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v] 이 시의 타이틀이 [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이라는 좀 괴팍한 것이라든지 이 시의 작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 다만 한 가지 명백한 것은 낙백한 영혼이 펼쳐 보이는 이 페시미즘의 절창이 한국 최고의 시라는 사실이다. 만약 누가 있어 이런 것을 감상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이만 저만 큰 망발이 아니다 한국의 페이소소가, 이 겨레의 인생관이 이렇게 높고 처절한 격조를 이루고 있는 것을 나는 달리 알지 못한다.....이 작품이야말로 한국인의 생활철학과 인생관이 집약된 대표적인 사상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순수한 우리말로 구성된 이 작품은 한국 사람들만이 미득할 수 있는 한국의 노래이다

1.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71-72 백석우화 그리고 서른세 편의 시

2.

[ ] 수라-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내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차디찬 밤이다//어느젠가 새끼 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나는 가슴이 짜릿한다/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이렇게 헤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 거마가/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을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라운 종이에 받아 또 문밖으로 버리며/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 ] 늙은 거미처럼이라고 적는다. /버려진 집에 뒹구는 이 빠진 종지처럼이라고/서리 덮인 새벽 둑방 길처럼/섣달 저녁의 까마귀처럼이라고 적는다./폐분교의 엉터리 충무공 동상처럼/ 변두리 차부의 헌 재떨이처럼이라고/찾는 이 없는 옛 우물과/ 오래전 버려진 그 곁의 수세미처럼/ 문을 닫고 힘없이 돌아서는 처용이처럼이라고 적는다/선득 종아리에 감기다 가는 개 울음소리처럼/혼자 깨어 누는 한밤중의 오줌처럼이라고 적는다./// 외롭다고 쓰지 않는다 한사코. 옛우물, 어린 당나귀곁에서

0.1
[ ] 이게뭐야 - 떠날 날 문득 닥치면/또 무섭고 서러워 눈물 흐르지/이곳 어디였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므로/쓰던 몸 놓고 어디로 가지는지 아무도 일러주지 않았으므로// 나도 두렵단다. 여기는 어딘지/나도 모른단다, 아아 아가들아/네가 누군지/나는 또 무엇인지

3.

[ ] 오월유사 - 팔공년 봄 광주에서 일 당한 사람 중에는, 쩌그 장흥 무안 구례 곡성 같은 디서 유학 와 자취하던 중고등학생 대학 초년생들이 많았는데, 어째 그런가 허먼........인제 생각허먼, 계엄입네 빨갱입네 을러대던 쪽은 말할 것도 읎고, 혁명입네 해방굽네, 물어보도 않고 아무한테나 열사다 뭐다 갖다 붙이던 짓도 다, 실은 겁도 나고 애삭해서 하던 좀 거석한 노릇 아니었을게라...삶과 죽음이 그렇게 밥 먹듯 물 마시듯 자연스레 흐르던 끝의 일이라는 것....삶이 꼭 죽음 앞에서 미안키만 하잘 일이랴....이것 이 순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뜻박에 오월의 한 속살, 육이오의 한 비통한 속살, 갑오동학의 한 인간적 속살이라는 것은 얼마나 눈물겨운 일인가. 온갖 난리 아비규환 뒤에 그저 따신 밥 한술 먹자는, 웃음기 도는 사람의 마음이 있다는 것, 이것이 왜 이렇게 나는 안심이 되는지 모르겠다 섧은지 모르겠다. 안 그런가? 당신은 안 그런가?

[ ] 한국사 - 얼빠진 집구석에 태어나/허벅지 살만 불리다가 속절없이 저무는구나.....친구들 생각하면 눈물 난다.....눈도 감지 못한 채 우리는 모두 불쏘시개.....오냐 그 누구여 너는 누구냐. 보이지 않는 어디서 무심히도 풀무질을 해대는 거냐. 똑바로 좀 보자. 네 면상을 똑바로 보면서 울어도 울고 싶다. 죽어도 그렇게 죽고 싶다.

[ ] 거대한뿌리-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남쪽식으로/도사리고 앉았다 그럴 때는 이 둘은 반드시/이북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815후에 김병욱이란 시인은 두 발을 뒤로 꼬고/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4년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다//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 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다 그려는 1893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학협회 회원이다/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의 종놈, 관리들 뿐이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려 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를 세계 다른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천하를 호령한 민비는 한번도 장안외출을 하지 못했다고...//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비숍 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대한민국관리,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 제3인도교의 물속에 박은 철근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으접을 모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4.

[ ] 그림자가 없다 - ...다들 고향에는 윗대 산소와 큰집 작은집과 논둑길과 동구 앞 개울도 있던, 봄이면 우물가에 앵두꽃도 한 철이던, 할아버지는 사랑에서 에에퉤 위엄 있게 가래침도 뱉던 집 자손들이다.....어디서 또 만나겠는가/만난들 알아보겠는가 우리는/그림자가 없으니.

