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새 결혼한 지 2년이 됐다. 아직 3년이 된 것도 아니고 30년이 된 것도 아닌데 남편은 참으로 심상하게 뭐 받고 싶은 거 없냐고 물었다. 나 또한 아무렇지도 않게, 실제로도 너무 감흥이 없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우리 영달이한테나 잘하라고 했다. 기념을 할 일이어야 기념을 하지.   

  영달이에게 진한 가을향기를 느끼게 해줄까 싶어 근처 수목원에 갔고 작년 봄, 둘만 왔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2인 자전거를 빌렸다가 박자가 안 맞아 허벅지 근육이 놀라고 말았는데 그는 나의 운동 부족을, 나는 그의 리더십 부족을 지적질하다가는 결국 낡고 무거운 자전거 탓을 하며 멋진 연출 포기. 각자 자전거를 빌려 타고 봄기운을 만끽했다. 마주앉아 김밥을 먹는데 아기 입에 마실 것을 대주는 건너편의 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그때 일년 후의 풍경을 상상했고 그대로 되었다.  

  엄마는 결혼기념일인데 둘이 저녁이라도 먹지 그러느냐고 하셨고 나는 됐다, 이제 영달이 없는 풍경은 상상할 수 없다, 고 대단히 헌신적인 엄마이기라도 한 것처럼 잘라 말했다. 실은 그냥 좀 귀찮고, 딱히 나가서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돈도 아깝고, 입고 나갈 옷도 마땅치 않고, 모처럼 나가서도 영달이 얘기에 영달이 생각만 하다가 돌아올 게 뻔하고, 무엇보다도 기념을 할 일이어야 기념을 하지.  

  엄마는 재미없다, 너무하다고 말씀하시면서 푹 고아낸 토종닭을 뚝배기에 옮겨 담으셨다. 두툼한 닭다리 하나가 뚝배기를 그득 채우다 못해 밖으로 삐져 나왔고 송이버섯 때문인지 폴폴 끓는 냄새가 향기로웠다. 나는 무뚝뚝하게 전화를 걸어 저녁시간 되면 저녁 먹으러 친정집으로 오라 일렀고 그는 빈번히 있던 일이니, 알았다고 대답했다. 고3 아이들이 저녁을 먹으러 학교 식당으로, 근처 분식집 등으로 뿔뿔이 흩어진 사이, 남편은 사분사분 걸어 친정집으로 왔다. 이 아파트 단지와 그가 근무하는 학교는 고작 담을 하나 사이에 두고 있다. 그러니 자율학습 감독하다가 공연히 쉬고 싶으면 아기 보러 간다고 쪼루루 걸어오는 게다. 

  남편이 닭다리를 뜯고 밥을 말고 국물을 마시고 하는 사이, 세 사람 중 아무도 결혼기념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아빠가 정신없이 배를 채울 때 영달이도 닭국물에 찰밥을 말아 오물오물 먹었다. 남편은 들어설 때보다 한결 훤해진 얼굴로 영달이를 안아주곤 자율학습 시간에 맞춰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엄마는 얼마나 배고팠으면, 안쓰러워하셨고 나는 진짜 맛있게 먹네, 원래 월요일 시간표가 가장 빡빡하대, 민숭민숭 대꾸했다.   

  다음 날, 남편은 신발을 사준다고 했다. 손을 심하게 탄데다 바깥 바람 맛에 취해버린 영달이가 그 흔한 유모차도 안 타고 아기띠도 안 하고 온동네를 바둥바둥 휘젓고 다니니 힘든 건 내 몸이고 닳는 건 내 신발이다. 이참에 폭신하고 편한 걸 하나 사볼까, 따라갔는데 폭신하고 편해 보이는 신발은 많아도 내꺼다 싶은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기능이 우선이라지만 마음에 안 드는 신발은 사봤자 신어지지 않기에 구매욕이 현저히 떨어질 찰나 즈음, 남편이 구두와 운동화 중간 쯤으로 보이는 검정색 단화를 골랐다. 예쁘지도 않은 주제에 가격만 엄청 세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밑창도 눌러보고 요모조모 살피더니 아주 딱이라며 계산을 해버렸다. 나는 조그만 목소리로 투덜거리면서도 한편으론 그래, 아무려면 어때, 발만 안 아프면 그만이지, 마음을 접기로 했다. 그래도 너무 비싸단 생각은 끝내 가시질 않았다. 

