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의 詩學 : 파격시의 세계


"절대적 진리도, 선도 없다는 해체주의는 세상 일에 집착하지 않는 일종의 허무주의다. 왜곡된 현실을 왜곡되게 표현하는 해체시에서 온갖 비속어, 욕설 등이 서슴없이 구사되는 언어의 테러리즘을 보게 된다. 해체시의 어조는 진지하지 않고 너무나 유희적이고 거칠다."

- 김준오 《도시시와 해체시》 중에서 -

 

要路院의 두 선비


〈要路院夜話記〉는 숙종조의 한 시골 선비가 서울서 과거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충남 아산 어름의 요로원에 잠자리를 찾아 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병든 말에 초췌남루한 행색의 나그네는 가는 곳마다 홀대와 업수이 여김을 받았다. 한 숫막에서 서울의 행세하는 집안의 끌끌한 선비와 함께 묵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이 소설의 기본 줄거리이다.

자신의 꾀죄죄한 행색을 보고 갖은 수모와 비아냥거림을 던지는 서울 선비에게 시골 선비는 아예 작정을 하고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촌놈 행세를 한다. 이에 더욱 기가 난 서울 선비는 숫제 아래 것 다루듯 시골 선비를 희롱하며 놀다가 완전히 기를 죽여 놓으려고 肉談風月 짓기 시합을 제의하였다. 육담풍월이 무엇인고 하니, 다섯자 일곱자로 언문진서를 섞어 짓는 문자 놀음이다. 다음은 서울 선비가 먼저 던진 풍월이다.


내가 시골 '내기'를 보니
몸 '가짐'을 괴상히 하는도다.
언문 '쓸' 줄도 알지 못하니
眞書 '못'함을 어찌 괴상타 하리.

我觀鄕之賭
怪底形體條
不知諺文辛
何怪眞書沼

원문과 번역을 대조해 보면 갸우뚱 하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각 구의 끝 글자는 한자의 의미로 새긴 것이 아니라, 훈으로 읽은 것이기 때문이다. '賭'는 '내기'이니 '鄕之賭'는 섞어 讀을 하여 '시골 내기'가 되고, '條'는 '가지'라서 '形體條'를 '몸 가짐'으로 읽는다. '辛'은 맛이 '쓰다'는 뜻으로, '諺文辛'이라 해 놓고서 '언문을 쓴다'고 읽고, '沼'는 '못'이니 '眞書沼'는 '眞書를 못함' 즉 한문을 모른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서울 선비는 제깟것이 뜻인들 알랴 하는 마음으로 풍월을 읊고는 득의양양 했겠다. 그리하여 화답을 재촉하니 시골 선비는 짐짓 못하겠노라고 사양을 한다. 더욱 기세가 오른 서울 선비는 화답치 않음은 나를 업수이 여김이니 이 방에서 몰아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에 시골 선비 풍월을 읊조려 가로되,


내가 서울 '것'을 보니
과연 거동이 '되'도다.
대저 인물을 '꾸'었으나
의관을 '꾸민' 것에 불과하도다.

我觀京之表
果然擧動戎
大抵人物貸
不過衣冠夢

라 하였다. '表'가 '것(겉)'이 되고, '戎'은 뙤놈이란 뜻을 '되다'로 읽었다. '貸'는 '꾸다'로, '夢'은 '꿈'이니 이를 '꾸미다'로 읽었다. '시골내기'를 업수이 보다가 '서울 것'이 된통 당한 형국이다. 네까짓 것이 언문도 쓸줄 모른다니 진서야 일러 무엇하겠느냐고 맞보았던 서울 것에게, 그래 너는 겉만 번드르 했지 잘난 게 무에냐는 반격이다. 내용으로만 보자면 시랄 것도 없는 시덥잖은 말장난이지만, 순발력과 재치가 돋보인다.

'서울 것'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감쪽 같이 속았던 자신이 부끄럽고, 깜찍하게 속였던 '시골내기'가 맹랑했다. 이에 본격적으로 서울 것과 시골내기는 시 짓기 시합을 벌이는데, 여기에 동원된 詩體라는 것이 앞서 소개한 바 있던 잡체시들이다. 人名을 넣어 짓는 人名詩로 겨루고, 聯句로 주거니 받거니 시합하고, 다시 六言으로 실갱이를 하다가, 종내 3 5 7言의 層詩로 옮겨 가고, 藥名體로 승부를 결하였다. 서울 것은 시골내기에게 끝내 한번도 이기지 못하고 참패를 하기에 이른다. 그러자 이번엔 거꾸로 시골내기가 五行詩로 겨룰 것을 제안하고 나섰다. 짓는 방법은 첫구 첫자에 '木'자를 넣고, 끝자에는 '土'로 맺으며, 둘째구 첫자는 '水'자로 열어 끝자는 '火'자로 닫으며, 그 가운데에 '金'자를 넣어 五行의 구색을 갖추는 것이다. 시골내기가 먼저 짓기를,


부평 같은 자취 어드메서 이르렀나
꽃 달만 빈 집에 가득하도다.

萍犠何處至
花月滿虛堂

라 하였다. 두 구절의 첫자 '萍'과 '花'는 머리에 '艸'를 얻었으니, '木'에 속하고, '至'와 '堂'은 破字하여 아래 반을 취하면 '土'가 된다. 그러자 서울 것이 한참을 끙끙대다가, 겨우

흐르는 그림자 금술잔에 어리니 流影金樽照
란 한 구절을 맞추고는 4구를 마저 채우지 못하고 손을 들었다. '流'는 '水'에 속하고 '照'는 '火'로 받쳐져, 그 가운데 '金'을 얹은 것이다. 그러자 시골내기는 즉시

맑게 흰빛을 마시는도다. 瀅然飮白光


로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시골내기의 완전한 KO승이 확정되는 순간이다.

〈요로원야화기〉는 단순하게는 갖은 詩體를 놓고 두 선비가 각축을 벌인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거들먹거리는 서울 것을 KO시킬 만큼의 詩才를 지녔으면서도 정작 시골내기는 靑雲의 벼슬길에 명함 한번 내밀어 보지 못했고, 전전하는 여관마다 천덕꾸러기 신세였을 뿐이었다. 모처럼 서울 것 하나가 제대로 걸려 분풀이는 했지만, 뒷맛은 언제나 씁쓸하다.

 

눈물이 석 줄


한시의 어조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과거처럼 단순하고 천편일률적인 목소리에서 벗어나 모순되고 복잡한 양태를 연출하였다. 그들은 성리학적 세계관이 규정하는 제반 사회조건에 길들여져 있었으면서도 그것에서 벗어나려 하였다. 이런 가운데 시인의 태도는 자연스럽게 희극적 양상을 나타내게 되는데, 그 결과 시는 진지성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이른 바 戱作化의 경향은 이 시기에 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물론 이전의 詩話에도 희작의 양상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요로원야화기〉부터 김삿갓의 시에 이르러 극에 달하는 파격의 희작시들이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집단적 양상을 띄고 등장하는 것은 주목되는 한 양상이 아닐 수 없다.

이들 희작시의 작가들이 창작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시정신은 탈중심주의, 탈이데올로기의 현대 해체시가 표방하고 있는 세계와 긴밀하게 맞닿아 았다. 비시적 대상의 시화를 통해 이미 용도 폐기되어버린 공허한 언어의 일상성을 파괴하고 당대 현실의 삶에 뿌리 내림으로써 이들은 구체성과 정직성을 획득하고 있다. 80년대 해체주의가 전통적 시양식에 대한 전면적이고 과격한 파괴를 통해 관습적 시관에 도전장을 던졌다면, 김삿갓을 비롯한 일군의 시인들은 전통 한시의 기교지상주의적 관념 시단에 대해 비아냥거림과 조소의 태도를 통해 야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조선후기《禦睡新話》란 책에 실려 있는 17자시는 바로 그러한 예 가운데 하나다. 제목 그대로 이 책에는 졸음을 단번에 씻어가 줄 수 있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말하자면 당대의 개그 笑話集인 셈이다. 17자 시는 세 수의 연작이다.

어느 해 가뭄이 몹시 심했다. 원님이 단을 쌓아 놓고 기우제를 지내는데, 그 齋를 올리는 곳이 기생집 근처였다. 말이 기우제이지, 원님은 잿밥에 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한 선비가 그 꼴을 보고 시를 지었다.


원님이 몸소 비를 비는데
그 정성 뼈에 사무치더라.
한 밤중에 창을 열고 내어다 보니
밝은 달.

太守親祈雨
精誠貫人骨
夜半推窓看
明月

정성을 다해 드려도 시원찮을 기우제를 온통 잿밥에 마음이 쏠려 지냈으니, 기우제에 대한 하늘의 응답은 明月이었다. 원님이 이를 듣고 대로하여 선비를 매질하였다. 곤장을 실컷 맞고 나온 선비가 또 가만 있지 못하고,


열 일곱자의 시를 지었다가
곤장 스물 여덟대를 맞았네.
만약 만언의 상소를 지었더면
죽었을 거야.

作詩十七字
受笞二十八
若作萬言疏
必殺

라고 근질대는 입을 놀렸겠다. 원님은 한층 격노하여 그를 멀리 귀양 보냈다. 떠나는 날 그 외삼촌이 술과 안주를 차려 전송을 해 주었다. 그 정성이 느꺼워 선비는 다시 붓을 들었다.


저물녁 단풍든 언덕 길에서
나를 전송하는 외삼촌의 마음.
서로 떨구는 이별의 눈물은
석 줄.

斜陽楓岸路
舅氏送我情
相垂離別淚
三行

선비의 외삼촌은 애꾸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시는 사실 우리나라 사람의 작품은 아니고 중국 명나라 때의 무명씨의 작이다. 중국의 《秋水涉筆》에 위 17자 시가 실려 있는데, 대개 두 가지 줄거리를 가진 5수의 17자 시가 하나로 뭉뚱그려져 《어면신화》에 변개 수용된 것이다. 글자의 출입도 상당하다. 이 책에는 16자 시도 실려 있다.


달님이 버들 가지 끝에 떠오니
해 진 뒤에 만나기로 약속합시다.
부모님 모두 곤히 잠들면
몰래.

月上柳梢頭
人約黃昏後
父母俱睡熟

아쉬운 데이트 시간은 너무도 빨리 흘러 가버려 어느덧 달이 늘어진 버들닢 새로 떠올랐다. 그러나 뜨거운 청춘 남녀는 그것으로 만남을 끝내기엔 아쉽기만 하다. 그래서 부모님께 들통나지 않게 한밤 중에 다시 만나 밀회를 나누자는 약속을 주고 받는 것이다.


