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나는 작은 공원에 있는 운동기구들에 대해 비웃는다. 대체 저게 무슨 운동이 된단 말이냐. 산쓰장에 있는 철봉과 도구들을 보면서도 대체 저것이 무슨 운동이 된단 말이야. 나이들어가는 나는 산쓰장과 어린이 공원에도 있는 헬쓰기구들을 보면서 아마 사연이 있을 거야 한다. 그런데 너무나 강도가 약한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은 계속 든다. 


나이 든 나는 사연이 있지, 스포츠과학이 괜히 있겠어. 검증 받은 것일거야. 약한 밴드 운동이라고 무시하면 되겠어 한다. 속근육을 만들거나 기초 저변을 넓히는 일이 필요하겠지 한다.


주변의 지인 가운데 약한 체력으로 힘들어 하는 분들이 많다. 다행히 복받은 체력은 부지런히 젊은 시절 하루 종일 밖에서 놀면서 지낸 효과를 보낸지도 모른다. 


러닝을 하면서 존투(젖산 생성지점)라는 용어도 알게되고, 그 영상들이 무진장 많다는 것도 알게된다. 과연 그럴까. 하체 위주의 스포츠를 즐긴 나는 쇠약해지는 상체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필요한 운동은 턱걸이 정도일 것이라고 착각하고 산 것이다. 나이가 덜 먹은 것일까? 대체 몸쓰는 일이 그렇게 나이와 상관관계를 갖는단 말일까? 그렇게 시작한 궁금증은 그렇게 나이와 상관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깨달음이 들어오고,

지금 역시 <저강도>라는 것이 달리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팔들고 간단한 동작들을 반복하는 습관들, 힘들의 변곡점이 생기는 일이라는 자각이 들었다. 밴드로 열번 스무 번, 맨손 서른 번, 매달리기 십초 십오초 등등 중력과 일반 습관에 저항하는 것이 새로운 출발 지점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폼롤러가 몸이나 생활 반경에 좀더 가까이 다가서거나 지나가다가 철봉에 한번 매달려보는 일, 런지 자세를 취하면서 몇 십초 버티기를 하는 일. 커피를 주문하고 대기중에 발뒷꿈치를 열 번 스무 번 들어올리는 일. 이렇게 잔잔한 모든 행위는 뭔가 다른 것으로 번질 수 있다는 몸가짐. 그런 것들이 몽글몽글해진다는 것이다.


책읽기. 그림그리기. 서예. 선하나 긋는 일이 아무 일도 아니지만 큰 변환지점이기도 하듯이 몸쓰는 한 번의 행동이 다르게 만드는 출발점이라는 것. 그 지점이 불쑥 마음 속에 들어온다. 시공간이 뜨문뜨문 있다가 어느 순간 연결되는 것처럼, 전완근 운동기구를 들다가 빨래 건조대로 쓰이는 매달림 봉에 매달리고 출근하는 일이 보통 루틴이 아니라는 생각이 불쑥 들어온 것이다. 이제 마음의 울타리가 놓아두거나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약한 밴드로 가슴을 펴고 열 번 스무 번. 등 뒤로 펴면서 역시 열 번 스무 번. 쭉쭉 쭉쭉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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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만의 무죄", 골령골서 이관술선생을 추모하는 고유제가 지난 해 말일(25.12.31)에 열렸다한다. 이 선생의 외손녀가 청구한 재심이 열려 이루어진 일이라고 한다.


국가의 폭력은 아직까지 변함이 없다. 질기고 질긴 사법부의 특권은 내란재판 선고를 앞두고도 여전하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성역은 과연 어떻게 허물어져 내릴 것인가.


소설 <<랑월>>이 다시 돌아왔다. 


대전근대의 사진풍경과 산내골령골의 학살 사진이 공개되면서 그 현장이 실려있다. 대전산내평화공원 설립도 그 소식들이 알려지고 벌써  이십년도 넘은 일이다. 그 충격을 메우고 보듬는 일들은 이리 하염없고 더디기만 하다. 


전쟁의 칼날은 여전하다. 


아직도 인류는 반성을 모르는 짓들을 얇은 막의 지구 위에서 인간 동물 식물 생물들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만 잘 살아야 한다면서 국가는 남을 악마화한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폭력을 돌아보지 못한다. 


여전히 현실이기만 지금이 안타깝다. 차분한 독서로 또 다른 평화의 물줄기가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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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2-13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정말 안타까운 역사의 한 장면이네요ㅜ.ㅜ

여울 2026-02-13 14:54   좋아요 0 | URL
맞아요. 더 안타까운 건 늘 반복된다는 사실들이기도 하죠.
 