  결국 편하긴 하겠지만 안 예쁘다, 똑같이 생긴 싼 신발이 길거리에 널려있다, 값을 못하는 신발이다, 신었을 때 애기엄마답지 않아 보인다, 등 친정엄마의 동의에 힘입어 환불 받기로 결심. 휴지통을 뒤져 기저귀 사이로 보이는 영수증을 찾아서 환불을 받았다. 그리고 그 돈으로 포근하고 낙낙한 영달이 내복을 샀다. 남편한테는 막상 신어보니 별로더라, 내가 입는 옷들과 당최 안 어울리더라, 이야기했고 그는 그냥 편하게 신으라고 사준건데 하여간 참... 말끝을 흐리며 알겠다고 했다. 오늘 오후에 영달이를 안고 동네 신발가게를 지나치는데 괜찮은 신발이 보였다. 굽이 낮아 편해보이면서도 귀여운 구두였는데 조만간 사러가야겠다.     

  결혼 2주년. 남편은 마누라가 아니라 장모님이 해주신 토종닭을 먹었고 영달이는 엄마 신발을 환불받은 돈으로 귀여운 내복을 사입었다. 나는 남편으로부터 눈부시거나 눈물겨운 편지는 커녕, 식상한 문자 한통을 받았는데 물론 답장은 보내지 않았다. 그냥 속으로 그래, 그러마, 별 수 있냐, 했더랬다. 엄마 말처럼 좀 너무한 기념일이었지만 장기하 오빠 말맞따나 별일 없이 산다면 그걸로 된 거다. 그냥 오늘처럼.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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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10-10-13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기하 오빠의 말대로 깜짝놀랄 만큼 부러운 일이네요. 별일없이 벌써 2년인 기념일을 축하드려요.

깐따삐야 2010-10-14 16:12   좋아요 0 | URL
제가 생각했던 별일은 별일 축에도 못 끼더라구요. 요즘은 모두들 아픈 데 없이 건강한 것만으로도 참 다행이고 고맙고 그래요.^^

웽스북스 2010-10-13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년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고,
난 깐따삐야님 어머니가 너무 좋단 말이죠! ㅎㅎ

벌써 2년이나 됐구나. 라며 저도 놀랐네요~

깐따삐야 2010-10-14 16:15   좋아요 0 | URL
신랄하기만 한 게 아니라 인정도 넘치는 분이죠. 하지만 전 엄마가 이 나이 먹도록 가장 무서워요.ㅠ

2년인데 되게 오래 산 것 같아요. 막 질리는 것 같고. 이걸 어쩌죠. 웬디양님 결혼하라고 팍팍 부추기고는 싶은데 거짓말은 못하겠고.ㅋㅋ

2010-10-13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4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텔레비전에 나온 김경진을 보고 나, 쟤 좋다고 말했더니 남편 왈, 당신은 어딘가 좀 모자란 사람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요. 내가 거침없이 대꾸하길, 그러니까 당신 같은 남자랑 결혼했지. 남편은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만은 단 하나의 예외라고 뻔뻔스레 응대했다. 내가 비록 손톱에 때 끼었을 것 같은 연예인 1위를 좋아한다지만 이런 나를 옹호하진 않더라도 존중은 해달라. 결혼 2주년을 앞두고 우리가 나눈 허접한 대화다.    

  시시한 에피소드지만 살다보면 이처럼 옹호와 존중 사이를 오락가락 할 때가 있다. 남편을 향한 내 입장이 대개 그러한데 그로부터 발설되는 50.8% 가량의 의견에 대해 나는 전적으로 옹호하기도, 그렇다고 무조건 반대하기도 뭐할 때가 많다. 그럴 땐 그냥 애매하게 존중하고 만다. 개그맨 김경진에 대한 인상 뿐만 아니라 쪄먹었을 때와 구워먹었을 때 고향만두의 차이점까지 사소한 예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보다 굵직한 문제에 관해서는 온몸으로 화내기를 열연하며 맞서기도 하는데 그런 일이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질 만큼 가치관의 갭이 컸다면 연애시절 이미 쫑났으리라.  

