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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11월 26일,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에 다녀왔다. 


   2014년에 부모가 된 것은 벅찬 기쁨보다는 무거운 부채가 더 컸기에, 여유가 생기는 대로 바로 분향소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더랬다. 쌍둥이들이 태어난지 100일이 거의 되어 감에 따라 육아에 어느 정도 익숙함이 생겼기도 하거니와, 마침 장모님이 집에 오신 김에 (잘 부탁드린다며 말씀드리고) 바로 안산으로 향했다. 1시간 30분 가량 지하철을 타고 초지역에 내려 합동분향소가 위치한 화랑유원지로 걸어갔다. 날은 맑고 포근했지만, 계절을 이기지 못한 은행잎들은 악취를 풍기며 뒹굴고 있었다. 분향소에 다가갈수록 도로를 수놓은 세월호 관련 현수막들은 각자의 아픈 사연과 이웃들의 위로가 담긴 말을 짧은 문장으로 절절히 담아내고 있었다. 조문객들을 많이 볼 수는 없었지만, 대신 수많은 의경들이 분향소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어서 그렇게 적막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분향소.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나서, 고통과 아픔이 어느 정도 무뎌진 후에 남은 것은 정치적 구호나 경제적 논쟁 같은 실체 없는 허상에 관한 것들이었다. 무언가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것 같지만, 여전히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에 잠겨 있으며, 여전히 아홉 명의 실종자가 바다에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렇다보니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지겹다"거나, 심지어 "유행에 뒤떨어진" 일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나도 어느 정도는 이런 생각에 물들어간 것 같기도 했다.


   분향소에서는, 그러나, 이런 모든 논쟁들이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수많은 영정사진 밑에는 아이들의 엄마, 아빠, 형, 누나, 동생, 친구, 애인들의 편지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어서 돌아와 예전처럼 티격태격 놀자는 동생의 편지도 있었고, 자신이 그동안 모질게 군 것에 대해 미안해하며 눈물에 글자가 번진 누나의 편지도 있었다. 수학여행을 떠나서 아직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는 거라 생각하는 엄마의 편지도 있었고, 아직 바다에 있어 춥겠지만 기다릴테니 천천히 올라오시라는 아들의 편지도 있었다.


   세월호를 잊지 말자고 한다.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나? 아마도 세월호는 삶이라는 것이 아닐까? 거창한 정치구호나 치졸한 세금협박이 아닌, 그래도 여전히 삶을 견디어내는 우리 이웃들의 삶 말이다. 


   거리의 현수막 중 하나는 이렇게 외쳤다. "지겹다고 말하지 마세요. 자식 일이 지겹습니까?" 분향소에 있는 편지엔 이런 글귀가 있었다. "언니, 사람들은 무섭게 제자리로 돌아갔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너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어." 고작 한 번 분향소에 들러 조문을 했다는 이유로 이 모든 부채를 탕감했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겠다. 그저 너무도 앳된 아마도 아이들의 중학교 졸업사진에나 실렸을 증명사진이 영정사진으로 올려져 있는 기막힌 현실을 직시하면서, 잊지 않고 잊지 않고 잊지 않으며 살아갈 것이라고 말하는 것 밖에는.





   그리고 저녁. 결혼을 며칠 앞둔 친구를 만났다. 하필 결혼식과 아이들 100일이 겹쳐서 부득이하게 결혼식에 참석 못하게 돼 미리 축의금을 전달하며 덕담 비스무리한 것이라도 전하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무례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흥분했던 그의 말을 복기하자면, 내 결혼식에 왜 못오느냐. 그날이 아이들 100일이 정확하냐.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시간을 짜내 결혼식에는 와서 단 5분이라도 있는 한이 있더라도 얼굴 보고 축하한다고 하고 그 자리에서 축의금을 내는 게 예의 아니냐. 왜 이런 개인적인 자리를 만들어 축의금을 주는지 모르겠다. 이럴거면 전화로 계좌번호를 물어봐서 이체하는 게 옳은 것 아니냐. 이건 예의가 아니다.


