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탄족의 멸망 - Clash of the Tit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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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스몬드 데이비스 감독(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진행한 레이 해리하우젠의 존재감이 더 큰)의 <타이탄족의 멸망(The Clash of the Titans)>은 그리스 신화의 페르세우시 이야기에서 기본 줄거리를 따왔습니다. 그렇다고 영화의 이야기를 그리스 신화의 내용이라고 순진하게 믿어버리면, TV사극으로 국사를 공부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어지지요. 이 영화는 페르세우스 이야기의 캐릭터와 기본 줄기만을 가져왔을 뿐, 그리스 신화와는 거의 관련이 없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심취하신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밀려드는 배신감에 치를 떨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신화'부분과 가장 흡사한 부분을 꼽으라면, 오프닝에서 아크리시오스가 부인 다나에와 제우스의 씨를 받아 낳은 페르세우스를 바다에 버리는 장면뿐입니다. 그 이후는 거의 '신성모독' 수준입니다. 

 

 다나에와 페르세우스 

 

   재구성된 영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다나에와 페르세우스는 포세이돈의 보호를 받아 세리포스 섬에 도착해 살아갑니다. 제우스는 자신의 아들이 잘 자라는 것을 보고 흐뭇해합니다. 그런데 테티스의 아들 캘러보스가 실수를 저지르자 제우스는 그를 괴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는 아이티오피아의 공주 안드로메다와 결혼할 사이였습니다. 테티스는 제우스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부탁하지만, 제우스는 요지부동입니다. 자신의 아들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남의 아들에겐 엄격한 제우스에게 화가 난 테티스는 세리포스 섬에서 잘 지내고 있는 페르세우스에게 고난의 저주를 내립니다. 페르세우스는 갑자기 아이티오피아에 오게 되고, 안드로메다 공주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 카시오페아의 실수로 올림포스의 신들은 안드로메다 공주를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르고스처럼 티탄족 크라켄을 내보내 아이티오피아를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라고요. 대책회의를 하던 중신들은 '삼도천의 마녀들'에게 가면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얘기합니다. 페르세우스를 중심으로 원정대가 꾸려지고, 그들은 먼 길을 가기 시작합니다. 삼도천의 마녀들은 크라켄을 죽이려면 같은 티탄족인 고르고 자매 중 한 명인 메두사의 머리가 필요하다고 얘기합니다. 페르세우스와 원정대는 메두사의 머리를 베러 스튁스 강을 가로질러 갑니다. 

 

제우스 (로랜스 올리비에)

테티스 (매기 스미스) 

 

   이 모든 이야기의 원흉은 바람둥이 난봉꾼인 제우스 때문입니다. 그가 황금 소나기가 되어 다나에의 샅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페르세우스가 태어나지 않았을테니까요. 하지만, 페르세우스는 이미 태어날 운명이었으니까, 이 지적은 옳지 않다고 볼 수 있겠죠. 문제는 시도때도 없이 아들자랑을 하는 팔불출 성격 때문이었죠. 오죽했으면, 부인 헤라가 "그저 자기 아들이라면 어디서 나왔건 사족을 못쓰고"라는 말을 했겠습니까? 하지만 가장 큰 발단은 테티스의 아들에 대한 '무자비'입니다. 한 번쯤 용서해 줄법도 한데, 제우스는 너무 엄격하게 굴었어요. 그 이유는 제우스가 테티스에게 난봉꾼 기질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받아주지 않은 테티스에게 앙금이 남은 제우스는 이렇게 복수를 한 셈이지요. 최고의 신으로는 유치한 모습이지만, 제우스의 난봉꾼 기질을 생각해보면, 그런대로 맞아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실제의 신화에서는 테티스는 『일리아드』에서 활약하는 그리스 최고의 전사 아킬레우스를 낳고, 아들의 운명을 바꿔달라고 부탁을 하지요. 영화에서 다루는 신화는 전체적으로 볼 때 엉터리지만, 각각의 에피소드는 다른 신화에서 차용한 것들입니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제우스와 테티스」 

 

