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왕가위 감독, 노라 존스 (Norah Jones)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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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My Blueberry Nights)』는 왕가위 감독이 처음으로 미국에서 영어로 찍은 영화다. 그는 홍콩을 벗어난 다른 나라에서 영화를 찍은 적이 있어도, 배우는 항상 중국어를 사용하는 배우를 기용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노라 존스, 주드 로, 나탈리 포트만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서양 배우들을 기용했다. 중국인들이 미국에서 찍는 영화가 아닌, 그곳 미국에 사는 사람들로 찍는 왕가위의 영화라니. 설정만으로도 기대감이 넘치는 영화였다. 그러나 영화는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를 오간다.  

   영화의 내용은, 이번에도 역시, '사랑'영화다. 하지만 전작인 『화양연화』와 『2046』에서 이미 '어른'의 사랑을 보여준 왕가위는 이번엔 실연의 치유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의 주인공 엘리자베스(노라 존스)는 남자 친구에게 차인 후, 미국 전역을 돌아다닌다.(영화에 나오는 곳은 멤피스와 라스베가스지만, 아마도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사랑을 보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나간다. 그리고 종종 그녀가 실연당했을 때 그녀를 위로해준 카페 주인 제레미(주드 로)에게 일방적인 편지 연락을 한다. 

   먼저 절반의 실패. 전작 『2046』에서 왕가위는 한국, 중국, 일본의 다국적 배우들과 작업을 했다.(아쉽게도 심혜진은 촬영은 했지만, 편집돼서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굉장히 흥미롭고 좋았다. 하지만, 헐리우드 배우들의 출연은 왕가위 영화의 그 정서를 휘발시켰다. 그들의 모습은 아름답고 매혹적이지만, 어딘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진다. 왕가위 특유의 스타일이 살아 있을 뿐, 그 특유의 '통절한' 정서는 사라졌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마치 외국의 한 감독이 왕가위 스타일을 모방해 영화를 찍은 것 같은 가짜 냄새가 난다. 진짜 왕가위가 찍었는데도. 『무간도』라는 귤이 헐리우드에 와서 『디파티드』라는 탱자가 됐듯이,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도 다른 문화권으로 건너가면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런지. 그리고 그 문화적인 너비는 이쪽의 문화에서 저쪽의 문화로 각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색하거나 윤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 그런데 그렇게 해서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는 우리 이외의 사람들을 평생 이해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마치 『화양연화』의 <Yumeji's theme>과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의 <Yumeji's theme>의 차이처럼.

   절반의 성공은 왕가위의 시선이 조금 더 넓어졌다는 것이다. 『타락천사』에서 잠깐 나온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화양연화』를 관통하는 '어른들'의 관계가 이곳 미국에서도 그려진다. 그런 빗나가고 엇갈리는 관계를 통해서, (스스로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것과 물건을 통해서 끝까지 간직하려는 필사적인 마음이 이번 영화에 나타나 있다. 중경삼림의 비누와 수건같은 마음을 가진 소품들이 이번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신한다. 연인들이 버리고 간 열쇠와 남편이 남기고 간 계산하지 않은 영수증, 도박으로 딴 재규어, 그리고 팔리지 않아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운명의 블루베리 파이까지. 사소한 물건들이 각자의 마음속에 큰 의미로 남게 된다. 물론 이런 깨달음은 모두 실연 후에 오는 것이다. 누군가를 잃어버리고 그 누군가가 의미 있는 존재로 남게 되지만, 결국 그 존재는 없고, 대체물로 그 존재를 대신하는 아픔이 이 영화에 베어있다. 

   시간과 거리로 환산된 실연의 아픔을 치유한 엘리자베스가 제레미와 '달콤한' 키스를 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제레미가 간직했던 수많은 연인들의 '열쇠'는 모두 각자의 주인들에게 돌려주었다. 그 열쇠는 각자의 사연을 가진, 각자의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였다. 이제 그는 엘리자베스의 열쇠만을 간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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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지 2009-12-03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경삼림도 좋은데, 개인적으론 화양연화를 가장 재미있게 본 거 같습니다.

Tomek 2009-12-04 09:38   좋아요 0 | URL
저는 『춘광사설』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습니다. 군대 있을 때 처음으로 외박나와서 꾸리꾸리한 여관방에서 혼자 봤었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장국영이 '통곡'하는 모습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네요.

