립한 대학졸업생, 이젠 퇴물이 된 마술사, 그리고 과거를 숨기는 다림질의 달인. 

이런 사건(!)들은 아주 예리한 눈썰미가 아니면 묻혀버리기 일쑤인데, 우리의 작가님은 이 소소한 일상의 떨림을, 그 미세한 파동을 잡아서 하나씩 둘씩 일러준다. 

주인공은 탐정도 아니고, 그저 자신 앞에 나타나는 "도움이 필요한 생명체"에게 태생적으로 손을 내미는 아주 따스하고 또 "그냥" 일상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는 이런 "일상적인" 사람이 아직....없는 것 같다.

마음이 푸근해 진다. 사건이래 봤자 범인도 딱히 없고, 벌 줄 사람도 딱히 없어서, 옆에서 엿보는 독자인 주제이지만 어째 한 방안에서 (아니면 의례의 그 카페 로키에서) 따뜻한 카레 오므라이스를 먹는 옆 테이블 손님이 된 기분이다.

작가는 자기의 프로필이나 사진, 실명 등을 공개하지 않는다했다. 와, 이거 멋진걸, 생각했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선, 그게 뭐 그리 큰 대수일까 싶다. 우린 그저 그가 나누어 주는 이 따뜻한 소설에 속이 푸근해 지면 그뿐 아닐까.

하지만, 왠지, 내일 아침 집 앞을 "세~탁~" 하면서 지나가는 동네 세탁소 아저씨랑 눈을 마주치기는 조금 (아주 조금) 조심스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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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에스프레소 꼬레아노 - 이탈리아 여자 마리안나와 보스턴에서 만나 나폴리에서 결혼한 어느 한국인 생물학자의 달콤쌉쌀한 이탈리아 문화 원샷하기
천종태 지음 / 샘터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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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맘 안다. 십년 강산이 바뀔동안 물건너 살아 봐서 저자가 이야기한 동서양 영화 두편 동시상영으로 정신없이 보고 극장을 나서는 그 어지러움과 희미한 두통을 안다. 그리고 그 두통이 3년이 지나도록 쉬 가시질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렇고 그런 향수 더하기 유러피언 문화의 동경으로 행간의 공간이 많고 기껏해야 쪽수 150 간당간당하는 사진만 블로그 필 넘치는 에세이집인줄 알았더니...왠걸, 기대이상으로 글 솜씨가 있으신 분이다. 인간극장에서 애석하게 조기종영? 같이 3부작으로 너무 심심한 이태리 생활을 보여준 작가는 글로는 훨씬 긴 20부작? 정도의 이야기꾼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예전에 읽었던 "파리의 택시 운전사" 아저씨랑은 참 다른 분위기이다. 저자는 아직 한국 여권을 지닌 한국사람이라는데, 그보다 딱 10여년전 한국을 떠난 무슈 홍은 한국사람에 이를 가는 반불란서사람이었기 때문일까. 아님, 정말 땅에 발 비비고 살지 않고 "학문"의 고고함에 취해사는 학자와 온갖사람들과 부대끼며 파리 골목을 누벼대는 기사 양반의 사회적? 차이 일까. 그보다, 한국정부가 이 두 사람은 거부하느냐 아니면 거부하지 않느냐 하는 차이일까. 

책제목 보다는 더 솔직하고 담백하고 성실한 책이다. 이태리 패션이야기라기 보다는 30대 전후의 성장기를 먼 타국서 보낸 아저씨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아저씨, 참, 낯 익다. 우리집에도 한 명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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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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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온 그녀의 엣세이집 (프랑스에서는 1984년, 그녀가 오십을 채우는 나이에 나왔단다)을 골랐다. 전반부는 그녀가 만난 (그녀의 추억 속의) 유명인들, 악명 높던 도박 경험, 그리고 자동차 질주에 관한 이야기였다. 평이하게 따라 가면서, 그리 읽는 재미나 동감을 할 수없었는데, 후반부, 그녀가 사르트르에게 쓴 편지와 그의 마지막 모습들에 대한 추억은, 묘한 느낌이 들게 했다.  