크리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데, 가장 강렬한 크리쳐는 다름아닌 마지막 티탄족인 메두사와 크라켄입니다. 스톱모션의 아날로그 효과로 이들은 느릿느릿 천천히 움직입니다. 분명히 가짜인 게 티가 나지만, 이들의 움직임은 어떤 독특한 '운동성'이 있습니다. 특히 메두사가 등장할 때, 두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기어오는 장면은 정말이지 충격 그 자체입니다. 특히 고르고 세 자매 중 하나인 메두사의 사연은 가슴절절하지요. 아프로디테와 미를 견줄만한 아름다움을 지닌 메두사였지만, 아테나의 저주를 받아 흉칙한 모습으로 숨어 살게 되지요. 그녀는 자신의 흉칙함을 다른 존재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나 봅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무기는 활이거든요. 활은 먼 거리의 적을 섬멸할때만 사용하는 무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이 다가온 존재들에게는 돌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녀는 외로이 숨어 지내는 슬픈 운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신화에서는 아테나와 아폴론의 도움을 받아(얼마나 눈엣 가시였을까요?) 메두사를 없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의 운명은 참 덧없어 보입니다.  

 

페르세우스(해리 햄린)와 메두사 

 

   크라켄은 이 영화에 나오는 크리처 중 가장 뜬금없는 괴물입니다. 이 괴물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괴물인데, 뜬금없이 그리스 신화에 티탄족으로 나타나니 좀 황당하지요(캐러비안의 해적에 나온 문어괴물이 바로 이친구입니다). 크라켄은 영화 초반 제우스의 명으로 자신을 기만한 아크리시오스가 통치하는 아르고스를 멸망시키는 위력을 보여줍니다(물론 본 모습은 나오지 않았지요). 레이 헤리하우젠이 그린 크라켄은 북유럽 전설의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굳이 비교하자면, 러브 크래프트의 '크툴루'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션과 서스펜스는 클라이맥스답게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크라켄과 바위에 묶여있는 안드로메다 공주 

 

   영화는 신화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냅니다. 거의 동화 수준이긴 하지만, 이야기를 맺기에는 그런대로 괜찮은 결말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제우스의 "신의 시대를 종언하고 인간의 시대를 연다"는 말 또한 낡긴 하지만 경철할만 하고요. 영화에서 언급한 신화를 다 믿지앟고, 선별해서 받아들인다면, 꽤 흥미로운 영화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덧붙임: 

그래도 안드로메다(주디 보우커) 공주를 뺄 순 없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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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4-03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름이 좀 오래된 것처럼 보여요.
아, 81년도 작이네. 그럼 최근 개봉한 영화하곤 다른 건가 보군요.
실제 신화와는 별개라 해도 작가들의 상상력이 대단해요.
트로이도 꽤 볼만했었는데...^^

Tomek 2010-04-04 08:06   좋아요 0 | URL
신화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름 볼만한 내용이었어요. <트로이>는... 이동진 기자가 <트로이>를 보고 "호메로스가 살아있었다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을 것"이라 언급했는데, 저도 어느 정도는 동의합니다. 뭐 그러면서도 확장판 DVD를 날름 사버렸지만...
>,.<
영화는 나름 재미있었어요.

고맙습니다. ^.^;
 
크레이지 - The Crazie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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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렉 에이즈너 감독의 <크레이지(The Crazies)>는 이 영화의 제작을 맡은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1973년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원작을 보지 않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의 좀비 4부작에서 보이는 정치적 함의를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서도 그런 내용이 여럿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미국의 소읍인 오그덴 마시에 미군이 비밀리에 진행한 생화학 무기 '트릭시'가 유출되어 마을 사람들이 감염되기 시작합니다. 이 물질에 감염이 되면 인간으로의 자각이 조금씩 사라지고, 무조건적인 살인을 자행하게 되지요. 간단히 말해, 인간을 잡아먹지 않는 대신에 인간을 죽이는 '좀비'들입니다. 브렉 에이즈너 감독이 그리는 이 좀비들은 21세기에 등장한 야생동물 같은 좀비가 아니라, 6~70년대 조지 로메로 감독이 그렸던 진중한 좀비들입니다. 이들은 급하게 뛰어다니지 않고, 천천히 움직이며 살인을 저지릅니다. 

