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투쟁'하자는 '486 뉴라이트'

‘권력 486’을 지향하는 분들이 '80년대'의 사상투쟁을 다시 벌이자고?

  
이종태(월간 말지 편집장)
  
요즘 자칭 '자유주의 486 뉴라이트'라는 분들이 설치고 있다. 청와대나 의회에 진출한 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을 '좌파' 혹은 '권력 386'이라고 부르며 '과거'를 고백하란다. '권력 386'이야말로 현 정치경제적 혼란의 주범이며, 일찌감치 '전향'한 자기네 '뉴라이트'야말로 '권력 386'을 제일 잘 아는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이 양반들, '권력 486'이 되고 싶은가 보다. '내부 고발자'로서 말이다. 정말 무섭다.

사실은 이런 행동 스타일 자체가 과거 80년대 운동권 세대들의 가장 못된 고질병이다. 박정희, 전두환 집권 당시 중ㆍ고등학교를 다닌 이 세대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사상의 '사'자도 알지 못하게 억압당했다. 이에 대한 반동인지 대학에 들어가자 말자 너무나 쉽게 사회주의자가 되고, 주체주의자가 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과격해 보이는 사상을 골라 상표처럼 걸치며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하는 것은 이 시대에 흔한 일이었다. 이는 다른 사람(다른 정파)의 '사상'을 문제삼으며 자신(자기 정파)의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예컨대 '당신은 사회주의자를 자처하지만 보수야당과 연대를 주장하는 것을 보면 기실 기회주의자에 불과하므로' '나야말로 사회주의 정통 레프트'라는 식이었다. 당시의 '좌파 패거리'들은 이렇게 다른 패거리들을 '기회주의자'로 몰고 '기회주의 사상 때문에 운동이 발전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면서 형성되었다. 필자는 뉴라이트라는 분들이 이 못된 버릇을 아직 고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원인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기 보다 '사상이 문제'라는 구태의연한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필자는 이게 궁금하다. 저 뉴라이트들은 이른바 '권력 386'들, 그리고 정치권 뿐 아니라 각계의 중추적 위치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386들이 그들의 '좌파 사상'을 현실에 구현하고 있다고 정말 믿는 것일까. 필자는 이른바 386들이 현재 좌파이기는커녕 과거에도 좌파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80년대가 좌파가 되기엔 너무 바쁜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일주일에 2~3회에 이르는 교내시위나 거리시위, 조직활동 등으로 독재정권에 저항하는데도 너무 바빠서 20여 년 후까지 고이 간직할 좌파 사상 따위는 제대로 학습하지도 못했다. 또 술은 얼마나 먹어댔던가.

물론 속성으로 번역된 소련의 맑스레닌주의 교과서들이 유행하고, 어떤 이들은 북한 방송을 녹취해서 읽어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엔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두 계급 밖에 없다'는 레닌의 '명언'을 외우고 다닌다고 해서 볼셰비키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필자는 80년대의 학생운동이 사상적으로 그토록 과격했던 이유를 '광주학살의 과격성'과 '민중생활의 파탄'이라는 '당대의 현실'에서 찾는다. 전두환 정권은 지금 비판언론으로 자처하는 얼굴 두꺼운 무리들 이외의 정신 멀쩡한 사람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정권이었다. 당시 민중생활도 70년대 말 중공업 부문의 과잉생산 여파로 80년대 중반 이후까지는 상당히 비참한 상황이었다. 저항할만한 근거가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전두환 정권에 저항한다는 것은 엄청난 '리스크'를 수반하는 행위였고 이는 사회 일반에서 자신을 '격리'하는 심리적 기제를 필요로 했다. 그 기제가 좌파 사상이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래서 좌파 사상의 내용보다는 '좌파 사상을 학습하는 행위' 그 자체가 더 중요했을 것이다. 전두환 치하에서 좌파사상 학습은 '범죄'였기 때문이다.

약간 농담을 섞어 이야기하자면 당시 운동권이 된다는 것은 수호지에서 송나라 관리였던 임충이 양산박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했다. 양산박 두목들이 한패가 되려는 임충에게 내건 조건은 범죄를 저질러 아웃사이더가 되라는 것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80년대에 운동권이 되려면 좌파사상을 학습한다는 '범죄'를 저질러야 했다.