『중경삼림』은 고등학교 때 봤을 땐 굉장히 흥겨운 영화라 생각했었는데, 몇 년 전에 다시 봤을 땐 상당히 '메마른'영화여서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

『화양연화』와 『2046』은 결혼하고 나서 다시 보니 처음 봤을 때 보다 그 의미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어떤 방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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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방문>은 세 명의 감독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다. 하지만 얼마 전에 개봉한 <오감도>같은 영화를 떠올리는 것은 곤란하다. 이 영화는 상업영화로 기획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루하거나 어렵지는 않다. 영화는 찡하다가 웃기고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이것은 이 영화에 참여한 홍상수, 가와세 나오미, 라브 디아즈의 역량때문이다. 

   <어떤 방문>은 전주국제영화제의 한 섹션인 [디지털 삼인삼색]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는 세 명의 감독을 선정한 후, '선정한 세 명의 감독에게 전주국제영화제 프리미어 상영을 전제로 5천만원의 제작비를 지원하고, 디지털 카메라와 디지털 편집 장비를 이용하여 각각 30분 분량의 디지털 영화를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작품의 주제나 내용엔 일체 간섭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 참여한 세 감독의 작품을 보고, 세편의 영화에서 '누군가가 어딘가를 방문'하는 공통점이 있어 제목을 이렇게 선정했다고 한다. 잘 지은 제목이다. 세 영화 모두 '누군가의 방문'으로 인해서 사건이 벌어지니까. 

   <어떤 방문>은 세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영화는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연출한 <코마 Koma>, 두 번째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첩첩산중>, 세 번째는 라브 디아즈 감독의 <나비들에겐 기억이 없다>이다. 개인적으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각각의 영화는 각각의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아마도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데 나에겐 다행히 다 마음에 든 경우라서 행복했다.   

 

 

<Koma> 감독 - 가와세 나오미 

   <코마>의 내용은 간단하다. 시간대별로 간단히 정리하자면, 먼 옛날 '코마'라는 조용한 마을에 한 남자가 방문한다. 그는 우연히 한 아이의 목숨을 구하고 아이의 아버지는 감사의 뜻으로 족자를 선물한다. 시간은 흘러 현재가 되고, 그의 손자인 강준일은 족자를 돌려주기 위해 코마를 방문한다. 그는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간단하고 담백한 내용인데 그 속엔 숨은 알레고리가 마구 엉켜있다. 

   영화 제목 <코마>는 의학용어인 coma가 아니라 Koma라는 지명이다. 이곳 사이타마현의 코마사토(高麗鄕)는 옛날 고구려의 유민이 일본에 건너와 흩어져 살다가 모여서 만든 마을이다. 이곳엔 고구려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일본속의 한국. 주인공인 강준일은 한국사람인지 재일교포인지 분간이 안간다. 일본말이 능통한 것으로 보아 재일교포 3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코마사토 주변을 감싸고 있는 작은 산은 미와산이다. 미와산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밤에만 찾아오는 신랑의 정체가 궁금해 신랑의 옷에 실꿴 바늘을 꽂고 다음날 아침 그 실을 따라 갔더니 큰 나무 밑둥에 바늘이 꽂혀 있고 신랑은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 이 전설을 바탕으로 한 일본의 전통 가무극 노(能)와 춘향가의 [사랑가].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이런 수많은 알레고리로 걸쳐져 있다. 

   하지만 가와세 나오미는 이런 딱딱한 주제를 생각하게 하기 보다는 자연과 음악으로 '느끼게' 해준다. 숲, 나무, 빛나는 햇살. 자연과 동화되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꼭꼭 숨겨 놓은 알레고리를 생각하기 보다는 '느끼게' 하는 것은 가와세 나오미의 뛰어난 역량인 것 같다. 

 

 

<첩첩산중> 감독 - 홍상수 

   이번 영화 관람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작품이다. 솔직히 다른 두 편이야 어찌되든 이 영화만 건지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운좋게도 다른 두 편까지 건진 셈이었다. 홍상수는 지금까지 항상 장편만을 찍어왔다. 때문에 그의 영화가 단편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그는 단편이든 장편이든 그만의 영화를 만든다. 

   영화는 미숙(정유미)이 친구 진영(김진경)을 만나러 전주에 내려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주엔 대학 은사이자 옛 애인인 상옥(문성근)이 있다. 그런데 미숙이 자신의 친구 진영이 상옥과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 옛 애인인 명우(이선균)를 부른다. 

   <첩첩산중>이라기 보다는 점입가경이 더 어울릴 정도로 이야기는 '그렇게 안되었으면'하는 방식으로 흐른다. 그 와중에 펼쳐지는 인간의 치사한 위선과 유치함이 쉴새없이 까발려진다. 영화 보는 내내 하도 웃어서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홍상수는 예쁜 화면을 만들기보다는 근사한 사건을 만든다. 그의 영화에서 기억나는 '화면'은 없으나 기억나는 인물이나 사건이 많은 까닭은 그가 인간에 관심이 많아서 일것이다. 

