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1권
굽시니스트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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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이제 나이가 든 것일까? 아니면 세상의 흐름에서 조금씩 밀려나는 것일까? 요즘들어 읽는 책들은 왠지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책들이 유독 많은 것 같다. 굽시니스트의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또한 그 목록에 추가시켜야 할 작품이다. 

   일단 이 책의 위치 선정이 애매하다. 교양만화라 하기에는 너무 많은 패러디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마도 이 만화가 디시 카툰 갤러리에서 연재되었기 때문에, '변방문화(오타쿠, sub culture)'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2차 세계대전사'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그 변방문화를 이용한 패러디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만화가 화제가 됐고, 책으로도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그 문화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상당히 불편한 책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을 이 책으로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겐, 2차 세계대전사에 대한 지식과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수많은 패러디까지 알고 있어야 이 만화를 읽을 수 있다. 그런 수고를 덜기 위해서 각 장(章) 말미마다 패러디에 대한 해설을 달고 있지만, 편하게 읽기에는 조금 벅차다.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는 모르는 것을 친절히 알려주기 보다는, 아는 만큼 킬킬거리며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최규석의 『100도씨』와 같은 궤를 하기 보다는, 최의민의 「불암콩콩코믹스」, 이말년의 「이말년씨리즈」와 같은 궤를 한다.   

 


최의민의 「불암콩콩코믹스」 전선을 가다 中, 그리고 밑에 달린 '해설' 베플. 그냥 읽어도 재미 있지만, 밑에 깔린 사실들을 이해할 때, 그 재미는 걷잡을 수 없어진다.  

 

이말년의 「이말년씨리즈」 65화 동물의 읍내 中. 동물의 '왕국'을 패러디한 제목부터, 한참 문제시되는 학생들의 '빵셔틀', 김성모 만화, 꿀벅지, 속담, 명견 실버까지. 이말년의 패러디는 한계가 없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독자들이 느끼는 기복이 심한 편이다. 

 

   그러나 패러디만 일삼는다고 만화 자체의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2장 [폴란드 기병대의 영광]에서는 전쟁 역사속에서 인간과 함께한 말(馬)이 화자로 나와 독일군과 폴란드 기병대간의 전투를 서술, 인간, 가족으로서 겪는 전쟁의 고통을 말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12장 [레닌그라드, 가족]에서는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의 가족사를 들어, 전쟁이 개인에게 가혹한 운명을 주지만, 그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 또한 개인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패러디부분 또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 한에서 배꼽을 쥐며 낄낄거렸고. (개인적으론 스탈린-라이토 『데스노트』 패러디가 가장 웃겼다.)  

   리뷰가 갈팡질팡했는데, 지금도 갈팡질팡하다. 교양만화로써 이 책을 선택한다면 비추한다. 그러나 2차세계대전사와 지금 10, 20대들의 관심사와 변방문화(오타쿠, sub culture)를 함께 이해하고 싶으면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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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전히 매니악한, 그러나 재미 있는
    from 이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2009-11-25 13:18 
       역사는 구분되어 지지 않고 흐르는 것처럼, 1권과 2권을 따로 떨어뜨려놓고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리뷰는 이미 1권에서 거의 했고, 책의 형식 또한 1권의 틀 안에서 진행되어지기 때문에 똑같은 말을 할 수 없다. 대신 작가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본격 2차 세계대전 만화2권 내고 변명하는 만화]를 올린다. 이 만화를 읽으면 구매의사가 확실히 갈릴 것이라 생각한다.  ht
 
 
 
Fantastic Mr. Fox (Paperback, 미국판) Roald Dahl 대표작시리즈 2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 Puffin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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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너무 길들여진 것인가, Roald Dahl이 진보한 것인가... 

