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강의를 잘 듣고 계신가요?
다들 죽인다, 좋다... 이러기만 하시니깐, 자뻑에 빠지더래도 독자들이 책임지세요~ 

오늘은 또 진도를 나가 봐야죠.
여태까지는 시를 외적 분석하는 법, 내적 분석법. 역설과 반어 등에 대해서 살펴 봤는데요.
그런 이론들도 학자들마다 다를 수 있답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고요.
오늘은 <형상화>에 대해서 강의할게요. 수업목표를 앞에 두는 게 좋다더군요. ^^ 형상화~ 

오늘의 시는 서정주의 <추천사>입니다.
저는 첨에 저게 레커멘데이션...인줄 알았지 뭡니까. 위 사람을 ~~ 해서 추천한다는 말씀인 줄.
농담이 아니고, 정말 그랬어요.
근데 읽어보니, 웬~ 향단이? 방자전 찍나요? 
수능 이후 세대에겐 익순한 시일 텐데요. 마기 님 세대는 수능 전 세대시죠?
우선 한번 읽어 봅시다.  



추천사 -  춘향의 말 1

향단(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밀 듯이,
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베갯모에 놓이듯 풀꽃더미로부터,
자잘한 나비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밀듯이, 향단아.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
향단아. 

ㅋ 무슨 말인지 알아 먹으시겠어요?
우선 제목부터 해결하고 넘어가죠.
추천 鞦韆은 '그네'를 한자로 표현한 것입니다. 요즘 말로 옮기면 '그네뛰기 노래'쯤 되겠지요. 

그런데 보통 시들은 <화자의 독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시는 청자가 상정되어 있답니다.
춘향의 말 - 이라고 해서, 춘향이의 목소리를 떠올리라는 거죠. 청자는 향단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근데, 서정주는 도대체 왜 춘향이가 향단이더러 쫑알거리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려 했던 걸까요?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시의 주제는 인간의 한계 의식과 좌절입니다.
그네가 영어로 swing 이잖아요. 근데 그 그네는 '진자 운동'을 하기때문에, 딱 갈 수 있는 한계가 정해져 있죠.
우리가 그네를 재밌게 타는 이유도, 그네가 갈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그네를 타고 '토이스토리 버즈'처럼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가버린다면, 헐~ 무섭겠죠? 

주제를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너무 딱딱할 거 같으니깐, 만만한 옛날 이야기, 그것도 가장 유명한 리바이벌의 대명사,
춘향전에 이야길 집어 넣기로 한 거죠. 그렇게 하면 일단 추상적 이야기가 <비주얼>로 떠오를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태백산맥을 읽으신 분이라면 외서댁을 쫄깃쫄깃한 겨울 꼬막이라며 징글징글하게 괴롭힌 놈이 떠오르시죠? 염상구.
소나기를 읽으신 분이라면 소녀가 죽을 때까지 입고 있었다던, 분홍 스웨터와 남색 스커트가 떠오르실 거구요. 

이처럼 순수한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서 눈앞에 보여주는 것,
격동기에 동족의 약점을 잡아 괴롭혔던 놈들의 모습을 실제처럼 그려 보여주는 것.
추상적이고 막연해서 형상이 잘 그려지지 않는 그런 것을 전형적이고 개성적인 인물을 창조하여 보여주는 것을 <형상화>라고 합니다.
그냥 일제 강점기에 징용가는 일은 무서운 거였어... 이렇게 말하는 것 보다는 박완서의 '그 여자네 집'에서처럼 곱단이와 만득이의 사랑이야기를 늘어 놓는 일이 훨씬 독자의 머릿속에서 끔찍하단 생각이 강한 것 처럼 말이죠.
(박완서의 소설은 고등 국어 1학년 1학기 책에 있습니다. 읽어 보세요.)  

일단은 춘향이가 그네 뛰면서 향단이에게 하는 말이다... 이렇게 제목을 붙여 두고 나니깐, 형상이 보이잖아요. 그쵸? 

자. 1연. 일단은, 그네가 한계점을 향해 출발하니다.
그 출발 동력은, 향단이가 미는 힘이죠.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먼'을 머언~~ 이렇게 길게 발음한 것은, 저 머언 바다를 향한 기대감 이런 것일라나요?
향단이에게 그넷줄을 밀라고 하는 춘향의 시선은 어디로 가 있나요?
머언~~ 바다를 향하여. 거기는 이도령이 있을지, 서울이란 도시가 있을지, 무지개 꿈이 있을지... 잘은 모르지만,
암튼 춘향의 눈은 머언 바다를 향하여 꿈에 가득찬 표정인 것이 보이시죠?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기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시골에서 공부하다가, 대학을 서울로 갔어요.
내일이 입학식입니다. 향단아, 머언 바다고 배를 내어 밀듯이... 그런 기분 아시겠어요?
머언~~ 바다, 이상향에는 무언지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가득한 기분을요.

계속 갑니다.
2연에서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 베갯모에 놓이듯 풀꽃더미, 나비새끼 꾀꼬리들, 
이런 소재들은 '현실'이죠.
가난한 우리집, 늘 하루 벌어먹기 힘든 삶에 지친 어머니, 시궁창으로 돌아다니는 탐욕스런 쥐와 함께,
늙고 병들고 아픈 자들로 가득한 이웃들이 있는 현실 말입니다.
베갯모는 베개 옆에 수놓인 걸 이야기해요. 옛날 동그란 베개의 양옆, 마구리라고 하죠.
현실은 너무도 맘에 안 드나 봐요.
엄마는 술집하는 기생이지. 아버지란 존재는 뭐, 성서방네 양반이랬는데 알지도 못하죠.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춘향이의 신세도 참 환장하게 더러운 거죠.
암만 얼굴이 반반하고 머리가 좋으면 뭐한답니까? 아이큐가 160이면 뭐해요. 멘사에서도 천민 사절!!인데...
양반만 알아주던 더러운 세상, 아니었던가요? 정말, 국가가 해 주는 게 뭐가 있었냐구요. 

얼마나 현실이 싫었던지, 1연에서 그냥 <내어밀듯이>... 가 2연에선 <아주 내어밀듯이>가 되었네요.
그만큼 벗어나고픈 소망이 컸던 거겠죠. 

3연.
이제 춘향이는 서울로 갑니다. 대학도 갑니다. 꿈으로 가슴이 벅차죠.
서울로 가서 대학 나오고 하면 세상엔 완전히 별천지로만 여겨질 것 같죠.
'저 하늘', '채색한 구름' 이 있는 이상향으로
울렁이는 가슴으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현실에서는 '산호'와 '섬'에 얽매이지만, 나의 미래는... 행진, 행진...만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4연.
춘향이는 급좌절합니다. 왜요?
그네를 타고 있기 때문이지요.
춘향이는 이도령이란 양반집 자제랑 결혼해서 신분 상승을 꾀하고 있던 여자 아이였지요.
그래서 계속 올라가고 싶었겠지만, 그네는 계속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날아갈 수 없습니다.
버즈도 결국 중력의 작용을 받는 토이에 불과했거든요.
그네에 매여 있지요. 중력은 그만 잡아 당기지요.
서쪽으로 가는 달, 그를 따라 가야 이상향이 나오는데,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답니다. 좌절하죠. 눈물나죠.
왜, 남들은 다 되는데, 난 안 되는겨? 어무이~~~  

마지막 연.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는 건, 이것도 한계가 있잖아요. 파도가... 얘도 무한한 공간 저 너머까지 못 가잖아요.
그렇지만, 계속 밀어 올려달라고 부탁합니다. 향...단... 아... 처절하죠.
힘든데, 현실적으로 어려운데, 그래도 정신력으로 버티려는 걸, 수능 용어로 <의지적>이라고 합니다.  

자, 이 시 전체를 두고 보면요.
1~3연에서는 상당히 고무적인 춘향이의 모습이 보이죠.
그러다 4연에서 급 좌절하고,
5연에서는 한계를 알면서도 의지를 보이는 춘향이의 모습을 읽습니다. 

그렇다면, 서정주 시인이, 한국 시 역사상 시를 가장 잘 썼다는 평을 받기도 하는 그 시인이 여겼던 '한계'는 어떤 것일까요?
뭐, 그 사람 마음 속에 들어가 보지는 않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우선, 자기 시에 대한 한계의식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노래가 낫기는 그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 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버렸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 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꽃밭의 독백 - 사소 단장, 일부> 

이것도 서정주 시인데요. 서정주가 추구하던 바를 대놓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노래가 낫기는 그중 낫다>는 건, 세상의 여러 일 중, 자기는 시 쓰는 일을 최고의 업으로 삼는다는 이야기겠구요.
근데, 또 그네를 타죠. ^^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 오고 ㅋㅋ
잘 달리는 말, 천리마래도... 바닷가에 가서는 멈출 수 밖에요.
그래서 꽃, 가장 아름다운 꽃 앞에 가서 신신 당부를 합니다. 문 좀 열어 달라구요.
근데, 말투 보니깐... 열릴 거 같지 않죠? ^^ 

그러면, 서정주의 '한계 의식'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서정주처럼 언어를 부려쓰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 말입니다.
그의 아름다운 언어 한 번 보실래요?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 삼만 리. 

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 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귀촉도, 전문)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동천, 전문) 

<귀촉도>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후회와 한탄, 줄여서 '회한'으로 가득한 여인이 노래입니다.
여인이란 근거는, 2연에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이냥 베어서, 신이나 삼아줄걸, 슬픈 사연을 올올이 아로새겨서...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아, 이런 서러움을 누가 표현이나 한답니까?
'귀촉도'란 소쩍새 우는 소리의 애절함을 나타낸 말이랍니다.
<동천 冬天>도 마찬가지죠. 임의 눈썹같은 가느단 초승달이 겨울 하늘에 매달렸어요.
초승달 보고나 생각하는 임의 눈썹... 임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요.
그랬더니 하늘을 날던 새도 그걸 아는지 비껴가는구나... 또 눈물나죠. ^^    

이 시들은 소리내어 읽어보면, 입에 착 붙습니다.
민요조의 3음보거든요. 한 행을 세 마디로 나눠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꼭 소리내어 낭송해 보세요.



그의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도 내가 좋아하는 시입니다.