[ ] 하 ......그림자가 없다 - 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우리들의 적은 커크 더글러스나 리처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그들은 민주주의자를 가장하고/자기들이 양민이라고도 하고/자기들이 선량이라고도 하고/자기들이 회사원이라고도 하고/전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요릿집엘 들어가고/술을 마시고 웃고 잡담하고/동정하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바쁘다고 서두르면서 일도 하고/원고도 쓰고 치부도 하고/시골에도 있고 해변가에도 있고/서울에도 있고 산보도 하고/영화관에도 가고/애교도 있다/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우리들의 전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우리들의 전선은 당게르크도 노르망디도 연희고지도 아니다/우리들의 전선은 지도책 속에는 없다/그것은 우리들의 집안인 경우도 있고/우리들의 직장인 경우도 있고/우리들의 동리인 경우도 있지만....보이지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의 모습은 초토작전이나/[건 힐의 혈투]모양으로 활발하지도 않고 보기좋은 것도 아니다/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싸우고 있다/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거리를 걸을 때도 환담할 때도/장사를 할 때도 토목공사를 할 때도/여행을 할 때도 울 때도 웃을 때도/풋나물을 먹을 때도/시장에 가서 비린 생선냄새를 맡을 때도/배가 부를 때도 목이 마를 때도/연애를 할 때도 졸음이 올 때도 꿈속에서도/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수업을 할 때에도 퇴근시에도/사이렌소리에 시계를 맞출 때도 구두를 닦을 때도..../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있다/민주주의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민주주의식으로 싸워야 한다/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하.....그림자가 없다/하.....그렇다...../하.......그렇지..../ 아암 그렇구 말구.....그렇지 그래....../응응......응....뭐?/아 그래.......그래 그래.

[ ] 그림자에 불타다 - 버스타고/근동지방을 구불구불 가다가/드넓은 밀밭을 검게 태운/구름 그림자를 보았다./구름 그림자에 타서!대지는/여기저기 검게 그을려 있었다//욕망-구름그림자/마음-구름그림자/몸-구름그림자에/일생을 그을려,/너-구름그림자/나-구름그림자/그-구름 그림자에/세계는 검게 그을려-//그 모든 너울을 걷어낸 뒤의/구름 자체를 나는 좋아하고/그리고/은유로서의 그림자에 불타는 바이오나-

5.

[ ] 꽃잎1 -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많이는 아니고 조금/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줄/모르고 자기가 가닿는 언덕을/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닿기/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같고/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한 잎의 꽃잎같고/혁명같고/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같고/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같고// 나중에 떨어져내린 작은 꽃잎같고//

[ ] 사랑의 변주곡 -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사그라져가는 라디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강이 흐르고 그 강 건너에 사랑하는/암흑이 있고 3월을 바라보는 마른 나무들이/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속삭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이제 가시밭, 넝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까지도 사랑이다//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어닥치느니/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는/열렬하다/간단도 사랑/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같은/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눈을 떴다 감는 기술-불란서혁명의 기술/최근 우리들이 419에서 배운 기술/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놓은 폭풍의 간악한/신념이여/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신념보다도 더 큰/내가 묻혀 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너는 개미이냐/아들아 너에게 광신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인류의 종언의 날에/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미대륙에서 석유가 고갈되는 날에/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새겨둘 말을 너는 도시의 피로에서 배울 거다/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의심할 거다!/복사씨와 살구씨가/한번은 이렇게/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그리고 그것은 아버지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명상이 아닐 거다

1.1

[ ] 통영 - 설거지를 마치고/어린 섬들을 안고 어둑하게 돌아앉습니다/어둠이 하나씩 젖을 물립니다//저녁비 호젓한 서호시장/김밥 좌판을 거두어 인 너우니댁이/도구통같이 튼실한 허리로 끙차, 일어서자//미륵산 비알 올망졸망 누워 계시던 먼촌 처가 할매 할배들께서도/억세고 정겨운 통영 말로 봄장마를 고시랑고시랑 나무라시며/흰 뼈들 다시 접어/끙, 돌아눕는 저녁입니다.//저로 말씀드리면, 이래 봬도/충청도 보은극장 앞에서 한때는 놀던 몸/허리에 걸리는 저기압대에 홀려서/앳된 보슬비 업고 걸려 민주지산 덕유산 지나 지리산 끼고 돌아 진양 산청 진주 남강 훌쩍 건너 단숨에 통영 충렬사까지 들이닥친 속없는 건달입네다만,//어진 막내처제가 있어/형부!하고 쫓아나올 것 같은 명정골 따뜻한 골목입니다./동백도 벚꽃도 이젠 지엽고/몸 안쪽 어디선가 씨릉씨릉/여치가 하나 자꾸만 우는 저녁 바다입니다//

볕뉘.

0. ‘김사인앓이‘를 시작할 것 같다고 했다. 한 벗이 김사인의 시시다방이라는 팥빵을 건네주었다. 참 행복한 주말이었다. 이어폰을 간절히 구매하고 싶을 정도로 오고가는 길 일분일초가 아까웠다.

1. 알바노조의 언더조직의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 논쟁이 뜨겁다. 다른 일들처럼 번지고 퍼진다. 일들 사이 심미적인 균형이라는 것은 있을까. 그런 것들은 왜 배우려고 가르치려고도 하지 않는 것일까 신념의 과잉. 멋도 맛도 왜 다 말라 비틀어져 버렸을까. 왜 살지? 입버릇처럼 혼잣말이 나왔다. 아무 말도 뱉지 못하고 만다. 떨어지는 꽃잎 하나, 둘...사랑 하나 둘....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지도 못하는 삶은 얼마나 억울할까? 억울한 말들이 나다녀 섧다. 끊임없는 자맥질에 눈물이 고인다.