   Roald Dahl을 처음 알게 된 것은 『Matilda』였다. 워킹홀리데이로 처음 호주를 갔을 때 영어도 배울겸 독서도 할겸 중고 서적을 뒤적거리다가 발견한 "보물" 중에 단연 으뜸이었다. 『Matilda』는 어린이 소재의 영화중 그 유명한 조니 뎁과 팀 버튼의 조합으로 이뤄진 영화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와 버금 갈 정도로 영화로도 제작- 대니 드 비토가 감독겸 사기꾼이나 다름없는 개념없는 아빠로 나왔고 총명한 초능력자 마틸다는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막내딸 마리 윌슨이 열연했다- 되었으며 Roald Dahl의 이름을 알리는 대표작 중의 하나로 유명하다. 

   그림이나 활자체로 미루어 볼때 아동 소설 중에서도 그의 대상은, 부모가 bedtime story로 읽어줄 수 있는 3살부터 인물의 어리석음과 바보 같음을 가리키는 각종 비속어가 출현하는 것을 감안할 때 그것을 소화해낼 수 있는 12살까지인 듯 싶다. 

   주인공 Mr. Fox는 family man, 즉 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 가정이라 함은 금쪽같이 소중한 새끼들과 너그럽고 이해심 많은 부인이 이루는 사랑이 충만한 인간의 그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Mr. Fox는 아주 소중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가장으로 충실히 남편과 아버지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살고 있다. 문제는 그가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는 삶을 파괴하고 싶어 안달이나 달려드는 무리가 있다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그들은 형편없이 우스꽝스럽고 불결하기 그지없는 외모에 기이하고 혐오스러운데다 편집적인 식성을 지닌 한마디로 Roald Dahl의 소설에 등장하는 소위 "나쁜 캐릭터"들이다. 전혀 매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꽝 그자체인 세명의 캐릭터들이 Mr. Fantastic Fox와 죄없는 그의 가족을 무자비하게 소탕하려는 작전을 펼칠 때 그들의 냉혹함과 모진 탐욕에 혀를 내두르며 분개를 느끼는 것은 비단 아이들만이 아닐 것이다. 

   또한 탐욕에 눈이 먼 포학한 그들의 빈틈을 노려 자신의 가족을 비롯하여 자기로 하여금 피해를 입은 다른 동굴 동물 가족들-오소리, 두더지, 토끼, 족제비-까지 헤아리며 전장의 한복판에서 나쁜 무리들의 소굴로 정면 돌파하여 음식을 훔쳐내고 모두를 위한 만찬을 벌이는 장면에서 의기양양한 승리감에 도취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단편적으로 봤을 때 Roald Dahl의 소설이 지향하는 바는 권선징악에 있다. 그러나 악을 징벌하는 방법에 있어선 권선징악의 사자성어처럼 관용적이지 않다는데 그의 소설이 갖는 창의적인 매력을 찾을 수 있다. 그의 소설에 나오는 착한 캐릭터들은 결코 약하지 않다. 이분법적으로 흑과 백으로 나눈다면 천사의 날개처럼 혹은 겨울밤 눈처럼 순백으로 비쳐지기보다는 다소 불분명한 색채를 띤다고 볼수 있다. 순수히 악당에게 당하며 견디는 소극적인 기질의 소유자가 아니라 다소 부적절하고도 얄궂은 또는 파괴적인 방법으로 속 시원하게 악당들을 처단해버린다. 총명함과 선량함, 순수함을 가진 동시에 적잖은 잔임함을 겸비한 번뜩이는 기지로 나쁜 캐릭터들과 그 환경에 대항해 실랄한 유머를 선사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대비해 본다면, 주로 그릇된 부모나 어른, 기존의 제도권이나 기득권에 대한 부조리함에 대한 반골 기질과 상통된 맥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젠 내가 이제 나이가 든 것일까...  

   잔인한 농부들에도 불구하고 Mr. Fox가 그들의 선량한 수확을 훔치는 도둑이라는, 캐릭터가 도입부부터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결국 "도둑" 아닌가...  

