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맨 - The Wolf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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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늑대인간(werewolf)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멀게는 그리스 신화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도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악마' 이미지는 중세 시대, 흡혈귀와 마녀 논쟁이 한창 벌어지던 때에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도 '늑대인간'은 많이 다루어졌는데, 그 중 첫 작품은 <늑대인간(The Werewolf)>이란 작품으로 1913년에 무성영화로 만들어졌으나, 화재로 소실, 지금은 확인할 길이 없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늑대인간 영화는 <런던의 늑대인간(Werewolf of London)>으로 1935년 작이다, 1941년 <울프맨(Wolfman)>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이 영화는 <런던의 늑대인간<American Werewolf in London)>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향후 모든 늑대인간 영화의 기본이 된다. 헐리우드가 이 매혹적인 소재를 가만 놔둘리가 없다. 2010년에 개봉한 조 존스톤 감독의 <울프맨(The Wolfman)>은 1941년 작을 리메이크 한 영화다.  

 

    

<울프맨>. 왼쪽이 1941년작, 오른쪽이 2010년작. 

 

   아쉽게도 '늑대인간'이란 소재에서는,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이란 거의 없다고 해도 과한말이 아니다. 관객 입장에서 늑대인간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인간에서 늑대로 변하는 과정. 그 과정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보여주느냐 였다. 그리고 그 성취는 이미 80년대에서 다 이룬 상태였다. 

 

<런던의 늑대인간> 인간이 늑대인간으로 변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렇다면 <울프맨>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배트맨 비긴즈> 이후로 여러 히어로들에게 통과의례가 된 '자아의 고뇌'가 남아있다. 

   일단 <울프맨>의 시간적 배경은 19세기 말의 영국이다. 아! 19세기 말 영국에선 무슨 일들이 벌어졌던가! 산업혁명으로 도시엔 스모그까 깔리고, 어두운 밤에는 연쇄 살인범 '잭 더 리퍼'가 활동한 시기였다. 물론 당대의 명탐정 셜록 홈즈가 활동했던 시기이기도 하고, 복수에 눈이 먼 스위니 토드의 살인과 인육파티가 벌어진 공간이기도 하며, 희귀병을 앓고 있는 존 메릭의 절규 - "난 동물이 아니에요. 난 사람이에요." - 가 뿜어져나온 시기이기도 했다. 첨단과 전통, 이성과 비이성이 공존한 뒤죽박죽의 시기. 그런 때에 늑대 한 마리쯤 풀어 놓는다고 뭐가 이상하겠는가? 

 

기어이 런던에 간 (미국인) 늑대인간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미국에서 배우로 활동하던 로렌스(베네치오 델 토로)는 형의 약혼녀인 그웬(에밀리 블런트)에게서 형이 실종당했다는 편지를 받고 아버지(안소니 홉킨스)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형은 그 사이 시체로 발견된다. 형의 죽음에 대해 조사하던 로렌스는 형의 유품과 관련이 있었던 집시들을 조사하던 중, 알 수 없는 괴수에게 공격당하고 의식을 잃게 된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정신을 차린 로렌스는 어느 순간부터 몸 안의 변화를 느끼게 되고, 보름달이 뜨자 극심한 고통을 느끼면서 늑대 인간으로 변하고 그를 잡으러 온 마을 사람들을 살육한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된 로렌스는 사람들에게 잡혀가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알 듯 말 듯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어서 중간까지만 정리) 

 

   영화는 두 가지 전략을 구사한다. 하나는 자신의 육체가 변하고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는 자아의 고뇌이고, 다른 하나는 늑대 인간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거대한 살육'이다. 

   첫 번째 전략은 이 잔혹한 영화에 뭔가 있어보이게 하는 것이다. 일단 주인공 로렌스는 매우 복잡한 인물이다. 히스페닉계 어머니의 죽음, 이방인으로 미국에서 살아가는 것, 형의 죽음 등 그의 머리 속엔 온통 잡다한 트라우마가 가득 차 있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쇠약한 인물이 늑대 인간으로 변하면서 그의 트라우마 목록엔 죄의식과 늑대의 공포가 첨가된다. 게다가 그는 이런 정신적 트라우마를 해결해야 하는 동시에 형을 죽인 범인도 쫓아야 하고, 형의 약혼녀인 그웬과도 사랑에 빠져야 한다. 베네치오 델 토로는 이런 복잡한 인물을 잘 캐리커쳐 했다. 

   오히려 눈에 띄는 역할을 한 연기자는 아버지 역의 안소니 홉킨스다. 요근래 맘좋은 할아버지 역만 한 이 노배우는 오랜만에 물만난 물고기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악마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마치 <한니발>의 렉터 박사와 <드라큘라>의 반 헬싱 교수를 반씩 섞은 듯한, 우아하면서도 히스테리적인 역할이었다.   

