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루 종일 흐리네요. 

알라딘에서 마기 님이란 제자를 만나서 팔자에도 없는 시 특강을 하고는 있는데요.^^
아, 마기 님 시가 일취월장, 날로날로 진보하고 있는 모습이 보여서, 특강하기가 오히려 두렵습니다. ㅎㅎㅎ
저의 일방적인 칭찬은 아닐 것입니다.  
수강생들이 한결같이 칭찬을 하니깐 말이지요.
지난 시간의 '바람에게 배웠다'란 시는 뜻밖의 놀라운 수확이었습니다.
그 전에 마기 님께서 '노래'라는 놀라운 시를 썼을 때, 제가 '당분간 이 시를 뛰어넘는 시를 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마기 님을 놀렸는데, 아, 정말 괄목상대할 만한 분입니다. 

마기 님, 나중에 유명해 지시더라도 저 잊으심 안 됩니다. ^^  

마기 님의 '바람에게 배웠다' 같은 시를 <관조적인 시>라고 합니다.
관조적이다.
음, 뭔가 좀 있어 보이죠?
무게가 있는 말 아닌가요? 관조적...
한자로 볼 관 觀, 비출 조 照 를 써서 관조,란 말을 씁니다.
우리말로 풀면, "뭔가를 골똘히 보아서 생기는 마음 속에 비치는 생각"을 뜻하는 말입니다. 

마기 님이 골똘히 바라본 것이 무얼까요?
제가 보기엔 마기 님의 삶이에요.
스스로 자신의 삶을 골똘히 살펴보신 거죠. 그러다 보니깐, 마음 속에 슬쩍 생각이 비쳤을 겁니다.
그걸 잡아서 쓰는 걸, 관조적이다... 이렇게 표현해요.
그 관조적인 생각에 <바람>이란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형상화>를 시도한 시가 마기님의 시였죠.
그러다보니깐, 삶을 아직 오래 살지 않은 젊은이들에게선 관조적인 자세가 나오기 어렵겠지요.
사물과 삶을 연관짓고, 거기다가 <형상화>의 옷을 입혀야 제대로 된 시가 나오는 것이니 말입니다.  

얼마 전에 양철나무꾼 님 서잰가 어디서 이 시를 만났습니다.
김해자의 <데드 슬로우>입니다. 우선 한번 읽어 보시죠.
61년 소띠 누님인데, 많이 유명하신 분은 아닌 거 같더군요.  

큰 배가 항구에 접안 하듯
큰 사랑은 죽을 만큼 느리게 온다
나를 이끌어다오 작은 몸이여,
온 몸의 힘 다 내려놓고
예인선 따라 가는 거대한 배처럼
큰 사랑은 그리 순하고 조심스럽게 온다
죽음에 가까운 속도로 온다

가도 가도 망망한 바다
풀 어헤드로 달려왔으나
그대에 닿기는 이리 힘들구나
서두르지 마라
나도 죽을 만치 숨죽이고 그대에게 가고 있다
서러워하지 마라
이번 생엔 그대에게 다는 못 닿을 수도 있다 <김해자, 데드 슬로우>

시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항해 용어가 두 가지 등장하네요. 데드 슬로우와 풀 어헤드, 그리고 예인선도...
큰 배, 예를 들어 수십 만 톤 되는 배는 항구에 들어오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부산같은 항구 도시엔 컨테이너선 들도 많은데요.
그런 배가 관성에 밀려 항구까지 들어왔다가는, 그 관성이 아마 항만을 다 부수고도 남을 겁니다.
물리학에서 F=ma라고 하잖아요. ㅋㅋ 항만을 부수는 힘에 충분한 질량을 가지고 있는 배를 접안시키는 방법이,
바로 데드 슬로우예요.
배는 바다 한복판에서 멈춥니다. 그리고, 도선사가 예인선으로 맞으러 나오기까지 닻을 내리고 기다리죠.
그러면, 그 무거운 배를 움직이려 밧줄로 함께 묶인 예인선이 움직입니다.
그런데, 그 속도 역시 '겁나게' 슬로우 해야 되겠죠?
질량이 어디 간 거 아니니깐 말입니다. 그래서, 큰 배는 거의 서있는 듯한 속도로... 천천히 천천히... 항만으로 다가옵니다.
지루하기 그지없는 과정이지요. 그래서 도선사는 엄청난 기술로 취급된답니다.(돈도 열라 번대요. ^^) 

아, 바다에서 속도계를 풀로 놓고 앞만보고 달리던 <풀 어헤드>가
이제 목적지인 항구를 앞에 두고, 멈춘 듯한 속도로, <죽자고 느린> 데드 슬로우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 속도를 '관찰'한 시인은 '마음에 상이 맺'힙니다.
아, 이 속도로 가다가 언제나 항구에 도착하나...
가기는 가는 건가?
그런 관찰이, 어느 순간,
아이고, 내 사랑하고 이놈의 배가 움직이는 꼬라지가 똑같구나. 

이번 생엔 그대에게 다는 못 닿을 수도 있다 

그치만, 저는 좀 웃음이 나는데요. 피식 웃게 됩니다.
저렇게 죽는 시늉을 하지만요, 사실은 데드 슬로우의 속도는 큰 배를 항만에 반드시 접안시키기 위한 안전장치임을 화자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어쩜 반어같아요. 속마음은 어떻겠어요? 

얌마, 암만 느려도 닿긴 닿을 거야, 꼼짝 말고 기둘려~~ 

이런 마음이 비추이지 않습니까? 참 제멋대로 해석이죠. ㅎㅎㅎ 
그대가 기다리는 창가로 금세 달려가서 활짝 웃음을 짓는, 그런 만남이 아닌 것 같죠?
오래오래 기다려온 사랑이지만, 쉽게 만남이 예정되어 있어 보이지는 않는 조금은 슬픈 사랑.
그렇지만, 저에게는 작가의 사랑에 대한 <관조>가 긍정적인 미래를 기대하는 시선으로 읽히네요.  
관조를 통해 기다림에 대한 넉넉한 통찰력 이 생긴 것처럼 보여서 든든해요.

이왕 관조를 공부한 김에, 같은 작가의 작품을 하나 더 보겠습니다. 

활짝 연 자줏빛 심장은
당신에게 날아가는 화살이다 아니
당신이 꽂히길 기다리는 과녁이다
따스한 빛살이여, 당신에게 닿을 수 있다면
온몸 굽혀서라도 간다
마알갛게 속 내비치는 연자줏빛 혈관 내뻗다
지지대 휘감고 돌아 비틀린 허리
가늘고 긴 용맹정진이여,

당신에게 가는 길은
날마다 용솟음치고 밤마다 숨죽이는 일
당신을 사랑하는 길은
밤마다 희망을 접고 날마다 다시 손 뻗치는 일
당신과 하나 되는 길,
나를 떼어내는 일이라는 듯
어젯밤 뚝 떨군 검붉은 살점 위로
오늘은 여린 잎살 하나 솟아오르고 <김해자, 사랑초>

사랑초란 풀을 인터넷 동영상으로 검색했더니, 잎사귀에 화살같은 무늬가 있기도 하더군요.
그치만 사진이 별로 안 이뻐서, 조 위의 것으로 넣었습니다. 저것도 사랑초래요. ^^ 

화자가 보고 있는 건, 당연히 '사랑초'죠.
그런 관찰을 통해서 화자의 마음에 비추이는 상념은,
풀꽃일 뿐인 사랑초에게서,
심장과 화살과 과녁을 느낍니다.
우리의 만남을 위하여 <온몸 굽혀서라도> 가는 <용맹정진>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앞의 '데드 슬로우'에 비하면 훨씬 대놓고 가죠? ㅋㅋ 

당신에게 가는 길은 역시 탄탄대로가 아닌 모양이에요.
<숨 죽이는 일>이 되고, <희망을 접었다가도 다시 손 뻗치는 일>이 되니까 말입니다.
우리의 사랑을 위해서는 <나를 떼어내는>, 그래서 <검붉은 살점이 뚝 떨어지는> 고통스런 과정과 함께합니다. 

그렇지만, <당신과 하나되는 길>의 그 기다림...의 결과로, <오늘은 여린 잎살 하나 솟아올>랐습니다.
작가는 마음 속 '슬픔'을 <관조>를 통해서 '희망의 기다림'으로 승화시키는 재주를 가진 시인이네요. ^^ 

수강생 여러분, (여럿이 듣기나 하는 건지...)
제 해설을 읽고는 반드시, 꼭, 위의 시로 되돌아가서 감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처음에 안 보이던 단어들이 보이는 것을 느끼면서,
뭔가 공부가 되었고, 감상의 포인트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고, 잠시라도 착각에 빠져 보시라는 거예요. ㅎㅎㅎ 

기다림,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말이지요.
<기다림>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람이나 때가 오기를 바람'입니다.
그러니까, 간절한 바람이 들어있는 거예요. 와서 만나기를 말이지요. 

역시 기다림의 미학의 최고봉은 한예종에서 김회장네 둘째 인촌이한테 퇴장당한 황지우의 시입니다.
조금 길지만, 길단 생각 안 드실 정도로 좋은 시입니다. 감상해 보시죠.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화자는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하고 기다립니다.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이니까요.
그런데, 그 기다림은, 마음의 조바심을 동반하죠.
옛날 노래에도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그대 오기를 기다려요... 내 속을 태우는구려.' 이런 가사가 있었지요.
좀 싸구려 티가 나죠? ㅋㅋ 커피 한 잔과 내 속을 태우는구려. 

뭔가 관찰한 속에서 마음에 비추이는 '관조'가 없잖아요. 그러니 싸구려틱하죠.
시는 물론 클래식한 계급에서만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감정보단 조금 고상한 '감추는 장치'가 있죠. 그 감추기는 은유가 되기도 하고, 관조가 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내 속을 태우는구려'와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사이에는 '와'만 있는 게 아니죠. ^^
전자가 직설적으로 아이고 속탄다~~를 외치는 반면, 후자는 가슴 애리는 일로 감각적 표현을 합니다.
감각이란 건, 뭐 이미지, 배우셨죠? 감각적 이미지...
보이는 건 시각, 들리면 청각, 맛은 미각, 느낌은 촉각, 냄새는 후각...
시에서 가장 흔히 쓰는 게 시각인데요, 여기서는 가슴이 애리는, 가슴 속이 알싸하게 뒤집혀지는 듯한 통증을 호소합니다.
네, 기다림의 간절한 조바심을 촉각적으로 표현한 거예요.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아, 얼마나 간절한지, 몇 글자로 다 보이지 않습니까?
어려서 부모님 오시길 간절히 기다리다보면, 형제들끼리 이제 정류소 왔다, 전봇대 돌았다, 슈퍼 앞이다... 이러고 기다리잖아요. 기다리는 이는 오지 않고, 너였다가, 너였다가... 다 너로 보입니다.

'사랑하는 이여'를 부름을 기점으로 화자의 태도는 '기다림에 조바심내는' 수동적 태도를 버립니다.
이제 화자도 그대에게 가기 시작하죠. 적극적 태도와 능동적 자세로 그대에게 다가섭니다.

아직 너와의 거리는 멀겠지만, 그 아주 먼 데서 부 나는 너에게 가기 시작하고
아주 오랜 세월 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는 것을 믿으려고 합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간절히 기다리면서,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우리의 만남은 <금세> 이뤄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거리는 <아주 먼 데>기 때문에, 아주 먼 데서부터 서로 움직이기 시작하구요.
그래서 <아주 오랜 세월>동안 <천천히> 다가서는 기다림의 자세를 마치 마음공부하듯 스스로를 잡도리하고 있네요.
네가 오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일은 못견디게 힘든 일이지만,
내가 천천히 먼 훗날을 내다보며 다가가는 일은 힘겹지만은 않은 일이 되겠지요.  

자, 여기서 퀴즈, 하나! 
위의 시를 쳐다보지 말고, 이 시에서 '문'이 몇 번 나왔을까요?
퀴즈, 둘!
그 문은 어떤 문이었을까요? 

정답은 퀴즈 1번.
     세 번입니다. ^^
퀴즈 2번의 답은,
      문을 열고, 문이 닫힌다, 문을 통해... 이런 문입니다. 

기다림을 형상화하기 위해서 작가는 '문'을 등장시킵니다.
그 세 번의 문은, 처음엔 자꾸 열립니다.
아, 미치겠죠.
저 문이 열리면 우리 임이 오시려나.
아냐, 다음 문이 열리면 오실거야... 조바심, 심하면 쓰러지죠. ㅎㅎ 

두번째 문, 이제 닫힙니다. 으--윽, 좌절하죠. 닫힌 문 앞에서.
님은 갔슙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슙니다...
기다리던 문이 닫혔을 때, 아, 그 기분은 얼마나 참담하겠습니까. 

그렇지만, 거기서 끝이면, 시가 아니죠. 일기고, 낙서고, 절망의 기록일 뿐이겠죠.
그렇지만 세 번째 문, 통하는 문이 등장합니다.
네가 닫혀있지만, 내가 가려고 맘먹고 달려들면, 너는 통할 거야! 이런 희망이 보이십니까? 

황지우가 이 시를 쓰던 시절은 서정주가 좋아하던 전두환이 독재를 하던 때였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던 시대, 그걸 닫힌 문으로 형상화했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닫힌 문을 보고 그저 눌러앉아버리면 슬프죠.
그 문을 통해 데드 슬로우로,...
<아주 먼 데서>, <아주 오랜 세월을>, <천천히> 오고 있는 민주화라면, 열린 세상이라면,
그 세상을 기다리는 일에도 마음 조급해 하기만 해선 안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겠지요.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이 구절을 그렇게 해석한다 해도, 강사한테 깡통 던지진 않으시겠습니까? ^^(갈수록 눈치 보임)
요즘 양철나무꾼님이 가끔 인용하시는 시도 멋지구요.
낮달님이 엊그제 쓰신 '시'의 리뷰도 아주 멋지더라구요.
돌팔이 시 특강에 다들 감탄하셔서 제멋에 겨워서 축늘어 졌었는데... 긴장타야겠습니다. 

특강이 넘 진지하니깐, 제멋에 겨워서 축늘어 진 이야기 좀 할게요. 19금입니다. 20토는 없습니다. ㅎㅎㅎ 

이 민요 제목이 뭔지 아시죠? 천안삼거리
가사는 이래요. 

천아은 삼거리 흥~흥~
능수야 버들은 흥~흥~
제멋에 겨워서 흥~흥~
축늘어 졌구나 흥~흥~
에헤야 데헤야 흥~흥~
성화가 났구나 흥~흥~ 

이 노래가 초등학교 4학년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습니다.
우리 아이 초딩 4학년때 담임 샘이 이제 갓 교대 졸업한 2년차 처녀샘이었는데요.
이 노래를 갈치고는... 우리 애 통지표에, '천안삼거리를 분위기에 맞춰 잘 부를 수 있음'으로 적어 둔 것을 아직 기억합니다.
뭐, 이상한 줄 모르시겠죠? 아직은...
그러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의 서문에 붙은 이 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실감하시게 해 드릴게요.  