   알 수 없는 이상한 현상들이 마을을 잠식하고, 이유없는 살인이 계속 벌어지면서, 마을은 점점 공황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바로 이 때 군부대가 들어와 마을사람들을 한 곳에 몰아 넣은 후 격리를 시키기 시작합니다. 이 때 영화의 주인공인 보안관 데이빗 더튼(티모시 올리펀트), 의사 쥬디 더튼(라다 미첼) 부부가 헤어지게 됩니다. 쥬디는 트릭시에 감염된 환자들 사이에 격리되고, 데이빗은 정상인들 사이에 격리되어 '안전한 곳'으로 피신을 할 준비를 합니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있게 됩니다. 아내 혹은 남편 혹은 가족과 헤어진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이야기합니다. "정말 괜찮을까요?" 그러자 그들 중 한명이 대답을 합니다. "정부를 믿어야지 우리가 무슨 수가 있겠어?" 데이빗은 사람들의 그런 낙관을 믿지 않고, 아내를 구하러 갑니다. 

   전 이 대목이 정말 심금을 울렸습니다. 물론 이런 장면은 우리가 헐리우드에서 제작되는 무수한 영화에서 봐왔던 장면입니다. 하지만, 지금 천안함을 둘러싼 진실게임을 한 번 돌아보면, 데이빗의 행동은 그냥 웃고 넘길 수 없습니다. 실종자들의 가족이 요구하는 것은 빠른 구출과 진실규명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태도는 마치 영화에서처럼 무언가를 숨기려고만 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원인 제공자들은 사건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남아있는 사람들끼리 싸움을 붙여 자신들의 존재를 망각시키게 하려는 것입니다. <크레이지>에서 군부대에 명령을 지시한 '몸통'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오그덴 마시에 남아있는 원주민들과 타자들은 서로 '죽이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 상황은 정말 기막히게 말 그대로 '돌고 돌게' 됩니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조금 삐걱거리지만, 각 시퀀스의 효과는 정말 뛰어납니다. 각각의 시퀀스의 공포 효과의 직조는 진중하지만 무시무시하고, 잔인하지 않지만 기발합니다. 특히 가장 인상적이었던 씬은 세차장 씬(가장 일상적인 장소와 소품으로 어떻게 이런 기발한 장면을 만들었는지!)과 주인공 더튼 부부의 집에서 벌어진 사투씬이었습니다. 영화의 결말 또한 희망적이면서도 암울한 면을 다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잘 만든 서스펜스-공포영화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서도 즐기지 못하고 현실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우리를 둘러싼 현실입니다. 언제나 영화를 영화 자체로 보고 즐길 수 있게 될까요? '미치광이들' 사이에 둘러싸인 현실이 정말 암담합니다. 

 

 

*덧붙임: 

아무리 그래도 포스터는 너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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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10-04-04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포스터가 뭘 너무 했다는 말씀이신지요? 똑같이 배꼈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까?

Tomek 2010-04-04 18:54   좋아요 0 | URL
네. 전혀 다른 영화인데도 <미스트> 포스터를 그대로 차용했지요.
 
타이탄족의 멸망 - [할인행사]
데스몬드 데이비스 감독, 해리 햄린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11월
품절


2010년 4월 1일, 드디어 <타이탄(Clash of the Titans)>이 개봉합니다. <타이탄>은 그리스 신화의 영웅 페르세우스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지만, 실제로는 1981년 작 <타이탄 족의 멸망(Clash of the Titans)>을 리메이크한 영화입니다.

<타이탄족의 멸망>의 이야기는 신화의 내용을 그대로 따랐다기 보다는 영웅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공주의 이야기를 여기저기 손을 봐서 만들었기 때문에, 신화에 심취하신 분들이라면 분개하실 내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수많은 크리쳐(creatures)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타이탄족의 멸망> DVD 앞표지에서 우리는 페가수스, 메두사, 그리고 바다괴물('크라켄'으로 신화에서는 언급하지 않고 영화에서 창조한 티탄족의 신)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타이탄>의 예고편을 보니 원작에 나왔던 크리쳐들은 왠만큼 다 출연하는 것 같습니다.