  비단 부부 사이 뿐만 아니라 다른 타인을 바라보는 태도에서도 그럴 때가 있다. 좀더 어릴 적엔 공연히 흥분하여 엑스맨의 로건처럼 삼지창 세워가며 호오를 피력했는데 이제는 대개의 불편한 사안에 있어 옹호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존중한다, 는 입장에 서는 편이다. 엄살과 고통, 위선과 진실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을 만큼 혜안을 갖진 못했지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섣불리 돌을 던질 정도로 경망을 떨지는 않게 되었다.  

  어떤 경험과 그 경험이 주는 가르침은 바로 오분 전 일처럼 선명하게 각인되는데 특히 상처를 주었거나 상처 입은 경험이 그렇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친구로 남은 한 녀석이 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머리카락으로 늘 한쪽 눈을 가리고 다녔고 나는 그것을 겉멋으로 치부했다. 그 이후, 녀석이 입밖에 내는 말들을 과장 섞인 엄살로 깎아내리기 일쑤였다. 어느 날, 그를 향해 묻어두었던 한 마디를 던졌고 그 찰나의 순간, 녀석은 상처에 데어 새카맣게 타버린 듯한 얼굴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내가 정말로 그렇다면 너 어쩔건데. 나를 한가운데 둔 채 숨막히는 정적이 감돌았고 머릿속은 진공 상태. 때는 이미 늦었다.                      

  심야식당에 찾아드는 외롭고 착한 손님들처럼 녀석도 그랬다. 외롭고 착하기에 몹쓸 나를 친구로 받아주었겠지. 대학원에 다니던 무렵, 평일 오후에 녀석이 갑자기 나를 보러 내려왔다. 추어탕에 깍두기를 순식간에 비우고는 알록달록 아이스크림을 떠먹으며 그만큼 오래 봐놓고도 한번도 털어놓지 않았던 긴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그의 부모의 삶도, 그 부모를 바라보는 녀석의 시선도, 당시 녀석의 생활도, 완전히 옹호하거나 지지할 수 없었지만 그를 존중할 수 있었고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가 아니므로. 늘 머리카락으로 가려져 있던 한쪽 눈은 하얀 안대로 덮여 있었고 그의 쾌유를 빌며 잔소리 몇 마디를 보탰다. 결혼 후, 얼마 안 되어 녀석이 럭셔리한 벽걸이 시계를 결혼선물로 보내왔다. 식장까지 들고 왔었는데 전해주지 못했다고. 녀석은 모르겠지만 걸어두면 오분 전 그 일이 두고두고 상기될까봐 고스란히 보관 중이다.     

  깨끗한 인물 하나 구해오기가 그렇게 힘들더냐, 탄식이 절로 나오던 청문회장처럼 세상엔 추궁당하고 비판받아야 마땅한 경우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이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여론에 의해 난도질 당하는 꼴을 종종 보게 된다. 나 또한 아무 생각 없이, 때로는 깊이 생각한 척, 대담한 확신을 갖고 왈가왈부한 적이 많지만 돌아오는 건 후회 뿐. 아무 것도 없다. 간혹 내가 비판했던 사람과 똑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어 그제서야 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혹여 내가 그 비판에 대해 응당 벌을 받고 있나, 뜨끔했던 적도 있다. 세상에는 사람의 머릿수 만큼 다양한 삶과 죽음과 사랑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그만큼 숱한 목소리들로 웅성거린다. 나 역시 이렇듯 입을 놀리고 있지만 불가해하고 아이러니한 인간사, 옹호할 수는 없을지라도 확실한 비판보다는 애매한 존중이 더 나을 때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누구를 비판하고 싶어질 때는 말이지." 하고 아버지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네가 누리고 있는 만큼 그렇게 유리한 처지에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위대한 개츠비>는 이 문장만으로도 진정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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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E는 세번 만난 남자에 대해 털어놓았고 나는 그녀의 혼사를 부추기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나라 사람은 그저 타인의 고약한 호기심 때문에라도, 신변에 관한 질문 듣기 귀찮아서라도, 그냥 남들 사는대로 살아야 편해. 무슨 오십줄 찍어당기는 중늙은이마냥 충고했고 E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곧 누그러뜨리곤 이번엔 잘 한번 만나볼까, 했다.  