 

웃는 듯, 우는 듯, 안소니, 안소니

 

   두 번째 전략인 '거대한 살육'은 좀 아쉬웠다. 영화에서는 총 5번의 보름달이 보여진다. 즉, 관객이 늑대 인간(의 살육)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다섯 번이나 된다. 하지만, 그 횟수는 마음에 들지만, 표현은 조금 아쉽다. 영화는 늑대 인간 영화답게, 희생자들의 팔을 자르고, 목덜미를 물어 뜯고, 머리를 날려버리고, 배를 물어 창자를 물어 뜯어내는 등 잔혹하지만, 끔찍하지는 않다. 좀 더 길게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을 정신 없이 빠른 편집으로, 그저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할 뿐이다. 어차피 R등급의 영화를 목표로 만들었으면, 좀 더 막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낫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오히려 영화에서 가장 빈번하게 쓰이는 기법은 '귀신집 효과'로 정신없이 뻥뻥 터지는 음향에 있다. 동물의 왕국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고어 장면을 기대할 만한 영화이면서도 심리적인 공포를 유발하게 한 효과는 앞서 언급했던 주인공 로렌스의 '심리적'인 요인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영화는 품격이 높아졌는지 모르겠으나, 장르 영화로는 조금 아쉬운 면이 있다.

 

로렌스의 침대를 기어올라오는 '골룸(정확히 표현하자면 미친 늑대병-Lycanthrope-환자)' 장면은 <장화홍련>의 침대 씬이 떠오를만큼 아찔했다. 하지만 영화는 김지운 감독처럼 더 나가지 않고, 심리적 한계선에 다다르기 전에 멈춘다.

 

   이런저런 불평을 남겼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제외하고는 영화를 보는 내내 재미있어 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났고, 21세기에나 어울리는 주제를 19세기 말을 배경으로 하는, 그것도 장르 영화에 풀어 놓은 것도 흥미로웠다. 걸작이 될 영화는 아니지만, 나름 수작(秀作)이다.

 

 

 

*덧붙임 

집사람과 같이 봤는데, 집사람은 늑대 인간을 보더니 츄바카가 생각난다고 하더군요. 듣고보니 그럴듯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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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일의 썸머 - (500) Days of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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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을 지배하는 건 우연이야. 시골이라면 자연이겠지만, 도시에서는 우연이야. 

- 김연수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중에서 - 

 

   한 남자가 있다. <졸업(The Graduate)>을 보고난 후, 세상 어딘가에 자신의 짝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아이. 그리고 그 옆에 한 여자가 있다. 어린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세상에 사랑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 이 둘이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톰 핸슨(조셉 고든-레빗)은 회사에 새로 들어온 썸머 핀(조이 데샤넬)에게 사랑에 빠진다. 그는 운명을 믿는 순진한 로맨티스트이다. 그런데 그가 사랑에 빠진 썸머는 운명따위는 믿지 않는다. 구속 당하는 것을 싫어하는 썸머는 톰과 그저 친한 친구사이로 남기를 원한다. 모든 사랑이 그러하듯, 가치관이 다른 그들은 행복한 시간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지낸다. 

   영화에서 보이듯, 사랑에 빠지면 세상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 연인과 첫 키스를 했을 때의 느낌. 촉촉한 듯, 달콤한 듯. 감긴 눈을 떴을 때,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비추는 깜빡이는 가로등 불빛. 지금은 일상에 치여 묻어놓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사랑에 대한 설렘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다른 영화들과의 차이라면, 반대의 모습도 동일하게 보여준다는 것이겠지만. 

   500일의 기간동안, 톰과 썸머는 사랑을 하고, 싸우고, 헤어지고, 해후하고, 그렇게 지낸다. 그 짧지 않은 기간동안, 그들은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거나 감싸 안지는 않았다. 대신, 그들의 삶이 영향을 받았다. 톰과 썸머가 사귀기 시작한지 488일 되는 날, 톰은 썸머처럼 생각하고, 썸머는 톰처럼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썸머의 말을 들은 톰은 그제서야 깨닫는다. 세상엔 운명따윈 없다는 것을. 오직 우연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썸머와 보낸 500일로 톰은 인생에 있어, 사랑에 있어 더이상 운명을 믿지 않고, 우연을 믿는다. 우연이란, 말 그대로 불쑥 찾아오는 것이다. 그것을 기회라 여기고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그냥 흘려 보내거나. 

   톰이 썸머와 보낸 500일은, 운명이 결정된 안정된 세상을 버리고, 우연으로 가득 찬 불완전한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우연을 기회로 여기는 톰은 다시 1일부터 시작할 것이다. 모든 연애가 그렇듯 처음부터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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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2-03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지 사진이 바뀌어 누군지 몰라볼 뻔했어요.^^

Tomek 2010-02-03 11:52   좋아요 0 | URL
^.^; 메리 메리 황메리~ 이하나 씨 사진으로 바꿨습니다.

요즘 <메리대구 공방전>보는 재미에 푹~ ㅎㅎ

Forgettable. 2010-02-03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리뷰는 정말 못쓰겠더라구요. 이미지와 대화를 어떻게 생각으로 정리할지;; ㅎㅎ
이 영화도 그랬는데.. 딱이네요. 절묘한 리뷰입니다. 짝짝-

아주 예전에 누군가와의 연애 초반에 우리를 만나게 해준 우연을 하나씩 꼽아보니 몇십개가 되어서 서로 즐거워했던 기억이 나네요 :)

Tomek 2010-02-03 13:36   좋아요 0 | URL
제게는 그렇게 '절실하게' 와 닿지는 않는 영화였어요. 김연수, 알랭 드 보통, 우디 앨런 등의 작품들에서 이미 느꼈던 감정들이라... 왠지 모를 복습하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억지로 꾸역꾸역 썼는데 좋게 읽어주시니... 부끄럽사와요...

http://dvdprime.dreamwiz.com/bbs/view.asp?major=MD&minor=D1&master_id=22&bbsfword_id=&master_sel=&fword_sel=&SortMethod=0&SearchCondition=1&SearchConditionTxt=500&bbslist_id=1653404&page=1

좀 길지만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Forgettable님의 절묘한 리뷰의 상찬은 이분이 받으셔야할 듯 해서요.

