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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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나중에 당신이 아주 많이 슬퍼했으면 좋겠어. 슬픈 영화 말고 재밌는 영화를 보다가도 문득 내 생각나서 펑펑 울었으면 좋겠어.  

 

   영화의 시작은 한 여인의 저주와도 같은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빗방울, 젖은 머리, 감지 않은 눈, 싸이렌소리, 남자의 비명 그리고 화면에 등장하는 타이틀 'M'. 영화는 심상치 않은 기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위의 내레이션은 자막으로도 보인다. 이 저주는 타이핑된 유서처럼 보이고, 영화는 계속 불길한 기운이 감돈다. 

   이명세 감독의 『M』은 전작 『형사』의 실패 후에, '절치부심'해서 만든 영화다. 여기서 '절치부심'이라고 쓴 이유는, 그가 이번에는 작정하고 '알기 쉬운'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영화는 『형사』에서 보인 감독의 독단성이나 나르시시즘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야기가 단선적이지도 않고(물론 장르 특성상 좀 꼬아놓은 부분이 있지만, 그렇게 불편한 정도는 아니다) 계속되는 반복으로 이야기의 비밀이나 반전을 쉽게 따라갈 수 있게 했다. 내용 또한 먼나라 얘기가 아닌, 설레고 시린 첫사랑 이야기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 실패할 이유가 없어보이는데도 실패했다. 우리들은 왜 이 영화를 외면했을까?    

 

 

   영화의 제목은 『M』이다. 이 제목은 많은 것을 암시한다. 영화 초반 미미(이연희)가 민우(강동원)를 봤을때, 미미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을 지금부터 Mr. M이라고 부르겠습니다. M은 제가 좋아하는 첫 글자거든요. 모델리아니, 모짜르트, 달, 문." 이 대사는 맥거핀이다. 이 영화에서 M이 지칭하는 것을 찾는 것은 재미있지만, 그게 큰 의미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영화 내용을 언급하면서 M을 한 번 찾아본다면 이렇다. 

   최연소 신춘문예 당선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민우(Minwu)는 자꾸 누군가가 자기를 쫓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는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치료제(Medicine)를 받는다. 그를 쫓아다니는 미미(Mimi)는 우연히 민우가 카페에서 전화통화하는 것을 듣는다. 민우의 어머니(Mother)가 사채(Money)를 빌려썼다고 휴대전화(Mobile Phone)로 연락을 했다. 민우는 출판사 편집장을 만나 선인세(Money)를 달라고 부탁한다. 민우가 어딘가 가는 길을 미미가 쫓아가다가 거울(Mirror)속에서 길을 잃고 뤼팽-바에 들어간다. 바의 마스터(Master, 전무송)는 미미에게 먼저 와 있는 민우쪽으로 자리를 안내하고 둘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민우는 술에 취해 이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끊어진 기억(Memory)을 찾아 다시 그 뤼팽바를 찾는다. 마스터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하고 민우는 친구에게 온 전화를 받고 고향 결혼식(Marriage)에 가고 그곳에서 미미를 기억해내고 수소문한다. 그러나 미미는 오래전에 미쳐서(Mad)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M'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고, 이 영화 전체를 설명하는 열쇳말일 수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M들은 이 영화를 나타내는 장치다. 이명세(심지어 감독 이름도 M이다)는 이번 영화를 M이라는 '글자'로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문자와 이미지는 서로 다른 것이지만, 그것들이 사물을 불러일으키는 작용은 같다. '말'이란 동물을 말이란 '글자'를 보고 그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나, 말의 '실체'를  보고서 인식하는 것은 같은 것이다. 어쩌면 이명세는 문자를 개념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를 꿈꾼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는 유독 글자가 많이 나온다. 그것이 이야기의 전달이나 극 중 인물의 생각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가 아닌, 인물의 '감정'을 나타내기 위한 오브제로써 사용된다. 이토록 진지하게 영상과 문자를 고민하는 치열함이라니!! 하지만 현재의 관객들에겐 이런 것은 '지 잘난 멋'으로 인식되기 일쑤다.

   영화의 장르를 이야기하자면 전반부는 미스터리(Mystery)고 후반부는 멜로(Melo)다. 영화는 미미의 시점, 민우의 시점 그리고 민우와 곧 결혼할 (갑부) 출판사 사장의 딸 은혜(공효진)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이들의 시점은 구분되어 있지 않고 혼재되어 있다. 내용은 간단하지만, 이들 세 명 화자의 시점이 구분되어 있지 않아서 아마도 일반 관객들은 혼란에 빠지기 쉬울 것이다. 