  그런 그녀가 주말에 네번째 데이트를 마치고 백화점에 가려는데 남자가 같이 가자며 따라오더란다. 보아두었던 시계를 손목에 차 보았고 막상 차니 안 예쁘네, 내려놓곤 구경을 좀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단다. 그리고 그날 밤, 남자로부터 사랑이 무어라 생각하냐는 문자가 왔고 E는 네번 만나놓고는 무슨 사랑타령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잘해보라는 주변의 종용이 있었기에 사랑은 서로간의 존경과 신뢰라 생각한다고 답문을 보냈단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E는 이런 답문을 받았다며 휴대폰 너머로 씩씩거렸다. 남자는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사랑을 바란다고 말했고 E는 하필이면 백화점에 들른 날, 이런 문자를 보내는 까닭이 무어냐는 것이었다. 그냥 들으면 참 좋은 말도 상황이 그러하니 칼 가는 소리로 들리지. 시계는 대략 E의 봉급의 1/4 쯤 되는 가격이었는데 E 모르게 남자의 눈이 팽그르르 돌아가고 있었나 보다.  

  미술 전공했다더니 사랑을 무슨 백제 고분 쯤으로 생각하나 싶어 나는 문득 발끈했다. 저보구 사달라고 그러기를 했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된장녀 취급이냐, 몇번 만나지도 않아놓구 어따 대고 문자 쓰냐, 늘어놓다가는 정신차리고 도리도리. 모처럼 잘 해보겠다던 E의 진지한 얼굴과 그녀의 부모님을 떠올리며 한 마디 하길, 그래도 교양이 있으니 넌지시 말하지. 대놓고 빈정대는 인간들도 얼마나 많은데. 말을 해놓고도 썩 그럴싸하지는 않았지만 귀얇은 E는 음, 듣고 보니 그러네, 한다.           

  암만 그래도 태도가 미심쩍고 괘씸하여 덧붙이길 상냥하되 직접적으로 물어보라고 일렀다. 검이불루 화이불치의 저의가 무엇인지. 그간 쇼핑을 해보니 가격에 맞추기 보다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대체 나한테서 무엇을 보고 그런 문자질을 했는지. 한번 똑바로 물어보라 했고 돌아올 응대가 나도 참 궁금하다.  

  나쓰메 소세키의 <행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떤 사람한테 가든, 시집을 가면 여자는 남편 때문에 부정을 타게 되지. 이렇게 말하는 내가 이미 내 아내를 얼마나 못쓰게 만들었는지 모른다네. 내가 못쓰게 만든 아내로부터 행복을 구하는 건 너무 억지가 아닌가. 행복은 결혼으로 천진함을 잃어버린 여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네." 끝없는 변덕과 고뇌로 가족과 친구는 물론 독자마저 신경쇠약으로 몰아가는 이치로는 이렇듯 날카로운 통찰가요, 반듯한 양심가다.  

  실상이 이렇지만 애인 있어? 결혼은 언제쯤? 아이는 있고? 귀찮은 질문들이 귀찮아서 대개는 평범에 기대어 산다.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E의 혼사를 부추길 것이지만 결혼 전부터 여자를 못쓰게 만드는 남자는 아니 된다. 고작 네번 만났으면서 자기가 벌어 자기가 쓰겠다는 것도 못 쓰게 하려고 말이지. 이치로의 말처럼 이래저래 E를 못쓰게 만들 남자 같다. 좀 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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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0-10-05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남자에 대한 제 기대치가 낮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 남자 백화점 들른 거와 아무 상관 없이 문자 보냈다는 거에 한 표. 남자가 그렇게 세심하게 앞 뒤 따질 줄 안다면 우리 여자들이 상처받을 일 있겠나요, 어디.

깐따삐야 2010-10-06 10:19   좋아요 0 | URL
저는 왜 상관이 있다고 생각될까요? 더구나 상관 없다 해도 문자로 웬노무 사랑타령인지 원.

마늘빵 2010-10-05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아, 재밌는 에피소드군요.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다는. 비슷한 상황을 다시 한번 만들어보거나, 음 그 남자의 경제관 정도를 얼핏 짐작할 수 있는 대화를 해보는 것도 괜찮겠는데요?

깐따삐야 2010-10-06 10:23   좋아요 0 | URL
음, 그것 괜찮겠네요. 근데 그렇게 안 해도 그 남자의 경제관이 어떨지 대충 짐작이 가긴 합니다.-_-

웽스북스 2010-10-05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가 벌어서 자기가 쓰겠다는 걸로 생각하지 않아서 남자가 그렇게 발끈했다고 보는데요. ㅎ 저로서는 좀 꽤나 밥맛 -_-

깐따삐야 2010-10-06 10:25   좋아요 0 | URL
남자들은 은연중에 여자가 버는 돈도 곧 내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긴 있지만 들입다 공들여도 모자랄 결혼 전부터 저러는 건 쫌!

