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양은 각별한 동생이다. 외삼촌의 딸이라서가 아니라 사연과 추억이 많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 페이퍼에 간간히 등장했고 그때마다 영악하고 깜찍한 미달이스러움을 보여주었다. 동글납작한 얼굴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매사 어리버리한 언니를 들었다 놨다 하는 사랑스러운 동생이었다. 언니, 왜 이렇게 생각이 없어, 는 나를 향한 그녀의 단골 멘트였다.  

  그런 그녀가 몰라보게 자라서 나타났다. 초등학교 졸업식에 갔던 때가 엊그제 같고 중학생이 되고난 후에도 몇 번 놀러와서 같이 손잡고 다녔는데 얼마 못보던 사이, 다 큰 숙녀가 되어 찾아왔다. S가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훤칠해진 실루엣에 영달이를 재우다 말고 깜짝 놀랐다.  

"언니, 나 많이 컸지?" "응, 길에서 보면 정말 몰라보겠어. 이뻐지고 키도 크고!" "웅, 내가 좀 예뻐졌어. 근데 언니는 왜 이렇게 살이 많이 쪘어. 허벅지 좀 봐. 하체비만은 정말 최악인데." 으음... 말하는 거 보니 S양이 맞긴 맞구나.   

  S양은 삐까뻔적한 캐논 DSLR 카메라를 들고 와서는 자고 있는 영달이, 하품하는 영달이, 쫑긋거리는 영달이 등을 부지런히 찍었다. 백화점 행사에 남녀생활백서의 정가은이 왔었는데 마른 거인, 멍청한 여신 같았다, 하지만 실물은 정말 쩐다면서 직접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선생 언니답게 공부하기는 힘들지 않니,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니 하고 싶은 건 잘 모르겠지만 대학은 무조건 서울로 갈 거란다. 너는 그림도 잘 그리고 손재주가 있으니 디자인 같은 걸 배워도 좋겠다고 말하니 아, 그런 건 싫어, 라고 잘라 말한다. 기저귀를 갈 때 영달이가 짜증을 내려고 하자, 아기들도 기저귀 갈 때 수치심을 느낀대, 라고 말한다. 난생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래? 그렇구나, 그래서 우나, 근데 넌 그런 거 어디서 들었어? 내가 아기를 이뻐하다 보니 육아에 대해서도 좀 알지. 오옹...  

  그녀는 내게 휴직을 했냐고 물으며 자기가 중학생이라 잘 안다면서 요즘 아이들 다루기 힘들지 않냐고 도리어 나를 염려했다. 역시 우리의 구도는 바뀌지 않았다. 엄마가 늘상 네가 S만 같으면 뭐가 걱정이냐고 말씀하시듯, 그녀는 모자란 언니가 멋도 모르고 결혼을 해서는 아기까지 낳고 머잖아 직장에도 다시 나가야 하니 딱하기 이루말할 데가 없었는가 보다. 설마 남자친구는 있느냐고 했더니 없다길래 너는 그래도 눈이 높아서 다행이라고 했더니 아냐아냐, 나도 언니만큼이나 눈이 낮은 것 같아, 라고 말한다. 웁쓰...  

  이런 걸 보면 영락없는 S양이 맞는데 훌쩍 성숙해진 겉모습 이면에 사춘기의 웅크린 그늘이랄까, 아마도 내 시야를 넘어서는 마음 자리 어딘가에 담고 있을 고민이랄까, 과거에 느끼지 못했던, 느꼈더라도 그때라면 바로 질러가서 말했을 법한, 하지만 지금은 어쩐지 그러면 안될 것 같은, 무거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내 손 안에 쏙 들어오던 손은 큼직한 카메라를 능숙하게 다룰 만큼 커졌고 쑥쑥 자란 키만큼 발도 길어졌는데, 나를 향해 오감을 다 열고 안겨오던 S양은 저만치 작아진 모습으로 멀어진 것 같았다. 방학 때면 조금이라도 더 놀다 가기 위해 갖가지 핑계를 생각해내곤 하더니 이제는 가자, 라는 말에 아무 망설임이 없다.  