   뭐 이런 얘기였는데, 처음엔 농담인줄 알았는데 갈수록 얼굴에 핏대를 세우며 비난과 힐난의 언어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진짜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결혼식에 시간을 짜낼 수 없어서 오늘 무리하게 짜내 얼굴이라도 마주하며 미리 축하한다는 말을 전한 게 그렇게 무례한 행동이었나. 아직도 모르겠다. 그렇게 예의를 찾을 거면 왜 본인은 결혼 일주일 전에 카톡으로 모발일 청첩장 하나 보내며 결혼식에 오라고 했는지. 이건 예의 바른 것이고 내 행동은 무례한 것인지.


   어쩌면 그날 지독한 야근과 잔업으로 지쳐있다 숨어 있던 짜증이 돌출돼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학사 졸업 후 근 10년 만에 박사학위를 따 그동안 숨겨왔던 자부심을 드러냈을 수도 있겠지. 집에서 육아나 하는 백수 주제에 감히 바쁘고 피곤한 박사님을 따로 불러내 결혼식에 못온다는 통보를 하는 것에 대해 괘씸죄를 적용했을 수도 있겠고. 그도 아니면 일면식도 없는 세월호 분향소에는 시간을 짜내 가면서, 왜 자신의 결혼식에는 그정도 성의를 보이지 않느냐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참 오래된 친구라 생각했는데, 내가 그동안 그를 참으로 표피적으로 만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세월들이 서로 착각속에 빠진 시간들이었다는 것이란 생각이 들자 인생 자체가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이제사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란 이름으로 예의를 짓이겨가며 행하는 폭력에 그동안 얼마나 진저리치며 살아왔던가. 결국 이렇게 되는 것도 인생이겠지. 김훈 선생이 말하길, 인간관계는 강과 같다고 했다. 강이 한 번 물길이 틀어지면 다시 만날 수 없듯이, 인간관계 또한 그와 같다고 했다. 물길을 되돌리려는 노력이 허망한 것처럼,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한 번 틀어지면 그대로 흘러가게 놔두는 것이 이치다. 


   안그래도 생선회 밑에 깔리는 무보다 얇은 게 내 인간관계인데, 어제부로 또 한 명을 정리하게 됐다. 한 친구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나중에 나이들어서 친구 없으면 고생한다"며 있을 때 친구들 잘 대하라는 말을 했는데, 친구가 무슨 보험도 아닐뿐더러, 이런 무례한 녀석들을 보험이라고 믿느니 매주 로또를 긁는 게 더 확률이 높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뜬금없지만, 연수 형 말이 맞았다. 글은 쓰는 것 자체로 위로가 된다는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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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8 0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28 0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28 0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Tomek 2014-11-28 08:24   좋아요 0 | URL
위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달걀부인님 덕분에 정말로 많이 풀렸어요.
아이들 예쁜 짓 보는 재미로 살고있어요. ^^

stella.K 2014-11-28 1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햐~! 김훈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군요.
그렇지 않아도 틀어진 인간관계로 인해 저도 적잖이 신경 쓰였는데
김훈 선생이 그런 말을 했다니 은근 위로가 되네요.
전에 무슨 예능 프로를 보니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같이 앉아서 밥만 먹어도 좋다고 했다던데 그러기엔 토멕님이나
저나 아직은 젊은가 봐요.ㅋ

쌍둥이를 두셨군요. 이제 백일이라니 막 예뻐지면서 힘들어 지시겠습니다.
힘내시고, 튼튼한 아빠 되십시오.^^

Tomek 2014-11-28 15:52   좋아요 0 | URL
제가 오해했던 것도 있을테고, 그가 오해했던 것도 있었겠죠. 이젠 지난 일이니 깔끔하게 리셋해야죠. ^^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4-11-29 0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쌍둥이 아버지가 되셨군요~ 축하합니다!
예의를 차리지 않는 자가 예의를 말할 자격이 있을까요?
모바일 청첩장을 보낸 사람이 적반하장도 유분수군요.ㅠ
저는 그런 청첩을 보내면 결혼식에도 안 갑니다.ㅋㅋ

Tomek 2014-11-29 06:50   좋아요 0 | URL
각자의 사정이 있어서 그런 반응을 보였겠죠. ^^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난 지 만 20일이 흘렀는데, 솔직히 아직까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저 밤마다 영아산통 때문에 1시간 가량 비명을 지르듯이 울어댈 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그저 끌어안고 미안하다는 말밖에 중얼거릴 수 밖에 없는, 염치없고 무력한 내가 아비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을런지... 