   외할머니네 집 뒤안에는 장판지 두 장만큼한 먹오딧빛 툇마루가 깔려 있읍니다. 이 툇마루는 외할머니의 손때와 그네 딸들의 손때로 날이날마닥 칠해져 온 것이라 하니 내 어머니의 처녀 때의 손때도 꽤나 많이는 묻어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그것은 하도나 많이 문질러서 인제는 이미 때가 아니라, 한 개의 거울로 번질번질 닦이어져 어린 내 얼굴을 들이비칩니다.
   그래, 나는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되게 들어 어디 갈 곳이 없이 된 날은, 이 외할머니네 때거울 툇마루를 찾아와, 외할머니가 장독대 옆 뽕나무에서 따다 주는 오디 열매를 약으로 먹어 숨을 바로 합니다. 외할머니의 얼굴과 내 얼굴이 나란히 비치어 있는 이 툇마루까지는 어머니도 그네 꾸지람을 가지고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외할머니 뒤안 툇마루>

그 나라의 시인은 그 나라의 정서를 가장 잘 드러내야 하는 법이니까요.
푸근한 정이 살아 넘치던 외할머니 뒤안 툇마루의 먹오딧빛 툇마루, 한 개의 거울로 번질번질 닦이어져 얼굴마저 들이비치던 그 추억이 서정주의 시로 인해 남아있으니 아니 아름답습니까?
한국의 정,
이러면 무슨 초코파이도 아니고, 형상이 없잖아요.
근데, 서정주가 군지렁거리면서, 자기 어렸을 적에 외할머니네 집 뒤안에는 좁은 툇마루가 있었는데, 나는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되게 들어 어디 갈 곳이 없이 된 날이면, 거기로 갔더라는...
꿈과 전설이 가득할 것 같은 공간이 오롯이 형상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좋은 시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의 한계 의식의 한 끝을 보여주는 작품이 그의 <자화상>입니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를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한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자화상>

한국 사회는 세계사적으로 가장 최근까지 '노예제'가 실시되던 국가였는데요.
갑오개혁(1894)으로 공식적으로 폐지된 양반-상놈 제도가 일제 강점기를 거쳐 지금까지 위세를 펴고 있습니다.
지금도 누구누구 이름을 대면, 뭐, 해주 최씨가 어떻네, 전주 이씨가 어떻네 족보를 외워댑니다.
족보가 뭐예요? 그게 바로 연좌제입니다. 법으로 금지하는 연좌제.
88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로 노동자들의 임금이 많이 올랐죠.
그러고 나서 노동자들이 한 일이 뭔지 아세요? 집집마다 족보 만들기 였습니다.
기백 만원 주고 사는 거죠. 그래서 지금 집집마다 족보 없는 집이 없어요. 다 돈 주고 산 족본데...
한국 사회는 이런 사회입니다. 아직도 '쌍놈의 새끼'가 '개새끼'보다 못한 욕인 사회죠.
자기는 양반 자식이 아니고, 그래서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살아 온 것이죠. 

그래서... 그래서 권력을 가진 세계로 편입하려고 아무리 그네에 올라 발을 굴러도,
그네는 매번 뒷걸음질치곤 했던 모양이죠.
그래선지, 그는 '뉘우치지 않을 짓'을 서슴지 않고 하기도 했답니다. 진짜 그의 한계죠.

근데, 서정주가 또라이 소리를 듣기도 해요.
아무리 재주가 좋으면 뭘 합니까? 정신머리가 오락가락하는데...
일제 강점기에 친일파 시인으로 활동하기도 했구요.(근데 친일파 단죄 문제, 이건 쉽지가 않아요. 저도 일제 강점기였다면 아마 친일파 했을 겁니다. ㅠㅜ 독립 운동가 돼서 집안 망하는 거보다, 친일파 해서 입신양명하는 것이 사실은 거의 모든 집안의 숙제였답니다. 이런 현실에서 그냥 욕만 퍼부을 순 없습니다.)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伍長)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한살 먹은 사내/(…)/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리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이것이 <오장 마쓰이 송가>인데요. 시대가 어두웠으니 그렇다 칩니다.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요거, 4대강 사업 아닙니다. ㅋㅋ)
이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잘 사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 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 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또 88서울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우리 좋은 문화능력은 옛것이건 새것이건 
이 나라와 세계에 떨치게 하시어 
이 겨레와 인류의 박수를 받고 있나니  

이렇게 두루두루 나타나는 힘이여 
이 힘으로 남북대결에서 우리는 주도권을 가지고
자유 민주 통일의 앞날을 믿게 되었고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아놔, 넘어간다. ㅍㅎㅎㅎ)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 육천만 동포의 지지를 받고 있나니

이 나라가 통일하여 홍기할 발판을 이루시고
쥐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서정주(1987. 1) 문어대가리 전두환 56회 생일 축시 ㅋㅋ 

이런 미친 짓을 했으니 욕을 먹어도 싸죠. 

또, 그의 불후의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국화 옆에서>도 사실은 천황폐하를 알현하는 신하의 마음으로 썼던 거라는 비판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일본 왕가의 문장인 국화. 일본의 시조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이미지라고 보기도 하죠. 그의 시가 워낙 미친 아낙 널 뛰듯, 럭비공같은 진로를 보여주다 보니깐, 이런 욕도 먹고 있는 거겠지요.
사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의 국화는 '오상고절'이라고 절개의 상징이었거든요. 그것도 강인한 선비 정신의 표상으로.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춘풍 다 지나고
낙목한천에 네 홀로 피었나니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이정보)  

아, 오늘을 떠들다 보니 서정주의 시세계로 좀 깊이 빠져들었네요.
그래도 서정주의 시가 좋은 시가 많아서 행복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행복하셔야 돼욧! 행복하세요!!! 거의 협박 수준) 

마기 님이 마음이 복잡하시다고,
시를 지금 당장 쓰시지 못하겠다고 하셔서,
이번만 봐드립니다. ^^ 
서정주를 보니깐, 시어를 잘 부려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신머리가 더 중요하단 걸 아시겠죠?

아, 저는 오늘까지 기나긴 3일간의 여름방학을 다 보냈습니다.
내일부터는 정상 수업보다 훨씬 힘든 보충 수업이에요. ㅠㅜ 하긴, 애들이 더 불쌍하지만... 

그래도, 제가 사표내길 눈 반짝이며 기다리고 있을 임용고사 준비생들 생각하면... 힘내서 열심히 가르치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알아듣는 수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요. 

이 시 특강을 읽으시는 분들께 부탁말씀 드리겠습니다. ^^ 

그냥, 죽여요. 끝내줘요~ 이런 건 별로 칭찬 아니거든요.
구체적으로 뭐, 좋은 시를 많이 만나게 돼서 좋다든가...(모범 답안까지 제시하는 파렴치한... ㅋㅋ)
설명이 너무 장황하거나 툭툭 끊긴다든가... 이렇게 이야기를 해 주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 

오늘은 형상화와 관련해서 서정주의 시를 훑었는데요.
좋은 시는 '형상화'에 접근하는 시이기도 한 것 같네요. 마기님, 참고 하세요^^ 

일요일 즐겁게 보내시라는 맘에서, 클래지콰이의 sweet dream 하나 올립니다. 즐감하세요~~

 http://noriter.ipop.co.kr/cgi-bin/tv/tvread.cgi?seq=271783 

 

그리고... 제가 '마기 님을 위한 시 특강'을 올렸더니, 둘이 무슨 관계냐고 의심하시는 분이 자꾸 있으신데요. ㅋㅋ
둘이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뭐 이런 거라도 원하셨던 거? 됐나요? ㅍㅎㅎㅎ
우린 둘 다 아줌마, 아저씨거든요.
의심하지 마시고,
글샘과 수제자의 강의라고 들어주시길...

양심은 지킬 수도, 저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은 빠져들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다.
후와님의 글 중에서 이런 명문을 봤는데요... 명문입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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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7-18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아주 멋진 특강이십니다요~
알아듣기 쉽게 시를 조각내서 친절하게 설명 해주시는것도 진짜 재밌구요~~
시인의 사생활을 건드려주시는건 덤이구요^^ 시인도 다 사람인거죠~
시험과 관계가 없으니 이런 강의가 좋군요,,,마기님을 위한 특강이니 제가 답시를 써야되는 거두 아니구요^^*(요점이 특히 좋습니다~)
살아남으려면 아벨보다는 카인인게 인간적으로다가 당연하지 않은가...라는 생각할 꺼리도 던져주셔서 짱이예욧! 이케 구질해도 살아남는게 인생인거 같아요--;

글샘 2010-07-18 22:3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이렇게 콕 찍어서 이런 점이 좋다고 해 주시면, 다음 강의에선 더 재밌게 할 수 있겠네요.
3926님도 시 하나 쓰실려우?
서정주 생각하다가, 친일파가 정말 죽일넘이었나... 이런 생각에 후와님 이야기를 끌어왔더니, 그게 맘에 드셨군요. ^^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 생각나네요. 구질구질해도 살아남는... ^^
이거, 열공하는 제자들이 많아질수록... 강의가 부담스런데요. ^^

비로그인 2010-07-18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정주의 그 맛깔나는 시어들과 그의 시의 특징이기도 한, 전라도 사투리로 '징허게' 애끓는 이야기들을 좋아하면서도 글샘님 말마따나 '또라이 짓' 때문에 모두들 거론하길 꺼리는데, 역시 글샘님은 대단하시네요.
그렇죠. 서정주의 '또라이 짓'이 밉고 용서할 수 없는 만큼 그의 시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더 침 튀겨가며 떠들어대야 합니다. 그래야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시와 추한 글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걸 제대로 알려줄 수 있을 테니까요.
아무튼 문제적 시인 서정주가 이토록 눈물나면서도 재미있게 그려진 경우를 저는 이제껏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제 기억엔 그렇습니다. 다만 마지막 두 줄이 옥에 티로군요 ㅋㅋ 잘 봤습니다^^

글샘 2010-07-19 00:27   좋아요 0 | URL
인간적으루... 나쁜 넘 없다... 세상에 나쁜 아빠 없다... 그치만, 역사가 용서할 수 없는 넘들은 많다... 말로 하기 어렵죠.
서정주 시가 아름다운 만큼 또라이 짓에 대해서도 회한 가득한 느낌도 가르쳐야지요.
눈물나면서도 재미있게... 이런 극찬에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는...
마지막 두 줄은... 서정주를 이해해 줄 수도 있다. 밉지만... 이런 의도였는데... 뭐, 옥에도 티가 있고... 그런 거죠. ㅎㅎㅎ 무허가 표절 죄송함다.

windbird 2010-07-19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시 추천해 주셔서 계속 재미있게 읽고 있는 독자입니다.
실제 학생들에게도 이런 식으로 강의하시는지요? 아이들이 무척 좋아할 것 같습니다.
눈높이를 맞춘다는게 이런 건가 싶게 까다로운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시네요.
글샘 강의를 듣다 보니 학창 시절 생각이 저절로 납니다.
혹 이성복이나 황지우 시인의 시도 한번 특강 부탁 드려요.

