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니, 이디시
명지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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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비한 느낌마저 주는 제목에 끌렸다. 장편 1Q84의 2권이 나오지 않아서 쉽게 1권을 다 읽어버릴까 조마조마한 마음에, 단편을 중간에 읽어줘야 내 흐름을 늦추겠다 싶어 단편 <이로니, 이디시>를 시작했다.

잘 모르겠다. 극중 두 아씨들이 저마다의 '이론' 으로 설명을 하지만 화자인 몸종 여자애처럼, 난 잘 모르겠다. 얼핏 이 두 아씨들의 농이나 별난 처지가 불쌍하기도 하고, 이 아씨들은 바로 명작가의 문학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렵기만하다. 책 말미에 실린 복도훈 문학 평론가의 설명 대로, 명작가의 소설은 그냥 읽기에는 뭔가가 계속 걸린다. 책을 읽고나서 의미를 혼자 가만가만 곱씹는다. 씹을 수록 맛이 다르다. 씁쓸한 그 맛이 그윽하다. 어쩌면 내가 잘못 아는게 아닐까, 하지만, 정답도 없는 듯하니 마음이 놓인다. 

낯선 소재, 샴 쌍둥이, 인육 조리, 내 몸 속의 벌레, 변신 (벌레가 아니라 물고기), 동성애, 배신남에 대한 육탄 복수, 리얼돌(이런 단어는 이번 기회에 배웠다. 헉), 그리고 장기 이식,에 현혹되어선 안 된다. 낯선 이야기, 엽기 설정에 온다 리쿠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명 작가는 이런 설정 으로, 물질적인 우리들 몸을 통과하면서, 다른 이야기를-내 생각에는 문학론을- 펼치고 있다. 그래서 단편들은 판타지로 읽히지 않고, 비유적 (어쩌면 시적이기 까지 한) 이야기로 읽혔다. 짧디 짧은 내 혓조각으로, 내 무딘 손가락으로는 풀어 쓰질 못하겠으니, 명 작가 표현을 빌자면 칼로 썰어 내야할 판이다. (흐미....) 

표지 처럼 하얀 상태로, 아무 것도 미리 듣거나 읽지 말고, 명 작가의 단편들을 만나길 바란다. 모든 평이, 리뷰가 스포일러다. 그리고 다 읽은 후 불편하고 어색한 느낌을 오래 오래 곱씹기를 바란다. 문장은 메마르고 이야기들은 불친절하다. 하지만 역겹지는 않고 소설 속 불쌍한 인간들, 그들의 몸뚱이가 내 몸뚱이 같아서 덩달아 서글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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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위화 지음, 조성웅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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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라는 작가의 글로는 두 번 째, 소설의 형태로는 첫 만남이다. 다섯 단편 소설의 묶음과 저자의 말, <나의 문학의 길>이 실려 있다. 전에 읽은 수필집도 작가가 편집에 공을 들인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 그는 각 나라의 번역서 마다 새로운 저자의 말을 쓴다 - 이번 <나의 문학의 길>도 그런 배려가 보인다. 

각기 다른 단편들이 (배경이 항상 여름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의미의 원제 <炎熱的 夏天>의 오늘날 중국을 사는, 또 한국을 살아 내는 우리 모습을 보여준다. 이야기 마다 메마른 일상 속, 범부들이 두려워하는 (하지만 동경도 하는) 흔들림이 찾아온다. 소심한 속물들을 비꼬는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다행히 그 시선이 잔인하거나 매섭지 않다.

 

간결한 문장은 독자의 시선과 상상력을 편안하게 다그치지도 않고 마냥 늘어지지도 않는다. 구질구질하게 감정에 호소하거나 끈적거리는 미사여구가 없다. 이 무더운 여름 날, 읽고 나니 내 마음 속 시원한 바람이 분다. 당연히 아직 못 만났던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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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들무렵
정양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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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의 시간, 책 읽는 짬짬이, 살림하는 짬짬이, 아이들 커가는 속도에 놀라고, 내 늙은 몸에 놀란다. 그리고 한결같은 세월과 계절에 놀란다. 겨우 마흔에, 허, 하고 시인 정양 선생님은 웃으실지도 모르겠다.

첫 부분에는 세시풍속을, 뒷 부분에는 잘 여문 인생의 시간에 대한 명상을 담았다. 무거운 인생의 시인데도 수월하게 소리내어 읽을 수 있고 여러번 읽을 적 마다, 그때 그때 다른 감동으로 남는다. 한 동안 내 가방 속, 잠드는 배게 속에 품어야겠다. 내년 복날 때 까지 일년 동안 두고 읽으면서 세월 속에 나를, 아직 철이 덜 들어 나잇값 못하는 나를 다독이고 싶다. '입추'에서 시인이 말했듯 나도 '한평생 헛것에 매달려 산다는 걸 나는 영영 깨닫지 못할 것만 같다. 하지만, 뭐 어떠랴, 곧 단풍으로 온 산이 물들고, 온몸이 성감대 였다는 그 불타는 산을 바라보면서 '상강2'를 읊을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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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의 여왕
백영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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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칙릿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번 <달콤한 나의 도시>를 너무 진지하게 즐겼기 때문에, 그리고 제목 속의 신비의 단어, <다이어트>에 흔들려서 읽기 시작했다. 나, 왕년에 한덩치 했었기 때문이었고, 다이어트와 심각한 부작용으로 힘든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나 혼자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은 안 하지만.  