이런 재미없는 민요는 없습니다.
이 가사를 그대로 읽으면, 천안이란 도시의 3거리에 능수버드나무가 늘어졌다가 바람에 날리는 서경적인 풍경이죠.
민요란 것은 '재미'와 '흥겨움'이 어우려진 노래입니다.
주로 노동요로 기능하는 것으로서,
은근히 이성에 대한 감정이 쏠리게 하는 가사가 들어가야 되구요. 박자는 신명이 나야 하는 거죠.
신명나는 박자도 아니고, 좀 축 처진  흥~흥~ 이런 후렴구도 민요의 <구비 전승>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자, 이제 19금 해설 들어갑니다. 

천안 삼거리는 천안 씨티의 쓰리 브랜치가 아닙니다.
천은 클로쓰(옷감)구요, '안'은 인(속)입니다.
아, 어떤 과부가 콩밭을 매면서 땀을 빨빨 흘리고 있었어요.
근데, 그 동네 삼식이 넘이 지게를 지고 휘파람도 가볍게 논두렁 위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해가 설핏 지려하기 좀 전인데요, 아, 삼식이의 실루엣이 그만 그 과부 눈에 들어온 거예요.
아, 바로 in the cloth, three branch가 보인 거죠.
천 안쪽의 삼거리 말입니다.
아~~~ 과부 코에서 끈적하고 눅진한 소리가 나요.  흥~흥~
이렇게 요망한 노래랍니다. 

능수 버들은 무엇을 비유한 것일까요?  흥~흥~ ㅋㅋㅡ  그 삼거리에 말이지요.
그리고 제 멋대로, 축 늘어졌다가, 성화가 나는 그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요.
아이고 망측해라... ^^(빨개졌어요.) 
이 노래의  흥~흥~ 은 과부가 혼자서 얼굴 빨개져서 내는 흥소리입니다.
그래서 천안 삼거리란 민요의 멋은 '요망하고 은근한 멋'이죠. 

근데, 우리 아들이 4학년때, 이 노래를 분위기에 맞춰 잘 부를 수 있었다구요???
그 처녀 선생이 뭘 좀 알고 그런 걸 적었으려나요? ㅍㅎㅎㅎ 
이 민요는 초딩 교과서에서 빼야 한다구욧!!!
이 민요는 주부 가요 열창에서 가르치면 아줌마들 혼이 빠지게 좋아하는 노래예요. ^^

음음... 자, 다시 원위치로 돌아갑시다.
첫사랑 이야기, 이런 거 해달라는 수강생은 블랙리스트에 올릴 거예요. ^^ 

이런 시가 익숙하신가요?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서정윤, 홀로서기> 

이 시는 한창 민주화 투쟁으로 날이 선 청춘을 보냈던 젊은이들에게 이문세의 노래가 위무의 손길이 되어 주었듯,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란 부제로 유명했던 시입니다.
그런데, 이 시가 불후의 명작으로 오래오래 남는 시가 아닌 것은 무엇때문일까요?
소녀 취향의 파스텔톤 습작집에는 어울릴 법한 이 시에 부족한 것, 그것은 바로 인생에 대한 <관조>가 아닐까... 이런 생각. 

말은 멋있는데,
가슴이 아픈데, 고개를 들고 미소를 날리는데,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기다림... 나같으면 미소가 아니라 눈물이 날릴 거 같은데요.
센치하다... 이런 말을 쓰지요.
센티멘탈... 우리 말로 감상적 感傷的 이라고 합니다.
아픔을 느끼는... 그런 걸 뜻해요. 시를 감상 鑑賞 하는 게 아니라요.
센치한 시들은 사람의 아픈 마음을 콕, 찌르죠. 멜랑꼴리하다... 좀 우울한 걸 그렇게도 말하구요.
이런 마음들을 <정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시인이 표현한 <정서>가 독자에게 찡하는 감동을 주려면,
제대로 형상화가 이루어지거나 관조적 통찰력이 들어가있는 편이 훨씬 오래 남는 느낌을 주는 거 같습니다. 

오늘은 '관조'라는 글쓰기 방식과 '기다림'에 대한 시를 몇 편 만났는데요. 

전에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를 읽었지요.
오늘은 황동규의 시 연작 세 편을 함께 보겠습니다.
완전 떨이~~~로다가...
제목하여 <조그만 사랑노래>, <더 조그만 사랑노래>, <더욱더 조그만 사랑노래>
이 사람, 사소한 거 좋아하더니, 조그만 거도 좋아하죠. ㅎㅎ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의 눈. <황동규, 조그만 사랑 노래> 

또 사소한 사랑을 이야기하네요. 조그만 사랑...
그대의 배경에서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사소한 일도 있었듯이,
그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길도 있죠. 맨날 같이 걸었던 그 오솔길... 뭐, 이런 거요.
그런 길이 사라졌어요. 이별,이죠.
그런데 편지를 받아요. 어제를 동여맨 편지.
어제는 과거의 추억이겠죠. 우리의 사랑 이야기들...
그런데, 그 사랑이야기를 꽁꽁 동여맨 편지를 읽으면 이제 헤어진 마당에 눈물이 흐를까요?
아니면 한숨만 폭~ 날까요.
사랑한다 사랑한다, 고 뇌어 보고 싶어도...
눈이 날려요.
그 눈은 땅에 정착하지 못하고, 떨면서 떠다니는 불안한 눈이네요. 

이 시에서 화자의 마음, 이별한 화자의 처지를 가장 단적으로 <형상화>해주는 시어가 뭔가요?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화자의 마음게 간 금들이 보이시죠?
이 금을 보여주려고, 자기 마음에 찍~~하고 갈라진, 그 금을 나타내려고 쓴 시가 이 시죠.

아직 멎지 않은
몇 편의 바람
저녁 한끼에 내리는 젖은 눈,
혹은 채 내리지 않고 공중에서 녹아
한없이 달려오는 물방울,
그대 문득 손을 펼칠 때
한 바람에서 다른 바람으로 끌려가며 그대를 스치는 물방울. <황동규, 더 조그만 사랑 노래> 

이번엔  더 사소한 노래래요. ^^ 귀여운 아저씨 같습니다.
바람이 불고요, 젖은 눈이 내려요. 아세요? 젖은 눈?
날이 아주 춥지는 않은가 봅니다.
눈과 물방울이 섞여 내리는데,
왠지 화자의 눈자위가 붉게 젖어있는 느낌도 드는데요.
물방울을 향해 그대가 손을 펼치기라도 한다면,
바람에서 바람으로 끌려가며 그대를 스치는 물방울,
로 변신하고 싶은 사소한 사랑이 느껴지는 거 같습니다. 

아, 화자의 미련,
아직도 그대를 향한 그 사소한 사랑은
그대에게 젖은 눈,
눈발이든 눈빛이든,
사소한 사랑은 눈이 녹은 물이든, 눈에서 흐른 물이든,
그대 손끝에 스치기라도 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어리석은 사내의 간절한 바람이 눈에 보이시죠?
형상화.
물방울로 다가가고 싶은 아쉬운 마음의 형상화. 

연못 한 모퉁이
나무에서 막 벗어난 꽃잎 하나
얼마나 빨리 달려가는지
달려가다 달려가다 금시 떨어지는지
꽃잎을 물위에 놓아주는
이 손. <황동규, 더욱더 조그만 사랑 노래> 

더욱더 작은 거 하나요. ^^
꽃잎이 화르르 떨어져요.
그 꽃잎을
아마도 그 꽃잎을 이 남자의 당신이 사랑했던 거겠지요.
어리석게도,
그대는 곁에 없는데, 이 남자는
나무에서 막 벗어난 꽃잎 하나를
가만가만 집어다 
물 위에 놓아 줍니다.
그리고 제 손을 바라보죠.
이 손. 

아아, 아마도, 이 손에 집혔던 저 작은 꽃잎과 오버랩되는 손은
내 눈에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당신의 그 손이 아닐까요?
차마 잊힐 리 없는 그대의 차고 희던 그 손...
이 사내는 물끄러미 제 손을 바라보면서,
자기의 조그만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제 손을 보면서 말이지요... 

아, 오늘은 형상화와 '관조'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보니깐,
기다림과 사랑에 대한 시들을 읊게 되었네요. 

역시 10대에서 70대까지 공통의 관심사는 오직 <사랑>이란 말은 진리인가 봅니다. ㅎㅎㅎ 
이렇게도 사랑에 대한 노래가 많고 많은데도, 아직도 천 하룻밤을 더 사랑노래로 지샐 만큼 특강은 많이 남았으니 말입니다. ^^ 

제 강의를 듣고,
새로운 시를 만나서 좋다고 하셔도 좋고,
어려운 시를 풀이하게 되어서 좋다고 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시를 가까이 하고,
시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셨다고 하는 게 저는 제일 좋습니다. 

자, 오늘 숙제 하나씩!!!(수강생 떨어지는 소리가 우두두 나는 거 같아요. ㅎㅎㅎ) 

일 년에 댓 권 정도는 시집을 삽시다!
시 쓰는 사람 머리카락 다 빠지는데, 가발은 아니라도 발모제 살 돈은 벌게 해 주자구요! 

혹시 특강을 했으면 하는 좋은 시가 있으면 댓글로 알려 주셔도 좋아요.(레파토리 떨어진 핑계 겸 ㅋㅋ) 

아름다운 밤이에요. ^^
날마다 저는 밤이 아름답습니다.
자는 일도 좋구요.
꿈꾸는 일도 좋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밤은 상상의 나래를 펴도 좋은 시간이기 때문이지요.
모두, 굿 나잇. 

노래는 비틀즈의 '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를 덧붙일게요. 
판타스틱한 꿈 하나 꾸시라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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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29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앞에 추천이 있었으니 출석을 두번째고, 댓글은 제가 첫번째네요 ㅋㅋ
즐겁고 유쾌하면서도 시종일관 '관조'의 맥을 잊지 않게 해주시니
웃고 나서도 뭔가 분명해지는 느낌이에요.
'천안 삼거리'도 관조가 있고 없고의 차이겠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 모양인데 건강 유의하세요^^

글샘 2010-07-29 07:56   좋아요 0 | URL
그쵸. 관조의 눈을 가지고 민요를 바라보면, 건강한 민중의 힘이 느껴지죠. 저걸 초딩 교과서에 실어 놓다니... 에효=3=3 입니다. ㅎㅎㅎ
진짜 즐겁고 유쾌하셨다면, 그 이상의 칭찬이 없겠네요.

아, 오늘 매미 우는 거 보니깐, 장난이 아니네요. ㅎㅎㅎ
무더위에, 후와님도 건강 잘 챙기시길...

gimssim 2010-07-29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동규의 시도 좋고, 옆에 달린 우체통도 맘에 들고, 비틀즈도 감미롭습니다.
무엇보다 글샘님의 열정도 사랑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마니마니(많이많이) 감사^^

글샘 2010-07-29 18:26   좋아요 0 | URL
이거 중년의 여성분들께 소녀시대의 감성을 심어드린 걸까요? ㅎㅎㅎ
시를 읽으면서 소녀시대로 돌아가시는 것도 좋고, 주부가요처럼 웃으셔도 좋습니다.
자주 오세요~~

순오기 2010-07-29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천안 삼거리에서 빵 터졌습니다~~~ 구비문학 배울때 교수님이 저런 강의했었거든요.ㅋㅋ
천안 사는 내 친구한테 그 얘기 해줬더니 천안이 자기들 사는 천안인줄 알았다고...^^
글샘님 머리에는 얼마나 많은 시가 들어 있을까 궁금하네요.
저는 시를 쓰거나 리뷰를 잘 쓰지는 않아도 1년에 10권 이상은 삽니다~~~ 잘했죠?ㅋㅋ
우리집 사랑초 화분엔 서로 다가서지 않아도 맞닿을 정도로 촘촘히 피어 있어요~~~~~^^

글샘 2010-07-29 18:27   좋아요 0 | URL
빵, 터지라고 쓴 건데요. 뭐 ㅋㅋ 빵 터지셨다니 고맙군요. ㅎㅎㅎ
정말 천안삼거리에 능수버들은 민요로서 하나도 매력이 없거든요.
시집을 1년에 10권 이상 사신다면, 모범생 대열에 끼워드릴게요. ㅎㅎ
마기님은 시 쓰니깐 수제자고, 순오기님은 시인을 먹여살리시니깐 우등생으로 부르겠습니다. ㅎㅎㅎ

blanca 2010-07-29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드 슬로우.. 예인선...꼭 기억하고 싶네요...이런 좋은 글을 읽어 부셔서 제 더위를 식혀 주시네요....감사합니다.

글샘 2010-07-29 18:28   좋아요 0 | URL
아, 글이 썰렁한가요? 더위를 식혀 주었다니까는... -_-;;;b
우리 주변에 좋은 시는 참 얼마나 많은지요. 읽어주시는 분들이 고맙지요. ㅎㅎ
 

이 좁은 나라에도, 어떤 동네는 물난리가 지고, 어떤 동네는 뙤약볕이 내리쬡니다. 

아, 벌써 특강이 7회분이나 들어가는군요. ^^
오늘은 무얼로 이야길할까, 별로 생각하지 않고 잘도 한답니다.
수강하시는 분들이 가끔,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하고 위로를 해주시는데,
솔직히 별로 노고랄 거 없거든요. ^^
잘난 체가 아니라,(그렇게 보심 할 수 없지만)
정말 생각나는대로 마구 쓰는 것인 만큼, 부족해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지식을 팔아먹고 사는 시대가 지났다고 합니다.
인터넷 구글처럼 '링크'로 먹고 사는 시대죠.
세상에 깔리고 깔린 것이 지식인데, 그것들을 서로 관계맺는 지점을 찾아서 보여주고,
이렇게 관계맺는 방식도 있을 거 같다.
이런 지식의 디자이너,
요게 제가 추구하는 바의 '특강'인데요.
갈수록 진화할지, 매가리없이 툭 끊길지, 저도 저를 모르겠습니다. ^^

오늘은 '어떻게 살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들을 몇 편 소개하겠습니다.
어쩌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그것도 한반도 아랫녘에서 살고 있는데요.
하루하루 사는 일이 팍팍하고 쉽지 않거든요.
뉴스라고 떠드는 것들도 참으로 해괴망측한 일들로 가득하구요.
뉴스에 나오지 않는 감추어진 진실들은 더욱 비참한 몰골들이지요. 

그래선지,
시인들이 추구하는 '바른 삶'은 참 많습니다.
지난 번에 '권정생 선생님' 동영상을 링크했더니 가슴이 찡했다는 분이 많았어요.
권정생 선생님은,
이름 자체가 바른 삶 正生이신 분이었지만,
당신의 바른 삶은 '강아지 똥'과 같은 삶이라고 이야기하신 거잖아요.
볼품없는 존재라도, 녹아져서 민들레 꽃을 피우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존재>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 시인이라면,
훌륭한 작가라면, 그 사소한 '비밀'을 밝혀내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겠지요.
마기님, 훌륭한 시인이 되기 위해서,
마기님의 그 직관력으로 저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비밀'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처음 다룰 시는 '만인보'를 쓰신 고은 선생님의 <머슴 대길이>입니다.
우선 한번 읽어 보세요.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으로
누룩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
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
그야말로 도야지 멱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
밥때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
이른 아침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리마 났지요
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
머슴 방 등잔불 아래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오듯 읽었지요
어린아이 세상에 눈떴지요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대길이 아저씨더러는
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요
살구꽃 핀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
홑적삼 큰아기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 하고
지게 작대기 뉘어 놓고 먼 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
우르르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소리 들었지요.