BRINY 2010-10-06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조선인님 말씀에도 고개를 끄덕끄덕. 하지만, 웬디양님 말씀에도 맞아!맞아!

깐따삐야 2010-10-06 10:27   좋아요 0 | URL
저 남자 저래갖곤 결혼하기 힘들 것 같지 않나요? 근데 E가 이번엔 한번 잘해보겠다고 마음먹었기에 신중하게 지켜보렵니다.
 

가을이었다 

- 나희덕  

  가을이었다. 뱀이 울고 있었다. 덤불 속에서 뱀이 울고 있었다. 방울소리 같기도 하고 새소리 같기도 한 울음소리. 아닐 거야. 뱀이 어떻게 울겠어. 뒤돌아서면 등 뒤에서 뱀이 울었다. 내가 덤불 속에 울고 있는 것인가. 뱀이 내 속에서 울고 있는 것인가. 가을이었다. 뱀이 울고 있었다. 덤불에 가려 뱀은 보이지 않았다. 덤불은 말라가며 질겨지고 있었다. 그는 어쩌자고 내게 말을 거는 것일까. 산을 내려오는데 울음소리가 내내 나를 따라왔다. 뱀은 여전히 덤불 속에 있었다. 가을이었다. 아무하고도 말을 주고받을 수 없는 가을이었다. 다음 날에도 산에 올랐다. 뱀이 울고 있었다. 덤불 속을 들여다보면 그쳤다 뒤돌아서면 다시 들리는 울음소리. 덤불이 앙상해질 무렵 뱀은 사라졌다. 낯선 산 아래서 지낸 첫 가을이었다.   

  긴 페이퍼를 쓰다가 이 시가 생각났다. 볕이 좋은 날이었다. 빨래는 바삭하게 말랐고 친정엄마는 뱅어포에 고추장을 발라 내어널었다. 영달이와 나는 그림자놀이를 하며 놀았다. 땅에 비친 두 사람의 크고 작은 실루엣, 손가락의 재미난 움직임들에 영달이는 좋아라 했다.   

  하늘은 곱고 일상은 변함없는데 어디선가 울음소리 졸졸 따라다니는 듯한 가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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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9-27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은 곱고 일상은 변함없는데 어디선가 울음소리 졸졸 따라다니는 듯한 가을날,

을 저도 살고 있어요, 지금. 내 마음같은 글이네요.

깐따삐야 2010-09-28 10:52   좋아요 0 | URL
이곳에 오면 묘하게 겹치는 날들이 있어요.
오늘도 볕이 좋을 모양이에요. 다락방님.^^

2010-09-27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8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오는 밤. 영달이가 잠들고 권여선의 <내 정원의 붉은 열매>를 읽기 시작했다. 하루 중 내가 조용히 책읽기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다. 어깨가 쑤신 날도, 눈이 뻑뻑한 날도, 이도저도 다 귀찮은 날도, 아주 잠깐일지언정 이 시간을 건너뛸 수 없다.  

  권여선이 낸 책은 다 읽었고 누군가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역시 특유의 소설스럽지(?) 않은 관념적 문장들 때문에 독서의 맥이 뚝, 뚝, 끊기곤 했지만 어쩌면 바로 그 점 때문에, 그 거칠게 밟히는 성찰과 진실 때문에, 이 작가를 계속 읽게 되는 것 같다. 윤기라곤 없이 시종일관 싸한 화법도 나를 닮지 않아 그런가. 괜히 매력적이란 말이지. 무엇인가가 완성되는 순간은 그것을 완전히 잃고, 잃었다는 것마저 완전히 잊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우연히 그 언저리를 헛짚는 순간이다(p.118). 이러한 아포리즘에 걸려들기 위해 그녀의 책을 읽고, 또 읽는다.    

  그런데 엊그제 밤은 주인공들도 심란하고 나도 좀 심란했던 모양이다. 오전, 오후로 친정과 우리집에 손님이 다녀간 날이라 좀 피곤했고 낮 동안의 회상들로 머릿속이 어수선했다. Y와의 오랜 통화가 귓가에 맴맴 돌고 책 속에는 왜 이렇게 맛나게 술 마시는 장면이 많은지. 마음은 너울너울.    