   90년대까지는, 그래도 소위 말하는 '예술영화'라는 것이 소비되어 왔다. 타르코프스키나 키에슬롭스키의 영화들이 극장에 걸리고 흥행(!!)도 되는 시기였다. 그것이 지적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행위든, 스노브들을 양산하는 행위든간에. 그 때는 적어도 영화를 보고 "왜?"라는 질문을 던졌었다. "왜 이 감독은 이야기를 이렇게 끝냈을까?", "왜 그는 떠나지 않고 다시 돌아왔을까?", "왜 그녀는 달리는 버스에 뛰어들었을까?" 하지만, 지금의 관객들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관객은 감독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다. 감독의 선택에 의문을 갖지 않는다. '내'가 이해를 못하면 간단히 '쓰레기'취급을 해버린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민우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을 때 정신과 의사가 아는 척을 하는 장면. "아, 그 신문에 연재하는 소설 쓰시는 분!" 그러자 민우가 대답한다. " 그거 보셨어요? 그건 소설이 아닙니다." 의아해하는 의사의 질문. "그럼 뭐죠? 에세이? 산문?" 민우의 대답. "쓰레깁니다." 대중의 입맛에 맞추어 쓰는 소설이 '쓰레기'라고 생각하듯이, 그 또한, 그런 영화를 '쓰레기'라 생각하는 것 같다. 현대의 관객들과 이명세는 이렇게 부딪힌다.  

 

 

 

   미미와 민우의 기억(Memory)을 중재해주는 뤼팽바가 거울(Mirror)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거울은 자신의 모습을 반추할 수 있다. 자신을 뒤돌아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묻어놓고 애써 지우려했던 기억들도 돌이킬 수 있는 반성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곳 뤼팽바는 세 번 나온다.  

   첫 번째는 미미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민우를 만난다. 하지만 민우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 차가운 존재다. 그의 모습이 스냅사진처럼 보인다. 사진 역시 기억과 추억을 불러일으킬 오브제다. 그녀에게 있어서 민우는 사진의 존재로 남아 있다. 

   두 번째는 민우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이곳에서 그는 끊어진 필름(기억) 한조각의 실마리를 찾는다. 이 바가 언제 만들어졌나는 민우의 질문에 바의 마스터는 이렇게 얘기한다. "그 날을 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11년전, 8월 20일 일요일. 그 날 엄청나게 많은 비가 왔었죠." 그 날은 민우와 미미가 처음으로 데이트를 하고 첫 키스를 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날이다. 그리고 그날은 민우와 미미가 데이트를 하려고 했던, 미미가 (사고로) 죽고 민우는 그런 미미를 애써 지워버린, 서로의 안타까움, 애증이 발생한 날이다. 그 날, 그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제서야 민우는 잃어버렸던 필름 한 조각을 찾는다. 

   그리고 세 번째, 뤼팽바는 미미의 기억과 민우의 기억이 만나는 장소이다. 자신의 죽음을 인정한 미미의 기억과 잃어버렸던 첫사랑을 떠올린 민우의 기억이 만나 해후한다. 이제서야 미미는 앞에서 얘기했던 저주와도 같았던 말을 민우에게 이야기한다. 그 말은 저주가 아닌 더이상 만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회한이자 작별인사다.  

 

   나는 나중에 당신이 아주 많이 슬퍼했으면 좋겠어. 슬픈 영화 말고 재밌는 영화를 보다가도 문득 내 생각나서 펑펑 울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내가 떠난 뒤에 당신이 아주 괴롭고 아팠으면 좋겠어. 우리가 흥얼거렸던 그 노래를 들을 때면 내가 보고싶어서 가슴을 치고 괴로워했으면 좋겠어. 

 

   그제서야 이룰 수 없었던 첫사랑의 기억은 떠나가고,(민우가 지운 게 아니라, '미미의 기억'이 떠난 것이다) 그녀는 유서와도 같은 말을 남긴다. 이 말은 영화 맨 처음과 같이 내레이션과 자막으로 보여진다.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떠날려야 떠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을 떠남으로써만 당신을 사랑합니다. 

