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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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에 길이 있고 인생이 있다고 했던가. 저자 김열규 선생에게 딱 어울릴만한 말이다. 하지만 책 속에만 인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책 밖 세상에 더 많은 인생이 글로 표현 안되어 우리를 둘러싸고 볶아 대고 있다.

두 부분으로 나뉜 이 책은 생각보다 가볍고 또 무겁다. 첫 부분은 저자가 70 넘는 인생동안 어떻게 또 얼만큼 책과 글과 또 그 안의 주인공과 사랑하며 지냈는가 하는 이야기이다. 책과 저자의 연가. 독자도 얼핏얼핏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려 애를 쓸 테지만 책과 저자의 사이가 워낙 돈독해서 그 긴 시간 동안 세상이 어떻게 변했던지 하는 것은 별로 중요치 않아 보인다. 일제 땐 일본어 책을 목청껏 또박또박 읽었고 해방후 일본인이 남기고 간 책 보퉁이가 횡재이면서 육이오 피난길엔 청명한 부산 하늘 아래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원서로 정신을 살찌운다.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사랑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글과 이야기 속에서 저자는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서글픈 시대에는 행복도 죄스러운 일 아닐까.

낙엽을 태우면서 물침대에 뜨거운 물을 채울 염려를 하는 이효석이 생각나는 첫 부분을 마치고 두 번째 부분을 읽기 시작하면, 사실 저자의 책 사랑, 글 사랑이 그저 흥겨운 신선노름 뿐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문득 고등학생 입시 준비 같이 꼼꼼한 독서법 강의는 읽는 나를 다시 학생 위치로 돌려 놓았다. 또 책 마무리에 자리 잡은 "[그]의 것이 되어 버린 책들". 이 부분이야말로 저자의 평생 공부의 내공이 알차게 빛나는 순간이다. 그의 책 소감을 거쳐서 읽는 책이야기이지만 내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기분이다. 

또 다른 책과 인생의 글, 서경식 선생의 "디아스포라 기행" 과 "소년의 눈물"이 많이 생각나게 했다. 다만 김열규 선생의 이 책 "독서"는 책과 함께한 행복한, 참으로 행복한 인생 이야기 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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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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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9.9  

곧 시작할 새 드라마 "바람의 화원"를 위해 신문과 방송마다 신윤복 바람잡이가 한창이다. 봄에 있었던 간송박물관 전시를 놓쳐서 후회 막급이었지만 대신 이 책을 읽기로 했다.  조선후기 기생이야기 대목은 저자의 다른 책 "조선의 뒷골목 풍경"의 내용이다.

제목이 정겹지만 기대만큼 조선 사람들이 내게로 걸어 오지는 않는다. 저자는 누누히 그림의 비전문가임을 고백하고 역사와 생활사 중심으로 그림 주변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림을 둘러싼 이야기니 만큼 저자가 실제 그림을 보고 쓰는 최소한의 수고는 해야했다고 생각한다. 글중에서 "그림을 보지 않아서..."라는 변명아닌 변명이 되풀이 될 땐, 그의 성의 없음에 실망을 감출 수가 없다. 아무리 미학 구도와 채색을 평하는 글이 아니라 할 지라도 독자가 기대하는 것은 그림속에 살아 있는 조선시대 사람들 이야기를 알고 싶은 것이리라. 영문학 공부를 번역서에 의존해서만 한다면 원서 속 문학에서만 찾을 수 있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서둘러 맺는 마지막 장, 마지막 그림의 설명(?)은 그 성의 없음의 최절정이다.  
 

