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5 ] 자기만족으로서의 자아라는 개념은 부르주아 정신과 부르주아 철학의 본질적인 표현 가운데 하나다. 프티 부르주아의 자기만족과 같이, 자아라는 개념은, 불안하면서도 진취적인 자본주의가 지닌 뻔뻔 스러운 꿈에 자양분을 공급해 준다. 이 개념은 인간을 자기 자신과 화해시키기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시간과 사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일을 지향하는 자본주의의 노력, 결정권과 발견에 대한 숭배를 주재한다. 부르주아는 내적인 분열과 자기 신념의 결여에 대한 수치심을 표현하지 않는다. 단지 현실과 미래를 염려할 뿐이다. 왜냐하면 분열과 결여는 바로 부르주아가 소유한 현재의 확정된 균형 관계를 끊어 버리도록 위협하기 때문이다. 6

[ ] 존재에 대한 긍정이 지닌 잔인성은 절대적인 만족이며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을 지시하지 않는다. 7
[ ] 동일성은 사람들이 그 절대적이고 결정적인 성격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 사실의 충만함의 표현이다. 8
[ ] 서양철학의 평화와 안전성에 대한 이상은 존재의 충만함을 전제했다. 인간의 조건이 지닌 불충분성은 심지어 ‘유한한 존재‘라는 의미를 직시한 것 외에, 단 한 번도 다른 어떤 존재의 한계와 같은 것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9
[ ] 탈출이라는 표현 자체만으로 현대적 삶의 모든 상황에 대한 목록 전체를 도출하기는 쉽지 않다. 그 목록은 삶의 여백 속에 아무것도 남겨두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자각할 힘조차도 지니지 못한 세대 속에서 만들어진다. 10

[3 ] 생명의 약동이라는 창조의 철학은, 고전적인 존재의 엄격성에서는 탈출하는 반면 존재의 마력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창조의 철학은 실재 저편에서 새로움을 창조하는 활동만을 식별하기 때문이다. 13

[4 ] 근본적으로 생성은 존재의 반대가 아니다. 미래를 향하는 경향, ‘자기의 앞으로‘ 향하는 경향은 약동 속에 포함되어 있고, 하나의 과정에 운명을 바치는 존재를 표기한다. 약동은 창조적이지만 저항할 수 없는 것이다. 운명의 성취는 존재의 흔적이다. 모든 운명이 전부 존재의 흔적은 아니지만, 운명의 성취는 치명적이다. 우리는 갈림길에 있지만, 운명을 선택해야만 한다. 우리는 시작한다. 생명의 약동 속에서 우리는 낯선 것을 향하게 되지만, 우리는 어떤 부분에 불과하다. 반면에 우리는 탈출 속에서 벗어남에 관한 감화를 받게 된다. 이것은 혁신이나 창조와는 동화될 수 없는, 그 순수성 안에서 포착되어야만 하는 출구라는 범주다.이 독특한 주제는 존재로부터의 벗어남을 우리에게 제안한다. 14

[ ] 탈출은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날 것을, 다시 말해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용서할 수 없는 결박상태, 자아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의 결박상태를 깨트릴 것을 요구한다.....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길 원하는 자아는 제한된 존재로서의 자기 자신을 벗어나지 못한다. 15

[ ] 반대로 탈출은, 자기와의 평화라는 주장에 문제를 제기한다. 왜냐하면 탈출은 자기에 대한 자아의 결박상태를 깨트리는 것을 동경하기 때문이다....탈출에 있어서 자아는, 자아가 존재하지 않거나 자아가 존재하거나 자아가 됨이라는 사실 자체에 기인해서 그 스스로 자기로부터 벗어난다. 16 이상 1장


2.

[ ] 우리가 탈출에 대한 분석이 완결될 때까지는 기원과 죽음의 문제가 적절하게 정립되지 않는다고 간주하는 이유다.....탈출은 우리에게 죽음으로의 도주나 시간 바깥의 출구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상 2장

3.

[ ] 욕구는 오직 고통이 될 때 강압적인 것이 된다. 또한 욕구를 특징짓는 특정한 고통의 양상, 그것은 불안감이다. 불안감은 순수하게 수동적인 상태, 자기 자신에게 의존하는 그런 상태가 아니다. 불펴하다는 사실은 본질적으로 역동적이다. 이는 그저 그대로 있음에 대한 거부,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노력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것의 특별한 성격을 이루고 있는 것은, 이 나가는 순간을 계획하는 목적, 하나의 적극적 특징으로 부각되어야 하는 목표점에 관한 무규정성이다. 그것은 우리가 가는 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한 채 벗어나려는 시도이며, 또한 이러한 무지가 이러한 시도의 본질 자체를 규정짓는다. 23
[ ] 욕구에 관한 근본적인 편견들이 이를 통해 설명되건, 욕구 충족이 곧 불안감의 동요에 대한 응답이건 간에 모든 문제는 앎으로 나타난다. 24
[ ] 우리는 다양한 불안감의 현상 속에서 다음과 같은 한 가지 다른 최상의 요구에 주목한다. 충족이 치워 버리는 데 성공하지 못하는 짐, 고도 우리 존재의 심연 속에 있는 죽음이라는 일종의 짐이 바로 그것이다......금식이라는 고행은 신에게 흡족한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 존재의 근본 사건이라는 상황에 우리를 더욱 밀착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 근본 사건이란 바로 탈출에 대한 욕구다. 25 이상 3장

4.

[ ] 우리 존재의 실신으로, 졸도로 존재하는 자기의 진폭의 확장 속에 전적으로 존재한다. 이제 막 시작된 쾌락의 극단에서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미친 듯이 정신을 잃고 추락하는, 우리 존재의, 보다 더 깊은 심연, 깊은 수렁과 같은 것이 열린다. 28
[ ] 우리는 쾌락 속에서 한 가지 폭, 자기 자신의 상실, 자신으로부터 벗어남, 황홀경을 확인한다. 탈출의 약속을 묘사해 주는 수많은 특성들은 쾌락의 본질 속에 포함된다. 29
[ ] 쾌락은 과정, 곧 존재를 벗어나는 과정이다. 쾌락의 정서적 본성 이러한 벗어남의 표현 내지는 기호일 뿐만 아니라 벗어남 그 자체다. 쾌락은 촉발성이다. 왜냐하면 바로 쾌락이 존재의 형태를 채택하지 않고 이 형태를 깨트리고자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만적 탈출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패한 탈출이기 때문이다. 30
[ ] 쾌락은 욕구의 요구들에 순응하지만 욕구의 요구들과 등치될 수는 없다. 또한, 반드시 승리했어야 하는 이 기만의 순간에, 그 실패의 의미가 수치심을 통해서 부각된다. 31 이상 4장

5.