청소년기에 읽고, 문학의 힘을 배우게 된 책들을 ("첫눈에 반한" 지드와 카뮈의 책들) 말한 마지막 장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어쩌면 그 부분이 내게 가장 익숙한 소녀 작가 사강을 떠올리게 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녀도 나이 들고, 늙고, 젊은 날을 돌아 보며 이 글을 썼고, 떠났다. 되풀이해서 말하는 "깨달았다" 는 표현, 문학에 대한 그녀의 열정과 사랑을 따라 읽으면서, 덩달아 나이든 나 자신을 "깨달았다", 면 과장일까.  

자신은 열심히, 정열적으로 살았노라고 맺고 있는 사강의 책이, 서글프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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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조선의 영웅들 - 시대를 풍미한 도적인가, 세상을 뒤흔든 영웅인가
이희근 지음 / 평사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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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아이와 함께 홍길동전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의적"과 "영웅"이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 주인공 홍길동이 실제로 존재했었지만  그는 민중을 위한 의적이 아니라 불량잡배와 다름 없었다는 해설을 읽고 나자, 역사상의 영웅들이 더 궁금해졌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영웅들 중 홍길동, 임꺽정, 홍경래, 전봉준, 박지원, 그리고 대원군을 역사적 기록에 근거해서 파헤친다. 영웅의 전설(?)은 그들의 행적이나 철학이 아니라 영웅을 간절히 바라던 시절 덕에 만들어 졌단다. 부패한 관리들과 양반들 아래에서 숨통을 틔여준 소설 속의 장길산이나 홍길동은 도적이 아닌 민중 영웅이고, 양반 사회의 질서 옹호를 주장한 박지원이 양반 사회를 비판한 신분해방자가 되는 식이다. 하지만 서론에서부터 여섯 영웅들의 실체를 밝히고자 하는 저자의 욕심은 글의 흐름을 조절하는데 방해가 되는 듯하다. 두어 단락만 읽어도 저자의 주장은 알겠는데 글을 읽는 재미가 떨어지고 책 전체를 아우르는 "영웅 신화 깨기" 같은 큰 울림은 찾을 수가 없다.  

차라리 전반부의 세 도적 혹은 영웅에 집중해서 그 시대 고달팠던 민중들의 삶을 더 파해쳤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절로 우리도 영웅에 박수를 보내고 있을까. 책 후반부로 갈수록 역사 기록과 동떨어지는 설명이 많고 결론 부분도 없이 갑작스레 책이 끝나고 나자 허무감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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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서 31쪽 하단에 나오는 임꺽정 무리에 대한 비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공권력에 대한 모든 도전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임꺽정 무리가 가령 프랑스혁명처럼 어떤 새로운 사상을 가지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모르거니와 단순히 도둑질의 대상이 국가기관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저자가 비판해 마지 않는 기존 질서 옹호, 양반 신분 제도 보호의 한계야말로 프랑스 혁명도 가졌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영웅의 가면 벗기기가 주제였지만 우리 영웅들에게 대는 잣대가 매우 엄격해서 진정한 신분질서 해방과 민중 사랑을 실천하는 영웅이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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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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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 국민당 군대에 끌려가서 우왕좌왕하는 주인공의 모습까지 본 다음 책을 접고, 영화를 먼저 봤다. 그리고 잊어두었다. 그리고 오늘 오후, 도서관 책이기에 부지런히 읽어내려갔다.

휴전 상태인 곳을 찾아 열어보니 그새 푸커이는 친구도 만들었고 얼렁뚱땅 해방군에 합류한다. 
아이들에 대한 퉁명스러운 말과 행동이 그만의 자식사랑이라 생각하니 마음 한 켠이 짠했다. 그리고 영화의 비극이 적어도 책에서는 덜하겠거니, 하는 소망이 있었다. 아, 그런데, 유칭이 종종 거리면서 뛰어다니는 시골길, 그 아이가 양을 먹이고, 달리기하고, 사탕을 먹고, 앞장서서 헌혈을 하는 .... 그리고 푸커이에게 안겨 돌아 오는 장면 들에서 나는 엉엉 울어 버렸다. 
 
위화의 인물들의 계속 인생에 (운명에) 당하기만 하는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나는 그 속에서 어쩌면 더 깊은 슬픔과 진한 인생 철학을 보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이가 죽었고, 그 어미 아비의 마음에 곁다리로 슬픔을 나누었다. 

너무 울어서 눈이 쓰라리다. 머리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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