   결국 인생은 스스로가 감내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이 어린 아이들이 온몸으로 겪고 있는 셈인데, 그게 그렇게 안쓰러울 수 없다. 이게 부모된 사람의 마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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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4-09-15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을 보니 쌍둥이신가봐요.아이들이 태어난것을 축하드려요^^

Tomek 2014-09-15 11:4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둥이들 때문에 하루 하루가 전쟁이예요. ㅠㅠ
 

새 가족들을 맞이할 준비가 얼추 끝나간다. 


맘에 들어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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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8-18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아가들이 태어나는군요. 축하드립니다. 아내분께서 뭘 저리 정성들여 만들고 계실까요? 침대도 정말 예뻐요.

Tomek 2014-08-19 09:27   좋아요 0 | URL
촛점책 만들고 있어요. 침대에 죽 늘어놓으면 아가들 눈 발달에 좋다고 해서... 물론 아내님께서 만드시는 중이고 저는 구경만 하고 있습니다...

얼추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끝이 아니네요. 준비할 게... >,.<

고맙습니다. :)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애를 쓰고 기를 써도 마음 먹은대로 잘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속으로는 타들어가는 마음을 부여잡으며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평범한 분들의 모습을 볼 때면 진정 존경심이 솟아오른다. 힘들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라지만, 때로는, 정말로, 삶은 가혹하다는 것을 느낀다.


   공중파 뉴스를 끊은 지 일주일이 넘었다. 뉴스가 더이상 NEWS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특보랍시고 계속 같은 상황만 보여주는 뉴스들. '사고'가 아니라 마치 그 누구라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재난'으로 보도하는 뉴스들. (아니, 재난으로 몰아가는 해경과 언딘.) 진척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매번 재방송처럼 똑같은 상황만을 보여주는 뉴스들. 보도는 없고 중계만 일삼는 뉴스들. 더 이상 볼 이유가 없었다. 아마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세월호 관련 뉴스들에 국민들을 지치게 만들어 더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게끔 만들려는 누군가의 술책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로.


   그나마 취재하고 탐사하고 보도하는 방송은 JTBC가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사고 이후 항상 수면에 잠겨있는 새로운 사실들을 찾아 알려주었으니까. 그런 JTBC에서 어제 또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민간인 잠수사들이 발견한 시신을 언딘이 개입해 방치하게했다는 뉴스.



   이젠 뭐가 터져나와도 경악할만큼 놀랍지는 않지만, 이 뉴스를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은 사고 초반에 들렸던 수많던 유언비어들이 더이상 유언비어가 아니게 된다면, 난 그 사실을 감히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홍가혜라는 미친 여자가 세월호와 관련한 온갖 유언비어를 다 끌고와 MBN과 인터뷰를 했을 때, 그 모든 설마들이 사실이었다고 얼마나 놀라고 분노했었던가! 하지만 곧 그가 허언증 증상이 있으며 인터뷰 내용은 사실에 입각한 게 아니라 어디선가 들은 얘기라는 말을 들은 순간,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에 얼마나 가슴을 쓸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제 그 사실들이 또 뒤집히려고 하는 것 같다.


   솔직히 두렵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실들이. 하지만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여야겠지. 떠난 아이들이 알려준 그 짐을,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버텨야만 할 것이다.


   아마도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저 위에 계신 잃을 게 많은 분들은, 지키기 위해 상상도 못할 노력을 할테니까. 그리고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오랫동안 잊어버린 우리들 또한 관성의 법칙에 밀려 쉽게 방향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변화시키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게 살아남은 자의 의무일 것이다.


