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 Rosso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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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so 라는데 표지는 현란한 어륀지 색이다.  

몇년전 뒤늦게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보고, 나의 연애시절, 유학시절을 떠올리면서 혼자서 가슴이 뛰었더랬는데, 다시 한 번 그 따끈함이 그리워서 손에 들었다. 친구들은  심드렁한 독후감을 나누면서 비추를 해댔지만, 그러면 뭐 어떤가, 바로 전에 읽은 책이 <청소력>이니, 그 책도 나름 집 정리를 하게 날 닦아 세웠으니, 그보다 못하지만 않는다면.... 

그럭저럭 연애시절, 젊었던 시절을 추억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영화를 먼저 만나서인지, 그 따끈한 감동을 다시 받을 수는 없었다. 너무 완벽한 남자 마빈, 그저 신비로운 아오이, 그리고 너무 이국적인 유럽, 하고도 이태리 밀라노.  

가볍고 우울하기만 해서 ...딱히 그 둘이 다시 만나는 피렌체 장면도 짠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진짜 더 우울했던 오월 봄날, 이 아줌마에겐 작은 위안이 되었다. 그라찌에, 아오이, 내 그대에게 감정이입은 못하겠지만, 내 먼 옛 연애시절을 떠오르게 해 주어서 고마워요. 그런데, 너무 튕기고 그러지 말아요. 금방 마흔되고요, 젊은날은 짧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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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쟁이, 루쉰
왕시룽 엮음, 김태성 옮김 / 일빛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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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때문에 루쉰의 미술적 재능과 예술론에 대한 책인줄 알았다. 그래서 초반부를 읽는 내내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이 책은 그의 대단한 그림 실력이나 대단한 예술론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늦잠을 자느라 학교에 지각하고 선생님의 꾸중을 들으면서 책상에 이를 조早를 칼로 새겨넣는 학생의 머리통이 있었다.  

1920-30년대에는 중국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해 내는 작업의 조언을 위해 중국의 옛 문 모양, 손오공의 몽둥이, 무인들의 화창을 원고지나 편지글 한켠에 빠른 펜으로 그려 넣어 설명하는 중국 소설의 애호가가 있었다. 그리고 저잣거리에서 연인에게 멍청한 간식이나 건네는 숫기없는 청년이 서 있다.  

유럽의 목판화나 삽화 도안들을 섬세하게 베껴내어 수채화로 색을 입혀 수집하던 그는, 아름다운 책을 '중국인들을 위해서' 만들고자 했다. 새로운 시대에서 군중들을 이끈다는 자의식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그의 자의식이 별나거나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좋은 러시아나 독일의 소설을 꼼꼼히 번역하여 중국의 독자들과 나누길 원했고, 좌익 문인들의 단체에서 활동했지만 '진정한 프롤레타리아는 없는 죄를 만들어 무고한 이를 법의 테두리에 가둘 리 없다. (234)'고 하면서 자신의 '한가함에 대한 글'을 설명했다.  우리 역사 못지 않게 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그는 책을 만들 때면, 값을 낮추더라도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자 했고, 강렬하면서 간단한 표지를 선호했고, 목판화의 소개를 위해 체홉의 소설을 이용할만큼 융통성도 있었다. 그림이나 글 어느 하나가 우월한 위치에 있기 보다는 책으로 묶여 독자를 만날 때면 하나로 녹아 조화를 이루게 했다.  

그의 책들이 금서가 되고 탄압을 받기도 했지만, 금지된 제목인 '위자유서'는 라틴어로 표기하고 그 아래 '불삼불사서'(不三不四書 - 얼토당토않는 글이라는 비판)라고 써서 책을 묶어내기도한, 그는 대인배라 칭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답답한 외침' 과 '한담'들을 미리 알지 못해 겉표지 도안으로만으로 만나면서도 그의 짧은 인생(56세에 병사했다)동안 남은 숱한 글에대해 존경이 샘솟게 된다. 이래서, 책은 표지로도 판단하게 되는가보다. 그의 순한듯, 하지만 뼈있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달이 밝고 바람이 맑으니 이렇게 좋은 밤이 또 어디 있을까?" 좋다. 우아한 풍류의 극치이니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하지만 역시 풍월에 대해 언급하면서 "달은 어두워 사람들의 밤을 죽이고, 바람은 높아 하늘에 불을 지르네"라고 노래한다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다? 역시 한 수의 고시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풍월을 논하는 것도 결국은 혼란을 얘기하려는 것이지만, 결코 '살인과 방화'를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풍월을 많이 얘기한다'는 것을 '국사를 논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건 분명한 오해다.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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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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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륭한 엣세이스트... 라고 어느 블로거가 소개글을 올렸다. 그래서 구입했는데, 친구는 너무 가벼웠다고해서 열지않고 한참을 묵혔던 책이다.  