   영화의 처음은 아파트 건물로 시작하고 끝은 모텔 건물로 끝난다. 제목인 산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산'의 이미지란, 도시의 아파트나 모텔같은 높은 직사각형 건물들인 것일까 생각해본다. 

 

 

<나비들에겐 기억이 없다> 감독 - 라브 디아즈 

   라브 디아즈 감독은 필리핀 출신이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필리핀 영화를 본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필리핀은 우리에게 그저 값싼 동남아 여행지 정도로만 인식될 뿐이다. 한국에 수많은 필리핀 노동자들이 살아가지만, 우리에겐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필리핀이 에스파냐, 미국, 일본에 점령됐었다는 역사를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필리핀의 공영어는 타갈로그어와 영어이고 영화에서도 이 두 언어가 함께 쓰인다. 

   영화의 내용은 금광회사가 철수하자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페르딩, 산토스, 윌리가, 어렸을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간 마사가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영화는 필리핀의 어두운 현실을 반영하듯 흑백으로 촬영됐고, 무기력한 심정을 보여주듯 고정된 카메라로 길게 진행된다. 게다가 화면비율은 (이전의 두 영화들과 달리) 폐쇄공포증이 느껴지는 1.33:1이다. 화면이 움직이지 않아 상당히 지루할 수 있지만, 주변의 불안요소들로 영화적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렇다고 영화적인 장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죄를 짓기 전에 미리 성당에서 속죄하는 모습이나, 거사에 돌입할 때 축제의 가면을 쓰고 숲을 지나는 모습. 그리고 갑자기 나비가 떼로 날아오르는 모습은 이 지독한 현실같은 영화에 어떤 마법같은 순간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어렸을 때의) 친구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죄의식 때문인지, 아니면 범죄의 막연한 공포때문인지 모를 '통곡'을 본다. 

   언뜻보면 지루한 흑백 다큐멘터리로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영화는 현재 필리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돈 앞에 굴복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현실을 차분히 보여준다. 이런 영화는 쉽게 찾아오는 영화가 아니다. 반드시 놓치지 말고 봐야할 영화다. 

 

 

   지난 15일 오후 3시에 홍대 상상마당에서 <어떤 방문>을 관람했다. 추운날 일요일 오후인데도 불구하고 좌석은 다행이 매진됐다. 그러나 들리는 말에 따르면, 지금까지 약 1,000명이 안 되는 관객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고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구의 내일'을 걱정하는 영화는 많이 있다. 하지만 '나의 내일'을 걱정하는 영화는 흔치 않다. 이 영화의 우연한 방문을 통해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내일에 대한 고민을,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생각해보고 위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면 좋겠다. 

 

 

*덧붙임   

   <첩첩산중>에서 이선균 씨가 연기한 명우는 소설가입니다. 미숙(정유미)에 따르면 명우는 어떤 소설로 상을 타고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그런 명우가 영화 내내 들고 있는 책은 김연수 작가의 <밤은 노래한다>입니다. 그런 점에서 명우는 (아마도) 김연수 작가를 모델로 한 것 같습니다. 

   김연수 작가는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평단과 박스오피스를 석권한 유명 감독으로 나옵니다.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공연희(엄지원)에 따르면 그는 공연희를 강간한 '강간범'입니다. 그리고 <첩첩산중>에서 상옥(문성근)에 의하면, 명우는 그저 자신만을 따라하는 버릇없는 '개자식'입니다. 

   정리하자면, 홍상수 감독은 두 편의 영화에서 김연수 작가를 '강간범'이자 '개자식'으로 만든 셈인데, 그 의도가 심히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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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 - Michael Jackson’s This is i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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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엔 신파일 것이라 생각했다. 생전의 마이클을 추억하고 울먹이는 지인들의 모습이 나오고 그의 장례식 장면이 나오며 플래시백 형식으로 리허설 장면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사후에 급조되어 만들어진 영상물이니 그럴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각오를 단단히 하고 극장에 갔다.  

   그러나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 

   영화는 『THIS IS IT』콘서트에 참여하는 스태프들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어린시절부터 자신의 우상이었던 마이클 잭슨과 함께 공연에 참가한다는 사실에 다들 눈물을 글썽이고 벅찬 마음을 가누지 못해 어쩔줄 모르는 모습을 영화는 천천히 보여준다. 그리고 시작되는 마이클 잭슨의 리허설.