   잊지말고 분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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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벌써 10년도 훨씬 지난, 2001년 911테러가 일어닜을 때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고 기가막혔었던 그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당일인지 아니면 며칠 후였는지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테러 여파로 박찬호 선발 등판 경기가 MBC에서 결방이 됐었다. 그 때, 친구들 몇 명이 그깟 테러가 무슨 난리라고 박찬호 선발경기가 결방이 되냐고 불만을 토로했었다. 난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친구들을 비난했었는데, 그 친구(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럽다)들은, 우리랑 상관없는 저 먼나라 사람들 죽은 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고 오히려 날 비난했었다. 그 이후로 난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쉽게 입을 열지 않는 성격이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도저히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다.


#2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멍하니 있다가 울컥하고 손가락을 깨물며 울음을 참는 것은, 아직 피워보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의 미지의 가능성에 대한 안타가움일 것이다.


#3

내가 '죽음'이라는 관념을 처음으로 실감했던 것은 '소설'에서 였다. 1987년 국민학교 5학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읽었던 때였다. 소설에서 여주인공 은주가 성적 스트레스로 자살을 하고 남주인공 봉구가 은주의 죽음 이후에 대해 짤막하게 서술한 부분이었다.


"이틀이 지났다. 봉구는 자기가 밥을 먹고 학교에 나오고 밤이면 잠을 잔다는 사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은주의 몸은 차디차게 식고 그것도 모자라 병원의 냉동실에 들어가 있는데 봉구는 옷을 입고, 이불을 덮고, 걸어다니고 있었다."


그 때 처음으로,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 할지라도, 살아있는 사람은 살기 위해 그 지난한 짓거리를 해야한다는 삶의 연속성에 대해 진저리를 쳤었던 것 같다. 죄책감에 슬픔에 분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감정이 순환된다 하더라고, 결국에 인간은 먹고 싸고 자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냉정히 말해 나와 상관 없는 사람들의 일인데도 이런데, 당사자들은 얼마나 지독한 자기혐오에 부딪히며 이 지옥같은 엿새를 살아왔을까. 그리고 앞으로 이 긴 나날들을 살아가야 할까...


#4-1

유년 시절의 기억 하나. 영화 <쿼바디스>를 보면 네로 황제가 자신이 방화한 로마를 보면서 시를 읊는 장면이 나온다.


#4-2

유년 시절의 기억 둘. 영화 <황야의 독수리>를 보면 일본군 지휘관이 부하들이 부녀자들을 강간하는 장면을 보며 시를 읊는 장면이 나온다.


#4-3

그래서인지 사고 후 여러 공무원들의 무뇌아적인 행동들 중에서도 내게 있어서 가장 큰 분노를 일으킨 사람은 이번 사고를 보고 시를 읊은 김문수 경기도 지사이다. 역사적으로도 예술가적 심성이 높은 군주는 나라를 말아먹는 데 일가견을 보여주었는데, 김지사는 이번 기회에 은퇴하시고 차기 신춘문예나 노려보심이 국가를 위한 일이라 생각한다.


#5-1

내가 10대 였을 때 벌어졌던 대형 참사들. 서해 훼리호 침몰,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가스 폭발 등... 그 당시에 내가 느꼈던 감정은 분노였다. 꼰대새끼들이 국민들 다 죽이네!


#5-2

지금, 난 더 이상 분노할 수 없었다.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분노하던 꼬마는 어느새 꼰대가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꼰대새끼가 꽃 같은 아이들을 다 죽이네! 난 이런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6

정말로 미안하다. 얘들아. 이렇게라도 사죄를 하고 싶었다. 어른들 말 잘 들어 사고를 당한 너희들. 그래서 더 면목이 없다. 정말로 미안하다...


#7

2001년에 박찬호 선발 등판 경기 중계가 취소되어 분노했던 너희들. 이번에는 또 무슨 프로가 결방되어 분노했을지 모르겠다. 아니, 아니겠지... 


"우리 인간으로 살아가기 힘들어. 힘든 거 아는데, 괴물이 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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