 

   첫사랑 미미와의 작별이 민우와 은혜의 결혼(Marriage)과 동시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소설가인 민우에게 '글자'로 남아있다. 그가 소설을 쓰는 동안, 글을 쓰는 동안, 그는 미미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의 아내에게는 비밀로 한 채...  

 

   "무슨 생각해?" 

   "응? 아니, 아무것도."  

 

 

  

*덧붙임 

1. 동창 결혼식 장면에서 신랑 신부가 부르는 노래는 토셀리의 「세레나데」입니다. "사랑의 노래 들려온다 / 옛날을 말하는가 / 기쁜 우리 젊은날" 이명세 감독은 이 노래를 통해 그의 첫 시나리오 작품까지 거슬러 올라간 셈입니다. 

2. 첫사랑의 기억의 중재자이자 저승사자인 마스터(Master)를 전무송 씨가 맡은 것은 재밌습니다. 그는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 영민(안성기)의 사랑인 혜린(황신혜)를 가로채고 망가뜨리는 역을 맡았고, 『개그맨』에서는 개그맨 이종세(안성기)의 '꿈'인 영화감독을 맡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전무송 씨는, 나이는 숨길 수 없지만, 매우 근사한 모습을 보입니다. 

3. 미처 언급하지 못했으나 영화에 나온 M을 마저 적어봅니다. 매너(Manner) , 입(Mouth), 노래 「안개(Mist)」, 성냥(Match), 갑작스런 이사(Move), 민우의 뮤즈(Muse), 영화-활동사진(Movie), 모나리자(Mona Lisa) 미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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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사정 볼 것 없다 - Nowhere to Hid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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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를 시작으로 이명세 감독의 영화에서는 내러티브가 최소화하기 시작한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내용을 한 줄로 줄이면 이렇다. '형사가 범죄자를 쫓고 범죄자는 결국 잡힌다.' 영화는 팜므파탈이라던가, 반전같은 것을 숨기고 있지 않다. 말 그대로 우직하게 이 내용으로 진행된다. 스토리를 최소화시킨 반면, 캐릭터는 생생하다. 이명세는 2시간이라는 필름의 화폭 안에서 마음껏 그의 이미지를 그린다. 

   감독의 철저한 취재 때문인지 흔히 영화나 TV에서 보이던 스테레오 타입의 형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박중훈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코믹과 위악을 넘나들고 안성기 또한 대사 한 마디 없이(정확히 표현하자면 두 번 말을 하지만 거의 혼잣말 수준이다) 냉혹한 살인자 역할을 한다. 영화의 이미지는 씬만 따로 떨어뜨려놓고 본다면 마치 실험영화처럼 극단까지 밀어 붙이지만, 그 장면들이 튀지 않고 영화에 녹아든 이유는 각 장면들이 단순한 내러티브에 복속되기 때문이고, 또 형사의 생활을 묘사한 세밀한 디테일때문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이 영화에서 두 편의 영화가 파생됐다고 생각하는데, 캐릭터의 생생함은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으로, 형사 생활의 일상성은 김유진 감독의 『와일드 카드』로 옮겨졌다고 본다. 

   영화는, 리듬감과 캐릭터의 생동감이 워낙에 뛰어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판단을 보류하게 한다. 즉, 그냥 입벌리고 영화에 빠져들게 되는 경우인데, 우형사(박중훈)의 고문장면과 피의자의 집에 쳐들어가 윽박지르는 장면을 별 거부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바로 그 예다. 

   그렇게 정신 없이 달려가던 영화가 한 번 멈추는 씬/씨퀀스가 있는데, 그게 '이발소'에서 벌어진다는 것이 인상적이다.(이발소/미장원은 이명세 감독의 영화에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개그맨』과 『M』) 김형사(장동건)가 실수로 용의자를 이발소에서 쏴 죽이자 붕떠있고 달려가던 영화의 리듬이 잠시 늦춰진다. 그 일이 있은 후, 우형사는 눈내리는 크리스마스에 동생을 찾아가 안부를 전하고 그 동생은 오빠를 위해 장갑을 선물한다. 눈이 내리는 겨울의 기적과 가족의 화해를 암시하는 이 장면은 더할나위없이 따뜻하다. 그렇게 잠시 위안을 받은 우형사는 김형사를 (그만의 방식으로) 위로한다. 리듬감으로는 가장 처지지만, 이명세 감수성을 확인할 수 있는 이 씨퀀스는 감독의 인장같은 느낌이 든다. 