글샘 2010-07-19 19:52   좋아요 0 | URL
우연히 세실님이 시 해석을 못하겠다고 하셔서, 주제넘게 풀이에 나섰다가,
마기님한테 시 쓰시면 계속하겠댔더니, 콜~을 날리셔가지고 땀뻘뻘 하는 중입니다.
휴~~ 이렇게 열화와 같은 호응이 있으니... 박수칠 때 떠날까요? ㅋㅋ
수업시간에 하던 내용을 집대성한 거죠. ^^ 별달리 따로 쓴 건 없답니다.
쉬우시다니 다행이네요.
이성복도 황지우도 좋아하는데, 제 능력이 쬐끄매서... ^^
 
20살 그녀의 죽음
처음 하는 이벤트

지난 8년간 57번이나 정신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던 한 남자가 있었다. 
47살의 그 남자는 20살의 베트남 여성을 아내로 맞았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남자. 아버지뻘 되는 그 남자와의 결혼을 결정하게 한 것은 어쩌면 그녀의 가난이었을 것이다. 학교를 다니는 동생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른 집 딸들처럼 집에 조금이라도 보태줘야 한다는 눈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몸서리치는 가난을 겪지 않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유들이...... 그녀를 고향을 떠나 한국으로 향하게 했을 것이다.  
그녀는 한국에 입국한지 8일만에 남편에게 맞고 흉기에 찔려서 죽었다. 
그녀가 '남편'이라는 그 남자에게 맞아서 죽을 줄 그 가족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rosa님 페이퍼에서>


그녀의 장례식엔 영정 사진이 없어 결혼식 사진이 대신했단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외무부>에서 다루지 않고,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다루는 대한민국.
그들은 정말 '악마'일까? 외국인은 다 법적으로 문제시하는 건가?

rosa님의 <단속추방반대> 이벤트를 좀더 알리려고, 저도 똑같은 이벤트를 할까 합니다. 

되도록 퍼가서 많이 알려 주시길... 

참여 방법은 rosa님과 같습니다.
<단 속 추 방 반 대>
로 6행시를 지어주시면 됩니다. 가능한 한, 이주노동자의 슬픈 삶과 현실이 담기는 게 좋겠지요. 우스개는 좀 사절입니다.
방학을 맞은 초딩들더러 참여하라고 해 주시면, 적극 상품을 마련하겠습니다. ^^
학원가서 공부하는 거보다, 이런 게 사고력과 언어능력 향상에 더 좋다구요. 

단일민족 자랑마라
속속들이 다민족이라
추방한다 잘될소냐
방출한다 잘될거냐
반드시 반드시 예민해야할건
대한민국의 인권감수성이다. <여울마당 님> 

단번에 돈 벌게 해 준다고
속여서 들어오게 해놓고는
추하게도 이런저런 거짓으로
방방곡곡 눈물로 가득한 그대들.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응옥(Ngoc) 씨의 죽음을 배태한 나라란 걸... 미안해요. 미안해요.
<제 글> 

단지 반세기도 되지 않은 일이다.
속절없이 독일로 떠나야 했던 이들.
추하고 더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고, 설움을 삼키며 열심히 일했다.
방송은 그들을 띄우기에 열심이었고, 정부는 그들을 인질로 차관을 얻었다.
반세기도 채 지나지 않아서 반대의 일들이 우리 안에 일어난다. 그 설움을 알텐데 심하게 한다.
대관절 역사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운 것일까? 쪽팔리고 쪽팔리고 정말 쪽팔린 일이다.
<saint236 님>

단,지 그대가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속,단하지 않겠습니다.
추,측하지도 않겠습니다.그대들을 무관심 속에
방,치하였던 나날들
반,성합니다.
대,오각성하겠습니다.<양철나무꾼 님>

이렇게 해주시면 됩니다. (위의 작품은 제외합니다. ^^ 일사부재리의 원칙이래나 뭐래나.)
이렇게 잘 지으시려고 노력하실 필요 없습니다. 특히 어린이 작품은 아무리 유치해도 좋습니다. 

아이가 여럿이신 분은 각각 응모가 가능합니다.
대신에, 자녀 교육을 위하여 꼭 아이가 지어야 합니다. ^^
(뭐, 아이를 망치실 분은 대신 지어주셔도 무방합니다.) 협박???

기간은 아이들 방학을 고려해서 다음주 ... 발표는 26일 월요일 쯤...
특히, 초딩과 방학을 맞아 싸우셔야 하는 어머니들께서는 제 방학 숙제와 아이들 책을 맞바꾸시면,
아이들 독서 기회도 되고, 일석이조가 아닐까 싶네요. ^^ 

일요일(25일)까지

 

상품은, 제가 가지고 있는 책 중에 제 맘대로 방출합니다.(목록은 아래 차근차근 올릴게요.)
대략 응모작의 50~90% 정도 시상하겠습니다.(100%도 가능)
상품은 나눠먹기로 하죠. ㅎㅎㅎ 2권 이내로 찜하는 사람이 임자.(찜은 시상식 이후에 선착순으로 하겠습니다. ㅎㅎ)
아래 책을 모두 드릴 계획입니다. 많이 참여해 주세요~~~

 

 

 

 

 

 

 

  

 

<일반용> 

 

 

 

 

 

   

 

 

 

 

 

  

 

 

<청소년 용> 

 

 

 

 

 

 

 

 

 

 

  

  

 

 

 

 

 

  

 

 

 

법정 스님께서,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끄달리는 거라고,
안 가지는 것이 진정 많이 가지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더 비싼 책 계속 많이 ~~ 올릴게요.     

미리 찜하셨다가, 후회하지 않으시길...  
현재 가장 비싼 책은... 제1권력(25,000원)이네요. ㅎㅎㅎ
아, 다시 갱신되었습니다. 1차세계대전사(헐 32,000원), 늑대토템 세트(각 13,000원)
뭐, 저거보다 비싼 책은 저한테 없는 듯...
돈으로 혹하게 만드는 수법!!!

이 책들엔 제가 거의 리뷰를 올린 것들이니 참고하세요.

자, 많이 알려 주세요~~~ 

아이들이 사는 미래에는 쪽팔리는 대한민국에 살지 않게 가르치자구요!!! 

3년 전인가,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10명이 사망하고, 17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건이나,
이번 사건이나 모두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임을 잊을 수 없습니다. ㅠㅜ
부끄러워 말을 이을 수 없지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앞으론 나아지기도 빕니다... 

<많은 분들이 오래 볼 수 있도록 추천, 좀 구걸할게요. ^^ 안 하던 짓이지만...>

 

<지식채널e -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입장바꿔 생각해 보면, 한국인이 외국 나가면 약자인 것이 명약관화한 일이어늘...

 

그리고, ^^라도 좋으니 댓글도 가득 달아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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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0-07-18 22:42   좋아요 0 | URL
역시 초딩들은... 먹는 데 관심이 많군요. ㅋㅋ
훌륭한 글을 지었습니다. 초딩두요...

꿈꾸는섬 2010-07-18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 하나의 희망을 갖고
속절없이 고향을 떠나왔습니다.
추방이라니요?
방법이 그것뿐이던가요?
반드시 다른 방법이 있을 것 입니다.
대안을 찾아보자구요.

나비님 서재에서 글샘님과 rosa님의 이벤트 소식도 접했는데 세분 모두 의미있는 이벤트를 여시네요. 참가에 의의를 두겠습니다.

글샘 2010-07-18 06:25   좋아요 0 | URL
필요해서 부른 사람들을 추방이라뇨...
이건 국가가 아니라, 사기업도 잘 안 하는 더러운 짓입니다.

라로 2010-07-18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정한 미소의 당신은
속아서 결혼을 했군요.
추한 인간의
방망이에 사라진 당신의
반듯한 미소를
대한민국은 두 번 사라지게 하지 않을겁니다.


팀전이 없다셔서 저도 참가를 하려고 하는데 딸아이보다 더 유치한듯~. 아우 몰라~~^^;;

글샘 2010-07-18 06:26   좋아요 0 | URL
아우 몰라~~ 귀여우셔라~~
대한민국은 또 사라지게 할 거예요. 그래서 올바른 교육이 중요하죠.
다른 아이들도 참여하게 해 주셈. 너무 끔찍한 일인가?

herenow 2010-07-18 0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가슴아픈 일입니다...
뜻깊은 이벤트 마련하시는 rosa님, 글샘님, 跡者生存님 모두를 응원하면서...
일단 여기저기 소문 좀 내고 다니겠습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이주노동자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벤트였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그들에게 직접적 혜택을 줄 수 없다면, 모르던 사람들에게 입소문이라도 날 수 있도록
일반인보다는 어린이들이 많이 참여해서 상품을 타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상작을 모아서 관련되는 행정기관이나 언론 같은데 보내는 방법도 있겠구요. )

글샘 2010-07-18 06:40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그 생각을 해 봤습니다. 지금 당장은 좋은 생각이 없는데요.
생각해 보죠. rosa 님이 관련기관에서 일을 하시는 거 같으니 의논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rosa 2010-07-19 14:27   좋아요 0 | URL
이번 이벤트를 통해서 현정부가 G20정상회담을 빌미로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을 단속추방하려한다는, 심지어 벌금까지 물리고 있는 현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결국 이주노동자분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거구요.
참여하시는 분들의 글은 이후 집회에서, 보도자료를 통해 많은 분들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bookJourney 2010-07-18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 단히 맘먹고 떠나온 길
속 상하고 힘든일도 고향생각하며 참을텐데
추 방이라니 너무합니다
방 법을 다시 생각해서 함께 살 궁리를 해야지요.
반 갑게 맞아 3D 업종에서 일 시켰던 걸 생각해보세요.
대 한민국 이름에 걸맞게 통 '큰' 행동을 보여주세요.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기 전에 이런 일들이 없어지기를 빌어요.

