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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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엔 두 편의 '재난'에 관한 영화가 개봉됐었다. 상반기엔 『노잉(Knowing)』, 하반기엔 『2012』. 두 영화의 완성도는 서로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종말의 순간을 대비하는 영화다. 『노잉』은 이미 예정된 종말에 대한 인간의 무력감을, 『2012』는 그 무력감 앞에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인간의 아웅다웅을 그렸다. 자포자기의 무력함은 사람을 자학적으로 만든다. 그 두 영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의 무력감을 조롱하듯, 엄청난 자연재해 스펙터클을 관객에게 선사했다. 글자 그대로 '죄의식을 동반한 즐거움(Guilty Pleasure)'. 그런면에서 존 힐코트 감독의 『더 로드(The Road)』는 참으로 심심한 영화다. 이 영화는 '재난'을 그린 것이 아니라, 재난 '이후'를 그렸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세계가 잿더미로 변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명체가 자취를 감추었고, 살아남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살아 남은 사람들 역시 음식이 부족해 식인을 한다. 이런 세상에 살아남은 아버지(비고 모르테슨)와 아들(코디 스미스 맥피)은 남쪽으로 간다. 영화는 그들이 남쪽으로 가는 동안 겪는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이 영화를 홍보하면서 가장 많이 언급 하는 이름은 원작의 저자인 코맥 매카시이다. 소설을 읽지 않아, '감히 성서와 비교된다는 원작'이 얼마나 굉장한 걸작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니 그 상찬이 괜한 말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앞서 『셜록 홈즈』리뷰에서도 얘기했지만) 영상은 활자를 이길 수 없다. 깊이있는 원작을 표면에 부유하는 영상이 똑같이 표현할 길은 없다. 원작이 있는 영화에서 내가 바라는 것은 그 분위기이다. 잿더미로 변한 세계. (먹을 수 있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고, 나무들마저 스스로 쓰러지는 황폐한 세계. 푸른 바다마저도 잿빛으로 물든 종말 이후의 세상. 그런 점에서 영화는 그 분위기를 잘 표현했다. 목 매단 시체를 별다른 동요없이 바라보는 어린 아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이런 세상을 오래 겪어왔음을 알 수 있다. '나쁜 사람들(식인을 하는 사람들)'을 대비해 자살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아버지의 모습 또한 끔찍한 생존의 한 방식이다(산채로 잡히면 강간 당하는 끔찍한 고통을 당하고 잡혀 먹힐테니까). 

   살기 위해 인간임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악다구니들 속에서 인간으로써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아들 역시 힘이 들어 자살을 꿈꾸지만(!), 아버지는 견뎌내자고 한다.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불씨를 옮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불씨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 '희망'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불씨는 자주 흔들린다. 음식 앞에서, 생존 앞에서, 혈육 앞에서. 아버지는 이기적이 되어간다. 희망은 이기적인 마음에선 꿈꿀 수 없다.   

 

 

 

   영화에선 기적같은 순간이 있다. 작은 깡통안에서 딱정벌레가 날아가는 모습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 기적을 바라본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듯, 스스로 치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사람들은 서로 믿지 못하고 살인을 저지른다. 아직 기적은 인간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아니, 기적이 인간을 찾아왔는데, 인간은 그걸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인류에게 있어 최대의 재난은 인류 자신인 셈이다.

   영화의 마지막, 아들은 불씨를 꺼뜨리지 않을 수 있을까? 불씨는 홀로 있을 땐 한없이 약한 존재이지만, 그 불씨가 모이면 횃불이 된다. 부디 '그들'이 횃불을 꺼뜨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임 

1. 영화제에 별 관심은 없지만, 이 영화는 2010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LA 컨피덴셜』이 될 확률이 농후합니다. 커티스 핸슨 감독의 『LA 컨피덴셜』은 1997년 가장 잘 만들어진 영화 중에 하나였으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에 침몰했었죠. 올해 아카데미 역시 (그때 그!)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에 몰빵할 것 같습니다.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말이 생각납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만들어진 해에 당신의 최고작을 만들지 말라." 