2. *전을 다녀오다. 낮술을 했고, 그제 낮술한 이들과 자리를 옮겼고, 또 커피 한잔을 더 하고 내려왔다. 대도시는 늘 뒷걸음질인게다. 사랑을 또 하나씩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어디다 둔 줄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3. 백석-김수영-김사인.....계보를 뒤적거려본다.....떨어져 내리고 있는 작은 꽃잎같고...혁명같고...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 것 같고......

4. 지난 밤...악몽을 꾸었다 아니 춘몽을 꾸었고 생생한 고통이 몸의 구석구석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었다...그런데 그 끝은 참으로 달콤한 시선이 남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배밀이의 억장이 통과했다. 온몸을 찔렀다. 손끝에서 발끝까지. 사랑을 아주 조금 알 듯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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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시선 38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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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 시를 서로 나누다. 그러다보니 백석이 둑둑 묻어나오다, 그만 루쉰 눈물이 비치는 것이었다. 맑은 아니 맑간 죽음을 되뇌이는 건 죽음때문이 아니다. 따순 밥 한 공기 더 먹이는 일. ‘이다‘와 ‘왔다‘ 는 모르는 고요한 길을 배밀이로 가는 길이었다. 들리지 않는 빛소리를 잡으려 더듬더듬 가는 달팽이ㆍㆍ ㆍ *어린 당나귀 곁에서

볕뉘. 김정환의 책뒤표지 말이 조금 의아스러웠으나, 거의 동의한다. 김수영과 백석을 연결시키는 무엇. 그것은 우리 고유의 사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ㆍ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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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정상가족

[ ] 여성에 대한 폭력을 더 잘 이해하려면 여성이 가정과 직장, 길거리에서 겪는 폭력과 차별을 총체적으로 바로보아야 하듯, 아이들의 문제도 마찬가지였다....서로 연결되었을 때 총체로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영혼은 어떤 모습일까 6

[ ] 선진국 중 한국만큼 부모가 자녀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친권이 강한 나라가 없고, 아이들의 보호, 양육에서 소위 공공의 역할이 이토록 희박한 나라가 드물다. 7

[ ]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저자는 가족 해체보다 여전히 더 큰 문제는 가부장적 질서를 근간으로 한 완강한 가족주의라고 생각한다.9

[ 1 ] 자녀를 소유물처럼 대하고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녀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증명하려드는 부모라는 권력이다. 10

[ ] 가족 바깥에서 ‘정상‘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을 차별하는 태도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 그리하여 모든 아이들이 자율적 개인, 공감하는 시민으로 자라나기를 희망하는 것은 너무 이상적인가 12

[ 2 ] 아주 가깝고, 아주 작아서, 그곳은 어떤 세계지도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은 각각의 사람들의 세계입니다. 13

[ ] 우리는 배우자를 폭행하는 가정폭력에 대한 해법으로 공동체의 회복을 말하지 않는다. 아동폭력도 마찬가지다. 생물학적으로 어릴 뿐 온전한 인간인 ‘작은 인간‘에 대한 폭력과 인권유린을 없애는 게 우선이다. 260

[ ] 마을공동체, 공동체 이야기를 하지만, 젊은 세대의 강한 거부감은 각자 겪어본 공동체의 경험이 대체로 부정적이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사사건건 통제하고 간섭하며 구성원을 존중해주지도 않는, 수긍할 만한 원칙도 없고 권위를 가진 사람 마음대로인 폐쇄적 공동체들, 가족에서 학교, 회사에 이르기까지 겪은 부정적 경험이 공동체 일반에 대한 반감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261 트위터에서 공동체의 회복에 반발하던 사람들이 ‘공동체‘라는 단어를 ‘법치‘, ‘시스템‘, ‘개인과 사생활 존중‘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사용한 것도 그래서 일 거라고 생가한다. 262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 ] 매일 조금씩 운동을 해서 몸을 가구듯, 자기표현의 근육을 키우는 데에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11

[ ] 실제로 여자들은 말하고자 하는 내용보다 그 내용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그러다 결국은 말하는 자체를 포기해버리곤 한다. 버릇없어 보일까 봐,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면 상대가 나를 싫어할까 봐서다. 28

[ ] 몸에 대한 왜곡된 인식뿐 아니라 외로움이나 현실에 대한 불만족 역시 식이장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마음을 채울 수 없어서 입이라도 채우고 싶은 거다. 31 몸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단지 겪어낼 뿐. 내 마음과 육체는 싸워서 이겨야 할 경쟁자가 아니라 보듬어서 함께 가는 친구일 수밖에 없다. 32 마음의 문제를 찾아 보듬어줄 때, 몸은 밸런스를 찾아나간다. 33

[ 3 ]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은 자신이 그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상대가 작은 호의만 보여도 금방 사랑에 빠져버린다...또한 눈치를 보는 습관에 젖어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상대방을 고려하느라 결단을 내리지 못하기도 한다. 38