[ 1] 수치심은 우리가 겪는 고통을 확인하면서 우리 자신을 그 위신이 땅에 떨어진 존재로 형상화하는 표상이다...수치심이 우리의 유한함에 있다기보다는 우리의 자아라는 존재에 보다 밀착되어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수치심은 우리 자신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기 위해 강제성을 부과하는 우리 존재의 연대책임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수치심은 우리의 벌거벗음을 망각하는 데 이르지 못할 때마다 나타난다. 수치심은 우리가 숨기고 싶어 하지만 묻어 버릴 수는 업는 모든 것과 관계한다.....가난은 악이 아니다. 하지만 가난은 걸인의 누더기 옷과 같이 수치스러운 것이다. 32, 33 수치스런 벌거벗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타자로부터 감추고 싶어 한다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감추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수치심의 이러한 양상은 자주 무시된다. 우리는 수치심 속에서 그 사회적 양상을 본다. 34 우리의 수치스런 내밀함, 다시 말해 수치스러운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현전이다. 그것은 우리의 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존의 전체성을 드러낸다. 벌거벗음은 그 현존을 변호하고자 하는 욕구다. 결국 수치심은 스스로 변명을 모색하는 현존이다. 수치심이 발견하는 것은 스스로를 드러내는 존재다. 36 이상 5장

6.

[ ] 구역질, 구토: 우리는 ‘속이 너무 울렁거린다‘ 39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존재 불가능성인 구역질 속에서, 동시에 우리는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로 고정하게 되며, 숨 막히는 협소한 순환 속에 가두게 된다. 우리는 그저 거기에 있으며, 있는 것 이상의 아무것도 행하지 못하다.......즉 순수한 존재에 대한 경험 자체다. 40
[2 ] 구역질이 고독 속에서 경험될 때, 그것의 해로운 특징은, 자기 자신을 말살하는 것과 거리가 먼 그 구역질의 근원성 속에서 나타난다. ‘중병을 앓고‘ 있으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구토를 하는 외로운 병자는 여전히 자기 자신이 ‘걸림돌이 된다‘. 특정한 차원에서는, 심지어 타인의 현전을 소망한다. 왜냐하면 타인의 현전은 ‘질병‘의 구역질이라는 걸림돌을 질병의 수준으로 내려가게 해 주고, 사회적으로 우리가 다룰 수 있는 정상 상태라는 사시로 만들어 주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결과적으로 객관적 태도를 취할 수 있다. 위에서 논의된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자기의 수치라는 현상은 구역질과 같은 것이다. 42
[ ] 우리는 구역질이 존재의 현전을 그러한 현전으로 구성하는 그 모든 무능함 속에서 드러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 모든 벌거벗음 속에서의 순수 존재의 무능함이다. 결국, 이를 통해서, 구역질은 ‘예외적인‘ 의식의 사실로도 나타난다. 43 이상 6장

7.

[ ] 욕구는 한정된 존재의 완전한 성취와 만족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지 모사며, 단지 해방과 탈출로 인도해 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욕구를 가지지 않는 무한한 존재에 관한 가정은 형용모순이다. 이와 같은 존재의 현전, 존재의 순수한 현존이 드러나는 경험은, 존재의 무능함의 경험이며, 모든 욕구의 원천이다. 45
[ ] 존재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은 불가피성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불가피성이란 이미 존재를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존재로의 진입은 의지와 대립하지 않는다. 46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가? 존재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무에서 유래하는 문제가 아니라 충족 혹은 불충족의 문제다. 이 문제는 존재 정립의 역설을 통해서 진술된다. 더 나아가 존재의 역설은 시간에 관하여 우리 스스로가 자유로워지고 우리 자신이 영원성을 부여할 때 완전하게 되는 것으로 남게 된다. 48,49 이상 7장

8.

[6 ] 존재론은 오직 존재하거나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되는 것만을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는 편견에서 비롯된, 초보적이면서도 단순한 편견의 감옥에 갇혀 있게된다. 비모순의 원리보다 더 오만한 원리는, 무 자체인데, 사유가 무를 마주하게 되는 차원에서, 이것은 존재의 덮개를 두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파르메니데스에 대항해서 어떤 제한도 없이 비존재가 있음을 진술해야만 한다. 50

[7 ] 더 나아가 관조적 사유와 이론은 존재의 흔적을 운반하는 자의 행동 토대가 된다. 이론은 본질적으로 존재자에 굴복하고, 이론이 존재에서 출발하지 않을 때조차도 존재를 기대한다. 이러한 기정사실 앞에 무력함이 있다. 인식은 정확히 모든 것이 완성되었을 때 실행되는 것으로 남아 있게 된다. 51

[8 ] 관념론의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고서 관념론의 적법한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에게 열려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두려움을 떨쳐버리고서 존재의 무거운 짐과 보편성을 측량하는 데서 나올 수 있다. 이 길은 존재의 성취 속에서 그 자체로 존재를 깨트리는 사건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든 행위와 사유가 안고 있는 어리석음을 우리 스스로 인식하게 만드는 길이다. 그러한 실천과 사유, 탈출의 근원성이 우리에게서 은폐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공통감각과 격언이 가장 자명하다고 여기는 관념을 전복하는 위험한 시도를 무릅쓰는 가운데, 새로운 길을 통해서 존재를 벗어나는 일에 관한 문제다. 53,54

볕뉘.

0. [레비나스 철학의 맥락들]의 버틀러편(정치윤리학)을 읽고, 잠을 청하기 전 읽다. 도입부가 강력해서 내친 김에 보아삼켰다. 레비나스 사상은 전기,중기,후기로 나뉘는데 이 책은 전기 이전에 쓰인 것이다. 1981에야 이 글을 출판해도 좋다는 허락을 한 글이다.

1.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자아는 제한된 존재를 벗어나지 못한다‘: 발버둥은 어디에 걸쳐있을까 싶다. 결국 못벗어난다고 하니 말이다. 죽음을 전제로 사유하는 존재론은 자아에 갇혀 버릴 수밖에 없다. 너란 없다. 탄생에서 출발하는 존재론. 아렌트로부터 베르그송의 생명의 도약에 대해서도 말미 토를 단다. 존재의 엄격성에서는 탈출하나, 새로움을 창조하는 활동만 식별하기에 존재의 마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고 못을 박는다.(1.3)

2. 그는 쾌락이 존재로부터 탈출한다고 말한다.하지만 벗어남 그 자체이기에 존재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고 역시 마무리한다. 그는 수치심을 꺼내든다. 그리고 구역질, 구토하는 존재를 살피하고 말한다. 존재의 영점, 영도는 여기에 있다고 말이다. 충만함이 아니라 짐과 무게를 느낄 때만 존재가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5.1, 6.2)

3. 무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충족과 불충족의 선상에서 존재는 시작하는 것이라고 되묻는다. 존재론과 관념론, 관조적 사유의 어리석음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지 않는다.(8.6 8.7 8.8)

0.1 다른 사유가 들어오면, 기존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생각말들이 덜컥덜컥 들뜬다. 밀리고 밀려 말을 바꾸어야 되는지도 모른다. 반음 뒤틀어지거나, 또 다른 말때문에 전부 말의 위치를 바꾸어야 되는지도 모르겠다. 덜컥거린다. 지난 말들을 부여잡는다. 그래도 울렁거린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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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레비나스 / 타인의 얼굴

1.