초등 5학년부터 중학 2학년까지 말도 통하지 않는 프라하, 그것도 소비에트 (1960년대 초반이었다) 국제 학교에서 소녀시대를 보낸 일본인 요네하라 마리의 추억담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그후 일본에 돌아갔고, 러시아어 통역관으로 열심히 일하며 지냈다. 삼십년이 지난 1995년, 저자는 추억을 안고 세 친구를 찾아 나선다. 체코에 살던 그리스인 리차는 서독에서 살고 있었고, 엉뚱한 거짓말로 친구들을 어이없게 만들었던 아냐는 루마니아의 역사를 뒤로하고 런더너가 되었다. 제일 가슴아픈 기억을 남겨주었던 친구 야스나는 하얀도시 베오그라드를 지켰다.  

파란 하늘의 그리스, 빨간 거짓말의 루마니아, 그리고 하얀 유고슬라비아. 

일본의 공산당원 아버지를 둔 저자의 어린 시절은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지만, 그녀의 소녀시대 친구들이 격동의 세월을 지난 이야기는 (미안하지만)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있었다. 그러면서 자꾸 드는 생각은, 한반도에서도 그 못지않은 눈물과 피가 흘렀다는 것이다.  

순수하게 열다섯 시절의 친구를 찾아나서고 눈물의 재회를 하는 것, 그리고 지난 세월을 함께 추억한다면 시시한 수필이었겠지만, 삼십년 동안 벌어진 동유럽 격동의 세월이 친구들의 인생과 함께 펼쳐지기에 - 그리고 저자의 침착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쓰여져 있기에 - 읽을 맛이 났다. 그런데... 저자의 특권자 의식이랄까, 그녀의 고상한 목소리가 종종 거슬리기는 했다. 먼 동유럽말고도 일본 내에서, 그리고 아시아의 생생한 역사에대해서는 별 고민을 (충분히 연결이 될만도 하건만) 안 하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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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
마쓰오카 세이고 지음, 김경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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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는 저자 (정확하게는 대담의 형식을 빌어서)의 자리에서 독자를 만나지만 마쓰오카 세이고는 독자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이야기 한다. 그에게 붙은 '독서의 신'이라는 호칭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그는 '천일천책' 프로젝트를 세워서 이미 목표를 초과 달성했고 그가 읽어내온 다방면의 책들은 일곱 권의 전집으로 출판되었다.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책을 읽고, 그 안에서, 또 읽는 과정 중에 즐거움을 찾는다. 저자가 주는 내용을 독자의 취향과 입장에 따라서 재구성 하면서 (편집하면서) 읽는 능동적, 그리고 책제목이 말하는 대로 '창조적'인 독서 태도가 중요하단다. 절대 중심내용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음식이나 옷을 대하면서 자기 취향에 맞도록 선택한 것처럼 자유롭게 즐겨야 한다는 것.   

특정한 분야나 장르의 책을 대할 때 갖는 그의 습관들은, 어째 낯설지 않았다. 나는 미야베 미유키는 꼭 맥주를 마시면서 읽고, 하루키는 홍차를 마시면서 읽는다. 이렇게 책읽기를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반갑고 즐겁다. 다른 독서록 책들과는 달리 그의 대단한 독서 이력이 나를 주눅들게 하지는 않았다. 그저 경이로울 뿐. 

세이고의 '천일천책' 프로젝트에선 매일 한 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되, 연달아 같은 장르, 같은 출판사, 같은 작가의 책은 피하는 원칙을 세웠단다. 그가 끙끙거리면서 양자역학이나 물리학 책을 읽는 장면을, 독서 에너지를 재충전 하기 위해 중간 중간 시집을 여는 장면을 생각해 본다. 요즘 너무 안이하게 익숙하고 문학만을 읽는 내 독서 패턴을 반성했다. 그리고 아직 열리지 않고 있는 저 많은 책들을 쳐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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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천염천 - 거센 비 내리고, 뜨거운 해 뜨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서영 옮김 / 명상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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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소피아 성당을 꼭 찾아 가리라, 고 생각만 하고 있다. 하지만 터키는 그저 먼곳이니, 아테네의 박물관을 꿈의 여행지 목록에서 지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언젠간 가보고 싶지만, 쉽게 가지 못할 곳. 

하루키는 그런 먼 두 곳 (그 두 나라에서도 관광객들이 찾을듯 싶지 않은 곳들만을) 의 힘든 일정을 덤덤하게 적어내려갔다. 전에 <먼 북소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인건 왜일까. 세상을 등지고 척박한 산 등성이에 자리잡은 수도원들을 찾아가서 갑작스런 비에 젖은 몸으로 (하루키 표현에 따르자면, 종교에 귀의하기 일보 직전인 상태에서) 찡한 우조를 마시고, 곰팡이가 핀 마른 빵을 물에 불려서 씹고, 흙바람이는 뜨거운 터키의 길 가에서는 뜨거운 차이를 들이켰다.  

역자의 후기에도 언급되는 것처럼 하루키는 많은이들에게 젊은날의 책이다. 하지만 이번 '고행기'는 그저 젊은 날의 쿨함으로 지나기엔 아까운 무언가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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