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지구는 고유명사다

네 부모 세대는 사방에서 죽음을 보며 그 후속 세대는 사방에서 ‘생명‘을 본다. 38

내게 필요한 건 지구에서 ˝모든 건 살아 있다˝라는 사실을 표현해 줄 용어다. 39

우리는 ‘세대 간 갈등‘이 인류의 소통 불가능성에 대한 근대적 증거 그 이상의 것을 제공한다고 이해한다. 나는 더 나아가 그것이 발생의 갈등, 한마디로 생성의 갈등과 관계된다고 말하고 싶다...바퀴벌레가 되고 나 후 그레고르가 느낀,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의 첫 번째 불안 또한 그것인즉,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든 점은 더 이상 어떻게 제 가족의 생활비를 보조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실인 것이다. 40

지구란 무엇인가, 우린 그것이 존속과 생성의 염려를 지닌 모든 자들의 연결, 연합, 중첩, 결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41 그레테가 자신의 소중한 오빠-벌레를 두고 잔인하게 ˝어떻게 해야 저걸 없애지?˝라고 혼잣말할 때 단순화해 버리고 만 문제가 그것이다.

세바스티엥 뒤트뢰유는 ‘생명‘ Vie이라는 단어를 대문자로 표기해 살아 있는 것들과 그것들이 흐르는 시간 속에 변형시킨 모든 것, 바다, 산, 땅과 대기를 단 하나의 계통으로 아우를 것을 제안한다. 45


4. ‘지구‘는 여성명사, ‘우주‘는 남성명사다

그레고르는 자신의 집에 틀어박힌 부모처럼 되는 대신, 마침내 정말로 제 몸을 이동하는 법을 알게 된다. 하나의 도관을 설치하는 것으로 매번 이동의 값을 치러야 한다는 의무가 나를 그 도관만큼 해방시킨다. 파행을 통해 난 내가 있는 곳을 약간 더 길게 탐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47

임계 영역 안에서 산다는 건 이후에 올 생명 형태들의 거주적합성을 위기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조금 더 오래 지속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critique‘ 그것은 위태로우며 무서울 정도로 객관적인 상황을 가리켜 보이며 그 위태로운 근접성을 증명하기도 한다. 50

가이아를 균질적이고 매끈하며 연속된 우주 공간에서 따로 부각되는 기이한 반점으로 봤던 앞선 세대의 착각과 달리, 지구생활자들은 그 이미지를 뒤집어, 자신들의 도정에서 마주치는 우주의 작은 섬들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뒤얽힌 생명체들이 사슬들을 끊임없이 깁고 수리해 가며 짜는 가벼운 양탄자를 바탕으로 제 테두리 날에 의해 선명하게 도드라지는, 그리고 유지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드는 섬들로. 57 토끼가 오리가 될 수 있고 또 그 역도 일어날 수 있는 저 양면적인 그림들에서처럼, 후방에 있던 것이 전방으로 옮겨온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폭포 형태로 이어지는 생성의 곤란

우리의 불행은 격리되어 있기는 한데 고유한 의미에서 ‘우리의 집‘을 전혀 갖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것이다. 그런데, 또한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자기동일성의 덫을 피하도로 해 주는 사실이기도 한다. 격리 덕분에, 드디어 풀려나 숨을 쉬는 것이다! 69

가장 기이한 것은 정치적 개인에게서 사실인 것이 생물학적 개인에게서도 사실이라는 점이다. ‘살아있는 유기체‘에 대해 그게 완전한 동물이든 그 동물이 세포나 유전자이든, 동이한 문제를 겪고 있다. 존재자들이 서로 뚜렷이 구분해서 유지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헤아리게 되는 모든 자연과학 속에서, 폭포는 계속해서 예견치 못한 방향으로 점점 더 멀리 되튀긴다. 73

여태까지 공허한 편이었던 ˝행성 의식˝이라는 표현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또렷해지는 듯하다. ˝만국의 격리된 자들이여, 단결하라! 그대들은 동일한 적을 지니고 있으니, 다른 행성으로 피해 달아나려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75 대부


6. 여기 이 낮은 곳에 - 단, 저 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오로지 한편의 생명체들이 다른 편의 생명체들 - 땅, 하는 대양, 공기도 이에 포함된다 - 과 더불어 고정하고, 일으키고, 유지하고, 감싸고, 포개고, 융합하는 벽감들, 둥근 포위망들을 교란하고 강화하고 복잡하게 하는 일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세계 경험은 ‘물질적‘이지 않다. ‘영적‘이지도 않다. 우리의 경험은 다른 신체들과 함께 이루는 구성composition에 속한다.83