   정당한 노력없이 남의 것을 습득하는 도둑놈을 과연 끝까지 긍정하며 읽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농부들로 인해 피해를 본 이웃 가족들에 대한 Mr. Fox의 선량함-특히, 육식을 하지 않는 토끼 가족을 위해 당근을 챙기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Mr. Fox가 도둑이라는 의식은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많은 것을 가진 지상의 강자인 농부들에 의해 자행된 지하의 약자들에 대한 몰인정한 약탈 장면-특히 트랙터로 멀쩡한 언덕을 끔찍하게 황폐화시키는 자연학살-에서 그 주체와 대상이 전이, 긍정의 힘을 끌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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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화] 『판타스틱 Mr. 폭스』 시사회 이벤트
    from 이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2009-11-27 09:14 
       『Fantastic Mr. Fox』 리뷰를 쓴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책이 언제 영화가 되었나요? 게다가 웨스 앤더슨 감독에 조지 클루니, 메릴 스트립, 빌 머레이(@.@)라니!!      도대체 어떤 영화가 나왔을지 궁금합니다. 예고편을 보니 책보다는 덜 위악적인 것 같아 다행입니다. 『찰리와 초콜렛 공장』이후로 그럴싸한 Roald Dahl원작의 영화가 나올 것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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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영어 원서로 접했으나, 후에 『On Love』라는 딱딱할 수 있는 영문 제목이 서정적인 시구로 탈바꿈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우리글 개정판 제목에 이끌려 또다시 읽게 되었다. 줄거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화자인 "나"가 클로에 라는 여자를 만나면서 사랑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소설의 구성 단계인 위기나 절정 부분을 쉽사리 감지할 수 없는 전개 방식으로 속도를 내어 한번에 끝까지 박차를 가해 읽기는 쉽지 않았으며, 책을 완전히 내려 놓고 나서 과연 이 책이 무엇을 얘기하려 했는가에 대해서 한마디로 개념화 시키기는 어려웠기에, 픽션이라기 보단 알랭드 보통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사랑에 대한 essay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집어들었던 책의 결말 부, 연인이었던 클로에가 자신의 직장 동료 윌에게로 떠났음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절망감과 모진 복수의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하려는 대목에 이르렀을 때서야 겨우 이게 "소설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책은 essay와 novel의 위치를 오간다. 장르 상 소설의 형식을 빌려왔을 뿐 내용은 지금까지 읽었던 연애 소설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남녀간의 애절하고 격정적인 연애 이야기의 상당한 허울을 벗어버리고 온전히 인간이 인간에게 가질 수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그 열정을 주고 받는 "관계"에 중점을 두었다.  

   또한 이 책에서 양적으로 우세하게 차지하고 있는, 화자가 끊임없이 이끌어내는 자신의 사랑, 그것이 미치는 감정과 정신 그리고 육체에 대한 성찰적인 분석이 인상적이다. 사랑이라는 '현상'에 대한 철학적 해부와 분석, 과연 사랑에 '구조'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는지도 몰랐던 나로서는 처음부터 시종일관 중심을 잃지않고 그것을 살펴보고 헤아려 짐작해가는 화자의 놀라운 탐구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른바 논문처럼 사랑과 그 관계에 관한 범위의 내용들을 전반적으로 다루어 산만할 수 있는 내용을 각 장마다 제목을 붙여 명료하고 깔끔하게 쓰여졌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현상에 대한 심층적 구조를 이해를 하기에는 어렵지 않았던게 아닐까 싶다. 그런면에서 사유하게 만드는, 의미있는 문장들은 심심찮게 발견되는 재미역시 소소했다.   

 

   
 

   우리는 불안에서 벗어나려고 운명이라는 것을 만들어 낸다. 우리가 비행기에서 누구를 만나고 만나지 못하는 것에는 우리가 부여하는 의미외에 아무런 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생기는 불안. 즉, 우리의 사랑이 보장 받지 못한다는 불안에서 벗어나려고.  

(낭만적 운명론 中)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우리 내부에서 찾을 수 없는 완벽함을 찾으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을 통해 인간 종에 대한 불확실한 믿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이상화 中)

 
   
   
 

   우리는 타락한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이상적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서 사랑을 한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어떤 면에서 나보다 낫다고 믿어야만 한다면, 상대가 나의 사랑에 보답을 할때 잔인한 역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묻게 된다. '그/ 그녀가 정말로 그렇게 멋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나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마르크스 주의 中)

 
   
   
 

   '아름다움은 행복의 약속이다' 스탕달은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클로이의 얼굴은 내가 좋은 삶과 동일시하는 특질들을 암시했다.  그녀의 코에는 유머가 있었고, 주근깨는 순수를 이야기했고, 치아는 관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해버리는 당돌한 태도를 암시했다. 