고맙습니다. ^.^;

Forgettable. 2010-02-03 14:32   좋아요 0 | URL
전 Tomek님 리뷰가 더 좋아요. ㅎㅎ
리뷰 좋아하는 것도 취향이 있나봐요 ^^

2010-02-03 15: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부지
배해성 감독, 박철민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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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살면서 이 단어를 입 밖에 내어 발음하여 호칭으로 쓴 일이 과연 몇번이나 있었고, 또 앞으로 몇번이나 있을까요? 적어도 제겐, 아마도 없을 것 같습니다. 말 할 게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전 "아빠"를 부른 적은 많았지만, 제 유년이 끝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그 호칭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지금까지 그래왔습니다. '아빠'와 '아버지'의 어감의 차이는 너무나 깊고 넓어서, 그 사이를 단숨에 건너뛰기에는 불가능한 법이지요. '아빠'란 단어는 친근감이 들고 '우리 아빠'라는 개별적인 존재로 느껴지지만, '아버지'란 단어는 왠지 권위적이고 보편적인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전 아직도 이 나이를 먹고도 '아빠'에 머물러 있습니다. 물론 남세스러워 발음은 못하고 있지만요. 

   농경사회와 유교문화의 축적으로 아버지란 존재는 가부장(家父長)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가족 구성원의 끼니를 책임지면서, 또한 가족 구성원에 대한 절대적인 권력 또한 가졌습니다. '아버지'에겐 가족 구성원 전체가 중요한 것이지, 구성원 개인의 특출난 재능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을테니까요. 그래서인지, 유독 우리 '아버지' 세대들은 그들의 '아버지'들과 서먹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자란 '아버지'들은 '내 자식만은 그렇게 키우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자식 앞에서는 그들의 '아버지'들과 똑같이 행동을 하는 악순환을 보여주었습니다. (기실 아들이 아버지의 못된 점만 배운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크로노스와 제우스 신화를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죠.)

   그런 아버지들은 어떤 존재로 보여졌을까요? 1980년대, 시(詩)에서 보여진 아버지의 모습은 증오와 원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씹새끼,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 해
          그해 가을, 假面 뒤의 얼굴은 假面이었다 

                                                                                         - 이성복 「그해 가을」 중에서 -

 

(…… ) 작은누이가 중얼거렸다. 아버지 좀 보세요. 어떤 약도 듣지 않았잖아요. 아프시기 전에도 아무것도 해논 일이 없구. 어머니가 누이의 뺨을 쳤다. 약값을 줄일 순 없다. 누이가 깍던 감자가 툭 떨어졌다. 실패하시고 나서 아버지는 3년 동안 낚시질만 하셨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너희들을 건졌어. 이웃 농장에 가서 닭도 키우셨다. 땅도 한 뙈기 장만하셨댔었다. 작은 누이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죽은 맨드라미처럼 빨간 내복이 스웨터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때 아버지는 채소씨앗 대신 알약을 뿌리고 계셨던 거에요. 

                                                                          - 기형도 「위험한 가계(家係).1969」 중에서 -

 

   90년대, 대중가요에선 위로가 필요한 이해의 대상이기도 했었고요.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 인가. 가족에게 소외받고 돈 벌어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곳에도 지금 그가 앉아 쉴자리는 없다. 이제 더이상 그를 두려워 하지 않는 아내와 다커버린 자식들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 뿐이다. 

                                                                            - 신해철 「아버지와 나 Part Ⅰ」 중에서 -

 

   2000년대, 소설에서는 시대와 사회구조가 바뀌면서 가부장적인 권위가 많이 줄어들어서인지, 측은함의 대상이기도 했고 철딱서니이기도 했습니다.   

   미안하구나. 

   아버진 그렇게 얘기했다. 또 그 소리. 내가 일만 한다하면 늘 같은 소리였다. 처음엔 들을 만했는데, 결국 들으나마나가 돼버린 지 오래다. 나이 마흔다섯에 시간당 삼천오백원, 즉 그것이 아버지의 산수였다. 여하튼 무슨 상사(商社)에 다녔는데, 여하튼 <무슨 상사>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직장이었다. 딱 한 번 나는 그곳을 찾아간 적이 있다. 중학생 때의 일인데 도시락을 갖다주는 심부름이었다. 약도가 틀렸나? 엄마가 그려준 약도를 몇 번이고 확인하며, 근처의 골목을 서성이고 서성였다. 간신히 찾아낸 아버지의 사무실은 - 여하튼 그곳에 있기는 한, 그런 사무실이었다. 쥐들이 다닐 것 같은 어둑한 복도와, 형광등과, 칠이 벗겨진 목조의 문. 혹시 외국(外國)인가? 라는 생각이 들 만큼이나 <을씨년>스러운 곳이었다. 깜짝이야, 그런 단어가 머리 속에 있었다니 넉넉한 환경은 아니어도, 제법 메탈리카 같은 걸 듣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세상은 뭔가 ESP 플라잉브이(메탈리카가 사용한 기타의 모델명)와 같은 게 아닐까, 막연한 생각을 나는 했었다. 했는데, 해서 문을 열고 들어서자 꼬박꼬박 도시락만 먹어온 얼굴의 아버지가 가냘픈 표정으로 사무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 저 왔어요.  