필자는 지금까지의 주장이 현실 속에서 충분히 검증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학생시절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한 운동권 출신의 의원은 이라크파병을 지지했다가 학교 후배들에게 사무실을 점거 당하는 봉변을 당했다. 열린우리당에서 민중생활을 극도로 불안하게 만들 자유무역협정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 의원은 386 가운데 실세 중 실세라는 인사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좌파니 우파니 하는 '사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뉴라이트 여러분, 진심으로 '권력 486'을 지향한다면 그 '사상 어쩌고' 하는 버릇부터 버리기 바란다. 지금 와서 80년대의 사상투쟁을 다시 벌이자고? 어쩌면 이토록 오랫동안 80년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할 수가 있는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지금 당신들을 추켜세운다고 지나치게 들뜰 필요도 없다. 그 신문들, 우습게 보여도 제법 약삭빠른 현실주의자들이기 때문에 사상밖에 모르는 당신들을 오래 좋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신들이 열독한 바 있는, 소련 철학교과서 번역판의 속표지에 인쇄되어 있었던 괴테의 경구를 상기시켜 드리고 싶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이다."

<출처 : 말지 12월호 데스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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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1-25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이다."

제가 항상 주장하는 말인데,, 괴테가 먼저 했군요...^^


사마천 2004-11-26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텔레스가 던지는 말이죠. 이걸 헤겔,맑스가 차례대로 인용합니다. 파우스트는 언제든 읽어보면서 생각해보아야 할 많은 문제를 던지는 책입니다.
 

서재의 즐겨찾기는 싸이월드의 이웃, 블로그의 이웃과 달라서 상대가 누구인지 모른다는데

묘미가 있는 듯 합니다.

누구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일일이 찾아가 인사하고, 응대해야 하는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상대적으로 서재의 커뮤니티성을 떨어뜨리기도 하지요.

그러나 싸이나 블로그의 접대성 이웃맺기에 비하면 질적으로는 훨씬 더 값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유야 무엇이 되었든 400분의 즐찾 이웃이 제게 있다는 건, 무언의 부담으로 묵직하게 내리누릅니다.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오나 그 분들 모두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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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굼 2004-11-24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즐찾해주시는 분들은 너무 고마운;하지만 은근히 부담^^;;

바람구두 2004-11-24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소굼님...

chika 2004-11-24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 ㅋㅋ

즐찾할만한 가치가 있어서 그런거라구요~ ^^

조선인 2004-11-24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여전히 400 이웃 중 1명입니다만 배 아파서 즐찾을 삭제하고 싶은 욕망이...

ㅋㄷㅋㄷㅋㄷ

물만두 2004-11-24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그런 의미에서 벤트라도 =3=3=3

stella.K 2004-11-24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해요. 전 어제 즐찾할 한 분을 그렇게도 찾았는데 아직 그대로에요. 아무래도 내 서재는 인기가 없나 봐요. 슬퍼요. 흐흑~

이벤트 하세요.>.<;;

진/우맘 2004-11-24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축하드려요!^^

로즈마리 2004-11-24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축하드립니다..^^

마립간 2004-11-24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바람구두님의 글들이 너무 좋습니다.

플레져 2004-11-24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바람구두님~ 소리없이 잘 보고 있답니다..^^

이파리 2004-11-24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의 서재는 눈길이 아니라 물길인 것 같아요. 서재에는 흔적이 남지 않아도 지나간 사람의 신발에는 흔적이 남지요. ^^

바람구두 2004-11-24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이 400분의 이웃 중 그냥 단순한 이웃이었던가요? 흐....

그리고 축하해주신 분들도 감사하고요.

그런데 축하받을 일일런지...

흐흐.(속으론 저도 좋군요.)

明卵 2004-11-24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겨찾을 이유가 있는 서재니까요. 축하드려요^^

가을산 2004-11-24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이 많은 글들을 언제 다 쓰시는지가 늘 궁금합니다. ^^

nrim 2004-11-24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비연 2004-11-24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옹~ 축하드려요..^^ 가끔 바람구두님은 뭐하는 분이실까 궁금함다(저만 모르고 있는 건가요?^^;;) 이렇게 많은 글들을 이렇게 자알 쓰시는 분이...어떤 분일까...아뭏든 항상 들르면서 너무나 감탄하는 서재랍니다~^^

프레이야 2004-11-25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의 글을 흠모하는 한 사람으로서^^ 저도 축하드려요. 맘껏 좋아하셔도 될 것 같아요. 전 얼마전 300을 넘겼는데요, 요즘 서재손질도 통 못했는데... 사실 미안한 맘이 들었어요. 날씨가 많이 차가워졌네요^^

바람구두 2004-11-25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참....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도 쑥스러운 상황이 되어버렸군요.

명란님...가을산님, 느림님, 비연님, 그리고 혜경님.... 감사드려요.