   지금껏 우리가 접한 마이클 잭슨의 공연 모습은 한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주의자'의 모습이었다. 마이클 잭슨과 댄서들과 밴드들과 스태프들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무대.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그 완벽한 공연을 위해 그들이 얼마나 수많은 수행착오를 겪는지를 보여준다. 중간 중간 밴드, 댄서 혹은 그 외의 상황들로 엇박자가 날때마다 마이클 잭슨은 말한다. "괜찮아. 이래서 리허설이 필요한 거야." 처음으로 공개되는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 이제는 더이상 그가 없다는 사실에 괜시리 더 슬퍼진다.   

   모든 곡이 인상적이었지만, 4~50년대 느와르 필름을 인용한 「Smooth Criminal」과 3-D를 활용한 「Thriller」는 리허설 장면만으로도 '압도적'이었다. 그 엄청난 물량공세와 자로 잰듯한 군무. 이미 가수로서 이룰 것을 다 이룬 사람이 궁극의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노력하는 모습은 그저 '감동'이라는 말밖에 생각이 안든다. 

   개인적으로 울컥했던 장면은 그가 「I'll be there」를 부를 때였다. 성인이 되고 나서 <잭슨 5>시절의 노래를 부른 모습을 처음 봐서 그런 것일 수도 있으나, 6세의 미성과 50세의 목소리가 오버랩됨을 느끼면서, '아, 이젠 더 이상 저 목소리를 들을 수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거렸다.

   지금에서야 이런 가정은 부질없겠지만, 만약 이 공연이 성사되었다면, 정말 엄청난 공연이 되었을 것이다. 말 그대로 "THIS IS IT!(바로 이거야!)"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THIS IS IT(이게 끝이야)"이 된 기막힌 아이러니.  

 

   10월 마지막날 씨너스 이수 1관 17시 50분에 약 10명정도의 사람들과 관람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다른 재미있는 영화들을 포기하고 기어이 이 리허설 공연을 선택한 사람들을 보며 괜한 연대감이 들기도 했고. 다들 크레딧이 완전히 올라갈 때까지 끝까지 남아있었다. 극장에 불이 켜지고 나자 누군가 나직하게 내뱉는 한마디. "아쉽다." 이처럼 그 상황을 잘 묘사하는 적합한 단어가 더 있을까?

   나도 그에게 인사를 해야겠다. 영화 속 마이클이 했던 것처럼. "God bless you, Michael." 

 

 

 

<SET LIST>  

1. Wanna Be Startin' Somethin'
2. Speechless
3. Jam
4. They Don't Care About Us (with snippet of "HIStory")
5. Bad (with snippet of "Mind Is The Magic")
6. Human Nature
7. Smooth Criminal
8. The Way You Make Me Feel
9. I Want You Back
10. The Love You Save 
11. I'll Be There
12. Shake Your Body (Down to the Ground)
13. I Just Can't Stop Loving You
14. Thriller (with snippet of "Threatened")
15. Beat It
16. Black or White
17. Earth Song
18. Billie Jean
19. Man in the Mirror
20. This Is It
21. Heal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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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oco79 2010-01-22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is is it. 그의 목소리는 한마디로 soulful. 극장관람시기를 놓치고 며칠전 dvd로 봤었는데, review보니 영화 다시 보고 듣고싶어졌어!

2010-01-22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3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5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래디에이터 (2disc)
리들리 스코트 감독, 러셀 크로우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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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래디에이터>를 처음 봤을 때의 황당함을 아직 잊지 못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영화는 막시무스가 자신의 정체를 젊은 황제에게 드러냈을 때 끝났어야 했다. 그게 이 영화에 더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영화는 이야기를 질질 끌면서 기어이 황제 코모두스와 막시무스를 콜로세움에서 싸우게 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끌었어야 했을까"하고 생각을 하다가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감상하게 되었다. 그때 리들리 스콧이 왜 이 이야기를 질질 끌었는가를 알게 되었다.  

   드러난 주인공은 막시무스이지만, 이 영화의 심정적 주인공은 코모두스 이다. 첫 등장에서 알 수 있듯이 코모두스는 인간적으로 끌리는 면이 하나도 없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즐기고 누릴 뿐이다. 하지만 나는 두번째 이 영화를 보면서 코모두스에게 심정적으로 끌리게 되었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 그는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죽인다.' (이장면에서는 <블레이드 러너>의 '로이 베티'가 생각났다. 자신의 부모에게 인정을 받아보지 못한 아들들은 그 느낌이 어떨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세상이 황량해지는 경험을 지금껏 난 잊어본적이 없다.) 그는 하나 남은 자신의 혈육에게도 배신을 당한다. 결국 코모두스에게 남은 것은 외로움과 분노뿐이고 그 삐둘어진 분노가 막시무스를 향하게 되었다.  

