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 때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히 지난 일년을 돌아보게 되는데 세상에... 일년 내내 영화관에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싶어 어딘가 영화 보고 온 흔적이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 페이퍼를 뒤져보려다가 이 정도면 안 간 거나 다름없단 생각에 힘이 빠져버렸다. 가려면 갈 수도 있었을 테고 보고 싶은 영화도 있었는데 그냥 그렇게 되어버렸다.
영달이를 낳기 전에는 우리 부부가 별 충돌 없이 안이하게 공유할 수 있는 공동 취미가 영화 뿐이라서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자주 영화를 보러 다녔다. 다른 경우에는 갈등이나 마찰이 분분한 반면 영화에 대한 식견은 그럭저럭 조화로워 우리는 마치 단합대회라도 하듯 영화를 고르고, 예매하거나 표를 끊고, 카페라떼를 마시면서 공동의 유희를 즐겼다. 팝콘도 별로라 하고 영화관에 퍼져 있는 팝콘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 것조차 아주 짝짜꿍이 잘 맞았더랬다. 하지만 이제 그런 호시절은 디 엔드.
그다지 바지런하고 적극적인 육아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영달이에게 매달려 있는 내가 딱했던지 얼마 전 남편은 이벤트에서 받은 PMP에 최신 영화와 고전 영화 몇 편을 담아 주었다. 영달이 재우고 나서 심심하면 이어폰 끼고 보라고. 그러나 현실은 어찌나 야멸찬지 영달이가 잠들고 나서 두 시간을 넘기기 어려운 탓에 아직 한편도 제대로 못 보고야 말았다. 피곤이 엄습하여 두 눈이 막 감길라치면 내가 이 자유로운 황금 시간대에 쪼매난 화면이나 들여다보고 있느니 책을 몇 장 더 읽지 싶어 그냥 꺼버리고 자거나 책을 집어든다. 그리고는 비몽사몽한 의식으로 깨달음에 다다른다. 그래, 나는 영화를 안 보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이고 생각보다 영화라는 취미에 별 애정도 없을 뿐더러 역시 책을 더 좋아하는 거였어. 영화는 끊어도 책은 못 끊잖아?
그러나 <시네포트>나 <영화가 좋다> 같은 프로그램에 시선이 가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터. 흥미진진해 보이는 신작영화나 좋아하는 배우들의 근황에 관심이 가지 않는다면 그것도 거짓말. 결국 프로그램 속 영상을 짤끔짤끔 간보며 몇 차례 멍때리거나 감탄하곤 하지만 분주한 일상 저편으로 휘리릭 증발하는 일이 다반사. 한때는 '영화읽기' 카테고리에 영화 리뷰를 올리는 것이 큰 낙의 하나이기도 했다. 활자로 이루어진 책보다 생생한 비주얼로 감상한 후 채 감흥이 식지 않은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이 그야말로 일필휘지로 더욱 즐겁게, 잘 써지기도 했다. 영화 평을 쓰며 한번 더 영화를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어느 때는 쓰면서 깨닫기도 한다. 이 영화에 이런 면이 있었네, 하고.
남편은 조만간 고3 아이들과 '투어리스트'를 보러 간다는데 내게는 영화는 커녕 현실적인 고민을 잔뜩 싸안은 친구와의 약속만 예정되어 있다. 영상의 강력함 이면의 허무한 휘발성에 대해 종종 냉소를 보내면서도 기회가 왔을 때 넘기지 않았고 무료함과 무의미를 위안하기 위해 부러 기회를 만들며 영화 보기를 즐겨왔던 나는 영화를 안 보고도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약간은 시큼털털한 기분으로 받아들인다.
어제 오후 잠든 영달이를 안고 드라이브를 하며 남편과 나는 동의했다. 영달이라는 고깟 영화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한 공동의 낙이자 희망을 얻은 대신, 우리의 호기로웠던 시네필 다이어리는 이제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노라고. 그 순간 수많은 영화 포스터와 카페라떼와 CGV 가는 길이 엔딩 크레딧으로 펼쳐지는 아쉬운 회상이 모락모락. 하지만 언젠가 아장아장 영달이와 손잡고 라따뚜이스러운 귀여운 애니를 보러 가는 상상이 플러스 되어 나는 다시 미소짓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