글이 빠르다. 그리고 내 예상을 비웃듯 미끄러진다. 뭣보다, 재미있다. 숨가쁘게 나를 끌고 갔다. 그래서 아이들과 남편 눈을 피해 하루 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아, 이게 칙릿이라고? 그래서 심각한 생각 안 하는 젊은 여자들이 드라마 보듯 읽는다고? 하지만, 거들먹거리면서 온갖 실험정신으로 난해한 문장을 쏟아내는 것 보다는 절감,공감,통감하는 소설이 더 낫지 않을까. 물론 각자의 존재 이유가 있겠지.  

거구의 여자 쉐프, CIA 출신, 서바이벌 게임등은 한동안 미국에서 서바이버 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The Biggest Loser 라는 쇼를 기억했기 때문에 놀라지는 않았다. 다만 이 과격한 설정이 나름 설득력 있게, 앞뒤 재거나 따질 여유를 주지 않고 다부진 글과 이야기의 힘으로 독자를 밀어부친다. 그리고 세상사에 마냥 너그러운 듯 싶었던 우리의 주인공도 실은 힘들게 오늘을 살아내는 just a girl 이란거다. 거식증과 죄의식을 연결시키는 시도는 멋졌지만 소설 초반의 총명이 흐려지는 듯 해서 아쉽다. 그리고 주인공 연두의 죄의식이라는 게 좀 불분명하다. 뭐가 그리 죄스러울까, 그녀의 착한 주인공 역할일까, 아니면 고양이를 부탁해, 설정 탓일까. 하지만, 드라마 최종회 스러운 마지막 부분, 백작가는 연두의 죄의식을 싹 씻어주기로 했다. 우리 모두의 가식, 그리고 솔직함을 보여준다. 자, 이런거야, 연두씨, 너무 괴로워마. 그리고, 너무 솔직해 지지도 마.  

밤 늦게 끝낸 이 한 권의 책. 부작용이 만만찮다. 제목엔 다이어트를 달고 나왔지만, 내용엔 감칠맛 나는 음식 묘사가 넘쳐난다. 읽으면서 먹은 간식의 칼로리를 계산하자면...음...난 한강변을 왕복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자꾸, 주인공 연두를 만두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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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불빛의 서점 -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의 이야기
루이스 버즈비 지음, 정신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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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에는 서점이 없다. 아이 손 잡고 오후 산보를 나갔다가 들러서 그림책 한 권 같이 읽을 서점이 없다. 제일 가까운 서점은 차를 타고 가야하는 수험서와 참고서 전문점이다. 조금 더 멀리 체인형 대형 서점이 있긴 하지만 앉아 있을 의자는 없고 세일 전문 가판대만 빽빽히 들여 놓은 곳이다. 아이를 데려 가면 급하게 다시 나올 생각만 든다. 내 기억에, 또 이 책의 저자의 추억 속에 있는 한가롭게 책을 고르는 서점이, 우리 동네에는 없다.  

책 제목과 표지가 은은하게 또 따스하게 불러 일으키는 서점과 책향기를 추억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저 책을 사랑해서 그 책 이야기를 나누는 것 뿐이 아니다. 이 책은 그런 아마츄어 적인 책사랑을 넘어, 프로페셔널한 책사랑을 얘기한다. 저자는 책이 너무 좋아서 서점에서 수년간 일하다가 출판사 판매부서에도 몸담았고 (번역자는 '외판원'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영 어색했다. 그게 그 뜻이기는 하지만 역자의 단어 선택은 참 독특하다. 예로 '도붓장수' 라는 표현을 쓰는데 많은 사람들에겐 봇짐장수나 행상인이 더 익숙하지 않을까? 부사 '좋이' 도 '족히'대신 서너번 나온다. 아마 내 어휘가 부족해서인지 어색해서 혼 났다. - - ;; ) 자신의 소설도 냈던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책과의 장구한 역사를, 책과 출판인의 역사와 버무려 가며 써 내려갔다. 그래서 훈훈한 추억담을 기대했다가 당황하기도 했지만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책과 인쇄업의 역사 강의는 추억담 보다 유익하기는 하지만 딱딱하니까. 

저자는 솔직한 문장으로 서점이 어떻게 성장했으며, 인터넷 서점 덕으로 망해갔고, 새로운 형태의 책이 나올까 의견을 내놓기도 했고 정부와 극단적인 독자들의 "검열"에 대해 열렬히 성토한다. 덤으로 서점과 출판 쪽의 전문용어도 설명해 주는 자상함도 보인다. 무엇보다 책이 비싸다는 편견을 버리라고 강력하게 외친다. 진정으로 말이다.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라 무진장 찔렸다.  

그래도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서점에서 우리는 만나기 때문이다. 저자 개인에서 시작해서 출판사, 판매직원, 서점, (내 경우에는 일 주일 세번 만나는 배송 아저씨),독자를 통과하는 긴 여로가 중간 지점인 서점에서 그 모두가 만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서점을 "도시"로 비유한다. 이 도시에서 길을 잃고 헤맬지언정 우리는, 독자, 저자, 역자, 혹은 출판인, 누구던 책을 사랑한다면, 밖으로 나갈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는 이런 서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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