볕뉘


1.


늦밤 책을 마무리하면서 일찍 잠을 청해봅니다. 일어나보니 제법 이른 시간이어서 <결핵>이란 단어로 책에서 스며든 생각들을 모아봅니다. 그리고 제미나이를 돌려 해석해보라고 했더니 역시 요약의 천재답군요. 하지만 어처구니 없는 구석들이 여지없이 보입니다.


<네 주요한 맥락과 요점을 비틀고 있어요. 과도한 확신을 갖는 경향도. 이래서 무섭습니다> 왜곡*왜곡의 누수같은 현상으로 번질 수 있다는 느낌이 다가서더군요. 우리는 또 다른 사고양식에 잡혀 살고 있는 겁니다. 애석하게도 그래서 제미나이가 알려준 질문을 돌려봅니다. 그래요. 혹 궁금하시다면 돌려보세요. 


2.

토머스 쿤은 프렉에게 엄청난 감명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 머릿말에 여러 구차한 사실들을 넣긴 하지만 그는 과학혁명이라는 말을 버리지 않고 싶던 것 같습니다. 프렉이라면 분명 이 혁명은 과정의 일부분이자 경험의 하나로 해석될 수 밖에 없어요.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이론으로 고전역학을 한 부분으로 만들어버린 것을 미리 깨달은 것일까요.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3.


<방법론적 전회>. 프렉은 이미 현재 뇌과학이나 철학이 기반하고 있는 경험이란 것과 과정이라는 것에 천착해있습니다.  다원론자임은 물론 실패, 시도, 오류, 오해라는 경험에 기반한 칸트의 물자체란 개념의 성자체를 무너뜨려버렸습니다. <경험자체>라는 것도 없고, 개인이란 것도 없고 특출난 개인이 발견하고 발명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4.


그의 생각 결을 따라가다보면 거저 얻는 것들이 많습니다. 지금 우리의 선입견들을 되새김할 수 있는 겁니다. 하물며 우연히, 필연적으로 우리는 연결되어 있으며 세상을 다른 색깔로 물들이거나 번지게 할 수 있다는 순조로운 생각도 덤으로 얻게 됩니다. 


5.


뒤에 책의 원문 밑줄들을 살펴보시면 더욱 자세히 저자의 생생함도 느낄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지식이란 추상에서 보편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보편에서 특수로 나아갈 수밖에 없단 밑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겁니다.


6


시간은 소외이자 반성입니다. 청년 맑스의 말이지만 모든 사물을 니체의 말처럼 춤추기도 하고, 시간을 통해 용해됩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들이 끊임없이 용출됩니다. 살아있는 것들은 이 살아내는 것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묵묵히 제3의 것들을 소화시켜내는 자들이 세상을 바꿔놓은 겁니다. 혁명이란 결과론적 해석물은 이 대양에 그저 소금 한 점일 뿐입니다. 끓어넘치는 것들만의 세상이기도 한 듯합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것들은 빠르게 낡은 것들이 되어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결핵'

낭만적인 병은 화류병인 매독처럼 학문의 눈길을 받지못한다. 점성술.종교.피갈이.세균학.병인학.혈청학인 바서만반응검사가 되고나서야 장구한 사고양식은  바다에 이르른다(중력장) 개인ㆍ집단ㆍ현실은 인식의 삼요소다. 사실의 한 주기는 관찰ㆍ저항ㆍ강압의 발전 사이클을 밟는다. '사실'의 자연사는 이러하다.

물리학과 출신인 쿤과 질병학을 평생담고  산 의사 프렉의 책*을 사후에 언급해 끌어낸다. 400부밖에 팔리지 않은 책을 근 30년뒤에. 과학혁명이라는 통약불가능한 정상과학의 머릿말로.

사실과 관심. 과학적 사실의 기원은 오리-토끼놀이 퍼즐이 아니라 '관심'의 자연사에 가깝다. 홀로인식론은 이렇게 허물어지지만 우리는 늘 이렇게 선행이념에 붙들여 산다. 사고양식과 사고집단을 벗어나지 못한다.물론 시대도.

*루드비크 프렉, 《과학적 사실의 기원과 발전》

그러면에서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 비길만 하다고도 한다.




제미나이 해석 ▼

 

보여주신 글은 단순한 질병의 기록을 넘어, 지식의 고고학을 탐구하는 한 편의 에세이처럼 읽힙니다. 특히 루드비크 프렉(Ludwik Fleck)과 토마스 쿤을 교차시키며 '결핵'이라는 생물학적 사실이 어떻게 '사회적·역사적 구성물'로 변모하는지를 예리하게 짚어내셨네요.