[ ] 아듀 - 신에게 맡긴다 233 데리다는 ˝아듀˝가 한정된 우리의 삶과 생각을 그 테두리를 넘어서는 무한으로, 잉여의 의미로 데려가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235

[ ] 레비나스의 타자 개념은 동일자와 대비되는 것이다. 그래서 레비나스의 타자는 곧 무한과 연결된다. 요컨대, 레비나스에게 무한은 우리가 지배할 수 있는 테두리 너머를, 우리의 지배에 대한 부정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타자는 우리의 지배 범위를 넘어서는 자이고, 그런 의미에서 무한한 자인 것이다. 236

[ 3 ] 레비나스는 죽음 자체나 죽음 저편을 주체적으로 탐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종류의 문제를 기각한다. 죽음 다음의 사태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고, 따라서 관심을 가져봐야 소용이 없다......레비나스의 출발점은 삶의 향유이고 반응이다. 삶이란 반응하고 응답하는 것이다. 그 삶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타자의 죽음이고 거기서 오는 의미이다.....응답-없음이란 타자의 죽음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습이다. 타자는 이런 무-응답의 상태를 피하기 위해 우리에게 호소한다. 우리는 그런 타자에게 응답해야 하는데, 이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238 죽음의 위협에 어쩔 수 없이 노출되어 있는 타자에게 내가 응답해야 함을, 내가 응답하지 않을 수 없음을 강하게 일깨우는 표현 239

[ ] 데리다가 초점으로 삼는 주제들을 보면 분명히 약자나 핍박받는 자들과 관련된 문제들을 다룬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반권력적이고 반지배적인 해체적 보편성을 내세운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레비나스는 이보다 더하다고 할 수 잇다. 지배 너머의 지평을, 정치 너머의 윤리를 앞세우니까요. 여기에 비해 데리다는 정치의 차원을 중요하게 다룬다. 레비나스 철학에서 정치는 윤리를 통해 극복해야 할 영역으로 취급된다. 또는 정의 문제와 관련해 부수적으로 다루어질 뿐이다. 242

[ 4 ] 제삼자의 출현은 양자관계가 아닌 삼자관계가, 따라서 비교와 계산의 관계가 성립함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이것은 정치의 성립을 뜻한다....사실 삼자성이란 이렇게 대면관계가 보편적으로 확보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한다. 244 이상 아듀 레비나스

2.

[ ] 5장 책임과 대속적 주체: 존재와 다르게 또는 존재 사건 저편에: 현재 우리가 처한 삶의 상황에서 ˝내가 누구에게, 무엇에 책임이 있으며 어떤 상호 작용의 공동체 안에서 내가 내 자신인가?를 고려하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처한 상황과 대상, 일, 공동체, 도덕적 주체가 중요하다. 165 나의 책임과 존재 모험: 세계에 대한 의존성을 통해 나는 비로소 나의 독립성, 나의 자유를 확보한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나는 오직 내 안에서 나를 실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169

[ ] 존재 유지 노력과 타인과의 관계: 히틀러와 독일 국가사회주의의 만행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타인을 제거하고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존재 경향의 확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레비나스는 본다. 170 전쟁은 존재 속에 지속하고자 하는 경향의 연장이라고 보고 있다. 171 계약에 의한 평화는 타인에 대한 존경이나 도덕법칙에 대한 순종에 근거하기보다 상대방에 대한 공포에 근거하고 있다. ...개인간의 평화이든 정치적 질서에 의한 평화이든 평화를 이성적인 계산에 의해 가능한 것으로 보는 입장을 레비나스는 전형적인 서구적 평화의 핵심으로 생각한다....다양한 것, 많은 것들을 그보다 상위 단계에 있는 일 또는 일자에 환원할 때 평화가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 그리스 사상이 평화문제에 접근하는 기본 모형이었다. 173 레비나스는 자기 중심적인 사회 모형에 근거한 정치는 ‘윤리가 결여된 정치‘라고 단언한다....자아 중심적 사회 모형은 ‘사회 주변부 사람들‘과 ‘힘없는 사람들‘에게 일정한 자리를 허락해주지 않는다. 개개인이 확보할 수 있는 힘을 바탕으로 타인에 대해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낸다면 힘없는 자, 가지지 못한 자, 신체적으로 능력을 잃은 자는 상대적으로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175 영원한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 인간과 세계, 나와 타인, 진리와 정의, 자유와 책임의 관계를 바르게 설정해야 한다. 176

[ 2 ] 타인의 얼굴: 나의 자기 중심적인 이기적 삶을 타인에 대해 책임지며 타인과 함께 타인을 위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삶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이 가능성을 레비나스는 나의 존재 유지, 나의 내면성에서 찾지 않고 나의 바깥, 나의 존재와는 전혀 다른 차원, 다시 말해 나와 타인 사이에 일어나는 ‘윤리적 사건‘을 통해 찾아낸다.176 타인은 한마디로 유일하며 독특하다. 177 ˝맥락 없는 의미화요˝ ˝전체성의 깨뜨림˝이다. 타인은 단적으로 나에게 ˝낯선 이˝이다. 177 사물을 벗겨냄으로, 지평 안에서, 어떤 맥락 안에서, 일정한 형식을 갖춘 가운데 드러난다. 하지만 그 자체로, 스스로 자신을 보여주는 의미, 어떤 무엇과의 지시 관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 스스로 지시하는 가운데 드러나는 의미, 자기 자신 외에 어떤 다른 것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의미, 자기 자신 외에 어떤 다른 것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의미, 자기 자신에 의존하면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의미, 나의 주도권과 나의 권력과는 완전히 독립해 있는 의미, 어떠한 형식에도, 어떠한 맥락에도, 어떠한 ˝의미부여˝에도 앞선 ‘지평‘없는 의미를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에서 찾는다. 178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것으로 우리에게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존재, 우리의 세계 안에서는 어떠한 지시체도 찾을 수 없는 ‘외재적 존재의 현시‘를 레비나스는 한마디로 ‘얼굴‘이라고 부른다. 179 언제나 ‘처음 온 사람‘이다. 179 얼굴의 시선과 마주칠 때 나는 회피할 수 없는 얼굴을 경험한다. 시선은 나를 ‘놀라게‘ 하며 나에게 ‘상처‘를 준다. 180 나는 이 ‘계시‘에 직면해서 그것을 수용하는 자로, 순종하는 자로 설 뿐 스스로 기획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나의 기대와 예측을 벗어난 가르침을 주는 스승과 주인으로 타인은 나에게 말 건네 옴을 통해 다가온다....그것은 ˝너는 살인하지 말지어다˝라는 명령이다. 181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이다. ..그 자체의 존재는 세계 안에서 하나의 비참이다.˝...비천함에 처한 타인이 나에게 간청으로 호소해올 대, 그 호소로 인해 나의 자유가 문제시될 때, 이때 비로소 윤리적 관계가 등장한다. 181 ˝윤리는 자유가 자기를 정당화하는 대신 스스로 자신이 자의적이며 폭력적임을 느낄 때 시작한다.˝...레비나스는 타인이 나를 정죄하고 사로잡음을 ˝끝까지‘ ‘따라와‘ 괴롭힌다는 뜻으로 ‘핍박‘이라고 부른다....응답을 요구하는 타인의 부름에 내가 ‘응답할 때,‘ 나를 ‘응답할 수 있는‘ 존재로 세울 때 나는 비로소 ‘응답하는 자‘로서 ‘책임적 존재‘ 또는 윤리적 주체로 탄생한다. 182 ˝여기 내가 있습니다˝는 레비나스에 따르면 모든 객관적인 서술에 앞서, 내용과 정보를 지닌 어떤 소통이라도 그 이전에 전제하는 ‘첫 언어‘이다. 183 저는 뒤에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이것이 언어의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다. 184