  그녀가 돌아간 후, 내가 남편과 아이가 생겨서 거리감을 느끼나, 라고 생각하다가 그런 면도 없지 않겠지만 아, 그럴만한 나이가 되었구나, 한다. 언니는 나랑 안 놀아주잖아, 라면서 서운함을 토로하던 S양이 이제 혼자 있는 게 참 좋다고 말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아마 혼자 있는 게 좋고 나이 먹은 언니보다는 또래 친구들이 더 좋겠지. 그 자체로 참 다행이고 성장은 감격스러웠지만 마음 한켠 괜히 짠했다.  

  그녀의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영달이를 키우면서 네 생각을 많이 한다고, 너처럼 똑똑하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너는 영달이보다 더 예쁘고 착했다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가 S의 언니라기보다는 영달이 엄마인 것이 자꾸만 더 분명해지는 느낌이 들어 공연히 미안했다. 아마도 S양은 안 그래도 되는데 역시 언니는 별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S양은 올해 개명을 해서 M양이 되었지만 내게 그녀는 포에버 S양이다. 그녀 왈, 예쁜데 촌스러운 이름이지만 S는 우리의 지난 시간, 예쁘고 촌스러운 추억의 주인공이다. 나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언제든 필요할 때 달려갈 수 있는 언니이고 싶다. 일시적 감상이 아니고 그렇게 할 것이다. S는 아마 됐거든, 제발 언니나 좀 잘 살아, 라고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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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8-08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양이라는 제목 보자마자, 아, 그러게, S양도 많이 컸겠구나, 했는데,
정말 이제 아가씨가 다 되었나보네요. 느낌이 새로워요. 아이들은 자라고, 나는 늘 제자리인 것 같고. (늙지나 않으면 다행인가 ㅋ) 영달이도 많이 컸지요?

깐따삐야 2010-08-09 11:51   좋아요 0 | URL
요즘 아이들은 발육이 좋아서 그런지 벌써 숙녀티가 나더라구요. 얼굴은 아기때 그대로인데 몸만 훌쩍 커지니 거리감 느껴지고. 영달이도 머잖아 그럴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 묘하고. 영달이는 이젠 뒤집기도 하고 많이 컸어요.^^

BRINY 2010-08-09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읽기 시작할때는, 으음, S양은 대학생? ...아니, 고등학생??... 헉, 중학생!!

깐따삐야 2010-08-09 11:52   좋아요 0 | URL
고민을 들어주기보다 제 고민을 털어놓는 동생이었죠.ㅠ 원래부터 좀 미달이스러웠어요. 언니 알기를 개코로 알고 말이죠.
 

  

 

  

  책을 처분한 돈으로 또 책을 샀다. 이번에 느낀 것이 많기에 곰곰이 숙고를 거친 끝에 창비세계문학세트로 결정했다. 간지 좔좔 흐르는 전집세트가 배달되던 순간, 늙은 조강지처 내다버리고 세련된 새마누라를 얻는 것 같은 죄책감과 설레임이 동시다발적으로 엄습했다. 괜히 영달이를 붙잡고는 영달아, 나중에 너도 읽으라고 산거야. 아직 책보다는 딸랑이, 딸랑이보다는 사람인 영달이는 다 집어치우고 제대로 안아주기나 하라는 듯 코웃음만 쳤다.  

  서평단 활동을 할 때 독일편을 받아보고 괜찮은 전집이 나왔구나 싶어 솔깃했다. 장정은 깔끔했고 해설과 함께 실린 단편들도 신선하고 재밌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올라온 리뷰들도 거의 호평이라서 별다른 망설임 없이 질러버렸다. 전집은 사면 낭패, 라는 생각이 없지 않았는데 책을 처분하는 시점마다 그래도 끝까지 함께 가는 동무들이 또 전집이다.  

  어릴 때 오빠가 누군가로부터 물려받은 동화 전집이 있었다. 헨젤과 그레텔 쯤으로 보이는 남녀 아이 두 명이 당나귀인지 노새인지를 타고 있는 그림이 모든 책에 똑같은 표지로 들어가 있었다. 오빠가 <로빈슨 크루소>와 <암굴왕> 이야기를 하던 것이 기억나는데 이미 그때부터 오빠와 나는 취향의 노선을 달리했던 모양이다. 한글을 깨친 후, 그 책들이 내 차지가 되면서 <안데르센 동화집>, <그림 동화집>, <소공녀> 등을 읽으며 착한 어린이가 될 것을 세뇌당했다.   