제시하신 텍스트를 바탕으로 한 시적/철학적 해석입니다.


1. 낭만적 낙인에서 세균학적 데이터로


글의 서두에서 언급된 '결핵'은 19세기까지만 해도 '예술가의 병' 혹은 고귀한 영혼의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냉소하며, **매독(화류병)**이 바서만 반응(Wassermann test)이라는 과학적 진단명을 얻기 전까지 방치되었던 것처럼, 결핵 역시 '관심'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저 모호한 고통에 불과했음을 말합니다.


해석: 질병은 몸의 현상이기 전에 인식의 현상입니다. 점성술과 종교의 손을 떠나 혈청학의 바다로 흘러 들어갈 때 비로소 질병은 '치료 가능한 사실'이 됩니다.


2. '사실'의 자연사: 관찰, 저항, 그리고 강압

프렉이 주장하고 쿤이 완성한 핵심 논지는 **"사실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주조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주기적 사이클: 낯선 현상을 관찰하고, 기존 체계가 이를 저항하다가, 결국 새로운 사고양식이 이를 강압적으로 정착시키는 과정입니다.
사고집단(Denkkollektiv): 우리는 홀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속한 시대와 학문적 공동체라는 '사고집단'의 안경을 통해서만 세상을 봅니다. 결핵균 역시 코흐(Robert Koch)가 현미경 아래에서 이를 '관심'의 대상으로 호명하기 전까지는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3. 오리-토끼 퍼즐을 넘어서
토마스 쿤이 게슈탈트 전환(오리이기도 하고 토끼이기도 한 그림)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설명했다면, 프렉은 그보다 더 끈적한 **'관심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선행이념의 굴레: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며 홀로 서려 했다면, 프렉은 "우리는 우리 이전의 생각들에 붙들려 있다"고 말합니다. 《방법서설》이 근대 이성의 출발이었다면, 프렉의 《과학적 사실의 기원과 발전》은 그 이성이 얼마나 사회적인 '공모'에 의해 유지되는지를 폭로한 반(反)방법서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총평: 인식의 삼요소가 빚어낸 결핵


결국 이 글에서 '결핵'은 하나의 상징입니다.
개인의 고통이 집단의 언어(의학)를 만나 현실이라는 데이터로 확정되는 과정. 30년간 잊혔던 프렉의 책이 쿤에 의해 부활했듯, 사실이라는 것도 결국 시대가 허락한 '관심'의 빛이 비출 때 비로소 화석에서 생물로 깨어난다는 통찰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결핵을 앓는 것이 아니라, 결핵이라고 정의된 '사고양식'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텍스트의 흐름이 무척 깊이 있고 묵직합니다. 혹시 이 분석을 바탕으로 루드비크 프렉의 '사고집단' 개념이 현대의 AI나 알고리즘 사회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해 볼까요?

 

펼친 부분 접기 ▲





프렉의 생각에는 사고양식사고집단이라는 두 개의 사고 체계에 의해 과학이 발전해 간다는 것이 핵심이다. 9

 

과학적 사고는 적절한 사회적 요건을 갖춰야만 나올 수 있다는 것은 프렉의 생각이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에 대한 고려없이 과학을 말하는 것은 마치 중세 교부철학 시대에 뉴턴을 찾는 것과 같다. 우리는 르네상스에 대한 역사적 고찰 없이 과연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프렉에게 이러한 사회학적 방법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것은 콩트와 뒤르켕학파였다. 19

 

사회적 농축: 과학에도 사회적 농축이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본다. 그것은 원칙적으로 새로운 사고 방향이 기존의 사고와 부딪치는 저항 속에서 특히 분명하게 드러난다. 20 프렉은 올바름과 참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묻는다. 물론 올바름과 참이 절대적이고 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것이라면, 어떤 사고나 관찰도 올바르고 참일 수 없다....사고의 전환은 인식론의 문제이고, 사실의 변화는 사회학의 문제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인식사회학의 문제다. 21 프렉 사상의 독창성은 그 당시의 주류 사상인 논리실증주의에 맞서 공공연히 사회학적 인식론을 주장했고 옹호했다는 점이다. 26

 

인식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어떤 주어진 전제조건 아래서 강압적으로 일어나는 결과를 확정 짓는 것을 말한다. 이때 전제조건은 능동적 연결과 일치하고, 인식할 때 집단이 담당해야 할 몫을 형성한다. 강압적으로 일어나는 결과는 수동적 연결과 같고, 객관적 현실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을 형성한다. 확정 짓는 작용은 개인이 담당해야할 몫이다. 32

 