임계영역을 측정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뒤로 후퇴하는 일도, 예전의 여기 이 아래로 돌아오는 일도 아니다. 우린 이제 도망칠 수 없다. 그러나 같은 장소를 다른 방식으로 살 수는 있다. 바로 이 곡예의 전체가 안나 칭이라면 같은 장소에 자신을 다르게 자리매김하는 새로운 방식들이라 부를 것에 기반하도록 하는 것이다. 모두가 각기 자기 집에서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살기 시작한 것이다. 84

우린 그 내부에서 우리가 거주하는 공기 거품의 온도 조절이 우리 자신의 행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진정한 격리란 바로 이것, 우리가 무심결에 우리 자신에 집단적으로 선택해 준이 운명이다. 아틀라스가 그러듯이, 우리 등에 짊어지겠다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벌레-되기란 딴 게 아니다. 바로 그것이다. 변신이란 바로 그것이다. 85


7. 경제가 다시 표면으로 떠오르도록 놔두기

인위적으로 물속에 지탱시켜 두었던 나무 들보를 놓쳐 돌연 그것이 표면으로 떠오르기라도 한 듯, 여태까지 실제 삶의 반박할 수 없는 토대라 여겨졌던 경제가 위쪽으로 다시 올라온 양상이다. 두둥실 아무 어려움도 없이, 근대적인 삶의 저 더할 나위 없이 유명한 ‘하부구조‘가 표면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만 것이다. 이제껏 온전히 무시해도 좋을 상부구조라 여겼던 것, 즉 생성의 염려와 존속의 문제가 아래로 미끄러져 심층으로 스며든 것이다. 불과 몇 달 사이에 경제는 ‘우리 시대의 넘을 수 없는 지평선‘이기를 멈췄다. 90

문제의 핵심은 단지 ‘경제 체계‘를 개선하고, 바꾸고, 녹색으로 만들거나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경제라는 것 없이 지내는데 있다. 90

호모에코노미쿠스에는 천부적인 것, 자연적인 것, 또는 토착민적인 것이라고는 없다. 머리를 거꾸로 한 채 올 뿐, 결코 일상적이고 실용적이며 철두철미하게 밑에서부터 시작하는 경험으로부터, 생명의 형태들이 다른 생명의 형태들과 유지하는 관계들로부터 오지 않는다. 경제가 확산되기 위해서, 그것이 지상에서 가능한 토대로서 심층에서 유지되기 위해서는 하부구조의 제작이라는 엄청난 작업이 필요하다. 그처럼 난폭한 식민화에 대항해 가장 평범한 경험이 반격적으로 행사하는 집요한 저항을 누르고 경제가 저 자신의 자명성을 부과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말이다. 91-92

문제의 핵심은 ‘내일의 세계‘가 ‘이전의 세계‘를 대체할지 여부가 아니라 표면의 세계가 마침내 일상적인 깊이의 세계에 제 자리를 양보할 수 있을 것인가를 아는 데 있다. 93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경제적인 차원이 있다˝라고 말하는 걸 결코 용납하지 않는 데 있다...특벼히 굴복하지 않아야 할 유혹이 있다면 모든 틈들을 매끈하게 메우면서 산술로 그것들을 대체해 버리는 일이다. 산술은 토론을 닫아 버릴 것이며, 무엇보다도 그것은 다른 곳에서, 다른 것들에 의해, 특히 이 현장에서 주 멀리 떨어진 다른 것들을 위해 실행된 것이다. 94,95

이 같은 토론과 협상과 가치 평가의 직조는 우리가 기본값인 것마냥 경제로 환원해야 할 그 어떤 것도 들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 상황에는 보다 깊으 어떤 것이 반드시 존재하며, 우린 그것을 헤아려 보아야 한다.,,보다 현실주의자, 실용주의자, 물질주의자가 되어서 드리어 보다 낮은 곳으로 내려올 시기가 된 듯하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한다. 96

정치 경제학을 새로이 비난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생명의 형태들이 서로 안에 유지하는 관계들의 설명서로서 그것을 완전히 버리는 데 있다. 경제가 마법으로 정신을 호린다면, 그 마귀를 몰아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97

홀로바이온트에게 출납명세서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생명체들이 완벽하게 계산을 한다면 그것들은 결코 오래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건 그저 계산의 오류가, 우연에 의해, 아무런 섭리없이, 거주적합성의 조건들을 창조해 내기에 이른다는 말일 뿐이다. 100


8. 하나의 영토를 제대로 된 방향에서 묘사하기

뒤집힌 방향에서 보았을 때는 지도 위에 선으로 둘러 위치를 지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영토를 형성한다. 반면 제대로된 방향에서 보면, 하나의 영토는 자신이 의존하는 자들과의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 행위들의 목록만큼 멀리, 더 이상은 아닌 딱 그만큼까지 확장될 것이다.107 당신이 무엇으로 사는지 말해 보라. 그러면 당신의 삶의 터전이 어디까지 확장되는지 말해 보겠다.

