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참 칭찬받고 싶어서  살아왔다.

그러나, 요즘들어 남들에게서 받는 칭찬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칭찬받는 삶과 칭찬받는 관계는 그만큼 위선적인 삶이었음을 깨닫게 되고,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의미를 새삼 실감한다. 내 아내가 나에게 잔소리를 하고, 아들이 아빠가 그러지 않았음 좋겠다는 투덜거림을 듣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었던가를 깨닫게 된다..

옳은 일이라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라도 갈 수 있어야 잘 사는 삶이다.

남의 칭찬 받고 산다는 것은 정말 무상한 일일지어다.

남들보다 잘 한다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진심으로 잘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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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흰 캔버스 위에 색을 입히고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자화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건 나이가
몇이건 간에, 불행하고 스스로 심신이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의 초상은
여전히 인내심을 갖고 그 그림을
완성해 주기를 기다린다.

- 진저 히스의 《여자들의 인생 제2막》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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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별맘 2004-05-20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늦지 않았다고 자신을 타일러 보지만, 현실은 '이미' 늦었다고, 포기하라고 강요하며 주저앉게 만듭니다.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쉽지 않은 일이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서수. 0.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는 서수,  0번째, 제0교시.(in English, 0th? 0st? 0nd? 0rd?)

그러나 우리나라엔, 유일하게도 세계에서 단 한 나라, 대한민국에는 0교시가 있다.

살인적인 입시 경쟁을 이겨 내려면 0교시를 해야 한단다.

좀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니 옆에 앉아 있는 그애보다 더... 하면서 교실이데아를 부르던 서태지는 벌써 한 물 갔는데, 이 노래를 좋아하던 중딩, 고딩들은 이제 처녀 총각으로 변했는데, 아직도 우리는 아이들은 매일아침 일곱 시 삼십분까지 그 좁은 교실에 우릴 몰아 넣고, 좀더 비싼 녀석들로 변신하려고 노력중이다. 그런데도 여간해서 그놈들은 변신하지 않는다.

-1st교시를 하는데도 변신하지 않는 녀석들은 정말 성의없는 고교생이다.

학교에서 그렇게 죽자사자 가르치는데, 왜 변신하지 못하는 것일까. 등신 아냐?

이런 대한민국 특산품을 해외로 수출하는 날이 올까봐 정말 두렵다. 하루 여섯시간 수업도 지겨워할 새파란 아이들에게, 아침 일곱시 반부터 밤 열시까지 열네시간 반을 답답한 공간에 갇혀 있으라 하니, 저항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안쓰럽다. 엄마보다 자주보는 담임 얼굴에 그래도 웃어주는 예쁜 아이들이 정말 안쓰럽다.

요즘은 아파트도 고층에 가리면 일조권을 찾고 난리법석들인데, 우리 아이들에겐 일조권이 없는걸까?

고딩들은 햇볕을 쬘 권리라곤 없는 걸까? 그저 200-300 룩스의 형광등 불빛 아래서 문제집만 디립다 풀어제끼면 의사가 돼서 돈을 많이 벌고, 법관이 돼서 어깨 힘 줄 수 있는 걸까.

어차피 이태백인 세상에, 청년 실업 문제가 해결의 기미는 커녕, 고학력 실업자 증후군이 만성 사회병으로 자리를 떡 잡은 이 마당에, 하위직 공무원뿐 아니라 청소부에도 박사, 석사들이 수두룩하다는 이 희한한 나라에 우리 앨리스들은 토끼를 따라 뛸까, 거북이를 따라 길까.

아니면, 영원히 나이를 먹지않는 피터팬이 되어, 자기 중심적이고 냉소적인 웃음을 지으며, 언제까지나 자라지 않는 젖니를 반짝이며 네벌랜드에서 깔깔대고 있을 것인가.

이 고딩들과 그 담당간수들에게 한 시간 여유를 주자고 0교시 폐지를 외치면, 머리좋은 꼴통들은 0-8교시를 1-9교시로 하잔다. 지들은 보충수업 안 하니깐, 목 아픈 줄도 모르고, 다리 관절염 생기는 줄도 모르고, 애들 졸다가 아예 코골고 자는 줄도 모르고, 이런저런 병 생겨 죽어나가는 것도 모른다.

네벌랜드에서 피터팬에게 저항하는 인간적인 모습의 현실적인 후크 선장은 애초에 패배가 결정된 것이라고나 했던가. 하긴, 후크 선장이 이겼다면 그 얘기 제목이 피터 팬일 까닭이 없지.