  하지만 그 어린이는 그다지 풍성한 독서환경에서 자라나지 못한 덕에 <새농민>에 실린 연재소설은 물론, 거의 닥치는 대로 읽어대고야 만다. 더욱이 사춘기를 맞기도 전에 고모가 아마도 전시용으로 구입했음이 분명한 한국문학전집이 집으로 배달되고 그 묵직한 책들을 또 닥치는 대로 읽는다. 착했던 어린이가 착할 어른으로 클 수 없었던 배경이 어쩌면 거기에 있다. 독서욕과 지식욕이 왕성한 시기에 적절치 못한 전집에 노출된 폐해다.  

  그 이후, 스물한 살 생일에 엄마가 한국문학전집을 선물해 주셨다. 한국문학이 좋으냐, 세계문학이 좋으냐, 고르라길래 세계문학은 번역이 시시할 수도 있고, 하면서 시덥잖게 잘난척을 해가며 한국문학을 선택했다. 고모가 이사가면서 떠안겼던 전집이 현진건, 김유정 등등의 근대문학이라면 엄마가 사주신 100권의 전집은 김소진과 윤대녕도 끼어 있는, 근현대문학을 통틀어 엮은 대전집이었다. 책장에 착착 꽂아두었을 때만 해도 여름방학 내내 다 읽어치울 기세였지만 십년이 다 된 지금까지 반이나 읽었나 모르겠다. 똥인지 된장인지 가늠 불가한, 이런저런 편력으로 방황하던 시기에 너무 황송하고 과분한 전집이었다.    

  그런 면에서 창비세계문학세트는 부담없는 시도, 밉지 않게 얍삽한 전집이다. <청소년 토지>도 12권인데 고작 9권, <세계의 문학> 같은 문예잡지도 경장편을 싣고 있는데 오직 단편들로만 구성, 더욱이 독자를 배려해서 친절한 해설까지 덧붙였고 옮긴이와 엮은이가 동일하다는 점에서도 신뢰를 얻는다. 폭넓은 독자층을 겨냥, 야심찬 기획 하에 정성껏 엮었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세계문학전집에는 한국문학이 끼면 안 되는 걸까. 근현대 한국 단편들을 엄선해서 보기 좋게 10권으로 내놨으면 어땠을까 싶다.          

  손 타고 코에 바람 들어간 영달이, 친정엄마는 책이나 장난감 보다는 체력 좋은 사람이나 하나 사오라고 하시는데 철없는 영달이 엄마는 육중한 책들을 눈앞에 흔들어대며 나중에 우리 영달이도 이 책들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고 오버에 오버를 넘어서고 있다. 그렇듯 물려주어도 괜찮을 만한 전집인데 전집을 한번도 끝까지 읽어낸 적이 없는 과거전력을 볼 때 조금 불안불안. 엄마는 다 읽었어? 라고 물으면 당연하지, 라고 거만하게 응대하려면 읽기는 읽어야 할텐데. 요즘은 이 맑은 눈이 지켜본다는 생각에, 실제로 빤히 지켜보며 간혹 의미심장한 코웃음까지 날리니, 매사 긴장이 된다. 책 권하는 엄마보다 책 읽는 엄마가 되려면 이 새로운 질감의 창비세계문학세트부터 다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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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부터 책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때부터 책은 책이 아니라 물체로 보이기 시작했다. 월초에 이사하던 날, 이삿짐센터 청년이 미리 표시해온 순서에 따라 내 책들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차분하고 꼼꼼하게 정리해 주고 갔는데도 오후 내내 재정리를 시작했다. 나라별로 배열해도 남는 책이 생기고 작가별로 분류해도 칸이 모자라고 이리 빼서 저리 꽂고를 반복하다가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싶었다. 가족들은 하나같이 그 일이 그렇게 중요하냐는 눈빛을 보냈고 예전 같으면 결코 굴하지 않았을 내 의지는 슬슬 시들해졌다. 그리고는 하루빨리 처분하자, 고 마음먹었다.   