[ ] 인간관계는 시소게임과 같다. 그때의 나는 ‘괜찮아‘를 연발하느라 늘 헉헉거렸다. 나보다 상대를 배려하느라 정작 나 자신은 전혀 배려하지 못했다. 41

[ 4 ] 착하다는 평가에 집착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습관을 가지길 권한다. 46 물질적 빈곤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낄 대상의 부재, 목표의식의 부재라는 정신적 빈곤이었다...노력부족을 능력 부족으로 착각해서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자신이 결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마음이 사라져야 한다. 49

[ ] 명품가방에 목숨을 걸었던 당시 나는 외로움, 애정 결핍, 낮은 자존감을 소비라는 가장 쉬운 방법을 통해 채우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거라도 갖취 않으면 정말로 나는 작아지고 작아져 서울이라는 이 도시에서 사라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카드를 꺼내기 전에 먼저 나를 다독여 준다. ‘너 요즘 많이 힘들구나‘라고 61

[ ] 사람은 모든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것에 대답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잃어버린다. 자기자신을. 67 ˝하지만 전 이전 직장에서 반은 도망치듯 나왔어요˝ ˝그런 건 지금은 상관없어. 그렇게 하길 잘했다. 하고 생각해버리면 아무것도 아니지. ‘도망쳤다‘가 아니라 ‘그만뒀다‘, 단지 그뿐인 거야˝ 69

볕뉘.

0. 뉴스를 보다 새벽에 책을 몇장 넘긴다. 상황의 디테일이 아니라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가에 디테일과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는 취지의 말이 남는다. 유발하라리는 호모데우스에서 경험하는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가 나눠져 있다고 한다. 자아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야기하는 자아는 끊임없이 맥락을 만들고 합리화시킨다. 뉴스를 꺼버릴 수도 없고, 국가를 상대로 민주주의를 지키고 소송하겠다고 눈도 깜박거리지 않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사람은 그런 존재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1. 이기고 지는 경쟁과 전쟁의 언어로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쩌면 식물의 언어가 우리의 온몸을 한번쯤 휩쓸고 가야하는지도 모른다. 유발하라리, 먼저 간 후배가 언급한 도나 해러웨이의 겸손한 목격자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보는 연습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환부만 도려내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미치는 맥락과 출렁거리는 그 그물을 다 보려는 노력만이, 우리 속에 숨을 쉬지 못하는 ‘작은 인간‘, ‘착한 인간‘에게 선거권이 있거나 피선거권이 있음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2. 정상인으로 사유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지진이 나고, 화재가 나도 환우들에게 관심이 없다. 어떻게 되었는지, 어떻게 문제를 삼아야 하는지 조차 의식이 없다. 스러지는 이들도 말로만 사람일 뿐, 정상가족처럼 시선에 보이지 않고 느끼지 못한다. 어쩌면 그것은 말을 찾아가듯, 몸을 가꿔가듯, 조금씩 근력과 표현을 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3. 현실을 바꾸어내는 목소리들이 봄볕같다. 이른 봄볕.

이른 봄볕

이른 봄볕 속에
자글자글 붐비는 이것은,
오는 기운이기도 하고
가는 기운이기도 한 이것은,
내 몸을 전면적으로 지나
모든 움트려는 것들의 속내를
그렇지 않아도 환하게 노래하네, 새소리의 속내와...... [그림자에 불타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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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18-02-04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책이..사고 싶네요.
요사이 다시 페미니즘책을 읽는 중인지라 더 눈에 들어옵니다.
일단 보관함에 담습니다.

여울 2018-02-04 19:36   좋아요 0 | URL
아 잘 지내시죠
잘 지내시길요. 알찬 독서되면 좋겠습니다^^
 

0.

[ 1 ] 어쩌면 그는, 민중의 이해관계를 이해하고 그들의 행동을 안내하는, 깨어있는 정치인, 위정자들의 이른바 ‘계몽적‘ 지위를 버린 브라질 최초의 사상가일지 모른다. 28

[ ] 외형뿐인 사회성은 사실 개인적인 것을 압도하지도 못하고, 집단적 질서를 만드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 결과 개인주의는 새로운 각도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규칙(개인주의와 모순된다)을 따르려 하지도 않고, 대외적 목적에도 전념하지 않은 특징도 개인주의와 연결된다. 친절한 사고방식에서.. 22

[ 2 ] 지식인들은 구체적인 목적을 갖는 지식보다는 지위와 체면을 위한 지식에 만족하는 경향이 있다....자유로운 전문직이 개인의 독립성이 인정되고 겉치레 지식을 갖는 데 적합하기 때문에 과대평가된다.....정치에서 이것은 장식적 자유주의였으며, 진정한 민주주의 정신은 존재하지 않았다...농업 귀족은 민주주의를 들여와, 그들이 누리던 권리와 특권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만 수용하려고 애썼다. 22-23

[ ] 우리는 모순적이게도, (법의 비인격적 속성에 의해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이상적인 행정 조직과, (매 순간 이를 무너뜨리는) 가장 극단적인 인격주의(혈연,지연) 사이를 오갔다. 24

[ 3 ] 국가의 과거에 대해 결산하려는 병적인 혹은 나르시시즘적인 습관은 이베리아반도에서 시작되어 스페인 아메리카로 옮겨 온 지적 유행이었다....그러나 올란다, 프레이리, 주니오르의 저작들이 살아남은 이유는 위대한 역사가의 징표, 말하자면, ‘구체적인 것에 대한 긴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33

1.