특히, 혜경님... 님보다 리뷰 순위 조금 앞서 보고자 제가 얼마나 분발했었는데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ceylontea 2004-11-25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인기서재로 거듭나시기를... ^^
 

방문자 20,000hit를 넘겼네요.
방문자 20,000을 넘기면 저도 캡춰 이벤트를 해보리라 맘 먹고 있었는데,
마감이다 뭐다 해서 정신없는 와중에 그냥 넘어가 버렸군요.
흑흑....
역시 저는 캡춰 이벤트와는 인연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축하는 받고 싶군요.
몰래 즐찾하신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리고요.
조만간 400즐찾(오늘 이 순간 현재 397)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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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1-23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걸 놓치다니!

보란듯이 캡쳐하여 선물했으면 바람구두님이 기뻐하셨을 텐데......

즐찾 400이 눈앞에 있다고요?

즉석이벤트 하시죠?^^

urblue 2004-11-23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00에서 600이나 지나갔는데, 이제서야 말씀하시다니...

역시 방문자 많은 서재는 다릅니다.

즉석 이벤트 찬성!!

stella.K 2004-11-23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보로군요. 그렇잖아도 한마디 할까 하다 바람구두님은 이제 이런 거 신경안쓰시고 초연하게 사실건가 보다 했죠. 저 만힛 넘겼는데도 미동도 안 하시길래. 미워욧! >.<;;

사막 2004-11-23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몰래 즐찾하던 사람들 중에 끼여있는 인간입니다. 구두님의 서재는 언제나 와글와글이네요. 좋은 글 많이 읽고 있으면서 인사도 제대로 없는 것이 양심에 좀 걸렸었는데 20,000hit 축하글로나마 인사를 대신할까 합니다. 20,000hit 왕~~축하합니다! 짝짝짝!!!

물만두 2004-11-23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2222 하세요^^ 축하드려요^^

비연 2004-11-23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22222하세요...여기에 한 표~! 글고 넘 축하드려요..^^

조선인 2004-11-23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문자 2만, 즐찾 400... 염장성 페이퍼라 아뢰오. ㅎㅎㅎ

2004-11-23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4-11-23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22222 이벤트 찬성입니다. 아니, 즐찾 400이 더 빠르겠군요. 어찌되었건 무조건 빠른 걸로 이벤트 합시다!

바람구두 2004-11-23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almool님! 반가워요. 이렇게 숨바꼭질 놀이 끝에 만나게 되는 분들이 참말로 흥미진진하답니다. "22222" 이벤트를 제의하신 분들께... 한 번 고려해볼께요. 흐흐.

하얀마녀 2004-11-24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이번엔 또 어떤 이벤트를 준비하실지 궁금하군요. ^^

바람구두 2004-11-24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강제 이벤트? 흐흐...

하얀마녀님은 전번에 참가 안 해주셨잖아요.
 

겨울호를 마감했습니다.
이제부터 제게는 새로운 겨울이 시작되었고, 이미 다가오는 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 인민에 의한 '새로운 헌법 만들기'의 첫 시동을 걸자는 맥락에서 "헌법을 생각한다" 특집을 기획한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편협한 민족주의를 벗어나서 작게는 동북아, 동아시아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보자는 한중일 삼국 지식인들의 역사적 연대와 민중적 결합을 첫 시동을 걸어보자는 취지에서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를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들과 허심탄회하게 나눠 본 대화가 될 겁니다.

다가오는 봄에는 더욱 문제적인 특집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황해문화 2004년 겨울호 (통권45호)

권두비평/ 지식부재시대의 지식 - 김동춘(황해문화 편집자문위원, 성공회대 교수)

특집/ 헌법을 생각한다
1. 헌법은 우리에게 무엇인가_ 헌법의 정의, 헌법의 정신/ 김종철(연세대 법대 교수)
2. 헌법의 어제와 오늘/ 이경주(인하대 법대 교수)
3. 헌법재판소, 한국의 “원로원”? / 이석태(변호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회장)
4. 미래지향적 헌법 전문 다시쓰기
서동진, 하종강, 이필렬, 정희진, 복거일, 정욱식, 김진호, 이란주, 변연식 / 기획의도(김명인)

창작/ 시/ 백무산, 최창균, 고두현, 이윤학, 이병률,
소설/ 마을버스를 타고 / 송영

황해네트워크/ 수도 이전의 전후이야기/ 김광현(동아일보 기자)

통일을 준비한다/ 북한이탈주민과 어떻게 지낼 것인가?/ 이우영(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인천, 이 사람/ 김윤식