뒷면을 살펴보면 제우스(로렌스 올리비에)와 페르세우스(해리 햄린)의 모습이 보입니다. 부가영상은 의외로 충실한 편인데, 스톱모션과 크리쳐들의 아버지인 레이 해리하우젠의 인터뷰가 실려있습니다. 레이 해리하우젠의 스톱모션은 정말 굉장합니다. 이 엉성한 영화도 레이 해리하우젠이 없었다면 정말 못봐줄 영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메두사와 크라켄의 모습은 정말 위압적이지요.

케이스를 열면 왼쪽에 chapter index 목록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원래는 킵케이스로 제작되었으나, 지금은 이렇게 투명케이스로 제작이 되어 판매되고 있습니다. <타이탄>이 소위 대박이 난다면, 이 영화도 <킹콩>처럼 다시 제작해서 재출시 될지도 모를 일이지요.

이윤기 작가가 번역한 『토머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와 같이 찍었습니다. 이 영화를 본 김에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를 구입했는데 파본이어서 같이 사진을 찍지는 못했습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타이탄>을 보고 난 후 같이 이야기하겠습니다.

조금 아쉬워 짤방으로 두 컷 올립니다. 메두사의 위용입니다. 무시무시합니다.

레이 해리하우젠 옹과 마지막 바다괴물 크라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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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3-31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윤기의 책은 사 놓고 아직도 못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신화를 바탕으로 했군요. 재밌을까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방면엔 문외한이라...ㅜ

Tomek 2010-03-31 17:14   좋아요 0 | URL
<타이탄>은 의외로 잘 나왔다는 입소문이 들리더군요. 원작은 모르고 보시는 편이 더 나으실지도 모르겠어요. 아시다시피 신화는 워낙에 단선적인 내용이라 영화로 만들기엔 너무 밋밋하죠. 아마도 대대적인 각색이 들어갔을 것 같아요. 원작도 그렇지만서도.. ㅎㅎ

고맙습니다. ^.^;
 
블랙 달리아 - 아웃케이스 없음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힐러리 스웽크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08년 1월
품절


<블랙 달리아>는 거장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명백한 실패작입니다. 제임스 엘로이의 소설 영화화는 지금까지 모두 세 편 -〈LA 컨피덴셜〉, <블랙 달리아>, <스트리트 킹> - 인데, 〈LA 컨피덴셜〉을 제외하고는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외면받았습니다. <셔터 아일랜드>, <미스틱 리버>, <곤 베이비 곤>의 데니스 루헤인과는 정 반대인 경우지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제임스 엘로이의 소설은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사건을 하나라도 빼버리면 그 세계가 삐그덕거립니다.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사건과 인물이 후반부에 연결되는 것을 보면 소름이 돋을 정도지요. 이미 운명이 직조되어 벗어날 수 없는 그리스 비극같은 느낌의 소설입니다. 하지만, 이 엄청난 세계를 영화가 담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지요.

이 영화가 왜 거장의 실패작인지는 다른 리뷰에서 언급하기로 하고, 이곳에서는 DVD를 보겠습니다.

영화는 흥행, 비평 모두 실패했지만, DVD는 나오는 족족 품절이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조시의 영향이 큰 듯 +,.+) 그래도 꾸준한 할인으로 다른 악명높은 DVD에 비해선 쉽게 구할 수 있는 편입니다.

케이스를 여니 달리아 사건에 관한 사진과 자료가 꼴라주로 여기저기 붙어있습니다. 영화에서 발견된 시체는 정말이지 끔찍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 사진을 너무 자세히 보지는 말아주시길 바라요.

DVD를 뺀 모습에서 찍어봤습니다. 수사를 진행하는 수사본부의 모습같이 보입니다.

예전에 샀던 소설과 같이 찍어봤습니다. 성급하게 평가하자면, 영화적 매력은 거의 느낄 수 없고, 소설의 서사에 허겁지겁 따라가는 안타까운 영화가 된 것 같습니다. 그가 그렇게 존경했던 히치콕의 말년을 따라가는 것인지... 다음 영화는 좀 더 좋은 영화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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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3-30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흥, 이게 원작이 있었군요.
감독이 정말 유명한 사람인데...안타깝네요.
원작 한번 읽어보고 싶군요.^^

Tomek 2010-03-30 15:03   좋아요 0 | URL
한 번 잡으면 한달음에 읽게 만드는 책이죠. 방대한 인물과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건하며... 저도 영화보고 생각나서 다시 읽기 시작했어요. ^.^;

고맙습니다.

poptrash 2010-03-30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케이블 TV를 돌리다가 [스트리트 킹]의 한 장면을 봤어요.
제목이 스트리트 킹, 이라길래... 3류 액션 영화인가 하고 돌리려는 찰나.