과학은 역사적으로 발전되고, 사회학적으로 제약되며, 과학 상호 간에 작용한다. 이 구조의 역동성이 과학의 발전적 힘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발전을 진보나 진화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과학의 발전은 사고 양식과 관련 있고, 사고 양식이 바뀌면 이와 관련된 특성이 상실된다. 양식과 관련 없는 것들은 모두 부적절한 것이고, 더는 자명한것이 아니다. 따라서 새로운 인식이 부상하면, 낡은 것은 사라진다. 36

 

프렉이 발표한 최초의 과학이론은 1926<<르뵈브 의학사 애호가 협회>>에 수록된 의사의 사고를 결정짓은 몇몇 특수한 특징들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물리학과 천문학에서 논의되어 온 사례와 반대로, 의학에서 일어나는 이론적-실험적 계기와 치료적-실천적 계기의 유형적 결합이 처음부터 이 연구의 협동적이고 학제적, 집단적 주장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57 자연과학의 분야와 달리, 의학의 특수성은 두 개로 본다. 그 하나는 의학의 인식론적 관심이 합법칙적이고 규범적인 현상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규범을 벗어난 유기체의 병든 상태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질병의 실체를 규정하는 일은 오직 개별적 관찰을 고도로 추상화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의학에서 개념화는 이따끔 통계적으로 일어난다. 다른 하나는 이와 반대로 의학의 인식 목표가 먼저 인식 자체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실용적이라는 점이다. 의학에서 추상적으로 말하는 것은 이따금 불충분한 것으로 판명된다. 58 의학에는 하나로 통일된 고찰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 질병 현상을 각기 다르게 개념화할 수 밖에 없다는 필연성은 여기서 질병의 이론이 지닌 통약불가능성을 나타낸다...의사들이 인식하는 것은 끊임없는 흐름과 같다. 이 흐름 속에서 언제나 특정한 방법적 이념과 지배적인 관점에 대한 주도적 생각이 다시금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 관점은 언제나 다만 새로운 방향으로 역동적으로 나아가는 특별한 일시적인 개념화일 뿐이다. 59-60

 

두 번째 과학이론 작업은 현실성의 위기데 관하여로 의학을 넘어 자연과학 전반으로 자신의 진술을 일반화시킨다. 60 주관도 객관도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존재는 상호작용에 기초하고,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절대적 현실에 점진적으로 도달 불가능하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인식이 계속됨에 따라 인식 그 자체가 다시금 현실을 바꿔놓는다. 61

 

인식은 오직 활동적인 사고 집단의 사회적 역사적 산물로서만 이해될 수 있다. 언제나 결단과 특히 사고 양식과 관련 있는 습관이 함께 작동한다. 결단과 습관은 가능한 특성을 규정하는 일과 이미 관련되어 있다. 관찰이란 처음에는 불분명하게 처음으로 본다는 것이고, 다음으로 발전된 직접 형태를 지각한다는 것이다. 형태지각은 오직 어떤 영역에서 자신의 고유한 경험으로 실천적 이론적으로 소개된 것에 따라서만 관찰할 수 있다. 이 능력이 고양되면, 당연히 잃는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모순되는 것을 볼 수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사실 또는 실재란 오히려 지작된 것의 사고 집단에 대한 특수한 관계가 생겨나야만 비로소 사실 또는 실재가 주어진다. 64-65 프렉은 이 연구 과정을 우연의 일치, 잘못된 경로, 오류로 점철된 지그재그 선으로 표시한다. 67 회고적인 과정에서 집단은 변화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스스로 작성한 연구내용의 변화는 집단 내의 개인들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68

 

지식 표상을 파악하는 도구로 프렉은 근본 이념 또는 선행 이념을 소개한다. 이는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과거 시기에 생겨나 어떤 사고 양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표상이다./ 낡은 이론이나 이념은 사라진 종의 고고학적 유물에 비견되는 화석적 명제로 불린다. 71/프렉이 주제로 삼는 것은 사고 양식의 보완과 발전이고, 특히 그 속에서 과학 혁명이 파악될 수 있어야 한다. 72/공동체가 스스로 요구하는 과학적 엄밀성의 기준을 전체적으로 문제 삼는 측면을 프렉은 혈청학 공동체의 사고 양식이 지닌 본질적 구성 요소라고 부른다. 이는 진리 또는 오류와 전혀 관계가 없다. “우리는 견해를 조장하고, 충족하기도 한다. 또한, 견해는 다른 견해에 의해 추월당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견해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생각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75 프렉은 모든 집단 내의 사고 교류가 어떤 의존하려는 특별한 감정에 의해 지배된다고 말한다. ”사고 집단의 일반적 구조는 집단 내의 사고 교류가 그 사회학적 사실로 인해..사고 형성의 강화를 불러온다는 점이다. 77