기획/ 동아시아 평화와 역사읽기(황해문화 주최)/ 기획의도(백원담)
과거로서의 미래의 재구축-민족서사, 발전주의, 그리고 아시아 상상 / 왕후이(칭화대학(淸華大學) 중문과 교수)
어떻게 동북아의 ‘전후(戰後)’를 논할 것인가-고구려문제가 불러일으킨 생각 / 쑨꺼(중국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연구원)
미래지향적 민족주의와 신국제주의 / 췌이즈위안(중국 칭화대학 공공관리학원 교수)
동아시아 평화 구축을 위한 역사 읽기: 몇 가지 제언 / 백영서(연세대 사학과 교수)
중국 동북공정의 논리와 대응방향 / 이남주(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동북아평화에 대한 문화적 상상과 역사문제 / 백원담(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고구려사 문제’와 일본의 동북아시아 인식 / 권혁태(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지상중계 - 동북아 평화와 역사읽기 / 박자영

기고/ 문학과 종교/ 윤영천(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

문화비평
1.영화/ 영화의 정치성 - 폭력에 대한 카메라의 수사학/ 박명진
2.음악/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의 개작(리메이크)과 재발매에 대한 만감/ 신현준
3.건축/ 아키토피아의 그림자, ‘건축도시’는 가능한가?/ 전진삼
4.연극/ 관객이란 연극의 언어/ 안치운
5.미디어/ 국가보안법/ 김창남
6.사진/ 경성은 어떻게 재현되었나-경성시구개정사업과 도시계획사진아카이브/ 이경민
7.문학/ 이효석 문학관 운영에서 배워야 할 몇 가지/ 김경수
8.미술/ 박생광-한국미술의 잃어버린 영성을 그린 작가/ 박영택
9.출판/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과 인천/ 최성일

서평
1. 덩샤오핑 평전/ 성근제(연세대 강사)
2. 테러시대의 철학(하버마스, 데리다와의 대화)/ 황훈성(동국대 영문과 교수)
3.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현대사/ 이승환(민화협 정책위원장)
4. 인천이야기 100장면/ 김창수(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문학평론가)

‘황해문화’ 겨울호 특집
“… 모든 권력은 백성으로부터 나오며 헌법기관은 백성의 대표자로서 백성이 맡긴 권한의 범위 안에서 법률의 규정에 따라 국정을 수행하며 … 이러한 근본정신에 반하는 모든 행위를 백성의 힘으로 바로잡는 저항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백성의 마땅한 권리임을 밝힌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들머리)의 일부다. 다만 아직 헌법 개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초안’이다. 변연식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대표가 썼다. 현행 헌법의 ‘대한국민’ 대신 ‘백성’을 헌법 주체로 삼았다. 직접민주주의의 정신과 저항권을 강조했다.

이런 전문은 또 어떤가. “… 대한민국은 인류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 가난과 국가폭력에 신음하는 모든 이들의 생명을 위해 … 전 지구적 존재의 보전과 안전을 위한 국제적 행동에 동참해야 한다. …” 김진호 목사는 인권의 가치를 앞세웠다. 평화헌법의 초안이다. 그것은 일국적이 아니라 세계적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고통의 지구화’에 맞서는 한 주체다.

저항권에 생명사상·평화주의에 차별반대
새로운 삼권분립까지‥다채로운 내용 담아
이 밖에도 7편의 헌법 전문이 더 있다. 계간 〈황해문화〉 겨울호는 ‘헌법을 생각한다’는 주제 아래, 각계각층의 인사들로부터 헌법 전문을 받아냈다.

이 작은 기획 자체가 우리 헌법에 대한 유쾌한 비틀기다. 근대 입헌주의 헌법의 역사는 인민의 피로 쓰여졌다. 우리 헌법은 다르다. 인민의 피를 딛고선 소수의 권력자들이 썼다. 그래서 ‘헌법 주체’가 국민인지 인민인지 백성인지 시민인지조차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구성원 각자가 나라의 지향을 고민하고 토론을 통해 국가규범의 기초를 닦는 ‘사회계약적’ 과정이 비어 있는 헌법이다. 〈황해문화〉는 이 기획을 통해 헌법을 다시 세우는 첫걸음이 무엇인지를 웅변한다. 정치학자·헌법학자 등의 헌정체제 논의와는 별개로, ‘헌법 다시 쓰기’를 둘러싼 국민적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헌법 전문은 나라의 꼴을 갖추는 일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인민의 한 사람’에 불과한 각 필자들의 헌법 전문을 읽어보면, 현행 헌법의 근본문제가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대다수가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본권 개념의 공백 메우기를 시도했다. 평화와 노동의 가치도 등장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혈연적 민족 개념과 국민 국가주의에 기반한 우리 헌법의 ‘국민’ 범주”를 비판하며, 소수자를 헌법 주체로 당당히 격상시켰다. 새 헌법을 만드는 주체는 이제 “여성·장애인·동성애자·특정 지역민 배제의 역사와 근대국민국가의 욕망을 극복하고자 하는 남한 사회의 ‘우리’ 시민”이다.