2.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an)』가 개봉할 때는 매카시 얘기는 하나도 없더니 『더 로드』개봉할 때는 온통 매카시 얘기 뿐입니다. 한국의 독서 인구가 늘어났다기 보다는 홍보에 감독이나 배우에 비빌 구석이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쨌든 소설은 꼭 읽어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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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0-01-11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의 원작 작가의 내면까지 꼼꼼히 알려주셔서 영화를 보고난 느낌이 드네요. 2012는 보았습니다만 노잉은 감상하질 못했네요. 자연의 대재앙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의 초라함과 허무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Tomek 2010-01-12 08:50   좋아요 0 | URL
제가 쓴 글은 영화의 반에 반도 이야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꽤 울림이 큰 영화이니 기회 있으면 꼭 보셨으면 해요. 책은 호평이 많더라고요. 책도 읽어볼 생각입니다.
고맙습니다. ^.^
 
셜록 홈즈 - Sherlock Hol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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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숙취 

   신년회때문에 술에 진탕 빠진채 날을 넘기고 겨우 집에 들어왔다. 눈을 뜨니 아침 7시. 머리는 숙취에 띵하고 속은 메슥거리는 상황. 이럴 때 집에 있으면 하루종일 반사상태로 누워있으며 괴로워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에, 하여 움직이기로 했다. 해장국 대신에 영화로 속을 풀리라. 아내와 같이 보려했으나 아내는 어제 내 뒤치닥거리때문에 피곤하다며 혼자 보라고 한다. 아내의 TTL카드를 챙기고 홀로 극장에 가 영화를 봤다.   

 

1.19세기말 런던

   원작이 있는 영화를 볼 때 내가 기대하는 것은 딱 하나이다. 얼마만큼 그 분위기를 잘 표현했는가. 이야기의 밀도는 물론 캐릭터의 깊이 또한 영화는 활자를 따를 수 없다. 재현보다는 각색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영화는 활자로 질질 끌다시피 하는 시대 묘사를 화면으로 보여주고 느낄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런면에서 내가 『셜록 홈즈』에 기대한 것은 캐릭터도, 추리도 아닌, 19세기 말(영화에선 타워 브리지가 거의 완성 직전이었던 걸로 보아 1890년 전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참 산업혁명이 일어난 지저분한 런던의 분위기였다. 안개와 공장의 매연이 가득찬, 잦은 비가 내리며 하수구로 썩은 물이 흐르는 그 지옥같은 풍경. 물론 이런 거리묘사는 소설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지만, 영화에서는 충분히 구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블랙우드경이 벌이는 그 초자연적인 공포는 세기말과 런던의 지옥같은 분위기와 겹쳐져 더 그럴싸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런던은 너무나 깨끗하고 게다가 맑기까지 하다.  

 

1-1. 19세기말의 런던을 느낄 수 있는 영화

 

   데이빗 린치 감독의 『엘리펀트 맨(The Elephant Man)』. 미국의 감독들에게 유럽의 이미지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것처럼 깨끗하고 정돈된 이미지였다고 한다. 그러나 데이빗 린치는 19세기 말의 영국을 공장의 매연과 증기가 뿜어져나오는 지저분한 거리, 그리고 그 주변에는 갈고리에 매달린 돼지고기를 썰어 파는 생경한 곳으로 묘사했다. 그런 지옥도에서 희귀병을 앓고 있는 존 메릭의 절규 "난 동물이 아니에요! 난 사람이라고요!(I'm not an animal! I'm a human being!)"라고 외치는 것은 감동을 넘어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또 다른 영화로는 팀 버튼 감독의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Sweeney Todd: The Demon Barber Of Fleet Street)』가 있다. 권력자의 음욕으로 부인과 아이를 잃고 복수심만 남은 스위니 토드. 그의 복수극 역시 지옥에서 행해져야만 한다. 팀 버튼이 그리는 런던은 '시체'와 '식인'이 가족을 잃은 한 가장의 복수심으로 한데 버무러진 지옥이다. 살이 발라진 희생자들의 피와 시취는 런던의 하수구를 흐른다. 영화는 시종일관 창백하고 음울하며 어둡다. 