[ ] 01 유럽의 경계: 그런 시도들이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 묻기 전에, 우리가 물려받은 공동생활과 제도와 이념 중 과연 어디까지가 남의 것이고, 어디부터가 우리 것인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43 ‘개성 중시 문화‘는 까마득한 아주 옛날부터 이베리아인에게 가장 결정적인 특징이었으며, 그 어느 이웃국가도 이 문화를 그들만큼 강하게 발전시키지 못했다. 인간 고유의 가치, 그리고 시공간을 공유하는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각각의 자율성을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실제로 스페인과 포르투칼 고유의 민족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한 인간의 가치를 재는 척도는 무엇보다도 타인에게 얼마나 덜 기대는지, 얼마나 자족적인지다. 인간 개개인은 자기 자신의 산문, 자기 노력의 산물, 자기 덕목의 산물인 것이다. 45 포르투칼과 브라질을 비롯한 이베리아 문화권 국가들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특이한 일화는 취약한 사회구조와 조직된 위계질서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 제도와 관습의 결합, 혹은 그것의 무력함 때문에 아나키즘적 요소들이 쉽게 출현했다....정부 법령의 우선적인 목적은 으레 순간적인 개인의 격정을 억누르고 제지하기 위함이었지, 사회집단들 간의 영속적인 제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46 혁명적 사상이라는 것이 승리하기 훨씬 전에 이곳은 특정 특권들, 특히 세습 특권의 비합리성과 사회적 부당함을 깨달은 것 같다. 이베리아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에도 개인의 명망은 출신 성분과 무관하게 계속 중요했기 때문이다...귀족이 아무리 우세한 시기에도 폐쇄적인 계급이 되지 못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같은 이름을 쓰는 현상은 포르투갈에서 이미 흔한 일이었다. 48-49 상인 부르주아들은 최종 승리에 이르기까지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됐으며, 일정 지위에 오를 때까지 경제적 원조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전적으로 새로운 행동이나 사유방식을 도입하거나 새로운 가치척도를 제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51 훌륭한 포르투칼인이나 스페인인에게는 일용할 양식을 위한 건전하지 못한 투쟁보다 존엄한 무위도식이 더 낫거나, 때로는 고상하게까지 여겨졌던 것이다...그들에게는 일보다 여가가 중요하며, 생산 활동은 관조나 사랑보다 가치가 떨어진다는 낡은 인식이 우세했다는 점에서 프로테스탄트 국가의 육체노동을 장려하고 숭배한 것과 다르다. 54 그들에게 연대는 이해관계의 영역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지의 영역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독재와 종교재판은 무정부와 무질서를 지향하는 그들의 특징을 전형적으로 보여 준다. 그들의 시각에는, 권력 집중과 순종에 의거하지 않는 다른 완벽한 규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55 모든 문화는 자신의 생활상에 적합하다고 여겨질 때에만 타자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동화하며 따라간다. 이것이 바로 경험과 전통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56

2.

[ 4 ] 02 노동과 모험: 노동자 유형은 전체보다 부분을 중요하게 여긴다.... 평균적인 영국인은 쉬지 않고 일하는 독일인의 근면함도, 프랑스인의 알뜰한 절약정신도 좋아하지 않는다....태만은 우리가 더운 지역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으로, 북유럽의 그 어떤 민족도 이런 특질을 공유하지 않는다. 61-63 그들의 천성은 강요된 규칙성이나 타인의 감시와 신체적 제약 등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활동, 덜 정주적인 활동에 적합했다. 그들은 대단히 다재다능했지만, 유럽인들에게 제2의 천성 내지 사회적, 시민적 삶을 위한 필수 덕목으로 여겨진 질서, 지속성, 정확성과 같은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67 브라질 농업에 만연했던, 쉬운 이익을 추구하는 성향과 우유부단함은 도시의 직업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사회 계층화가 일정 수준을 넘어선 곳과 반대로, 세대를 넘어 대물림되는 가업을 찾아보기란 더욱 어려웠다. 이것이 바로 브라질에서 진정한 장인 정신이 형성되는 데 심각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뿐만 아니라 확고한 소명 의식을 고취하는 일과 오랜 숙련을 요하는 직업에도 걸림돌이 되었다...개중에 가장 잘 보존되었던 전통은 각 직업군마다 휘장과 깃발을 내걸고 왕실 행렬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집단적 성격의 노동은 대부분 특정 감정과 집단적 정서가 동시에 충족될 때에만 비로소 받아들여지곤 했다.83-84 우리 사회처럼 애초부터 인격주의(혈연,지연)적인 사회에서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형성된 단순한 연줄(개인들끼리의 진정한 협력과는 거리가 멀다)이 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여러가지가 두서없고 무정형적인 협력으로 귀결되었다...정서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열정적인 특징은 활발하게 고양된 반면, 질서, 규율, 이성과 관련된 자질은 퇴화하고 말았다 85 그들은 심지어 천지창조도 신의 유기내지는 방만으로 이해했을 것이다....87 네덜란드인들과 달리, 포르투칼인들은 유색인종들과 긴밀하고 활발하게 교류했다. 그리고 그 어떤 유럽 민족들보다 토착민과 흑인의 관습,언어,종교에 대해 소통의 접점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이들은 필요에 따라 아메리카화되었다가 아프리카화되었다가 했다.....네덜란드인 침략자들이 들여온 신교는 구교와 달리 사람들의 상상력이나 감각을 자극하는 면이 전혀 없기 때문에 원주민들의 종교성을 기독교적 사상에 뿌리내릴 만한 토양이 제공되지 못했다는 점도 중요하다.....포르투칼인들이 고국과 동떨어진 곳에 제2의 조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초인간적인 노력 때문이 아니라, 혼혈 덕택이었다. 93

3.