                                                                        - 박민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중에서 - 

 

   아버지는 그날 너무 급하게 달려오느라 피임약의 복용법도 자세히 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하얀 재를 뒤집어쓰고 온 아버지에게 몇알씩 먹는 게 맞는지 물었고, 아버지는 "두 알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라고 말하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어머니는 그후 몇달간 피임약을 하루 두 알씩 꼬박꼬박 챙겨먹었다고 한다. 그 몇달간 하늘이 노랗고 구역질이 나는 게 어쩐지 이상했다고. 그랬던 어머니가 약사에게 물어 피임약을 한 알로 줄이고, 양동이에 언 물을 깨뜨려 달빛으로 뒷물을 하고, 그 차가움에 소스라치며 약 먹는 걸 까먹기도 했던 어느날. 어머니는 임신을 했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부풀어오르는 배를 보고 얼굴이 점점 하얘지다가, 아버지가 되기 전날 집을 나가 그후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 김애란 「달려라, 아비」 중에서-

  

   고작 영화 한 편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것을 이야기 해야하나 생각하실 수 있지만, <아부지>를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우리의 머리속에, 가슴속에 묻어놓은 추억을 자극하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예고편이나 지상파 3사에서 보여주는 "스포일러"프로그램 같은 데서 이 영화를 보셨더라면, 그래서 "딱 보니 <워낭소리> 시즌 2, 영화를 가장한 드라마 시티구만"이런 생각을 가져셨던 분들이라면, 그 생각은 지워주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는, 그런 얄팍한 기획 상품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생각만큼 허술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타겟은 4~50대의 '아버지'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전라도 시골(아마도 곡성 아니면 구례)이고, 시대는 새마을 운동을 핑계로 농민들에게 부채를 씌운 70년대입니다. 영화의 첫 장면이 노을이 산에 걸치고 어둠을 맞이하는 농촌의 풍경,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 개 짓는 소리 등으로 시작하는 것, 그리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진행하는 대신 학교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것은 명백히 영화를 보는 이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특별한 에피소드들은 꼭 특정세대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윗세대가 겪은 학교생활은 우리도 비슷하게 겪은 내용들이거나, 구전으로 전해진 내용이니까요. 영화 초반부 이런 추억의 자극은 영화의 경험을 보편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영화의 내용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딘선가 들어왔고 접해왔던 내용입니다. 그럴 수 밖에요. 이 영화는 우리의 추억을 바탕으로 한 영화니까요. 영화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정말 그때 있었을 법한, 언젠가 할머니, 아버지, 선생님께 들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올해 중학교 입학시험을 볼 예정인 국민학교 6학년인 기수(조문국)는 친구들에게 '(책)벌레'라는 놀림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잘합니다. 기수의 식구는 아버지(전무송), 어머니(전정화), 형 기동(육세진), 그리고 나이어린 여동생(전희선)입니다. 기수는 학교에서 담임선생님(박철민)과 서울에서 새로온 선생님(박탐희)이 주최하는 연극반에 들어 연극연습을 하지만, 아버지의 눈에는 탐탁지 않습니다. 형 기동도 밤이 되면 어디론가 나가서 꿍꿍이를 꾸미는 것 같아 맘에 들지 않습니다. 농업의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억지 부채를 떠넘기고 때마다 찾아오는 조합원(봉두개)또한 맘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다 기동이 (농가부채해결의 경각심을 위해 갑작스레) 자살을 합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묻고 소같은 울음을 내뱉습니다. 충격으로 중지됐던 연극연습은 (형을 잃은 충격을 털어낸) 기수가 돌아옴으로써 다시 시작됩니다. 선생님은 이 연극의 내용을 실제 현실을 반영하여 고칩니다. 그리고 연극날. 이 연극이 이적물이란 신고를 들은 경찰이 아이들 배후에 있는 '빨갱이'를 잡아가기 위해 읍내에 들어옵니다.   

 



 

 

   영화는 굉장히 많은 것을 다루고 있지만, 깊게 다루지는 않습니다. 영화의 시선은 6학년생 기수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아무리 지옥같은 시절이었다 하더라도, 기수와 친구들에게는 즐거운 나날이었을 것입니다. 저 또한 80년대를 그렇게 보냈으니까요. 문제는 영화의 개연성이 너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기수의 형이 왜 자살을 했는지, 아버지의 농가 부채의 원인은 무엇인지, 아버지는 왜 그렇게 매사 불만인 것인지 도통 그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짐작할 따름입니다. 배해성 감독은 관객들의 추억의 힘을 너무 믿은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보편적인 추억을 다루었지만, 그 보편적인 추억은 이곳 한국의 특정 세대들의 추억입니다. 호불호가 아니라, 이해와 몰이해의 영역으로 들어간 셈입니다. 어쩌면 무리하게 영화를 압축하느라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의 상영시간은 엔딩 크레딧을 포함해 97분이니까요.   