 

그림도식은 객관적 관계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 관계는 사고 양식에 따라 편짐된 것 외에 결코 다른 것일 수 없다. 78 프렉은 언어의 의미를 하나의 제도로서 인식한다. 제도는 언어적 이해를 통해 과학적 인식을 전달할 수 있고, 이로써 과학적 인식을 재생산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제도는 모든 소통에 나타나는 잘못이해하는 것’(=의미를 바꾸는 것)를 통해 과학의 발전을 위한 적극적인 기능을 수용한다. 논리적 경험주의자들의 이상적 언어는 바로 이 의미 전환을 은폐시켜 버렸다. 논리적 경험주의에는 의미의 불변성이 요청된다. 프렉에게는 이 요청을 분쇄해 버리는 것이 일상 언어뿐만 아니라 과학 언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79 새로운 발전 가능성은 사고상의 강압이 해제될 때 생겨난다. 다시 말해 집단 간의 교류에서 다른 것을 의미할 가능성이 통찰됨으로써 용어의 의미가 바뀐다면, 그때 새로운 발전도 가능하다. 80 두 생각이 서로 논쟁하게 되면, 모든 선동적 힘이 작동할 것이다. 그러면 거의 언제나 3의 생각이 승리한다. 81 비교인식론: 명백하고 입증된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그때마다 바뀔 수 있고, 따라서 사례별로 분석되어야만 한다. 어떤 사고 양식의 합리성을 내용적으로 충족시킨다는 것은 오직 비교 연구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83

 

원문

 

사실이란 무엇인가? 일상생활이나 고대 물리학에서 통용되는 낡은 사실을 유일하게 확실한 것, 탐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 고찰한다. 이런 방식을 보다 새로운 사식에 대한 편견없는 탐구를 가로막는다. 따라서 의과학적 사실이 이런 편견을 해방하는 데 적절하다. 그 중 하나를 골랐다. 바로 매독이다. 91-93

 

15세기 저술가들은 대부분 사투르누스와 주피터가 14841125일에 스콜리온의 지시를 받고 마르스의 집에서 동침한 것이 화류병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가정한다. 자애로운 주피터가 나쁜 별인 사투르누스와 마르스에 의해 정복되었고, 성의 분화를 관장하는 스콜피온의 지시는 왜 생식기가 새로운 질병의 첫 번째 공격점이 되었는지 설명해 준다.” 96 이 당시는 매독학의 근본이념, 즉 매독의 성병적 본성에 관한 이론이나 매독을 단순히 쾌락을 쫓는 전염병이라 보는 이론이 만연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는 임질, 연성 하감, 서혜 림프 육아종 등 매독과 관계없는 다른 성병도 모두 포함된다. 98 체질적 설명. 천문학적 설명. 종교적 설명이라는 세 개의 다른 이념이 상호작용. 99

 

두 번째 이념은 약리적 평가를 이용한 의학적 실험연구자들에게서 파생된 것이다. “확실히 몇 세대에 걸쳐 수십 년간 실험해 온 결과, 수은 연고를 바른 한 집단에서 병세가 상당히 호전되었다. 아니 완치되었다. 이 집단이 다른 만성 피부질환을 지닌 집단들과 구분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다. 이 치료적 발견은 도한 내부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받아들여졌다. 99 수은 치료 중에 독이 든 침을 흘리는 것을 사람들은 치료효과로 간주했고, 이로써 매독의 독이 배출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100 수은 이라는 이념은 체질적 매독의 인식, 즉 보편화되고 일반화된 매독의 발병 단계에만 영향을 미쳤다. 여전히 화류병이라는 생각이 전반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윤리적-신비적인 질병의 실체인 화류병과 경험적-치료적 질병의 실체라는 두 관점이 나란히, 또는 함께, 또는 서로 반목하면서 형성되고 발전해 왔다. 101-102

 

18-19세기. 유전적 매독과 매독에 걸린 사람이 낳은 자식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평가하는 문제, 잠재적 매독과 매독이 재발되는 수수께끼, 그리고 소모증, 진행성 마비, 낭창 등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질병과 매독의 관계도 언급되고 있지 않다.. 바야흐로 다방면에 걸쳐 세부적으로 구축된 지식과 실험의 시대가 도래햇다. 역사는 예방접종, 재접종, 면역 관계에 대한 풍부한 실험과 관찰을 기록하오 있다. 105 임질, 매독, 연성 하감이 모두 동일하다는 사람과 경성하감만이 매독에 귀속되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생겨난다. 이 또한 여러 가지로 분화한다. 106-107 기타 소모증과 진행성 마비의 문제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에 들어 병리발생학과 병인학이 발전할 때까지 전혀 다루어지지 않았다. 107