"마지막으로 한 점의 그림이 남았다. <상봉>은 특정한 곳에 끼워넣을 수 없어서 여기서 간단히 설명한다. ..(242쪽)"


"양반가라면 부녀자가 내외를 하겠지만, 천민이야 그럴 필요가 없으니 ...(중략) ... 더이상의 설명을 덧붙일 재간이 없다.(244쪽)" 

 

정말로 이렇게 윗문장으로 책을 마무리 하다니!  그들의 괴나리 봇짐 안의 물건들이 무엇이며 (악기로 보이는 물건 일부가 삐죽 올라와 있었다) 나룻터인양 한 장소의 설명은 왜 더 "재간"을 부려 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2 년후 쓴 책 "조선의 뒷골목"은 그보다 더 재간을 부렸기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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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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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쇄 살인범의 이야기를 읽은후에 찾은 것은 가벼운 읽을거리였다. 잡지에나 실리는 연애이야기 말고, 놀란 가슴을 달래줄 밝은 이야기였다. 내친김에 일본 소설 하나 더, 하고 고른 것이 바나나의 키친이다.  

얼마나 경쾌한 이름 인가! 바나나...그녀의 흑백 사진은 그냥 보통 40대 일본 아줌마인데 과연 그의 감각이 나를 그 발랄함으로 감쌀수 있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발랄함은 그녀의 이름뿐이고 책 속엔 상처받고 외로운 섬세한 감성의 주인공이 있었다. 그 친구들도 어색한 번역 만큼이나 (일본어를 모르니 이문체가 계산된 바나나 스타일이라면 번역자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그 주인공 주변에 따로 따로 서 있다.

너무나 센서티브 한 사람들은 사랑하는 가족의 갑작스런 죽음을 힘겹게 극복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 방법으로 요리를 하거나, 여자로 성전환을 하거나, 여자친구의 세일러복을 입거나...또, 아니면 새벽에 조깅을 한다. 그리고 그 위태위태한 견딤 속에 가까스로 사랑을 보듬어 안고, 기운을 차린다. 
 절대, 발랄한 현대소설은 아니었다. 어느정도 다자이 오사무 스타일의 (일본판 프루스트) 염세주의가 보인다. 슬프게도, 내가 바랬던 따스함은 없었다. 인물들의 대사도 저마다 외로운 메아리를 치는 듯하다.

"모방범"을 읽은 뒷맛이 아직 남아서인지, 한밤중 친구를 위해 돈까스 덮밥을 들고 뛰는 주인공이 행여나 밤길에 험한 꼴을 당하지 않을까 괜히 맘졸였다. 이런 내 몹쓸 독서 태도 때문에 감동 스러워야할 영혼의 만남도 그저 그런 장면으로 남는다.  그들은 바나나의 섬세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섬세함이 지나쳐서 읽는 내내 겉도는 기분은 어쩔수가없다. 너무 섬세하고 가녀려서 그들은 훅 불면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 그 자리엔 얼마전 뉴스에서 비판하던 지나치게 화려한 장정의 책만 남는다. 책은 무겁다. 그리고 내 마음도 아직 무겁다.

"참을수 없는 책의 무거움" -kbs 취재파일 4321
http://news.kbs.co.kr/article/culture/200807/20080713/15957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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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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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0쪽을 넘는 양이지만 사흘안에 읽을 수 있었던건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작가의 글솜씨가 좋은 번역가를 거쳤기 때문이다.

날이 더워지니 왠지 공포물이 생각났고 미야베 미유키의 신작 "낙원"이 메스컴을 타길래 읽어볼까 하다가 대신 전작인 이 책을 골랐다. 일본 소설은 많이 읽지는 않아서 일본추리소설의 스타일을 잘 모른다. (추리소설 매니아인 친구는 일본추리소설은 최근 몇년에서야 성립된 "모방"작들이며 읽을 가치를 못느낀다고 했지만 그래도 난 읽었다) 예상외로 일찍 밝혀지는 범인들때문에 역시나(?) 별로 추리물 같지는 않았지만 억지스럽게 잔혹한 범행장면 없이도 은근한 공포를 느꼈다. 그건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나고 있는 여성 납치 살인극이 중심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얼마전 잡힌 강화 모녀 살인사건의 범인들 체포 뉴스가 책장에 오버랩되는 기분이 들었다. 