  우선 읽어도 읽은 것 같지 않은 책, 묵은 잡지류, 더 이상 내 취향도 아니고 남에게 권하기도 뭣한 취향의 책들을 버렸다. 문구점에 가서 빨간 두루마리 끈을 사와 한나절 동안 묶고 또 묶었다. 시원섭섭함 중에 시원함이 더한 바람에 하마터면 몽땅 다 버릴 뻔했다. 아예 싹 다 버리고 새롭게 시작해? 무얼? 그 중 어떤 책은 표지도 한번 쓰다듬고, 좌르르 페이지를 펼쳐보기도 하고, 그 사이에서 조그만 메모나 코팅된 책갈피를 발견하기도 했는데, 아쉬워하던 그 순간은 어디 가고 지금은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과거 언젠가 뭔가에 동해서 사들인 책이었을텐데 책은 그대로인데 내가 변한 모양이다. 엄마와 내가 여러 차례 오르락내리락하며 책을 내어놓자 관리실 아저씨가 누가 공부 끝났나 보죠? 하셨다.  

  숱하게 버리고 나니 친정집과 내집의 책장이 대략 시원하니 휑해졌지만 여전히 한번 읽히고는 그대로 주저앉아있는 책들이 눈에 거슬렸다. 차곡차곡 쌓아놓고 품질과 상태를 확인한 후, 사정없이 클릭클릭하여 알라딘에 주어버렸다. 마치 화가 난 사람처럼 완전 새 책을 무조건 천원에 팔아버리고 나서는 후회하기도 하고, 그간의 구매리스트를 훑어보며 잠깐 망연자실하기도 했다. 거의 다 보내고 아직 한 박스가 남았는데 그 안에는 진중권도 있고 김연수도 있고 김형경도 있다. 관심 있었지만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그들이 쓴 <미학 오디세이>나 <청춘의 문장들>, <세월>은 여전히 갖고 있다. 자신이 잘 아는 것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공들여 쓴 글은 버릴 수도, 줄 수도 없다. 

  책을 다 빼내고 남은 책들을 정리하며 나중에 깨달은 것인데 책을 처분하는 마음 한켠에 미래의 독자가 영달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해 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고 권선징악, 인과응보스러운 책만 남겨둔 것은 아니다. 나는 영달이가 <마담 보바리>와 <주홍글씨>를 읽고나서 이 여자 나빠, 라고 말하는 난감한 상상도 해본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싫은 것은, 자칫 쓰잘데기 없는 환상 또는 망상만 심어주거나(내가 한때 상당히 심취했던) 제대로 한번 살아보기도 전에 사람의 머리 위에 먹구름부터 드리우는 비관적인 책들(내가 한때 상당히 탐독했던)을 주로 버렸다. 알라딘에 가서 적절한 독자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책들은 주로 문학류다. 읽을 땐 즐겁게 읽었지만 다시 손이 가지 않는 책은 일찌감치 다른 사람에게로 가서 한번이라도 더 읽히는 편이 낫지 싶다.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고 사라진 책들의 자리가 쓸쓸하고, 처분하고 싶었는데 버리기는 아깝고 매입도 불가능하여 멍하니 꽂혀있는 몇 권의 남은 책들을 보니 조금 안쓰럽다. 나 자신의 두서없는 과거를 보는듯 해서 부끄럽기도 하다. 아직도 책장을 꿋꿋히 차지하고는 언젠가 한번쯤 더 읽히겠지, 자신감 넘쳐하는 책들의 표정은 부담스럽다. 2년 후 즈음, 내 마음자리가 한번 더 변하여 대거 쫓겨날 운명일지 모르는 일. 그것은 누구에게도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닐테니(고물장수 아저씨나 알라딘은 제외하더라도) 남은 책들을 다시 사랑해주고, 내게 새로 오는 책들을 신중히 골라 착실히 정독해주는 일, 숨쉬는 네모난 인생들을 한낱 짐꾸러미 물체로 전락시키지 않는 일, 그렇듯 책의 진짜 주인이 되는 일에 힘써야겠단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짐짓 미워하는 척도 해봤지만 지금 이 순간, 떠나간 책들이 살짝 보고싶고, 조금 미안하고, 매우 감사한다. 그럭저럭 온전한 삶을 꾸려가는 오늘의 나는 어느만치 그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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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10-07-30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사하면서 몇 번 책을 정리했고, 이번에 또 대대적으로 책을 정리할 예정인데, 남일 같지 않네요. 책이란 게 참 그래요. 살 때도, 정리할 때도 참 마음이 쓰여요.