당신이 그 생명의 형태들을 힘겹게 기록했다면, 그 이유는 그것들이 묘사를 깨물고, 자기들을 고려하라고 당신에게 책임을 지우기때문이다. 물론 당신은 목록을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때 당신은 묘사를 다시 시작해야 할뿐더러, 당신이 목록화할 자들과의 대면에 더한층 큰 책임을 져야만 하리라. 착륙한다는 것은 로컬이 되는 것을 뜻하지 않은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이 의존하는 존재들과 만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제대로 된 방향을 취했을 때 ‘로컬‘이란 공동으로 검토되고 논증되는 것을 일컫는다. 가깝다는 건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날 직접적인 방식으로 공격하거나 살도록 해주는‘이라는 의미다. 109

그동안 경제가 현실주의적이고 무릴주의적일 수 없었는지, 그 까닭을 당신의 살을 통해 이해하게 된다....경제를 선택하는 것, 그건 해명해야 할 내용을 전혀 갖지 않는 존재들을 고안하고 그들이 독점적인 소유권을 통해 자기 경계를 보호받아야 할 독립적인 개인들이리라는 핑계를 대면서 상호행위의 재개를 중단시키는 행위다. 111

각각의 개체가 다른 개체들과 중첩되어 있는 이상, 우리는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있는‘ 한 영토에서 함께 살고 있다...우리가 이처럼 서로의 경계를 침범한다면,결국 우린 하나의 공동집단을 형성하는 것이다. 112

고유의 의미에서 경제는 무리를 흩뜨려 없애고 토양 바깥으로 내보낸다. 반면, 격리는 무엇을 허용했나. 바로, 제게 의존하는 자들의 거주적합성 조건들을 유지하거나 파괴하는 스스로의 능력에 의거해 심판 받기로 동의한 이들을 이끌어 다시 무리짓고 다시 자리매김되도록 했다. 114


9. 풍경의 해빙

아, 그래서 이 도안이 과녁을 닮았나 보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다시 말해 과거와 미래를 가르는 구분선 위에 있는 이는 다름 아닌 당신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자리가 바로 여기다. 바로 여기가 당신이 뛸 곳이다. 말의 모든 의미에서, 당신은 이 자리에서 당신 생명을 다시 걸고 있는 것이다. 118

그건 언제나 면전에 있는 것, 다시 말해 저 17섹 유럽의 발명품인 풍경인 것이다. 주체는 재현되어 어떤 의미에서 그의 수중에 놓이게 되는 이 화잍 큐브를 떠나지 않는다. 이 상자 안에 고정된 채로 남은 자는 순화된 대상들을 제 앞에 대면한 박물학자 주체가 되어 간다. 122

주체또한 갇힌 채 머무르지 않는다. 행진해 가는 대규모 시위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대신 그 흐름에 합류하기로 결심하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그때가지 그저 구경꾼이었던 당신은 이제 소란스럽게 흥분한 군중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며 당신 목록의 개체들 하나하나와 동일한 생성의 염려를 나누어야 한다. 예전의 대상들앞에 선 예전의 주체와 반대로 당신은 그것들의 역동성에 더는 무관하지 않다. 인간중심주의는 그렇게 끝을 맞는다. 125

홀로바이온트들의, 또는 제휴의 사회학의 역설 일체가 거기에 있으니, 사람이 누군가와 점점 더 친숙해진다는 건 그 자신이 함께 얽힌 이들을 향해 점점 더 멀리 여행하는 일과 같다.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축소된 개인은 자신을 지배하는 거대함 앞에서 아무 힘도 없다고 느끼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 행위자-연결망, 행위소-민족, 홀로바이온트는 제 목록의, 제 행위의 흐름의 제 이력서의 항목들이 증식될수록 날개가 돋아나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128

근대적 주체는 시간상으로도 제가 어디에 자리 잡아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 큐브 안으로 들어가기 우해 필연적으로 제 과거와 관계를 끊어야 했으니까. 상류도 하류도 상실한 만큼, 근대적 주체는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가던 길을 되돌려 슷로에게 요긴할 행위의 원천을 다시 찾아내는 일을 할 수가 없다. 그것이 그의 불안의 원천이다. 그는 제 뒤의 배들을 태워버렸다. 129

우리의 생명이 달린 상류와 우리에게 의존하는 하류의 그 모든 자들이 지닌 생성의 염려를 우리가 무시하지 않기로 한 이상, 어떤 것도 우리가 발길을 되돌리는 걸 방해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그 둘은 마침내 다시 연결된 것이다. 130 우리는 근대화의 검을 끊어버린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다시 묶고자 한다.