글샘 2010-07-18 22:38   좋아요 0 | URL
나라가 점점 나아져야 할텐데요... 걱정입니다.

pipitohj 2010-07-18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일 하시네요, 가슴깊이 반성할 일이죠.
낯선 피부색을 보면 일단 불안하게 쳐다보는 우리들 눈동자,,,
정부차원에서 그들을 우리 국민들속에 어울려 지낼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방안을 마련한다면
처음엔 어색하고 낯설지라도 차츰 익숙해 지지않을까요
낯선 피부색의 그들이.

글샘 2010-07-18 22:38   좋아요 0 | URL
좋은 일이라고야... 정부를 어찌 믿겠습니까. 아아 어른들에게도 저런데 아이들이 입을 상처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stella.K 2010-07-18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했어요.
글샘님 뜻도 알겠고, 이렇게 좋은 책들을...
근데 전 시엔 그닥 제주가 없어서 참여가 가능할런지...ㅜ


글샘 2010-07-18 22:39   좋아요 0 | URL
제주는 휴가때나 떠나시고... 엊그제 이벤트 상품도 받으셨으니(순오기님 서재에서 봤거든요. ^^)
하나 지어보세요~

stella.K 2010-07-19 10:40   좋아요 0 | URL
엥...맞춤법 또 틀렸나 보군요.
우리말은 넘 어려워요.ㅜ

비로그인 2010-07-18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념도 했습니다
속알맹이도 빼고 살았죠
추골 빠지도록 노력했습니다만
방랑하는 인본,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겨운 이나라에선
반노 신세가 따로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제게 그런 나라였습니다


어렵네요, 울 아이들은 아직 이런 글을 짓기엔 어린 것 같은데...ㅎㅎ

글샘 2010-07-18 22:43   좋아요 0 | URL
음, 추골같은 단어를 구사하시는 마기님은 역시...
맞아요. 반노 신세...
초딩에겐 좀 어렵긴 하겠죠? 그래도 큰 애한텐 한번 시켜 보셔도 좋을텐데...
우리 아들에게도 내일까지 숙제를... 용돈주면서 시켰어요. ^^

2010-07-18 1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0-07-18 22:40   좋아요 0 | URL
저도 계속 생각해 보고 의논해 보고 하겠습니다.

2010-07-18 1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0-07-18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 시간에 변하지는 않겠죠.
속:단도 이르겠죠.
추:측컨대 당장은 그대로일지도 몰라요. 그래도
방:향만 제대로 잡는다면
반:드시 옳은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거예요.
대:물림되지 않게, 이 비극을 바로잡도록 함께 노력해요.

글샘 2010-07-18 22:41   좋아요 0 | URL
다들 참 잘 쓰시죠. ^^
맞아요.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대물림되지 않을 텐데요...

세실 2010-07-18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슬픈 내용이네요.

단념하지 마세요. 좋은 날 있을거예요
속단해서 포기하지 마세요. 아직은 좋은 사람도 많답니다.
추방하면 어쩌냐구요? 도와 드릴께요.
방황하지 마세요. 우리는 하나잖아요.
반성할께요. 지금까지 무관심 했음을.
대한민국에 오심을 후회하지 않도록 만들어 드릴께요.

글샘 2010-07-18 22:41   좋아요 0 | URL
정말 관심을 가지는 일이 도와주는 일이 될 겁니다. 관심을 놓지 말아 주세요~~

순오기 2010-07-19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이런 이벤트가 진행됐군요.
좀 생각해보고...우리 애들도 삼남매로 로그인해서 참여하라고 할게요.
심야라 추천만 하고 가요~

글샘 2010-07-19 21:03   좋아요 0 | URL
심하게 심야에 돌아다니시누만요. 에너지가 남으시나? 휴~
날이 덥네요. 오기 누님도 건강히 잘 지내세요~

히카루 2010-07-19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지 그대가 외국에서온 여자라는 이유로
속인 사람들을 대신해서
추모하겠습니다.
방관자의 모습을 보인 저로서는
반성하고 있습니다.
대신 이제라도 당신들에게 친구의 손을 내밀겠습니다.

글샘 2010-07-19 21:04   좋아요 0 | URL
맞아요. 반성하고 손을 내밀어야 하는 거죠. 고맙습니다. 참여해 주셔서...

Sylvia 2010-07-21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 : 단지 남의 나라에 돈벌러 왔다고 사람들은
속 : 속없는 사람 취급을 하지만
추 : '추한 것은 피부색이 아니란다'
방 : 방실 웃는다, 까맣고 곱슬거리는 머리칼을 가진 딸아이가.
반 : 반듯하게 몸가짐을 정리하고 거울앞에 서면 나는 내가 인간임을 안다. 나는,
대 : 대한민국의 이주노동자이다.

으악 한번 도전해봅니다.

가능하다면 저는 1차세계대전사와 권력의 병리학이 탐나요;;

글샘 2010-07-21 15:57   좋아요 0 | URL
나는 내가 인간임을 안다... 슬픈 말이네요. 저 당연한 말이...

탐내시는 일은 다음에 해 주세요. ^^

Sylvia 2010-07-21 16:14   좋아요 0 | URL
앗 그렇군요. 제가 너무 성급했군요 부끄!

전호인 2010-07-23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 아했지요
속 도 꽉 찬 일등 신부라고
추 천하는 이도 많았답니다.
방 긋방긋 웃는 미소까지 겸했기에
반 드시 다 갖춘 신랑이 아니더라도
대 한국민으로 큰 욕심없이
단 정하고
속 은 알찬 가정이루며
추 하지 않고
방 글방글 웃는 모습으로
반 듯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대 단한 꿈이었을까요?

"그림속에 노닐다" 제목이 땡기는걸요.ㅋㅋ

2010-07-25 0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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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일은 방학이라 조금 여유가 있네요.
다음주부터는 보충수업으로 바쁠 예정이라 오늘 한 편 올립니다.
마기님이 '유치환'의 '행복'에서 편지를 좋아라 하셔서, 오늘은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로 썰을 풀어 볼게요. 

또 앞에서 다룬 '깃발'에서 역설법이 나왔으니깐, 오늘은 다음 단계 학습을 해야죠. 

늘 하던대로 소리내서 꼭, 소리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즐거운 편지
                                             황 동 규
  <I>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II>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오늘 시는 여적지의 시와 다르게, 연과 행의 구분이 없죠.
특이하게, 연으로 보이는 앞에다가, 논문에나 붙일 법한 로마자로 1부, 2부 같이 구별해 두었구요. 
이렇게 연과 행의 구별이 없이 자유롭게 쓴 시를 자유시 중에서도 특별히 산문시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정형시는 아주 고급한 시인데요.
귀족들이 자기들만이 즐길 수 있는 엄격한 형식을 정해 두곤, 
평민들이 범접 못할 수준에서 놀았단 걸 보여주는 것들입니다.
영어권의 '소네트', 한자권의 '한시'가 그렇죠.
일어의 '하이쿠'는 그나마 조금 소박한 편이구요.
한국에는 '시조'가 이에 조금 가까운데, 시조창은 노래였기때문에 그걸 정형시라고 부르긴 어렵습니다. 또 숫자가 엄격하지도 않구요. 

이 시의 제목은 '즐거운 편지'입니다. 
영화 '편지'에서도 낭송된 시인데, 시를 읽고나니 분위기가 정말 즐거운가요? 좀 아니죠?
화자는 '그대'와 함께 있지 않습니다. 수능 용어로 '임의 부재'라고 하죠. 쳇, 쉬운말 냅두고... 
속마음은 즐겁지 않은데, 아니 고통스러운데, 제목은 즐겁다고 했으니깐,
표현 방법은 뭐겠어요? 반어법입니다. 영어로 아이러니(irony)라고 하죠. 반어 얘긴 나중에 하고...

근데, 문장이 길어서 좀 이해를 가로막죠?
화자가 의도한 바가 그런 것입니다.
자기 속마음을 바로 들키기는 싫은 거 말예요.
속마음을 덜컥 들키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문장을 잘라서, 내 마음대로 배열해 볼게요.

내 그대를 생각하는 나의 사랑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처럼 보이지만,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울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조금 감이 오시나요?
임과 떨어져 있는 화자는 아직도 임을 그리워합니다.
자기의 사랑은 사소한 일이라고 하죠.
그렇지만 먼~~~~~~~~ 훗날 그대가 고통받는 일을 당할 때까지 당신을 사랑할 만큼 사소한 것이랍니다.
말로는 사소하다고 하고 있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죠? 이것도 반어법이겠죠?
난 널 이~~따~~~~만큼 사랑해! 이런 속마음의 표현.
뭔, 사소한 사랑이 먼 훗날 그대가 고통속을 헤매일 때까지 생각한답니까?
두번 사소했다간 까무라 치겠네~ 

2부는 1부의 부연 설명, 더 늘어놓는 설명에 지나지 않아요.
1부에서 '난 너를 사랑해'하고 주제를 늘어 놓았으니깐,
소나타 형식(제시-발전-재현)처럼 주제를 재현하는 부분이 나와야죠.
주제의 발전부가 나왔다면... 하는 것은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암튼 2부는 주제의 재현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내가 아직도 곁에 없는 임을 사랑하는 것은,
내 마음 속, 당신에 대한 기다림이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곁에 없는 임, 이별한 임, 떠나간 임, 또는 사별한 임일지라도,
나는 당신을 쉽사리 잊을 수 없지요.
그래서 나는 당신을 기다리기로 했던 것입니다. 난 너를 영원히 기다릴거요~ 

그렇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던가요?
나의 기다림도 언젠가는 희미해지고, 연해지고, 약해지고, 결국은 스르르 사라져 버리고 말겠지요.
그렇지만, 그 때까지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소하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정말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당신을 기다리려고 생각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걸, 그것이 나의 사랑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는 중에 눈이 내립니다.(지금은 비가 오네요.)
눈이 내리고 그치고 꽃이 피고 낙엽이 지고...
이렇게 시간은 흐르고 세월이 가고...
내 사랑이 스러지는 날이 올는지 모르지만,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은 영원할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어쩌면... 세상에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부드럽고 상냥한, 사려깊고 임에대한 배려로 가득한 화자의 마음을 표현한 건지도 모르겠어요.
원래, '죽도록 너만 사랑해',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은, 다음날이면, '내가 널 잘못 봤어, 우리 그만 헤어져!'
이렇게 말하기도 쉽다는 세태를 에둘러 표현한 건지도 모르구요. 