[ ] 03 농촌의 유산: 도시 부르주아의 이상과 원칙과 전혀 다른 이 논리에 따르면 혈연, 특히 가부장적 가치가 강조하는 혈연으로 맺어진 파벌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선시되어야만 했다. 이 파벌에는 생물학적 연결 고리나 온정주의가 강조되며, 파벌의 수장 아래 직계 방계 가족들은 물론 각종 연줄로 이어진 이들이 모이게 된다. 즉, 이 파벌은 불가분의 하나로 여겨졌으며 파벌의 각 구성원들은 이해관계나 사상이 아닌 감정과 의무를 공유하며 서로가 묶여 있다고 생각했다. 112 권위가 서슬 퍼렇게 살아 있던 유일한 영역인 식민지 시대의 가족은 권력, 존중, 복종, 사람들 사이의 단결 등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개념을 제공했다. 그 결과,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가족 공동체 고유의 감성들이 만연하게 되었다. 117 그들이 사변적 사고를 사랑했다고 반드시 생각할 필요는 없다(사실, 그렇다 한들 우리는 지적 사변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 적이 없다) 그저 유려한 문장, 달변, 박학다식, 특이한 표현 등을 사랑했을 뿐이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지성‘과 일치한다. 그것은 지식과 행동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장식품이자 소양일 뿐이다. 118 독립적인 도시 부르주아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 창출된 자리들은 어쩔 수 없이 옛 농장주들로 채워졌으며, 따라서 그들의 사고와 특징, 성향도 그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도시에서 요직을 차지하는 이들은 사실 대지주였다. 126-127

4.

[ ] 04 씨뿌리는 자와 타일을 까는 자: 포르투칼인들이 아메리카에 건설한 도시는 지적 산물이 아니다. 자연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도 않아서 그 윤곽이 풍경과 적당히 어우러진다. 그 어떤 엄격함이나 방법론, 선견지명도 없었다....기술자의 손자가 귀족과 어울리고 피를 섞는 일이 반드시 막혀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모두가 귀족의 지위에 오를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굴하지 않는 끈기, 절약, 정확성, 꼼꼼함, 사회적 연대 등 제노바 사람들이 숭상하던 덕목들은 포르투갈인들의 입맛에 들어 맞을 리 없었다. 160-162 슬픔은 결코 정돈되게 묘사할 수 없다. 슬픔은 무질서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포르투칼 시는 모든 불만에 대한 해법이 될 수도 있을 착란이나 형이상학에 빠지지 않았다. 비록 환멸을 노래하지만, 이를 통해 폭풍우를 몰고 온다든지, 악마를 소환한다든지, 금을 만들어 낸다든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시는 노동하는 사람들이 아닌, 태평스럽고 자유로운 사람들이 만든 질서를 받아들였다. 167 사실, 어떤 외부의 자극도 사건들의 흐름을 심각하게 지배하거나 자연의 질서를 왜곡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68

5.