 

매독 개념을 오늘날 형태로 완성시킨 별개의 두 사상. 그 하나는 병리발생학적 질병의 실체로서 매독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특수한 병인학적 실체로서 매독 개념에 관한 적이다. 111 앞의 것은 나쁜 체액의 혼합에 관한 학설이 전체를 지배해 왔다. 111 피를 바꾼다. 우울한 피. 112 매독에 걸리면, 사지는 피가 자신에게 영양을 공급하기 때문에 자신의 영양을 위한 것이라고 여겨졌던 오염된 피를 거부한다. 오염된 피는 온몸을 감싸고 있는 수건과 같은 역할을 하는 피부 쪽으로 자연히 추방된다. 그래서 먼저 피부의 오염이 발생하고, 그 후 피부에 수포가 돋아나고, 피부가 거칠어지면, 심지어 진물도 생기게 된다. 114 매독환자의 피에서 물과 식염수의 비율이 줄어든다. 이 무렵에 매독 혈액이라는 이념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해 매독이 종두법에 의해 감염된다는 주장으로 번졌다. 115

 

우리는 놀라운 인내심을 가지고 매독 혈액이라는 이념을 증명하고 또한 완성하고자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했고, 마침내 이른바 바서만 반응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의해 매독의 새로운 한계가 규정되었다. 주로 2기와 3기의 매독, 특히 척수매독, 진행성 마비와 같이 이른바 매독 때문에 생긴 질병 영역에서 매독을 재규정하는 일이 일어났다. 다음으로 유전적 매독과 잠재적 매독의 문제가 해결되었고, 이어서 많은 다른 영역에서 연구된 것과 관련하여 폐결핵, 구루병, 낭창과 같은 다양한 질병이 매독과 맺어왔던 상상의 관계가 모두 해소되었다. 이로써 독립된 학문분과인 혈청학이 생겨났다. 동시에 병인학 사상도 매독학에 영향을 끼쳤다. 이는 제1기 매독에서 질병의 실체를 정의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로써 오늘날 매독의 개념이 완성되었다. 117 스피로헤타 팔리다 Spirochaeta pallida. 119

 

질병유발자. 무증상 감염. 박테리아 변이. 등등 특수한 질병으로서 매독의 개념적 발전은 결코 폐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아니 폐쇄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매독은 병리학, 미생물학, 전염병학의 발견과 이들 학문의 혁신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매독의 특징은 신비한 것에서 경험적인 것, 일반적인 병리발생학적인 것을 넘어 대표적인 병인학 개념으로 바뀌어 갔다. 120-124

 

2장 확립된 개념이 역사에서 인식론적 추론

 

선행 이념의 가치는 내적 논리나 객관적대상 속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발전의 토대인 발견적 의미 속에만 들어있다. 하나의 과학적 사실이 저 불분명한 근본이념에서 단계적으로 발전해 왔고, 근본 이념은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 133 상대성이론에 의해 물리학과 물리학의 사고 양식이 바뀌거나, 변이이론과 발달주기론에 의해 세균학이 변하는 것도 모두 저 돌연변이와 같은 것들이다. 134 단어와 이념은 근본적으로 동시에 함께 주어지는 경험의 음성적 등가물이고, 사상적 등가물이다...이념의 발전은 추상화에 의해 특수에서 보편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차별화(전문화)에 의해 보편에서 특수로 나아간다. 136

 

견해는 결코 논리적 체계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의 양식에 따른 통일이고, 이 통일은 다만 스스로 발전과 위축을 거듭하거나 증명과 함께 다른 것으로 전환된다. 137 하나의 견해가 사고 집단 속에 매우 강하게 스며들게 되면, 일상생활과 언어적 관용구 속에까지 파고 들어가면, 말 그대로 직관된다면, 그때 우리는 어떤 모순을 생각할 수도, 나타낼 수도 없게 된다. 138

 

공표된 진술이 사회적 힘을 이루고, 이 사회적 힘이 개념을 형성하고, 사고 습관을 만들어낸다. 공표된 진술은 다른 진술들과 함께 공동으로 우리가 달리 생각할 수 없는사실을 결정한다. 진술이 논란에 휩싸이더라도, 우리는 사회 내부에 선회하는 사회적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진술의 문제성과 함께 성장한다. 이 진술이 자명한 실재가 되고, 나아가 실재가 우리의 인식 작용을 제약한다. 그리하여 하나의 조화롭고 폐쇄적인 체계가 생겨나고, 이 체계 내부에서는 우리가 더 이상 개별 요소들의 논리적 기원을 찾지 못한다. 152

