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금파리 한 조각 - 전2권
린다 수 박 지음, 이상희 옮김, 김세현 그림 / 서울문화사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린다 수 박. 이름이 좀 웃겼다. 수박이라고... 근데 책을 넘기면서 점점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 부모님의 조국에 대한 사랑이나 의미를 뛰어넘는 뜨거운 것이 그의 글 속에 가득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사금파리'란 말을 알고 있을까? 원 제목은 A single shard이다. 샤드는 도자기, 질그릇의 파편이라는 뜻이다. 뜻은 통하는 말이라지만, 샤드와 사금파리 만큼의 정서적 거리가 세상에는 있을 수 있다. 김세현 씨의 그림은 참 정감넘치는 그림이다. 색감이 온화하고, 선이 친근했다.

고아로 자란 목이가 두루미 아저씨와 나누는 이야기들은, 마치 선문답이나 선지식을 전수하는 과정과도 같다. 어느 날 두루미 아저씨가 생선을 놓치고 와서 지팡이를 다듬으며 던진 다음과 같은 말은, 불교의 화두가 될 만 하다.

'오늘 저녁에 생선을 못 먹었으니까. 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일 때문에 속상해 하는 건 어차피 우리 모두에게 시간낭비일 뿐... 이 세상을 떠난 다음엔 나도 멀쩡한 두 다리를 갖게 되겠지...'

민영감은 고지식하고 성격이 강퍅한(강파르다) 장인정신으로 똘똘 뭉친 도공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고, 그 부인은 모성과 여성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난 민영감보다는 그 부인의 마음 씀씀이에 더 감동받았다. 목이의 곤궁함을 돌봐주는 섬세한 마음. 현모양처가 봉건 사회의 여성들에게 족쇄의 역할을 한 이데올로기라고 비판받는 세상이 되었지만, 지극한 사랑의 시원인 모성애를 이젠 어디서 찾아야 된단 말인가.

린다 수 박은, 먼 옛날 고려청자의 신비를 통해 고난받던 민족의 한 조각 예술혼을 승화시키고 있다. 이 절대지향적인 예술혼 앞에서는 사소한 '사악함'은 얼마든지 성스러운 힘으로 극복되고 있다. 람세스를 읽으면서 람세스가 위기에 닥칠 때도 전혀 걱정이 되지 않듯이.

그는 비록 이국땅에 태어나서 이국의 말로 이 동화를 썼지만, 그의 뜨거운 붉은 적혈구들은 우리 조상들의 산수윳빛 혈액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그 피의 의미가, 사랑이고, 민족이라는 것이다. 월드컵의 해, 작년 6월에 우리가 가슴 벅차하며 감격했던 바로 그 것말이다. 오랜만에 뜨거움이 느껴지는 책을 써 준 그에게 감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세암
정채봉 지음, 정현주 그림 / 동쪽나라(=한민사) / 2000년 4월
평점 :
품절


어린 길손이가 엄마라고 불렀을 때, 기꺼이 와서 엄마가 되어 주신 관세음보살님. 파랑새가 되어 하늘로 날아간 길손이를 보다 눈이 뜨인 감이. 정채봉의 동화는 파란 가을 하늘 같고, 거기 드리운 단풍잎처럼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로 다가 온다. 이 책은 오히려 색연필의 불투명한 톤이 투명한 언어들을 흐린 느낌이 든다. 그림책으로 보다는 상상 속의 색감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소설이었는데... 그림을 폄하하려는 뜻은 없지만, 상상 속의 아름다운 색감들을 놓치기가 아쉬워서 하는 소리다. 우리 속에 다들 가지고 있는 불성을, 내 앞의 얼굴 아닌 뒷면의 부처를 만나려면, 숙고할 지어다. 너는 누구인가. 오직 모를 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nowcat의 혼자놀기
권윤주 글, 그림 / 열린책들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읽어도 보아도 무슨 소린지 잘 알 수가 없다는 거다. 그리고 더 희한한 것은 김규항이 '급진적인 고양이'라는 추천사(?)를 적어 줬다는 거다. B급 좌파, 아웃사이더, 쾌도난담 등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김규항의 관심사가 됐다는 것은 일견 참 색달라 보이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다시 한 번 이 책의 표지의 그림을 들여다 보면서, 다 보고도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획일적인가. 상사보다 일찍 퇴근하는 신입사원을 눈꼴사나워하고, 추석같은 명절이 되면 의무적으로 온 가족이 모여서 북적거려야 하고(그 밥하고, 음식하고, 상 차리는 여자들은 차롓상에 인사도 못 하는 걸), 동창회 같은 데나 부서 모임 있으면 빼먹지 말고 참석해야 한다.(참석하지 않으면 귀가 근질거려 못 산다. 얼마나 욕들을 해 대는지... 정말 그 사람이 그만치 모자라는 인간이었던가. 우리는 그에게 전혀 관심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속을 뒤집어 보면, 늦게 퇴근하는 직장 상사는 집에 가도 애들도 다 커서 학원갔다 늦게 오고, 아내와도 뾰족한 취밋거리가 없어 밍기적 거리다가 늦기 일쑤고, 명절에 모여서 우리가 주로 하는 일이라고는 고스톱 치기와 음식 먹기(술 포함), 텔레비전 보고, 아이들은 컴퓨터 하거나 피시방 가고... 뭐가 있나? 동창회는 돈 잘 벌고 있는 놈 돈자랑 하고, 그놈들 마누라들도 지들대로 돈자랑하고... 회사 부서 모임이라고 가봤자, 죽어라 술 마시고, 상사들 욕이나 하고, 남들 욕하고... 간혹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이야기 나오면, 뒷날은 오리무중.