 

 

 

   제목과 이미지만으로 칙칙한 신파가 아닐까 생각하실 수 있지만, 영화는 의외로 재미있고, 담담합니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화면을 장악한 박철민 씨의 연기는 시나리온지 에드립인지 모를 정도로 '박철민'이라는 캐릭터에 딱 들러붙어 있습니다. 진짜 시골아이들을 캐스팅한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아이들의 모습 또한 생생합니다.   

 


 

 

   아버지 역을 맡은 전무송 씨는 별다른 사건이나, 대사 없이도 우리의 머리 속에 있는 '아버지'를 연기합니다. 전무송 씨는 이전부터 스님, 교수, 문인, 감독, 편집장, 바텐더, 의사 등 인텔리한 역을 많이 맡아, 과연 억센 시골 촌부의 역할을 잘 할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기우였습니다. 그는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아버지'를 표현합니다.   

 

 

 

   연출은 많이 아쉽습니다. 가끔씩 연기자들이 상상선을 벗어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카메라의 초점이 맞지 않는다거나, 줌인의 미숙함 등은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는 큰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관습적으로 사용한 앵글과 줌인은 너무 안일하게 찍은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보편적인 소재를 보편적인 방법으로 찍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요.   

 

 

 

   영화의 마지막. 아버지는 결국 아들을 이해합니다. 아들이 공연한 연극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소통한 셈입니다. 중학교 시험 당일. 한 자식을 가슴에 묻고, 남은 자식을 위해 또 다른 자식인 누렁이를 팔아야 할 아버지는 눈물을 흘립니다. 시험 그날은 눈이 내렸습니다. 아버지는 말 없이 자신의 목도리를 풀어 아들을 감싸줍니다. 부자는 말이 없습니다. 말은 없지만, 아들은 압니다. 아버지의 서툰 사랑표현을. 부자사이는 대개 그렇습니다. 

 



 

DVD 소개  

   높은 연령대를 감안한 영화라 그런지 DVD를 넣으면 바로 영화가 재생됩니다. 그런 작은 생각 씀씀이에 제작사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메뉴화면은 단출합니다. 음성은 5.1ch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5.1ch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은 없습니다. 화면비율은 1.85:1 아나몰픽을 지원합니다. 화질은 무난한 편이고, 어두운 장면에서도 별 다른 거슬림없이 감상할 수 있습니다.   

 

 

 

   자막은 한글자막과 영문자막이 제공되고, 부가영상은 예고편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예고편 영상은 비아나몰픽입니다.  

 



 

총평 

   어찌보면 참으로 낡고 진부한 소재를 영화는 매우 발랄하고 담담하게 찍었습니다. 이 영화 한 편 감상하시고 아버지께 전화 한 통 드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걸었을 때는, 예의 그 무뚝뚝한 목소리로 "왠 전화질이야?" 하셨지만, 내심 반가워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이해해야죠. 우리 (아버지)들은 표현에 항상 서투(시)니까요. 

 

 

* 덧붙임 

1. DVDprime DVD 포럼에 올린 글입니다. 좋은 기회 주셔서 고맙습니다. 

2.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3. 제가 이 영화가 '얄팍한 기획 상품의 하나'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이 영화의 원제가 <분교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명백히 <선생 김봉두>를 의식하고 만든 영화가 <워낭소리>의 폭발적인 흥행으로, 아버지의 역할이 훨씬 커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 내러티브에서 삐끄덕 거리는 부분은 전부 '아버지'의 캐릭터를 설명하려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큰아들 기동의 죽음과 뒷부분 경찰을 제압하는 부분) 하지만, 이렇게 투덜거리긴 해도, 역시 추억의 힘은 막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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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부지
    from 사필귀정 2010-02-14 04:04 
    설 귀향 버스. 버스안에서 영화를 한편 틀어주었다. 맨 앞자리에 앉은 덕분에 그냥 보게 되었다. 잠깐 정신 판 사이에 영화 제목이 지나가 버렸는 지, 무슨 영환지 제목도 모르고 봤다. 끝까지 안나와서 결국엔 집에 와서 '박철민' 검색하고, 이 영화가 '아부지'라는 영환 걸 알았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아래 곰곰히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 다시 꿈같도다...
 