마음은 말없는 가운데 있어
고개를 푹 숙이고 눈 웃음 짓네.
오늘 오지 못하게 되면
난 몰라.

意在不言中
低頭중眼風
今日來不得

다정한 님의 소곤거림에 그녀는 더욱 두근대는 가슴을 달랠 길 없었다. 혹시 부모님이 늦게 주무셔서 약속을 못지키게 되면 어떻게 하나. 벌써 그녀의 두 볼은 붉게 물들고 말았다.

대개 이런 시들은 형식미의 굳건함을 고수하던 전통 한시에 대해 풍자와 해학의 효과를 발휘하기에 충분하다. 내용의 희화화 뿐 아니라 형식도 더불어 와해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김삿갓은 없다


희작시의 특징은 파격과 해학, 민중성과 익명성으로 대표된다. 특정 작가가 없을 뿐 아니라, 있다 하더라도 의미 없는 가탁이 대부분이다. 또 이들 희작시들은 기존 한시의 문법을 과감히 깨뜨리고 있고, 시의 소재 또한 당시 사설시조가 평시조에 대해 그랬듯이 非詩的 대상을 詩의 소재로 끌어들이고 있다. 또한 그럴듯한 표면 진술의 糖衣를 입혀, 이면에서 풍자와 해학을 겨냥하는 언문풍월도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전통 한시의 기준에서 본다면 이들 희작의 파격시들은 시랄 것도 없는 희학질에 불과하다. 도대체 점잖은 선비가 할 짓은 못되는 것이다.

희작시는 보통 전승의 과정에서 복수성을 띠면서 부연 확장된다. 예를 들어 김삿갓이 어느 늙은이의 부고장에 '柳柳花花'라고 넉 자를 써 주었는데, 그 뜻은 훈으로 새겨 '버들버들(柳柳) 떨다가 꼿꼿(花花)이 죽었다'의 의미가 된다. 그러면 이것이 그 다음에 가면 '柳柳井井花花'로 부연된다. 즉 '버들버들 떨다가 우물우물 하더니 꼿꼿이 죽었다'는 것이다. 〈흥부전〉에서 놀부의 심술 가지 수가 이본에 따라 한없이 늘어나는 양태와 방불하다. 이런 말장난이 좀더 세련된 시의 모양을 갖추면 새로운 한편의 희작시가 탄생된다.


세상 일을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남들은 모두 다 활활 가는데,
내 마음 벌벌 떨기만 하며
나 홀로 살살 오가는구나.
말들은 비록 풀풀 뱉지만
세상 일은 데데하기 그지 없도다.
마음을 꼿꼿이 지키면
앞길이 솔솔 열리리라.

世事熊熊思
人皆弓弓去
我心蜂蜂戰
我獨矢矢來
言雖草草出
世事竹竹爲
心則花花守
前路松松開

참으로 절묘한 말장난이다. '熊熊'이 '곰곰'이 되고, '弓弓'은 '활활'로 읽는다. '蜂蜂'이 '벌벌'로, '矢矢'가 '살살'이 된다. 대개 장난도 이쯤 되려면 이전부터 쌓여진 노하우가 있지 않고서는 안된다. 김삿갓의 부고장이 극단에까지 이른 양상이다.

김삿갓은 없다. 언필칭 그의 시로 일컬어지는 시들은 김삿갓이 아니고서야 누가 이런 시를 지으랴 싶은 것을 모두 주워 모아놓은 것이라고 보면 거의 실상에 가깝다. TV 광고에서 김삿갓이 죽장을 짚고 근엄하게 외치는 "백년도 못되는 인생을 살면서, 천년의 근심을 지닌 채 살아가는 중생들아. 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도 사실은 그의 시가 아니라 중국의 유명한 古詩十九首 가운데 한 구절이다.

이응수에 의해 김삿갓의 시집이 처음 간행된 것은 그가 세상을 뜬지 근 70년 뒤인 1939년의 일이다. 이응수는 이곳 저곳에서 구전되던 김삿갓의 시 183편을 모아 상재하였다. 대부분이 傳聞에 의한 기록이고 보면, 그 眞僞를 헤아려 따진다는 것은 애초에 무망한 일이다. 최불암 시리즈가 그렇고 덩달이 시리즈가 그렇듯이 극단적으로 말하면, 김삿갓의 시 또한 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불특정 다수의 희작시들이 모두 그의 이름 아래 모인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옳음 아니고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옳지 않음 아닐세.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이 그름이 아닐진대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로구나.

是是非非非是是
是非非是非非是
是非非是是非非
是是非非是是非

라고 한 김삿갓의 〈是是非非詩〉는 이미 김시습이 지은 것으로 홍만종의 《소화시평》에 소개되고 있다. 한마디로 是非에 대한 분별력을 상실한 개판의 세상을 향한 야유다. 뿐만 아니라 김시습은 아예 한수 더 떠서,


다른 것 같다 하고 같은 것 다르다 하니, 같고 다름이 다르고
같은 것 다르다 하고 다른 것 같다 하니,다르고 같음이 같구나.

同異異同同異異
異同同異異同同

라는 구절도 남기고 있다. 許厚도 그의 〈是非吟〉에서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참 옳은 것 시비하면 옳음도 그름 되니
물결 따라 억지로 시비할 것 아닐세.
시비를 문득 잊고 눈을 높이 두어야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할 수 있으리. 是非眞是是還非
不必隨波强是非
却忘是非高着眼
方能是是又非非

다 비슷한 발상에서 나온 말 장난들이다. 또 김삿갓이 문전축객 하는 주인을 풍자해서 지었다는 〈人到人家〉에,


사람이 사람 집에 왔는데 사람 대접 않으니
주인의 인사가 사람 되기 어렵도다.

人到人家不待人
主人人事難爲人

라 한 것은, 역시 奇遵의 시에,


사람 밖에서 사람 찾으니 사람이 어찌 다를 것이며
세간에서 세상을 찾으니 세상을 같이하기 어렵겠네.

人外覓人人豈異
世間求世難同世

라는 구절을 연상시킨다.

정조 때 정승을 지낸 李書九가 만년에 은퇴하여 향리에 물러나 있을 때 일이다. 그가 허름한 베잠방이 차림으로 냇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경망한 선비 하나가 시내를 건너려다, "여보. 늙은이! 나를 좀 업고 건네게." 했겠다. "그러시지요." 하고는 젊은 것을 업고 시내를 건너는데, 이 친구 늙은이 등에 업혀 까닥까닥 냇물을 건너다 보니 아뿔싸! 늙은이가 정승이나 할 수 있는 玉貫子가 하고 있지 않은가. 시골 무지랭이 늙은인줄 알았다가 큰 경을 치르게 생겼다. 어쩔줄 몰라 부들부들 떨다가 창졸간에 시내를 건넜는데, 경망한 선비는 좀전의 서슬은 간데 없이 난짝 꿇어앉아 이마를 땅에 짓찧으며 죽을 죄를 빌었다. 그러자 이 의뭉스런 늙은이는 시를 한 수 읊어주고는 다시 건너가 모른 척 낚시질이다. 그 시에 일렀으되,


吾看世시옷

是非在미음

歸家修리을

不然点디귿


이라 하였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굳이 해석을 해 보면,


내가 세상의 '시옷'을 보니
是非가 '미음'에 있더라.
집에 돌아가 '리을'을 닦아라
그렇지 않으면 '디귿'에 점찍으리라.

吾看世시옷
是非在미음
歸家修리을
不然点디귿

가 된다. 점점 알 수 없는 오리무중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시옷은 '人'이요, 미음은 '口'의 모양이다. 리을은 '己'요, 디귿에 점을 찍으면 망할 '亡'자가 된다. 이렇게 풀고서 다시 시를 읽으면,


내가 세상 '사람'을 보니
是非가 '입'에 있더라.
집에 돌아가 '몸'을 닦아라
그렇지 않으면 '망'하리라.

吾看世人
是非在口
歸家修己
不然則亡

가 된다. 경망한 선비에게는 活訓이 아닌가. 그런데 이것이 김삿갓의 시로 둔갑이 되면서는 처음 1 2구가 슬쩍 바뀌고, 전후 이야기도 달리 윤색되었다.


허리 아래엔 '기역'을 차고
소 코에는 '이응'을 뚫었네.
집에 돌아가 '리을'을 닦아라
그렇지 않으면 '디귿'에 점찍으리.

腰下佩기역
牛鼻穿이응
歸家修리을
不然点디귿

1구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이 무색하다. 소의 코뚜레를 잡고 허리에 낫을 차고 지나가는 떠꺼머리 총각을 묘사한 것이 1 2구라면, 3 4구는 박절하게 나그네를 타박하는 주인에게 쏘아붙인 독설이다. 자! 어느 것이 진짜 김삿갓이 지은 것인가?

현재 김삿갓의 시로 수록된 작품 속에서 역대 야담집이나 시화에 다른 사람의 시로 이미 소개된 것은 위의 예들 말고도 얼마든지 더 있다. 이러한 예를 통해서도 오늘날 김삿갓의 시로 믿고 있는 것이 어떤 경로로 정착되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영월 소재 김삿갓 묘를 발견하여 보고한 바 있는 朴泳國 선생이 1987년 김삿갓의 三回甲을 기념하여 전국에 김삿갓 遺詩를 공모했던 바, 무려 690수의 시가 제보되었는데 앞서 본 "세상일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는 시도 이때 김삿갓의 시라고 제보된 것 중 하나이다. 이렇듯 김삿갓의 시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고 보면, 종내는 조선조에 노래된 모든 희작시가 김삿갓의 이름 아래 야권통합(?)을 이루고야 말 모양이다.

 

슬픈 웃음, 解體의 詩學


"절대적 진리도, 선도 없다는 해체주의는 세상 일에 집착하지 않는 일종의 허무주의다. 왜곡된 현실을 왜곡되게 표현하는 해체시에서 온갖 비속어, 욕설 등이 서슴없이 구사되는 언어의 테러리즘을 보게 된다. 해체시의 어조는 진지하지 않고 너무나 유희적이고 거칠다."(김준오,《도시시와 해체시》(문학과비평사, 1992) p.17). "해체주의는 자명한 이치와 질서와 도덕을 근본적으로 회의한다. 세계를 가변적이고 일상적이며 부조리한 것으로 인식한다. 자아도 더 이상 일관되게 세계와 교섭하고 대결하는 심리적 통일체나 종합적 기능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해체시는 무질서한 세계를, 파편화된 세계를 그대로 수용한다."(p.152) 80년대의 해체시를 두고 한 이 언술들은 필자가 읽기에 마치 김삿갓의 시를 두고 한 말처럼 여겨진다. (이하 본문 중의 따옴표는 이 책의 구절들을 끼워 넣은 것이다.)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생기는 이대로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른 부치는 저대로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시정 매매는 세월대로
온갖 일 내 마음대로 함만 못하니
그렇고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내세.