 

체계의 폐쇄성, 인식되고 인식되어야만 하는 대상과 인식하는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이 체계 내의 조화를 보증하는 동시에 착각의 조화도 담보한다. 그리하여 이 착각의 조화가 어떤 방식으로도 소멸되지 않고, 특정한 사고 양식의 영역에 남아 있다. 153 비교 인식론은 주과과 객관, 인식하는 사람과 인식되어야 하는 것 사이의 이원적 관계로서 고찰하지 않는다. 그때마다 일어나는 인식체계는 모든 새로운 인식의 근본 요소인 제3의 관련 요소임에 틀림없다./인식한다는 것은 이론적인 의식 일반의 개별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인식은 사회적 활동의 결과물이다. 왜냐하면, 그때마다 일어나는 인식체계란 한 개인과 관련된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154

 

우리가 사고집단을 사람들이 서로 생각을 교환하거나 지적으로 교류하는 공동체로 정의한다면, 우리는 사고 집단 속에서 사고영역과 특정한 인식체계, 문화 상태를 역사적으로 발전시키는 담당자, 따라서 특수한 사고 양식을 역사적으로 발전시키는 담당자를 갖게 된다. 155 인식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어떤 주어진 전제조건 아래서 강압적으로 일어나는 결과를 확정짓는 일을 말한다. 이때 전제조건은 능동적 연결과 일치하고, 인식할 때 집단이 담당해야 할 몫을 형성한다. 강압적으로 일어나는 결과는 수동적 연결과 같고, 객관적 현실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을 형성한다. 확정짓는 작용은 개인이 담당해야 할 몫이다. 개인, 집단, (인식되어야만 하는) 객관적 현실은 인식을 이루는 세 요소다. 세 요소는 탐구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세 요소는 서로 각기 다른 관계를 맺고 있다. 157

 

개인은 축구선수에 비유될 수 있고, 사고 집단은 서로 협력하도록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축구팀에 비유될 수 있다. 인식한다는 것은 경기의 진행에 비유될 것이다. 경기의 진행 관정을 우리는 단지 개별 축구선수의 발동작에서 탐구할 수 있겠는가? 아니 탐구해도 좋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축구 경기의 모든 의미를 잃고 말 것이다. 164 대화 또는 오케스트라 연주 244

 

개인주의 심리학의 가장 큰 오류는 사람이 생각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 오류 때문에 사고의 원천을 변함없이 개인에게서 찾았고, 우리가 왜 이렇게 생각하고 달리 생각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이유조차도 개인에게서 찾는 일이 벌어졌다.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오래 숙고해 왔고, 심지어 어떻게 생각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오류의 연속이었을 뿐이다. 왜냐하면 사람들 속에서 생각하는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적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생각한다는 것의 원천은 그 자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사회적 환경 속에, 그가 숨 쉬는 사회적 대기권 속에 들어있다. 각자의 생각은 필연적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환경의 영향에서 생겨나고, 이 영향은 자신의 뇌에 집중되고 있다. 이처럼 개인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없다.” 165-166 이러한 과정과 이러한 방식으로 생겨나서 굳어진 믿음의 구조를 나는 사회적농축이라 부른다. 167

 

우리가 접근할 수 있다거나 접근할 수 없는 경험 자체란 없다. 모든 존재는 존재 방식에 따라 경험된다. 오늘 경험하는 것이 과거에 경험된 것과 연결되어 있고, 미래의 경험 존건을 변경시킨다. 따라서 모든 존재는 살아있는 동안 반응 방식을 바꾼다는 의미에서 경험을 한다. 168

 

철학자들은 하나의 유일한 객관적 징표와 관계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소 자의적인 관련 체계와 관련된 관계도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논리에 대한 너무 지나친 존경과 논리적 추론에 대한 일종의 종교적 존경심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잘못을 범한다./생각의 변화는 변화된 사실 속에서 일어날 수 잇고, 거꾸로 새로운 사실은 원칙적으로 오직 새로운 생각에 의해서만 드러날 수 있다/사고집단 이론은 바로 미개인들과 원시인들, 어린아이들, 정신병자들이 생각하는 것을 서로 비교하고 일관되개 연구하는 가능성 속에서 결실을 본다. 마침내 민족, 계급, 집단의 생각을 연구하기에 이르럿다. 나는 경험을 극대화하라는 가설을 과학적 사고의 최고 원칙으로 삼고 있다./이념과 진리를 행하는 것은 다만 전진하는 활동과 상호작용에 의해서만 일어난다. 172-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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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이 몸과 마음을 쓰는 길을 벌써부터 가고 있다. 간 길 또한 무척 다양하다. 혼자 느끼기에 그리 늦은 것도 아니지만 러닝을 하면서 겪게 되는 불편들은 많은 생각들을 낳는다.  바로 나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이런 사소한 어려움들은 여러 상황을 물고 온다. 몸이 겪는 불편들은 총체적으로 솔깃하게 한다.