찬 겨울 눈 더미 가운데서도
덜렁 겨드랑이에 바람 잘도 드나들었지요
그가 말했지요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새우는 불빛이었지요<고은, 머슴 대길이> 

고은 선생님은 다작으로도 유명합니다. 벌서 몇 년째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오르시곤 했는데,
만 명의 노래를 부르겠다고 해서 '만인보'를 쓰셨습니다.
그 안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가 이 시입니다.
어떤 위인보다도, 머슴 대길이같은 사람이 되길... 내 자식이 저렇게 되었으면... 이러고 바라는 시입니다. 

대길이는 우선 신분이 '머슴'입니다. 
조선 시대는 계급 사회였죠. 그래서 양반이 있고, 상놈이 있었습니다. 종놈은 양반의 소유죠.
그런데, 갑오개혁으로 형식적인 노비제 철폐가 이루어지고 맙니다. 그때 노비들이 어떻게 했을까요?
주인마님의 앞에 꿇어 엎드려, "주인님, 저희를 버리지 마십시오."했다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 종의 신분을 벗어나 '머슴'이 됩니다. 종은 먹여 살리기만 하면 되지만, 머슴은 새경을 주어야 합니다.
물론 제대로 된 계약을 맺었을 리가 없는 불평등 계약 조건이기가 쉬웠겠지요.   

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요 

이 말을 뒤집으면, 대길이 아저씨 말고 다른 평민들한테는,
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했다는 현실을 읽을 수 있지요.

이 '머슴'이란 신분이 한국 사회의 질곡을 잘 보여줍니다.
형식적으로는 평등한 인간이면서, 종속되어있는 '임금노동자'의 모습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상머슴'은 정말 일 잘하는 사람에게 붙여주는 호칭입니다. 
상머슴을 거쳐 '마름'이 되면, 중간 착취자가 될 수 있는 자리라 봐야죠. 
그래서 동네 처자들이 서로 혼담을 오가기 바라는 DUO 1등 신랑감일 수도 있었을 거구요. 

그치만, 일 잘하고, 부지런한 대길이 아저씨는 <먹눈>이었습니다.
까막눈이 뭐예요? 하얀 건 종이고, 까만 건 먹이다... 이 수준인 눈이잖아요.
문자 속을 까맣게 모르는 사람.
먹눈은?
먹물이죠.
지식인인 겁니다. 글자를 알았던 거죠.
계약서에, 월 쌀 1가마, 이런 거 적어 놓으면, 읽을 줄 아는 사람과 뭔지 모르는 사람의 차이겠지요.

대길이 아저씨에게 글자를 배운 화자는 역시 마찬가지 농부의 아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자라봤자 소작농이나 되고, 까막눈으로 살 운명이었겠지요.
그렇지만, 그는 대길이 아저씨를 만난 덕에 '먼 데 바다'를 바라보게 됩니다.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

대길이 아저씨가 화자에게 들려준 메시지.
아,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이고, 예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공자도 그랬거든요.
극기복례... '이기심'을 이겨야 '예의'로 돌아간다.
4단 四端,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 네 가지 마음 중에서 ''에 해당한는 것이 '사양지심'이거든요.
(참고로, 어질 인...은 측은하게 여기는 측은지심,  
            옳을 의...는 부끄러워할 줄 아는 수오지심,
            예도 례...가 금세 이야기한 사양하는 사양지심,
            지혜 지...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시비지심.)  
            옛날에 배운 건데, 이렇게 쉽게 설명하는 건 첨 들었죠? ㅎㅎㅎ 
원래 마음에 우러나서 공부하면 이토록 쉬운 거랍니다. 공부가.

이기심을 버리는 것,
"저밖에 모르는 사람"
이런 것을 버려야 한답니다. 예에 맞게 살려면.
그래서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이 예의에 맞는 거죠.
너무 호강해서 저밖에 모르는 인간.
남하고 사는 인간인데...
극기복례,를 윤리 문제 정답에서만 아는 인간. 어이쿠, 쿡, 찔리넹...
극기훈련은 등산하는 게 아니라, <나의 이기심>을 이기는 훈련. 이런 거죠.

아, 제가 매일 근무하는 학교에서 기르는 인간상이 딱, 이것입니다.
극기복례를 극복한 인간. 휴 =3=3 
무자비하게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 저밖에 모르는 사람 양성!!!

화자는 대길이 아저씨를 <불빛>으로 삼았습니다.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새우는 불빛... 아, 불빛은 어떤 걸까요?
어두움과 불빛...
불빛은 화자에게 <똑바로 살아라>를 보여주는 증인 아니었을까요?
깍두기들이 등짝에 새긴다는 쉽고도 명징한 진리. <차카게 살자!> 

이 시의 주제를 찾으라면, 바람직한 삶의 자세 발견 정도가 되겠네요. 

다음엔, 백석의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이란 시를 한번 보겠습니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 인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이란 시인은 1987년 해금되기까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시인입니다.
북한의 시인이란 이유로 묶여 있었는데요. 최근에 <여승>이란 시가 교과서에 실렸습니다.
평안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하는 시인입니다. 

제목인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이란 형식에 대해서 익숙하신가요?
어려서 셋방살이에 익숙한 저같은 사람이야 이런 주소 형식에 익숙한데요.
원래 농경사회에서는 기본적으로 친척들이 모여살기에 '집'의 개념이 '대단위가족'의 개념이었죠.
그러다가, 식민지 경제와 함께, 토지조사사업으로 땅들을 잃고,
도시화로 인한 떠돌이들이 탄생하게 됩니다. 자본주의가 기형적으로 이식된 형태죠. 

아, 이 <방>이란 글자에는 참으로 애환이 담긴 사회사가 있을 것입니다.
<댁>과 <방>에는 정착과 유랑, 자기 것이 있는 쪽과 가진 것이 없는 쪽, 이런 '금'이 들어있거든요.
이 <방>이란 글자에서 저는 '근거지를 잃은 방황하는 영혼의 쓸쓸함'이 느껴진답니다.
요즘 쓰이는 '-방'이란 접미사 중에 가장 그런 의미가 뚜렷한 것이 '떳다방'인데요.
점포 하나 없이도 돈을 쫓아 부유하는 복덕방, 떳다방...
아이들의 놀이방, 에도 들어가는 이 쓸쓸한 단어. 놀이방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좀 안쓰럽네요.
피시방 아이들의 고립감,
노래방,도 마이크 잡은 넘만 소리지르지, 나머지는 제 노래 찾느라 고개 처박고 있다는...
안마방, 보도방(*지*매방),대딸방(여대생이**이를해주는방)... 에효, 그야말로 근거지 잃은 영혼들의 방랑처가 바로 이 '방'이란 글자에 모여있습니다. 

시인이 남신의주란 도시의 유동에서 박시봉씨네 방에 세들어 살게 된 것입니다.
목수네 집에 헌 삿자리를 깐 허름한 집에 혼자 있는 거죠. 인터넷도 없었고, 라디오도 없었던 시대...
질옹기(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붙여 두고,
자신의 슬픔과 어리석음을 연신 되새김질 하는 처지.
이것이야말로, 공동체 사회를 잃어버린 방황하는 영혼의 쓸쓸함이 아닐 수 없답니다. 

현대 사회를 유목의 사회, 노마드의 사회라고 합니다.
정주민들의 시대는 갔다. 온 세계가 좁도록 글로벌리제이션된 사회다.
근데요.
그건 잘 사는 나라 사람들 얘기랍니다.
미국 넘들은 이 후미진 코리아에 와서도 영어 강사 할 수 있잖아요.
노마드의 시대.
그렇지만, 베트남 스무 살 가난한 아가씨는 과연 노마디즘의 세례를 받아 한국에 국제결혼을 왔던 것일까요?
떠돌이도 <가진 자는 노마드>, <못가진 자는 에뜨랑제 - 이방인>가 되어버리는 사회를 무작정 <노마디즘>으로 들이대는 것 역시 폭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삶 역시 여기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구요.

백석의 남신의주 역시 적극적 노마드의 그것이라기 보다는, 에뜨랑제로서의 외로운 존재감이 큽니다.
그렇지만, 이 의지 강한 시인은 그저 주저않거나, 아무에게나 총구를 돌리는 이방인의 고독한 삶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는 마지막 행의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시어에 함축된 선비같은 삶을 추구하고 있겠지요.
'굳다'와 '정하다'의 두 단어를 썼을 뿐인데,
이 힘겨운 시가, 이 긴 시가 푸념으로 가득하지만,
마지막 시행에 와서 그만 <굳고 정한 갈매나무> 생각으로 가득차게 되는 것입니다. 

강남 엄마들이 자식을 <명품>으로 길러서 서울대를 보낸다고 합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명품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일 것입니다.
인간은 생각보다 복잡한 존재거든요.
서울대를 나와서 돈과 권력을 움켜잡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버렸습니다. 
물론 돈과 권력의 이합집산이 그들 중심으로 이루어지기때문에 상대적으로 서울대 졸업생이 유리한 고지를 점유할 수 있기도 하겠지만, 앞으로의 돈과 권력은 역시 <나무줄기>처럼 튼튼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수시로 변하는 <뿌리줄기>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끈질기게 재생되고 생명력을 이어갈 것입니다. 

너무 말이 많나요?
그럼 또 시를 하나 만나 보시죠.
오늘은 시를 좀 여러 편 들이대겠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으면서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은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김종삼 >

시가 뭐냐고, 시인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이런 의문에서 시작하죠. 

아름다운 '시의 가슴'을 노래한 시인도 있었지만,
뭔가 <클래시컬>한 수준이 있을 것 같은 <시 poetry>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단테 신곡 강의>에는 전쟁 나면 배 한척 쾌척할 수 있는 <클래스>와 그렇지 못해 자식을 내보내야하는 <프롤레타리아>에 대하여 설명하는데요. 그래서 클래식, 하면 타임리스... ㅋㅋ가 아니라 뭔가 고상하고 품격있는 ... 이런 수준을 담고 있기도 하죠. 

시는 왠지 수준높아 보이는 품격있는 언어예술일 것 같아서 시인에게 묻습니다.
"시가 도대체 뭐야?"
근데, 눙치고 있죠.
"난 잘 몰러유~ "
무교동 낙지, 뭐 별로 맛도 없더만 비싸기만 하고. ㅋㅋ
종로 빈대떡, 요건 좀 맛있지만 역시 비싸고, 청진동 해장국이 더 좋은데, 없어졌담서요?
명동의 노점상, 이거 예술이었는데 ㅠㅜ 남산 케블카... 햐, 좋죠.
그러다가, 남대문 시장으로 왔습니다.
시가 뭘까? 어떤 품격있는 것이 시이며,
시인이란 뭘까? 어떤 기품있는 인품을 가진 인물이 시인일까? 이러던 중에,
시인의 뷰파인더에 남대문 시장에서 <사람>이 잡힙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은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품성이 어떤 것일까요?
비싼 옷과 기름진 음식으로 인한 풍요로움과,
투명한 피부와 온갖 액세서리로 장식한 호화로움에서 우러난 격조가 아니란 것 정도만 말해 두죠.
고생하면서, 순하고 명랑하고, 맘좋고 인정이 넘치는, 
지식도 없는 무지랭이일지라도, 삶의 슬기로운 지혜로 넘치는 사람들. 

아까 이야기한,
극기복례. '이기심'따윈 관심두지 않고 '사양지심'의 예를 이루는 이들.
뭐, 능력이 없어서 더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기가 쉽겠지만,
가진 게 없으니 더욱이 꾸밀 수 없는 것이 현실이겠지만,
그래도, 거기서, 세상 사는 묘미를 화자는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 광명, 시인은 모두 하느님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이겠지요.
이기심을 버리는 일이 시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일이 되는 것일까요?  

좀 포인트가 다르지만, 이면우의 <거미>도 한번 엮어서 보시죠.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 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 오니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을 안다
캄캄한 배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꿈틀대는 걸로 바꿔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면우, 거미>

이 시의 화자는 <마흔아홉>입니다.
마흔아홉이 되면서, 스스로 삶에 대하여 반추하여 보겠지요. 되새김질, 꺼억~~
양철나무꾼님, 이 연세쯤 되셨나요? 온라인 나이는 도통 알 수가 없어서리... 

저도 아직 몇 년 있어야 마흔아홉입니다만,
서른에서 마흔까지...지금껏 나이가 별로 아쉽지 않았거든요.
근데, 마흔아홉, 하면, 컥, 할 거 같아요.
쉰이잖아요. 옛말에도 지 운명도 다 안다는 쉰.
신 세대의 반댓말, 쉰 세대의 기수. 쉰 살... 에효... 쉰 냄새가 펄펄나는 세대. 

거미줄에 고추잠자리가 걸렸습니다. 불쌍하죠. 파닥이는데...
이제, 불쌍한 '잠자리'가 아니라, 먹고 살기 힘든 '거미의 삶'이 보이는 거죠.
왜, 어려서 보던 동물의 왕국에서 사슴이 맨날 불쌍했잖아요. 근데 나이 들면, 그러잖아요.
저게 삶이야. 잡는 사자도 고달퍼~   

조용필의 노래 중에서,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있는데요, 저는 그 중 한 대목을 참 좋아합니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찬것 같으면서도 텅비어 있는 내 청춘에 건배!!!  

순오기님, 혹시 계시면, 저랑 건배 한 잔 해 주시죠~ 맥주든, 소주든... ㅠㅜ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찬 것 같으면서도 텅비어 있는 그런 게
인생이란 것을 알아버리는 나이.
그 나이가 마흔아홉쯤, 되지 않나 싶습니다.
그때쯤이면, <올바른 삶>에 대해서도 좀더 시야가 넓어지지 않을까... 이런 미몽도 갖게 되구요.   

화자는 흔들리는 거미줄을 봐요.
그 거미줄이 거미뱃속의 열망이고
그 열망을 뭔가 보이는 걸로 바꿔놓고자 거미는 밤을 지새워 필사적으로 거미줄을 짜요.
이제 곧 겨울이 바로 올 것이므로, <가을 거미>는 외롭지만 필사적이 되는 겁니다. 
그걸 보다가, 화자는 다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가지요. 

마흔아홉쯤의 조금은 지혜로운 시선이 느껴지지 않나요?
이 시인의 마음이 느껴지시나요?
거미줄을 바라보면서도 '아, 가을 거미의 필사적 거미줄'이 눈물겨워 시가 나오는구나...
나도 마흔아홉이 되면, 조금 쓸쓸하면서도 뭔가로 가득차 있어야 할텐데... 이런 반성도 불러오는 시이기도 하구요. 