 

2. 셜록 홈즈와 왓슨 

   영화를 보고 신촌역을 지나 이대쪽으로 걸어올라왔다. 여전히 골치는 아프고 빈속에 힘이 겨워 근처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와 머핀을 시켰다. 커피를 홀짝거리며 근처에 있는 Take-Out 잡지를 꺼냈다. <씨네21 736호>. 『셜록 홈즈』에 대한 글이 있다. 대충 훓어보다가 김연수 작가가 쓴 글에서 멈췄다. 긴 글을 감히 한 줄로 줄여서 표현한다면 이렇다. '나의 셜록은 이렇지 않아!'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은(비록 전권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입장에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글이었다. 내가 책에서 읽은 셜록 홈즈 역시, 몸 보다는 머리로, 직감보다는 증거로 행동하는 '중후한' 캐릭터였으니까.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닥 불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하는 셜록 홈즈가 지나치게 '알 파치노'스러워 보여 그렇지, 매사에 잘난척하고, 자신감 넘치지만 사랑 앞에선 한없이 조심해지는 멋진 캐릭터였다고 생각한다. 소설에서는 거의 내레이터에 불과했던 나약한 왓슨 또한, 단순한 조력자가 아닌, 파트너의 위치로 격상되었다(심지어 왓슨이 홈즈의 면상을 한 대 치기도 한다). 아이린의 등장은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홈즈의 책상에 그녀의 사진이 있는 것(아마 「보헤미아 왕국의 스캔들」에서 받았을!!), 그리고 그녀가 홈즈의 최대의 숙적(이자 2편의 악당으로 내정된) 모리아티 교수와 관련이 있는 것이 영화를 보는 동안 찾을 수 있었던 즐거움이었다. 대신에 악당 블랙우드 경은 카리스마가 부족해 아쉬웠고(히치콕 감독의 말을 인용하자면, "악당은 주인공보다 매력적이어야 한다"),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너무 뻔했다. 

          

   오히려 이 영화를 코난 도일 원작과 비교하기보다는 셜록 홈즈의 사후(?)에 붐처럼 출간되었던 안작소설(pastische)의 한 갈래라고 생각하는 게 더 편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국내에 출판된 미치 컬린의 『셜록 홈즈의 마지막 날들』, 칼렙 카의 『셜록 홈즈 이탈리아인 비서관』, 존 딕슨 카와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이 지은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에 이은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 영상소설』!!

 

2-1. 셜록 홈즈 파스타시

   21세기의 셜록 홈즈가 (김연수 작가의 표현을 빌려) '성룡'이라면, 80년대의 셜록 홈즈는 '인디아나 존스'였다. 베리 레빈슨 감독의 『피라미드의 공포(Young Sherlock Holmes)』는 '만일 왓슨과 홈즈가 학창시절에 만났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오직 팬픽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이야기를 실제로 스크린에 옮겼다. 어린 시절 풋풋한 홈즈와 왓슨의 활약은 그당시 인기있었던 『구니스』와 『인디아나존스』의 영향력 아래 있어서 셜록 홈즈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겐 황망함을 안겨준 경우였을 것이다. 난 이 영화를 『영 셜록 홈즈』란 제목으로 86년엔가 봤는데(당연 비짜 비디오) 국내 개봉은 그보다 한참 늦었고, 제목도 셜록 홈즈와는 상관없는『피라미드의 공포』로 개봉했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은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튀어나온 기사의 살인 장면! 가히 충격이었다. 한가지 특별한 것은 홈즈의 첫사랑 엘리자베스가 죽는다는 사실. 물론 엘리자베스는 영화에서 가공된 인물이지만, 이런 아픔때문에 후에 홈즈가 사랑도 결혼도 없이 홀로 사는 게 아닐까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런데 써놓고 보니 제임스 본드 이야기같기도 하다. 하긴 인디아나 존스는 루카스와 스필버그의 007 이야기이기도 하니 얼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의 7080 세대들에게 셜록홈즈, 왓슨, 모리아티 교수 그리고 허드슨 부인의 이미지를 완전히 각인시킨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기획한 『명탐정 번개(名探偵ホームズ)』일 것이다. 『루팡 3세』, 『미래소년 코난』등에서 보인 삼각 구도를 셜록 홈즈, 허드슨 부인, 모리아티 교수로 펼쳐놓은 것도 신선했고, 미야자키 감독 특유의 액션 활극 또한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뛰어났다. 추리물은 아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해석이 신선했던 작품이다. 