10. 필멸하는 몸들의 증식
11. 민족집단형성의 재개

끼리끼리-주의를 되찾기로 한 이들이 글로벌화가 아무데로도 이르지 않ㄴㄴ다면 대신 보호받을 수 있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끼리 있으 수 있는 곳으로 144

이 부정적 보편은 예전에 ‘국제 질서‘라 불렸던 것의 철저한 해체로 인해 나날이 위기를 거듭하며 드러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근대화의 폐허들이 브린이 제시한 풍경과 상당히 닮았다. 146

글로벌화라는 행성이 존재한다. 퇴장이라 불릴 수 있을 행성이 존재한다. 화성이나 초현대적인 벙커. 안전리라는 행성이 존재한다. 다음은 근대인들의 이하 수준에서 저항하면 살아가는 특유의 양식 . 근대외인. 전에는 구식이었지만, 보라 이젠 이 별이 무서울 정도로 현시대적인 것이 되고 우리가 위험에 빠트린 바로 이 민족들에게서 살아남는 법을 배울 수 있다. 150

홀로바이온트들의 외교술. 경계 개념 일체의 경계들을 잡는 것이야말로 외교술의 본질 그 자체다. 저 유명한 ‘붉은 선들‘의 재설정. 문제에 착수하는 방식은 로컬에서 글로벌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라는 어떤 등급의 문제가 아니라 계측법의 문제다. 치명적인 일반화라는 객관적 인식이라는 이상과 섞어 마술을 한 것이다. 마법같은 해결책만 촉구했던 것이다.. 155

각 경계는 다른 경계를 숨기고 있으며 매 등급의 변화는 매번 다른 생명체의 중계를 가정한다는 사실을 주지하면서 모색을 계속해 나간다는 제 최초의 소명을 외교술이 다시 찾은 것일 따름이다. 156


12. 아주 기이한 전투들

홀로바이온트들은 그들 자신의 정체성에 의해 정의될 수 없다.


13. 사방으로 흩어지기

함정으로 가득 찬 어떤 역사여. 어떻게 하면 방향을 잃지 않고 이 역사 안에 똬릴ㄹ 틀 수 있을까? 오늘날, 땅은 또 다시 돈다. 하지만 이번에느 저 스스로에 의해, 저 스스로 위에서 돈다. 그리고 우린 우리 자신을 그 한복판에서, 그 땅 안에 삽입되고 격리되었으며 임계영역 안에 틀어박힌 자로서 다시 발견하며, 더 이상 그곳에서 새롭게 거대한 해방의 무훈시를 읊지 못한다. 오히려 세탁기 드럼통 안에서 압력과 고온에 의해 미친 듯 도는 빨래 같은 느낌이다. 법, 정치, 예술, 건축, 도시 할 것 없이 모든 걸 새롭게 다시 발명해야만 하는데, 더욱 기이한 건 동시에 움직임 그 자체 즉 우리 행위들의 벡터마저도 재창안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무한 속을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유한 앞에서 후퇴하는 법, 대열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계속 전진하는 행위가 우리를 가뒀다면, 후퇴를 배움으로써 우리는 격리에서 풀려난다. 우리는 움직임의 능력들, 그렇다. 행위역량들을 다시 발견할 필요가 있다. 줄곧 게와 바퀴벌레의 자격으로 이전과 다른 움직임들을 허락하는 이 벌레-되기를 말이다. 그레고르의 리드미컬한 파행에는 아름다움이 있고, 춤이 있다. 170-171

지구에 격리되어 있으되, 여긴 감옥이 아니라 그저 그 안에 우리가 감싸여 있는 곳일 뿐이다. 해방된다는 건 지구로부터 나가는 걸 뜻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내포된 것들, 곧 그 주름들과 중첩들과 제반 얽힘을 탐사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178

적출자들과 수선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길항은 모두 그 같은 권력들의 재배치 문제에 걸린다. 식별 문제로 고충을 안기는 영토들은 언제나 각 국경의 양편에 걸쳐져 있다. 그리고 해방의 새로운 방식은 경계 개념의 경계를 넘기, 바로 그 일에 있다. 179

우리가 새로운 세계 속으로 이동했다면, 하여 남은 것들을 우리 스스로 수선해야 한다는 존재 조건들 안으로 되돌아온 거라면, 이 때 가장 중요한 움직임은 바로 사방으로 흩어질 수 있음이다. 그럴 시간이 있기만 하다면 말이다. 183


볕뉘.