제가 첨에 알라딘에 글을 올린 것이 서른 다섯 살 무렵입니다.
그때, 더 나이먹기 전에 책 좀 읽고, 잊기 싫은 것은 글로 좀 적어 두자... 이런 의도로 리뷰를 쓰기 시작했거든요.
그것이 이미 2천 편이 넘어버렸는데,
그 독서들이 요즘 시 특강에 구석구석 짱박혀 있는 것 같네요. 

자, 오늘의 주제는 '어떻게 살까?'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던 건데요.
이야기가 어디서 어디로 흘렀는지...  

아이는 어머니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이 있답니다.
아이의 인생인데, 아이가 어머니가 원하는 것을 눈치껏 한다는 거죠.
요즘 말하는 엄친아(엄마친구아들)가 자식 적은 한국 사회의 병폐로 드러난 결과물이라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인간상이 될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일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먼저, 나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
극기복례,를 항상 가슴에 품어 두고 살아야겠단 생각을 합니다.
이기심을 이기는 일, 이것이 인간다운 삶의 단초다~ 이렇게요. 

그리고, 이렇게 시 특강을 하는 것은, 그걸 나 혼자만 할 게 아니라,
두 사람이 하고, 세 사람이 하고, 그러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겠다, 이런 생각이지요.  

어느 것이 먼저일 수 없는 것이 삶의 방식인 것 같습니다. 
세상이 맑아져야 살기가 좋은 건지,
개체가 노력해야 세상이 살기 좋아지는 건지...
에른스트 에셔의 <그리는 손>처럼 먼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함인지도 모르구요. 

마지막으로 '함께 사는 삶'을 생각해 보면서, 도종환의 <담쟁이>를 덧붙입니다.
오늘의 <엔딩 포엠>입니다.
이제 이 정도 시는 설명없이도 행복하게 읽으실 수 있는 정도는 레벨업 되셨죠?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담쟁이> 

우리, 손을 잡고, 담쟁이처럼 삽시다.
물 한 방울 없고,
절망의 벽이라고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말할 때,
그 벽을 넘는 힘은 


여럿이
함께
손을 잡는 일이란 거 

사는 일이 힘들 때,
가끔, 저는 이 영상을 봅니다.
우리가 힘들었던 80년대를 봄비처럼 촉촉하게 적셔주었던 이문세와 이영훈의 만남을 말입니다.
구호만 난무하던 시대, 따뜻하게 정서를 적셔주던 노래들을요...

 

날이 무쟈게 덥습니다.
어디는 비도 오고, 난리라더니... 

휴~ 건강한 여름 보내고들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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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7-27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 캔맥주 하나 마시고 들어와 읽어 내리다가 헉~~ 했다지요.^^
어찌 아셨어요? 제가 한 잔 한다는 걸~ ㅋㅋ
이 시간은 글샘님은 취침중일테고...난, 이미 마셨을 뿐이고!
다음에 만나면 소주든 맥주든 건배합시다!
명강의 감사합니다~~~
오늘은 고은에 백석에~ 양철나무꾼님이 저를 위해 올려 준 이면우의 거미도 나오고
도종환의 담쟁이로 마무리~~ 좋아요!!

글샘 2010-07-27 06:32   좋아요 0 | URL
요 위의 비밀글이 누구 거게요? ㅍㅎㅎ
따님이 이 글을 읽고요...
엄마가 매일 '알라딘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있어~', '엄마는 요즘 필요한 대부분의 공부를 알라딘에서 한다~'하고 하셨다는데요. ㅋㅋ
적당히 맞장구 쳐드리며 텔레비전이나 보고있었대요. (순오기님 말씀을 개무시했군여. ㅋ)
근데 이제 민주양도 알라딘에서 공부하게 될 거 같다고 적었습니다. ㅍㅎㅎ(비밀글 중계방송 중)

제가 한 천리안 하지 않습니까? ㅎㅎㅎ
원래 샘들은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뭐 먹어도 다 압니다.
근데, 허걱, 맥주를 마시는 수강생은 첨이여요...
명강의라니... ^^ 오늘은 그닥 어려운 시들이 아니어서... 뭐, 설명이 별로 필요없죠.

순오기 2010-07-27 20:22   좋아요 0 | URL
하하하~ 선생님이 비밀글을 만천하에 공개하면 어떡해요?
우리딸한테 일러버릴까 보다!ㅋㅋ
우린 오픈 마인드라 뭐 괜찮습니다~~~~
비록 쪽 팔려도 거짓말은 안하고 사니까요.^^

글샘 2010-07-27 20:39   좋아요 0 | URL
너무 이뻐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ㅎㅎㅎ 비밀이라는 걸...
뭐, 비밀로 할 거도 없구만, 엄마 욕이라 생각했나?

순오기 2010-07-30 16:5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우린 대놓고 흉도 보고 욕도 하는 사인데~ㅋㅋ

양철나무꾼 2010-07-27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번엔 마기님의 답시가 늦게 올라오네요~
글샘님 특강에서 마기님의 시가 제겐 뗏목 역할을 했었는데...^^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찬 것 같으면서도 텅비어 있는 그런 게
인생이란 것을 알아버리는 건...좀 조숙하면 마흔 아홉이 아니어도 가능하던데요~

마기님처럼 근사한 시를 쓸 재간은 없고,요며칠 입에서 맴돌던 시 한편 붙여넣습니다.

독무 (獨 舞)

- 엄 원 태 -


검붉은 벽돌담을 배경으로
흰 비닐봉지 하나,
자늑자늑, 바람을 껴안고 나부낀다

바람은 두어 평, 담 밑에 서성이며, 비닐봉지를 떠받친다
저 말없는 바람은, 나도 아는 바람이다

산벚꽃잎들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던 때,
눈물 젖은 내 뺨을 서늘히 어루만지던, 그 바람이다

병원 주차장에 쪼그리고 앉아 통증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속수무책, 깍지 낀 내 손가락들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곤 하던, 그 바람이다

제 몸 비워버린 비닐봉지는
하염없고, 하염없는 몸짓을 보여준다
저 적요한 독무는
상처의 발가락마저, 두 발마저, 지워버렸다

너 떠난 후, 내 마음이, 내 마음의 풍선이 저렇다
허공에 나부낀다, 하염없다
텅, 비었다


- 계간 <신생>2008년 봄호 발표 -

글샘 2010-07-27 06:1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잘 사는 법' 하는 바른생활 주제가 나가서 그런지, 소식이 없으시네요. ㅎㅎ
근데 이게 정상 아닐까요?
다른 때는 하도 빨리 올라와서 제가 다 놀랐다니깐요?

아, 저 바람, 나도 알아요.
병원 주차장에 쪼그리고 앉아 가슴의 통증이 가라앉기 기다릴 때,
그 바람이 속수무책, 깍지낀 내 손가락들을 가만히 쓰듬어주던 그 때,
하얀 목련꽃잎들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쪼그리고 앉았는데,
눈물 젖은 내 뺨을 서늘히 어루만지던 그 바람을요.

그가 떠난 후, 내 마음이, 텅, 비었던 적이 저도 있었습니다.
아, 좋은 시를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양철나무꾼님 시도 뗏목 역할을 제대로 하겠는데요. ^^
그러면, 양철님은 몇학년몇반이신 거예요? ㅎㅎ

양철나무꾼 2010-07-27 20:57   좋아요 0 | URL
제가 마녀고양이님,마기님이랑 같은 띠라는 건 알았는데,
얼마전 누가 이영애도 우리랑 동갑이라고 알려주더군요~^^

글샘 2010-07-27 20:59   좋아요 0 | URL
아, 동갑이시군요. ㅎㅎㅎ

낮에나온반달 2010-07-27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조금 덜 누리더라도 함께 손잡고 가야할 텐데 말입니다.

세월은 사람을 그저 스쳐지나가지는 않는 법이랍니다.
나를 지나간 세월의 흔적이
다른 사람에게는 약초가 되기도 하는 삶이었으면 하는 소망.

수강생들에게 내밀어 주시는 글샘님의 손,
이 특강을 들으면서 느낍니다.


글샘 2010-07-27 13:1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제 말이요.

아, 나를 지나간 세월의 흔적이
다른 사람에게는 약초가 되기도 하는 삶이었으면...

이런 게 그냥 시네요. ^^
제가 손 내밀면 잡아 주시겠죠? ^^

stella.K 2010-07-27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아이들에게 이렇게 강의하시나요?
멋진 프레젠테이션이어요.^^

글샘 2010-07-27 13:59   좋아요 0 | URL
당연히 이렇게 하죠. ^^ 수업시간에 하던 거 울궈먹는 건데요. ㅎㅎㅎ
근데, 제 맘대로 시를 모아서 이렇게 하진 않구요. 교과서에 있는 거 설명을 이렇게 합니다.
수업 시간엔 재미없어해요. 특히 남자애들을... 흐유 =3=3

stella.K 2010-07-27 14:05   좋아요 0 | URL
학교가 남녀공학이신가 봐요.^^

글샘 2010-07-27 14:12   좋아요 0 | URL
지금은 남학교입니다. ^^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모르는 사람과 결혼했네,
속절없이 애닲고 괴로운 삶의 끝에 쌓여가는 건
추억이 아닌 아픔 뿐
방 한 구석에서 눈물짓는 나날들
반만이라도, 그저 남들의 절반만이라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함께 공존하는 사람으로 대해줄 수는 없는 걸까. <웬디양 님> 

단:단하게 굳어가는 그들의
속:마음, 그 아픔과 두려움을 짐작할 수 없구나. 삶과 꿈의 행복을 찾아 왔을 텐데...
추:방이란 무섭고 쓸쓸한 그 길을 피해 오늘도 마음 졸이며 사는 그들.
방:방곳곳 이제 우리 대한민국의 일부가 되어가는 그들을
반:대만 하는것을 멈추어감으로써 이해하고 보듬어주며 한 공동체로 끌어안자
대:한민국은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다. 우리에겐 그런 능력이 있고 그럴 때가 왔으니까. 그래야 하니까.<루체오페르 님> 

단단히 마음먹고 결정한 일이었습니다.
속상한 일 억울한 일 다 참을 자신있었습니다.
추스를 수 없는 외로움의 고통은
방긋 웃는 가족사진 한 장으로 달래려했습니다.
반듯한 차림의 한국인 남편은 정신병자였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죽으러 온게 아니었는데...... 돌아가고 싶습니다. <차좋아 님> 

단속은 신분이 불안정한 외국인에겐 생존의 위협이다
속절없이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며
추방의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다
방구석에 누워있어도 단 하루도 편히 잠들 수 없는 불면의 날들
반드시 신분 문제를 해결해야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살 수 있었기에 서럽고 고통스러워도 참았던 그녀였다. <노피솔 님> 

단단한 사람은 없습니다.
속절없는 폭력을 이길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추가로 이어지는 흉기에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방방곡곡 그 어머니의 통곡이 울려퍼져야 합니다.
반드시 그녀의 죽음을 헛되이 하면 안됩니다.
대한민국에 인권보호가 당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nabee 님 따님>

단정한 미소의 당신은
속아서 결혼을 했군요.
추한 인간의
방망이에 사라진 당신의
반듯한 미소를
대한민국은 두 번 사라지게 하지 않을겁니다..<nabee 님>  

단숨에 그렇게 가버릴 것을 어찌 알았을까.
속상한 가족들을 생각하니 내 잘못이다 싶구나.
추운 마음 달래가며 그래도 살아보려 했건만,
방식이야 어떻든 나는 그대의 아내인 것을.
반드시 나와 고향에 있는 내 가족들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지만,
대한민국, 나는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네. <아프락사스 님>


단단한 줄 알았는데
속 깊어 끝이 어딘줄 몰랐는데
추운 겨울도 꼿꼿했는데
방긋 웃던 꽃봉오리 너였는데
반만 보인 우리들의 얼굴들을
대신해... 미안해...미안해<종이봉지 님> 

단 속이라.
속 도전이 생명이겠죠?
추 노꾼들을
방 방곡곡에 풀어서
반 푼어치의 가치도 없다 생각하는 그들을 추방하겠죠?
대 가리에 무엇이 들었나요? <saint236 님> 

단 한 번
속아서 온 길.
추레한 옷과
방황하는 눈빛.
반드시 돌아가리라던 고향엔
대문 앞 꽃만 떠올리고 돌아설 뿐...<내 꺼야~> 

단 순히 한국에서 일하고 싶을 뿐입니다
속 으며 일합니다
추 하게 삽니다
방 한 칸에서 생활합니다
반 겨주는 친구들도 없습니다
대 체 저는 어떻게 할까요?<머큐리 님 큰아들>

단 지 일을하러 왔을 뿐입니다. 결국
속 에 넣는건 싸구려 음식들
추 한 모습보이면서 일을 하는
방 방곳곳에 있는 외국인 들에게
반 가운 음식과 반가운 집, 반가운직업을
대 등하게 차별하지 말고 줘라! <머큐리 님 작은아들> 

단 하나의 희망을 갖고
속절없이 고향을 떠나왔습니다.
추방이라니요?
방법이 그것뿐이던가요?
반드시 다른 방법이 있을 것 입니다.
대안을 찾아보자구요. <꿈꾸는섬 님> 

단 단히 맘먹고 떠나온 길
속 상하고 힘든일도 고향생각하며 참을텐데
추 방이라니 너무합니다
방 법을 다시 생각해서 함께 살 궁리를 해야지요.
반 갑게 맞아 3D 업종에서 일 시켰던 걸 생각해보세요.
대 한민국 이름에 걸맞게 통 '큰' 행동을 보여주세요. <책세상 님> 

단념도 했습니다
속알맹이도 빼고 살았죠
추골 빠지도록 노력했습니다만
방랑하는 인본,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겨운 이나라에선
반노 신세가 따로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제게 그런 나라였습니다 <마기 님> 

단: 시간에 변하지는 않겠죠.
속:단도 이르겠죠.
추:측컨대 당장은 그대로일지도 몰라요. 그래도
방:향만 제대로 잡는다면
반:드시 옳은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거예요.
대:물림되지 않게, 이 비극을 바로잡도록 함께 노력해요.
<마노아 님> 

단념하지 마세요. 좋은 날 있을거예요
속단해서 포기하지 마세요. 아직은 좋은 사람도 많답니다.
추방하면 어쩌냐구요? 도와 드릴께요.
방황하지 마세요. 우리는 하나잖아요.
반성할께요. 지금까지 무관심 했음을.
대한민국에 오심을 후회하지 않도록 만들어 드릴께요. <세실 님>

지 그대가 외국에서온 여자라는 이유로
속인 사람들을 대신해서
추모하겠습니다.
방관자의 모습을 보인 저로서는
반성하고 있습니다.
대신 이제라도 당신들에게 친구의 손을 내밀겠습니다.
<히카루 님> 

단 : 단지 남의 나라에 돈벌러 왔다고 사람들은
속 : 속없는 사람 취급을 하지만
추 : '추한 것은 피부색이 아니란다'
방 : 방실 웃는다, 까맣고 곱슬거리는 머리칼을 가진 딸아이가.
반 : 반듯하게 몸가짐을 정리하고 거울앞에 서면 나는 내가 인간임을 안다. 나는,
대 : 대한민국의 이주노동자이다. <silvia 님> 

단 아했지요
속 도 꽉 찬 일등 신부라고
추 천하는 이도 많았답니다.
방 긋방긋 웃는 미소까지 겸했기에
반 드시 다 갖춘 신랑이 아니더라도
대 한국민으로 큰 욕심없이
단 정하고
속 은 알찬 가정이루며
추 하지 않고
방 글방글 웃는 모습으로
반 듯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대 단한 꿈이었을까요? <전호인 님>

 

 정말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모두들 감사합니다. 