   이 영화의 성공은 이명세가 내러티브가 없이 이미지와 운동으로만 영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그 다음 결과물 『형사』는 참혹한 실패를 했다. 분명 이 영화에 내러티브는 없다. 그러나 일반 관객들은 내러티브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디테일 때문이다. 디테일이 내러티브를 대신할 수 있어서 관객들은 별 부담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형사』엔 디테일이 없었다. 그 자리를 상상력이 대신했기 때문에 관객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직까지 대중들에게 있어서 이 영화는 이명세 영화의 정점이다. 물론 그는 더 나아갔지만, 계속되는 실패로 인해, 앞으로 그의 영화를 더이상 볼 수 없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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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io 2009-12-17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에 대한 해석이 무척 인상적이네요. 거기에 다른 작품들과의 연계는 물론 이후 작품들의 구성과의 비교 역시 음미할만합니다. 즐감했습니다.

Tomek 2009-12-18 09:15   좋아요 0 | URL
즐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개그맨 - Gagma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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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감독 이명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어떨까? 대충 소급해보자면 이럴것이다.  

   '충무로에 혜성같이 등장해 배창호감독과 『기쁜 우리 젊은날』을 만들고, 『나의 사랑 나의 신부』로 대박을 치고 그 후로 망하는 영화만 만들다 세기말을 앞둔 19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국내 흥행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다.(이영화 때문에 박중훈은 조나단 드미와 『찰리의 진실』이라는 영화를 찍고, 워쇼스키 형제는 빗속 탄광촌에서의 결투장면을『매트릭스3』에서 오마주를 바쳤다) 그 후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돌아와 『형사:the Duelist』를 만들었으나 흥행에 실패하고, 절치부심하여 만든 『M』이 흥행에 실패. 현재 차기작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흥행면에서만 본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흥행이란 어떻게 보면 관객과의 타협이라고 볼 수 있다. 흥행이 잘 된 영화는 대중적인 영화이고, 대중적이란 말은 대중에게 친숙하거나,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보여준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면에서 이명세는 항상 애매한 위치에 서있었다. 그가 그려내는 미장센은 한국 영화사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을 보여주지만, 그의 이야기는 굉장히 불친절하거나, 아주 간단한 이야기이다. 흥행을 한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결혼을 한 두 남녀가 위기를 겪고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이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형사가 범죄자를 쫓고 결국 잡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스토리텔링에 별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작은 어떠했을지 매우 궁금했다. 감독 데뷔를 위해 어느정도 대중의 기호에 맞추어 영화를 찍었을지, 아니면 뚝심대로 밀고 나갔을지. 이 글은 얼마전에 산 [한국영화 클래식 콜렉션]에 수록된 이명세 감독의 『개그맨』을 보고 쓴 글이다.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당연히 난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고, 이명세에 대한 내 생각도 철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엔 특별한 것이 있다.    

 

   영화는 어느 여름날 오후, 이발소에서 시작한다. 면도를 하기위해 의자에 누워있는 이종세(안성기)에게 이발사 문도석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여름철 보양음식 개고기에서 시작해서, 연예인 이주일의 세금 1억, 영화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온다. 이종세는 나이트클럽에서 개그맨으로 살아가고 있으나, 그의 꿈은 '4천만 국민이 보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영화 촬영장을 어슬렁거리다 쫓겨난 이종세는 어느날 극장에서 갑자기 등장한 오선영(황신혜)을 만나게 되고 그녀를 집에 초대한다. 또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탈영병(손창민!!)이 선물처럼 주고 간 총을 가지고 이종세는 영화를 찍으려 한다. 거기에 오선영과 문도석이 합류, 그들은 전국을 누비며 강도짓을 해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다 정체가 탄로나 도망가는 도중 도석이 실수로 시골의 정비사 청년(김세준!!)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들은 밀항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지 20여년이 지났으니까 내용에 대해 감히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몽롱하고 권태롭고 나른한 어느 여름날 이발소에서 면도를 하기 위해 잠깐 누워있던 이종세의 '한나절 꿈'이다. 아니 꿈이라기 보다는 '망상'이라는 말이 적합하다. 망상의 세계엔 논리가 필요하지 않다. 종세의 망상속의 인물들은 너무나 극적이고 작위적이다.  