범인의 어두운 내적 비밀이 독자의 동정심을 불러 일으키지도 않는다. (안된 놈이긴 하지만 이 책은 이 놈의 인간극장은 아니다) 또 무리해서 사회의 잔혹성을 분석하지 않고, 도리어 그런 범죄의 해석을 현학적 도피라고 떳떳하게 이야기 해주는 두부집 할아버지가 듬직하다. 그래서 주인공인가 싶었던 극중 "저널리스트"는 막판 범인과 맞장을 뜰 때 조차 영웅으로 등극하지 못한다. 하지만, 3권에서 범인이 밝혀지는 (독자들이야 진작에 알았지만) 과정이 1,2권에서 지켜왔던 긴장을 갑자기 놓아버려서 어이없기도 하다. 왜 이리 쉽게?

억울한 목숨들, 그리고 질기고 악랄한 목숨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다들 너무 덧없고 슬프게 가볍다. 이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없어지길, 그래서 그저 살인범 이야기가 무더운 여름날의 납량특선으로 저 멀리 책장속에서, 영화관에서나 존재하길 바란다.

사족1  :  세음절 이름에 익숙한 나는 여섯 아니면 여덟 음절의 비슷 비슷한 일본 이름에 자꾸 책 앞으로 되돌아가서 이게 누구시더라를 해야했다. 책 제일 앞에 등장인물을 넣어 줬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아무아무개 - 범인 할 수는 없겠지.

사족2 : CSI 에 익숙한 독자로 경찰의 수사방법에 조바심이 났더랬다. 과학수사 좀 해봐. 왜 그 사람을 의심하면서 뒷조사는 그 나중에 했남? 그리고 성문감식은 왜 하다 말고? 일본넷티즌은 한국넷티즌보다 약한가? 왜 그리 조용했대?

사족3 : 2권을 읽을때만해도 낙원을 꼭 주문해야지 했는데, 뒷심이 딸린 3권 덕에 지름신은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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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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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명작 리스트의 책들중 늘 읽었다고 착각하고 제껴두었던 제인 오스틴. 그녀의 책은 너무 익숙해서 다른 책보다 독서 순서에서 밀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영화로 만들어진 오만과 편견을 보았고 내친김에 어린시절의 세계명작 리스트를 주문했다.

클래식.

주말드라마에서 흔히 보이는 구조가 나온다. 배경의 차이, 교양없는 여자쪽 집안 사람들, 하지만 오만스러운 실장님(!)은  사실 발랄한 여주인공의 매력으로 인해 모든것을 극복할 준비가 되어있다. 실장님의 오만은 편견을 낳지만 극렬한 반대파 이모님 덕에 해피엔딩이다. 그래도, 이틀만에 설겆이를 쌓으면서 읽은 이유는 깔끔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악역을 자쳐하는 빙리양이나 에컴씨가 있었지만 리즈양이 생각보다  더 솔직하고 덜 내숭이었기 때문이다. 넓고 격조있는 다아시의 저택과 영지를 둘러보고 자기가 튕겨버린 복덩이를 씁쓸해 하는 장면이나 자신의 매력(?)을 그다지 믿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천방지축 된장녀 리디아의 상대격으로 공부한 티를 내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아주 어렸을 적에 읽고 또 읽었던 "작은 아씨들"이 생각났다. 하긴, 거의 모든 소녀들은 조이에게서 자기를 보았으니까, 그러고 보면 많은 숙녀들은 리즈에게서, 더 중요하겐 다아시부인으로서의 리즈 에게서 자기를 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오만해 보이는 남자, 많은 것을 가졌지만 약간 쓸쓸해 보이는 남자, 그런 남자가 모든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나를 택해준다면, 난 매달릴 필요도 없다면!
사실 이 모든 것들이 여자들의 연애에 대한 환상, 편견일 것이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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