깐따삐야 2010-07-30 17:03   좋아요 0 | URL
그쵸? 참 마음이 쓰여요.
졸업할 때, 이사할 때, 그저 마음이 동해서, 여러가지 동기로 책들을 처분해왔고 그때마다 책 구입에 신중을 기해야겠다고 마음먹곤 하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 그런데 이번엔 정말 크게 버렸고 앞으로 잘할 생각입니다.^^

BRINY 2010-07-30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연말에 이사하고 1월 내내 걸려서 책정리하여 수백권 팔아치우거나 버렸는데, 남은건 허리 통증과 책 팔고 받은 돈 20여만원 뿐이네요.

깐따삐야 2010-07-30 17:05   좋아요 0 | URL
저도 책 묶어 내놓던 날, 온몸이 욱씬거려서 영달이를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했답니다. 한때 곰살맞던 책들이 묵찌근한 군살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어요. 책을 잘 사든, 잘 못 사든, 남는 게 있다고 위안하곤 했는데 어쩐지 죄책감도 들고. 이젠 좀 신중해야 할까봐요.
 

  복날이라고 엄마가 닭을 삶았는데 나는 보신탕이 먹고 싶었다. 작년까지는 시장에서 고기를 사와 엄마가 직접 손질해서 끓여주셨지만, 올해는 영달이도 있고 왠지 께름칙했다. 남편한테 말했더니 괜찮게 하는 집이 있다며 데리고 갔다. '하얀집'이라는 간판을 건 가정집 겸 식당이었는데 초복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손님이 바글바글했다. 탕을 먹을까 하다가 좀더 푸짐하게 먹고 싶어 보신전골을 시켰다. 먼저 고기를 부추와 곁들여 남김없이 먹은 다음, 나중에는 밥까지 볶아먹었다. 남편 말대로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집에서 먹는 것만큼 깔끔하거나 넉넉하지는 않았다.     

  연애 시절, 데이트를 할 때도 우리는 삼계탕, 보신탕 등 탕을 참 많이 먹었다. 한여름, 한낮에 만나면 보충수업으로 지쳐 있는 그와 여름만 되면 이따금씩 어지럼증이 도지던 나는 탕을 먹자는 데에 의기투합했다. 교육청 근처의 허름한 식당, 콩국물을 넣고 끓여낸 삼계탕이 고소하니 맛있었고, 여고 골목의 뚝배기 위에 접시 올린 보신탕집도 괜찮았다. 터미널 맞은 편의 추어탕집은 우거지와 깍두기가 맛있었다. 그렇게 뜨끈한 탕을 먹고 나서 아이스크림이나 아이스커피 한잔이면 눈이 반짝, 팔다리가 번쩍, 옹골찬 기운이 다시금 샘솟는 느낌이었다.   

  비실대던 여름, 한의원에 갔더니 내게 권해주는 음식들이 또 탕이었다. 대개 혐오식품으로 인식되는 것들이라서 왜 난 하필이면 이런게 먹고 싶지, 했는데 몸에서 먼저 알고 내가 먹어주기를 기다렸다니, 다소 비약인지는 몰라도 참 신기했다. 한의사는 많은 근력을 요하는 운동은 삼가하고 꾸준히 그 음식들을 챙겨 먹으라 했다. 탕이라는 것이 영양만큼이나 열량도 높아 그것만 꾸준히 먹다가는 건강 챙기려다 건강 해치는 꼴이 되겠지만, 요즘도 기력이 달리면 인삼 넣고 푹 고아낸 닭, 훈제 오리, 얼큰한 보신탕부터 생각난다. 그런 것들을 원없이 먹고 나면 영달이도 거뜬히 안아줄 수 있고 잠을 조금 덜 자도 갤갤대지 않는다. 당분간 특별히 먹고 싶은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삼계탕도 아니고 보신탕에 대한 호의를 공공의 장소에서 드러낸다는 것은 아직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보다. 작년 어느 날, 막 여름이 시작될 무렵, 부장 선생님이 나에게 조만간 남자들끼리 철엽을 할 계획인데 먹을 줄 알면 끼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좋아하고 잘 먹는다고, 끼워달라고 그랬더니 옆의 연세 지긋한 선생님이 눈을 내리깐 채 말하기를, "여자가 무슨... 혹시 먹을 줄 알아도 그걸 입밖에 내는 게 아니지." 순간 여자, 라는 말이 귀에 탁, 걸려 "먹는 음식 앞에서 여자, 남자가 어딨나요. 너무 옛날 생각 아녀요?" 라고 대꾸했다. 부장 선생님도 오늘 아침 인성지도 주제가 양성평등이었다면서 우스갯소리 섞어 핀잔을 주자, 선생님은 입은 미소를 짓고 있으나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내가 미혼이었다면 "더군다나 처녀가..."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말을 아끼는 동시에, 남녀가 유별하고 신구 역할이 확연히 구분된 학교 분위기에 적응하기로 했다. 짜증스럽고 권태로웠지만 어쩌랴. 사람은, 더욱이 나이 든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여하간 올해 여름도 내 몸은 내 마음보다 먼저 원하고 있다. 이 지치는 여름을 무사히 나려면 먹어야 산다. 어제 보신을 했으니 오늘 저녁엔 차가운 냉면을 먹을까. 이럴 땐 아직 분유밖에 못 먹는 영달이가 안쓰럽다. 좀더 크면 세상의 모든 맛과 멋을 가득가득 보여주고 싶다. 정의 앞에 평등하듯 음식 앞에 평등하다는 것도. 몹쓸 비유에 갸웃거리겠지만 엄마의 심정이 그렇듯 절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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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9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1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pjy 2010-07-19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상당히 그런!음식 좋아하는데요^^ 자기네도 먹으면서 이상하다는듯 쳐다보는 경우도 종종있어요--;