어떤 사무실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그 잘생긴 얼굴로 열을 내고 있고,
그 뒤에는 포레스트 휘태커가 서있는데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건 휴 로리더군요. ㅎㄷㄷㄷ

Tomek 2010-03-31 10:15   좋아요 0 | URL
저도 그저 그런 영화인줄 알고 넘어갔었는데, 제임스 엘로이가 참여한 것은 최근에 알게 됐어요. 그럴줄 알았으면 보는건데.. ㅠㅠ

키아누 리브스가 내한했을 때, 너무 완고하게 굴어서 기자들이 영화에 관한 기사를 너무 야박하게 써서 관심이 떨어진 것 같기도 해요.

고맙습니다. ^.^;
 
지리멸렬한 일상을 예술로 승화시키다
경마장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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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선우 감독의 세 번째 영화(선우 완 감독과 공동 연출한 <서울 황제>까지 포함하면 네 번째) <경마장 가는길>은 전적으로 원작자인 하일지 작가에 기대어 있다. 장선우 감독은 이 영화의 각색과 시나리오를 하일지 작가에게 맡겼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의 줄거리는 원작 소설과 거의 똑같다. 심지어 그 지난한 문어체의 대사까지 거의 그대로 진행한다. 장선우 감독은 이 소설을 옆에서 읽어주듯이 정말 그대로 영상화 시키길 원했던 것이었을까? 그럴 의도도 있었던 것 같지만, 꼭 그런것 같지만은 않다. 장선우 감독의 악동 기질이 어디 가겠는가? 하일지 작가의 『경마장 가는 길』이 새로운 소설의 가능성을 알렸다면, 장선우 감독의 <경마장 가는길>은 영화의 기존 문법을 거의 와해시키고 있다. 

   소설의 내용은 R이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5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오지만,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R은 프랑스에서 3년 반동안 같이 지내고, 논문도 대신 써줬으며, 한국에서 문학평론가로 데뷔시킨 J와 섹스를 하려 하지만, 계속 거부당한다. R은 부인과 이혼을 하려 하지만, 그 또한 거부당한다. R은 프랑스로 다시 떠날 생각을 하고, J와 함께 가자고 권유한다. J는 알았다고 했으나, 거부한다. R은 J의 비밀을 J의 부모에게 다 이야기하고, 지금까지 자신이 겪었던 일을 글로 쓰기 시작한다. 그가 쓰기 시작한 글은 소설 첫 장의 묘사와 똑같이 진행되고, 소설 제목은 『경마장 가는 길』이다.  

   소설은 J와 R의 아내 이야기 외에 '알랭드롱을 닮은 사내', '뚱뚱한 사내', 'E 교수', 'N 교수' 등과 R이 보낸 이야기와, R의 가족과 관련한 이야기가 J와 R의 아내 이야기의 분량과 거의 동일하게 삽입되어 있다. R을 중심으로 기록한 '개인사'라 봐도 무관할 정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어떤 장르에 예속되기 보다는 탈장르적으로 보이고, 지독한 관찰자 시점의 서술로 인해, R을 비롯한 모든 인물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 장선우 감독은 이 지난한 이야기에서 R, J, R의 아내 이야기를 꺼내어 재구성시켰다. 이야기가 이렇게 모아지니, 이 영화는 'R이 J와 섹스를 하려는 이야기'로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장선우 감독의 유희가 시작된다.