   막시무스는 너무도 이상적인 주인공이다. 단지 자신의 가족에 대한 복수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랑과 정치적 셈까지 고려하는 징글징글한 인물이다. 어쩌면 모든 것을 잃어버렸지만 그 바탕은 더할나위없이 이상적인 인물보다는, 모든 것을 가졌으나 실은 아무것도 누릴 수 없는 콤플렉스 덩어리의 불안전한 인물에게 빠져드는 것은 이 영화를 보는 나 자신이 그만큼 불완전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인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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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도 못하면서(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홍상수 감독, 고현정 외 출연 / 프리지엠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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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한국에서 홍상수의 영화를 보는 것은 과감한 결단이다. 홍상수라는 이름은 박찬욱, 봉준호와 같이 브랜드화 되어있지만, 그들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사람들에게 여겨진다. 즉 따분하고 고리타분한 '예술영화'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느낄 수 있다. 극 중 구경남의 말대로 홍상수의 영화에는 "예쁜 화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홍상수의 영화에는 일반적인 영화에는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의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 반추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홍상수의 영화를 (도중에 끊지 않고 끝까지 견뎌서) 보고 나면 대개 두 가지 반응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낄낄거리던가, 혹은 불쾌하던가. 그런데 이 두가지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낄낄거리는 것은 홍상수 영화에 나왔던 인물들의 행태를 보고 '나도 그랬어'하면서 동조하는 것이고, 불쾌한 것은 '아.. 저거 왜 들춰내는 거야'하고 부정하는 것이다. 결국 홍상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치졸한 인성을 철저하게 영화에서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삶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도 특별한 것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TV나 다른 영화에서 보여주는 포장술을 걷어낸 각자의 인생은 얼마나 비루한 것인가.  

   홍상수는 그런 포장지를 다 걷어내고 인간 본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월한 수컷이고자 증명하는 남자들, 찝찝한 상황에서 혼자서 벗어나고자하는 치졸함, 감정의 기복, 자존심을 위한 말싸움 등 우리가 인생에서 당하고 행하는 모든 일들이 그의 영화에 다 나와있다. 즉, 홍상수의 영화를 보는 것은 <올드보이> 이우진의 말처럼, "인생을 통째로 복습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홍상수의 영화가 [인간극장]과 같은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그는 영화적 형식을 끊임없이 찾고 있으며 각 영화마다 다르게 구성해왔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는 4명의 등장인물을 각각 주인공처럼, 마치 4편의 단편영화처럼 찍었고, <강원도의 힘>에서는 하나의 이야기를 앞, 뒤가 아닌 화자의 시선으로 나누어 찍었고, <오! 수정>에서는 하나의 이야기를 추억하는 각자의 기억에 따라 서로 다르게 찍었고, <생활의 발견>에서는 같은 이야기를 주체와 객체를 서로 바꿔 다른 공간에서 반복되는 이야기처럼 찍었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는 세명의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다가 중간에 두명의 주인공이 사라지고 혼자남은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끌어갔고, <극장전>에서는 영화속 영화와 영화속 현실을 찍었고, <해변의 여인>에서는 결코 만날 것 같지 않던 두 여자들이 한자리에 서로 만나는 '마술'을 보여주었고 <밤과 낮>에서는 처음으로 편년체 형식을 썼으나 여주인공의 과거와 미래가 걸쳐있는 전인미답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그만큼 홍상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을 찾아서 '영화적'으로 보여주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마치 지금까지의 모든 홍상수 영화의 집합체이다. 이제 그는 각 영화에서 개별적으로 다루던 기억과의 싸움을 그의 전 영화로 확장시킨 것 같은 느낌일 정도로 전작들의 등장인물들이 했던 상황과 대사가 무차별적으로 쏟아져나온다. 그렇다고 힘든 영화는 아니다. 초기작에서 보여주었던 위악스러움은 많이 사라졌고, 살벌한 유머도 많이 유해지만, 그래도 홍상수는 홍상수다. 계속 지속되어왔던 '죽음'이라는 테마는 그게 진심이든, 그냥 한 말이든 이번에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홍상수의 영화를 보는 것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하루하루를 떼우며 살아가는 것이라면, 굳이 홍상수의 영화를 찾아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살아가는 것이라면, 홍상수의 영화를 꼭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의 영화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진 않지만, 생각할 시간을 준다. 요즘 같은 세상속에서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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