이 이벤트는 즐겁자고 한 것이 아니어서 저도 좀 숙연합니다. 

웬디양/정의란무엇인가, 루체오페르/타임패러독스, 차좋아, 노피솔, 나비/발자크평전/고민하는힘,  

아프락사스/희망의인문학, 종이봉지/조선지식인의서가를탐하다, 쌩236/1차대전사, 머큐리, 꿈꾸는섬/한국의책쟁이들,  

책세상/선비학자이야기, 마기/그림속에노닐다, 마노아/메리스튜어트, 세실/독서의즐거움, 히카루 

실비아/제1권력, 전호인/글쓰기공작소 님...  

모두 17분께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트랙백 걸린 페이퍼에서 <선착순>으로 1권씩, 나비님과 머큐리님은 2권씩 

받고 싶으신 책과, 주소(우편번호 포함), 이름, 전화번호 3종세트를 비밀댓글로 남겨 주시면... 

보충수업을 열심히 해서 택배비를 충당하겠습니다. ㅎㅎㅎ 

혹시 책이 이미 선택된 경우, 제가 댓글을 달면 다시 선택해 주셔야겠습니다. 

남는 책은 제 맘대로 2권을 보내드리는 발송사고도 발생할 수 있으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에게 연락처를 남기시면 스토킹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알아서 예방하시기 바라며,
답례품으로 저에게 선물을 보내실 경우, 반송시키는 경우는 절대 없음을 알립니다. ㅍㅎㅎㅎ 

여름이 무쟈게 덥습니다.
이번 이벤트로 국민의 2퍼센트가 넘는 이주 노동자들의 삶에 더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참여해 주신 여러분,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요기는 보성 벌교읍의 모텔입니다. 오늘 거시기 꼬막식당이란 좀 이름이 거시기한 식당에서,  

맛조개정식을 먹었는데, 죽여줍니다. 모텔은 그랜드모텔이 깨끗합니다. 다른 여관은 혼령을 만날 분위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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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6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7 0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0-07-27 06:05   좋아요 0 | URL
고민하는 힘으로 보낼게요.

2010-07-27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0-07-27 13:10   좋아요 0 | URL
중1, 초4에 알맞는 책으로 골라서 보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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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무더운 여름날입니다. 
앞산에서 매미들이 참~~~하게 찌~~~소리를 내고 있답니다.
매미들은 더위를 보고 가을의 끝을 느끼면서 짝을 찾는 저 소리를 낸다지요.
매미들도 생각하는 가을을 우리도 생각해보면 좀 시원해 질는지요. ^^ 

뭘 떠들었나 봤더니, 뭐, 삶과 죽음, 존재의 본질, 이런 데까지 왔으니, 이제 뭘 할까요?
오늘은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아니, 강은교의 '사랑법'을 통해서, 사랑이란 도대체 어떻게 생긴 놈인지,
형상화될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 볼까 합니다.  

우선, 강은교의 <사랑법>을 한번 낭송해 보세요~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강은교, 사랑법>

뭐, 사랑에 대해서... 모르시는 분은 없잖아요.
다들 잘 아시죠. 사랑. 

그런데, 이 시의 제목은 사랑법,입니다.
영어로 하면, Art Of Love 정도 되려나...
'사랑의 기술', '사랑하는 법' 이런 말이라니, 좀 딱딱해 보이지만,
왜 그런 프로그램 있잖아요. 
생활의 달인.
어떤 기술에서 완벽한 경지에 이른 달인의 몸짓이나 동작을 보면, 그건 예술이죠.
캬, 예술이다.
그런 거 아닐까합니다.
사랑에도, 햐~~ 예술이야... 이런 경지가 있을까요? 

제가 이 시와 어울리는 사진을 찾으려했는데, 위에 석굴암 본존불 사진을 올렸습니다.
이 시에서 제가 주목한 단어는,
바로 '실눈'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실눈.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이미지 검색을 했는데,
제 마음에 꼭 드는 부처님 실눈을 올린 사진은 못찾았습니다.
저 사진으로 대략 이해만 해 주시길...
 

왜 자식 길러 보면 잘한 일에는 무작정 칭찬을 아끼지 않지만,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모든 사건을 야단치지 않잖아요.
어디까지 가나 두고 보자... 이러면서.
그러다 보면, 또 자식이 제 자리로 오기도 하구요.
그런 부모 마음 비슷한 것이 '실눈으로 보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통일 신라시대의 부처님은, 가장 화려한 불교 융성기의 표현입니다.
이 시대의 부처님은 지존의 위치에서 불행의 도탄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생을 내려다 봅니다.
깨달은 분으로서의 부처님은 직접 도와주시진 않죠.
그저,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바라보시는 건데,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매일 욕심에 끄달리고, 그 욕심이 집착을 낳고, 집착이 어리석을 행동을 하게 만들고...
그 인간을 두 눈 뜨고 도저히 볼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부처님의 사랑법은, 실눈으로 보기, 가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에 이른 겁니다. 

천 개의 손으로 그 중생을 도와주라고 보내신 분이 바로 천수관음보살이죠.
우리의 현세를 돌보신다는 관음보살님. 
관음..이란 말에는 또다른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너희의 어리석은 일, 불쌍한 일은 내가 모두 보고 있다.(觀)
그리고 너희 마음아픈 일, 가슴 찢기는 소리를 내가 모두 듣고 있다.(音)
너희의 평안한 삶을 이루기 위하여 내가 끝없이 도와주고 기원하겠다. 천 개의 손으로...(千手) 
참고로, 미래불은 '미륵'이고, 저승을 돌보는 부처는 '아미타불'이 되겠습니다. 

강은교의 사랑법을 제각기 해석할 수 있겠지만,
저는 부처님의 저 반개한 눈처럼,
실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바로 입장바꿔 생각해 보자는 <역지사지>가 되기도 하겠지요.
내 눈을 바라봐, 넌 할 수가 있고, 이런 건방진 태도를 부처님이 어떻게 보실까요? ㅋㅋ
잘못한 건 대충 봐 넘겨주고, 좋은 건 칭찬 대따 하고... 이렇게...
잘못한 거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는 사람, 참 까칠하잖아요. 아무리 그가 옳다 하더라도...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것/ 침묵할 것

떠들지 말고, 침묵하면서 보고 있는 것.
다 알면서 조용히 있는 것. 이것이 사랑일까요?
꽃, 하늘, 무덤... 존재와 이상과 죽음에 대하여... 아는 체하지 말라는 말일까요?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대 살 속의 날개... 이미 오래 전에 굳어버린 그 날개.
아, 나는 그것이 마음 아픕니다.
내 살 속의 무한한 가능성, 그 날개를 어디서 잃어버린 것일까.
마기님, 당신의 살 속의 무한한 가능성의 날개는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요.
또 우리의 마음은 쉽게 망상에 빠지는 꿈에 잠기고, 어디로 자꾸 흐르고, 욕심에 끄달리고 마는 것인지요.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네가 부처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양철나무꾼님, 부처님 맞으시죠?
근데, 니가 부처야~ 이런 말 많이 들으셨지만, 양철나무꾼님, 제 특강 들으면서 그러시죠?
글샘은 참 훌륭한 국어샘이시구나! ㅋㅋ 대단한 지식인인걸~(완전 자뻑에 빠져 살고있는 중...) 
근데, 난 왜 시라곤 이렇게 아는 게 없냐~ 에효 =3=3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는 구절에서 저는 부처님의 시선을 느낍니다.
그대 등 뒤에서 보는 시선.
뭘까요?
그것은 바로 '나의 시선'이 아닌가요?
내가 보는 시선.
내 등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보는 납량특집괴기 시리즈 말구요. ^^
내 등 뒤에서 저 하늘을, 저 꽃을, 나의 꿈을 바라보는 시선.
그것이 부처님의 시선이 아닐까...
상당히 주관적인 해석인 줄 저도 압니다만,
실눈 뜬 사랑,
그대 등 뒤의 가장 큰 하늘...
이런 것들을 엮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는 이야깁니다.   

   
  자, 그렇다면, 강은교는 <사랑>을 무엇으로 형상화한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실눈,입니다.
보이지 않는 '사랑'이란 추상을,
떠올릴 수 있는 '실눈'이란 구체로 형상화한 것이죠.
 
   

사랑, 이러면 보통 플라토닉 러브... 뭐, 이런 말도 있고, 좀 낮은 건 에로틱한 러브... 이런 거도 있죠.
플라톤은 <국가>라는 책을 쓴 그리스의 철학자인데,
플라톤 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죠?
바로 이데아 인데요.
데미우르고스(조물주)가 이데아(이상적 형상)에 따라 세상을 창조했다고 해요.
이데아는 '완벽한 형상'으로 상정된 것이랍니다.
이데아와 상반된 것이 '감각'적인 세상이죠.
그런데, 플라톤이 인류 문명에 끼친 가장 큰 공적이라면, 역시 세상을 둘로 나누는 방법을 체계화했다는 것입니다.
좀 어려운 말로 이분법. ㅋㅋ 안 어렵죠?
그의 국가는 바로 세상을 둘로 나눈 거죠. 국가와 안 국가, 국민과 안 국민, 내국인과 외국인, 식민지시대 국민과 말 안 듣는 국민. 그래서 만든 학교가 <국민 학교> 천황 폐하의 뜻을 받드는 국민을 만드는 학교였죠. 우리가 다 다닌... 

플라토닉 러브...란 이상적인 사랑이고, 이성이 지배하는 사랑이란 의미일 텐데요.
우리는 몸뚱아리를 지닌 감각적인 존재이므로 이런 사랑을 하기는 쉽지 않겠지요. 바람직한 거도 아니구요.
플라토닉이란 말 그대로, 사랑을 이렇게 둘로 나누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기도 하죠. 

조정래의 아내인 김초혜 시인의 <사랑굿 1>도 유명한 시입니다. 

그대 내게 오지 않음은
만남이 싫어 아니라
떠남을
두려워함인 것을 압니다

나의 눈물이 당신인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
감추어 두는
숨은 뜻은
버릴래야 버릴 수 없고
얻을래야 얻을 수 없는
화염 때문임을 압니다

곁에 있는
아픔도 아픔이지만
보내는 아픔이
더 크기에
그립고 사는
사랑의 혹법(酷法)을 압니다

두 마음이 맞비치어
모든 것 되어도
갖고 싶어 갖지 않는
사랑의 보(褓)를 묶을 줄 압니다. <김초혜, 사랑굿 1> 

글쎄요. 김초혜 시인이 이 시에서 다룬 사랑은 조금 마음아픈 사랑이기도 하네요.
그렇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이 무상한 것이라면, 모든 사랑은 이별이 예정되어있다는 '회자정리'도 이해가 가겠지요. 

사랑은 우리 마음에 '버릴래야 버릴 수 없고, 얻을래야 얻을 수 없는 화염'을 던져주기 때문이라네요.
불경에도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고 했지만, 사랑을 '화염'이라고 표현한 것은 참 멋지지 않습니까?

그립고 사는 사랑의 혹법.

히야~ 그리워하면서 살아가는 사랑의 혹독한 법리.
이 시인이 조정래랑 살면서 다른 남자 생각을 하면서 썼다면 좀 유치할 수 있지만, 
혹시 이 시인은 조정래랑 살면서,
조정래의 영혼 세계에 다가서지 못하는 자기의 마음을 쓴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저는 소름이 다 오싹 돋는데요. 

네가 곁에 있어도
나는 네가 그립다 <류시화> 

이런 경지가 아닌가 해서요. ^^
모두를, 당신의 모두를 가지고 싶은 큰 사랑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서 아무 것도, 당신의 아무 것도 가지지 않기로 마음 먹은
그런 마음, 그런 사랑이 바로
시인의 <마음의 보자기>입니다.
그런 마음의 혼란을 겪으면서, 시인은 <사랑법>이란 단정하면서도 과묵한 용어 대신
<사랑굿>이란 좀 혼란스러우면서도 흥청거리는 용어를 골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 poetry>를 '세계의 자아화'라는 말로 풀어쓴 사람이 있습니다.
시는 세계에서 일어난 모든 고통스런 일, 즐거운 일, 기억할 만한 일들을,
자아 속에서 녹여내어,
자기의 언어로, - 독백으로- 풀어낸 것이란 말이지요.
세계의 자아화 하니깐 어려워 보이지만,
세계의 일을 자기의 말로 풀어본 것, 하면 별거 아니죠. ^^ 

지난 시간에 조삼모사 수법을 가르쳐 드렸지요?
좀 복잡한 시 읽고 나면, 소화도 잘 되는 말랑한 시를 읽어야 하는 법입니다. 조삼모사 ㅋ 

사랑시 하면 역시 김남조의 <너를 위하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건 교과서에도 오랫동안 실려있던 노래입니다.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 한다

가만히 눈뜨는 건
믿을수 없을 만치의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 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너를 위하여, 김남조>

이분 우리 대학 선배님인데요. ㅋㅋ 대학 다닐 시절부터 연애깨나 하셨다더군요.
연애시의 달인이시죠.
이런 시는 다들 이해가 가시죠?
아침에 눈을 뜰 때의 '축원'
'환한 영혼의 내 사람' ... 위험한 짐승 말구요. ㅋㅋ 

저는 이 사람의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보는> 시선이 또 눈에 잡힙니다.
제가 뭘 생각했을까요?
어떤 단어??? 

   
  네,
실눈, 
입니다. ^^
청맹과니의 두 눈 번히 뜨고 있으면서도 앞에서 일어나는 일도 알아채지 못하는 어리석은 눈 말구요.
실눈.
가느스름 뜨고 있으면서도,
볼거 다 보는 그런 눈이요. 
모르는 체 하면서, 다 아는,
마기님이 이야기하신 <진짜> 말입니다.
 
   

사랑의 그 많은 것들 중에서...
가장 진한 사랑은 뭘까요?
남녀 간의 사랑을, 유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기 복제를 위한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유전자의 입장에서 자기 복제품을 지키기 위한 노력일 것이구요.
어떤 것이 더 클까요?
당연히 부모의 사랑이지요.
자기 복제품을 지키지 못하면, 대체불가능한 상황이니까요.
이성간의 사랑은... 유전자가 아무리 마음아파 하더래도, ㅋㅋ
대체 가능성이 열려 있지 않나요?
어떤 영화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이런 대사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유전자한테 물어보면 답해 주겠지요. ㅎㅎㅎ 

대체 가능성 때문이란다...   