 

3. 감독 

   그런데 왜 하필 가이 리치가 감독했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더 재밌게 더 전복적으로 그릴 수 있는 영화가 너무 안전하게 그려진 느낌은 그의 연이은 실패 때문은 아니었을까? 속편은 좀 더 나가길 바랄 뿐이다.   

 

 

4. 그리고 집 

   추운날 일찍 일어나 돌아다니니 술이 깨긴 커녕 외려 피곤하다. 들어와서 씻고 바로 잠들다. 

 

5. 덧붙임 

   리뷰에도 알라딘 상품 넣기 기능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갖다 붙이기 하려니 정말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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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1-11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딸이랑 작년연말에 봤어요.
홈즈, 상상을 깨고 좀 낯설었어요.
악당이 영 불쾌했구요. 호감가는 악당이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
저도 했습니다. 과학과 종교의 대립으로 가는 구도나 선악의 구도나
참 많이 다루어진 것들이라 식상했어요.^^
영화는 그저그랬지만, 정성들여 쓰신 리뷰엔 추천!

Tomek 2010-01-12 08:53   좋아요 0 | URL
지적하신대로 과학과 종교의 대립으로 가는 구도나 선악의 구도가 지금까지 영화에서 너무 많이 다루어진 것이라 식상하긴 했지요. 정성스레 빚은 캐릭터에 비해서 이야기와 악당은 좀 김이 빠지는 경우였죠.
하지만 「바스커빌 가의 개」에서도 그런 초자연적인 현상에 이성으로 대처하고 추리하는 모습이 각인되어서 그런지 저는 꽤 나름 재밌었어요. 아님 술기운이었나?
추천 고맙습니다! ^.^

개미탐험가 2010-01-12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어렸을 때 홈즈 시리즈를 보았을 때의 기억으로는, 홈즈는 권투도 잘하고 힘도 세고 싸움하기 좋아하는 약간 액션 이미지가 있었거든요.. 총 싸움과 격투기로 범인을 잡기도 하고요.. 그래서 새로 나온 홈즈 영화가 이상할 것 같지는 않았는데.. 실제로 영화를 보면 어떨지 궁금하네요..

자리에 느긋하게 앉아서 머리로 추리하는 쪽은 포와르나 미스 마플 정도?? 아닐까요? ^^

Tomek 2010-01-13 13:43   좋아요 0 | URL
예. 물론 펜싱과 권투와 바이올린 연주도 잘 한다고 소설에 언급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권투는 거의 K-1 수준이고, 액션은 거의 '아크로바틱'한 모습에 홈즈를 대입하기는 조금... 홈즈의 캐릭터에 '지나친 과장법'을 썼다고 생각하시면 편할 것 같습니다. 기회있으시면 감상 하시길 바랍니다. ^.^
저 역시 홈즈를 안락의자 탐정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셜록키언들이 본다면 '신성모독'이라 생각할 만한 점이 꽤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웨딩드레스 - Wedding Dres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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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 영화 눈물난다. 하지만 신파는 아니다.  