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飯飯粥粥生此竹
是是非非付彼竹
賓客接待家勢竹
市井賣買歲月竹
萬事不如吾心竹
然然然世過然竹

〈竹〉이란 작품이다. 脫絶凡俗한 자태로 세속을 초월한 고고한 선비의 절개를 표상하던 대나무는 이 시에서는 급전직하 '될대로 되라'는 '대'로 전락하고 있다. 원문을 중국사람에게 읽힌다면 무슨 암호문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이른 바 이두의 원리를 이용한 '낯설게 만들기'가 시도되고 있는 해체의 현장이다. 이 시만 해도 조선 후기 시화집인 《夢遊野談》에는 세사에 달관한 어느 정승의 일화 속에 포함되어 실려 있다. 글자에도 다소간 출입이 있다.

예전 鄭澈이 관동부사로 있을 때 일이다. 강릉 사람 全義民이 시를 잘 지었는데, 송강이 그에게 말하기를, "내가 전에 平昌에 갔을 때 藥水라는 지명이 있길래 한 구절을 지었는데 그 바깥 짝을 얻지 못했다" 하고 읊조리기를,

땅 이름 藥水인데 병 고치기 어렵고 地名藥水難醫疾

라 하였다. 그러자 全이 말하기를, "그 대구가 있지만 감히 여쭙지 못하겠습니다."하였다. 송강이 억지로 말하기 하니, 그가 말하였다.

역 이름 餘粮인데 주림 구하지 못하네. 驛號餘粮未救飢

餘粮은 강원도 정선 땅에 있던 역 이름이었다. 송강이 낯빛을 고치고 그를 대하였다. 대개 시 속에 풍자의 뜻이 담겼던 것이다. 《詩評補遺》에 보인다. 두 구절이 모두 지명을 가지고 훈으로 풀어 유희한 것이지만, 담긴 뜻은 진지하다. 그러나 김삿갓이 함경도 일대를 떠돌다 지었다는 〈無題〉를 보면,


길주 길주 하지만 길한 고장 아니요
허가 허가 해봐도 허가하지 않는구나.
명천 명천 하건만 사람은 현명찮코
어전 어전 하여도 식탁엔 고기 없네.

吉州吉州不吉州
許可許可不許可
明川明川人不明
漁佃漁佃食無魚

라 하였다. 같이 땅 이름을 가지고 장난쳤지만 진지함을 찾기 어렵고 가벼운 말장난에 뿌리를 대고 있다. 꼴에 운자는 그대로 지키고 있으니 이 아니 얄미우랴. 교묘한 말장난 외에는 따로 건질 것이 없다.


고을 이름 開城인데 어찌 문을 닫으며
산 이름 松嶽인데 어이 땔감 없느뇨.
황혼의 逐客은 사람 인사 아닐래라
예의 동방 이 나라에 그대 홀로 오랑캐라.

邑號開城何閉門
山名松嶽豈無薪
黃昏逐客非人事
禮義東方自獨秦

이것은 개성에서 땔감이 없어 냉골에서 재울 수 없다는 핑게로 逐客을 당하고서 그집 대문에 써붙이고 갔다는 시다.


작년 9월에 구월산을 지났는데
금년 9월에도 구월산을 지나누나.
해마다 9월이면 구월산을 지나노니
구월산의 빛깔은 노상 9월이로세.

昨年九月過九月
今年九月過九月
年年九月過九月
九月山光長九月

김삿갓의 〈九月山〉이다. 무려 '九月'이란 어휘가 여덟번 되풀이 된다. 시인은 이렇게 하고서도 말이 되지 않느냐고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유희적 태도가 행간에 넘난다. 이런 말장난 뿐이 아니다. 예전 같으면 생각지도 못할 벼룩이나 이, 아니면 입에 담지 못할 욕설도 그의 시에서는 서슴없이 등장한다. 먼저 이(柕)를 읊은 시를 보자.


주리면 피 빨고 배 부르면 떨어지니
온갖 벌레 중에 가장 하등이라.
먼 길손 품 속에서 낮 햇볕을 근심하고
주린 이 배 위에서 새벽 우레를 듣는다.
모습 비록 보리알 같으나 누룩되긴 어렵고
글자 風字 못되니 매화꽃도 못 떨구리.
묻노니 능히 仙骨도 범하려는가
麻姑 할미 머리 긁으며 天台山에 앉았는데.

飢而橪血飽而熿
三百昆蟲最下才
遠客懷中愁午日
窮人腹上聽晨雷
形雖似麥難爲麴
字不成風未落梅
問爾能侵仙骨否
麻姑搔首坐天台

역시 운자는 지켰다. 이(柕)를 시적 대상으로 노래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파격인데, 그 발상 또한 흥미롭다. 먼 길손의 품 속에서 낮 햇볕을 근심한다는 3구는 무슨 말인가? 길 가던 나그네는 햇살이 따뜻하면 양지녁에 쭈그리고 앉아 저고리를 홀랑 뒤집어 놓고 이른바 이 사냥을 하게 마련이다. 4구의 우레소리는 주린 창자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에 다름 아니다. 보리알 처럼 생겼음에도 누룩은 될 수 없고, '柕'자는 '風'에서 한 획을 뺀 것이니 헛김이 샐 밖에. 仙骨은 자신을 이름일테고, 마고할미는 '麻姑搔痒'이란 말이 있듯 새 처럼 긴 손톱을 지녔다는 전설 속 선녀의 이름이다. 그러니 7 8구는 긴 손톱으로 어디든 가려운 곳을 긁어내는 마고 할미가 천태성에 앉아 仙骨인 나를 지키고 있으니 감히 내게 붙을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경고인 셈이다. 삿갓 쓰고 떠도는 인생, 사방 어디 걸리는 것 없어도, 이나 벼룩 따위의 괴로움만은 면할 수 없어 해학으로 풀어본 것이다. 그러니까 주제는 '이야! 제발 내게서 떨어져 다오.'이다.

이러한 "풍자정신 앞에 신성한 것, 숭고한 것, 초월적인 것은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생각해 보았는가'하는 세계에 대한 지적 반응이다. 지적 반응은 희극적 태도다. 희극적 태도는 한마디로 세상을 '우습게' 보는 태도다."(p.21)


서당을 진작부터 알고 있나니
방 가운덴 모두다 존귀한 물건뿐.
생도는 모두 열 살도 안되어
선생이 와도 인사할 줄 모른다.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
生徒諸未十
先生來不謁

김삿갓이 고약한 시골 훈장을 기롱한 시로 전한다. 겉보기에는 심상한 시골 서당의 풍경을 노래한 듯 하지만 각 구절 뒤의 세 글자를 독음으로 읽으면 흉칙한 욕설이 된다. 다섯글자로 시 흉내만 낸 것이지 정말 고약한 장난이다. 김삿갓의 세상을 향한 비뚤어진 욕설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동글동글 중 머리통 땀난 말 불알 같고
뾰족한 선비 대가리는 앉은 개좇 같구나.
목소리는 구리방울로 구리 솥을 치는듯
눈깔은 검은 후추 흰 죽에 떨어진듯.

僧首團團汗馬崇
儒頭尖尖坐狗腎
聲令銅鈴零銅鼎
目若黑椒落白粥

아마도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듯 쨍알쨍알 하는 목소리의 중과, 어디 박혔는지 한참 찾아야 할 지경으로 눈이 작은 선비가 합세해서 김삿갓을 구박했던 모양이다. 위 시는 이 때 김삿갓의 반격으로 전해지는데, 僧俗을 불문하고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는 형국이다. 경박하기 그지 없고, 언어에 대한 일말의 애정도 찾아 볼 수 없다. 이게 무슨 시인가?

"시인은 현실의 온갖 추악한 모습을 비정하게 들추어낼 뿐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p.147) "해체시에서 세계는 온갖 추악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해체주의 시인들은 절대적 진리도 선도 가치도 믿지 않는다. 김병익의 기술을 빌리면 그들에게 '믿을 수 있는 것, 전할 수 있는 것,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욕설과 요설의 비틀린 언어는 이런 허무주의적 공허의식의 산물이다."(p.152)

사정이 이렇고 보니, 일찍이 홍기문은 김삿갓의 시를 두고 비천한 재담이지 시가 아니라고 혹평한 바 있고, 근세의 한학자 呂圭亨은 이런 시풍이 유행하여 정통의 한시가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이 소문이 이웃나라에 알려질까봐 걱정이라는 시를 남기기까지 했다.

"풍자 일변도는 悲歌的 세계관으로 연결된다. 매우 역설적이지만 비가적 세계관은 불만을 삶의 완벽한 기교로 채용한다. 그래서 비가적 시인에게는 계속 짖어야 될 부정의 세계를 언제나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존재 근거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세계가 바뀌면 그 바뀐 세계의 불만의 요소를 또 발견해야 한다. 비가적 세계관은 상황의 거대함과 자아의 왜소함 사이의 그 엄청난 불균형을 과장한다. 그것은 넋두리와 하소연의 무기력한 어조를 띤다."(p.21)

대체로 김삿갓의 장난시를 대할 때마다 필자가 느끼게 되는 감정은 서글픔과 씁쓸함이다. 經國濟世에의 포부를 품고 배우고 익힌 학문과 지식을 고작 이깟 희학질에 썼더란 말인가? 그인들 이런 시를 짓고 싶었으랴만, 그로 하여금 이런 장난질에 몰두하게끔 강요한 현실이 역으로 희대의 민중시인을 낳았다는 이 역사의 아이러니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의 시에서 이나 벼룩, 욕설과 섹스 등 비시적 대상의 시화가 지배적 특징으로 나타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비록 김삿갓의 경우 조부의 훼절에 말미암은 개인적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는 하나, 김삿갓의 시정신은 당대 조선사회가 처했던 제반 역사환경의 변모에 의해 안받침 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사회적 성격을 부여받고 있다. 시는 그 사회를 비추는 거울인 까닭이다.