(아름다움 中)

 
   
   
 

   나는 너를 마시멜로한다고 말하자, 그녀는 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것이 자기가 평생 들어본 말 중 가장 달콤한 말이라고 대답했다. 그때부터 사랑은 우리에게 단순한 사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입에서 맛있게 녹는, 지름 몇밀리미터의 달콤하고 말캉말캉한 물체였다.  

(사랑 말하기 中)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 자신에 대한 느낌은 달라진다.  우리는 조금씩 남들이 우리라고 생각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자아는 아메바에 비유할 수 있다.  아메바의 외벽은 탄력이 있어 환경에 적응한다.  부조리한 사람은 나에게서 부조리한 측면을 끌어낼 것이다.  그러나 진지한 사람은 나의 진지한 측면을 끌어낼 것이다.  누가 나를 수줍어한다고 생각하면, 나는 아마 결국 수줍어하게 될 것 이다.  누가 나를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계속 농담을 할 가능성이 높다.  

(나의 확인 中)

 
   
   
 

   사랑의 종말과 삶의 종말 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후자의 경우에는 그래도 죽음 뒤에 우리가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위안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계의 끝이 반드시 사랑의 끝은 아니며, 더군다나 삶의 끝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아는 연인에게는 그런 위안이 없다.  

(행복에 대한 두려움 中)

 
   
   
 

   일은 희비극의 시나리오로 풀려나갔다. 한편에는 여자를 천사와 동일시하는 남자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사랑을 병과 거의 동일시하는 천사가 있었다.  

(수축 中)

 
   
   
 

   사랑의 거부가 종종 도덕적 언어, 옳고 그름의 언어, 선과 악의 언어의 틀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마치 거부하거나 거부하지 않는 것,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이 당연히 윤리의 한 지류에 속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부를 하는 사람에게는 악하다는 딱지가 붙고, 거부를 당한 사람은 선의 화신이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중략)  사랑의 거부가 아무리 불행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사랑을 이타성과 동일시하고 거부를 잔인성과 동일시할 수 있을까?  정말로 사랑을 선과 동일시하고 무관심을 악과 동일시할 수 있을까?  (중략)  사랑의 종말은 이타주의와 이기주의, 도덕성과 비도덕성 사이의 충돌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두 충동 사이의 충돌로 나타난다.  

(선악을 넘어서 中)

 
   

 

   이런 글을 차근차근 곱씹어 되새기다 보면, 사랑에 한번쯤 빠져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회의와 의문에 대한 결코 의식하지 못했거나 언급되지 않는 그 복잡 미묘한 순리에 대한 근본적인 진리, 즉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하겠지만 현재 진행 중이거나 혹은 과거완료형 사랑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모순과 결점에 대한 강한 공감대로서 위안을 주는 '살펴보기'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에는 사랑했던 두 명의 남녀가 보인다. 지나간 사랑을 붙들려고 애쓰는 남자의 애원에 아무런 답도 없이 지겨운 얼굴을 보이며 시큰둥하게 떠나는 여자의 모습은 결코 우리에게 소원하거나 낯설지 않은 그림이다. 때로 붙들기도 하고 떠나기도 했던 주인공이 우리였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사랑은 그렇게, 별다른 사건이나 큰 이유없이 우리에게 그 변덕스러움을 드러내고 마는것이다.

   그런 면에서 알랭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남녀의 격한 감정의 진이 묻어나는 질퍽하고 강렬한 여타의 로맨스 소설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우리가 하는 평범한 사랑에 가장 근접한 모습을 띄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비범하지 않은 우리들처럼 소설속 화자도 결국 달갑지 않지만 용인해야 하는 사랑의 시들음까지, 그 현상들의 모든 장점과 약점, 강점과 결점을 받아들이고 이내 낙천적인 마음으로 새로운 사랑을 다시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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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름 - 포켓북 한국소설 베스트
구효서 지음 / 일송포켓북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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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다  [형용사]
1. 서로 알지 못하여 어색하고 서먹서먹하다.
2. 사물이 눈에 익지 아니하다.