 

 

고다르 혹은 팜므 파탈 오선영과 이종세  

 

   오선영은 종세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을 때 갑자기 등장한다. 이 전 장면은 그가 자신의 집에서 식사를 하면서 영화감독으로써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장면이었다. "영화 예술은 어두운 밤을 뚫고 달리는 야간 열차와 같다"는 트뤼포의 말을 인용한 그는 (그의 잘못으로) 머리에 물을 맞고 정신을 차린다. 그 다음장면에서 오선영이 마치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그에게 다가온다. 오선영은 '꿈'같은 존재다. 그런 그녀가 극장에서 등장한 것은 의미심장하게 보인다. "영화는 꿈이다. 그러나 관객은 꿈꾸어서는 안된다." 트뤼포의 동료인 고다르의 말이다. 그러나 종세는 꿈을 꾸고 있다. 깨어있지 않은 그에게 그녀는 악몽이 된다.  

 

 

잭 니콜슨, 적룡, 허장강 그리고 문도석 혹은 배창호  

 

   문도석은 영화배우를 꿈꾸는 이발사이다. 문도석을 연기한 배창호는 영화 감독이다. 그는 1년 전,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안성기와 황신혜를 주연으로 『기쁜 우리 젊은날』을 찍었었다. 그 때 조감독으로 참여했던 이명세가 배창호를 주인공 중 한명으로 끌어들인것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지만, 정작 감독은, 영화 구성의 핵을 차지하는 연기자를 대체하지 못한다. 음악, 미술, 촬영 등은 감독의 의도대로 이끌 수 있지만, 연기는 통제하지 못한다. 이명세는 완전작가로서의 영화를 꿈꾸었던 것일까? 그의 분신인 이종세가 채플린을 따라 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있게 다가온다. 채플린은 자신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고 감독을 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문도석은 이종세에게 맞고 오선영에게 모욕당하기 일쑤다. 마치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배우들에게 감독이 호되게 당하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너무 들어간 것일까?   

 

  

찰리 채플린, 이명세 그리고 이종세   

 

   감독의 자아가 가장 많이 개입된 캐릭터 이종세는 개그맨이다. 현실에선 개그맨이면서 그는 영화감독의 꿈을 꾼다. 그는 언젠가 '4천만이 볼 불후의 명작'을 만들 것이라 공언하는 모습은 이명세가 자신에게 다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혹은 길게 돌아 『잘 알지도 못하면서』구경남의 다짐 "나도 다음에 2백만 관객이 보는 영화를 만들테다."이 생각난다. 이종세의 공언에 비하면 구경남은 얼마나 현실적(!!)인가!) 하지만 그가 영화를 찍는 것은, 연기를 하는 것은, 결국 범죄가 되어버리고, 그 영화는 4천만 국민이 다 보는 TV뉴스로 전이되고 만다. 그는 영화가 결국엔 현실을 능가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그것도 데뷔작에서!! 

   이종세의 공간은 두 개로 나뉘어져 있다. 하나는 그의 집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일하는 나이트클럽의 무대다. 그의 집 안엔 (덕수궁의) 벤치, (혜린 회사 앞의 빨간) 전화부스, (리버사이드 카페) 레스토랑의 탁자가 있다. 그리고 그 소품들은 『기쁜 우리 젊은날』에 등장했던 의미있는 소품이다. 그의 공간은 그 자체로 영화(세트장)이다.  

 

  

이주일의 무대에서 이주일이 낸 세금만큼 돈을 벌고 이주일의 노래를 불러 이주일이 되다. 

 

   이종세의 무대는 세 번 보여진다. 첫 번째는 그가 일상에서 밥을 버는 일터의 공간으로 보여진다. 그는 열심히 나이트클럽에 찾아온 손님들을 향해 연기를 한다. 두 번째는 선물의 공간이다. 텅빈 무대에서 갑자기 등장한 탈영병이 선물을 건네주듯 그가 탈취한 총을 주고 사라진다. 세 번째는 고백의 공간이다. 그는 그의 관객들을 향해 그가 처음으로 저지른 범죄를 고백하지만, 그 고백은 코미디로 여겨진다. 그가 꿈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범죄였고, 그 자리를 축하하기 위해 그의 동료들을 부른 후 그 무대위에서 이주일이 불러 유명해진 CCR의 「Susie Q」를 부른다. 세금 1억과 목표액 1억, 개그맨의 정점과 영화감독의 꿈. 종세의 무대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무대이다.   