[ ] ‘타인에 의한, 타인에 대한 책임‘과 대속의 의미: 윤리적 불면...‘타인에 의한, 타인에 대한 책임‘이라 이름 짓는다.....타인은 나에게 문자 그대로 ˝혼을 불어넣어주며˝ 나에게 ˝영을 집어넣어˝준다. 타인은 나의 호흡이며, 나의 혼이며 나의 영이다...타자가 내 안에 ‘혼을 불어넣음‘은 타자가 내 몸으로 육화되어 타인의 고통을 위해 나를 내어줄 수 있도록 노출시킨다. 185 대속은 타자에 의해 책임적 존재로 지정받은 내가 타자를 ‘위한‘ 책임적 존재로 세워지는 모습이다...대속은 문자 그대로 ‘자리 바꿔 세움 받음‘이다. 186

[ ] 대속적 책임의 실현과 비움의 주체: 응답, 환대 또는 책임은 ‘줌‘이고 ‘자신을 희생함‘이다. ˝주는 것, 즉 타자를 위한 존재란 자신의 입에서 빵을 꺼내어 자기는 굶주리면서 타인의 허기를 채워주는 것이다.˝ 189 나의 집과 나의 소유, 나의 지식을 타인을 섬기는 수단으로 사용하라는 것이 타인의 얼굴이 나에게 호소하는 윤리적 요구이다. 궁핍 가운데 있는 이웃을 그저 공감이나 연민으로, 나의 소유를 내어놓지 않고 빈손으로 대하는 것은 공허하다. 191

[ ] 제삼자와 책임: 정의와 국가 제도 : 정치의 드라마....지속적 혁명..틀의 파괴가 필요하다. ..체제와 영역 바깥에서 체제의 경직성을 경고하고 인간 개개인의 인격의 독특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곧 정치와 윤리의 결합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레비나스는 보고 있다. 195 개인의 양심만이 이성 자체의 올바른 기능에서 유래한 폭력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자아만이 위계질서와 행정 체제의 순작동으로 생긴 타인의 ‘숨은 눈물‘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공무원) 196

[1 ] 응답으로서의 윤리학: ˝윤리적이란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윤리적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윤리적일 수 있는가˝ 이 세 가지 물음은 윤리는 언제나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윤리에서 ‘존재‘를 강조한다고 해도 행위와 무관한 존재는 윤리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그런데 행위는 언제나 행위를 실행하는 행위자의 행위이다. 197 응답자로서의 인간 198 니버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고 묻지 않고 ˝현재는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이것은 곧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으며 나에게 반응을 요구하고 사회적 연대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내가 어떤 존재로 설 것인가하는 것이 니버 윤리학의 관심임을 말해준다. 199 이상 레비나스의 철학 타인의 얼굴 5장에서

볕뉘

0.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그의 저작으로 들어가지 않고 사숙하는 이의 글이나 해설들을 살펴본다. 가벼운 뉘앙스의 차이가 해석의 차이로 이어진다. 그 사실을 유념하고 있다. 베르그손의 시간, 직관의 의미가 받아들여도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처럼, 개념을 한 몫에 깨닫게 해주는 언어가 없다. 아니 우리의 상식들이 그 단어의 다른 의미에 갇혀있어 벗어나기가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조심스럽다. 그래서 더 서성인다. 책들 사이 편린들을 들추어보고 있다. 여기저기.

1. 다음에 읽어줄 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책앓는 이가 되어버린 자의 슬픔을 책친구와 나누어본다. 굳이 슬픔이라고 하지말고 기쁨은 없는가하고 말머리를 돌려보자고 했다.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죽을 때쯤 겪는 왜 사는가의 질문지를 일찍 받아 괴롭기도 하다. 그 답답증의 출구를 모색해보기로 했다. 나는 누구인가 너는 누구인가 요즘 그런 질문을 안고 사는 사람들은 극히 희소하다. 거의 없다. 그러니 안으로의 나를 채우는 것에도 무심하며, 밖으로 향해 있는 나의 상황과 넓은 정황에도 관심이 없다. 오로지 손에 잡히는 것밖에라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그래 미처 해주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책 앓이를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여러 농도가 차곡차곡 진해져 가는 것이라고, 어떠한 용도로 쓰일지는 모르지만, 목적이나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 만남처럼 제대로 된 길을 가는 것이라고 해두자고 ...일단은...

2. 밑줄이 많이 처 둔 부분은 그 만큼 낯이 설다는 것 같다. 옮겨 적으며 어제 육근종암에 걸려 다리를 절단한 청년의 삶을 끝까지 본 어제 상황이 생각났다. 아파 너무 아파 아픔을 끝내고 싶은 것, 아픔과 싸울 여력이 없어져 스러지는 것이 죽음이라면, 그 맛을 본 청년의 고통이 어른거렸다. 거기에서 시작하는 그의 삶. 얼마나 많은 슬픔이 다가설까..그래서 그 질긴 아픔과 비교해낼 것이겠지. 그저 마음씀이라는 것밖에 할 수 없음.

3. 얼마나 깊이 얼마나 다르게 얼마나 멀리 레비나스를 읽을지 모르겠다. 서성이다가 그를 읽는 것이겠지. 읽다가 슬프다가 힘을내다가 하는 것이겠지. 괴로움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것이겠지...두 손에 쥔 것을 놓겠지...그리고 아마 다른 것을 잡게 되겠지. 책을 읽는 것은, 책을 앓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위안 받을 친구가 있으면 됐지. 그냥 가보는 것이라고....위험한 독서란 이런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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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라시-어둠은 한번도 잡히지 않았다 후라시를 켤 때마다 보란 듯이 불빛 그 바깥에 가 있었네...동그라미 안에만 비가 내리고 나는 간신히 외치기 시작했어 비 내리는 밤이 있다는 것은 아직 우리의 슬픔이 젊기 때문이다.....동그라미 안으로 쓰윽 들어온 손이 내 턱을 추켜올렸을 때 내 얼굴은 이미 깨져 있었다

[ ] 가을과 슬픔과 새 - 슬픔이 새였다는 사실을 바람이 알려주고 가면, 가을새들은 모두 죽었다. ....낙엽이 새였다....날아오르는 것과 떨어져내리는 것이 꼭 같은 모습으로 보여서, 슬픔에도 빨간 페인트가 튀는데....단풍의 빛깔은 태양 속으로 빨려든다, 태양에 환풍기를 달아놓은 것처럼...나의 몸이 어둠속으로 떨어지는 것과 함께 그래서 박쥐들이 검구나, 슬픔과 몸이 하나일 수 있다는 것

[ ] 목소리가 사라진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 - 서로 목소리를 뭉쳐 던지며 차가워, 아파도 좋겠다 목소리를 굴려 사람을 만들면, 그는 따뜻할까 차가울까....