그럼 자식의 부모님에 대한 사랑은, 과연 어떤 걸까요?
우리가 흔히 효,라고 하는 덕목 말이지요.
식물도 수분이 이뤄지고 나면 급격히 시들듯이, 인간도 자손을 낳고 나면 급격히 노화가 일어납니다.
뭐, 텔로미어... 이런 거가 짧아진다나요?
유전자가 볼 때, 자식이 부모를 사랑해야 할 의무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
낡은 개체는 빨리 노화시키는 게 유전자의 업무이니까요.
그래서 불교나 유교에서 강박적으로 '효'를 강조하는지도 모르지요. ^^

우리 몸 속의 DNA는 디옥시리보 뉴클리어 애시드의 약자입니다. 디-는 2구요, 옥시...는 옥시크린 할때의 산소... 뉴클리어 애시드는 '핵산'이라 하죠. 저는 이 용어의 '산'에서 새콤한 맛을 느끼는데요.
사랑의 새콤한, 또는 짜릿한 전율 같은 것은 유전자 속에 원래 담겨있던 거 아닌가 싶네요. ^^ 

제가 실업계 고등학교에 한 3년을 근무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좋은 시절이었어요.
종일 책도 많이 읽었구요.(1년에 400권 이상 읽은 적도 있습니다.) 피아노도 배울 정도로 여유가 있었지요.
아쉬운 점은,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가고 싶던 '산티아고 가는 길'을 못 가본 거지만요. 기회는 언제든 오겠죠.
아들 녀석이 공부를 잘 안 해서,
제가 직접 가르친 적이 있었습니다.
근데, 맨날 싸우는 거예요. 저랑 아들이랑.
아니, 싸우는 게 아니라 제가 일방적으로 아이를 비난하는 상황이었지요.
그래서, 아, 이건 아니다...
나는 집에 가면 아빠로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아이에게 선생님의 <페르소나>를 함께 보여주면, 서로 될 일이 아니다.
이러고, 좋은 학원을 수소문해서 거기로 보내고 말았답니다.
'페르소나'는 가면,이란 뜻이었는데,
그 사람의 역할에 따라 필요한 가면같은 인격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엔 실눈뜨고 보기, 를 잘 하고 있답니다.
실감나더라구요. 실눈뜨고 보니깐 아들에게 아빠가 될 수 있는데, 교사로서의 페르소나를 같이 가지고 있으려니 참 못할 짓이더라구요.  

아, 오늘은 사랑 이야기를 늘어놓는다고 한 것이
뭐, 부처님 이야기도 한참 했고...
예수님 이야기는 안 했군요. ^^ 

예수님의 사랑이야말로, 혁명가의 그것이 아닐까요?
실눈조차 뜨지 못하는,
자신의 온몸을 바쳐 지키는 소신.
'교수대로부터의 리포트'라는 책이 있는데 말이죠.
거기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오늘이 혁명의 마지막 밤이고, 그대가 혁명의 마지막 전사가 될 지라도, 혁명에 앞장서겠는가?
그런 자만이 진정한 혁명가다.(뭐, 대략 비슷한...)
예수님이야말로, 자신을 다 바쳐 사랑을 구현한 존재가 아닐까... 

제가 리뷰에 간혹 인용하는 구절로 '허니가이드'란 것이 있습니다. 

"꽃들을 보면, 대여섯 장의 꽃잎의 특정한 꽃잎에 특정한 점들이 쿡쿡 찍혀있다. 
그 점들을 <허니 가이드>라고 하는데, 그 점들은 대개 수술의 위쪽(햇볕이 비치는 쪽) 꽃잎에 자리잡고 있다.
곤충들이 보기에, 허니 가이드는 자외선의 영향으로 번쩍번쩍 빛을 내게 되어있다고 한다.
그래서 꽃들이 한창 에너지를 붉은 빛깔에 쓰고 있을 때, 곤충들이 허니 가이드를 따라 날갯짓을 하면서 꿀을 빨아들이는 동작에 따라 그의 날개와 다리들에 수술에서 꽃가루가 묻어 암술머리에 붙게 된다고 한다. 꽃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수술과 암술들은 한결같이 허니 가이드를 따라 휘영청 구부려져 있다. (김규항의 예수전 리뷰에 내가 쓴 글 재인용)"

 

제가 쓰는 글들이,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허니가이드'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이창동 감독이 쓰려고 했던 <시 poetry>란 것 안에는,
인간다운 삶의 '그림자'가
지난 시간에 다룬 '존재의 본질'에 투영되어 있는 법이거든요. 

인간들이 세계에서 감각적으로 느낀 것들을,
센스가 뛰어난 작가들이 느낀 세계를,
그들의 언어로 형상화한 시들.
이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세계의 <자아화>에 선뜻 다가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제가 허니 가이드라면, 저를 따라와주신 여러분은 꿀벌, 모기, 나비, 날파리...(하나 고르세요. ㅋㅋ)
결국 저와 여러분 사이에서 열매맺는 것은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씨앗'이 되고,
더욱 열심히 광합성하는 여름을 지나서 '열매' 맺는 가을로 가는 길목이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저더러 잘도 끌어오고,
잘도 이어 붙이는 '인용의 달인' 훈장을 수여하시겠다면 기꺼이 받겠습니다. ^^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란 영화가 있었는데요.
어려서부터 엄청 영화를 많이 보던 어떤 감독이 만든 명작 영화를 두고 비판하죠.
야, 너의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들의 '부분부분 조립품'에 불과한 거야...라구요. 

저는 애초에 예술을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만 여러분과 함께, 예술품을 감상하자는 의도에서 시도한 것이구요.
우연히 마기님의 시와 어우러져서 6회나 되도록 이끌려 온 거네요. ^^ 

동박새 좇아, 동박새 좇아
어제는 하루 종일 산을 헤매고
할미새 좇아, 할미새 좇아
오늘은 하루 종일 들을 헤맸다.

산은 산으로 깊기만 하고
들은 들로 아득만 한데
제풀로 피어나는 패랭이 하나
파랑새 좇지 말고 살라고 한다.
풀꽃으로 한 목숨 살라고 한다.

산에서 놓친 동박새,
이 아침 창가에서 울고
들에서 놓친 할미새,
이 저녁 사립문에서 울고. <오세영, 풀잎의 노래> 

전에 <모순의 흙>으로 만났던 오세영 시인의 '풀잎의 노래'입니다. 

이 시의 동박새, 할미새, 파랑새는 모두 이상, 이상향, 꿈... 같은 거겠죠.
그런데, 산으로 들로 헤매고 다녀도...
산은 깊고 들은 아득해요... 밑줄 긋고... 거리감, 쓰세요. ^^
현실세계에서 기쁨을 찾으라는 패랭이의 충고에 따라,
화자는 오늘 아침 창가에서 '동박새'를 발견하구요,
바로 이 저녁 사립문에서 '할미새'를 본답니다.
아, 그냥,  
유레카!!! 아닐까요?
이 노래를 부른 이는 누구일까요?
오세영 말구요.
제목을 보세요.
네, 나는 풀잎이었습니다.
풀잎이, 깨달았죠. 이 아침 창가에, 이 저녁 사립문에,
내가 바라는 모든 행복과, 기쁨과, 간절히 기도하는 모든 영광이 거기 있다구요. 

달나라에 갔는데, 그 돈많은 사장님이, 우주선 고장을 깨달았답니다.
그 사람이 제일 간절히 요구한 상품이 무엇이겠습니까?
산소죠. 산소.
내가 지금 배불리 숨쉬는 이 흔한 산소. 

산소같은 하루 보내세요~~ (납량특집, 그 산소 아닙니다. ㅠㅜ)

산소같은 노래 하나 링크할게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오백가지 멋진 말이 생각나는 법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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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23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살 속의 무한한 가능성의 날개라....

이렇게 글샘님을 통해서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저의 가능성을 찾게 되네요.
내 안에서 잃어버렸지만,
찾을 땐 쉽게 찾아지지 않죠.
마흔이 넘어 이런 멋진 특강도 받고, 소녀같은 설레임에 시라는 것도 끄적거려보고...
누군가 그런 말을 하대요.
마흔의 기적이라고....
기적이야 아무데나 쓸 수 있는 말이지만...
마흔의 기적이란 정말 모자라지도 넘치치도 않는 바로 지금이거든요.
존재의 본질, 삶과 죽음....
그동안의 글샘님의 강의도 숨막히게 멋졌지만,,,
사랑에 있어서도 더이상 멋질 수가 없습니다.
으윽~~숙제는 어케한담?
이번 숙제는 실눈뜨고 해야지~ㅋㅋ

글샘 2010-07-23 21:21   좋아요 0 | URL
소녀같은 설레임... 아, 그러면 제가 성공한 거네요. ㅎㅎㅎ
맞아요. 마흔의 기적. 죽이는 말이네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지금.

그게 산소 아닐까요? 산소...
실눈뜨고 숙제는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ㅎㅎㅎ

글샘 2010-07-24 03:42   좋아요 0 | URL
헐~
마기님 살 속에 정말 무한한 가능성의 날개가 있었나봐~
예의상 빈말로 한 말이었는데, ㅋㅋ
정말 이런 시를 만드는 걸 보면,
날개가 살살 돋아나는 거 같아요. ^^

이 시는, 타고르...같아요. ^^

꿈꾸는섬 2010-07-23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소설이든 시든 노래든 에세이든 그 어떤 것이든 좋으네요.^^

글샘 2010-07-23 21:21   좋아요 0 | URL
사랑에 관한 이야기... 영원한 숙제죠. ^^ 아름답잖아요. 사랑에 대한 이야기.

pjy 2010-07-23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問世間 情是何物 直敎生死相許 (세상사람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생사를 가늠하느뇨?)

사랑을 사랑하다가 세월보내는게 사람인듯 싶습니다~

글샘 2010-07-23 21:22   좋아요 0 | URL
음... 한문이 올라왔군요.
근데... 호랑이띠 맞으세요? ㅋㅋ
한문 전공하셨나?

사랑하다 세월보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구요.
바보같은 사람들은... 사람 미워하다 세월 다 보낸답니다. ^^

pjy 2010-07-27 18:11   좋아요 0 | URL
호랑이띠는 아지만 간발의 차이라 왈가왈부가 소용없겠군요 ㅋㅋ
제가 좋아하는 영웅문에 나오는 사랑에 대한 한탄입니다..
예전엔 그래도 한문이 자연스러웠는데 요새는 맞춤법도 영 개탄스러운 수준에 신문읽기도 쉽지 않습니다ㅠ.ㅠ

글샘 2010-07-27 20:57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럼 용띠시구만.
아, 영웅문이 그때 한창 유행이었더랬죠. 김용이던가요?
신문이야... 잡다한 글들 투성이니깐,
요즘 인터넷에 다 있는데 신문 누가 봅니까? 책을 봐야죠. ㅎㅎ

양철나무꾼 2010-07-23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여기서 不一而不二라고 댓글 달면 블랙리스트 올라가나요?

근데요,샘.
관심법 말고 (얼굴도 안보여드렸는데)관상법 까지요?
제가요,별명이 '엽기토끼'예요.마시마로-머쉬멜로우.
뜬건지 감은건지 알 수 없는 반달모양의 눈 웃음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거든요.
진짠지 궁금해 하실 것 같아서 어딘가에 남겼었던 댓글을 다시 한번 인용하면,
시어머니曰,"눈 그거 찝어주는 거 금방이다~!"

글샘 2010-07-24 03:40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블랙리스트에 올려야겠어요. ^^
샘은 다 알고 있습니다. 실눈 뜨고도 다 본다구욧!!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라구요? 그럼 셋이네요. ㅎㅎㅎ 산소~~~하세요~~~
산소같은 여자가 임신했대요!

비로그인 2010-07-24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실눈으로 보기'.
글샘님의 정의가 바로 시네요. 보태고 뺄 것도 없이 말이죠.
시 한 편의 강의를 듣는데 책 열 권은 읽는 것 같은 포만감...ㅋㅋ

아, 그리고 참고로 저는 날파리 하겠습니다^^

글샘 2010-07-24 21:37   좋아요 0 | URL
저 정의는 시인이 내린 거죠. ^^ 근데 그게 잘 안 보이니깐, 제가 특강에서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특강의 의의를 거기서 찾으려 하는데, 후와님이 포만감이 드신다니깐, 자신감이 생겨서 계속 멋지게 해야겠단 의욕이 막 드는데... 능력이 거기까지 못 가서...
열 권을 읽은 듯한 포만감,은 열 권 정도를 짜깁기 한 것을 후와님이 느끼신 거 같습니다. ㅎㅎ

날파리, 좋네요. ㅎㅎㅎ 날파리도 가루받이에는 벌이나 나비나 똑같은 역할을 하겠지요?

비로그인 2010-07-24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문을 듣고 저도 왔어요, 글샘님~

글샘 2010-07-24 21:47   좋아요 0 | URL
무슨 소문이요? 소문이 어떻게 났는데요 ㅋㅋ
사람들이 하도 시를 안 읽어서, 제가 꼭꼭 씹어서 먹여주는 셈입니다. ㅎㅎ
아가처럼 받아들이셔도 좋지만, 뭐 편하게 읽어 주세요. 맘에 안 들면 욕도 하시구요. ㅋㅋ

낮에나온반달 2010-07-25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만 더 근사해집니다. 강의가.
탄력받으시는 거지요?

글샘 2010-07-25 19:00   좋아요 0 | URL
이러시면... 저는 정말인 줄 안단 말입니다. ㅍㅎㅎㅎ

낮에나온반달 2010-07-26 09:13   좋아요 0 | URL
정말이라고 알고 계시는 걸 저는 알고 있습니다.^^
계속 화이팅!!!! 하시라는 약간의 강요(?)
어디가서 이런 강의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글샘 2010-07-27 20:58   좋아요 0 | URL
알았어요. 정말이라고 믿을게요.
약간의 강요를 잘 받겠습니다. ㅎㅎㅎ
어디 가서 이런 강의 들으면... 저한테도 알려 주세요. ^^
 

더운 여름 어떻게들 지내시고 계신지요.
수박 화채라도 시원하게 해 드시고, 마룻바닥에 누워서 더위를 잊으시기 바랍니다.  

시작은 마기 님을 위한 시 특강이었지만, 점차 슬쩍 들여다 보시는 분의 수가 늘어서 요즘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
뭐, 어떤 분은 더 잘 할 수 있느냐?
헐, 뭘 바라세요? ㅋ 

어떤 분은 책으로 내면 좋겠다.
저는 책 내기 전에 사망에 이를지도 모릅니다. ^^
즐거운 마음으로 하게 그냥 냅두시고, ㅎㅎㅎ
너무 기대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떠드는 말조각들은 제가 22년동안 수업하면서 교실에서 툭툭 내던졌던 말들을
모아모아모아서 적는 것일 뿐이니까요. 뭐, 깊이보다는 넓이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기 님,
마기 님은 좋은 시로 청강생들을 더욱 많이 모아오시기 바래요. ^^ 
이 글을 저 혼자 썼다면, 몇 사람이 보다 말았을지도 모르는데요.
아무래도 마기 님을 위한 시 특강...이라고 하니, 
얘들 뭐야? 이런 사람들이 제법 있었을 거 같네요. ㅎㅎㅎ
근데, 마기 님 시가 계속 붙어 나오니깐, 어디까지 가나 보자...
이런 심보로 보고들 있을 거 같은데요.
마기 님이 계속 좋은 시를 붙여 주셔서, 시 특강 횟수가 계속 늘어나기를 저도 소망합니다. 