 
순오기 2010-01-24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70년대 새마을세대, 우리 아버지는 농가부채를 뒤집어 쓰고 장리쌀 얻어 고향을 떠나셨지요. 그 장리쌀은 작은아버지가 갚았다던가요~~ 인천에서의 삶도 팍팍하기는 마찬가지였지요.ㅜㅜ 기회되면 영화를 보고 싶네요~

Tomek 2010-01-25 09:16   좋아요 0 | URL
너무 추억에만 함몰하는 게 아닌가 하는 비판도 가능하지만, 그래도 가슴이 찡한 영화입니다. 기회되시면 꼭 보셨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novio 2010-01-28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아직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참 볼 수 없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은 죄를 환기시킬 영화임이 분명하니까요. 한국에서 아버지는 너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막상 아버지 입장이 되면 이해할 수 있었는데 가족들이 등떠밀면서 매몰차게 군 것 같네요. ㅠㅠ

Tomek 2010-01-28 09:40   좋아요 0 | URL
저도 보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담백합니다. 신파도 아니고요. 기회 되면 한 번 보셨으면 해요. 대한민국에서 아버지 욕 안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고맙습니다. ^.^
 
페어러브 - The Fair Lov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누구에게나 사랑은 제가끔, 특별하게 존재한다. 아무리 평탄한 사랑을 한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의 사랑은 항상 특별하게 기억(혹은 윤색)된다. 그 이유는, 사랑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페어러브>는 이보다 조금 더 특별한 관계에서 시작한다. '친구의 딸'이라는 관계와 약 25년간의 나이차이.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사랑에 빠졌을까?", "이들은 주변의 시선을 무릅쓰고 사랑을 지킬 수 있었을까?" 영화를 보기 전에 머리솟에 맴돌던 질문들은 영화를 보고 난 후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기 보다는 생각이 무력화 된 경우다. 이 영화는 '사랑'이 아닌,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형만(안성기)은 카메라 수리공이다. 그는 나이 50이 넘을 때까지 연애는 커녕, 믿었던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조그마한 작업실에서 줄곧 고장난 카메라를 수리하는 일을 해왔다. 그러던 어느날 형만에게 사기를 친 친구가 죽기 전에 형만에게 자신의 딸 남은(이하나)을 돌봐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마지못해 친구의 유언을 수락한 형만은 약속대로 가끔 남은을 찾아간다. 그리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모든 사랑이 그렇듯이 그들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형만은 작은 작업실 안에서 카메라 부품을 만진 채 50여년을 살아왔다. 그 작은 공간은 그에게 있어서 전부이고, 그는 그 안에 침잠해 있다. 남은이 형만과 사귀게 된 후, 남은은 형만에게 말한다. "사진 수리는 그만하고 작가가 되어보는 게 어때요?" 그러자 형만이 남은에게 하는 말, "인생이 그리 만만한 게 아니야. 다 자기가 조금씩 잘 하는 걸로 세상에 맞춰 사는 거지. 넌 뭐 대단한 줄 아니?" 이 말은 전형적인 기성 세대의 말이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기 보다는 세상에 자신을 맞추어 가는 것. 그게 형만이 살아온 인생이다. 아마도 형만이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도 젊었을 때는 작가의 꿈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벽과 세월에 마모되어 그저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맞춰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런 그가 '젊은' 남은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는 그를 둘러 싼 단단한 껍찔을 깨뜨릴 계기를 얻는다.    

 

남은과 형만

 

   <페어러브>를 형만과 남은의 '사랑'이야기로 바라보기에는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다. 영화에서 형만의 캐릭터는 이해하기 쉽게 그린 반면, 남은의 캐릭터는 '애매모호'하게 그렸다. 왜 그녀는 형만을 사랑하게 됐는지, 왜 그녀는 자기 또래의 아이들이 유치하다고 생각하는지, 어떻게 그녀는 형만이 자신을 찾아 올 줄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남은은 설명하지 않는다(혹은 감독은 알려주지 않는다) 신기한 건 남은의 캐릭터가 애매모호하더라도, 영화는 삐끄덕거리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계속 나아간다는 점이다. 배우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이 생략한 부분을 감싸안는 힘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영화의 중간 장면이 반복된다. 형만이 남은과 그의 친구/동료들과 서해안에 놀러가서 회를 먹는 장면. 갑자기 형만이 일어나서 카메라로 구름을 찍는다. 그러자 친한 동료의 야유. "형이 뭐 스타글리치야? 맨날 구름사진만 찍게." 스타글리치는 사진과 회화를 분리하는 운동에 앞장 섰던 '작가'다. 남은은 그가 작가가 되길 원했다. 매일 조그만 작업실에 틀어박혀 되지도 않는 돈벌이를 하기 보다는, 형만이 진짜로 좋아하는 일을 하기를 바랐던 남은. 구름을 찍는 형만을 바라보며 남은은 이야기한다. "우리 다시 시작해요. 우리 다시 시작해요. 우리 다시 시작해요." 이 말은 우리의 '사랑'을 다시 시작하자는 말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인생'을, '삶'을 다시 시작하자는 말이기도 하다. 형만과 남은의 사랑은 그들의 인생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되었다.   

 

   "우리 다시 시작해요." 같이 시작하자는 말만큼 든든한 말은 없다. 형만은 다시 시작할 것이다. 두려워 할 필요 없다. 갑자기 등장한 신연식 감독의 말처럼 "결과는 오십 대 오십" 이니까.