라투르의 책이 생각보다 빨리 나와 놀라기도 했다. 읽다가 보니 알게 된 것은 라투르가 항암치료 중이며, 손자에게 건네는 양식을 빌어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다급함이 묻어 있는 듯하다. 하지만 글들은 전방위적인 넓이와 깊이를 갖고 있다. 7장의 경제편은 유독 관심이 더 가기도 하는데 개념은 무척 간결하고 적확해서 놀랄만하다. 최근 과학이나 학문들의 병행 발전도 확인하면서 읽으면 좋겠다 싶다. 친철하게 부록 편에 목록들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카프카의 변신을 재음미하는 재미도 느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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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는 지구 자원을 재생하는 양의 1.5배 이상 천연자원을 소비하고, 경작 가능한 땅의 3분의 1이 토양 고갈로 황무지가 되었고, 1970년대 이래 척추동물의 3분의 2가 절멸했다. 32

이 세상의 경제는 ‘1퍼센트의, 1퍼센트에 의한 , 1퍼센트‘를 위한 경제다. 그 핵심에 자본 편향이 도사리고 있다. 부자와 금융계에 유리하도록 시스템 전반에 눈에 보이지 않게 내장된 편파주의다. 이를 추출적 경제라 불러도 좋다. 33

오늘날 미국 내 일자리의 40퍼센트는 파트타임이나 계약제로 일하는 긱 경제 유형이며, 그나마 외주화와 자동화에 직면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이윤추구가 곧 임금 하락 압박을 뜻하는 현실은 이 시스템의 본질일 뿐 전혀 예외적이거나 일시적인 교란 현상이 아니다. 34

미국 책임지는 자본주의 법령 Accountable Capitalism Act: 수익이 10억달러 이상인 주식회사는 기업의 신의 성실 의무를 확장해 기업 설립허가서로 갱신해야 한다. 이제는 주주뿐만 아니라 노동자 그리고 지역 사회의 이익도 고려해야하고 노동자들은 이사회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영국노동당의 포용적 소유권 기금: 직원 250명 이상 고용한 회사는 매년 소유 지분의 1퍼센트를 이 기금으로 이전해야 하며, 이는 기금이 소유한 기업 지분이 10퍼센트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 이 기금은 노동자 신탁인들이 운영하고, 이를 통해 각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상당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노동자는 주주와 마찬가지로 기업의 이윤 일부를 배당금으로 얻게 될 것이다. 35

주정부 공공 은행, 짐승의 배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이 자라게 하자. 36

깊이 있는 재설계: 우리는 자본주의 아니면 사회주의라는 이분법 안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여기는 걸까? 새로운 시스템을 건설하려면 탁월한 상상법을 익혀야 한다. 완전히 새로운 비전을 가져야 하며,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완전히 새로운 이름을 붙여야 한다. 민주적 경제는 그 기본이 되는 제도와 조직을 새롭게 설계하고, 기업 투자 경제 개발 고용 구매 금융 자원 등 여러 활동의 방향을 틀어 경제의 핵심 기능이 우리 모두의 공공선에 복무하게 하는 것이다. 38-39

민주적 경제의 일곱가지 원칙인 공동체, 포용, 장소, 좋은 노동, 민주적 소유, 지속가능성, 윤리적 금융을 통해 펼쳐지게 된다.  장소의 원칙은 동네 공동체에서 생산한 부가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에 머물게 하는 것을 목표로 특정 장소에 대한 책임과 헌신을 공유하는 원칙이다. 방문 간호 협동조합 40-41 민주적 소유권의 원칙: 환경 컨설팅 기업 EA엔지니어링.  지속 가능성의 원칙: 연방 정부의 힘으로 미국의 25대 화석 연료 기업을 모두 사들인다는 것. 윤리적 금융의 원칙; 영국 프레스턴의 매튜 브라운 의원 활용 42-43

1. 언제나 공공선이 우선한다. 2. 오랜 기간 배제된 이들에게 기회를 만들어 준다. 3. 마을의 부를 그 공동체 안에 머물게 한다. 4. 노동이 자본에 우선한다. 5. 새로운 시대에 맞는 기업을 설계한다. 추출적 경계는 기업을 살아 있는 시스템으로 보지 않고 자산 계급이 소유하고 매각할 수 있는 여러 조작의 소유물로 본다. 노동자는 경제적 참정권을 부정당한다. 6. 삶의 기초인 생태계를 보호한다. 현재의 필요와 미래 세대의 필요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도록 그 능력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것. 전체의 관점에서 행동하는 것이다. 재무제표는 자본 소유자의 이익만 현실로 다룬다. 수천 년 흘러온 시냇물이 무지막지한 폐기물에 끊겨도 이는 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7. 사람과 장소가 투자와 대출의 우선 목적이다. 65 우리가 바로 쓰나미다. 68

1. 공동체

오래전에는 ‘부‘가 물질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부‘는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을 뜻한다. 85