나는 당신을 영원히... 변치 않고... 사랑하겠습니다.
이런 뻔뻔하면서도 뭔가 좀 믿을 수 없는 상투적인 멘트보다는, 
이렇게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사람에게 깊이 다가가는 법인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아, 여기부턴 이유가 뭔지 글자가 파랗게 변했습니다. 특강 중이니깐, 분필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주세요.)
이 마음을 쉬운 줄글로 정리하면 이렇게 되겠지요.

나의 사랑은 사소해요.
그리고 나는 당신과 헤어져 있지만, 언제까지나 기다리겠어요.
언젠가, 또 당신을 잊을지도 몰라요. 오랜 시간이 흐르면...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나는 내가 할수 있는 한의 모든 힘을 모아서... 당신을 기다리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에요. 

황동규의 시를 다시 읽어 보시면, 좀 쉽게 키포인트가 들어올 것입니다. 
<사소함> 그리고 <기다림의 자세>가 말이죠. 

비슷한 상황을 표현한 시 중에, 김소월의 <먼 훗날>이 있답니다. 

먼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시면
“무척 그리다 잊었노라” 

그래도 나무라시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잊고 
먼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먼훗날 당신이 나를 찾아오신다는 시츄에이션은, 지금은 임이 내 곁에 없는 거죠.
수능 단골 문제 1번, 이 시들의 공통점은? 임의 부재.ㅋㅋ
당신이 와서 날 나무랍니다. 뻔뻔한 임이군요. ㅎㅎ
그러면,  

당신을 잊었어요. 근데 그냥 쉽게는 아니구요.
무척이나 그리워하다가 잊었어요.
도저히 당신의 부재를 인정할 수가 없어서 잊으려 잊으려 노력했어요.
그러나 사실은... (서럽게 우는 대목입니다 ㅠㅜ)
저는 오늘도 당신을 잊을 수 없고, 어제도 당신을 잊을 수 없었어요.
다만, 먼훗날 그때가 되면... 잊게 될 날이 올까요? (대성 통곡의 분위기죠.)
아, 사랑했던 여인이 이렇게 펑펑 우는 걸 보면, 이런데도 돌아서는 남자는... 죽일 놈이야! ㅋㅋ 

원래 이성에게 '사랑해요, 난 당신밖에 없어요!' 이러고 쫓아가는 스토커 짓을 하면 누구나 멈칫, 합니다.
정철의 '사미인곡' 마지막 부분을 감상해 보겠습니다. 

차라리 죽어가서 호랑나비 되오리다.
꽃나무 가지마다 가는 족족 앉았다가,
향기묻은 날개로 임에게 옮아가리라.
임이야 날인줄 모르셔도 내 임 좇으려 하노라.<사미인곡, 부분> 

스토커죠. 심한 스토커.
이 얘기 전해들은 임은 바로 전번을 바꿔버렸다는... 전설따라 삼천리... 

근데, '속미인곡'에서는 화자가 스토킹을 하지 않아요.
두 선녀가 대화를 하는 구성인데, 

갑녀 : 오, 선녀님, 지상에서 뭐하셔요?
을녀 : 아, 내가 임을 사랑했는데, 좀 오버했더니 헤어졌어요. 다 제 탓이에요.
갑녀 : 그리 생각하진 마세요.
을녀 : 아, 임을 찾으려고 아무리 다녀도 임을 만날 수 없어요.  
         나는 하늘의 지는 달이 되어 임 계신 창 가에 번듯이 비치고 싶어요.
갑녀 : 각시님, (정신차려 이 지지배야.) 지금 달이 돼서 임 비추게 생겼어요? 그 처지에. 차라리 궂은 비나 되세요. 

자, 이렇게 두 여인의 대화 속에 나타난 을녀의 이야기를 지나가던 구준표가 기둥 뒤에서 들었다면,
아, 을녀의 간절한 사랑에 심장이 돌아설 수밖에 없는 드라마가 되는 거죠.  
갑녀의 저 표독함은 뭐, 정상적인 수준이잖아요.
사랑에 울고있는 바보같은 친구에게, 야, 미친년이 제대로 미쳤네., 정신차려!!! 이러고요.
그런 친구 덕택에 을녀는 더욱 청순가련순정미인의 성공 전략을 가지게 되는 구도네요. ^^

아, 사랑이란 게 그런 구석이 있는 모양이네요.
뜨겁게 뜨겁게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조금 에둘러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더 심금을 울린다는... 

앞에서 반어법 이야기가 잠깐 나왔죠?
보통 학생들에게 반어법은 어디서 배웠냐고 물으면, 김소월의 <진달래 꽃>이라고 얘기합니다.  

진달래 꽃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그리우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 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캬, 명작이죠.
반어법이란, 반대로 말하기인데요.
현실에서도 지각생더러, '참 일찍도 왔구나. 내일도 이 시간에 오세요~' 이렇게 말하면, '죄송합니다.'해야 되죠. ^^
소설에서도 '바보!'이러고 소녀가 달아나면, 속마음은 '나 너한테 관심있어~' 이런 거구요. 

'화자의 속마음을 겉으로 표현할 때는 반대로 드러내는 상황'을 반어법이라고 말합니다. 

진달래 꽃에서는 이별의 상황인데...
제가 아는 어느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사랑하는 사람하고 헤어졌는데 어느 미친 넘이 진달래 꽃을 뿌리냐구요.
아니, 이별하고 꽃 뿌리는 풍속 봤답니까? 굵은 소금을 뿌린다면 몰라도...
이별-꽃뿌리기를 연결지어보면...
임과 사별한 상황인 게죠.
임이 세상을 버린 거예요.
그런데, 그게 다 내 탓인 거 같잖아요.
왜.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뜨면,
사람은 이성적으로 판단력이 흐려지면서, 모든 잘못이 자기에게 투사됩니다. 내탓이야~ 이러고. 

그래서 사별한 임더러 이렇게 혼자서 말하죠. 

나보기가 싫어서 갔구나~ ㅠㅜ 그래 펑펑 안 울고 말없이 보내줄게요.
당신이 좋다던 진달래 꽃 한 아름 따다가 당신 마지막 가는 길에 보내줄게요.
당신 마지막 가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부디 잘 가요.
나 보기가 싫어서 갔지만, 나는 눈물을 꼭 참고 잘 살게요.
잘 가요. 내 사랑~~~ ㅠㅜ 지못미~~~

소복입은 여인의 이런 발언이라면 이해가 되지 않을까요?
이 시의 주제를 한자 성어로 배웠을 텐데요... 기억 나시나요?
현실의 화자의 마음은 슬플 애 哀 그러나 而 
그치만 화자의 의지는 아니 불 不 슬퍼할 비 悲
애이불비, 말로 만들어 보면, 슬프지만 슬퍼하지 않겠어! 이런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겠죠.
속마음은? 슬퍼요.
그러나 의지는? 슬퍼하지 않을래요.
그래요. 그러니깐, 슬퍼도 슬퍼하지 말자구요. 애이불비. 이런 것이 반어법이랍니다. 

god의 옛날 노래 중에 '거짓말'이란 노래가 있었어요. 

잘가~    (가지 마)
행복해~ (떠나지 마)
나를 잊어줘 잊고 살아가 줘 (나를 잊지마)
나는 괜찮아 아무 걱정 말고 떠나가 (제발 가지마~~~~~) 

이런 게 반어법이에요.
앞부분은 겉으로 표현된 언어구요. 뒷부분은 속마음이겠지요.
세상엔 이렇게 속마음을 다 표현하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겉으론 엄청 멋집니다. 뽀대나죠. 

잘가~ 행복하게 살아야 돼.
나를 잊고 잘 살아. 난 괜찮으니깐, 아무 걱정 마~ 

그치만, 속마음은, 진심은 얼마나 엉엉 울고 있는지요.
근데, 이런 반어를, 아이러니를 god는 왜 '거짓말'이라고 했을까요?
주제는 애이불비인데 말이죠. ^^
그건, god 팬들이 초딩 정도 수준이라 그런 거 아닌가 합니다. ^^
신승훈은 여성팬들에게 대놓고 '애이불비'란 노랠 들이대잖아요. ㅎㅎㅎ 

오늘 강의는 주로 '애이불비'의 강한 의지를 드러낸 시들로 메워졌네요.
복습! 

황동규, 이사람 황순원 아들이에요. 이런 여담도 재밌잖아요. 왜.
박목월이랑 친했던 황순원이 '야, 우리 아이를 낳으면 이름을 동규라고 짓자.' 이랬대요.
그래서 소설가 황순원 아들은 시인 황동규가 되고,
          시인 박목월 아들은 소설가? 겸 교수? 겸 문화평론가? 박동규 (3류지만)가 되었대요.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는 헤어진 임을 기다리는 자세의 표출을...
김소월의 <먼 훗날>은 아직도 잊지 못한 당신에 대한 사랑을...
또 그이의 <진달래 꽃>도 이별한 임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었지요. 

아, 세상에 아름다운 시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지만, 우리 사는 매일의 현실은 또 얼마나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지.',
김수영 시인이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그랬듯이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이렇게 자조적으로 변하는 날도 있게 되지만요.
또, 우리가 숨쉬고 사는 일 자체가 말 그대로 <기적>임을 생각한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
그리 실망하면서 살아갈 것만은 또 아니라는 생각도 드네요. 

살면서 힘든 일을 겪을 때에는, 저렇게 힘겨운 일들을 반어법을 통하여 극복했던 사람들의  
기다림의 자세를 읽는 것도, 하나의 통과 방법이 되지 않을까...  