 

 

   영화는 김포공항의 모습을 보여주고 "R(문성근)이 돌아왔다"는 장선우 감독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R은 공항에 마중나온 재희(강수연)- 소설과 영화 크레딧에는 'J'라고 나오지만, 문성근 씨의 발음은 '재희'로 들린다. 더군다나 영화에서 강수연 씨가 기고한 평론의 이름을 보면 '정재희'라고 쓰여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기호로 이름이 불리는 사람은 R뿐이고, 이 영화의 화자인 장선우 감독은 오직 R만을 이해못하는 타자로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의 차를 타고 하룻밤을 지낼 여관에 간다. 

   영화는 크게 3개의 공간을 다루고 있다. 하나는 R이 잠을 자고(그의 집은 대구에 있는데, 그는 서울에 일 때문에 자주 올라온다) 재희와 섹스를 하는 '여관'이라는 공간이다. 두 번째는 거의 모든 사건이 벌어지는 '다방'이라는 공간이고, 세 번째 공간 또한 거의 모든 사건이 벌어지는 재희의 '차 안'이다. 영화는 거의 80% 이상을 이 공간에 할애하고 있다. 

   여관, 다방, 차 안의 공통점이라면, 이 공간은 창작자나 등장인물의 의지가 개입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거의) 모든 영화의 공간은 감독의 의지가 개입된다. 공간에 배치된 자잘한 소품과 그 위치까지도, 감독의 의지가 개입이 된다. 특히나 그 공간이 주인공이 기거하는 공간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 영화의 사건이 전개되는 주요 공간인 여관, 다방, 차 안은 감독의 의지가 개입될 공간이 아니다. 그 공간은 사적 공간인 동시에 공적 공간인 셈이다. R과 재희가 같이 있는 여관, 다방, 차 안의 공간은 그 누가 그 자리를 대체하더라도 똑같은 모습을 보일 것이다. 한마디로 미장센의 무력화. 장선우 감독은 하일지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의 미학적 기능에 딴지를 걸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의 허무주의에 가까운 이런 미학적 '자살'은 훗날 <거짓말>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 영화는 거의 '여관방'밖에 나오지 않는 포르노니까. 

 

 

   육화된 대사 또한 재미있는 요소다. R은 재희에게 장광설의 이야기를 한다. 이 '지나치게 진지해서 우스꽝스런' 대사가 문자화되어 있을 때는 그나마 진지하게 읽을만한 구석이 있긴 한데, 이게 '문성근'이라는 배우에게 육화되어 나올 때, 그 우스꽝스러움은 정말로 견디기 힘들어진다. 영화를 보다가 킥킥거리기는 다반사고, 벌떡 일어나서 배를 잡고 끅끅거린 것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카메라의 시선이다. 카메라는 R과 재희가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대화가 좀 진행된다 싶으면, 카메라는 다른 쪽을 보기 시작한다. 그러다 대화가 끝날 때 쯤 다시 등장인물을 비춘다. 이 이야기의 관찰자이자 화자인 하일지 작가는 소설을 쓰면서 R과 J의 이야기와 일거수 일투족을 하나라도 놓칠새라 빠짐없이 다 서술한 반면, 이 영화의 화자인 장선우 감독은,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다가 이내 지겨워져서 딴청을 피우는 쪽이다. 그는 R과 재희의 현학적인 대화(그래봤자 '한 번 하자'는 얘기다)보다는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 이른 아침 모텔에서 조심스럽게 나오는 중년 커플들, 단란주점에서 손님들을 배웅하는 아가씨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설파하는 전도사와 '멸공'차량 등 -에 더 관심을 가진다. 장선우 감독은 이 포스트모던한 소설을 가지고 영화라는 형식을 계속 무효화 시키고 있는 셈이다. 쿠엔틴 타란티노보다 1년 앞섰고, 도그마 선언보다 4년 앞섰다.  

 

 

   장선우 감독은 이 영화 <경마장 가는길>이 소설 『경마장 가는 길』의 오독으로 보이길 원한 것 같다. 영화가 시작되면 영화 타이틀 '경마장 가는길'이 띄어쓰기가 틀린채, 견고딕체로 쓰여 있다. 영화의 마지막, R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창 밖의 광경을 보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글의 제목은 '경마장 가는 길'이고, 영화의 타이틀이 다시 한 번 나오는데, 제대로 된 띄어쓰기에 바탕체로 쓰여있다. 소설 『경마장 가는 길』이 끝에가서 소설 안 소설과 소설 밖 소설이 맞물려 다시 시작하는 소설이라면, 영화 <경마장 가는길>은 영화로 다시 돌아가기 보다는, "감독이 오독한 <경마장 가는길>을 다 보셨으니, 이젠 제대로 된 『경마장 가는 길』을 읽으시라"는 감독의 메시지가 들리는 것 같다. 그러니까, 장선우 감독은 132분 동안 관객을 상대하며 시종일관 낄낄거린 셈이다.  