그렇다고 김삿갓이 '비천한 재담'만을 일삼았던 광대였던 것은 아니다. 만일 그가 천박한 재담만으로 일관했다면 애초에 그의 시는 문자로 기록되어 보지도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네 다리 소반에다 죽이 한 그릇
하늘 빛에 구름이 함께 떠도네.
주인아 면목 없다 말하지 마오
얼비쳐 오는 청산 내사 좋으니.

四脚松盤粥一器
天光雲影共徘徊
主人莫道無顔色
吾愛靑山倒水來

가난한 살림에 지나는 과객에게 먹다 남은 묽은 죽 한 그릇을 내오는 것을 보고 지었다는 시이다. 죽이 얼마나 묽었으면 앞 산의 그림자가 얼비쳤을까. 이런 시도 점잖은 체면에서 보면 되잖케 보이기 마련이어도, 자신의 인생을 물끄러미 관조하는 잔잔한 서글픔이 있어 좋다.


천황씨가 죽었느냐 인황씨가 죽었느냐
푸른 산 나무마다 온통 소복 입었네.
밝는 날 햇님보고 조문하게 한다면
집집 처마 마다 눈물이 뚝뚝.

天皇崩乎人皇崩
萬樹靑山皆被服
明日若使陽來弔
家家畯前淚滴滴

눈을 노래한 〈雪〉이란 작품이다. 소담스런 서설이 내려 온 세상은 하얀 素服으로 갈아 입었다. 하얀 소복을 입고 흰 눈이 내린 날 아침에는 아이들을 울리지도 말자던 노천명과는 달리, 시인은 엉뚱하게 흰 눈에서 주재자의 죽음을 떠올리고, 햇볕에 녹아 떨어지는 낙수를 눈물로 환치시켜 버린다. 시상을 전개하는 시적 발상도 참신하려니와, 그의 무기력한 나른함과 뿌리 깊은 비애의 정조가 가슴을 씁쓸히 적신다. 그는 뒷날 자신의 평생을 돌아보며 34구의 〈蘭嗸平生詩〉를 남겼다. 그 끝 네 구절은 이렇다.


궁한 신세 속인들의 白眼視만 받았고
세월 가며 터럭만이 시들었구나.
돌아가기도 어렵고 머물기도 어려워
몇 날을 길 가에서 서성였던고.

身窮每遇俗眼白
歲去偏傷撖髮蒼
歸兮亦難佇亦難
幾日彷徨中路傍

김삿갓의 해학의 뒤안에는 이럴 수도 저러지도 못하는 체념의 悲感이 감돌고 있다. 연구자들은 김삿갓이 특히 科體詩에 능하여 200여수를 남긴 것을 특기한다. 과체시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과거 시험장에서 요구하는 형식이 지극히 까다로운 詩體이다. 김삿갓이 장난질의 와중에서도 그 많은 과체시를 남기고 있다면 그 속에 담긴 숨은 뜻은 무엇일까? 나도 마음만 먹으면 體制가 요구하는 교과서적인 시쓰기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는 절규는 아니었을까? 어쨋든 그의 웃음은 슬프다. 그 슬픈 웃음의 뒤안은 외면한 채, 자꾸 가십적인 살을 붙여 그를 봉이 김선달류의 '비천한 재담가'로 만드는 것은 이즘 사람들의 악취미다.

 

漢詩 최후의 광경


"해체시는 전통미학과 기존문화를 해체하고 기존의 인간관도 해체시키려는 일종의 무규범성으로서의 소외 양상이었다. 해체시는 언어에 대한 불신으로 세계에 대한 불신을 효과적으로 표명했다. 욕설, 야유, 아이러니의 비틀린 언어도 소외의 주목할만한 시적 양상이다."(p.115)


슬프다 문벌은 모두 훌륭한 집안으로
세월에 헛되이 늙으니 홀로 구슬프도다.
오로봉 아래에서 이치 논하며 앉았자니
세상 사람 모두 도를 안다 일컫네.

可憐門閥皆佳族
虛老風塵獨可悲
五老峯下論理坐
世人皆稱道也知

위 시는 《閒中記聞》에 실려 있다. 한 사람이 시덥잖은 제 집안과 학문을 지나치게 뽐내므로 林悌가 조롱하여 지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五老峯 아래에서 理를 논하며 앉아 있는 늙은이가 있다. 훌륭한 문벌의 자손으로, 이제는 영락해서 늙고 고단한 인생이다. 이야기야 예전 좋은 시절 조상 자랑이거나, 그렇고 그런 道學 이야기일테지만, 영문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道人으로 일컬으며 높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몰락한 양반님네의 안스러운 허세를 풍자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 독음으로 읽어야만 본 뜻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슬프다 문벌은 모두 개가죽이요
세월에 헛되이 늙은 도깨비로다.
오로봉 아래에 노루가 앉았는데
세상 사람 모두들 도야지라 일컫네.

可憐門閥개가죽
虛老風塵도깨비
五老峯下노루坐
世人皆稱도야지

'모두 훌륭한 족속(皆佳族)'이 사실은 '개가죽'이었고, '홀로 구슬프도다(獨可悲)'를 독음으로 읽으니 '도깨비'가 되었다. '이치를 논함(論理)'는 들짐승 '노루'가 되고, '도를 안다(道也知)'는 기실 '도야지' 즉 돼지였을 뿐이다. 도대체 문벌이니 도학이니 하는 것이 무엇이던가. 개가죽이요 도깨비 같이 허상만 있고 실상은 아무 것도 없는 빈 껍데기가 아니던가. 노루를 보고 도야지라 하는 세상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또 어떠한가. 시인은 기실 그를 아는 사람이라고 추켜 세운 것이 아니라 돼지 같은 놈이라고 욕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또 《俚諺叢林》에는 오성 이항복이 지었다는 시가 실려 있다.


오늘 아침 남의 수레를 빌려 타다
홀연이 떨어져서 뒤꼭지가 깨졌네.
장안 큰 길에서 에고에고 울자니
세상 사람 모두다 미치광이라 하더라.

今朝借乘남의襄
忽然落地꼭뒤傷
長安大道에에哭
世人皆稱미치狂

언문진서 섞어作으로 칠언절구를 지었다. 내용이야 뭐 대단한 것이 있을 리 없고, 다만 말을 씹는 재미가 있을 뿐이다. 이것이 구한말에 오면


사랑 문간에 처녀가 있는데
무던한 얼굴에다 가녀린 허리.
사람을 한번 보고 얼른 숨으니
마치 구름 사이 달이 숨는듯.

舍廊곗집處女在
무던顔色가는腰
사람一見얼는隱
마치雲間月明消

로 진전된다. 李沂가 《대한자강회월보》에 소개한 것이다. 그 사이에 김삿갓의 "데걱데걱登南山, 씨근벌떡息氣散. 醉眼朦朧굽어觀, 울긋불긋花爛漫"이나, "靑松등성듬성立, 人間여기저기有. 所謂엇뚝빗뚝客, 平生쓰나다나酒"와 같은 작품들이 또 있으니, 대개 이러한 파격시도 어느 순간 평지돌출 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의 집적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한시의 해체가 종당에 가면 아예 한글로 한시를 짓는 이른바 '언문풍월'로까지 발전한다. 언문풍월은 예전 주로 궁녀들이 한시의 작법을 응용하여 나름의 규칙을 세워 짓던 일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진다. 김삿갓의 시에도 '타'를 운자로 해서 "사방기둥붉어타, 석양행객시장타. 네절인심고약타"와 처럼 3구가 낙구된채로 전해지는 언문풍월이 있다. 그러나 언문풍월이 본격적인 창작을 보게 된 것은 개화기에 와서인데, 1900년대에는 거의 시조문학과 경쟁관계를 유지할만큼 기세를 떨쳤다. 여러 잡지에서는 운자와 제목을 주고 현상공모를 하고, 응모작 중에 가작 수백편을 모아 《諺文風月》이란 책을 출판하는 성황을 이루기까지 했던 것이다. 언문풍월은 쉽게 말해 기존 한시의 작법을 패로디하여 만든 국문시가이다. 다음은 대한매일신보에 실렸던 작품이다. 제목은 〈자명종〉이고, 운자는 '가나다'이다.


두개바늘놀아가
글자마다치노나.
땅땅치는그소리
늙을로자부른다.

큰 바늘 작은 바늘이 쉬지 않고 돌면서 정시마다 종을 쳐댄다. 그 소리는 마치 늙음을 재촉하는 소리로만 들린다는 재치다. 1.2.4구의 끝에 운자를 차례대로 달았다.

참대붙인종이가
흔들면은바람나
몹시더운여름에
친한벗이네로다

제목은 〈부채〉과 운자는 역시 '가나다'이다. 운자가 언제나 '가나다'인 것은 아니다.


명주비단고운올
요리조리가는골
어김없는네로다
좋은솜씨지은솔

제목은 〈바늘〉이고, 운자는 '올골솔'이다. 올이 고운 명주비단에 요리조리 골을 내어 바느질을 하고 나니 솔기마다 솜씨가 정갈하다는 내용이다. 이렇듯 언문풍월은 일상적인 여러 소재들을 가지고 운자에 있어서도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까지 다양하게 창장되고 있다. 특히 이것은 한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없이 재치만으로도 창작이 가능했으므로, 특정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폭넓은 작가층을 가졌다는데서 또 다른 의의를 갖는다. 이 시기에 와서 한시는 이제 더 이상 감당해 낼 역할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의식의 변화는 내용의 변모를 가져오고, 내용의 변모로도 의식의 변화를 감당할 수 없을 때 형식이 변한다. 기존 한시의 굳건한 문법은 개화기의 발랄한 실험정신 아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해체의 양식들을 선보였다. 다만 그것이 치열한 시정신에 의해 안받침 되지 못한 결과, 새로운 형식들은 일과성의 장난기로 그치고 말았지만, 이러한 실험들이 시사하는 바는 심장하다. 해체주의의 80년대를 넘어, 포스트모더니즘이 공룡처럼 다가와 있는 오늘의 시단에서도 새로운 담론의 방식에 대한 모색은 활발히 계속되고 있다. 기존 언어에 대한 회의와 불신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시의 문법을 찾아 나서려는 노력도 힘차다. 그러나 시의 새로운 말하기 방식이 그 실험적 의도의 강렬함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인식하는 시대정신이나, 치열한 시정신에 의해 안받침되지 않는다면, 이 또한 희필의 붙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잡체시나 파격시가 오늘의 시단에 던지는 정신사적 연관이 있다면 이 또한 아마도 이러한 언저리에 놓여질 것이다.