(출처: 표준 국어 대사전)

   구효서의 소설 『낯선 여름』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굳이 국어사전을 펼칠 필요는 없다. '낯설다'의 의미는 우리 모두 알만큼 '낯선' 단어는 아니니까.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왜 작가는 제목에 '낯선'이란 단어를 선택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작가 구효서에게 '낯설다'는 어떤 의미였을까? 

   소설의 인물은 효섭, 보경, 민재, 동우다. 효섭과 민재는 그저 아는 사이일 뿐이고, 민재와 동우는 부부사이다. 이야기는 효섭의 회상과 보경의 편지가 교차되면서 진행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보경의 시점으로 진행되면, 효섭이 보경을 때론 회상하고 때론 다른 이야기를 꺼내며 진행하는 식이다. 

   소설은 다분히 통속적이다. 보경은 이상적인 가정에서 살고 있는 여자다. 그녀에게는 일요일 아침에 스파게티를 준비해주는 남편이 있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다. 모든 것이 자신에게 맞추어져 있는 삶, 그래서 그녀의 가정은 더할나위 없이 완벽하다. 그러나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그 완벽함 앞에서 그녀는 그녀자신도 모를 이유없는 눈물을 흘리고 우연히, 효섭을 만난다. 그녀가 갑자기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 앉았을 때, 우연히 운좋게 그녀를 도와준 사람이 효섭이었고, 후에 그녀가 집에서 또다시 다리가 풀렸을때 그녀는 남편 대신에 효섭을 생각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남편은 항상 고마운 존재였지만, 효섭은 그녀가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녀를 '나쁜년'이라 쉽게 단정할 수 있을까? 완벽한 일상속에서 갑자기 찾아오는 균열, 그 균열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울림은 불가항력이다. 이것은 남편이나 자식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닌, 본인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일이다. 보경도 그런 삶의 매너리즘에 빠진 것 뿐이다. 그저 그녀의 그 작은 틈새에 효섭이 들어가 있었을 뿐. 

   효섭은 사랑다운 사랑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사내다. 그는 몇 몇 여자들과 사귀었으나 그녀들과 헤어진 후에도 그게 사랑이었는지 의심스러워 한다. 그녀가 진정 사랑에 빠진 여자는 결혼 첫날, 황망스럽게도 갑자기 죽었다. 그것도 자다가. 죽음같은 잠에 빠진 후 아침에 일어났을 때 사랑하는 여인이 죽어있다면, 그 충격은 얼마나 클까?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다. 그 일을 겪은 후 그는 우연히 보경을 만난다. 

   매 해, 때마다 찾아오는 그 해 여름은 그들에게 이상했다. 친숙한 여름이 아닌, '낯선' 여름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생각하지 않던 효섭에게도, 완벽한 일상에서 살아가던 보경에게도. 그저 갑자기 찾아온 일상의 균열 속에서 그들은 낯설게 만나고 낯선 관계를 가졌다. 세상이 '불륜'이라 부르는 그들의 관계는 결코 친숙해 질 수 없는 '낯선' 관계다. 그 모든 게 이 여름에 시작됐다.  

   『낯선 여름』은 분명 유치하고 통속적이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뭐 안그런가? 대단한 것 하나 없는 유치하고 통속적인 인생이다. 효섭과 보경은 그들의 유치하고 통속적인 일상에서 그들만의 '새로운' 추억을 만들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박수쳐줄 일이지만, 그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 효섭 주위에 맴돌고 있는 민재와 보경의 남편인 동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랑은 윤리로 재단할 수 있을까? 개인과 개인이 걸쳐 있는 사랑에 교집합과 여집합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이 통속소설은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세상 엘리트들의 표본추출 같은 동우(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긍정적인 의미로서다. 그는 정말 이상적인 남편이자 아버지다)는 소설의 마지막, 효섭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 삶 전체를 이성과 배려로 재단한 그도 사랑 앞에선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랑은 이성이나 배려같은 것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고. 아내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던 그가, 그녀의 행복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할 때의 그 충격은 얼마나 컸을까. 사랑은 당사자들을 기쁘게도 하지만,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우리는 그 상처를 '배신감'이라고 한다. 