 

 

 야간 열차는 멈추고 영화 예술은 죽음을 맞이한다. 한 여름 오후의 '꿈' 혹은 '망상'

 

   그의 망상이 끝나는 지점은 아침의 기차 삼등열차객실이다. 앞에 언급했던 트뤼포의 말. "영화 예술은 어두운 밤을 뚫고 달리는 야간 열차와 같다." 그들은 어두운 밤을 뚫고 달리는 야간 열차를 타고 종착역에 도착했다. 야간 열차가 도착하고 아침이 오면, 영화 예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예술에 완성은 없다. 열차가 멈추고 아침이 오면, 그것은 끝나는 것이다. 더이상 달릴 수 없는 기차를 보며 이명세는 영화감독의 예술적 죽음을 생각한 것이 아닐까?  

 

   20여년전의 영화이기때문에 녹음이나 편집 등, 영화 기술적인 면에선 지금의 영화들과 비교해보면 좀 참담한 순간들이 있다. 그러나 그가 만들어내는 여름날 오후의 몽롱하고 권태롭고 나른한 몽상을 한번쯤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후회하지 않을 영화다. 

 

 

*덧붙임  

1. 오선영이 등장할 때 이종세가 보던 영화는 프란시드 포드 코폴라 감독의 『커튼 클럽(The Cotten Club)』입니다. 이후의 운명 혹은 망상이 어떻게 진행되어질지를 보여주는 재밌는 장면입니다. 그 후 극장에서 나와 이종세의 집에 갔을 때 이종세가 오디오에서 트는 음악은 같은 감독의 『대부』 테마곡입니다. ^.^; 

2. 캡쳐한 이미지는 태흥영화사/아인스엠앤엠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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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우리 젊은날 - Our Joyful Young Day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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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 대학생인 영민(안성기)은  연극배우 지망생인 혜린(황신혜)을 짝사랑한다. 그는 그녀를 쫓아다니고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녀는 미국에서 곧 산부인과를 개업할 의사에게 시집을 간다. 그 후 3년 후, 아직도 혜린을 잊지 못하고 하루 하루를 외롭게 보내는 영민은 우연히 지하철안에서 혜린을 만난다. 그녀는 이혼을 하고 배우를 포기하고 출판사에서 번역일을 하고 있다. 적극적인 영민의 구애끝에 둘은 결혼을 한다. 혜린은 임신을 하고, 아버지가 될 기쁨에 영민은 들떠있다. 이런 행복한 생활속에서 영민은 혜린이 임신 중독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민은 아이를 포기하자고 하지만, 혜린은 불확실한 과학보다는 기적을 믿는다며 아이를 낳겠다고 한다. 그리고...

   눈썰미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결국엔 비극으로 끝날 것이란 사실을 눈치챌 것이다. <기쁜 우리 젊은날>이란 제목은 토셀리의 「세레나데」에서 인용한 제목이고, 그 내용은 지나간 사랑에 대한 회한의 감정을 토로하는 것이다. 이 제목만으로도 두 남녀 주인공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라는 것은 어느정도 예상이 된다. 위에 적은 내용만으로도 이 영화, 눈물 콧물 질질 흘리게 만들 신파인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 영화, 예상외로 담백하다.   

 

 

   이 영화가 신파가 아니라 담백한 것은 '사랑의 이별'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사랑의 순환'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영민과 혜린말고 다른 중요한 인물이 비중있게 등장한다. 바로 영민의 아버지(최불암)이다. 영민은 아버지와 함께 산다. 어머니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아마도 일찍 돌아가신 것 같다. 영화는 영민이 혜린에게 차이고 돌아와서 술을 못이겨 화장실에서 토사물을 쏟아낼 때, 말 없이 아들의 등을 두드려 주는 모습, 혜린이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는 소식에 병원에 입원한 아들을 간호하는 모습, 혜린을 잊지 못해 놀이터에서 우는 아들을 감싸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공들여 찍혀 있다. 어찌보면 영민이 혜린과 덕수궁 벤치에서 데이트를 하는 모습이나, 비오는 날 영민이 회사 앞에서 비를 맞고 혜린을 기다리는 모습보다 더 아름답게 찍혔다. 그 이유는 아내의 빈 자리를 아들인 영민이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마법과도 같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 혜린과 데이트를 했던 바로 그 덕수궁 벤치에서 영민은 딸 혜주에게 그때와 똑같이 삶은 계란과 사이다를 건네준다. 그러자 혜주는 엄마와 똑같이 말한다. "싫어, 나 그런 거 안먹어." 혜린은 죽었지만, 혜주가 그녀의 자리를 채워주고 있다. 딸을 바라보면서 지금은 없는 사랑을 떠올리고 그 무한한 사랑이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전이되는 과정. 혜주는 정확히 혜린의 자리에 앉아 혜린의 대사를 한다. 그리고 이 장면 때문에 앞에서 영민과 아버지의 장면이 생명을 얻는다. 영민의 아버지 또한 그런 영민을 바라보며 영민의 어머니를 추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 친구들에 따르면 영민 어머니의 이름은 '영숙'이다. '영'숙과 '영'민, '혜'린과 '혜'주. 순환되는 유교문화권의 사랑. 반복되는 사랑의 영겁회귀. 그래서 영민과 아버지는 외롭지 않다. 사랑해서 기뻤던 그들의 젊은날을 노래할 수 있다. 