내용출처 : http://osj1952.com.ne.kr/study/study4-18.htm

(출처 : '욕으로 된 한시(漢詩)?' - 네이버 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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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시중미지략언 (論詩中微旨略言)-이규보(李奎報)


    

 시(詩) 가운데 있는 은미한 뜻을 논한 약언-李奎報

 


夫詩以意爲主(부시이의위주) : 대저 시는 뜻[意]으로 주를 삼는 것이니,

 

設意尤難(설의우난) : 뜻을 베푸는 것이 가장 어렵고,

 

綴辭次之(철사차지) : 말을 만드는 것이 그 다음 어렵다.

 

意亦以氣爲主(의역이기위주) : 뜻은 또 기(氣)로 주를 삼는 것이니,

 

由氣之優劣(유기지우렬) : 기(氣)의 우열에 따라

 

乃有深淺耳(내유심천이) : 천심(淺深)이 있게 된다.

 

然氣本乎天(연기본호천) : 그러나 기(氣)는 하늘에 근본한 것이니,

 

不可學得(부가학득) : 배워서 얻을 수는 없다.

 

故氣之劣者(고기지열자) : 그러므로 기(氣)가 졸렬한 사람은

 

以雕文爲工(이조문위공) : 문장을 수식하는 데에 공을 들이게 되어,

 

未嘗以意爲先也(미상이의위선야) : 일찍이 뜻으로 우선을 삼지 않는다.

 

蓋雕鏤其文(개조루기문) : 대개 문장을 다듬고

 

丹靑其句(단청기구) : 문구를 수식하니


信麗矣(신려의) : 그 글은 참으로 화려할 것이다.

 

然中無含蓄深厚之意(연중무함축심후지의) : 그러나 속에 함축된

                                                                                 심후한 뜻이 없으면,

 

則初若可翫(칙초약가완) : 처음에는 꽤 볼 만하지만,

 

至再嚼則味已窮矣(지재작칙미이궁의) : 재차 음미할 때에는 벌써

                                                                          그 맛이 없어지고 만다.

 

雖然(수연) : 그러나

 

凡自先押韻(범자선압운) : 시를 지을 때에 먼저 낸 운자가

 

似若妨意(사약방의) : 뜻을 해칠 것 같으면

 

則改之可也(칙개지가야) : 운자를 고쳐내는 것이 좋다.

 

唯於和人之詩也(유어화인지시야) : 오직 다른 사람의 시를 화답할 경우에

 

若有險韻(약유험운) : 그 운자가 험하거든

 

則先思韻之所安(칙선사운지소안) : 먼저 운자의 안치할 바를 생각한 다음에

 

然後措意也(연후조의야) : 뜻을 안배해야 한다.

 

至此寧且後其意耳(지차령차후기의이) : 이때에는 차라리 그 뜻을 다음

                                                                         으로 할지언정

 

韻不可不安置也(운부가부안치야) : 운자는 안치하지 않을 수 없다.

 

句有難於對者(구유난어대자) : 글귀 중에 대를 맞추기가 어려운 것이 있으면

 

沈吟良久(침음량구) : 한참 동안 침음(沈吟)하고 나서

 

想不能易得(상부능역득) : 쉽게 얻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면

 

則卽割棄不惜宜矣(칙즉할기불석의의) : 곧 그 글귀는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何者(하자) : 왜냐하면

 

計其間儻足得全篇(계기간당족득전편) : 그 글귀의 대를 맞추는 시간에

                                                        혹 전편(全篇)을 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니,

 

而豈可以一句之故(이개가이일구지고) : 어찌 한 글귀 때문에

 

至一篇之遲滯哉(지일편지지체재) : 1편이 지체되게 해서야 되겠는가?

 

有及時備急則窘矣(유급시비급칙군의) :그때에 막 당하여 촉박하게

                                                                         지으면 군색하기 마련이다.

 

方其搆思也(방기구사야) : 그러므로 시를 구상할 때에

 

深入不出則陷(심입불출칙함) : 깊이 생각해 들어가서 헤어나지 못하면

                                                        빠지게 되고,

 

陷則着(함칙착) : 빠지면 고착되고,

 

着則迷(착칙미) : 고착하면 미혹되고,

 

迷則有所執而不通也(미칙유소집이불통야) : 미혹하면 집착되어

                                                                                통하지 못하게 된다.

 

惟其出入往來(유기출입왕래) : 오직 출입왕래하며

 

左之右之瞻前顧後(좌지우지첨전고후) : 좌우전후로 두루 생각하여

 

變化自在(변화자재) : 변화가 자재하게 한 뒤에야

 

而後無所礙(이후무소애) : 막힌 바가 없이

 

而達于圓熟也(이달우원숙야) : 원만하게 된다.

 

或有以後句救前句之弊(혹유이후구구전구지폐) : 혹은 뒷 글귀로

                                                               앞글귀의 폐단을 구제 하기도 하고

 

以一字助一句之安(이일자조일구지안) : 한 글자로 한 글귀의 완전함을

                                                                          돕기도 하는 것이 있으니,

 

此不可不思也(차부가부사야) : 이것은 불가불 생각해야 할 것이다.

 

純用淸苦爲體(순용청고위체) : 순전히 청고(淸苦)로 시체(詩體)를 삼으면

 

山人之格也(산인지격야) : 산인(山人)의 격(格)이요

,

全以姸麗裝篇(전이연려장편) : 순전히 화려한 말로 시편을 장식하면

 

宮掖之格也(궁액지격야) : 궁액(宮掖)의 격이다.

 

惟能雜用淸警雄豪姸麗平淡然後備矣(유능잡용청경웅호

                       연려평담연후비의) : 오직 청경(淸警) 웅호(雄豪)ㆍ연려(姸麗)

                                      평담(平淡)을 섞어 쓴 다음에야 제대로 갖추어져서,

 

而人不能以一體名之也(이인부능이일체명지야) : 사람들은 일체

                                                                         (一體)로 이름하지 못한다.

 

詩有九不宜體(시유구부의체) : 시에는 9가지의 불의체(不宜體;마땅하

                                                        지 않은 체)가 있으니,

 

是予所深思而自得之者也(시여소심사이자득지자야) : 이는 내가

                                                                      깊이 생각해서 자득한 것이다.

 

一篇內多用古人之名(일편내다용고인지명) : 1편 내에 옛사람의

                                                                                이름을 많이 쓰는 것은

 

是載鬼盈車體也(시재귀영차체야) : 바로 재귀영거체(載鬼盈車體)요,

 

攘取古人之意(양취고인지의) : 옛사람의 뜻을 절취하는 것으로

 

善盜猶不可(선도유불가) : 좋은 것을 절취하는 것도 오히려 불가한데,

 

盜亦不善(도역부선) : 좋지 못한 것을 절취한다면

 

是拙盜易擒體也(시졸도역금체야) : 이는 바로 졸도이금체(拙盜易擒體)다.

 

押強韻無根據處(압강운무근거처) : 그리고 강운(强韻)을 근거없이 내어

                                                                쓰는 것은

 

是挽弩不勝體也(시만노불승체야) : 바로 만노불승체(挽弩不勝體)요,

 

不揆其才(부규기재) : 그의 재주를 요량하지 않고

 

押韻過羌(압운과강) : 운자를 정도에 지나치게 내는 것은

 

是飮酒過量體也(시음주과량체야) : 바로 음주과량체(飮酒過量體)요,

 

好用險字(호용험자) : 험한 글자를 쓰기 좋아하여

 

使人易惑(사인역혹) : 사람으로 하여금 의혹되기 쉽도록 하는 것은

 

是設坑導盲體也(시설갱도맹체야) : 바로 설갱도맹체(設坑導盲體)요,

 

語未順而勉引用之(어미순이면인용지) : 말이 순조롭지 못한데

 

是強人從己體也(시강인종기체야) : 굳이 인용하는 것은 바로 강인종기체요

 

多用常語(다용상어) : 상스러운 말을 많이 쓰는 것은 

 

是村父會談體也(시촌부회담체야) : 촌부회담체요

 

好犯語忌(호범어기) : 기휘(忌諱)하는 말을 쓰기 좋아 하는 것은 

 

是凌犯尊貴體也(시능범존귀체야) : 바로 능범존귀체요

 

詞荒不删(사황부산) : 거친 말을 산삭하지 않는 것은 

 

是莨莠滿田體也(시랑유만전체야) : 바로 낭유만전체다.

 

能免此不宜體格(능면차부의체격) : 이 불의체를 면하고

                                                              

而後可與言詩矣(이후가여언시의) : 난 뒤에야 시를 말할 수 있다. 

 

人有言詩病者(인유언시병자) : 시의 병통을 말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在所可喜(재소가희) : 기쁜 일이다.

 

所言可則從之(소언가칙종지) : 그러나 그의 말이 옳으면 받아들이고

 

否則在吾意耳(부칙재오의이) : 옳지 않으면 나의 뜻대로 할 뿐이다

.

何必惡聞(하필악문) : 어찌 듣기 싫어하기를

 

如人君拒諫終不知其過耶(여인군거간종불지기과야) : 마치

                                    임금이 간언을 거절하는  것과 같이 하여 끝내 그

                                    허물을 모르고 넘길 필요가 있겠는가?

 

凡詩成(범시성) : 무릇 시가 이루어지면


反覆視之(반복시지) : 반복 관찰하되,

 

略不以己之所著觀之(략불이기지소저관지) : 자기가 지은 것으로

                                                                                  보지 말고

 

如見他人及平生深嫉者之詩(여견타인급평생심질자지시) : 다른

                                 사람이나 또는 평생 심히 미워하는 자의 시를 보듯 하여,

 

好覓其疵失(호멱기자실) : 그 하자(瑕疵)를 열심히 찾아도

 

猶不知之(유부지지) : 오히려 알지 못하는데

 

然後行之也(연후행지야) : 하자을 없앤 뒤에야 그 시를 세상에 내놓는다.

 

凡所論(범소론) : 무릇 논한 바는

 

不獨詩也(부독시야) : 시뿐만 아니라,

 

文亦幾矣(문역기의) : 문(文)도 그러하다.

 

況古詩者(황고시자) : 더구나 고시(古詩) 중에

 

如以美文句斷押韻者佳矣(여이미문구단압운자가의) : 아름다운

                                              문구에 운자를 단 매우 아름다운 것 같은 것은

 

意旣優閑(의기우한) : 뜻은 이미 우한(優閑)하고

 

語亦自在(어역자재) : 말도 자유로워서

 

得不至局束也(득부지국속야) : 구속받는 점이 없다.