   어쩌면 이 모든 게 '결혼'이라는 제도 때문에 생긴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결속해주는 것은 결혼이라는 제도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여있으면, 다른 사람을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는 안된다. 사랑이 제도가 되면서 윤리가 되었다. 우리에겐 간통죄라는 법적 구속력까지 있다. 아니, 어쩌면 제도때문이 아니라 사랑을 소유하고 싶은 인간의 욕심때문이 아닐런지. 

   너무 쓸데없는 생각까지 해버렸다. 『낯선 여름』은 이들의 여름뿐 아니라, 내 감정, 생각도 낯설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가 선택한, '낯설다'는 단어는 이런 모든 감정을 설명하기에 조금 부족한 것 같다. 여러 단어를 생각해 봤지만, 우리말에 맞는 단어는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딱 맞는 단어는 아니지만, 내 느낌과 어느 정도 맞는 단어를 영어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 그 단어는 'eerie'다. 

eerie [iri]
strange, mysterious and frightening

[출처: Oxford Advanced Learner's Dictionary] 

 

* 덧붙임 

   구효서 작가의 『낯선 여름』을 읽게 된 계기는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때문입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낯선 여름』을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홍상수 감독은 항상 자신의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드는데 데뷔작만큼은 예외였습니다. 그래서 궁금한 마음에 원작을 읽었습니다. 

   소설은 영화와 흡사한 게 거의 없습니다. 등장인물의 이름 정도? 그리고 아주 희미한 설정들 뿐. 나중에 기회가 되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낯선 여름』을 같이 언급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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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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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체면과 제도는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게 하는 고유한 '발명품'이다. 자칫 본능으로만 흘러갈 수 있는 인간이 자제력을 발휘해 불필요한 싸움을 줄일 수 있는 것은 인간 이성의 힘 또한 크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와 체면 때문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젊은' 베르테르는 롯테에게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롯테에겐 알베르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테르는 롯테에게 사랑을 갈구하지만, 그녀는 거절한다. 베르테르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살한다. 

   롯테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주체못하는 베르테르의 모습엔 솔직함이 드러나 있다. 일반 보통사람들이라면, 그런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살아가던가, 아니면 몰래 불륜을 저지르던가 할 테지만, 베르테르는 당당하게 자신의 사랑을 밝혔다. 인간 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제도와 체면을 베르테르는 부정하고 속에 감춰진 감정을 드러냈다. 

   어떻게 보면 철딱서니 없는 젊음의 혈기일 수 있으나, 그가 롯테에게 향한 감정은 진실된 감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가식적으로 숨기보다는, 남몰래 만나 은밀하게 드러내기 보다는, 직설적으로 드러냈다. 체면을 위선으로 전락시키기 보다는 그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히 반응했다. 

   인간이 인간답다는 명제는 어떻게 해야 성립되는 것일까? 감정을 이성으로 통제하는 것이 인간다움까, 아니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인간다움일까? 감정을 앞세운 베르테르는 결국 죽는다. 그는 죽을 수 밖에 없다. 베르테르와 롯테 그리고 알베르트를 둘러싸고 있는 질서를 파괴시키기엔 베르테르는 너무 무력하다. 베르테르는 알베르트에게 빌린 총으로 머리를 쏴 자살한다. 마치 롯테때문이 아니라 알베르트 때문이라고 시위하는 것처럼. 그는 바로 죽지 못하고 긴 시간동안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지만, 그 생생한 생명력이 넘치는 분위기와 문장들은 시간을 견디어내 아직까지 읽히고 있다. 내가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감정. 그 감정의 발산은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난 얼마나 그 감정을 감추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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