[ ] 05 친절한 인간: 브라질의 경우, 객관적인 이해관계에 의거하고, 또 헌신했던 행정 시스템과 관료 집단은 예외적으로만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다...폐쇄적인 울타리들 속에서 사적의지가 지속적으로 우위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사람을 대할 때의 소탈함, 환대, 너그러움 등 브라질을 찾는 외국인들이 칭찬해 마지않는 그런 덕목들을...‘훌륭한 매너‘ 내지는 예절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일 것이다. 사실 넘쳐흐를 만큼 극도로 풍부한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방식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 212-213 사회적인 儀式주의에 대한 반감이 의미 있는 이유는 그것이 매사에 균형 잡힌 균일한 인성을 강력하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브라질인들은 상급자에 대한 존경심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의 기질은 존경심을 어느 수준까지 용인하기는 하지만, 가족처럼 더불어 살 수 있는 가능성만큼은 완전히 억눌리지 않기를 내심 바란다. 214 언어의 영역을 예로 든다면, 우리는 강조를 위해 축조사(크기나 수량의 저금을 나타내거나 대상에 친근함을 표현할 수 있는 접미사)를 습관처럼 사용하는데, 이 때 그들의 행동 양상이 드러난다...사회적 호칭에서 성씨를 생략하는 경향 또한 동일한 현상이다...상대의 이름만 부르는 현상은, 서로 별도의 가족에 속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행위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215 그리고 이 과정세서 혈연, 지연, 영혼의 공동체에 의거하지 않는 사고는 자연스럽게 배격된다. 오직 감성의 윤리에 입각한 ‘더불어 삶‘만이 존재한다는 점은 외국인들이 쉽게 파고들지 못하는 브라질식 삶의 한 측면이다. 216 브라질인들의 가장 특징적인 기질의 하나인, 거리감에 대한 경멸이 종교의 영역으로도 옮아갔다. 이 점에서도 우리는 앞서 언급한 일본인들의 태도와는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의식주의가 사회적 행동의 영역을 침범하고 엄격함을 부여하는 반면, 브라질에서는 의식의 엄격함이 느슨해지고 인간화된다. 217 친밀하고 가족적이며, 의무와 엄격함이 없는 숭배, 이런 표현이 부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를테면 ‘민주적‘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그런 숭배가 신자에게서 일체의 노력, 신실함, 절제를 면제해 주었고, 결국 우리의 신심을 뿌리부터 뒤흔들어 놓았다....스스로 길을 잃고 형태 없이 세상에 녹아들어 가기 때문에 결국 그 세상에 자신의 질서를 강제하지 못하는 그런 종교성인 것이다. 218, 219 교회와 교회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지만, 그들에게서 그 어떤 종교적 열성의 징표도 찾아볼 수 없었다. 220 금욕적인 감리교나 청교도는 열대지방에서는 절대 꽃피우지 못할 것이다...브라질인들의 내면적인 삶은, 자신의 개성을 포용하고 지배해 하나의 사회 단위에 의식 있는 일부로 통합시킬 수 있을 만큼 특별히 응집력이 강하지도, 규율이 잡혀 있지도 않다. 바로 이 때문에, 브라질인들은 삶의 여정 중에 만나는 갖가지 생각, 행동, 형식에 자유롭게 자신을 내맡겨 종종 별 문제없이 동화되는 것이다. 221

6.

[ ] 06 새로운 시대: 스스로를 지적이라고 여기는 브라질인들은 여러 가지 상이한 이념과 신념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 이념과 신념을 미사여구를 동원해 그럴듯하게 꾸며 상상력에 호소하면 그만이었다. 그것들 사이에 모순이 발생해도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 225 여기에선 아무도 자신이 선택한 길의 자연스러운 진로를 따라가지 않는다. 모두들 높은 보수를 받는 자리나 더 높은 위치로 도약하는 데 열중한다. 그리고 꽤나 자주 성공을 거둔다.....대여섯 개의 직책을 맡고선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다. 227 자유직업에 대한 매혹의 기원은 개성이라는 가치에 대한 우리의 집요한 애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우리의 정신적 배경은 문서화된 말과 정교한 문구와 완고한 생각의 권위, 그리고 한편으로는 주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거리낌 없는 모호한 태도를 혐오하는 것 등에 의해 줄기차게 형성되었다. 이런 권위와 혐오의 조합은 협력, 노력, 개성의 의존적 태도, 나아가 포기까지 강요한다. 끈질김과 수고가 수반된 지적 노동을 배제하는 것, 명료하고 단호하고 확실한 생각들을 배제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지혜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228, 229 현실 도피의 여러 형태 가운데, 사상의 힘에 대한 주술적 믿음이야말로 정치, 사회적 청소년기를 힘겹게 지나고 있던 우리에게 가장 품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브라질식 생활 여건에 얼마나 들어맞을지, 또 어떤 변화들이 일어날지에 대한 숙고 없이, 복잡하고 정치적인 체계를 남의 땅으로부터 도입했다.... 민중들의 발전은 정신적 소인이나 특별한 감정적 소인에서 피어난 것도, 완전한 성숙에 이른, 잘 정의되고 구체화된 삶의 개념에서 피어난 것도 아니었다. 새로운 사상의 주창자들은 삶의 형식이 항상 개인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는 점, 삶의 형식을 법령으로 ‘만들‘거나 ‘뒤엎을‘ 수 없다는 점을 종종 망각하곤 했다....대중은 그저 모든 것에 무심했다. 그들은 마치 동화에 등장하는 한 당나귀처럼 ˝짐을 평생 지지 않아도 되게 될까?˝라는 질문만을 던질 뿐이었다. 234 우리 또한 문어, 수사, 문법, 형식적인 권리 등 더 고상한 것들에만 매달릴 뿐, 진정한 일상적 존재의 터전인 산문적 현실을 잊고 말 것이었다...어려운 외국 이름들로 점철된 특정 이론들이 갖는 권위와 그런 이론들을 수입하는 행위 자체는 세상 모든 것을 단순화시켜 나태한 이성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려는 세계관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복잡한 세상이 요구하는 것은 수고스럽고 세심한 정신작용이다. 따라서 말의 유혹이나, 요술 지팡이를 휘두르듯 단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거의 초자연적인 덕목은 배제된다. 239, 240 여러 만병통치약은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현실적 조건들에 대한 극도의 환멸을 은폐한다. 여러 담론은 저마다 어조와 내용은 다르지만, 언제나 동일한 의미와 동일한 비밀스러운 기원을 지닌다. 브라질적이고 그로테스크하고 염세적인 보바리즘을 확산시켰다는 이유로 브라질 제정을 비난하는 많은 이들은 그 문제가 세월이 흘러도 완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나아진 것은 기껏해야 우리가 덜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일 것이다. 242

7.