 

然則詩與文(연칙시여문) : 그렇다면 시와 문은

 

亦一揆歟(역일규여) : 역시 늘 변함이 없는 한결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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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諸子思想 과제]

諸子百家 사상의 교육적 의미가 구체적인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으며, 이를 어떤 식으로 응용, 실천할 수 있을 것인지 정리하시오.


ㅇㅇ고등학교 교사 해콩

 


墨家思想的 側面


  墨子는 철저하게 피치자의 입장에서 기층 민중의 시각으로 세상의 문제점을 짚어나갔으며 그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했다. 세상이 불화하는 이유는 ‘서로 사랑하지 않음’에 기인한다고 보아 兼愛야 말로 세상의 부조리를 일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겼다. 유가의 영향을 받았지만 유가의 ‘차별적 사랑’을 부정하고 누구에게나 평등한 이상적인 사랑을 실천할 것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그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까닭은 현실 사회의 상황과 너무나 큰 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적이긴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이론이라는 데 큰 맹점이 있었던 것이다. 墨家가 소수 무사집단에 한정되고 오래지 않아 소멸된 역사적 사실은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고 실천하기는 더욱 힘들다는 사실의 방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간혹 너무나 헌신적인 교사를 만날 기회가 있다. 항상 아이들의 입장을 세심하게 배려함은 물론이고 그들의 불편을 줄여주고 고통을 덜어주려 애쓴다. 같은 교사의 입장에서 이런 교사를 만나고 옆에서 아이들에 대한 그 마음씀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사들의 단점은 교사 본인이 지치기 쉽다는 것이다. 교육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두 해에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백년을 기약해야하는 큰 도모이므로 교사가 오래도록 자신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몸과 마음을 다칠까 노심초사하며 하나에서 열까지 챙겨나가다 보면 교사의 심리적․육체적 한계를 넘어서는 희생이 따르는 것은 필연적이다.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교사의 善意를 무시하거나 이용하는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 이렇게 자기희생적인 교사의 정신적인 타격은 아이들과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교사들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더 유념해야할 것은 ‘교사의 무조건적인 봉사와 희생이 과연 아이들에게 교육적이기만 한가’하는 점이다. 아이들은 곤란과 궁핍, 갈등과 다툼 등 어려움 속에서도 배운다. 주어진 문제 상황을 판단하고 선택하고 해결방법을 고민하며 스스로 삶의 방법을 터득해 나간다는 뜻이다. 세심한 것까지 하나하나 배려하는 교사는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아이들에게서 실패를 통해 배우는, 아주 소중한 기회를 박탈하기 쉽다.

  더욱이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여러 가지 사항에 있어서는 교사 자신만의 희생과 봉사를 전제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개인 신상에 관계된 일이나 비교육적인 일이 아니라면 아이들에게도 공동의 짐은 나누어지도록 해야 한다. 공동체 생활에서 자기가 맡은 몫을 책임감 있게 해나가는 것과 아이들 자신이 스스로를 챙기는 것은 그들의 장래를 내다볼 때 그 자체로 아주 중요한 교육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결정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아이들과 의논해야한다는 것이다.

  교사의 차별 없는 사랑 아래에서 공동체의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법과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배워나가게 된다면 그야말로 이상적인 교육의 실천이 될 것이다.

 

 

道家思想的 側面


  일체의 인위를 부정하여 그것이 가지는 허위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인간 중심적인 잣대로 사물의 가치를 단편적으로 평가하는 것에 반대하여 세상 모든 존재는 인간중심의 편협한 가치판단을 떠날 때 비로소 함께 평등한 존재가 된다는 ‘萬物齊同’의 원리 역설한 것이 도가이다. 그들은 사물이 가지는 다양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며 인간 사고의 편벽됨을 지적, 겸허하게 우주의 커다란 원리인 자연의 道로 회귀할 것을 역설하였다.

  동일한 가치를 상정해두고 대부분의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이 그것의 획득만이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앞을 다투는 우리 사회의 교육에 있어서 참과 거짓을 뒤집어 생각해볼 줄 알며 다양성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도가적 관점의 수용은 참으로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교사의 교육관이나 학생관에 있어서도 도가적 측면으로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일방적으로 아이들을 맞춰 넣는 기능을 한 것은 아닐까? 그것은 불량품을 가려내고 일정한 질을 유지하는 제품만을 생산하고자 하는 공장의 기능을 연상시킨다. 우리 교육의 목적인‘弘益人間’이 무색해질 만큼 비인간적이며 강압적인 방법이 ‘교육’이라는 이름 하에 자행되는 일도 잦다. 근대이후 발생한 ‘학교’의 성격 자체가 다음세대의 사회화를 위해 인류문화를 효율적 전달한다는 목적에 맞추어 성립된 것이므로 그 출발에서부터 인위를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성정을 인정하는 도가의 無爲自然的 관점에 어긋난다 하겠다.

  수업이란 교과서나 참고서의 내용을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행위일 뿐인가? 교과서의 내용은 정말로 불변의 진리인가? 사유하는 방법을 교육해야하는가, 사유의 결과물인 지식을 전달해야하는가? 공부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인가? 성적이나 등수는 한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가? 좋은 대학과 좋은 직업은 과연 진정한 행복을 그들에게 가져다 줄 수 있을까?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현재의 삶을 저당 잡혀야 하는 교육은 바람직한 것인가? 어떤 학생이 모범학생이며 또 어떤 학생이 문제학생인가? 등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교육의 본질에 관한 질문에 대해 도가적 입장에서 답을 고민해 본다면 현대사회가 가지고 있는 교육의 문제는 어쩌면 생각보다 쉽게 풀릴 지도 모른다.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목적을 챙겨보고 그 방법을 반성해야한다. 아이들의 개성과 자율성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하며 아이들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권리를 그들에게 돌려주어야할 것이다. 평범하고 소박한 것들의 가치로움을 일깨워주는 교육이 절실하며, 인간 자신도 커다란 자연의 일부분일 뿐이며, 따라서 자연을 지배하고 정복하는 물질적 대상으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조화하여 살아가야한다는 아주 소박한 진리도 교육의 일부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도덕경]을 교육적 관점에서 풀이한 파멜라 메츠의『배움의 도』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  

 ‘교사가 일을 다 마쳤을 때 학생들은 말한다. “대단하다! 우리가 해냈어.”

‘교육’의 근본적 의미를 반성하는 일과 함께 道家思想的 側面에서 바라본 우리들 교사의 역할은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荀子思想的 側面


  荀子의 ‘性惡說’은 인간의 본성 자체를 악하다고 규정한 것은 아니다. 그는 타고난 욕망은 후천적인 환경에 의해 얼마든지 惡으로 발현될 수 있다고 보았기에 이를 예방하거나 교정하는 수단으로 ‘禮의 교육’을 강조한 것이다. 그가 말한 僞란 사고력과 판단력을 길러 禮를 실천하게 하는 긍정적인 개념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들이 단순히 노자의 無爲나 맹자의 性善說과 배치되는 개념은 아니다. 인간이 타고난 性은 그 자체로 善과 惡을 규정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며 어떤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사고하느냐에 따라 性善에 주목하거나 性惡을 주장한, 논리 전개상의 차이일 뿐이다. 노자의 無爲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해야한다,

  ‘교육’을 인간의 성장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보았다는 점에서 순자의 이론은 현대 학교 교육의 관점에 가장 근접한 이론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그 내용면에 있어서도 오늘날의 학교 교육이 순자가 말한 ‘禮’를 추구하는 것인지는 깊이 고민해보아야 한다. 사실 현대 학교교육은 欲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인격을 함양한다는 목적을 지향한다기 보다는 인간의 개인적 욕심을 가능한 한 높은 수준으로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한다고 고백해야한다. 이는 荀子的 관점에서 볼 때 본말이 전도된 현상이라 할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현실 교육을 비판․반성하고 공동체의 조화를 위한 교육, 스스로의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교육의 본질을 회복해나가야 할 것이다.



法家思想的 側面


  중앙집권적 국가지상주의를 표방하는 法家는 강력한 법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儒家에서 중시한 仁과 義에 의한 이상적 사회건설을 비현실적이라 비판하였으며, 堯舜의 정치철학을 구시대의 유물로 상정하여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법가의 논리에 부합하여 세워진 秦나라는 創業 15년 만에 무너져 守成에 실패하였다. 이것은 法家의 논리적 허점을 여실히 드러낸 역사적 사실이라 하겠다.

  학교교육 현장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교칙’이다. 엄격한 ‘교칙’은 교사들에게는 아이들을 지도할 확실한 명분을 제공하고, 아이들에게는 교사의 지도에 무조건 순응해야하는 굴레가 된다. 물론 어떤 아이들은 교칙이 있어서 학교생활이 더욱 편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절대 다수의 아이들은 자신의 의사가 반영된 적 없는 교칙에 의해 두발, 복장, 심지어 양말색깔에 머리핀 종류까지 규정받는 현실을 숨막혀한다.

  작년 두발자율을 주장하는 아이들의 요구가 수용되어 각급 학교에 아이들의 두발을 가급적 ‘자율화’ 하라는 권고공문이 전해졌다. 교칙을 정할 때 아이들의 의사를 반영하라는 내용 또한 여기에 포함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간 시간이 지난 지금, 교육청에 보고된 회신공문과는 달리 학교 안에서 바라보는 학교의 모습은 여전하다. ‘여전히’ 교칙을 결정할 때, 아이들의 의사가 수렴되는 과정은 생략되기 쉽고 두발을 포함하여 복장과 행동 하나하나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학생다움’이라는 기준에 의해 규제 당한다.

  학급에서 지켜야할 규칙을 정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강력할수록 학생들의 생활지도가 편하다고 여겨지며 이렇게 교칙이나 학급규칙이 엄격한 학교, 학급일수록 ‘모범적’이라고 표현된다. 다시 말해 이렇게 막강한 교칙을 가지고 있는 학교는 규율이 엄격한 일사분란한 학교로 인식되어, 그런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단정하고 모범적이라고 -혹은 모범적일 것이라고-여겨진다. 이는 또한 성적에도 영향을 준다고 인식되어 공부 잘 하는 학교로 소문나기도 한다. ‘외모 등에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공부만 하는 착한(?)학생들이 성적도 좋아 일류대 합격률이 높다’는 명제는 ‘엄격한 교칙을 적용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할 틈을 주지 말아야한다’는 주장에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채 교칙이나 학급규칙을 정하고, 여기에 일방적으로 아이들을 맞춰가는 것은 이젠 역부족이기도 하지만 (외모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아이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고 이러한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 자체로 이미 바람직한 교육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수의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자 할 때, 그러한 방법이 효과가 있기도 하지만 교육적 안목으로 볼 때 그것은 확실히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생활지도 방법이며 장기적으로 그 효과가 유지될지도 의문이다. 일정한 규칙은 어느 사회에서나 필요하다. 그러나 秦의 예에서 보았듯이 수용하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강력한 법은 인간성을 파괴하거나 최소한 인간관계를 악화하기 쉽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강력한 법이란 기본적으로 인간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불신한다는 전제하에 시행되기 때문이다.