올바른 삶, 바람직한 삶을 생각하면서,
이름 그 자체가 올바른 삶이었던 그분 영상을 하나 올립니다.

오늘도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다들 행복한 오후 마음 속으로 가득 누리세요.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내가 숨쉬는 <기적>을 행하고 있다는 걸 까먹기 때문이래요.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 했습니다.(금강경에 나오는 말이에요.)
응당 끄달리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 

세상에 휘둘리며 살지 말구요. 내가 숨쉬는 기적을, 배가 고파지는 이 사랑스런 <내>가 있다는 기적을 지금 한번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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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16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에는 꼭 눈물을 빼시누만요~ㅠㅠ

글샘 2010-07-16 15:08   좋아요 0 | URL
어디가 눈물을 빼요? 완전 울보시네~~~ 얼레꼴레리~~~ 해야겠다. ㅎㅎㅎ

양철나무꾼 2010-07-17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크롤의 압박이 잊혀질만큼 감동적입니다.
'혜가단비'가 생각나는 글이네요~
아니다,어린 장금이도 생각나구요~^^

글샘 2010-07-17 05:37   좋아요 0 | URL
불교공부하세요? 혜가단비...처럼 어려운 말을 쓰시고... 오즈..에서 찾으셨나?ㅋㅋ
손 줘 보세요~ 손 아래서 갑자가 파초가 자라나 보게...
지나친 칭찬은... 감사합니다. ^^(이 말 원본은 지나친 음주는... 감사합니다, 술집 주인)

양철나무꾼 2010-07-17 13:40   좋아요 0 | URL
전 LG의 자판 체계에 익숙하지 않아서리~^^

삼장법사가 나오는 손오공 얘기를 해야겠지만,
지금 제 마음은 두보의 '빈교행'의 심정이라고 해야 할까요?

글샘 2010-07-17 22:45   좋아요 0 | URL
빈교행이 어때서요? 저랑 오래 사귀고 싶으시단 말씀???
양철나무꾼님도 시 좀 써 보세요~~ 따로 특강해 드릴게... ㅎㅎㅎ

세실 2010-07-17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해 정말 대단해.....
황동규가 황순원의 아들이었군요.
즐거운 편지도 참 좋아했던 시예요.
님 덕분에 잊혀졌던 추억이 하나 둘 떠올라요.

글샘 2010-07-17 18:29   좋아요 0 | URL
정말 괜찮나요? 대단해... 하니깐, 어떤 느낌인지... ^^
추억이 많으신 세실님?

pjy 2010-07-18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 사소했다간 까무라 치겠네~ ㅋㅋㅋ 완죤 동감이예요~ 참 사소해서 스토커 분위기 난다..이러구 있었거든요~
아주 쏙쏙 들어오는 멋진 강의예요~~

글샘 2010-07-26 11:58   좋아요 0 | URL
쏙쏙 들어가야 할 건, 수업시간에 듣는 애들인데... ㅠㅜ 노땅학생들이 훨 착합니다. ㅎㅎ
 

이제까지 세실 님과 마기 님을 위한 특강이라곤 했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깐, 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주제를 조금 바꿔서 가죠.  

마기 님이 제 특강에 맞춰서 시를 한 편씩 지어 보시겠다고 하셔서,
마기 님의 시창작의 열정에 불을 지피기 위해서 억지로나마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 

오늘은 오세영의 <모순의 흙>입니다. 일단 한 번 읽으세요. 소리 내서~
(세실님, 소리 안 내시네~ ㅋㅋ)

모순의 흙
                                                          오 세 영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그릇
언제인가 접시는
깨진다.

생애의 영광을 잔치하는
순간에
바싹 깨지는 그릇
인간은 한 번
죽는다.

물로 반죽하고 불에 그슬려서
비로소 살아있는 흙
누구나 인간은 한 번쯤 물에 젖고
불에 탄다.

하나의 접시가 되리라
깨어져서 완성되는
저 절대의 파멸이 있다면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모순의 흙, 그릇. 



 

우선 제목부터 볼게요. 
<모순의 흙>
모순의 뜻은 '하나가 성립하면 다른 하나가 절대로 성립할 수 없음'을 말하는 용어입니다.
초나라에서 창과 방패 파는 사람이 이 창은 어떤 방패도 뚫고, 이 방패는 어떤 창도 막는다고 너스레를 떤 데서 나온 용어죠.
시의 맨 끝에서 그릇을 모순의 흙이라고 했습니다. 

그릇은 그릇이죠.
그런데, 그릇을 '모순의 흙'이라고 했으니까, 표현법은 A는 B다. 무슨법? 네. 은유법입니다.
은유의 기본이 지난 시간에 뭐라고 했죠? 유사성을 찾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릇 속에서 모순의 흙과의 유사성을 찾아야 합니다. 그걸 찾는 과정이 바로 시의 내용이죠. 

1연에서는 '흙으로 빚어진 그릇'은 '흙이 되기 위하여' 빚어졌다고 했습니다.
순서를 바꾸니깐 순환이 보이시죠?
흙이란 재료로 만든 그릇,
다시 깨어져서 흙으로 돌아간다. 순환이죠.
인간으로 치면, 윤회거나... 

그 접시가 깨지는 건, 죽음일 겁니다.
근데, 2연에서, 그 죽음은 '생애의 영광을 잔치하는 순간'에 일어난다고 했어요.
그러니깐, 그릇을 가만히 처박아 두면 안 깨지는 것처럼,
가만히 처박혀 살다 죽는 죽음을 두고 이야기하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삶을 정말 열심히, 치열하게 살다가,
생애의 영광을 잔치할 나이가 되면, 월계관을 쓰고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을 나이쯤, 접시가 깨지는 사건이 발생하죠. 

3연.
흙을 물로 반죽하고 불에 그슬리는 과정은,
인간의 성장과 성숙에 해당하겠죠.
어려서 귀여운 아이들은 성장하는 것만으로도 사랑스럽지만,
사춘기 정도 되면 영혼의 성숙이 함께해야 올바른 삶이 될 테니까요.
시련을 겪고 성장하는 인간의 영혼. 불에 그슬리는 것처럼 힘든 일은 많으니까 말입니다.
통속적으로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깨어져서 완성되는 파멸이 있다면, 접시가 되고 싶다.
죽음에 대한 화자의 마음 자세가 드러나 있습니다.
접시는 구석에 처박혀 먼지쌓여갈 수도 있지만,
자신은 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완성을 향하여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견지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죠. 

이것이 주제 아닐까요?
치열한 삶을 견지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 

마지막 연은 수미상응이죠.
죽음으로써 삶의 치열함을 드러내는 모순. 

이제 이 시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기 위해서 다른 개념을 하나 가져오겠습니다.
과연 <삶>과 <죽음>은 어떤 관계인가를 생각해보기 위한 것입니다.  

반의어라는 게 있습니다. 반댓말이라고도 하죠.
반의어는 '다른 요소들은 다 같은데, 하나가 다른 말'들 일컫습니다.
스피드 퀴즈할 때 잘 쓰잖아요.
남자 말고?
추운거 반대는?
육군,해군 말고?
끝의 반대는?
마기님, 피아노 말고? 

답은... 여자, 더운거, 공군, 처음이나 시작, 마기님은 바욜린이라 하셨나요? ㅎㅎ 

반의관계 1. 상보적 반의관계
     남자-여자, 남성-여성, 이렇게 이것 아니면 저것인 경우, 즉 모순 관계인 경우.
     하나에 속하면 다른 하나에 속할 수 없는 것을 이렇게 부릅니다.
     보통 삶-죽음도 여기 넣어서 설명하죠. 

반의관계 2. 정도 반의관계
     덥다-춥다 사이에는 쬐끔 춥다, 엄청 덥다... 척도를 매길 수 있잖아요.
반의관계 3. 뱡향 반의관계
     앞-뒤, 밑바닥 -꼭대기... 이런 거
반의관계 4. 상대적 반의관계 
     옛날엔 육군만 있다가, 해군이 생기면 육군 반대는 해군, 지금은 공군까지 있구요, 나중엔 우주군도 나올지도...
     마기님께 피아노 말고? 하고 물으시면 요즘 바욜린을 배우시려하니깐 다른 악기보다는 바욜린이 생각나실 수도 있단 거구요. 

적어논 걸 보니깐, 반의관계 1.을 설명하려는 거 같죠? ^^
저는 삶-죽음을 과연 남-녀처럼 모순관계로 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인간은 남자 또는 여자 라는 분류로 나눌 수 있는데요.
과연 세상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으로 나누어 지는가요?
삶과 죽음이 모순관계라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세상에 반반씩 있어야 한다는 말이죠. 
아니면 <살아있을 때>와 <죽어있을 때>가 있든지...

삶과 죽음의 관계는
촛불과 어둠의 관계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새 초를 하나 밝혀 두면, 차츰 초가 타들어 가구요. 밑바닥에 촛농이 흥건히 고일 때쯤,
어느 한 순간,
심지가 파르르 떨다가 피시식~~ 소리를 내면서
매캐한 냄새와 함께 촛불은 사라지는 거잖아요. 

그 관계는 삶이란 것은 죽음과 병치될 수 없는 모순 관계가 아니고, 
어쩌면 삶이란 것이 조금씩 호흡하면서 감소하는 지점이고, 그 호흡이 마칠 지점에서
드디어 등장하는 것이 <죽음>이란 하나의 사건일 뿐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어떤 유명한 분의 에스프리 한 구절을 인용해 보죠. 

시작과 끝은 어딘가에 맞닿아 있지만
그들의 접점은 없다.
단지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다가가고 있을 뿐이지. 

죽음이란 것이
삶의 끝에서 갑자기 맞닿는,
그렇지만 그 접점을 규정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삶은?
삶은 뫼비우스의 띠입니다.
시지프의 바윗돌처럼 날마다 밀어 올려지고,  
다음날 아침이면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밑바닥부터 또 밀어 올려야 하는 것.
그렇지만, 무덤에 가는 그날까지, '어영부영 하다가 그리될 줄 아는 뻔한 것'이 삶이죠.
돌아도 돌아도  자기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운 뫼비우스의 띠.
자기 위치를 파악하는 순간은 단 한 순간.
뫼비우스의 띠가 절단되는,
그릇이 <바싹 깨지는> 그 순간이 아닐는지... 