노동문제 전문가 하종강은 아예 ‘국가(행정부)-대표체계(의회)-시민사회’로 이뤄지는 새로운 삼권분립의 원칙을 제시한다. 제4부로 독립한 검찰·감사원·선거관리위원회 등 권력감시기구들은 의회와 시민의 통제 아래 놓인다. 사회법과 평등의 정신도 강화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안보지상주의를 넘어서는 평화주의를,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는 국민국가의 폐쇄성 극복과 인종·민족차별 반대를, 환경운동가 이필렬 교수는 모든 생명이 서로 의지하는 생명사상을 헌법 전문에 녹였다. 보수적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소설가 복거일은 “전문에 너무 중요한 뜻과 임무를 부여하는 것은 현명한 판단으로 보기 어렵다”며 ‘우리 대한민국 인민들은 우리 삶을 인도할 원리와 규칙을 마련하기 위해 이 헌법을 제정한다’는 한 줄의 문장을 제시했다. 이들의 초안은 거칠고 도발적이지만, 분명한 점이 하나 있다. 필부가 쓴 어떤 헌법 전문도, 장황한 내용을 원고지 2장 분량의 한 문장에 우겨넣은 현행 헌법 전문보다 훨씬 읽기 쉽고 의미가 깊다는 것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헌법재판소, 정당성 위기에 처했다”

[한겨레] 헌법학자 등 ‘황해문화’서 헌재 비판적 재구성 주문

헌법을 생각하는 일은 그러나, ‘헌법 전문 다시 쓰기’ 같은 생산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행 헌법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독점되고 있기 때문이다.
뜻있는 헌법학자와 법률가들은 계간 <황해문화> 겨울호를 통해 헌재의 민주적 재구성을 주문한다. 김종철 교수(연세대 법대)는 헌재가 ‘정당성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한다. “헌법이 정치적·사회적 이해관계에 따라 견강부회의 수단으로 전락”하거나 “헌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없이 정치적 주장의 포장물로 이용”됐기 때문이다. 최근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재 결정은 “우리 헌법의 기본인 성문헌법주의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일이었다.

헌재 스스로 입헌주의의 정당성을 갉아먹는 사태를 막기 위해 헌재의 ‘민주적 정당성’을 높이려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게 김 교수의 문제의식이다. “시민단체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인사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법관 인사에 활용하는 것”도 민주적 정당성을 높이는 한 대안이다.

다만 김 교수는 헌재를 비롯한 사법권에 대한 ‘직접민주주의적 열정’이 성급한 개헌논의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한다. (직접)민주주의와 함께 근대 헌정질서의 또다른 축인 입헌주의의 중요성을 가볍게 본 결과라는 것이다. 섣부른 개헌은 오히려 일부 극우세력의 준동 등 민주화의 후퇴로 귀결될 수도 있다고, 그는 경고한다.

이석태 변호사는 헌재를 ‘한국의 원로원’이라 꼬집는다. 민주주의를 가장한 고대 로마의 귀족정을 빗댄 표현이다. 87년 6월 항쟁의 끝에서 마련된 현행 헌법은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를 자임하고 있는데, 정작 헌재 재판관들은 이 ‘민주주의와 기본권’에 대한 이해가 대단히 부족하거나 오히려 적대적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국가안보와 개인의 기본권 보장이 충돌할 때마다, 대체로 국가안보의 측면을 우선시하는 결정들이 내려졌다. ‘자잘한 것은 위헌, 굵직한 것은 합헌’이라는 비아냥도 여기서 나왔다. 사립학교 교원노조 금지, 제3자 개입금지, 양심적 병역거부 불허 등의 근거법률에 대한 합헌판결이 대표적 사례다. 국제인권규약 등을 위헌 여부 판단의 준거로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보수적’관행도 여기에 작용했다.