2. 포용

기회를 얻기 힘든 창업자들에게 사업 초기에 제공하는 씨앗 자본과 멘토링이 얼마나 중요한지...보증기금 200만 달러가 조성되었고 그 가운데 시가 낸 돈이 75만 달러였다.(포틀랜드시 2015년) 96

타이론도 저소득자들을 도울 때는 일반적인 사회 복지 서비스 방식이 아니라 시장의 접근법을 취한다. 포용의 원칙은 혁신적인 사업가 정신, 경제 발전, 제품 개발 가은 기본적인 경제 과정 안에 내장된다. 사회적 가치를 경제 위에 단순히 얹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핵심부에 앉히는 것이다. 낙인찍힌 집단에게는 ‘역사의 진보‘를 앞당길 능력이 없다는 편견이다. 하지만 누군가 잃은 것이 있다면 이는 곧 집단 전체가 뭔가를 잃은 상태임을 기억해야 한다. 102-103

대화를 트는 것,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쌓은 것, 각자의 편견과 편향을 성찰하는 것, 과거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 등. 포용은 실로 지난한 과정이며, 이 모든 것이 그 어려운 과정을 이루는 부분들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할 가능성도 담고 있는 것이다. 105

노예 해방 뒤에도 흑인 노예를 잃게 된 농장주들만 소유권 상실 보상을 받았다. 누구도 흑인 노예에게는 배상하지 않았다. 아무도 노예가 된 흑인들을 수탈 피해자로 여기지 않았다. 모든 인간이 삶을 꽃피울 포용적 권리, 공공선 보호를 으뜸 목적으로 삼는 것, 부당하게 피해를 입었을 때 이를 보상해야 한다는 도덕적 책무 같은 것들과 균형을 이루게끔 조율하는 길고 긴 운동의 한 부분이다. 107

3.

구매도, 고용도, 생활도 우리 지역에서, 나아가 연결로  buy local, hire local, live local, and connect 117

더 큰 앵커기관 조직: 대체 에너지 업체인 에버그린 에너지 솔루션은 건물 도색, 주택 보수, led 조명 설치 등으로 사업범위를 넓혔고, 도시 농업회사인 그린 시티 그로워스도 네슬레와 80만달러의 바질 납품계약을 맺는 등 노동자 소유 기업이 흑자 전환 121

인류의 역사에서 경제 활동이란 본디 종교, 정치, 가족, 자연 등을 아우르는 사회적 질서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산업 혁명 이후로 자본의 왕이 곳곳에 나타나 노동과 토지를 시장 상품으로 바꿔놓았고, 사람도 땅도 ‘창고에 쌓인 상품인 양 사고팔고 쓰고 버리는‘ 지경이 되었다. 123

기업이 중시하는 주당 이익의 수치 어디에도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고통은 표시되지 않은 채로 얻은 이윤은 주주들에게 돌아간다. 128

4. 노동

투자가 중심 기업체에서는 회사를 사물이나 대상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회사를 소유한 투자가란 회사와 분리된 위치에서 최대한 이익을 뽑아내려는 존재다. 반면ㅇ 소유자가 회사 내부에서 일상적으로 작업과 노동에 참여하면 회사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진다. 물체나 대상이 아니라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소유권의 성격은 금전 추출이 아니라 인간적인 귀속감으로 옮겨간다. 139 CHCA는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을 주요 고객으로 설정했다.

우리에게 노동을 필요악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고용주에게 노동이란 비용항목 중 하나일 뿐이며, 자동화 등으로 완전히 제거하면 가장 좋지만 그게 아닐 경우엔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는 것이다. 한편 노동자들은 노동을 달갑지 않은 것, 마지못해 임하는 것으로 여기고, 일하는 것보다는 여가를 선호한다. 따라서 고용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피고용자 없이 생산물을 얻는 것 이상적이며, 피고용자의 관점에서 보면 일하지 않고 소득을 얻는 것이 이상적이다. 145

슈마허는 노동은 내면의 가장 고상한 자아를 일깨워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생산하게 만드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가 노동을 ‘무의미하고, 지루하고, 멍하게 만드는 것‘으로 느끼도록 일을 조직하는 것은 ‘범죄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146 이 회사는 저소득층 흑인 여성, 라틴계 여성, 이민자 여성에게 좋은 노동과 좋은 삶을 창출해주는 것을 중심 과제로 삼았다.