[ ] 모래시계 - 잠은 어떻게 그 많은 모래를 다 옮겨왔을까? 멀리서부터 모래를 털며 걸어오는 사람을 보았다. 모래로 부서지는 이름을 보았다. ....누군가의 해변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잤던 잠을 또 잤다....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지 않아도 나는 돌아보았다

[ ] 그리고 날들 - 미안하다, 마음이 돌아오지 않아 나갈 수가 없다.....나의 입과 나의 목과 나의 배....라고 중얼거리며 미안하다, 나는 밥을 먹는다

[ ] 우리 모두의 마술 - 그런 풍경은 보이지 않는 풍경을 보여주는 풍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유리창은 계란 칸처럼 꼭 한알씩 태양을 담았다가 해가 지면 가로등 아래 깨뜨린다.....깨진 유리 속이면 사람은 한명으로도 군중을 만든다. 인간은 끝나지 않는다.

[ ] 절반만 말해진 거짓 - 나는 네 몸이 아프다 네가 내 몸을 앓듯이 그러니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위로가 있어서....모든 예언은 절반만 말해졌다는 것 그리고 그 나머지를 실현하기 위하여 삶이 아프다는 것 이제 놀라지 않는다

[ ] 숨겨둔 말 - 비가 새는 지붕이 있다면, 물은 마모된 돌일지도 모른다. 그 돌에게 나는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었다...어느날 하구에서 빗방울 하나 주워들었다. 아무도 내 발자국 소리를 꺼내가지 않았다.

[ ] 지나가나, 지나가지 않는 - 이 시간이면 모든 그림자들이 뚜벅뚜벅 동쪽으로 걸어가 한꺼번에 떨어져 죽습니다...목소리는 어떻구요. 투명한 나뭇잎처럼 바스라져 흩날리는 목소리에게도 내세가 있을까? 아, 메아리라면, 그들에게도 구원이 있겠지요.

[ ] 취이몽 - 세계의 뚫린 구멍이 내 생각은 아닐까?....우리가 갖지 못한 것은 날개이고 새가 갖지 못한 것은 날고 싶음입니다....생각처럼, 생각처럼....칼끝에서 돌 하나 붉은 심장으로 타오를 때,...어느날, 유리창이 깨지듯 잠이 깨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면, 오래전 날아온 돌멩이가 잡힌다....눈물은 금처럼 번져간다..

[ ] 사랑 - 내리는 비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싶습니다, 써놓은 한사람을 찾고 있다. 모두가 자신이 아니라고 하면 우리는 누구를 위해 모인 것일까

[ ] 우리라서 -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만 잘 지낼 수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서로를 기억하는 사람 또한 우리라서, 아침이면 차창을 스쳐가는 나무들이 단 한번 죽음을 주인으로 모시고 밤처럼 꼭 감은 눈에서 떨어지는 이슬 한방울씩 받아주는 때가 온다.

[ ] 우리 - 우리는 있어서, ˝다시는 별을 쳐다보지 마˝ 그 말로 인해 다시 쳐다보는 밤하늘을 우리의 절망은 죽을 때까지 걷도록 선고받았다. 끝없이 별빛에 찔리며 일그러진 뒤에도 굴러가는 달처럼.

[ ] 송별회 - 어느날, 내 몸속의 잎들이 한꺼번에 지는 날이 있을 겁니다. 내 몸을 찢고 나온 슬픈 식사가 있을 겁니다...내 몸을 뒤춤에 아무렇게나 기워놓은 호주머니로 사용하지는 않겠습니다. 찌그러진 담뱃갑처럼 슬픔 따위를 구겨넣지는 않겠습니다.

[ ] 무서운 슬픔 - 그러나 연잎 뜨고 밤별 숨은 연못에서 갑자기 개구리 울음이 멈추는 이유, 뱀은 모르겠지. 순식간에 그 집 불이 꺼지는 이유

[ ] 카프카의 편지 - 인생은 씌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하려고 부재하는 신에 관한 기록처럼 구겨지는 것이다

[ ] 나는 알고 있거든 - 가르쳐주마 나는 목숨을 끓여 슬픔을 정제하는 공장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거든....가르쳐주마 봉투를 찢었을 때 쏟아지던 모래의 내력과 후우 불면 흩어지는 활자들의 기원.....덕분에 나는 닫힌 공장 굴뚝의 긴 어둠을 막대처럼 뽑아 하루를 내리치며 폐광의 잠을 잔다....네 운명이 앞질러 되가져간 슬픔 덕분에 실직당해 몸 밖으로 쫓겨난 꿈 때문에 내가 일상이라는 죽음을 죽기까지 살게 될 테니

[ ] 흐린 방의 지도 - 골목은 간밤의 신열로부터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식탁에 흩어놓은 약봉지 같다 내 안에서 필사적으로 빠져나가려는 대답을 막기 위해 밥을 먹어야 했다....누군가 느낌을 담아가기 위해 사람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아무리 소리쳐도 꿈속까지 들리진 않는데 왜 꿈에서 속삭이면 꿈 밖까지 들릴까? 골목에서는 질문을 멈추게 하는 알약이 팔리지만 여기서 외로움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이상 나를 부르지 않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대답했다

[ ] 옆집 남자 - 사막 가운데서도 선인장은 물속에 잠겨 있다....아침엔 사막으로 물을 가져가다 가시가 돋아난 풀처럼...죽은 자의 심장을 내리치듯. 쾅쾅 안개를 두드리는, 울음은 저기 혹은 여기,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그가 살고 있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끝이 없어 나는 옆집 남자로 살고 있다.

[ ] 산책자 보고서 - 지붕을 뚫지 못해 빗방울은 대신하여 빗소리를 집 안으로 내려보낸다....나는 비의 느낌으로 숨어 있다....빗방울의 시간은 빗소리의 시간보다 더 멀리 있어서 빗소리의 시간은 나의 시간보다 더 멀리 있어서 나는 끓는 허기일 뿐....하루는 그 간격을 오가는 시간으로 더 먼 곳의 시간들을 지우고 있다.