   영화는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에 맞닥뜨린 싱글맘 고운(송윤아)과 9살난 딸 소라(김향기)가 그 가슴아픈 이별을 위해 남은 시간을 서로에게 선물하는 행복과 아픔을 담고 있다. 다소 진부할 수 있는 드라마 장르의 뻔한 스토리지만, 의외로 담백한 구성을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신파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점은 관객에게 감정의 물꼬를 터지게 해주는 방식에 있다고 본다. 억지스런 설정이나 과장된 기복없이 가늘고 나지막하게 흐르는 물처럼, 조용하게 내리는 비처럼 영화는 꽤나 단순한 구성으로 자연스럽고 소소하게 흘러간다.  

   영화를 보는 내내 훌쩍 거리는 소리와 얼굴을 훔치는 사람들의 손동작이 이어졌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슬픔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갖는 저마다의 면모를 돋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소라와 고운, 딸과 엄마

 

   우선, 죽음을 앞둔 엄마 고운은 심약하지도 굳건하지도 않은 평범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딸과 원치 않는 언쟁을 벌인 후 눈물을 보이기 싫어 방으로 들어와 하는 혼잣말 '미친 년, 잘 하지. 진작 좀 잘하지...' 하며 자책하는 대사는 꽤 현실적으로 들렸다. 딸 소라는 엄마의 병을 알면서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기존의 캐릭터처럼 애어른 같지 않은 아이의 풋풋함이 싱그러웠다. 특히, 화장실에서 토하고 있는 엄마를 모르척 하며 아무렇지 않게 '그러게 많이 좀 먹지 말라니까!'라는 한마디를 내뱉고는 학교간다며 현관문을 나서는 장면에서 김향기의 연기는 진가를 발휘한다. 담담히 문을 닫고 한발 한발 내딛으며 걷다가 조금씩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이내 가득 젖은  눈에 고인 눈물이 차올라 넘치는 장면에선 제아무리 감정이 매마른 사람이라도 버틸 수 없을 정도다. 

   많은 비중이 있지 않았던 조연들의 연기도 볼만하다. 고운의 오빠(김명국)는 병원에서 여동생의 병세를 알고 집으로 바래다 주는데 복받치는 슬픔을 추스리지 못하고 차를 세우고 길위에서 오열 한다. 표정 클로즈업없이 실루엣만으로도 표현되는 슬픔의 깊이가 밀려왔다. 

   또한 웨딩드레스 샵의 사장이자 선배 미자(김여진)가 고운의 소식을 접하고 보이는 다소 색다른 대응 방식 - 자극적인 대사; 뭐, 어딜가? 너 해고야! 재수 없어... 당장 나가! (대충 이런 식이었던)- 에서 종이장처럼 평면적일 수도 있었을 조연 캐릭터에 생생한 기운을 실어주는 섬세함이 색달랐다.  

   긴 영화를 감히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웨딩드레스』는 신파라는 어둡고 통속적인 옷을 깔끔하고 정갈한 웨딩드레스로 차려입힌 영화다. 감독, 배우들이 합심해서 관객에게 '울어!'하고 강요하는 영화가 아닌, 아무말 없이 손수건을 건네주는 영화다. 

  

 

*덧붙임 

소라(김향기)를 보니 딸도 든든할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습니다. 그나저나, 딸이든 아들이든 2010년 올해는 태어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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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트 2010-01-08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아이 만들기 시도하고 계시군요. 환영합니다. 두아이 아빠로서 한마디 하자면, 토멕님은 이제 인생 막장에 들어서려고 하십니다^^

Tomek 2010-01-08 14:13   좋아요 0 | URL
막장에 들어가도 좋으니 좀 생겼으면 좋겠어요~
>,.<

2010-01-08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8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novio 2010-01-09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지만 임팩트 있는 리뷰네요. 그나저나 올해 경인년의 태어날 아이는 호랑이 띠라서 굉장한 울음소리가 나겠네요. 좋은 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

Tomek 2010-01-10 07:1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novio님도 힘차고 좋은 한 해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
 
씬 시티 - Sin City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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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란 무엇일까? 로버트 로드리게즈와 프랭크 밀러가 공동 감독한 『씬 시티』를 보면서 이런 근원적인 생각까지 거슬러 오른 것은 괜한 지적 허영이 아니다.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영화는 '누더기 예술'이다. 일단 영화는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매채다. 일단, (오페라와 연극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 필요하고 음악과 미술이 필요하다. 영화가 예술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과학적 '발명품'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리고 뤼미에르 형제는 이 '발명품'을 '구경거리'로 만들어 '돈벌이'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영화는 처음부터 예술이 아닌, 발명품이자 구경거리고 돈벌이인 태생을 지녔다. 