깐따삐야 2010-07-21 09:21   좋아요 0 | URL
흠, 그렇군요. 사람이 먹을 거 앞에선 정직해진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가 봐요.

무스탕 2010-07-19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변 신경쓰지 말고 맛있는거, 몸에 좋다는건 챙겨드세요.
전 제가 멍멍은 안먹자 주의여서 안먹는거지 신랑이랑 애들까지도 먹이는걸요. 것도 기회가 닿으면 집에서 끓여서까지요 :)

깐따삐야 2010-07-21 09:27   좋아요 0 | URL
네, 아무렴요. 신경 쓰다간 먹은 영양이 다 소모됩니다.ㅠ
무스탕님처럼 본인은 안 먹지만 나머지 가족들에게 해먹이는 경우를 봤어요. 근데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요. 냄새부터 싫어하는 사람도 많이 있더라구요.

조선인 2010-07-20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이 찾는 음식을 먹는 게 건강에 최고입니다. ^^

깐따삐야 2010-07-21 09:27   좋아요 0 | URL
그쵸? 영달이 가졌을 땐 열무김치가 그렇게 당기더니 말이죠.^^

비로그인 2010-07-20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보신탕을 즐겨 드시는군요!
이 느낌표는 반가움도 뜨악스러움도 아닌, 음식에 대한 저의 좁은 폭을 나타내는 것일 뿐이어요. 저는 몹시 가리는 음식이 많은데다, 가끔은 양념도 가리고 물맛도 가리는 아주 까칠한 입맛이기에 가끔은 제가 즐기지 않는 음식이 신기해 보이기까지 했어요. 음식에 대한 사람의 기호가 문화에 대한 기호라면, 전 어디에도 머무를 수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너무 많아서 나열하지 못할 정도니까요)

생각나면 먹어야지요. 사람은 먹어야 하고, 기왕 먹을 거라면 즐겁게, 맛있게 먹어야 하니까요. 그것이 육식동물이자 사람의 운명이에요.

깐따삐야 2010-07-21 09:32   좋아요 0 | URL
Jude님처럼 호리호리하신 분들은 달리 날씬하신 것이 아니라 대개 가리는 음식이 많더라구요. 물만 먹어도 살찐다는 것은 말도 안되고 확실히 이것저것 잘먹는 사람이 살도 찌는 것 같아요. 저는 가리는 음식은 거의 없는데 맛없는 것은 안 먹습니다.^^

고기를 즐기는 편은 아닌데 요즘은 기력이 쇠해서인지 단백질 음식이 당기네요. 이럴 땐 콩이나 계란으로도 대체가 불가능해요. 원래 몸무게까지 겁나먼 나날이 기다리고 있는듯.ㅠ

노이에자이트 2010-07-20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든 남자들끼리 놀러가는 데에는 여자는 안 가는 게 좋습니다.그 중엔 여자에게 지저분한 농담하며 느끼하게 구는 남자가 꼭 몇명씩 있거든요.더군다나 야외에 놀러가서 술한잔 들어가면 매너 꽝인 남자...