[ ] 차갑고 어두운 - 태양은 연필 뒤에 꽂힌 지우개 같지만 문지르면 곧잘 호수를 찢어버리지...왜 생각 속은 늘 차갑고 어두운 것일까....호수 위를 뱅글뱅글 돌고 있는 돌멩이를 오랫동안 올려다보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 생각....안개 속에서 한걸음씩 사람이 나타나서 내 눈을 찌를 것만 같은데....생각 위에 글자를 쓸 때마다 금방 낙서가 된다

[ ] 자작나무 - 나는 돌 하나를 쥐고 있었다 언젠가 백발 마녀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을, 그러나 아무 소리도 없이 깨지는 하늘처럼 쏟아지거나 떨어지는 질문이거나...날아가는 돌에서 백발이 자라는 것을 보았다

[ ] 하늘에서 흰머리가 내리는군 - 아무리 단단하게 뭉쳐도 흔적 없이 사라지는 눈사람을 보면, 울 때마다 눈물이 조금씩 우리를 지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나는 언제나 뒤에 오는 것을 믿는다. 세상에 눈사람이 진실이라고 말하는 겨울이 있고 눈사람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봄이 있다면.....

[ ] 아무렇지도 않게 - 창밖에 밤의 수염처럼 비가 드리워져 있는 날이 있다. 어느 미용사가 지붕 위에 앉아 그 수염을 자르는 밤이 있다....그러니까 수염이 점점 짧아져 더는 자를 것이 없을 때 가을이 간다....창문은 아무렇지도 않게 당신을 쳐다보는 날이 있다.

[ ] 더 많거나 다른 - 열한시에 열한시를 만나기로 했다. ....열한시는 대답하지 않았다....비 맞는 햇살과 부서진 노래, 아름다움에 대해

[ ] 흰나비 - 흰나비는 이 세상 것 같지가 않다. 쫓아가는 아이는 꼭 넘어진다.

[ ] 나비 tatoo - 마침내 어떤 꿈도 남지 않은 새벽에 깨어나 만져보면 그대로 부서지는 날개, 가만히 혀를 대보면 맑게 흐른다.....나비의 흰 젖.

[ ] 스위치 - 물이 새는 화장실 스위치를 올리면 물소리가 멈춘다...언젠가 익사자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을 돌. 나는 주머니 속에 돌을 집어넣고 가계부 목록을 쓴다 북국으로 가는 철새 그림자를 위한 항로 보수 공사에 든 비용 스위치를 내린다

볕뉘

0. 어제는 [사랑의 현상학]이란 책의 1장을 읽다 마저 읽지 못하고 잠을 청한다. 새벽에 일어나 마저 읽고, 늦은 아침 쪽잠을 잤다. 꿈을 꾸었다. 요즘 꿈에는 서늘함이 자주 다가선다. 꿈을 기억해내었지만 애써 기억하지 않는다. 보일러 스위치를 올렸다. 타이머 불빛이 비춘다. 온도 표지만 되어 다시 난방 스위치를 올렸다.

1. 생각은 늘 차갑고 어둡다. 한 번쯤은 따뜻해도 좋을 듯싶은데, 이렇게 차갑고 어두움을 내려놓는 글을 읽다. 그러고보면 마음이 참 따스해지기도 한다. 흘릴 눈물을 기를 수 있다니 말이다. 책을 읽다가 생각길을 가다보니 밤의 수염이 많이 자랐다. 아니 콧털도 자랐다. 길을 잃은 먼지가 콧사이로 다녀간 것이다. 그것도 자주. 아침 면도를 했다.

2. 나와 너는 다가서지 못한다. 그 사이에는 유리, 창. 비치는 나. 그 유리를 와장창 깨고 싶다. 그러나 돌같은 마음은 비처럼 내린다. 흐른다. 슬픔은 이 지상을 채우고도 남을 듯이 빗소리는 요란하다. 그렇게 펑펑 우는 사이 눈물을 보탠다.

3. 절망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내 마음이 닿지 않는 아주 가까운 등잔밑에서 늘 시작한다. 나의 절망의 틈을 채워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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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 ] 슬픔? 그건 간직 못하지. 내 주머니보다 크거든. 나보다 크거든. 내 세계보다도 크거든./그걸 간직하는 유일한 방법은 분노로 바꿔놓는 것./나는 돌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힘껏 팔을 휘둘렀다. 더는 아무것도 창조할 게 없어서 신은 사라져버렸구나./돌을 던져서는 깰 수 없는 것이 있었네. 맞힐 수 없는 바람이 있었네. 뚜벅뚜벅 걸으며,/차라리 나는 돌이 되고 싶었다./그래서 돌아보았다. 후회로 남는 때가 마침내 가장 반짝이는 법이라고......사랑은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전부 들었다. 시인의 말.

[ ] 내가 쓰러져 꿈꾸기 전에 - 죽음이 인생을 엿보려고 사람에게 사랑을 심어놓았다...아직 내게 남은 재앙이 있다면 오늘 자정이 가기 전에 보내주기를.

[ ] 얼음은 깨지면서 녹는다 - 사라진 시간의 그림자. 죽음, 슬픔, 분노. 어둠속에서는 항상 인간이 깨지고 있다. 이번 생의 시절을 모른 채 서둘러 내게 온 청춘처럼, 그 방 유리창에는 돌멩이가 날아온 흔적이 있다. 거절된 고독이 있다./ ...고독은 해부되지 않는다...눈동자 속 지진으로 뻗어가는 핏줄처럼 지금은 누군가 뭉쳐 던진 달 하나의 밤. 내가 한걸음 나설 때 모두가 움직인다.....희고 거대한 바위가 시간의 협곡 속으로 천천히 굴러가는 모습이 보인다.

[ ] 저지르는 비 - 울음 속에서 자신을 건져내기 위하여 슬픔은 눈물을 흘려보낸다....슬픔은 풍경의 전부를 사용한다.

[ ] 그해 안부 - 그것을 낙엽이라 부를 수 없었다. 다만 알 수 없는 것이 텅 빈 시간을 찔러, 몸이라는 상처를 남겼다는 것을, 몸이라는 압정에 박혀 영혼이 날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 ] 노랑에서 빨강 - 아무리 살펴도 건너편이 보이지 않아서, 오늘을 건너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 방황에 대해서도 살았다고 쳐주는 겁니까?......오늘이기를 멈추지 못하는 오늘에게 자연사라는 말은 참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날개 없이 날아가는 것들에게만 가능한 일 같습니다. 마음처럼? 이를테면, 사랑과 슬픔과 분노. 그것이 중력이라면, 도대체 내가 던진 돌은 언제 땅에 떨어진단 말입니까? 저 달은 언제 땅에 떨어진단 말입니까?....어딘지 모를 오늘을 날아가다 그만, 사랑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슬픔이 무엇인지 분노가 무엇인지 잊어버리고....비가되어 떨어지는 거라면, 비를 맞고 아플 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 내 속에도 신이 있구나.나는 , 잠겨 있구나.....언젠가 오늘을 건너갈 수 있다면, 나는 생각 속에 몰래 머리를 숨겨놓을 것입니다.