  

 

*덧붙임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 하나. 형만이 친구인 강 목사에게 성경에도 사랑에 관한 구절이 있냐고 묻자 강 목사가 얘기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 4~7절)"  

형만이 이 구절을 읽고 이야기하죠. "뭐가 이렇게 어려워?" 그러자 강 목사의 대답. "그래, 어렵고 힘들어. 남들 다 힘들게 산다. (사랑을 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는) 너나 쉽게 살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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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설 원작 영화 아닙니다. 영화 원작 소설입니다.
    from 내가 읽은 책과 세상 2010-01-18 12:02 
       이번주 개봉영화 중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고 있는 작품이라면 단연, <페어 러브>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두 배우, 안성기 씨와 이하나 씨가 주연이라는 말에 진즉부터 기대하고 있었던 영화였다. 그런데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내용은 다소 파격적이다. 친구의 딸, 아빠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굳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롤리타(Lolita)>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마무라 쇼
  2. 사랑, 누구에게나 공평한 그리고 서로에게 공정한
    from 내가 읽은 책과 세상 2010-01-20 11:30 
       <페어러브>는 (이미 알려진대로) 형만(안성기)과 남은(이하나)의 사랑이야기다. 단, 이들의 관계는 (조금 혹은 매우) 특별한데, 남은은 형만의 친구 딸이다. 굳이 유교권 국가의 특성이 아니더라도,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런 사랑은 본인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둘러싼 주변에서도 납득하기가 힘들다. 이들의 사랑은 수 많은 난관에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1. Fair Love (공평한 사랑)
  3. 『페어러브』영화와 소설, 그 이야기의 원형
    from 내가 읽은 책과 세상 2010-01-24 00:29 
       "근데 사실 세계의 어떤 작품이건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면 영화가 허술해 보여요. 왜냐하면 활자는 디테일을 꼼꼼히 담아낼 수 있는데, 영화는 뭉텅뭉텅 이미지로 보여주어야 하니까요. 거꾸로 영화를 보고 원작을 보면 굉장히 지루해요. 이미지를 보며 감정을 이미 느꼈는데 활자로 일일이 그걸 묘사하고 있으니까 뻔해 보이는 거죠. 장르별 특색이라고 봐야죠."    -공지영,「송해성, 공지영의 대담」 중
 
 
novio 2010-01-20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시작을 중심으로 이 영화에 대해 쓰셨네요. 그러고보니 새로운 시작을 생각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다시 시작해야죠^^

Tomek 2010-01-21 09:19   좋아요 0 | URL
영화를 보고 나서도 계속 남는 말이 "우리 이제 다시 시작해요"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를 둘러싼 지금 상황이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고맙습니다. ^.^

프레이야 2010-01-21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꼭 보고 싶어요. 새로운 시작, 설렘이네요.

Tomek 2010-01-21 13:10   좋아요 0 | URL
꼭 보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아직까지 설레입니다.

고맙습니다. ^.^;
 
S러버(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데이비드 매켄지 감독, 애쉬튼 커처 외 출연 / UEK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태고적부터 지속된 이 닳고 닳은 그래서 이제는 이 질문조차 클리쉐로 느껴지는 '사랑'에 관한 질문은, 그러나 그 누구도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해 언제나 진부하지만 늘 새롭게 다가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발생하는 이 설명 못하는 감정/현상은 문학은 물론이요, 철학, 수학, 과학 등 각 학문에서 어떻게든 증명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그저 '사랑'이란 감정/현상을 잘게 세분했을 뿐, 설명하지는 못했지요. '사랑'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존재하지만, 오직 그 당사자들끼리만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끼니'와 닮았습니다. 끼니 역시 매 시간마다 돌아오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지만, 그 돌아오는 끼니는 각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니까요. 그런점에서 사랑은 '이성'의 영역이 아닌, '본성'의 영역입니다.    

   데이빗 맥켄지 감독의 <S러버(SPREAD)>를 이야기하는데 솔직히 이렇게까지 깊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헐리우드가 간헐적으로(그러나 꾸준히) 만들어낸 '19금' 로맨틱 코미디의 한 흐름이기 때문이죠. 원제인 'SPREAD'와 극장 개봉명인 'S러버'가 무슨 뜻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면, 다른 국가의 개봉명을 찾아보는 것도 영화를 이해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에서는 <L.A. Gigolo>,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Toy Boy>, 스페인에서는 <American Playboy>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습니다. 아하! 이제야 감이 옵니다.    

 

 

   영화는 니키(Nikki, 애슈틴 쿠처)가 거대한 저택 위에서 LA를 바라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니키의 내래이션을 들으면, 니키는 이곳 헐리우드에서 성공할 꿈을 가지고 어디 먼 곳에서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집도 없고, 직업도 없지만,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으로 먹고 삽니다. 그 재능이란 돈 많은 여자에게 접근해 관계를 가진 후, 그녀의 집에 빌붙어 사는 것이죠. (미루어 짐작컨데) 첫 장면에서 니키는 물주와의 관계가 끝나서 이 대저택을 떠나고, 다른 '의식주'를 찾으러 길을 떠납니다. 이제야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됩니다.    