깐따삐야 2010-07-21 09:35   좋아요 0 | URL
그런 것 같아요. '야외에 놀러가서 술 한잔 들어가면' 보신탕 속의 바로 그 내용물로 화하는 사람들이 꼭 있죠.ㅠ
 

 # 책이 구해졌다. 기대 반, 체념 반이었는데. 온라인의 놀라운 힘이란. 소설은 수기와 소설 중간 쯤 된달까. 어떤 선배들은 작가와 주인공을 똑같이 놓고 보는 게 가장 저급한 독서라고 했는데 이런 책을 만나면 그럴 수밖에 없다. 많은 부분 허구가 가미되었을지라도 체험이 아니고는 절대 이렇게 못 쓴다, 싶은 구절들이 대부분이었다. 불우한 여자의 성장기(한편, 그 후의 이야기가 반드시 나올 것만 같은)이자 예술가 소설일 수도 있는데, 문학적 완성도를 넘어서 바닥까지 가본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진정성이 있었다. 이러한 진정성과 마주하면 글을 쓸때 개요를 짜라, 은유는 직유보다 더 고급한 비유법이다, 등등의 도식적인 말들은 영 무색해지고 만다. 더욱이, 대개 작가들의 성장소설에는 자기동정이나 자기합리화가 은연 중에 엿보이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그야말로 얄짤없었다. 그 산뜻한 매서움이 좋았다.      

# 백만년만에 H 언니와 연락. 요즘 영국 여행 중이라고. 언니는 나와 달리 대학원 생활이 재미없단다. 무슨 수업을 들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듣자하니 지도교수님마저 지루한 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당시, 나는 복학생, 언니는 늦깍이 편입생이었다. 둘 다 학구열에 불타던 시절이었는데 늘상 충혈된 눈으로 만나 이것저것 숱한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 발령을 받고 몇 년 전, 모교 근처의 술집에서 오후 네시 쯤, 아무 손님도 없는 곳에서 둘이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6,70년대 영화 포스터를 천장과 벽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집이었는데 술집 이름도 자유부인인가 뭐인가 했다. 둥글둥글 잘생긴 젊은 사장님이 있었고 고기가 끝내주게 맛있었던 기억. 내가 어려서 실수한 것도 많았을텐데, 어떤 장면은 두고두고 되새김질이 되어서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는데, 다행히도 언니는 나를 똘똘하고 거짓없는, 이라고 황송하고 쌈빡하게 떠올려주었다. 두터운 원서를 무슨 잡지책 보듯 편안히 읽던 모습, 두눈을 반짝이며 파안대소를 하던 순간, 어깨에 빼뚜름히 매고 다니던 검정 가죽가방 등, H 언니는 몇몇 삽화와 더불어 인상적인 사람으로 남아있다.  

# 엄마로서, 딸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그리고 내 일터에서, 결국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다는 자각이 자학으로 이어질 무렵, 너야말로 천사병 걸린 푼수 아니냐고 엄마로부터 꾸지람을 들었다. 당신 딸이 방바닥을 누비면서도 코큰 소리를 했으면 하는 게 모든 친정엄마 마음이겠지만 출산 후에 엄마의 수고가 너무 많아 그 점이 가장 아프다. 내가 커감에 따라 엄마 고생도 좀 덜어지겠지, 생각했는데 어째 점점 더 들러붙는 형국이다. 나의 전반적 심경에 대해 남편은 교사들은 순진해서 죄책감을 느끼는지 몰라도 당신 또래 여자들은 대부분 다들 그래, 라는 위로도 책망도 아닌 담담한 시선을 보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지,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인지, 아무렇지 않아야 한다고 내내 다짐하는 것인지, 원래 남이었지만 참 남 같다. 그새 바깥 바람 맛을 들인 영달이는 아파트 단지 둘레둘레를 해찰하러 다니느라 바쁘고, 매일 밤, 어깻죽지가 뻐근한 나는 빨래 안 마르는 장마, 이 눅눅하고 끈적거리는 여름이 언제끔 끝날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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