[ ] 이 슬픔에는 규격이 없다 - 한가지 일은 그리워하는 것. 다른 한가지는, 잊는다.

[ ] 그림자 섬 - 낮 동안 낮게 끌려다니던 그림자가 밤이 되자, 나를 커다란 보자리로 싸서 들고 간다.....어둠속에서도 모두가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이 신비로웠다. 만지지 않는데도 느낌이 남아 있다는 것이, 죽은 후에도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름다웠다...빗방울에도 얼굴이 있다는 것이 신비로웠고, 목소리에도 해변이 있다는 것이 아름다웠다.

[ ] 눈사람 - 구원은 내가 원하는 것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원했던 마음을 가져가는 것으로 찾아온다....함께라는 말 속에 늘 혼자 있는 사람과 혼자라는 말을 들고 늘 함께 있는 사람들 중에서 너를 일으켰을 때, 네 눈에 박혀 있던 돌멩이처럼

[ ] 사과 - 외진 냄새로 얼룩지는 저녁에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뺨을 맞았다. 맞을수록 익어간다.

[ ] 내가 계속 나일 때 - 나는 그냥 살았을 뿐이다. 나는 계속 나였다. 내가 끓었을 때 그가 왔다. 그리고 식어가는 시간이었다.

[ ] 더 어두운 색 - 밤새 덮어놓아도 꺼지지 않는 불이 있어서 그 불을 지나온 눈동자 같은 색 밤새 흘려보내도 마르지 않는 물이 있어서 그 물을 건너온 목소리 같은 색.....난로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그는 벽에 일렁이는 자신의 그림자를 인두로 지졌다....마침내 희미한 집들이 더 어두운 밤을 게워내는데 겨울이 아무리 뜨거워져도 난로는 타지 않는다.

[ ] 귀가사 - 빨갛게 끓고 있는 찌개 속에서 설탕의 맛을 알아채는 것처럼, 그는 정말 자글자글 끓고 있는 내 몸 어딘가에서 슬픔을 읽어내고 있는 것일까?....사랑은 새로운 운동장 건립 공사 같은 것..그렇다면 슬픔은 그 공사에 고용된 인부들 같아서 현장에서 나온 폐기물을 포대에 담아내듯이 슬픔이 나를 내 인생에 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지......어쨌든 오늘 우리가 취했다는 것은 서로를 향해 출렁이고 있다는 뜻이다...부딪치며 몸속에 소용돌이 하나씩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는 잔에 알코올을 붓고 내 영혼을 녹여 마시는 자는 누구일까?

[ ] 개와 산책하는 비 - 문득 치욕으로부터 잊혀지지 않을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는 공포감을 느끼면/톡톡 바닥에 떨어진 매미를 발끝으로 건드리며, 죽었나 살았나/조금씩 비가 듣는데, 이제 제가 운 울음 하나 건사하지 못하나

볕뉘

0. 바쁜 한 주였다. 아니 바쁜 중순이라고 할까? 매일 매일 모임을 했으며, 하루하루 책 한권이상은 읽었고, 정신없이 오고가며 이동을 하였다. 그 와중에 이 시집은 물끄러미 나를 고이게 만들었다.

1. 마침 레비나스를 시작해서인지 그 사이 사이로 그 그림자들이 연신 비치는 것이다. 그동안 갇힌 유아론에 대한 확장인지 확증일지 모르는 생각들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듯했다. 시인의 시어들이 서로 물려 윤곽이 잡힌다. 그래서 그 자연스러움을 물고 있는 놀라움에 연식 탄복한다. 다시 모임에서도 그랬다. 멤버들은 시종 편차가 없이 시와 시인을 애정했다. 전 시집과 지금 시집의 간극을 놀라와했으며 확장에 대해서도 긍정의 안부를 말했다.

2. 선무당이 아니라 신과 이승을 이어주는 말 벗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그런 무당. 이 시집을 잊지 못하겠다 싶다. 아껴 써둔다. 거꾸로 반틈의 메모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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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사 연구방법론 02

제 4장 구술사 연구방법

[ ] 구술사 자료의 해석 - 1. 서사분석: 서술형식 중심의 해석: 2. 재구성적 교차분석:맥락 중심의 해석: 맥락분석은 공시적이면서도 통시적인 해석 전략이다. 맥락을 분석하는 것은 구술자의 틀에서 삶의 의미를 이해하면서도, 연구자의 비교문화적 틀에서 구술자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다. 117 구술자의 주관적 경험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었는지 극 경험의 구성성을 드러내어 구술자 주체의 자리매김을 하는 것이다...왜, 어떻게 그 경험이 만들어졌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구술자의 개인적 경험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밝히는 것은 구술자 주체가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가를 밝히는 것이고 이것은 곧 그 경험을 역사화하는 것이다. 118 충남 서산 부석면, 여성 구술생애사: 이 논문은 단순히 구술 자료가 무엇을 말해주는가(역사적 상황, 사건, 활동)보다는 구술자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가(주관적 의미화)에 초점을 두었다. 119 과거에 일어난 일이 현재에는 어떻게 해석되고 있으며, 그들에게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를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맥락 중심의 분석이 경험의 구성성을 강조하게 되면, 구술자의 주관적 의미 부여와 행위성이 약화되기가 쉽다....따라서 맥락 중심의 분석에서 구술자 경험의 구성성을 밝히면서 동시에 구술자의 주관적 이해와 해석, 행위자로서의 목소리가 드러나는 분석방식을 고안해낼 필요가 있다. 121

[ ] 구술사 자료의 텍스트화: 1. 구술성의 재현 -구술 자료를 연구하는 이점의 하나는 바로 구술이 가지고 있는 역동성과 연행적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어떤 형태의 출판물이건 간에 구술성을 효과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텍스트화의 방식이 개발될 필요가 있다. 122 구술 자료의 분석에서 구술자의 목소리와 연구자의 목소리를 분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구술자도 공동저자이기 때문에, 연구자는 확실하게 구술자의 목소리를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124 단선적, 연대기적으로 정돈하는 방식이 과연 구술성의 재현과 공동작업으로서의 구술사의 성격을 제대로 반영하는가는 의심스럽다. 따라서 구술 자료의 텍스트화의 다양한 사례들을 검토하면서 새로운 실험적 글쓰기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126 20세기 한국민중의 구술자서전(소화, 2005): 구술자로부터 수집한 사진이나 구술자가 인터뷰 시 직접 그린 그림이나, 구술자가 보존해온 문서 등이 곳곳에 삽입되어 흥미롭다. 130 윤택림 충남 예산 시양리 조사: 한국사회의 역사적 담론의 층위를 국가전체사, 지방사, 마을사의 차원으로 나누어서 다루고 있다. 국가전체사는 문헌을 중심으로, 지방사는 문헌과 구술 자료를 중심으로, 마을사, 가족사와 여성사는 마을 사람들의 구술 증언을 중심으로 재구성되었다. 133