음, 어떤 시를 골라서 손질을 해서
양념을 하고,
조리도 하고,
또 어떤 접시에 얼마만한 크기로 세팅을 하고,
테이블보는 어떤 걸로 깔아서
식욕을 돋우는 게 나을까?
를 많이 고민하지 않고 썼던 거였는데, 횟수가 늘다 보니,
제가 가진 레시피는 한계가 있고, 첨 맘먹었던대로
일반적으로 해석하기 좀 어려운 시들을 골라서
제 나름의 풀이를 붙여보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낮에 뜨는 반달 님, ^^
이제 낮에 뜬다고 안 보이는 줄 알지 마시고, 고개 내밀고 보세요~~ 

오늘은 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를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시를 한번 낭송해 보시죠.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꽃을 위한 서시, 김춘수> 

전에 한번 보신 시인가요?
처음 보신 분들도 많으시죠? 
느낌이 어떻습니까?
뭔가 좀 있어 보이죠? 그런데... 그 뭔가가 과연 뭔지, ㅋㅋ
얼굴을 가리고 있는 거 같습니다. 신부처럼... 베일을 쓰고. 

시를 그냥 분위기가 좋아서 낭송하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좋은 감상법입니다.
그게 오히려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시를 꼭꼭 입에 넣고 씹듯이, 딱딱한 부분은 한참을 입에 넣고 불린 뒤에 쪽쪽 빨아먹을 수도 있겠지요.
저는 제가 해석하는 방식으로 읽어드리는 거니깐, 편하게... 편하게... 릴랙스...가 목적입니다. 

이 시는 우선 제목이 멋집니다.
꽃을 위한 서시, 캬,
우리 나라 시 중에 젤 유명하고, 젤 멋진 시가 뭐겠어요?
여기서 다른 시 대면 안 되죠? 윤동주의 <서시>라고 해야죠. ^^
윤동주가 식민지 조국의 현실을 생각하며 어떤 역할도 할 수 없음을 부끄리며 쓴 시.
그 시집의 제목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란 시집이고, 그 처음에 올린 시가 바로 <서시>입니다.
서시의 뜻은 시집의 <서론>격인 시란 뜻인데요. 시집 전체를 아우르는 상징적인 권두시입니다. 

꽃을 위한 서시니깐, 이 시를 누구한테 바친다구요? 네, 꽃입니다.
그런데, 똑, 잘라서 마지막에 뭐라고 했나요?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라고 했습니다.
이 시는 꽃에게 바친 시인데, 그 꽃을 한 단어로 뭐라고 비유했다구요?
네. 신부. 

아, 신부...
마기 님은 어떤 신부셨나요?
지금은 애기들 기르시느라 좀 삭았겠지만, ㅋㅋ 한창시절의 신부...
신부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콩닥거리지 않습니까?
사실 결혼식은 신부를 위한 거잖아요. 엄청난 가격과 엄청난 부피를 자랑하는 신부의 웨딩드레스에 비하면,
양복이든 턱시도든... 신랑이란 참, 들러리가 따로 필요 없다니깐요.^^
이 시는 꽃을 위한 서시, 이면서, 신부를 위한 서시입니다.
아,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아내도 아니고(음, 아내 하니깐 느낌이 팍 삭죠. 한 순간에 ㅍㅎㅎㅎ) 신,부.
신부는 말 그대로 결혼식의 꽃입니다.
환하게 웃는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그날의 꽃.
그날 찍는 수십 장의 결혼식 사진은 사실은 신부를 위한 거라구욧! 야외촬영은 또 말해 뭐한답니까? ㅠㅜ

그 신부를 사랑하는 화자는 신부를 꽃, 같대요. 맛이 좀 갔죠? 

자, 요기까지... 읽고 나서,
이 시의 첫 구절을 읽으시면, 허걱, 하실 겁니다.
아깐 안 보였던 구절이 바로보이죠. ㅍㅎㅎ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캬, 요즘 유행이 짐승아닙니까? '내 귀의 캔디'를 속삭이는 백지영 뒤로 보여주는 짐승돌의 식스팩!!!@_@
꺅, 짐승 중에서도 위험한 짐승.
드디어 첫날밤이 시작되는군요.
오늘의 꽃, 신부와 '시방 위험한 짐승'의 한판 승부. 

자, 19금은 요기까지.
19금을 오빠 방에서 본 여동생이 긴장하면서 그 페이지를 넘겼더니, 뭐가 나왔게요?
20토. 

이제 수능 모드로 돌입합니다. 수능 120일 전이니까요. 좀 경건하게 ㅋㅋ
여기서 '위험한 짐승'은 '윤리적'으로 위험한 짐승이 아닙니다. 이 위험한 짐승은,
지적으로 불완전한 인식을 가진 인간,을 뜻하는 말이에요. 

갑자기 재미없어졌죠?
자, 정말 알고 싶은 신부, 오늘의 주인공 꽃, 그의 베일을 걷고 싶지만,
<존재>의 본질을 알고자 하는 순간, 그 <존재>는 알 수 없는 존재로 되어버리고 만답니다. 

제가 아내와 결혼할 때요.
원래는 제 친구들 중에 여자라곤 어머니밖에 모르는 두 녀석에게 미팅을 제가 주선했거든요.
그랬는데 카이스트 있던 한 녀석이 펑크를 낸 거예요. 토요일인데 못올라오겠단 거죠.
그래서 제가 대타로 미팅을 했는데, 그 중의 한 여인이 지금 저랑 살고 있습니다. ^^ 

처음엔, 얼굴과 이름과 직업 정도만 알았죠. 그러니깐, 그 아가씨가 아는 아가씨가 된 거죠.
그런데, 그날 새벽 1시까지 놀다가 택시로 집앞까지 바래다 드리고(이때부터 흑심이 있었던 건 아니구요. 매너남 ㅋ)
왔는데, 잠자리에서도 계속 얼굴이 얼른거리는 거예요. 전번도 못 땄는데...ㅠㅜ
그래서 다음날 아내가 근무하는 아산병원 응급실로 전화를 해서 아내를 바꿔달라고 했죠.
그래서 그날 오후에 또 만났습니다. 아, 둘이 만나니깐 얼마나 좋던지요. ^^
근데, 그날 딱, 만나니까...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묻고 또 묻고... 그게 사랑인 모양입니다. 알고 싶어요...가 무한대로 나올 수 있는 거.
듣고 또 들어도, 또 묻고 묻는 거... 그래서 아내랑 일주일에 두세번 만나면서 급 친해졌죠.
그런데, 만나고 만날수록 정말 궁금한 건 계속 생기더라구요. 

이런 이야기를 이 글의 화자는 하고 싶은 거랍니다.
인간의 <존재>의 본질은 알고자 하면 끝도없이 알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이런 거요.
나는 쟤 알아~ 라고 하지만, 그 사람과 친해지면 질수록, 정말 아는 건 없는 거잖아요.
심지어, 나는 내가 제일 잘 알아. 하고 뻐기지만, 정말 곤란에 빠지면 정신과 가서 '제가 누구래요?' 이렇게 묻게 되는 거구요. 
나를 알려고 절간에 들어가서 '스님, 제가 누군지 알고 싶어 왔습니다.' 이렇게 물으면,
큰 스님은 '너를 가져오너라, 네가 누군지 가르쳐 주마.' 이러실 걸요?

'위험한 나'는 너를 정말 알고 싶어 해요.
그런데, 내 손이 닿으면, 너는 까무룩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요.

그리고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피었다 지는 꽃.
그 아름다운 꽃은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집니다. 그 예쁜 것들의 한 송이 한 송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지만,
아, 그것들은 그 아이들의 특색을 깨닫기도 전에 져버리고 맙니다. 

이 맘 보드라운 아저씨는 눈물이 나요.
그 아름다운 하나하나의 존재들을 인식도 하기 전에, 져버리고 마니까요.
그래서 이 <이름없음 無名, 무명>의 존재들을 기리기 위해서
나는 불을 밝히고 한밤내내 웁니다. 아, 어떡하면 너희 존재를 내가 알아챌 수 있겠니~~

이렇게 우는 사람은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지요.
관심이 많은 사람이지요.
바로 옆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은데, 바쁘다는 핑계로 다들 외면하고 살잖아요. 슬프게도.
그래서 울던 이 화자는,
밤늦게 어떤 앎의 문을 두드립니다.
돌개바람처럼 탑을 흔들기도 하지만, 탑의 본질을 알 수는 없죠.
그렇지만, 그 정성이 돌에 스며들면 그 탑의 돌이 의미있는 존재, 금이 될는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어린 왕자에서 생 텍쥐베리가 그러잖아요.
길들이면,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구요.  

자, 이 시를 다시 읽어볼까요?
이 시는 사실은 꽃,을 위한 시도 아니고, 신부를 위한 시도 아닙니다.
이런 시를 <철학시>라고 한대요.
헐~ 철학은 또 뭐람... 금속 공학이면 몰라도...
철학은 생각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인데요,
철학, 종교에서 관심을 가지는 것 중의 가장 기본이,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는 일이라고 하네요. 
그 <존재의 본질>을 새침떼기이며, 말해주지 않고 배시시 웃기만 하는 <신부>에 비유하는 시입니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너는 이름도 없이/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탑을 흔들다가/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꽃을 위한 서시, 김춘수>  

뭔가 좀 아시겠다구요?
그럼 저 좀 가르쳐 주세요~~ 플리즈~~~ㅠㅜ 

이런 시 중에 또 유명한 게 있습니다. 하는 짓은 비슷하니깐, 그냥 한번 읽어 보세요. 

신동집의 <오렌지>라는 시입니다. 

오렌지 - 신동집 -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오렌지는 여기 있는 이대로의 오렌지다.
더도 덜도 할 수 없는 오렌지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마음만 낸다면 나는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을 벗길 수도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마음만 낸다면 나는
오렌지의 찹잘한 속살을 깔 수도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대는 순간
오렌지는 이미 오렌지가 아니고 만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에 있다.

오렌지도 마찬가지 위험한 상태에 있다.
시간이 똘똘
배암의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오렌지의 포들한 거죽엔
한없이 어진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오 누구인지 잘은 아직 몰라도. 

이렇게 알려고 하는 순간부터, '위험한 상태'가 된다.
정말 상대는 의문 덩어리가 된다는 걸 생각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좀 복잡하겠지요? 
그렇지만, 노력하면, '한없이 어진 그림자'가 비치기도 해요. 잘은 아직 몰라두요.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純粹)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박남수, 새, 부분> 

박남수의 <새>에서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새'를 소유하고 싶은,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포수가,
그만 새의 순수를 겨냥하여 빵! 하죠.
그러나, 새의 순수, 새의 본질, 새의 진정한 모습을 알기 전에,
포수의 한덩이 납,이란 방법은, 도구는, 모두 존재의 본질을 상하게 하고 만다는...

 

좀더 유명한 김춘수의 <꽃>을 한번 보겠습니다.
이 시는 워낙 유명하고, 주제도 쉽게 드러나니깐, 설명은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겝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싶다. <김춘수, 꽃> 

이 시는 어렵지 않죠?
근데, 이 시를 뒤에 놓은 이유는 말이죠.
어려운 시를 읽고 나면, 쉬운 시가 더 깊이 보이는 법이기 때문이랍니다. 

아까 꽃을 위한 서시에서 <무명>이란 말이 나왔거든요. 기억 나시나요? 이름 없음.
그토록 아름다운 꽃들에게 이름도 없이 스러지게 해서, 기억하지 못해 미안해~ 이런 거였잖아요. 

삶도 마찬가지일걸요?
우리 모두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도 존재하긴 했지만, 그저 거기 있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할 따름이란 겁니다.
제 글을 읽고 누군가가 '재밌어요~~' 이렇게 댓글 달아 주면, 재밌는 줄 알고 막 또 하잖아요. ㅋㅋ
이름을 불러주면, 그렇게 신이 나는 거죠.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거죠. 그게 바로 <명명>의 힘이랍니다. 

명상록으로 유명한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마르코만 인들과 싸울 때 용맹스런 사자들을 데리고 갔대요.
마구 달려오는 사자를 본 마르코만 인들이 장군에게 물었답니다. 저 괴수가 뭐냐고.
그랬더니, '저것은 개다. 로마의 개다.'이랬대요. 결과는 뻔하죠?
로마의 개를 몽둥이로 다 때려 잡았다는 거 아닙니까. 

명명의 힘은 그렇게 크죠. 이름을 불러주는 일. 상대를 알아주는 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는데요. 칭찬은 '빈말'과 완전 다르잖아요.
정말 그 사람의 장점을 들추어 칭찬해 주는 일. 얼마나 사람을 기쁘게 하겠습니까?
휴 =3=3 교사들이 제일 못하는 게 이거예요. 꼬집기는 도가 텄는데 말입니다. ㅎㅎㅎ   

조지훈의 <민들레 꽃>이란 시가 있습니다.

까닭 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距離)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 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조지훈, 민들레 꽃> 

마음이 한없이 외로울 때,
아, 내 존재는 도대체 이게 뭐야~~~>? 아, 짱나~~~ 이런 날,
까닭없이 마음이 외로운 날이 있죠.
그런 날, 지금은 이별했는지, 사별했는지 내 곁에 없는 그대가 생각나고.
그대는 민들레 꽃 안에서,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고 있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엔 저바다 보다 먼 아득한 거리가 있지만,
그대는 조용히 나를 찾아오지요.
그대와 내가 말했던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가 나의 존재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라요~
이런 시입니다. 

존재의 외로움은 근원적인 거구요.
본질적인 거겠지요. 어차피 '너 날 수 있어?' 이렇게 묻는다면,
'응, 나는 너 일수 있어...'이렇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 얼마나 되겠습니까?
만일, 있다면, 정말 아껴주셔야죠.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ㅎㅎㅎ  

그렇지만요. 또 우리는,
서로는,
영원히 단 하나의 세포도 공유할 수 없는 남남인 것이랍니다.
서로의 본질을 알지 못해 눈물짓는 것보다는,
민들레꽃처럼 한 순간이라도 서로 위로해 주는 존재가 되면 그것도 성공한 존재들 아닐까요? 

아, 얼마만한 위로이랴! 

이렇게 말입니다.
또 정공채의 <간이역>을 잠시 보죠.
우리는 서로의 존재들에게 <목적지>는 될 수 없을 거예요.
나의 목적지는 <나의 완성>일텐데요. 도대체 나는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그 완성을 어떻게 꿈이나 꾸겠습니까?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우물쭈물 하다 그리 되어버리는 것'이 인생인데 말이죠.
그나마, 서로가 잊혀진 얼굴들 사이에서 간혹 스쳐지나간 것으로 기억되는 <간이역>으로 남는 것도 뭐, 괜찮겠지요. ^^
꿈도 슬림하게... ㅎㅎ

피어나는 꽃은 아무래도 간이역
지나치고 나면 아아,
그 도정(道程)에 꽃이 피어 있었던가

잠깐 멈추어서
그때 펼 것을, 설계(設計)
찬란한 그 햇빛을......