결국 법치가 민주주의를 따라잡지 못하거나 이를 거스른 셈이다. 그래서 이 변호사는 “헌재의 민주적 구성과 국민 대표성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한다. “헌법 적용·해석을 사명으로 하는 헌재 재판관 가운데 몇사람은 반드시 헌법전공 학자를 임명”하자는 제안도 덧붙였다.

이경주 교수(인하대 법대)는 “건국 이후 올바른 헌법 주체 형성에 실패했다”고 짚었다. 헌법재판소가 제 노릇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국민을 중심으로 한 ‘헌법 주체’의 형성이 필수적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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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4-11-19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나옵니까?

로드무비 2004-11-19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 많으셨네요.

특히 이번호 시와 소설 필진이 쟁쟁하네요.

백무산, 최창균, 이윤학 시인 시 좋아해요.

부리 2004-11-19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만 몰랐나요? 님, 황해문학에 계셨군요. 제가 읽는 책.잡지 중 거기서 인용된 문구가 꽤 많던데...김명인 씨도 거기다 글쓰지 않았던가요?

바람구두 2004-11-19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해문학에 있지 않은데요? 부리니임~. 흐흐. 김명인 선생은 황해문화의 편집주간이랍니다.

balmas 2004-11-19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저도 오늘 아침 신문에서 봤어요.

아주 시의적절한 기획이더군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추천 하나^^

바람구두 2004-11-19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헌재의 판결과 전혀 상관없이 기획되었더랬습니다. 계간지가 3개월 주기로 기획되고 만들어진다는 걸 감안한다면 헌재의 파문을 미리 예상하고 원고를 기획하고 청탁할 수는 없는 일이죠. 대신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나 이에 대해 반헌법적인 발언이라는 한나라식 반응을 염두에 두고, 그렇다면 우리 헌법이 뭔데? 하고 역으로 파고 들었죠. 그런데 헌재에서 관습헌법을 들고 나와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잡지쟁이로서 세상을 제대로 따라가고 있구나 하는 보람을 느끼는 순간 중 하나는 아마 이런 경우이겠죠. 발마스님... 감사합니다. 잘 읽어주시길...

선인장 2004-11-19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감 끝나셨군요.. 축하해요. 본격적으로 겨울을 즐길 수 있겠네요.

저는 담주 목요일이 마감 예정인데... 과연 그 때 끝날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그거 끝나면 또 일이 시작되는데, 며칠 게으름 피울 시간 정도는 있겠지요? 꼭 있어야 해요!!!

한가해지면 술 한 잔 사시마던 약속, 꼭 지키세요!

바람구두 2004-11-19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케이... 술 한 잔 사야지... 그런데 그대가 바쁘구만... 흐흐

비연 2004-11-19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쓰셨습니다^^ 황해문화에 안 계시다면 그냥 기고하신 분?

암튼..조금 한가해지신다니 다행이네요..이 스산한 겨울, 뜻있게 보내시길~^^

바람구두 2004-11-20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정답은 코멘트들을 잘 읽어보시면 알 수 있답니다.

마냐 2004-11-22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절묘한 기획이었네요. 정말 엄청 뿌듯하시겠슴다. 왜 아니시겠슴까...크하핫. 제3자인 저조차, 와와. 정말 대단해...하며 기분이 좋은 것을...

그나저나....하루살이 주제에 며칠씩 바쁜척한 저와 달리....정말, 한 계절을 무사히 마무리하신거 축하드립니다. 수고많으셨슴다. 그러나, 진정 보람있으실거 같아 좋슴다.

마냐 2004-11-22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라딘 서재질 못하면서...든 생각 중 하나가. "에구구구..바람구두님, 글은 얼마나 많이 올라왔을까, 절대 다 따라잡지 못할겨..."였는데, 님도 바쁘셔서 글이 생각만큼은 많지 않은거 같슴다. 크하핫.....서재달인 1위 강박도 버리시구 말임다..ㅋㅋㅋ

딸기 2004-11-23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호도 재밌겠네요. 그간 읽어본 황해문화는 다 재밌었지만(아부 아님).

근데 구두님, 이건 그냥 제 느낌일 뿐이지만. (구두님도 알다시피 제가 무식하자나요?) 황해문화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입니다.



황해문화는 기획기사가 특히 좋은데, 문화비평 쪽은 조금 포맷을 바꿔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황해문화는 지적이면서도 사회과학책들처럼 '꼬인 문장'이 아니라 글에 담백하고 강건한 느낌이 나서 그게 참 좋거든요. 근데 기획 쪽은 좋은데, 어느 필자라고 꼬집고 싶지는 않지만, 문화비평 쪽에서는 꼬인 글들이 보이고, 좀 맛깔스럽지가 않아서요.
 