  학교는 기본적으로 인간성과 인간관계를 무엇보다 소중히 해야 하는 ‘교육적’ 공간이다. 비록 시간이 걸리고 그 효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고 강압적인 규율로 스스로를 부정하고 인간을 불신하게 하는 방법 보다는 인간성을 길러주는 교육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따라서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믿고 기다려 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육’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儒家思想的 側面


  儒家 학설의 가장 큰 의미는 인간의 주체성과 존엄성을 상정한다는 데 있다. 孔子가 강조한 ‘仁’과 ‘禮’, 孟子의 ‘良知’, ‘良能’, ‘浩然之氣’ 등은 인간의 선험적 도덕성에 대한 믿음과 그것을 기르는 방법에 대한 언급인 것이다. 도덕의 실천은 늘 주체적인 것이며 그러한 인간은 누구든지 존엄하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儒學은 이렇게 주체적인 방법으로 자신과 타인을 다스려 가는 원리, 즉 윤리적 규범인 동시에 정치와 교육의 원리이다. 자신이 도덕적인 존재임을 깨닫고 그것을 주체적인 판단으로 실천할 수 있는 존재로 이끌어 내는 것이 ‘교육’이며 ‘정치’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교육적’ 모습에 근접하려면 儒家的 理論을 따라야 할 것이다. 儒家에서 말한 교육은 선험적으로 주어진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도덕의 주체적 실천자로서 인간을 육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는 易地思之와, 나를 미루어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는 推己及人의 정신을 내면화하여야 할 것이다. 禮로서 자신을 조절하는 것이나 詩나 樂의 공부도 인격완성을 위한 교육내용으로 유가적 교육에 포함된다.

  오늘날의 학교 교육은 그 목적이나 내용, 방법적인 면에서 근본을 망각한 교육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물으면 서슴없이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을 이야기하며 그것은 대부분의 학부모나 교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대학과 좋은 직업은 물질적으로 안정되고 높은 지위를 보장하는 삶과 연결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목적부터 어긋났으니 그 내용이나 방법 또한 바로서기를 바랄 수 없다. 진리탐구가 되어야하는 교육의 내용은 물질과 지위 획득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니 교육방법 역시 단순 암기나 주입에 그치기 마련이다. 대상에 대한 애정 어린 관찰이 필수적인 孔子나 소크라테스의 문답법과 같은 교육방법은 아이들은 너무 많고 시간은 늘 부족하며 전해주어야 하는 내용은 쌓여있는 오늘날 현실에 있어서는 거의 실천불가능한 상황이다. 여기에 비인간적인 생활지도가 개입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현실이다.

  儒家的 敎育의 실천이 어려운 오늘날 학교 교육 현장에서 교사와 학생이 참된‘교육’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것은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아닐까 한다. 십 년도 안 되는 짧은 경험이지만 교사로서 아이들을 이끌 수 있는 유일한 ‘교육적’ 방법은 ‘학생을 신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신규로 4년간 근무했던 실업계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은 서로를 경계 대상으로 간주하기 바빴다. 상처를 주는 대상으로 서로를 바라보니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생겨 더욱 냉담해지고 폭력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들은 교사에게 너무 쉽게 거짓을 말했고 학교 규칙은 그들에게 有名無實한 덕목이었다. 그들에게 수업이나 공부는 이미 필수사항이 아니었으며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살펴보니 이런 아이들은 살아오면서 어른들에게 받아온 상처가 너무 컸다. 정서가 불안하거나 어른을 무조건 적대시 하는 아이들일수록 이런 저런 결손가정의 아이들이었으며, 그들이 받은 상처와 그들이 내뿜는 폭력성은 비례했다. 당연히 학교성적도 그들의 정서적 안정정도에 비례했다. 처음엔 잔소리도 하고 벌도 주고 때려보기도 했지만 이미 오랜 시간 폭력에 노출되어온 아이들은 그 폭력에 너무 쉽게 순응하여 교사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폭력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여 교사를 난처하게 했다. 방법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과 대화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니 천천히 조금씩 마음을 열어왔다.

  사실 아이들의 습관이 하루아침에 고쳐지지는 않는다. 대화로 해결하려는 동안에도 지각과 결석과 사고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최소한 ‘거짓’을 말하는 횟수는 줄었으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는 늘어났다. 무엇보다 상대를 서로 적대시하는 상황에서 벗어난 것,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물론 끝까지 믿음을 져버리는 아이도 없지 않았지만 그것은 그 아이에게 주어진 비교육적이며 폭력적인 환경 때문이며 어른들의 잘못이므로 누가되든 어른들이 감당해야할 몫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교육의 방법은 대화와 믿음이어야 하고 궁극적 목적은 ‘이해’가 되어야한다는 사실을 그 아이들을 보며 깨달았다. 자신을 이해하는 마음을 넓혀 타인을 이해하며 나아가 사회와 자연을 이해하는 것, 비단 아이들에게만 주어진 과제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들 모두는 자신과의 대화, 자신에 대한 긍정을 토대로 다른 사람의 인간성을 믿고 타인과 대화해야하는 주체적이고 민주적인 삶을 숙명적으로 타고난 ‘인간’이어야 한다.

  교사로서 아이들을 대할 때, 끝까지 믿고 지켜봐주는 일 외에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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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8-15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法家思想的 側面과 儒家思想的 側面에서의 교육 방법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채 교칙이나 학급규칙을 정하고 이에 일방적으로 아이들을 맞춰가는 것은 法家的인 교육방법이다. 그러나 이제 아이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고 이러한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기에 엄격한 교칙을 적용하기에도 쉽지 않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 이미 바람직한 교육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수의 아이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자 할 때는 그러한 방법이 효과가 있을 수도 있지만 장기적, 교육적 안목으로 볼 때 그것은 확실히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생활지도 방법이다. 물론 일정한 규칙은 어느 사회에서나 필요하다. 그러나 秦나라의 예에서 보았듯이 수용하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강력한 법은 인간성을 파괴하거나 최소한 인간관계를 악화하기 쉽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강력한 법이란 기본적으로 인간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불신한다는 전제하에 시행되기 때문이다.
학교는 기본적으로 인간성과 인간관계를 무엇보다 소중히 해야 하는 ‘교육적’ 공간이다. 비록 시간이 걸리고 그 효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고 강압적인 규율로 스스로를 부정하고 타인을 불신하게 하는 방법 보다는 인간성을 길러주는 교육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교육’에 가장 근접한 것은 儒家的 理論을 따른 교육일 것이다. 儒家에서 말한 교육은 선험적으로 주어진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도덕의 주체적 실천자로서 인간을 육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는 易地思之와 나를 미루어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는 推己及人의 정신을 내면화하여야 할 것이다. 禮로서 자신을 조절하고 詩나 樂의 공부도 인격완성을 위한 교육내용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이 최선으로 생각하는 교육의 목표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다. 좋은 학벌은 좋은 직업으로 이어지고 물질적으로 안정되고 높은 지위를 보장하는 미래의 삶과 연결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목적부터 어긋났으니 그 내용이나 방법 또한 바로서기를 바랄 수 없다. 진리탐구가 되어야하는 교육의 내용은 물질과 지위 획득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니 교육방법 역시 단순 암기나 주입에 그치기 마련이다.
이렇듯 유가적 교육의 실천이 어려운 오늘날 학교 교육 현장에서 교사와 학생이 참된‘교육’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십 년도 안 되는 짧은 경험이지만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교육적’ 방법은 ‘학생을 신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더디더라도 아이들을 믿고 대화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다보면 도덕적 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해쳐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산문강독 과제]

‘積善之家必有餘慶’라는 명제는 언제나 ‘참’인가? 즉 인간 사회에서 ‘積善’은 ‘餘慶’이라는 결과를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원인으로 작용하는가? 그렇다면 그 필연성은 어떻게 담보되는가?


ㅇㅇ고등학교 교사 해콩



  현실적으로 이 명제는 부분적으로만 참인 듯하다. 즉 積善이라는 원인과 餘慶이라는 결과 사이의 필연성을 보장할 수 없으며, 積善의 결과로서 餘慶은 일종의 가능성만으로 존재하는 듯이 보이는 것이다. 오히려 현대사회에서 이 둘은 반비례하는 현상도 발견하게 된다. 善을 많이 쌓은 집안의 후손들이 현실적으로 더 고단한 삶을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그러나 둘 사이의 인과관계와 그 필연성을 따지기에 앞서 이 명제 속에 포함된 ‘善’과 ‘慶’의 의미부터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積善’의 개념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이른바 ‘善’이란 그것을 판단하는 주체나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인정하는 인류보편적인 ‘정의로움’이어야 한다. 그것은 孟子가 말했듯이 모든 인간이 생래적으로 타고난 양심에 의한 행위이며, 내 안의 善意志를 외물에 흔들림 없이 그대로 드러내 실천하는 것이다. 一身의 安危보다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奉公滅私의 행위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행위자 자신에게 그것은 ‘積善’이라고 인식하지도 못할 만큼 자연스럽고 당연할 행위일 뿐이다. 따라서 진정한 積善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餘慶이라는 대가를 결코 전제하지 않을 것이며, 개인적 고통과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자신의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과 행동은 스스로 선택한 주체적인 삶의 방식이라야 가능하다.