 

          사랑의 노래 들려온다 
          옛날을 말하는가 
          기쁜 우리 젊은날  

          사랑의 노래 들려온다 
          옛날을 말하는가 
          기쁜 우리 젊은날  

          금 빛같은 달빛이 동산 위에 비취고 
          정답게 속삭이던 그때 그때가 
          재미로워라 꿈결과 같이 지나가건만 
          내 마음에 사모친 그님 그리워라  

          사랑의 노랫소리에 
          기쁜 우리 젊은날  

 - 토셀리, 「세레나데」 -   

  

 

*덧붙임 

1. 영민이 혜린에게 자기가 썼다는 희곡을 보여줍니다. 작품의 제목은 『나의 사랑 나의 신부』입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후에 이명세 감독이 연출합니다.  

2. 배창호 감독과 이명세 감독(당시엔 조감독)이 카메오로 나옵니다. 이 때의 열연(?)으로 배창호 감독은 이명세 감독의 데뷔작 『개그맨』에서 배우(!)로 데뷔합니다. 

 

3. 캡쳐한 이미지는 태흥영화사/아인스엠앤엠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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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의 전성시대
영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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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있어 70년대는 역사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다. 70년대에 태어났지만, 그 시대를 기억하기엔 너무 어렸다. 내 유년기는 80년대부터 시작했고, 경제개발, 유신, 독재로 점철된 70년대는 실체로 다가오지 못하는 간접 경험의 시대다. 

   민주주의의 시대에서 독재의 시대로, 농업 중심의 사회에서 산업 중심의 사회로. 70년대는 지금 대한민국의 틀을 다져놓은 시대다. 오로지 '잘 먹고 사는 것' 이라는 생존에 목표를 둔 시대였다. 인간의 모든 가치들이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였다. 밥벌이를 책임져준 농촌에서는 더이상의 일이 없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어린 소년, 소녀들은 서울로 올라왔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들이 돈을 벌 길은 공장으로 대표되는 막노동과 식모나 술집밖에 없었다. 

   영화는 종삼(종로 3가) 588에서 시작한다. 호객행위를 하는 창부들이 단속으로 잡혀가 경찰서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폭행으로 끌려온 창수(송재호)가 영자(염복순)를 알아본다. 그리고 영화는 플래시백으로 넘어간다.  

 

  

팔이 없어 괴물로 취급받는 영자와 팔이 없어 미인으로 추앙받는 밀로의 비너스, 그 극명한 대비

 

   영자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밥'이다. 아직 영자는 이 사회의 자본주의를 맛보지 않았다. 그녀는 시골에서 올라왔고, 그녀가 살아왔던 세상은 쌀이 중심인 농경사회다. 농경사회에서 쌀은 생존이지 탐욕은 아니다. 영자가 식모살이를 하는 그 집 아들에게 겁탈을 당했을 때에도 그녀는 그녀 입술에 묻어 있는 밥풀을 떼 먹는다. 아직까지 그녀에게 자본주의는 도착하지 않았다. 

   집에서 쫓겨난 후, 영자는 술집 작부 생활을 하는 '고향 언니'와 같이 산다. 그녀는 영자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돈. 돈. 돈. 돈이 문제야." 결국 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돈이고 그 돈을 버는 것만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영자는 겁탈을 당했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고향 언니는 여자로써 '쉽게' 그 문제되는 돈을 벌 방법을 가르쳐주지만, 영자는 기술을 배워,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고 싶어한다. 