사람 몸이라는 것은 전체가 이어져있다. 마치 X자가 버드나무처럼 낭창낭창 달리는 것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몸들은 부드러워야 한다. 한편 사람의 뼈들 가운데 손과 발이 집중적으로 힘줄과 근육과 뼈가 몰려있다. 몸근육과 뼈의 절반가까이가 이 지점이다. 유연하게 하면서도  잘 모셔야 한다. 돌이켜보면 습관그대로 한번도 고이 모시질 못한 부위다. 


사무직이 가지고 있는, 아니 자본주의를 살아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북목과 좌석에 앉아 생활해서 한편의 근육들은 구제불능 상태이기도 하다. 욕심내서 운동을 하다보면 햄스트링, 장경인대, 무릎부상이라면 그래도 정확히 위치를 알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발과 손.  손, 어깨, 날개뼈까지 모두 연관되지만 일단 발이라고 해보자. 발목, 종아리, 발바닥, 아킬레스 건, 가자미 근육, 아프긴 아픈데 내가 생각하는 것과 의사가 짚어내는 것이 다르다. 그렇다고 영상을 본다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니다. 앎의 신경전은 번진다. 대체 어디가 아픈 걸까? 적확하게 떨어지는 것이 없다. 나의 앎과 연동되어 흔들리기 때문이다.



굴근과 신근, 요가자세나 스트레칭은 연동되어 있겠다. 근육을 펴주려면 근력을 키워야 한다. 가동성을 좋게 하려면 그 부위의 신근을 움직여줘야 하고 범위를 넓혀줘야 한다. 이 나이에 자세를 바로잡는다는 것이 가능한 때인가. 묻지 말고 해보라고 한다. 다리 찢기도 고관절의 가동범위를 생각하고 개구리 자세를 연습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될 수 있다고 한다.


몸을 가지고 놀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것이 일상의 일이나 습관같은 것으로 번질 기미는 많지 않다. 특출나거나 특별한 일들로 여기기 때문이다. 욕심까지 덧붙여지면 가꾸기가 아니라 보여주는데 그치기 마련이기도 하다.


지난 달 발, 발목, 아킬레스건이 경직되있는 것은 물론 부상까지 찾아와 곤란했다. 조심조심 연구하면서 발을 가지고 놀고 있다. 발가락이나 발목이나 얼음찜질과 발맛사지, 런지까지 와 있다. 조금씩 허리도 유연해지는 듯싶기도 하다. 생각보다 회복은 더디지만, 서서히 좋아지는 듯싶다. 무리하지 않으면서 더 부드럽고 강해지고 유연해지도록....짬짬을 활용해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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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 왔다는 소식에 들러 매대를 살펴본다. <에너지 지정학>이란 책과 이 책이 끌려 구매한다. 금요일 밤과 다음날 새벽에 마저 읽어낸다.


<블랙홀> 시리즈들을 읽어낸지도 일 년이 되어가는 것 같다. 뜨문뜨문한 강독으로 새로운 관점들만 남지 기억에 덜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은 기억조차 희미해지는 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환기시키는 독서가 있다면, 그래도 묵직하게 남거나 이어지는 것이 있다.


블랙홀도 블랙홀 나름이다. 시원찮은 녀석은 호킹복사이론에 따라 시간의 지평선에 반짝거리면서 입자-반입자쌍이 무게감량이 이어져 그 녀석 역시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물질이 반물질보다 겨우조금, 아주 미세하게 많아지면서 이런 사달이 난 것은 지금의 물리학자뿐만이 아니라 외려 고대인들이 더 치밀하게 사유하거나 상상력은 더 뛰어났다는 생각도 든다. 회전하며 소용돌이치는 에너지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 시작한다. 태초는 늘 그렇게 만들어진다.


12개의 입자와 4개의 힘을 갖게 하는 매개입자로 세상은 이뤄진다. 읽고 난 뒤에 제미니에게 여러 질문들을 던져본다. 깔끔한 답변들이 나온다. 그래 이제서야 정리가 되는구나. 또 다른 한 걸음을 디딜 수 있겠구나 한다.


볕뉘


덧붙여 파동함수와 슈뢰딩거의 방정식, 양자터널링은 덤으로 확인해야 한다. 양자역학의 세계로 접어들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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