오세영이 삶과 죽음에 대한 사고에 집착하면서 남긴 글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모순의 흙>이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그의 <시월>을 더 좋아합니다.

무언가 잃어 간다는 것은
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돌아보면 문득
나 홀로 남아 있다.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낮
화상 입은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팠던가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이 지상에는
외로운 목숨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낙과(落果)여,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번의 만남인 것을,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 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10월>

인생의 시월에 다가선 사람의 통찰력.
캘린더에 비유된, 시월쯤의 지점에 선 시선의 아름다움.
아홉 장쯤은 이미 떼어내어져 버렸고,
고작, 두 장의 앞날만 달고 있는 달력의 쓸쓸함.
그리고 그만큼 살아 내었다는 자부심.
시월쯤의 시선은 얼마정도 너그럽고, 그리고 자신을 잃어가는 연습을 해야함을 아는
지혜를 가진 시선일 것이라고 그는 되뇝니다. 

오세영은 다른 시 <그릇>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깨어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그릇>

그릇이 깨어지는 일은 이적지 하나의 원형질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던 개체가,
깨어지면서 세상에 생채기를 줄 수 있는 존재로 전락함을 슬퍼한 시인데,
그래서 나는 오세영의 그릇론,에서 보이는 죽음에 대한 통찰보다는,
그의 시월에서 보이는 삶에 대한 관조와 의미 탐색 쪽이 더 마음이 가는 편입니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같은 당연한 명제는 열심히 살도록 재우치는 느낌을 주지 않지만,
<모순의 흙, 그릇>이라고 말하면, 아, 열심히 사랑하고 치열하게 살아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거 같네요.  

마기 님, 오늘은 시를 덧붙이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이렇게 숙제 면제시켜주는 날도 있어야죠.
면제 사유는... 조 위에 한편 쓰셨으니깐 말이죠. ㅎㅎ
뭐, 좋은 글이 생각나시면 붙여 주시면 더 좋겠구요. 

이 글 읽으시는 모든 분, 장마철의 눅눅함을 치열함으로 바삭하게 만드는 오후가 되시길... 

8월의 크리스마스,란 영화가 생각나네요.
인생의 8월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아버린 한석규와 심은하가 아름다웠던...
아직 7월쯤의 나이지만,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을 상상하면서 동영상도 한 편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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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14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겠어요.
가슴 한구석이 멍~해지는 느낌이라...

글샘 2010-07-14 14:48   좋아요 0 | URL
제 그럴 줄 알고, ㅋㅋ
면제의 상품을 주지 않았습니까? ㅎㅎㅎ

세실 2010-07-14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마이크 테스팅...
님 강의를 읽고 있노라니 마치 EBS 선생님 느낌나요. 호호호~~
이제 조금씩 시를 알듯도 합니다. 님 덕분에.
10월 시...왠지 서글퍼요. 조금씩 유사해 지는거 같아.
김동규님의 좋아하는 음악^*^
뜨거운 7월에 들어도 감미로운걸요.

글샘 2010-07-14 17:41   좋아요 0 | URL
시를 알게 되시면 제게도 좀 알려 주세요. ^^
김동규 노래 참 좋죠. ^^
저는 빨리 10월이 오면 좋겠어요... ㅠㅜ 빨리 수능이 끝나야 해!!!(올해는 우라질 무슨 회의 탓으로 수능이 1주일 미뤄졌다는 사상 초유의 비극이...)

비로그인 2010-07-14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치하지만...삶과 죽음을 소재로 한 시를 읽다보니...
머리속에 인생의 파노라마가 쭈욱 그려집니다.
그냥 물 흘러가듯 내맡기는 삶은 삶이 아니므로...
유치하게나마 삶의 의지를 굳건히 다지는 내용으로다가...
읊어봅니다.


징검다리


징검다리
하나
자, 손을 잡아라.
발걸음 하나 뗀 것이 시작이야.
바람도 살랑거리고
햇볕도 따스하네.
그렇게 모두들 첫걸음을 축복해주고 있구나.

징검다리
두울
강 건너는 볼 필요 없단다.
하나 하나 올라서는 니 발을 봐.
단단하게 다물은 돌도
그 사이의 물결도
그렇게 모두들 너의 꿈을 속삭이네.

징검다리
세엣
뒤돌아 보지 말아라.
어디가 더 가까운가는 중요하지 않아.
돌아서기엔 아까운 꿈이고
계속가기엔 부친 힘이어도
그렇게 모두들 모험을 하는거지.

징검다리
네엣
자, 이젠 고개를 들어 건너편을 봐.
물이 불어 디뎌야 할 돌이 보이지 않을 땐
있는 힘껏 다리에 힘을 주고,
물살에서 눈을 떼고 저기 가야할 곳을 봐.
그렇게 모두들 중심을 잡는거란다.

징검다리
마지막
거의 다다른 것 같구나.
하지만 뭍에 오르기 전에는 마음을 내려놓지 말아라.
결과가 자만을 앞서도록
의욕이 걱정을 꺾도록
그렇게 모두들 다지기를 굳건히 하지.

햐~
드디어 건넜구나.
니가 해낸거야.


글샘 2010-07-14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 좋아요.
결과가 자만을 앞서도록
의욕이 걱정을 꺾도록... 좋은데요. ^^

정말 수제자란 이름이 아깝지 않네요. ㅎㅎㅎ
죽음보다는 삶의 징검다리에 초점을 맞추셨네요.
갈수록 특강을 대충하기 어려워지겠는데요. 세실님도 ebs 운운하시고...

특강하고나서 즐찾 인원이 갑자기 늘고 있답니다.
사람들이 이런 거 좋아하나봐요. ^^

마기님도 좋은 시 많이 구상해 두세요.
ㅎㅎㅎ
특강할 소재는 깔리고 깔렸으니까는...

마녀고양이 2010-07-14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개해주신 시가 참 좋네요....... 가슴에 닿는 시들이예요.

글샘 2010-07-14 22:04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좋으시다니 저도 좋네요.

양철나무꾼 2010-07-16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갑자기 는 즐찾 중 한명이 접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저는 특강 페이퍼 하나를 올리시기 위해,
시를 고르고,
글들을 매만져 정리하고,
사진을 고르고,
음악을 준비하느라...
종종거리셨을 님을 엿볼 수 있어서 숙연해 지기까지 한 걸요~^^
제자의 답시도 훌륭하구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글샘 2010-07-16 14:22   좋아요 0 | URL
저를 엿보셨다구요? 그거 스토킹인데...
님의 생각처럼은 별로 고민 안하고 쓰는 거예요.
맨날 수업시간에 떠드는 거 글로 정리한 건데요, 뭐~
사진은 특강 쓰고 나서 포인트를 주고 싶은 단어로 검색해서 하나 넣는 거구요.
제자의 답시는 멋지죠. ^^
나무꾼님도 제자로 받아드릴게요. 시 쓰시죠. ㅎㅎㅎ

양철나무꾼 2010-07-17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같은 분을 제가 고3때만 만났어도,
제 전공이 문과로 바뀔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전 시라면 시댁,시어머니,시누이,시금치의 연장선에서 두드러기가 나서요~헤헤.
(아,근데 우리 시부모님들은 괜찮은데...걍,일반적으로 그렇다구요.)

글샘 2010-07-17 05:39   좋아요 0 | URL
그것도 시네요... ㅎㅎㅎ
이과생도 시는 감상할 자유가 있지 않나요?
아, 이럼 계속 써야 되는데... 스크롤의 압박을 참아주셔서 쌩유~~
 

 

<유치환, 행복> 

사랑하는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ㅎㅎ 오늘의 시는 <유치환>의 '행복'입니다.  

세실님의 생일 축하 특강을 했더니,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은 영 관심이 없는데, 
하긴 시 같은 데 누가 관심을 갖겠어요, 먹고 사는데만 관심둔 돼지같은 사람들이 지배한 세상에서.
마기님께서 상설 특강을 개설하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셔서, 오늘은 특별 한정판으로 한 편. 

상설 개설은 어렵다구요, 마기님~~ 

시를 보는 방식은 여러 가지인데요.
크게 1) 시 바깥쪽에 관심을 가지고 보는 방식(외적 관점)과,
       2) 시 안쪽에 관심을 가지고 보는 방식(내적 관점)
으로 보구요. 

다시 1)은 작가의 표현적 측면(작가론적)과 
              작품의 시대적,배경적 측면(반영론적)과
              작품을 수용하는 독자적 측면(효용론 내지 수용론)
으로 보구요. 
       2)는 작품의 내부 장치, 그러니깐, 시어들의 유기적 관계, 또 운율이나 시어의 반복, 표현상의 특징 등에 대한 거죠

시대에 따라서 고전시대에는 작가의 경향성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구요.
미소 냉전 시대에는 미의 신비평(내적 관점) 쪽의 경향과 소의 반영론적 관점이 주류였기도 했지만, 반드시 그랬던 건 아니기도 합니다.  

암튼, 소비자의 '돈'이 왕이 되어버린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관점은 역시 '수용론' 내지 '효용론'적 입장이겠죠.
노래를 잘 하는 가수보다는 복근이 멋진 비주얼 가수가 '효용'이 있어서 '수용'되니 말입니다. ^^ 

유치환의 이 시는 우선 내적 관점에서 읽어 볼게요. 

내적 관점이라 하면, 우리 고딩때 수업받듯이, 부분 부분을 읽고 분석하는 거라 보시면 되죠. 

오늘도 시를 한번 쫙~ 첨부터 끝까지 읽어 보고 시작합시다. 

자, 이 시를 다 읽고 났다면 가장 큰 특징을 볼게요.
우선 처음과 끝부분에 반복되는 표현이 나오죠? 
물론 똑같지 않지만, 이런 걸 수미상관 내지 수미쌍관 등으로 불렀던 거 아시죠?
똑같은 말을 두 번이나 했다면 왜 그렇겠어요. 
시라는 게 '압축된 언어로 함축적 표현'을 해야하는 건데 말이죠.

처음의 말은 '화두를 툭 던지기'고,
사이에서 화제에 대한 자기 생각을 전개하고,
마지막 말은 '화두의 이미지를 모으기'의 기능을 해요. 