   불쾌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런 그의 의도가 우리를 '경마장'으로 안내하는 방식이 아닐까? 경마장이 실제로 있건 없건간에. 

 

 

 

 

*덧붙임: 

1.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라면, 인물들에 대한 배우의 해석이겠지요. 소설에서 때론 이지적이고 근엄해보인 R은 영화에서 꽤나 찌질하게 보입니다. 소설에서 '아무 생각 없는 것 처럼 보이는' J는 강수연 씨의 해석으로 다소 '적극적'인 여성으로 보입니다. 

 

2. 역시 장선우 감독님도 원작소설의 이 대사를 상당히 재미있어 하신 것 같습니다. ^.^; 

"너의 이러한 태도의 이데올로기는 뭐니?" 

 

3. 그러고보니 R의 아내로 나온 김보연 씨를 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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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3-25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오래전 본 영화!
얼마전 본 '실종'에서 사이코패스 역의 섬뜩한 문성근을 봤는데
저 찌질했던 역할의 문성근 얼굴도 저땐 비교적 푸릇하네요.
저 대사 기억나요. 너의 이런 태도의 이데올로기는 무엇이냐?ㅎㅎ

Tomek 2010-03-25 18:30   좋아요 0 | URL
<실종>은 내용이 무서워서 못봤어요. 역시 문성근 씨는 그런 위악적인 역할이더라도 '먹물'행세 하는 역할이 근사한 것 같아요. 그러고보니 <경마장 가는길>에서 먹물병을 던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ㅎㅎ 영화에서 자주 봤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

순오기 2010-03-28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볼 때 '한번 하자'는 얘기를 저렇게 지루하게 풀어가야 하나? 생각했던 1인.^^
좀 지루하고 재미없게 보면서 내 취향은 아니라고 생각했죠.
소설은 안 봐서 몰라요...
영화리뷰의 양대산맥인 프레이야님과 토멕님!^^

Tomek 2010-03-29 10:03   좋아요 0 | URL
지금보시면 더 재미있으실지도 모르겠어요. ^.^;
헤헷~ 고맙습니다.

novio 2010-03-31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고전도 있네요. 어떻게 이런 작품들을 아시는지 놀랄 따릅입니다. 정말 영화 전문가시네요. 다른 분들이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 느껴집니다

Tomek 2010-03-31 15:42   좋아요 0 | URL
예전에 아인스에서 한국영화컬렉션을 싸게 팔때 구입해서 하나씩 천천히 보고 있는거예요. 일종의 재고소진이랄까. 영화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합니다. 제가 쓴 글들은 제가 읽어봐도 재미가 없는걸요. novio님이나 다른 분들의 글들은 읽는 재미가 있는데 말이죠. 전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지루해하는 글을 쓰는 것 같아요. 당사자가 이러니 뭐 말 다했죠. ^.^;
좋게봐주셔서 고맙습니다.

pjy 2010-04-10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죽거리길 좋아해서 소설보면서 이 대화는 요지가 모냐..이러면서 보다가 말다가~ 한참 삼천포로 빠졌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ㅋㅋ

Tomek 2010-04-12 10:39   좋아요 0 | URL
결국엔 '한 번 하자'로 귀결되는 모든 대화였죠. ^.^;

혁궁 2012-04-22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경마장 가는길을 보았습니다
R과 J의 대화 중 괜한 장면을 보여주는 등 쇼트를 왜 나누지 않았나 햇는데
이런 뜻이 있었군요 알고보니 매우 혁신적인 영화네요 글 잘봤습니다!

Tomek 2012-04-23 09:57   좋아요 0 | URL
그냥 제 생각일 뿐, 어떤 의미였는지는 감독만이 알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