[ ] 07 우리의 혁명: 진정한 정당의 부재는, 일부 사람의 단순한 추정과는 달리, 우리가 민주주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원인‘이라기보다 이 부적응에서 비롯된 ‘증상‘이다. 이런 식의 혼돈은 쉽게, 그리고 빈번하게 일어난다....우리의 정치 생활에서 인격주의가, 많은 경우 긍정적인 힘일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인격주의에 비하면 자유민주주주의 구호들은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 순전히 장식적이거나 선언적인 개념처럼 보일 때도 있을 정도다. 265 이탈리아나 독일 모델이 가진 색채는 상당히 탈색되었다. 그들이 풍기던 거만한 에너지는 여기 브라질에 와서는 신경쇠약에 걸린 지식층의 가련한 푸념으로 변모했다. 결국 브라질에서 파시즘은 공산주의가 밟은 것과 유사한 전철을 밟았다. 우리 가운데 공산주의에 매력을 느낄 만한 이들은 사실 제3인터내셔널의 원칙을 수행하는 데 가장 부적합했다...모스크바가 추종자들에게 요구하는 엄격한 규율보다는 브라질 공산주의의 ‘무정부주의적 사고‘와 혼합된다. 270,271 이 세계를 무시하고픈 바람은 우리 스스로가 가진 자연적인 리듬, 그리고 밀물과 썰물의 법칙을 기계적 리듬과 거짓된 화음을 위해 포기하는 것을 의마한다. 이미 우리는 영적 피조물이 국가가 자연의 질서와 대립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질서를 초월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사회적 틀이 내적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으려면 대조를 통해 대립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사회의 상위 형태는 그 사회 고유의 모습을 잃지 않는 것은 물론, 사회 그 자체로부터 분리될 수 없어야 한다. 272


볕뉘

0. 우연히 책방 매대에서 손길이 갔다. 직감으로 봐야할 책이 되었다.

1. 해설자는 저자가 이분법의 어느 한 편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양극단을 넘나든다고 했다. 변증의 탁월함이 이 책이 묘미이며 사회학이 아니라 역사서이며 또 다른 두권의 책과 함께 권하고 있다. 유럽의 변방, 이베리아반도의 독특함, 그 가운데 포르투칼의 분위기가 적절하게 스며든 것이라고 말한다.

2. 읽으면서 첫 몇 대목이 새겨진다.( 0.1, 0.2, 0.3, 0.4) 계몽적 지위를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지식인들은 행동과 태도가 아니라 장식과 무늬로 지식에 집중한다는 이야기, 우리가 물려받은 공동생활과 제도와 이념 가운데 어디까지가 남의 것이고, 어디까지가 우리의 것인지 말이다. 사실 잘 모르겠다. 계몽하려고 쓰이는 글들이 남발하는데, 그들은 애써 자성하고 있는 것인지도....그 삶들이 얼마나 단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그저 여기서 말하는 인격주의....아는 사람들의 연줄에 올인하는 삶들....합리성은 있는 것인지조차 애매하다. 대단하다고 하고 남다르다고 하는 선민의식이 구차하다고 되새기지 않는다. 한번도 돌이켜볼 수 없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소심한 관찰들의 결과는 그러하다.

3. 책을 읽다가 스페인의 고야가 떠올랐다. 프랑스혁명의 변방으로 물결치는 그곳은 서양사의 줄기와 다르다는 인상을 깊게 받았다. 아나키즘이 각별한 이유가 무엇인지도 궁금했는데 변방의 역사에 대한 무관심이 발원이 아닌가 싶다. 집시의 삶과 조건...그 배경들이 좀더 궁금해진다.싶다.

4. 우리는 우리를 그래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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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림을 그려도 황망하여 망자의 벗에게 전화를 걸고 만다. 상가집이 너무나 비통하여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그래 그렇지. 가지 말라 했다. 술로 달랠까 하다가 걷다. 걸었다. 별 생각없이 걷는다. 지난 반찬에 대충 밥을 해먹고 걷는다. 걷다가 소주 생각이 난다. 별일 아니라고 다그친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보니 마트 앞이다. 작은 뚱뎅이 맥주를 하나 샀다. 맛이 없다. 취기도 없다. 참을 청하니 새벽이다. 아침 속이 불편하다. 몇주 챙기다 보니 제법 몸에 익은 운동을 해주며 잠을 깨웠다.

고추와 토마토 지지대를 올린다. 지지대에 묶는다. 사온 바질 흙을 화분에 넣고 씨앗을 뿌리고 얇게 보양토로 덮은 뒤 물을 준다. 퍼플 튜립이 곱다. 시집들 사이 내 마음이 어디쯤 쳐박혀 있는 줄 모르겠다. 조금씩 별처럼 걸린 시들이었으면 좋겠지만, 조금씩 꽃처럼 마음을 건져올리는 시편들이었으면 한다. 하지만 마음은 빨래줄에 널려있는 듯싶다.

홍차를 마시고, 커피를 마시고, 또 무언가를 맛보고 먹지 않던 과자를 먹는다. 고이 들 가시게. 편히 쉬시게. 꽃을 바치네. 여기서 서성이지 말길. 명복을 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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