여기서도 그렇습니다.
처음에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다고 했구요.
마지막에서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다고 했지요. 

어때요.
처음엔 일반론적으로 '나는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 생각한다'...고 하고,
끝에선 화자의 입장에서 '나는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행복했다'는 경험을 토로하죠.
그 사이에선 당연히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를 외쳤을 거죠.
안 봐도 비디오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 표현은 어떤 면에선 '역설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역설'이란 논리적으로 '한 문장에 서로 다른 주장을 드러내고 있을 때'라고 하는데요.
보통 '주고싶은 마음'과 '받고싶은 마음'을 비교하면 받고싶은 마음이 큰 것이 인간의 '욕심 慾'이죠.
근데, 그것보다 '주는 일'이 더 행복하다...고 거꾸로 표현하고 있거든요. 가벼운 역설이죠.
'소리없는 아우성'에서는 '소리낼 수 없는 상황'과 '가슴 속 갈등의 외침'이 공존하는 무거운 역설이구요.
그 역설이 모순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자의 가슴에 굵은 각인을 남기는 셈이군요.

그리고 이 시의 시어 중, 화자의 심정을 직접 드러내고 있는 시어를 하나만 찾으라면 어떨까요?
저는 '애틋하다'를 찾겠습니다.
애틋하다의 사전상 의미는 '섭섭하고 안타까워 애가 타는 듯하다. 정답고 알뜰한 맛이 있다.' 이런 뜻이 있네요.
편지를 보내야만 하는 상대니까,
상대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죠.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
그래서 안타깝고 애가 타고, 그러나 그이에 대한 감정은 정답고 알뜰한 감정이 넘치구요. 

작품 내부 구조를 하나만 더 보죠.(끝도 없이 분석할 수 있지만, 휴~~ 오늘은 요기까지.)
이 시는 각 연이 5행으로 가지런하죠.
각 문장의 길이도 거의 일정하구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때에는 양아치처럼 입고 가지 않잖아요. 단정하게 하고 가죠.
그런데도 뭔가 미심쩍어서 쇼윈도에 자꾸 자신을 비춰보며 가곤 하잖아요.
화자의 마음 속 사랑이 그런 단정한 걸 원하는 내용의 투영일 수도 있겠네요.  
어, 4,5연은 일정하지 않다구요?
그럼 화자의 마음 속 가지런하고 편안하던 감정이 삐끗, 한거겠죠.
마음속 '소리없는 아우성'을 겉으로 드러낸 거죠.

그럼, 이제 작품 외적 분석으로 가 볼까요. 

이 시의 작가는 어제 세실님을 위한 특강에서 다룬 '깃발'의 작가죠.
'깃발'이 도달할 수 없는 노스탤지어의 사랑을 향한 갈망과 좌절의 개인사를 표출한 서정시라면,
'행복'은 현재 부재한 상황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 표현의 개인적 정리를 표현한 서정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걸 문제집에선 "주제"라고 하죠. ^^

사랑하는 사람은 옆에 없죠. 그래서 화자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편지를 씁니다.
얼마나 사랑하는 마음이냐면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데, 그 에메랄드 빛 하늘까지도 그대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이쁜 마음이 보이는 거 같아요. 

그리고 우리의 사랑, 우리의 연분(인연)은
'한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이다...도 아니고, 인지도 모른다.고 썼네요. 

위에 올린 사진이 꽃양귀비라는 꽃인데요. 얼마나 이쁜가요.
내 사랑은 이렇게 사랑에 불타는 열정적인 것이다... 이런 표현이겠죠.
진홍빛 양귀비꽃을 모른다면 '한방을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의 간절함 이해가 떨어질까봐 사진을 붙였어요. 

'설령 이것이 이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 지라도'...
연애편지 치곤 좀 멘트가 살벌하죠.
그런 걸로 보면, 아직 화자와 편지를 받을 '그대'는 '함께 할 사랑'에 대한 신념이 없을 수도 있겠네요.
'깃발'의 화자가 혼자서 마음 정리를 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편지를 쓴 거 같지 않나요? 

'편지를 쓰는 행동'과 '편지를 받는 행동' 가운데 화자는 '편지를 쓰는 행동'을 하면서,
'사랑받는 수동적 삶'보다 '사랑하는 능동적 삶'이 더 행복하다고 쓰는데요.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면서 어떤 글을 쓸지 내용을 구상하는 시간,
그리고 천천히 또박또박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시간,
다 쓰고 제대로 자기 마음이 표현되었는지 다시 읽어 보고 혼자 빙그레 웃는 시간, 

편지를 부치고 나서도
그이가 받아 보았을까?
얼마나 반기실까?
혹시 못마땅해 하지나 않으실까?
내가 실수로 잘못 적은 말이나 없나?
내 글을 읽으시고 답장을 쓰신 걸까?
만일 쓰셨다면 답장은 언제나 올까?
이런 생각들로 그이를 향한 마음씀씀이가 지속될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러니, 화자는 편지를 받는 일보다 쓰는 일이 행복하였고,
마찬가지로 사랑을 받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이 행복하다고 강조한 것이죠. 

그렇지만 화자의 마음 속 어딘가에 분명히 결핍이 느껴집니다.
그래. 나는 편지를 쓰면서, 사랑을 주면서 행복한거야! 거야! 거야! 하고 아무리 외쳐봐도,
왠지 쓸쓸해 보여요.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 지라도... 

저는 이 두 행이 떨어져 있는 거리만큼 화자의 가슴저림이 느껴져요.
뭐 누구나 다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는 거죠. 이런 게 '애틋함'의 정체일 거예요.

시인의 시를 읽을 때는 한 편의 시를 읽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여러 편의 시, '깃발'과 '행복'을 엮어 읽는 편도 좋을 거라는 생각에서,
오늘은 유치환의 시 두 편을 작가의 측면에서 몇 가지 살펴봤습니다.  

허만하 시인이 청마에게 물었다는 얘기를 기억한다.
"선생님, 시인이 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하셨겠습니까?"
청마가 서슴없이 대답했다.
"아마 천문학자가 되었을끼라." '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으로 별들이 쏟아진다.
별들에는 소인이 찍혀있다. 당신에게 배달되는 오늘의 별을 뜯어보시라.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은 누군가를 기다릴 수 있어서 행복하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다. <김선우의 감상 중에서...>
http://myhome.mijumunhak.com/kimheejooh/index.php?docu=view&gmcode=13&gscode=34&id=data1&no=32&page=2&sc=on&sn=off&ss=on 

자, 다음 특강은...
청중의 반응을 보고, 그때 결정할게요. 

이 강의를 읽으신 분들, 모두 행복하고 바삭한(하도 비가오니깐) 일요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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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11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유치환의 이 시를 얼마나 좋으하는지 이미 아셨던거?
이 편지를 받는 사람은 유치환님이 정말 사랑했던 사람이었다네요.
죽을 때까지.
그래서 유부남이었던 유치환님과 그 여인의 러브스토리는 이렇게 애틋하고 안타까울 수 밖에 없었던거고.
이렇게 오고갔던 편지와 시들을 그 여인이 모두 간직했다가 발표한 거라고 하니...ㅠㅠ

글샘님...
마음에 콱콱 박히는 강의였습니다.
글샘님의 강의를 꼭 글샘님 앞에서 듣고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예요.
아~~비오는 쓸쓸한 일요일이...행복으로 가득찬 일요일이 되었습니다.
감사^^

글샘 2010-07-11 12:17   좋아요 0 | URL
어느 글에선가 유치환이 고백하기를, "나의 생애에 있어서 이 애정의 대상이 몇 번 바뀌었습니다. 이 같은 절도 없는 애정의 방황은 나의 커다란 허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고 스스로 반성하기도 하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연모의 대상이 이영도이다. 시조시인 이호우의 동생이기도 한 이영도는 남편과 사별한 채 딸 하나를 기르는 아름다운 30대 초반이었다.

아마 청마 유치환도 요즘이라면 절대 반성 안할거예요. ^^
사랑은 움직이는 거니까요.

행복한 일요일이 되셨다니... 성공이네요. ㅎㅎ

세실 2010-07-11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 시에 양귀비꽃이 나오는거 생소해요. 건성으로 읽었나 봅니다.
양귀비 참 예쁘죠. 정열적인 사랑이 느껴져서 좋아요. 어쩜 저리도 붉은 빛일수 있는지....
이영도에게 보낸 편지가 500통이라고 들었어요.
아 나도 만날때 마다 원고지 20장에서 50장까지 편지 써서 주던 남자 있었는데...문득 보고싶어 지네요.
그래두 나만 사랑하는거 보다는 서로 똑같이, 아니 남자가 더 날 사랑해주는게 좋을듯.
나만 사랑하면 애틋하고, 슬프잖아요.
글샘님 강의 참 좋아요. 어쩜 이리 서정적이고 섬세한지.
글샘님 연애대장 같아요. =3=3=3=

글샘 2010-07-11 18:16   좋아요 0 | URL
ㅎㅎ 연애대장... 이론상 대장이죠. ㅍㅎㅎ
양귀비꽃의 이미지가 이 시의 핵심 이미지인 것 같아요.
시 읽을 때 시각적 이미지는 엄청 강한 효과를 보여주는데, 사람들은 편지에 가려져서 양귀비꽃을 놓치기 쉽지만요.
경기도 파준가에 저 꽃 피는 계절이 있다는데요, 내년쯤엔 꼭 가보려구요. 저도 저꽃 좋아요. 아마폴라...
그 남자, 엄청나군요. 원고지 50장... 애틋한게, 사랑의 정수 아닐까요? ㅋㅋ

양철나무꾼 2010-07-13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글샘님.

마기님 블로그 트랙백해서 왔습니다.
종종 알라딘 서재 대문에서 봤었는데...
이렇게 뵈니 느낌이 또 다른 걸요~
시 특강도 완전 죽음이구요.

상설은 아니더라도 계속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추천 꾸욱~댓글 남기고 갑니다.^^

글샘 2010-07-13 10: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느낌이 어떠세요. ㅎㅎㅎ
죽음이라니 감사합니다.
아, 한 분씩... 늘어서... 이거 시작을 잘못했나... 후회 중입니다. ^^
저도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