  인간 본연의 양심의 실현인 ‘善’은 누구나 인정하는 절대적인 것임에 반해 ‘慶’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가치관에 따라 달리 정의될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이다. 세속적인 사람들에게 ‘慶’은 주로 물질적인 부나 사회적인 지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사회적, 역사적 정의를 실천한 積善의 행위자가 파악하는 ‘慶’이란 세속적인 인간들이 바라보는 그것과 동일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積善之家’에 주어지는 ‘餘慶’이 필연적인지 아닌지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慶의 속성을 세속적인 잣대로 재단하여 물질적․권력적인 것으로만 파악한다면 이 둘의 관계는 일종의 가능성만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겠지만, ‘慶’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상대적인 것이므로 그들에게 주어진 상황이 경사인지 흉사인지는 積善을 실천한 사람과 그 후손이 판단할, 그들 자신의 몫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積善之家’에 ‘餘慶’을 내려주는 주체인 ‘天’의 입장에서 그 필연성을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도덕성을 믿는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積善의 행위자와 그 후손,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대중 모두가 공유하는 도덕적 공감대가 있음을 최후까지 믿어야한다 뜻이다. ‘정의’의 실천에 대한 실천자 자신의 양심적 떳떳함과 그에 대한 후세의 올바른 평가 그 자체가 이미 자신과 그 후손에게 필연적으로 주어지는 ‘餘慶’의 실체가 아닐까? 굽힘없이 정의를 실천한 조상 때문에 지금 당장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는 후손이라도 조상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존경이 주어진다면 결국은 조상의 積善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떳떳함을 깨닫는 것이 필연적일 것이다. 조상에 대한 대중들의 존경과 후손으로서 느끼는 자랑스러움, 그것이야말로 세속적인 부나 지위 따위와는 비교 할 수 없는 넉넉한 ‘餘慶’이 아니겠는가? 積善의 실천자 그 자신은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에 만족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축복받은 삶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스스로 의식하지 않았더라도 후손에게 주어질 ‘餘慶’에 대한 믿음 역시 그러한 성격일 것이다. 따라서 積善이라는 씨앗과 餘慶이라는 열매에 대한 필연성의 선언은 결국 積善을 실천한 사람과 그 후손에 대한, 그리고 정의를 반드시 정의로 평가할 수 있는 일반 대중의 윤리성에 대한 ‘天’의 믿음의 선언에 다름 아니다.


  일제시대 친일행위에 앞장섰던 사람들과 그 후손은 미군정 아래 정권을 장악하여 지금까지도 막강한 재력과 권력을 휘두르며 정계․재계․학계의 요직을 점하고 있다. 반면 그 엄혹했던 시대에 一身의 安樂은 물론 가족들의 희생까지 감수하며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분들은 나라가 독립된 후에도 그 功을 보상받기는커녕 비극적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가의 방치와 사람들의 무관심의 대상으로 여전히 그 비극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다. ‘積善之家에 반드시 餘慶이 주어진다’는 言明은 이러한 상황을 직면할 때 무색해진다. 그러나 역사는 긴 호흡으로 보아야한다. 그들이 끝내‘친일파 청산법’의 통과를 저지하는 등 안간힘을 써도 無所不爲의 행위에 대해 준엄한 심판이 내려지는 것은 역사적 필연이다.


  지난 역사에 대한 준엄한 평가는 ‘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는 명제가 진실임을 증명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작업임을 사마천은 『史記』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비록 오랜 시간이 흐른 뒤라 하더라도 역사적 평가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자신을 희생하고 타인을 위해 봉사하여 이 사회에 정의와 사랑의 모범을 보여준 ‘積善之家’에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후대의 평가가 주어진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 사회에 ‘역사 바로 세우기’가 시급히 요청되는 이유라 할 것이다. 積善에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모든 이들에게 그 고귀한 자기희생과 봉사에 대해 사회적 존경과 경의를 바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餘慶’이라 할 것이다. 그것은 도덕적 윤리적 절대자로 표상되는 ‘天’이 하는 일이며 그 ‘天’이란 바로 이 사회 구성원들의 공통된 합의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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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강독 과제]

규정 속도보다 다소 천천히 추월선으로 조심조심 가고 있던 여성 초보운전자의 소형차 앞에 맹렬 추월해온 대형 트럭이 끼어들더니 갑자기 속도를 줄여 위협을 가했다. 충돌 위험에서 겨우 벗어난 여성 운전자는 계속 운전을 못 할 만큼 위축된 마음상태로 갓길에 차를 세웠고, 그 사이 트럭기사는 유쾌한 듯 속도를 높여 달아나버린다. 초보운전자의 뒤에서 이러한 상황을 모두 지켜본 운전자, 즉 제3의 관찰자 입장에서 이 상황을 정리 비판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갈등을 풀어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자유롭게 제시하시오.


ㅇㅇ고등학교 교사 해콩 ^^


  크고 작은 차이는 있겠지만 초보운전자와 트럭운전자에게 모두 문제의 책임이 있다고 본다. 우선 초보운전자는 운전이 아직 미숙하므로 가급적 추월선을 이용하지 말아야했다. 추월선은 그야말로 급한 일이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도록 마련된 차선이다. 운전이 아직 서툰 상태에서 추월선을 이용하게 되면 뒤따라오는 차량들의 무리한 추월을 유도하게 되고 사고의 위험도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초보운전수에게도 바쁜 일은 있을 수 있는 것이고 맘처럼 운전이 쉽지 않았을 수도 있다. 바꾸어 말하면 규정 속도보다 천천히 추월선으로 운전한 것이 트럭운전수의 폭력적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트럭을 운전한다’는 사실을 통해 그의 삶의 조건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택시나 버스, 트럭 등 운전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노동자들에게는 시간이 곧 ‘돈’이다. 또한 그들에게 매일같이 주어지는 강도 높은 노동과 그에 비해 낮은 수입을 생각한다면 시간이 자본인 그들에게 ‘너그러운 양보’를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가진 ‘힘’을 이용해 상대방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폭력적인 행동을 용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숙한 운전자에게 ‘트럭’은 이미 그 자체로 거대한 ‘공포’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갈등상황을 모두 목격한 뒤차 운전자가 이런 비판에 그친다면 이는 발전적인 대안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양비론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위험한 사태가 발생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고민해봐야 한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현대사회에 만연한 ‘익명성’에 있는 것은 아닐까? 트럭운전수와 초보운전수가 서로 아는 사이였다고 하더라도 과연 저렇게 행동했을까? 그가 혹은 그녀가 내 가족, 내 친척, 내 이웃이었다면? 익명성이 보장되어있다면 상대방이 내게 보이는 불편에 대해 사람들은 폭력적으로 대응하기 쉽다. 이전에도 지금도 또 앞으로도 ‘그’와 ‘나’는 서로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의식과 그에게 나를 드러낼 필요가 없는 조건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염치가 없어지고 상대방에게 폭력적으로 행동한다. 전방위로 나를 드러내야하는 열린 공간이 줄어들고 서로에게 닫힌 개인적인 공간에서 활동하는 기회가 늘어나는 현대인들이 점점 서로를 소외시키고 상대방에게 무관심하며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커다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류의 역사는 流轉한다. 위 사건은 사실 인류가 끊임없이 고민하며 해결방안을 찾아오던 크고 작은 갈등 상황의 구체적 일례에 불과하다. 미숙하고 여린 약자에게 ‘힘’을 이용하여 폭력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정의롭지 못한 상황을 맞닥뜨릴 때마다 지식인들은 각자의 관점에서 나름대로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해 왔으며, 춘추전국시대는 그 혼란의 크기만큼이나 다양한 지식인들이 다양한 해법을 제시했던, 그야말로 ‘百家爭鳴’의 시대였다.

  한비자와 같은 法家的 입장에 선 지식인이라면 교통법규를 엄격히 적용하여 범칙금을 높이 책정한다든가 감시 카메라를 설치한다든가 하는 등의 외적․물리적 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벌을 주고 감시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 방법은 되지 못한다. 무엇보다 이것은 인간의 주체성과 존엄성을 부정하는 것이며 ‘힘’으로 파생된 문제를 더 큰 ‘힘’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맹점을 지닌다. 눈앞의 문제는 일시적으로 해결될지 모르지만 그것은 해결되는 듯 보일 뿐 사실 그 안에 더 큰 문제들을 잉태하기 일쑤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능성을 신뢰하는 儒家的 입장이라면 각 개인에게 내재된 선한 의지를 믿고 그에 따른 해결 방법을 고민할 것이다. ‘힘’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또 다른 상황 아래에서는 그 자신이 약자의 입장이 될 수 있음을 상기시키고, 易地思之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인간의 변화가능성과 善意志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하는 이 방법은 ‘교육’과 ‘교화’라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쳐야하므로 시간이 많이 걸리고 갈등상황이 재발했을 때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인간성에 대한 믿음 없이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해결하는 문제는 과연 갈등 근본 원인까지 제거한 것일까? 지속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열린 공간에서 소통할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현대는 유교에서 말하는 易地思之, 推己及人의 정신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서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할 줄 알고, 나의 마음을 미루어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귀찮은 존재, 걸그적거리는 존재가 아니라, 상대방도 나처럼 소중한 사람이라는 의식과 다른 사람들 덕분에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서로가 서로를 ‘귀한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평등하다. 그러나 이러한 평등성은 선험적, 법적차원에서만 성립한다. 현실에 있어서의 인간은 생김새뿐만 아니라 능력이나 환경이 모두 다르다. 따라서 현실의 어떠한 두 사람도 똑같지는 않다. 하여 荀子는 “무조건 똑같은 것은 참된 평등이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 인간은 어떤 방법으로 정의와 공정을 실현할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약자의 입장을 좀 더 배려할 줄 아는 사회, 법과 제도가 힘없는 소수자의 입장에서 적용되는 사회라야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힘의 논리로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크고 작은 사태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오늘도 미국을 위시로 한 몇몇 강대국이 자국의 이익-더 엄격히 말해서 그들 패거리의 지위-을 유지․강화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비극이 진행되고 있다. 트럭운전수는 초보운전수를 위협했을 뿐이지만 그들이 도발한 전쟁은 하루에도 수백, 수천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다. 고민하는 지식인, 행동하는 양심적 지식인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가능하다고 포기하거나 더러운 세상을 외면하고 혼자 高高하면 그만일까? 孔子는 말씀하셨다. 인간을 버리고 새와 짐승들과 함께 할 수는 없다고. 교육받은 자로서 매일같이 진행되는 이 비극을 관망하기만 한다면 이는 분명한 직무유기가 될 것이다. 최선을 다해 힘없는 소수자의 편을 들어주어야한다. 지금 당장 트럭운전수를 제제할 방법은 없다 하더라도 놀란 마음 쓸어내리며 맥을 놓고 있는 미숙한 운전자를 위로하고, 이것이 정의롭지 못한 행동임을 부단히 알려야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포기 않는 주제적이고 능동적인  지식인의 자세일 것이다.


  국제사회의 비정한 ‘힘의 논리’ 속에, 그저 관망하고만 있는 지구촌 여러 나라들의 무관심 속에, 오늘도 이라크에서 레바논에서 죄 없는 아이들과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가고 있다. 지금 당장 나부터 易地思之, 推己及人을 실천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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