2004년 오늘 현재, ‘전태일 정신’은 무엇인가?
 


<매일노동뉴스> 이번 주 호에는 표지사진으로 마석 모란공원의 22살 청년 ‘전태일’이 아직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고 외치며 노동법을 꼬옥 껴안고 있다.

바로 오늘,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지 34년이 되는 날이다.
그리고 그에 맞춰 노동운동진영은 11월 14일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추모’하는 전국노동자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러나, 전/태/일/ 이라는 이름 석자를 가슴에 품고 사는 나는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그것은 뇌리 속에 강력하게 뙤아리 틀고 있는 의문이 좀처럼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연 현재 노동운동은 “전태일 정신”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때문이다. 물론 나는 공무원노조의 파업을 지지하고, 공무원노조에 대한 노동3권이 충분하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현재 민주노총이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직 개악 저지 총파업을 충심으로 지지한다.

 

공무원 노조의 파업에 즈음하여 - 89년 ‘전교조’ 결성 투쟁을 회고하다

내가 운동을 처음으로 접하던 시절 89년, 그러니까 그해에 전교조 결성 투쟁이 있었다. 전교조 선생님들은 “참교육”이라는 간명한 슬로건을 내걸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결성 투쟁을 했다. 그리고 연중 수십만명에 달하는 중․고등학생들이 ‘제적’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투쟁에 함께하였다.

전교조 결성투쟁은 사실상 “참교육 쟁취 투쟁”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교조=참교육의 등식이 ‘심장’ 깊숙한 곳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은 것은 전교조 결성 주체들의 ‘평소 행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생들 입장에서 노동조합이라는 것이 뭔지 잘 몰랐을지라도 이 투쟁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이유는 자신의 학교생활을 통해서 ‘촌지를 받지 않은 선생님’, ‘체벌을 하지 않는 선생님’, 국어시간에 배우는 시(詩)는 입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던 선생님, 수업이 모두 파한 이후 항상 남아서 학생들과 함께 ‘교실청소’를 하던 선생님......... 바로 이렇게 평소 자신이 “가장 존경할만한 행실”을 하던 바로 그런 사람들이 전교조 결성의 맨 선두에 섰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전교조 투쟁에는 싸움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싸움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그리고 싸움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뭔가 “가슴 뭉클한 것”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그 싸움은 비록 노태우 정부에 의해 ‘물리적’으로는 패배했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심장 깊숙이 ‘도덕적’인 승리를 얻어낼 수 있었다.

하나의 투쟁이 정당하다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근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중에서도 우리의 투쟁은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궁극적으로 그들의 존엄을 옹호하고 확장하는 것이기 때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투쟁이, 투쟁의 방법과, 투쟁의 목표가 ‘정의로운 가치’를 실현하는 투쟁이 아닐 때, 지금과 같은 수세적인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우리는 더더욱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무원 노조의 파업을 지켜보며 - 무언가 ‘가슴’이 허전한 이유

공무원노동자가 총 140만명에 달하고,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의 조합원이 14만명에 이르고, 투쟁기금을 적립한 돈이 110억원에 이른다는 것은 싸움을 지켜보거나 지지하는 이들에게 ‘감탄’을 줄 수는 있을지언정 그 자체로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런 막강한 ‘규모’와 ‘조직력’ 그리고 ‘자금력’이 아니다.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들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기 때문도 아니(여야 한)다.

투쟁을 통해 ‘감동’을 받고 감화되는 것은, 과거 전교조 선생님들이 내걸었던 ‘참교육’이라는 슬로건이 실제의 실천 속에서 정확하게 참교육적 실천으로 이행되었기 때문에, 그리하여 우리의 오감을 통하여, 눈으로 직접 보고 체험하는 과정에 기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필자가 알고 있기로 당장 국회만 하더라도 근속년수가 몇 십 년이 된 청소부 아주머니들을 비롯하여 이런 저런 사무․공무 일을 보는 비정규직 ‘공무원’ 노동자가 즐비하다. 심지어 ‘정보의 투명한 공개’라는 차원에서 이번 17대 국회부터 새로 생긴 국회방송의 방송사 직원들도 거의 전부가 (국회의장에 의해서) 비정규직으로 채용되어 있는 실정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청 소속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이 또한 ‘비정규직’ 공무원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물론 필자가 과문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110억원의 투쟁기금을 모으고, 14만 명의 조합원을 가지고 있는 공무원노조에서 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하려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공무원 노조는 조직의 성격 자체가 ‘산별노조’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이들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가입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조직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지, 오히려 은근히 방조 혹은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이번 노무현 정부의 공무원노조법은 단체행동권만 없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대상자가 협소하기 때문에) ‘단결권’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는데 바로 주변에 존재하는 ‘단결권의 대상’인 비정규직을 단결권에 포함(조직화)시키기 위해서는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의문이다.