   이 영화가 70년대 후반과 80년대에 유행한 '호스티스물'의 첫 효시와도 같은 작품이지만, 그 태생은 전혀 다르다. 당시 호스티스물이 믿었던 남자나 (혹은 애인) 사고와도 같은 강간을 당하고 삶을 포기한 채로 술집이나 588에 흘러 들어가는 이야기이지만, 이 영화에서 영자는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고작 그정도 이유로(!!)' 삶을 포기 하지 않는다. 영자는 돈을 벌기 위해서 고군분투하지만, 이 세상은 그런 영자에게 너무도 가혹하다. 

   열심히 시다일을 해서 돈을 벌어 보지만, 이것 저것 나가는 돈을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것은 동전 몇 푼이다. 영자에게 돈은 쉽게 잡히지 않는다. 운전을 배워 택시를 몰고 싶은 영자는 버스 차장이 되지만, 그만 사고로 한쪽 팔을 잃고 만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괴하고 무서운 장면. 아스팔트를 뒹구는 영자가 하늘로 날아가는 자신의 왼팔을 본다. 그리고 그녀의 날아간 팔은 '삼십만원'의 가치로 환산되어 영자에게 지급된다. 그리고 고향 언니는 영자의 왼팔에 매겨진 돈으로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며 설레어한다. 등가법칙으로 영자는 자본주의를 온몸으로 깨달았다. 그런데 이런 깨달음은 얼마나 잔혹한가!! 

   영자가 팔을 잃은 것은 그녀의 꿈을 잃은 것과 같다. 그리고 그 꿈은 삼십만원으로 환산되어졌다. 그리고 그 돈은 고향 언니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돈이다. 인성이 사라지고 돈만 남은 이 세상을 영자는 더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 그녀가 고향을 떠나온 기찻길. 고향으로 갈 수 있지만, 갈 수 없는 그 길 위에서 영자는 자살을 시도하지만, 기차는 그녀 앞에 선다. 오직 돈이 가치있고 숭배받는 사회에서 영자는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끼고 그 외로움을 해결하고자 몸을 판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사랑이 아닌, 남자들의 욕망뿐이다. 그렇게 영자는 시나브로 오염한다. 

   그런 그녀에게 구원은 '사랑'이지만, 창수는 그녀를 '동정'한다. 작은 구원같아 보였던 화가와의 관계도, 팔이 없는 그녀를 보고 '밀로의 비너스'라고 운운하는 것도, 겉보기엔 그럴듯한 위로 같지만, 실은 하나마나한 말이다. 팔이 없는 사람에게 '비너스같이 아름답다'라고 말하는 것이 정말 위로일까? 경찰서에서 영자를 만난 이후로, 창수는 영자를 매일 찾아간다. 그녀가 병에 걸리자 그녀를 치유하고, 벌이가 없을 때 돈을 주고, 의수를 달아주고 그녀의 때까지 벗겨준다. 하지만 창수는 영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왜 그 애가 그렇게 됐는지 화가나요!"라고 말할 뿐. 창수는 영자를 그렇게 만든 그 근본적인 이유에 다가가기 보다는, 그저 그런 영자를 보살펴줄 뿐이다. 그런 창수와 그런 영자는 서로에게 '1'이란 존재가 아닌 '-1'일 뿐이다.   

 

 

더러운 세상의 묵은 때를 밀어주는 창수. 하지만 그런 그도 영자를 구원하지 못한다.

 

   영자는 결국 어떻게 됐을까? 조선작의 원작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 비슷할 것 같다. 아마도 영자는 죽었을 것이다. 영자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해피엔딩을 마련하고 있다. 결국 영자는 '사랑'을 찾고 구원을 받아 이 세상 변방에서 살아가고 있다. 처음엔 '의식적으로' 역겨운 결말이라 생각했으나,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해피엔딩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이 체념하고 숨죽인' 그 70년대의 한복판에서 그런 '작은' 구원이라도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아가고 죽었을, 수많은 영자들, 우리 누이, 이모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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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io 2009-12-10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보니 안타까운 그 시절이 느껴집니다. 사실주의의 걸작인 '영자의 전성시대'란 영화를 꼭 보고 싶네요

Tomek 2009-12-10 09:41   좋아요 0 | URL
후회하지는 않으실 거에요~ 하지만 필름 상태가 좀 아쉽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