[ ] 윤리적 문제 - 면담자는 피면접자를 이용하는 모든 가능성에 대항해야 하고 인터뷰가 이용될 수도 있는 방식들에 대해서 민감해야 한다....학자로서 역사적 진실을 찾기 위한 증거를 확보하는 의무도 가지고 있다. 135 가장 중요한 것은 구술자를 보호하면서 역사적 증거와 사실들을 드러낼 수 있는 방식들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37

제5장 구술사 아카이브즈 구축

[ ] 아카이브즈는 각 기관이나 개인이 활동하는 동안에 만들어지는 각종 자료를 모으는 장소이다. 여기에서 자료라고 함은 출판되지 않은 것들을 말한다. 간단한 메모, 노트, 편지, 사진, 지도 등도 포함된다...도서관은 출판된 책이나 잡지 등을 보관하는 장소이고, 아카이브즈는 출판되지 않은 자료들을 보관하는 곳이다. 145 아키비스트라고 불리는 기록관리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145 새로운 형태의 문서는 새로운 방법의 관리도구 및 운영지침을 요구한다. 146

[ ] 구술사 아카이브즈 : 1. 이것의 목적은 후대의 학자, 학생 및 일반시민들이 구술자의 증언을 토대로 역사를 공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148 기록관리사들의 전문성은 해당 자료의 분류를 일정한 분류법에 따라 정리해야 하는 특별한 임무가 뒤따른다. 149 2. 후속세대를 위한 정보 제공의 장이다.149 3. 아카이브즈를 통한 자료탐색에서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사실이 드러나기도 하고 또 새로운 접근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역사 연구의 수준을 높이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 149 4. 구술된 내용 가운데 신빙성이 문제가 될 때가 많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교차검증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구술사에 대한 사회적, 학문적 인식이 공공성을 띠는 구술사 아카이브즈의 구축을 저해해 왔던 것이다. 152 5. 최근에는 구술사 아카이브즈가 하나의 문화운동과 인권운동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추세이다. 153 6. 지금까지 역사 연구에서 홀대를 받아온 계층이 남긴 구술 증언과 목격담으로 아카이브즈가 만들어지면 지식생산의 주체가 바로 이들이 된다. 155 7. 구술자들이 자신들의 증언이나 생애사를 녹음으로 남기고 아카이브즈에 보관하게 되면 구술자는 자신의 이야기 내용에 대한 정보와 지식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지식은 누가 언제라도 이용할 수 있도록 대기 상태로 남게 된다. 아카이브즈의 필요성과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156 8. 예전의 아카이브즈가 보관과 저장에 주력했다면 디지털아카이브즈는 자료의 보관, 저장은 물론이고 이용, 활용 면에서도 뛰어난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58

제6장 구술사 연구의 응용

[ ] 구술생애사: 자서전의 작가에게는 충실한 기록자라고 하는 역할만 주어지지만, 이는 두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이야기가 쓰인다. 170, 생애사에서는 구술자가 행위의 주체가 되므로 그의 이야기 속에서 나타난 의식구조를 통해서 당대의 문화를 알게 된다. 또 구술자가 어떠한 이야기를 선택하는가를 통해서 개인의 정체성, 사회의식 그리고 역사인식도 드러난다....구술생애사에는 구술자의 삶과 그 삶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들어있기에 구술을 대상으로 서사분석이나 구술자의 해석을 중심으로 문화적 맥락을 분석하는 일도 중요하다. 172 구술자가 살아온 위치에서 그의 삶을 이해하려는 것이 생애사 연구의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구술자와 심층면접을 시작하기 전에 그가 속한 집단이나 사회를 참여관찰할 필요도 있다. 173 맥락은 개인이 환경에 영향을 주고 환경이 개인의 삶을 형성하는 역동적인 과정을 말한다...활동을 중심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왜, 어떻게 ‘그‘ 경험이 만들어졌는지를 밝히는 것으로 그 경험을 역사화하는 것이다. 174

[ ] 구술사와 여성사: 우열과 강약의 기준이 여전히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나온 것이라면 명칭만 여성 중심의 역사이지 실제로는 남성 중심의 역사와 큰 차이가 없다. 177 여성사에서 여성이 중심이 되는 역사를 서술하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특수성을 알아보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여성사의 특수한 국면이 전체사의 구도 속에서 가지게 되는 상대적인 위치를 밝히면 된다. 178 행위의 주체가 되는 사람들의 생애사와 증언 따위에 주목하면서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사회구조의 원리들이 서로 경쟁하고 충돌하는 과정이 가장 잘 드러난다는 점이다. 179 신세타령, 큐레이터의 역할, 사건에 대한 증언 180

[ ] 구술사와 지방사: 역사가들은 그들의 창조적인 상상력에 의존하여 역사를 재구성하게 된다고 한 바도 있다. 연구자의 상상력이 동원되는 문제는 많은 논란이 계속되어 왔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184 300년전이나 3년전에 죽은 이들의 주민 이야기는 이어진다. 현지조사를 하는 관점에서 그 말에는 늘 생기와 생동감이 있다. 그들의 기억과 상상 속에 살아 있는 과거의 사람들의 모습을 읽어내는 것은 물론 연구자들의 몫이다. 185

[ ] 구술사와 문화사: 구술사의 의미는 그 내용의 진실성 여부에 있다기보다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구술자의 의도와 그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인식의 틀이나 체계가 당시의 사회와 문화의 구조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188 구술자가 자신들의 과거를 기억해 의지해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가를 보여주게 된다. 188

[ ] 구술사와 구전문학 : ‘위기의 구조‘ 신화적 구조도 특정한 사건, 특히 위기의 상황을 경험하게 되면서 변화한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191 역사 연구의 대상으로서 구비문학이 가지는 장점은 그것을 짓고, 기억하여 전하는 주체 집단의 인식과 그 인식의 틀을 알아보는 데 있다고 본다...특정 이야기를 만들어낸 개인이나 집단의 인식의 세계에 접근하려면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는가보다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가 하는 점에 더 유의할 필요가 있다...우선적으로는 그 이야기가 만들어진 시대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상황에 대한 지식이 필요해진다. 과거의 주체집단이 처하였던 현실적인 이해관계에 접근하여 보는 것이 선결과제라는 뜻이다. 192 오늘날과는 다른 사회적 상황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그 시대인들으 입장을 통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194 이야기가 구성되는 틀 195 아기장사는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평민들이가져서는 안 될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문제가 되었다...혁명적인 사고보다는 그 세태를 비웃고, 조롱할지언정, 그대로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현실적이었다. 198 구술사 연구가 가장 발전한 미국에서는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원 과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구술사 교과과정들이 제공되고 있다. 199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과거의 직업이나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남기는 것이다. 205 지방자치제의 시민강좌에서도 구술사에 대한 인식은 전혀 없다. 문화와 역사의 보물창고라고 볼 수 있는 지역사회의 중장년층은 우리에게 단절된 과거의 고리를 제공할 수 있다. 207

볕뉘

0. 세미나 준비와 기획서 작성 참조 차 읽고남기다. 개요를 숙지하게 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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