 

 

 

 

   영화는 크게 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전반부는 니키가 새로운 물주인 사만다(Smantha, 앤 헤이시)를 꼬시고, 같이 생활하는 장면이, 후반부는 니키가 사랑에 빠지는 헤더(Heather, 마가리타 레비에바)와의 생활이 그려져 있습니다. 영화의 소재나 표현이 워낙에 적나라해서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정말 거칠게 비유하자면 전반부는 윤종빈 감독의 <비스티 보이즈>이고 후반부는 오기환 감독의 <작업의 정석>이라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이들 두 영화가 떠오르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심정적으로 떠오른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이었지만요. 워낙에 스포일러 투성이라 깊게 이야기하지 못함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저 언급한 영화들만으로 대충 어떤 영화인지 감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니키는 이곳 LA에서 인생을 역전시키고 싶다고 이야기했지만, 그에게는 그런 욕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는 그저 (외롭고 나이들었지만 부자인) 물주를 잡고, 그녀가 그를 '신뢰'하게 만듭니다. 영화의 전반부는 니키가 사만다의 신용을 쌓고 포인트를 늘려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렇게 여자의 마음을 뺏고 니키가 하는 일은 그녀의 재산을 훔치거나 그녀를 죽여 유산을 상속받는 따위가 아니라, 그냥 그녀가 집을 비운 사이에 그녀의 펜트 하우스에서 파티를 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수많은 여자들과 잠자리를 갖는 것. 그에게 섹스는 사랑이 아니라 생존이자 유희입니다.     

 

 

 

 

   하지만 니키의 물주인 사만다는 멍청이가 아닙니다. 그녀는 자신이 농락당하고 이용당하는 것을 압니다. 변호사인 그녀는 니키 앞에서, 자신이 농락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니키를 사랑한다는 '진술'을 합니다. 그녀는 그를 쫓아내지 않습니다. 그녀는 니키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녀에겐 성적으로 그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니키가 우연히 만난 헤더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둘의 관계는 위험해지기 시작합니다.    

 

 

 

 

   영화의 후반부는 니키와 헤더의 동거를 보여줍니다. 사만다의 집과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작은 공간이지만, 그들은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아마도 니키와 헤더 둘 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뜨겁게 사랑을 합니다. 그 사랑은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껏 자신의 특별한 재능만으로 여자들에게 기생해 살았던 니키가 처음으로 직업을 구하려고 했으니까요. 그저 유희였던 섹스가 감정이 실린 사랑으로 변하고 그 사랑이 '책임감'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모습입니다. 니키의 관점에서, 이 영화는 '혹독한' 성장담입니다.      

 

 

 

   영화의 원제목인 <SPREAD>는 상당히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중의적인 표현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공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기만하고 편의와 안락함에 빠질 수 있는 공간, 불편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데 부대끼며 알콩달콩 살 수 있는 공간.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선택을 합니다. 그 선택에 있어서 옳고 그름의 잣대를 댈 수는 없습니다. 각자의 인생은 각자 감내하는 것이니까요.    

 

 

 

  영화의 후반부에 나오는 『개구리 왕자』 이야기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개구리가 마법에 걸린 왕자인줄 알기 위해선 수 많은 개구리에게 키스를 해봐야 그가 왕자인지 개구리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 LA에는 모든 사람들이 귀족들이죠. 왕자에 버금가는 귀족들이 즐비한데, 그 누가 '개구리 따위'에게 키스를 할까요? 개구리는 그저 개구리로 살아갈 뿐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마치 때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개구리의 모습으로 마무리 되는 것은 인상적입니다. 니키 역시 기다릴 것입니다. 언젠가 그를 위해 키스를 해줄 그녀를.  

 

 
DVD

   메뉴화면은 깔끔한 편입니다. PLAY, CHAPTER, SET UP, SPECIAL FEATURES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사운드는 특별할 것 없는 영화이긴 하지만, 영화 초반부 나이트 클럽에서 음악과 대사의 분리도는 뛰어납니다. <할람 포(Hallam Foe)>의 감독답게 사운드트랙 넘버 또한 훌륭한 편입니다. 화질 또한 준수한 편입니다.    

 


  

  

   

  

 

 

   자막은 한글/영어 자막을 지원합니다. 한글 번역은 원작의 의미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얌전하게 번역된 것 같아 조금 아쉽습니다. 그렇다고 케빈 스미스 감독의 <몰래츠(Mallrats)>같이 막말하는 영화를 얌전하게 번역한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Special Features는 단촐한 편이고 <Living the Dream - The making of spread>, <Behind the Scenes with Ashton>, <The World According to Nikki>, 예고편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Living the Dream - The making of spread>에서는 영화 제작과 관련한 다양한 영상과 배우, 스태프의 인터뷰로 꾸려져 있고 시간은 16:10입니다. <Behind the Scenes with Ashton>은 제작자이자 주인공인 배우 애슈틴 쿠쳐가 이야기하는 영화 내용과 그와 일하는 게 얼마나 멋졌는지 회고하는 배우/스태프들의 인터뷰로 묶여있으며, 시간은 5:44입니다. <World According to Nikki>, 애슈틴이 소개하는 영화 캐릭터 소개로 시간은 3:53입니다.  

 

   예고편을 포함한 4편 모두 1.85:1 애너몰픽을 지원합니다만, 아쉽게도 한글 자막은 지원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이자 프로듀서인 애슈틴 쿠처, 앤 헤이시, 마가리타 레비에바의 오디오 코멘터리 역시 마찬가지로 한글 자막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바벨탑이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 덧붙임 

1. DVDprime DVD 포럼에 쓴 글을 가져온 것입니다. 좋은 기회 주셔서 고맙습니다. 

2.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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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7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7 17: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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