획일적인 사람들의 사회를 뒤따라 가지 못하면 뭔가 모자란 듯이 느껴야 했던 획일성을 통렬히 (사실 통렬하진 않고 은근히;;) 풍자하는 이 만화의 표지 그림은, 책을 다 보고서야 의미를 느끼게 된다. 획일적인 교육기관(옥상에 있는 놈은 곧 뛰어내릴 지도 모른다. 왼편에 쪼그리고 앉은 놈은 실패한 놈 같지?), 연단에서 잘난 척 하는 녀석은 몇몇은 관심을 기울이지만, 몇몇은 알아듣지도 못하고, 누구누구는 들은 척도 안하는 소리들이다. 스노우캣처럼 종이상자 뒤집어 쓰고 듣지고 않고, 자기 보고 싶은 쪽만 볼 수도 있어야 자유 사회라고 할 수 있지 않는가. 하는 웅변이 들린다.

우리 나라의 어색한 지역 주의나, 학벌, 해병대 주의(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같은 것들이 실상 얼마나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우리는 어른들이 뭔가를 배운다는 것에 너무 저항감을 느끼고 있는 거 같다. 나와 같이 근무하던 많은 선생님들 중에 뭔가를 배우는 사람들은 정말 손꼽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대부분 처녀 총각이었고... 아줌마 아저씨들도 뭔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간혹 혼자 노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도 있어야 할 때도 되지 않았나?

권윤주씨의 어눌한 표현에 적극 찬성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용이 있는 풍경 - 삼국유사 사진기행
김대식 글, 사진 / 대원사 / 200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분황사 터 옆에 차를 세우면 좋은 점이 많다. 가까이 분황사 탑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지만, 분황사 터 안에 핀 작은 꽃들이 참 정감 넘친다. 분황사 옆의 황룡사 터는 신라인들의 장엄한 불심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달궁터나 임해전지처럼 왕족들의 추회만이 아닌, 온 신라인들의 원력이 여기 담겼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옛날, 지금처럼 크레인도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황룡사 구층탑을 세웠던 뜻은 도대체 무었이었을까. 경주를 걷는 것은 이야기 속의 세계를 떠도는 일이다. 많은 유물들이 박물관 안에 비장되어 있지만,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기 2권에서 밝힌바와 같이 경주는 평생 살면서 구경해도 다 하지 못할 산책로다. 삼국유사를 줄줄이 읽으려면 정말 어렵다. 이런 글들을 왜 썼을까,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 큰 의문 하나를 풀었다. 일연 스님이 단군신화와 함께 설화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었던 삼국 유사의 뒷면을... 몽고의 80년에 걸친 국토의 유린을 복구할 수 있는 현실적인 가능성은 어디에도 없었다. 유일한 길은 상상속의 세계를 떠도는 길뿐. 삼국유사를 읽어보면, 정말 wonderland이다. 신과 부처와 꿈과 현실이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속에서 우리는 앨리스가 되어 우리 나라를 산책한다. 그러다 보면, 앨리스는 절망하고 좌절하지만은 않게 될 것이다.

삼국유사의 존재 이유를 많은 사진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책이다. 경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보면 좋겠다. 사진만이라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르기우스 신부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 느낌 / 1999년 5월
평점 :
절판


톨스토이가 늘 생각하던 문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쉬운 이야기로 풀어 쓴 책이다. 줄거리가 너무 평면적이라 할 정도로 단순하고, 세르기우스 신부의 두 번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의 개성은 입체적으로 갈등하지 않는다. 참으로 쉽게 부와 명예를 던져버리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세르기우스. 그러나 그는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는 이유로, 어디에서나 '낭중지추'의 고뇌를 짊어지게 된다. 결국 진실한 삶은 우리 가까이 있는 것이란 이야기다.

우리는 인정받고, 능력을 칭찬받으면 얼마나 오만해 지기 쉬운가. 남들의 칭찬 한 마디에 자기 본성을 잊고 가슴 팔딱거리며 자기를 잃기 쉬운가. 세르기우스 신부님은 욕망을 잠재우려 손가락을 자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노력도 생활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면 진리와 거리가 있다는 깨달음을 전하고 있다.

훌쩍 떠나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그러나 그런 것은 또 하나의 범죄처럼 느껴진다. 정말 산다는 것은 苦다. 십 년 전에 촉망받던 의사, 변호사들이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간 뉴스가 들렸다. 그 뒤는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니 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이라고 고뇌에서 벗어났으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랜만에 톨스토이의 이야기를 편안한 마음으로 읽었다. 톨스토이의 글은 아무리 길어도 어렵거나 식상하지 않다. 마치 매일 걷는 길을 산책할 때 느끼는 편안함이라고나 할까. 낯선 것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매일 만나는 장면에서 친근하게 다가오는 편안한 순항. 즐거움의 종류도 참 여러 가지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