   그런 영화가 예술적 지위를 얻은 것은 영화가 다른 예술들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고양시키기 때문이다. 그것이 영화 내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정성일 평론가는 그런 순간을 "Cinematic Magic"이라 했다. 영화사에서 이런 마법같은 순간은 자연 현상이나 배우들의 연기에 의해 일어나는 화학반응의 경우가 많았다. 즉 영화라는 매채가 아무리 누더기같이 이것 저것을 기워 붙인다 하더라도 그 누더기조각들은 진짜 배우들의 연기를 진짜 공간에서 찍은 것들이었다. 

   『씬 시티』는 대부분 그린&블루 스크린에서 촬영했다. 이 영화의 공간은 CG로 만들어진 공간이고 진짜는 배우뿐이다. 문제는 그 실제 배우들조차 각자 따로 연기를 한 것을 붙였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순 연극같은 무대, 아니 텅빈 공간에서 배우들이 자신의 상대역을 마치 있는 것처럼 연기하는 것을 한데 모은 이 영화는 어쩌면 새로운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는 눈속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씬 시티』는 좀 심했다. 이 영화는 누더기 조차도 가짜로 가득 차있는 셈이다. (책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난 형식적인 면에선 보수주의자이자 근본주의자인가 보다..)

   이것을 영화라 불러야 할지 다른 이름을 붙여야할지는 모르겠다. 카메라로 '담은' 것과 카메라에 '그린' 것은 그 질감이 다르니까. 하지만 이것도 영화가 21세기를 견디어내고 통과해 나가는 과정임에는 분명하다. 그렇기때문에 형식적인 면에서 『씬 시티』를 평가하기엔 너무 이른감이 있지 않은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내게 매혹적인 이유는 프랭크 밀러가 창조한 인물들을 실사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랭크 밀러의 『씬 시티』연작들은 '쌈마이'적인 정서가 물씬 흐르지만 각 인물들의 고뇌하는 독백은 고혹적이다 못해 아름답기까지하다. 거의 시에 가까운 수준인데, 영화에서는 주인공들이 이 '시'들을 낭독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각 파트의 주인공 롤을 맡은, 조쉬 하트넷, 미키 루크, 클라이브 오웬, 브루스 윌리스, 이들은 모두 멋진 목소리를 가지고 있고,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It's a lousy room in a lousy part of a lousy town.  
   
   
  She smells like angels ought to smell.  
   
   
 

"Ask yourself if that corpse of a slut is worth dying for."

"Worth dying for. Worth killing for. Worth going to hell for. Amen."

 
   
   
  The young girl lives. The old man dies. Fair trade.  
   

   이와 같은 대사들은 눈으로 읽는 것보다 귀로 들었을 때 더 큰 감흥을 느낀다. 그러니 영화 『씬 시티』를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은 영화와 그래픽 노블 두 매채를 같이 감상해야 한다. 한번은 눈으로 다른 한번은 멋진 배우들이 낭독하는 것을 귀로. 하지만 불행하게도 영화의 자막은 문학성 있는 대사를 모조리 뭉개놓았다. 이 대사를 제대로 된 번역으로 감상하려면 세미콜론에서 나온 『씬 시티』번역본을 구해야한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바벨탑을 지었던 먼 옛날의 조상들을 원망하곤 하지만... 