담쟁이 장미 탐스럽게 핀, 백만송이의 장미에 둘러싸인 벽돌담 고등학교의 밖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밤 늦게까지 불밝혀진 일반계 고등학교의 형광불빛을 보며 우리 나라의 미래와 교육열과 향학열과 경쟁력을 느낄 지 모르지만, 자신들의 고교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릴 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미래를 짊어질 후크 선장들로 가득한 원피스의 세계가 아니라, 모험과 항해가 결투와 획득으로 이뤄지는 삶의 현장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어른이 되기 싫은 피터팬으로 가득하단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이들에게 아닌 것은 아니라고 가르쳐야 한다.

0은 서수가 아니다. 그렇다면 0교시는 논리적으로 부당한 것이다.

0교시란 있을 수도 없는 것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엾게도 우리 아이들은 논리도 싫고, 이론도 싫고, 철학도 싫고, 그저 한 시간 늦게 일어나고 싶은 어린애의 칭얼거림만 가질 뿐이다. 누가 그들을 영원한 탈인간의 세계, 네벌랜드의 피터 팬으로 묶어 두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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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4-05-18 0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0교시는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퍼가도 되지요?)
 

오월 하늘. 그 해도 오월 하늘은 올해처럼 새파랬을까? 삶의 어둠이 빛을 보여주지 않는 어둡던 시절에, 교련복을 입고 손수건 대각선으로 말아 입을 가리고 최루 가스에 페퍼포그에 지랄탄과 콩볶는 총성에... 그리고 국군의 진압에, 공수부대의 매질과 총질에 후벼진 가슴들이 바라본 하늘이 오늘처럼 파랗기만 했을까.

최민수가 "나 지금 떨고 있니?"하고 멋진 마지막 말을 남겼지만, 그들은 떨고있으면서 떨고있냐고 묻지도 못하고 달을 바라보는 망월동에 눕고 만 것이나 아닐지.

관군이 패퇴하고 동학군이 진군하던 곳에 치안이 유지되었듯이, 빛고을의 오월에도 치안과 질서는 유지되었다는데, 과연 천명의 일본군을 모셔다 수만의 동학군은 몰살시킨 우금치의 핏물과 공수부대원의 번들거리는 총질로 학살된 수백, 수천의 시민군의 죽음은 백년 가까운 거리감이 있음에도 같은 이미지로 겹쳐짐은, 나의 생각이 언어로 되어 나오지 못하는 시니피앙이기 때문일까. 나의 사변이 차마 어떤 언어로도 발음될 수 없는 매직에 걸렸음일까.

오월은 언제나 나를 패배하게 한다. 오월의 라일락 맵싸한 향기가 시각적으로는 앞산 가득하던 아카시아 희뿌연 이미지 전경으로는 붉디 붉은 태양 아래 눈물의 이미지로 젖은 최루가스와 매캐하던 박하사탕의 추억. 눈물을 빼고는 돌아볼 수 없는 추억.

모두들 잊었는데, 다들 주가가 뛰는지 꼬라박는지에 관심이 많고, 웰빙과 피트니스와 아침형 인간과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논하는데, 왜 나는 이 오월에 자꾸 그 오월이 떠오르는 것일까.

새파랗게 젊음을 발산하는 나뭇잎들을 보면서, 싱그러운 신록의 즐거움을 떠올리지 못하고... 맹추같이도 그 오월을, 직접 경험한 것도 아닌 그 오월을 떠올리면서 햇살을 마주보면 안 될 것같은 부끄럼으로 고개 숙이는 것은... 내가 나에게 정직하지 못함일까. 아니면 정직함이 없음을 부끄러워 함일까.

답답하고 슬프고 우울하고 혈압만 오르는 오월에... 그저, 독백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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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인데 너무 파김치가 되어 종일 빗소리 들으며 비몽사몽간을 헤매이다 맞은 월요일 아침.'

어제 머리 깎으려고 기다리다가 좋은생각에서 읽은 한 구절.

"아름다움의 뒤에는 언제나 수고가 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밤새워 고민한 끝에 맺은 아침의 수고로움, 이슬"

좋은 사람이란, 수고로움을 수고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고,

좋은 생각이란, 고통 끝에 맺힐 이슬 한 방울을 예감하는 생각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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