  벌써 십년 전인데 가끔 우울할 때마다 Y가 창밖을 보라, 에 맞춰 춤추던 장면을 떠올리며 혼자 킥킥대곤 한다. 눈 오는 저녁, Y는 아침에 발표라도 있었는지 갈색 정장을 입고 동아리방에 출근을 했는데 장난기 심한 선배 하나가 날 좀 웃겨달라고 했고, 그건 그냥 장난 삼아 던진 말이라는 걸 누구나 다 알았는데, 그 순간 Y가 그럼 제가 춤을 출테니 다 같이 노래를 불러주세요, 했다. 다들 이게 웬 떡이냐 싶은 표정들로 오냐오냐, 호응을 했고 박수와 함께 노래가 시작되자 Y는 양손바닥으로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시늉을 하며 정말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배꼽이 빠질 지경인데 Y의 그 하나하나의 동작에 몰입하는 표정이 하도 비장해서 소리도 못 내고 웃느라 눈물만 질질 흘렸던 추억이 있다.     

  언젠가 Y에 대해 긴 페이퍼를 썼던 기억이 난다. 연락도 안 되고 몹시 보고 싶을 때였다. 다짜고짜 춤을 추는 엉뚱함과 더불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기 일쑤인 신기루 같은 친구였는데 다시 만났을 땐 다른 도시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궁금증이 폭발해 입이 터질 것 같았지만 섣부른 노파심에 자세히 캐묻지 않았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Y는 함께 떠난 여행길에서 그간의 변화를 찬찬히 들려주었다. 나는 잘했다고 했고 걱정스럽다고도 했고 부럽다고도, 그러니까 더 잘하라고 했던 것 같다. 이후로 Y는 내 잔소리가 정겹다며 일부러 전화를 걸어 시시콜콜 잔소리를 경청하기도 했다.       

  내 출산 이후에는 좀처럼 타이밍이 안 맞아 연락을 자주 못했는데 엊그제, 무척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근황을 묻자 Y는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는 말을 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아주 보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전이 없고 정작 하고 싶었던 일에서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란다. 몇 해 전 가을, 상경했을 때만 해도 내 눈에 비친 Y는 꿈을 향해 꾸준히 내공을 쌓고 있었다. 대신,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하나, 관둬야 하나, 를 놓고 고민 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직장에서는 자리가 잡혀 가는 반면, 꿈으로부터 너무 멀리 온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책을 읽다 말고 Y의 목소리가 맴돌아 잠이 오지 않는데도 그냥 눈을 감았다. 너무 멀리 왔다는 것. 누구나 한번쯤 그런 아쉬움으로 한탄하는 일이 없겠냐만은 Y의 탄식에 나는 최후의 보루가 무너지기라도 한 듯 허망했다. 생쥐처럼 작은 아이였지만 코끼리처럼 크고 묵묵한 행보에 나는 십년 전부터 지금껏 무언의 박수를 보내왔다. 오직 내 앞의 선배를 즐겁게 해주겠다는 일념 하에 주위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그러나 열렬한 율동을 보여주었던 Y. 어떤 면에서 Y는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나는 그새 많은 부분, 세속적인 잣대와 때낀 시선으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바라보게 되었지만 우정에 대해서는 그리 되지 않고 그 우정 가운데에서도 Y를 향한 그것은 마냥 스무살 무렵에 머물러 있다. 가까울수록 너절해지는 관계들 속에서 Y와의 우정은 저만치 혼자 피어 있는 꽃과 같았다. 거기엔 나의 허영심도 한몫해서 Y의 속사정은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너만은 영원히 정글의 거대한 초식동물로 살아다오, 하는 바람이 있었다. 세월을 비껴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감수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 않는데도 말이다.

  Y와는 술약속을 하고 통화를 맺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그저 막연히, 늘 그렇듯, 올해가 가기 전. 홀짝홀짝 안색의 요동 없이 말끔히 잔을 비우는 Y의 술마시는 모습이 그립다. 밤이 길어지는 계절이 오면 마주 앉아, 혹은 아직도 방황 중인 S를 끼워, 두런두런 너희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너무 멀리 온 뒤, 각자의 헛짚은 언저리에 대한 긴긴 사연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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