5. 소유권

EA 엔지니어링은 한 번에 한 가지씩, 환경의 질을 개선하는 사업을 하는 것이 목적이고, 이윤과 목적의 균형으 취하겠다는 것이다. 회사 설계에 공공선이라는 목적을 명시했으며, 자산 소유권은 보통 사람들에게 널리 분산했다. 155

우리는 소유권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환경 운동 진영이 기술에만 집중한 나머지 더 근본적인 문제 대기업의 의사 결정을 추동하는 소유권의 설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외면했다는 것이다. 또 어떤 소유권 설계가 윤리적이며 지속 가능한 의사 결정에 더 큰 힘이 되는지도 무시되었다. 166

지속가능성은 ‘우리 모두는 타인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윤리 관념에 기초한다. 타인이란 지금 살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장래에 태어날 이들까지 포함한다. 167

이런 식으로는 지구가 살아남지 못한다. 그런데도 다를 것 하나 없는 다국적 기업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핵심이다. 공공선이 실현되려면 기업들의 유전자를 뚫고 들어가야만 한다...의료와 교육 분야에 추출적인 소유궈이 나타나지 않도록 특별히 금지할 수 있다. ..우리는 소유권 설계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부터 인식해야 한다. 소유권 설계를 고민하는 이론가가 세계에 몇이나 될까? 기후 위기 연구자에 비하면 훨씬 적지 않은가? 소유권의 대한 형태를 가르치는 경영 대학이 몇이나 있을까? 심각할 정도로 적다. 169-171

추출적인 경제 설계를 한가지 작물만 키우는 단작에 비유한다면, 민주적 경제 설계는 공공 소유, 개인 소유, 협동조합 소유, 직원 소유 등 다양한 소유권 설계에 의지하면서 부문에 따라 다양한 규모로 원하는 결과를 얻게 해주는 구조라 할 것이다. 172

협력하는 민주주의는 50-50프로젝트를 출범했다 2050년까지 직원소유주 5000만명을 만들어낸다는 계획이다. 173 직원 소유 기업은 경제가 어려울 때 회복 재생력을 더 크게 발휘한다.

6. 지속가능성

기온 상승을 1.5도 아래로 막으려면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0년치의 45퍼센트로 줄여야 하고, 2050년까지는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태워서는 안 되는 탄소, 금융 용어로 말하자면 좌초 자산이다. 이 자산이 20조 달러라 한다. 178-179 문제 핵심은 소유권 설계, 자본 권리 신수설: 자본이 극대이 부를 가져간다는 불멸의 권리에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실정은 아닐까. 자본에게 그럴 권리가 있는지, 그게 정당한지 묻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182

화석 연료 기업들의 정치 권력을 깨고 싶다면 이 기업들이 동원하는 화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 기업들을 정부가 매입한다는 발상은  금융위기에 AIG나 제너럴 모터스를 사실상 국유화하는 등 그런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185 거대 은행처럼 지구도 구제 금융으로 살려내자.

녹색 양적 환화: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화폐를 창출해 친환경 기간시설에 직접 자금을 대라는 것이다. 통화정책도 동일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확실히 하는 것이 논리적이면서도 필연적인 수순이다. 187

우리는 토지를 우리에게 귀속되는 상품으로 간주하므로 마구 남용, 오용하고 있다. 하지만 거꾸로 토지를 우리 공동체가 귀속되는 존재로 바라본다면 애정과 존경을 담아 사용할 것이다. 토지는 공동체라는 것, 이것이 생태의 기본 개념이다. 하지만 토지를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윤리학의 연장이다. 원주민들은 토지와 물을 소유물이 아니라 ‘성스럽고 살아 있는 친족, 조상, 고향으로 본다. 뉴질랜드에서는 140년에 걸친 법적 투쟁끝에 왕가누이 마오리족의 조상드리 살던 왕가누이강이 마침내 인간과 동일한 법적 권리를 갖게 되었다. 2017년 법제화되었다. 미국 헌법 전문에 자유의 축복을 우리에게 또 우리 후손에게 보장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191

좌초자산은 주택 시장 거품으로 생겨난 금액보다 훨씬 크다. 우리의 공공선을 최우선으로 지키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먼 미래가 아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물론 금융 세계도 지켜낼 수 있다. 193

7. 윤리적 금융

프레스턴 모델: 지역 주민이 소유한 기업을 양성하고 시의회 지원아래 프레스턴 협동조합 개발 네트워크를 만들고 2012녀에는 시 스스로 생활임금을 지급하는 고용주임을 천명했다. 199 12-13년 앵커 기관들의 지출규모가 10억 파운드나 되는데 지역 내에는 5%에 불과했다. 이에 시의회는 지역에 뿌리를 둔 농업 인쇄 건설업체를 이용해달라고 설득했고 4-5년 뒤에는 18%까지 올라갔고 랭커셔주 전역에서 앵커기과늬 지출은 39%에서 79%로 늘었고 일자리도 4500개나 생겼다. 경제에서 민주주의를 더 많이 부여하고 소유권을 분산하므로써 회복 탄력성을 높였다. 198-200