오랜 동안 걸어온 뒤에
돌아다 보면
비뚤어진 포도(鋪道)에
아득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제 그 꽃은 지고
지금 그 꽃에 미련은 오래 머물지만
져버린 꽃은 다시 피지 않는 걸.

여숙(旅宿)에서
서로 즐긴 사랑의 수표처럼
기억의 언덕 위에 잠간 섰다가
흘러가 버린 바람이었는걸......

지나치고 나면 아아, 그 도정에 작은
간이역 하나가 있었던가

간이역 하나가
꽃과 같이 있었던가.

<존재의 본질> 하면, 또 제가 잘 써먹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명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고봉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정말 이쁜 만화거든요. ^^ 

 

일부러 일본어로 적었는데요.
센과 치히로는 한자로 한 글자 차이에요.
센은 음으로, 치히로는 뜻으로 읽은 거죠. 번데기 앞의 주름잡기... 

부모님이랑 즐겁게 지내던 치히로는 이상한 할망구를 만나게 되고, 거기서 '네 이름은 너무 거창하구나.' 이런 명령에 뒷글자를 잃고 '센'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런 센은 맨날 목욕탕 때밀이를 하죠.
목욕탕을 들락거리는 괴물들은 모두 '가오나시(얼굴없는)'들이구요. 

존재의 본질을 망각한 존재들은 모두 센이 되어서 무의미한 일상을 하루하루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애니메이션이었답니다.
친구로 나오는 하쿠가 그러죠. <네 이름을 잊어서는 안돼!> 

너는 이런 무의미한 일을 하고 있어야 할 센이 아니야.
너는 행복했던 때의 너, 치히로란 너의 본질을 찾아 가야해~~ 이런 외침 아닐까...하구요. 

 

자, 오늘은 좀 어려운 시를 다루고 나니, 저도 정신이 좀 멍~ 한데요.
전에 말랑한 시만 다뤘더니 세실님이 '연애 박사'라고 놀리더라구요. ^^
그래서 좀 아는 체 해봤는데, 이거 구석구석 틀린 부분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철학 같은 건 저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암튼, 제가 좋아하는 만화영화 이야기를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지네요. ^^
센과 치히로 이야기 하면, 수업 시간에 아이들도 진지하게 듣거든요.
김춘수, 신동집, 또는 박남수의 <새> 같은 시가 나오면 아이들이 울상이 되어버리는데,
그때 <센또 치히로노 카미카쿠시> 이야기 해주면 또 헤헤거린답니다.
학생들은 맨날 조삼모사 수법을 써야 한다구요. ^^
앞에서 어려운 거 확 풀고, 뒤에서 쉬운 거 가르쳐 주고... ^^ 

그래서, 오늘의 수업 기법은 <조삼모사>였답니다. ^^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4276143 

요기 '오른쪽 마우스 버튼' 눌러서 '새창에서 열기'로 보시면 비토의 <천국의 음악>이 나오는데요.
화면은 없습니다. 

8분 가량 되는데,
화면없는 백지를 보면서, 도대체 나는 누구세요? 하고 잠시 멍때리시기 바랍니다. 

강의할 게 없으면, 제가 잘 써먹는 수법이에요. 

칠판에, '너는 누구냐?'이렇게 쓰고, 

저는 멍~~~ 때리고 있죠. ㅎㅎㅎ 

몹시 덥습니다. 건강 또 건강하시고...
오늘 밤에도 행복한 꿈 많이들 꾸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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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나온반달 2010-07-21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추천은 제 겁니다. 이제 고개 내밀고 보겠습니다.
특강이 주-욱 계속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글샘 2010-07-21 22:08   좋아요 0 | URL
어, 완성도 안 된 걸 미리 보셨네요. ㅎㅎㅎ 시 두어 개 더 넣었어요. ^^
주~욱 될지는 모르구요. 읽어 주시면 제가 고맙죠.

낮에나온반달 2010-07-21 22:44   좋아요 0 | URL
시키시는 대로 <천국의 음악> 들으면서 잠시 멍때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 잘 듣는 학생이라니요.
추가하신 시도 읽었습니다.
제가 가장 감탄하는 게 이겁니다. 꼬리물기요.

더 잘 하시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형편 닿는 대로, 글샘님이 즐기실 수 있는 한, 부담 갖지 마시고....
읽어주면 고맙다 하시니 더 열심히 읽겠습니다.

글샘 2010-07-21 22:49   좋아요 0 | URL
네. 더 잘하는 건 불가능해요. ㅠㅜ
참 착한 학생이네요. 앞으론 질문도 해야겠어요. 긴장하시게... ㅋㅋ

시를 많이 가르치다보면, 어떤 주제로든,
사람 사는 거야 뻔하니깐... 얼키고 설키고 하게 되어있습니다.
훌륭한 독자가 계시니깐, 아무 시나 마구 얽어도 ^^ 해석을 잘 하시겠어요. ㅎㅎㅎ

비로그인 2010-07-21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가끔 행방불명이 되고 싶은데...
글샘님의 특강땜시...
할 수 없이 의미있는 존재로 남아있어야 하네요.ㅎㅎ
아뇨~~불만은 없습니다!!!
감동이란게 원래 처음에 강하면 갈수록 덜해지는 법인데, 우째 울 글샘님의 강의는 가면 갈 수록 이렇게 감동의 도가니인지,,,,,
요즘 정말 행복합니다^^

글샘 2010-07-21 23:36   좋아요 0 | URL
ㅎㅎ 마기님이 행방불명 되시면... 이 특강도 끝이라지요. ^^

가면 갈수록 감동의 도가니라... ㅎㅎ
이거 완전 너무 칭찬하셨네요. ^^
갈수록 레파토리가 불안정하다구요. 뻔한 시를 특강할 수도 없고...

행복하시다니 제가 고맙습니다. ^^ 제 특강이 목적을 달성했군요. 행복하시다니...

글샘 2010-07-22 09:54   좋아요 0 | URL
???
상당히 주관적인 시군요.^^
그치만, 뭐 시란게 개인의 경험을 확대해서 추상한 것이니깐...

시의 제목이 소설이라... 흥미로운데요. ^^
책심지에서 글자보다 큰 의미를 찾는 '책중독자'의 시네요. ^^

꿈꾸는섬 2010-07-22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특강을 즐기는 분들이 참 많아요.^^ 저도 그중 한 사람이구요. 그동안엔 몰래 보고만 갔었거든요. 마기님을 위한 시특강이라...ㅎㅎ 마기님과 글샘님의 주거니 받거니 하는게 너무 재밌어요.^^ 오랜 세월 학생들을 가르치신 내공도 대단하시구요.^^ 책 내시기 힘들다고 하셨지만 책으로 내시면 정말 좋겠어요.^^

글샘 2010-07-22 00:33   좋아요 0 | URL
즐거우신가요? ^^
주거니 받거니가 재밌죠. 저도 혼자 했으면 무슨 재미로 하겠어요.
내공은... 교사라면 다 있을 겁니다. 저처럼 커밍아웃하기가 쉽지 않은 거져.
책으로 낼 정도 되면... 저도 좋겠습니다. ㅎㅎㅎ 근데, 위험해요.
19금도 있고, ㅋㅋ 앞으론 진짜 19금도 올라올 건데요. 20토는 없지만...

꿈꾸는섬 2010-07-22 09:21   좋아요 0 | URL
사실 청소년들에게 19금의 맛을 살짝 보여준다고 무리는 없을 것 같은데요. 눈가리고 아웅한다고 모르는 거 아니잖아요.^^
책으로 만드시면 베스트셀러 되실 것 같아요.
글샘님의 시이야기^^ 출판사에서 문의 들어오실 것 같아요.^^ 만약 책 내시면 한권 사드릴게요.ㅋㅋ

글샘 2010-07-22 09:57   좋아요 0 | URL
에이 한 권 사주신다고 책을 낼 순 없어요.
천 권쯤 사주신다면 몰라도 ㅋㅋ
19금... ㅎㅎㅎ
베스트셀러 작가는 제가 원하는 바가 아녜요.
꿈섬님의 댓글로도 충분히 저의 그릇은 행복합니다. ㅎㅎㅎ

비로그인 2010-07-22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학생으로 돌아가 웃고 감동받고 했습니다.
글샘님께 배우는 학생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행운아들인지 모르겠지요?
직접 강의하실 땐 현란한 표정 연기와 포즈로 학생들을 압도하실 것 같은데
여기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게 안타깝네요. ㅋㅋ

"그렇지만요. 또 우리는,
서로는,
영원히 단 하나의 세포도 공유할 수 없는 남남인 것이랍니다.
서로의 본질을 알지 못해 눈물짓는 것보다는,
민들레꽃처럼 한 순간이라도 서로 위로해 주는 존재가 되면 그것도 성공한 존재들 아닐까요?"

가슴에 영원히 새겨두고 싶은 문장도 이렇게 얻어 가네요 ㅋㅋ

강의 잘 들었고 저 출석했습니다(추천했다는 뜻입니다)^^

글샘 2010-07-22 09:58   좋아요 0 | URL
아, 후와님의 이런 칭찬이란... 가슴이 벅찬데요.
강의할 때, 현란한 표정 연기와 포즈는 없습니다.
ㅎㅎㅎ
아이들은 불쌍한 애들이죠. 행운아는 아니구요.

오히려, 여기있는 노땅 학생들이 훨씬 충실해요.
ㅎㅎㅎ
우린, 모두 성공한 존재들이 됩시다. 서로 위로해 주고요...

pjy 2010-07-22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서 들어왔는지 기계음인지?? 귀뚜리미 소리가 배경음으로 깔리는 사무실 한낮!
화채그릇앞에서 차마 스크롤을 내리지 못하고 침 질질 흘리다가 마음 간신히 수습하고 보니~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첫줄 읽자마자 어렵다ㅡ,.ㅡ; 이랬는데 글샘님의 편안한 해석을 보니 막 재밌습니다~~
제가 수능 첫세대로 셤 두번보고 운좋았던 사람인데요~ 이케 셤과 관련없이 해독하니깐 정말 살맛납니다ㅋㅋ
아마 학교에서 시험에서 벗어나면! 국어시간이 시가 이렇게 재밌는줄 알겁니다~
혼자서 궁금했다가 잘 모르겠으니 한밤중에 막 불켜고 울고 살짝 맛이 간듯~ 좋게 말하면 존재에 대해 고뇌하는^^;
철학시는 글샘님 말대로 이케 어려운거 보다가 쉬운걸 보니 다~~~~ 비스무리하구나..하면서 으쓱해집니다 ㅋㅋ

어쨌든 몸이 슬림하지 않아서 꿈도 슬림하지 않아요~~
글샘님 덕분에 야무지게 꿈꾸고 철학적으로다가 한번 사색 해볼렵니다~
우선 점심에 시원한거 먹고나서요 ㅋㅋ 배가 부르면 사색은 무리인가요ㅋㅋ
제가 누구긴요~~ 착하고 이쁘고 열공하는 글샘님의 노땅학생이지요
그래도 마기님처럼 답시를 쓰기는 어려워요~ 봐주실거죠^^;

글샘 2010-07-22 13:08   좋아요 0 | URL
첫 줄이 시 같애요. 나희덕의 '귀뚜라미'

수능 1세대면 호랑이띠 정도 되시겠군요. ^^
제 첫 제자들이 그 나인데... ㅎㅎㅎ
어렵다...가 재밌다...로 바뀌는 것이 제 강의의 포인트입니다.
셤과 관련없이 해독하면 시가 재밌죠. ㅎㅎㅎ
근데 수업시간엔 이런 이야기 다 하기 어려워요.
여기선 글로니깐 가능한 거죠.
제 노땅학생이 늘어나니깐, 부담스럽지만 재미도 있습니다.
답시를 쓰기는 어려우시다니, 봐드리긴 하겠습니다. ^^
배 불러도 사색하는 사람은 있어요. ㅋㅋ 점심 잘 드세요.

양철나무꾼 2010-07-22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샘,질문있어요~^^
요번 특강에서 얘기하려고 하시는 게,존재의 본질이라고 하셔서요.
조 위 '너를 가져오너라, 네가 누군지 가르쳐 주마.'랑 관해선데요.

누구는 달마를 향한 결연한 의지라고 하구요.
누구는 도교와 불교를 넘나는 유연한 사고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그때는 도교나 유가의 바탕 위에서 불교를 받아들여야 했던 시기이니,
그 시대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였을 거라고도 얘기하더군요.

근데,근데...존재의 본질이라는 게,
이렇게 또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는 유연한 것인가요?

글샘 2010-07-22 14:12   좋아요 0 | URL
이름을 '존재의 본질'이라 붙였을 뿐인 건데요.
강을 건넜는데, 왜 아직도 뗏목을 이고 계세요?

수업 끝나고 이런 어려운 질문하는 노땅 학생, 제일 미워!!!
혜가는 팔뚝을 잘라서 가져왔는데, 나무꾼 님은 금도끼라고 가져 오셔서 물어보셔야 하는 거 아니신가?

양철나무꾼 2010-07-22 16:35   좋아요 0 | URL
샘,'틱낫 한'은 더 어렵거든요~

첫빠를 놓쳐서,이렇게라도 튀어보려구요~^^
근데,생각을 잘못했네요~ㅠ.ㅠ
번쩍번쩍 금도끼면 금방일텐데...

노땅만 미워하는 드~어러운 세상~(,.)

글샘 2010-07-22 18:19   좋아요 0 | URL
그럼 담엔 첫빠로 댓글 다세요. ^^
맞어요. 번쩍번쩍 금도끼가 답이에요. ㅍㅎㅎㅎ

드~어러운 세상! 외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간답니다.

2010-07-22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2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0-07-23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23일의 첫빠입니다.ㅋㅋ
그동안 다 읽지는 못했지만 간간히 봤는데 다 지난 뒤에 댓글 달기 뻘줌해서 걍~ 넘어갔지요.^^
글샘님의 열강에 수제자의 답시가 어우러져 팬을 불러 모으고 있어요.
댓글은 일일히 안 달아도 읽은 페이퍼에 추천을 잘 합니다.

글샘 2010-07-23 07:39   좋아요 0 | URL
ㅎㅎ
팬씩이나...
글자가 많아서 다 읽기엔 부담스럴 수도 있을텐데...
조금만 보세요. ^^ 맘에 드는 시만... ㅎㅎㅎ
첫빠...는 감사합니다.

루체오페르 2010-07-23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과 지식이 가득한 글이라 호응도 대단하네요.^^

알라딘에도 여러 직업을 가지신 분들이 있는데 온라인에선 그 모습을 알수없지만
이 시리즈를 보면 글샘님께서 국어선생님이란 것이 확 와닿습니다.

글샘 2010-07-23 10:04   좋아요 0 | URL
정성과 지식이... ㅋㅋ
직업이 확 드러나는 글이죠. ㅎㅎㅎ

saint236 2010-07-23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글샘님은 많이 힘드시겠지만.

글샘 2010-07-23 12:04   좋아요 0 | URL
안 힘듭니다. ^^ 오히려 재미있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