바로 주변의 조직대상자인 비정규직에 대해 실질적인 조직화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정부의 단결권 제약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 ‘논리적’으로는 여전히 타당한 지적일지 모르겠지만 그 싸움을 지켜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국민들의 입장에서 얼마나 그것을 ‘심정적’으로 지지해줄지 여전히 의문이다. 물론 ‘논리적’으로는 지지를 할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단순한 논리적 지지를 뛰어넘어 심장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화’를 이끌어내기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2004년 오늘 현재에 생각하는 전태일 정신 - <풀빵의 정신>

해마다 11월 13일이 돌아오면 우리는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생각한다. 그리고 《전태일 평전》을 통해서 접했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잊지 못하여 울컥 울컥하는 마음들을 어찌하지 못한다.

그러나 2004년 오늘 현재, 전태일 열사의 분신 기념일이 다가올수록 내 마음은 편하지가 않다. 그것은 우리 노동운동이, 내가 생을 걸고 존경하고 함께해왔던 바로 “나의” 노동운동이 정말로 “전태일 정신”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자괴감이 자꾸만 자꾸만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전태일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기업별 노조의 한계에 극한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점에서, 정규직/비정규직의 노동양극화 심화, 자본의 공세에 대한 국민여론(혹은 압도적 다수의 미조직 노동계급에 의한) ‘이데올로기적 고립’ 등을 느끼는 요즈음, 필자가 머릿속을 맴도는 전태일 정신은 <풀빵의 정신>이다.

평화시장의 어린 여공들이 저녁끼니를 제대로 먹지 못하자 전태일 열사는 자신의 차비를 몽당 털어 ‘풀빵’을 사준다. 그리고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본인은 청계천에서 멀디 먼 미아리까지 걸어간다. 전태일은 통행금지 시간에 걸려 파출소에서 자기를 반복하고 나중에는 파출소에서 양해를 해주었을 정도였다.

아마도 전태일 열사가 여공들이 저녁식사를 제대로 못 먹는 것은 ‘자본가’들의 악랄한 착취때문이었다는 선동만을 했다면 우리는 ‘심장’을 통해 흐느끼는 감동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혹은 여공들이 저녁식사를 제대로 못 먹는 것은 박정희 독재정권의 개발정책 때문이었다고 선동만을 했다면 역시 우리를 감동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론, 여공들도 그를 통해서 감동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린 여공들이 전태일과 ‘함께’ 나서게 되는 것은, 그리고 우리가 전태일의 삶을 통한 감명을 쉽사리 잊지 못하는 것은 전태일이 ‘참된 연대’는 <몸>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자신의 삶을 통해서 그야말로 온몸으로 보여주었으며, 기꺼이 자신의 것을 털어 아픔을 함께 할 때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그 깊은 공명이 결국 ‘단결’을 이루어내고 투쟁하는 주체들로 하여금 강렬한 자긍심과 도덕적 정당성을 심어준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80년대 우리가 마침내 군부독재를 격퇴할 수 있었던 것은 물리력도 아니었고, 무장력도 아니었다.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도덕적 정당성에 기반한 것이었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투쟁이었기 때문에 한번의 싸움이 비록 깨질지언정 ‘감화’를 받은 다른 사람들이 또다시 결합하고, 또다시 깨지고 또다시 결합하는...... 그리하여 깨지면 깨질수록 참여자가 늘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할 수 있었다.

2004년 오늘 현재, 전태일 열사의 분신 34주년을 맞이하여, 도대체 현재의 노동조합운동은 ‘청계천 평화시장의 어린 벗’들을 위하여. 그들을 목마른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함께 나누어질 ‘풀빵’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겨울에 다가오는 가을, 하늘은 높고 마음은 더욱 무겁기만 한 날들이다. 
 
<출처 : 진보누리, 천이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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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7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구두 2004-11-17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기본적인 생각은 공무원 노조를 인정해야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인정하는 것과 상관없이 정당성과 필요성을 세상에 알리고, 정부와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을 뚫고 누군가가 대신 만들어줄 수는 없는 거란 거죠. 정당성과 필요성을 인정받기 위해선 무던히 많은 고통의 수렁을 통과하지 않음 안 되겠죠. 힘내시길....

2004-11-18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