 

*덧붙임 

브리트니 머피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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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 Tokyo Godfather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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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금 아쉬운 제목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의 원제는 『동경대부(東京代父)』이다. 영어 제목도 『Tokyo Godfathers』로 원제를 충실히 따랐으나, 영화를 수입한 영화사는 제목 선정에 상당히 고민했을 것이다. 원제인『동경대부』를 따르자니 뭔가 모를 조폭영화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점에서『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이란 제목은 상당히 잘 지은 제목이다. '크리스마스'와 '기적'이라는 평범한 우리들이 크리스마스에 꿈꾸는 저 두 단어를 제목에 넣은 것은, 그만큼 영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타까운점은 저 제목때문에, 이 영화의 이야기가 '크리스마스 하루'에 벌어지는 이야기로 착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의 이야기는 정확히 12월 24일 저녁에 시작해서 1월 1일에 오후에 끝난다. 영화는 크리스마스라는 종교성을 드러내기 보다는 12월 말, 한 해를 정리하는 시점에서 부딪히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2. 곤 사토시 

   감독인 곤 사토시는 지금까지 『퍼펙트 블루』, 『천년여우』,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파프리카』 이렇게 4편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왔다. 그의 작품들은 현실과 환상이 기가막히게 뒤섞여 있지만, 기존의 저패니메이션과는 좀 떨어진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의 작화와 편집의 리듬은 스튜디오에서 만들어내는 가공품이 아닌, 수공품이다. 곤 사토시는 미야자키 하야오, 오시이 마모루 등과 같이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화 한 또 하나의 사례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은 다른 세편과는 달리 '환상'이라는 요소가 부족하지만, 그에 걸맞는 연속된 '우연'이 크리스마스에 허용되는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저마다 사연을 가진 노숙자들이 주인공이라는 점, 군더더기 없는 빠른 전개와 편집은 그의 작품을 다른 저패니메이션과는 달리 독특한 위치에 서게 한다.   

 

3. 아기 예수의 탄생일에 시작된 기적 

   영화는 알콜중독자인 긴, 드랙퀸 하나, 가출소녀 미유키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쓰레기장에서 갓 태어난 어린 아이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들은 아이를 부모에게 돌려주기로 하고 아이의 부모를 찾아 나선다. 그 와중에 야쿠자, 이민자 살인 청부업자, 폭력적인 십대들과 긴, 하나, 미유키의 가족들이 서로 얽히게 된다. 12월 31일 밤. 우여곡절 끝에 아이를 엄마에게 돌려주지만, 실은 그 엄마가 진짜 엄마가 아닌, 아이를 유괴하고 버린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나타난 이 '기적'과도 같은 아이, 그리고 이 아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긴, 하나, 미유키는 각자의 인생을 복기한다. 자신들이 어째서 노숙자로 살고 있는지, 얼마나 인생을 후회하는지 조근조근 드러낸다. 후회하고 다시 돌이가고 싶지만, 자신들을 원망하고 있을 가족들에게 미안해 그들은 계속 그 자리에 머문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에 만난 이 '기적' 덕분에 그들은 가족을 만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4. 실현된 기적을 맞이한 새해 

   어쩌면 사람들이 겪는 불화는 아주 조그마한 것에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는 그 상처나 섭섭함의 크기가 커서 용서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어도, 지나고 보면 세월의 풍화에 무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우리는 그 불화의 간극을 메우지 않고 지낸다. 너무 멀리 떨어졌기 때문이다. 먼저 다가간다면 그런 불화들은 다 봉합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처럼. 

   크리스마스에 시작된 이 작은 소동은 '기적'을 낳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한다. 너무 뻔한 결말인가? 크리스마스에는 한번쯤 용서해주자. 

 

 

 

5. 덧붙임 

- 곤 사토시 감독은 '정신나간 여자/남자'를 정말로 섬뜩하게 연출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의 전 작품을 관통하는 '정신나간 캐릭터'들은 영화에 엄청난 긴장감과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아이가 유괴범에게 돌려졌을 때, 유괴범인 여인이 눈이 풀어진채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장면은 정말 섬뜩합니다. 그 섬뜩함이 후반부의 클라이맥스를 지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이 영화 덕분에 이제 더이상 베토벤 9번 교향곡을 들으면서 『Clockwork Orange』의 알렉스를 떠올리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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