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켄 로치에 대해 예전에 쓰다 만 글 하나...
오늘날 좌파로 산다는 것의 의미 - 세계영화계의 마지막 빨치산
역사란 향수가 아니다. 역사는 왜 우리가 지금의 모습인지, 우리가 누구인지, 왜 우리가 현재의 상황에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역사가 향수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은 권력을 가진 부르주아들에게 적합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그들이 계속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을 설명해주며 따라서 역사를 탐구하여 민중들에게 그들의 역사를 되돌려 주는 것은 감독으로서 갖는 책임 중 하나인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야말로 미래를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민중의 과거에 대한 생각을 조절할 수 있다면 당신을 그들의 현재를 재조정할 수 있고 현재를 조정하게 되면 결국 그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에 대한 민중의 생각을 조정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 켄 로치
가끔 주변의 지인들에게 너는 '좌파'라는 말을 듣곤 한다. 인터넷상의 심심풀이 심리 테스트에서 진보성 유무를 판별하는 테스트에서도 비교적(?) 진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을 보아서 어느 정도 그런 구석이 있기는 한 모양인데 나는 누군가에게 '좌파'라는 말을 들으면 지금도 마음이 뜨끔하다. 그런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좌파란 말을 듣기엔 많이 부족하다는 자괴가 들어서이고, 우리 사회가 아직도 좌파를 백안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직장 생활하는데 어떤 불편(좌파라는 것이 단지 불편할 정도의 수준이라니 세상 살기 참 좋아졌다.)이나 있지 않을까 가슴 죄게 되기 때문이다. 어느 직장에나 수구보수꼴통들은 있기 마련이지 않은가?
한 일년쯤 전의 일이었던 것 같다. <시네 21>을 보다가 김규항이 우리나라에는 어째서 '켄 로치' 같은 감독이 나오지 않느냐는 요지의 말을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장선우, 여균동 감독 같은 이들이 그런 역할을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뭐 요지는 그랬던 것 같다. 두 사람이 한 때 마당극 문화운동 등에 참여했던 것은 사실이고, 나름의 중요한 역할들을 했지만 현재로선 그들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기 참 어렵게 되었다. 나는 그들의 영화들을 보면서 세상에 어떤 긴장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 좌파란 세상을 긴장시키는 존재이어야 한다. 진보나 변혁 혹은 대안이란 것은 기성 사회와 불화하지 않을 수 없으며 긴장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장선우나 여균동 감독의 영화가 기성 사회에 어떤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는 흔적을 현재로서는 발견할 수 없다.
칼 마르크스는 "<인간을 인간으로서> 생각하고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로 생각하라. 그러면 당신은 사랑에는 사랑으로서만, 신뢰에는 신뢰로서만 교환하게 될 것이다. 예술을 감상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예술적 훈련을 받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영향력을 갖고 싶다면, 당신은 실제로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발전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사랑을 일깨우지 못하는 사랑을 한다면, 곧 당신의 사랑이 사랑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만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생명의 표현>에 의해서 당신 자신을 <사랑받는 자>로 만들지 못한다면, 당신의 사랑은 무능한 사랑이고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라고 말한다. 좌파의 기본 요소는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인간을 인간으로서'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로 사랑에는 사랑으로만 신뢰에는 신뢰로서만 대하는 것.
이렇게 말하면 너무 원칙적이고, 도덕적이지 않은가 하고 물을 지 모른다. 너무 이상적이라고. 그렇다. 우리는 파블로 카잘스가 말한 것처럼 지금 현실 정치나 군사적 긴장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 사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좌파는 더 이상 혁명적 변혁을 주장할 수 있는 세력이 아니고 현재로서는 그럴 힘도 없다. 그러나 바로 지금이 그런 시기이기 때문에 더욱더 좌파의 필요성은 증가한다. 그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에….
난 지금도 켄 로치 감독의 영화를 보면 어디 방 구석, 책상 밑 같은 구석진 곳을 찾아들어가 꺼이꺼이 울고 싶어진다. 뭐 대단한 운동권 출신인 탓도 아니고(오히려 전혀 관련없는 축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이다. 서럽기 때문이다. 보시면 알 게 될 것이다. 실제로 <랜드 앤 프리덤>을 보고나서도 그렇게 울었다. 영화 속의 그 주인공이 오랫동안 간직해왔던 사회주의 순수성은 여지없이 짓밟혔고, 그래도 그는 살아남아 영국에서 노동당이 집권하는 것을 보았고, 또 그 노동당이 노동자들을 배신하는 것을 보았고,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 산 중에서 어떻게 살해당했는지 보았고, 칠레에서 세계 최초로 선거에 의해 수립된 사회주의 정권이 미국 CIA와 칠레 우파군부에 의해 어떻게 처참히 무너지는 지 그는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그 모든 것들을 지켜보며 자신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고 살았으리란 생각이 들자 나는 너무나 서러운 나머지 울지 않을 수 없었다.(그리고 이 말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글 베껴가는 건 좋지만 이런 개인적인 느낌을 담은 건 첨삭이라도 하고 자기 홈피에 올리길 바란다.) 장선우나 여균동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자신의 이상을 아주 쉽사리 접고 흔히 말하는 연착륙이란 것을 거뜬히 해내는 알바트로스들을 본다. 함 선생이 바보새라고 말했다는 바로 그 새. 하늘에 떠 있을 때는 그렇게 우아하게 날지만 그들이 땅에 내려왔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들이 얼마나 뒤뚱거리며 걷고 있는지 알 게 되었던 것이다.(뭔 말인지 모르시는 분은 저녁 9시 뉴스를 열심히 보시라. 과거 노동운동의 대부, 학생운동의 지도층, 존경받는 대학 교수들이 모여 앉은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그리고 역시 자신을 돌아보시라. 이 말이 과연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이라고 해당사항이 없을까!)
.......죄송하지만 좀더 자세한 내용은 이곳으로(http://windshoes.new21.org/directer-kenloach.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