2017년 총선에서 노동당은 소유권의 범위를 넓혀 소수가 아니라 다수를 위한 경제를 재구성한다는 구호를 내걸고 혁신적인 선언문을 발표했다.  201

은행과 금융은 인간과 지구에 복무하기 위해 존재하며, 이윤은 목표가 아니라 그저 결과일 뿐이다. 203

은행이 소속된 마을 공동체를 지원한다는 목표를 사업허가증에 명시한다. 이 햄프셔 마을 은행은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중소기업 대상 대출 비중은 70퍼센트나 된다. 마을금고 연합은 고객이 은행을 통제할 수 있고, 한 사람이 한 표를 행사한다....지역에 초점을 맞추고 사회적 임무를 뚜렷하게 내건 마을 은행은 은행 업계에 파란을 불러온다. 206

공공 소유 은행: 추출적인 경제에서 금융은 지역과 을의 돈이 런던 금융가나 월스트리트의 소유주에게 빨려나간다는 뜻이 된다. 돈이 지역에서 흐르게 만들어 두루 살아나게 해야 한다. 208

금융 보험 부동산 fire 에서 소득과 자산을 불리는 방법은 금융으로 가는 몫은 늘고 제조업으로 가는 몫은 줄었다. 보통 사람들에게 가는 몫은 줄고, 금융 엘리트로 가는 몫은 늘어났다.  경제는 상품이  아니라 부채를 만들어내는 장치가 되었다. 금융경제란 본질적으로 주식 채권 대출 주택 담보 대출 같은 자산을 모은 것으로 모두 실물 경제에 청구권을 행사하는 증서일 뿐이다. 이렇게 금융 자산의 규모는 1990년 영국 GDP대비 4배에서 2017년 10배로 늘었다.  210-212 무엇이 이 거품을 터뜨리는 바늘이 될까?

윤리적 금융이 발전하는 길은 녹색채권을 지원한다든가, 임팩트 투자를 한다든가, 화석 연료 산업 투자를 줄인다든가 하는 책임 투자가 한 방법일 것이다 214



볕뉘.

1. 금융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현실인식을 기반으로 어떻게 바꿔나가 노동과 지역, 그리고 생태계가 온전히 기능할 수 있겠는가를 두 도시의 사례로 짚어나가는 책이다. 1%가 아니라 90%을 위한 경제이 물꼬를 어떻게 트는가 하는 점에 관심을 둘 때, 무척 발랄하고 경이롭다는 느낌이 든다. 이론과 데이터를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7가지 분류의 원칙으로도 이렇게 희망을 느끼게 하는 책이 있을까 싶다.

2. 아내의 품에 안기면서 숨을 거두는 프루동 전기를 마치면서, 소유란 무엇인가하는 180년전의 울림이 메아리치는 것 같다. 역사의 비명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는 덧셈과 곱셈들이 난무했으면 좋겠다. 지금 여기 그 원칙들을 뿌리내리게 하는 재미들도 쑥쑥 커져나가면 좋을 것 같다. 홍기빈선생의 번역이 고맙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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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조릿대‘

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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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8-16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직접 그리셨나봐요
지난번 준비하신 종이들이 이것 때문에...?

여울 2021-08-16 18:56   좋아요 1 | URL
네 제대로 보셨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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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한 입 베어문다.

푸리에는 아담의 사과, 뉴튼의 중력사과에 이어 사람 사이엔 열정적 것이 존재한다며 세 번째 인력사과*를 말했다. 그리고 그 초고를 식자공으로 있는 프루동**에게 맡겼다. 그렇게 시작했다. 사상의 한 줄기는.

지금 사회적 삶의 현실은 마르크스보다 프루동에게 손을 들어주는 듯하다. 소유는 도둑질이다라는. 자본과 권력이란 마술에 걸리지 말라고 하면서...

하지만 현실을 다기하게 접붙이는 마르크스의 렌즈라는 곱셈을 하지 않고서는 불안해보인다.

여전히 허기가 진다.
네 번째 사과는

발.

여전히 세상은 자신의 편의를 위해 앎을 끌어들이기만 한다. 사회적 삶을 위해 역사의 분기점들을 제대로 복기해내거나 여기에 붙여내지 못한다. 저작들은 그렇게 번역도 되지 못한 채 땅에 묻혀있다 싶다. 객토***를 위한 책들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 샤를 푸리에, 《사랑이 넘치는 신세계》
** 조지 우드코크,《프루동 평전》
*** 브루노 라투르, 《나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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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08-14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울 님 반가워요 오랜만에요.

위드코로나 시대에 생각이 많아지네요.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꽤 서늘해졌어요.

여울 2021-08-14 09:52   좋아요 0 | URL
작업하기 좋은 시간들이네요. 책읽기도요^^ 시간들 잘 챙기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