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1권 -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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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배운 한국 전쟁은 얼마나 장렬한 것이었던가.

아아잊으랴어찌우리이날을
조국의원수들이짓밟아오던날을
맨주먹붉은피로원수를막아내어
땅을치고통곡하며의분에떤날을
이제야갚으리그날의원수를
쫓기는적의무리쫓고또쫓아
원수의하나까지쳐서무찔러
이제야빛내리이나라이겨레(박두진 시)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웬수의 자리에 들어갈 사람이 딱, 한 놈 있다.
그 놈은 총살당하지도 않았고, 학살당하지도 않았고, 굶어죽지도 않았고,
국립묘지 현충원에 자빠져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정체성 없음에 치를 떨게 된다.

어찌 한국의 현대사는 이렇게 제멋대로라는 말인지...

미국 민중사에 나오는 인디언 학살보다 더 무지막지한 살인이 횡행하는 와중에, 계속 거짓으로 일관하는 일관성을 뚝심이라 할까, 충성심이라 할까.

한국 사회에서 가장 확실한 밥줄인 '학연'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도 씁쓸하거니와,
무엇보다다 50년대 첫 권은 한국 전쟁 이야기였기 때문에 피비린내로 가득한 책장을 넘기기가 송구스러웠다.

강준만의 뚝심으로 일궈낸 글쓰기가 존경스럽다.
한국 현대사를 이렇게 일구어 낸다는 것이 여간 노력이 아닐텐데,
한 시대를 살아오면서 남긴 끝도없는 <점>으로서의 인간들의 궤적을 밟아 내어 <원>에 가까운 역사를 복원하려는 노력은 제대로된 역사서가 없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바람직한 역사 서술 방법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개인의 역사 기술은 한계를 가진다.
그리고 <그 시절, 그 때를 아십니까?>의 회고풍이나 <대한 늬우스> 풍의 국정 홍보 필름에 비하면,
진실을 이야기하고팠던 <소설>과 <회고록>, 그리고 <각종 공문서>에 의존하여 객관성을 유지하면서도 풍부한 소재를 담으려 한 것은 그의 글쓰기가 갖는 매력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 책을 모두 읽는 것은 괴로운 일이 될 것이다.

어느 한 해, 즐거운 일은 없고 다사다난(사고가 많고 어려움도 많았던)한 해들로 돌아보아지는 우리 과거가 걸어온 길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젠 핑크빛 미래마저도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다시 과거를 읽고 비슷한 잘못을 하지 않기 바라는 마음 크다.

이제라도, 한국 현대사를 총체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역사서가 나와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이런 이야기들을 단편적으로 읽고 말아서 전혀 반대로 알고 있었던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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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12-08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준만의 특징은 '남의 글'을 편집해서 올리는거죠.
적당히 중도를 유지하는 민첩함이 밉지만, 다독에 다작은 정말 놀라워요^^
모두 읽는 게 괴로워도 열받지 말고 읽어야하겠죠?^^

글샘 2006-12-09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집도 저 정도면 '달인' 수준이 아닐까 해요.
10년씩 묶어서 3,4권으로 엮어낸 이 책은 한국사 공부에 어마어마한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까 합니다.

역전만루홈런 2006-12-1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70, 80년대만 일단 봤는데, 정말 대단했습니다..
과연 누가 이렇게 할려고 했을까요?
강준만씨가 그랬듯이 역사전공이였다면 이런 작업이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글샘 2006-12-11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역사 전공이라면 자기 시각으로 한 사건을 들이 팠겠죠.
객관적인 시각이라고 생각되는 글들을 엮어서 그시절 그때를 아십니까? 풍으로 묶었는데, 정말 방대하면서도 좋은 책인 것 같애요.
 
십자군 이야기 2 - 돌아온 악몽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5
김태권 지음 / 길찾기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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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6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005년까지 순차적으로 발행될 예정이다.

라고 알라딘에 광고되어 있는데, 2006년인 지금 이제 2권이 발행되었다.
박태권씨, 자꾸 다시 그리지 말고, 빨리 좀 내 줘요. 고치는 건 나중에 하시고...ㅋㅋ.

요사람, 은근한 장난꾸러기이면서, 대단한 뚝심을 가진 사람이다.

십자군이 엮어내는 비극을 보고 있으면, 미국이 세계 각지에서 20세기 이후로 저질러대는 악행의 근원이 거기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정도다.

오로지 자기들의 세력 다툼과 권력을 위하여, 그리고 광적인 믿음으로 이슬람 세계를 공격한다.
심지어는 동방으로 일컬어지는 동로마 제국에 칼을 들이대는 것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중세의 '롱기누스의 창'은 곧 21세기의 <빨갱이>의 색깔론이나 <전라도> 사람을 차별하는, 세계화 시대에 이주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마녀의 종교로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중세는 우리에게 낯선 시간이고, 중동은 우리에게 낯선 공간이다.

거기서 일어난 일을 우리는 모르면서, 멋진 십자군들의 활약만을 단편적으로 주워들었을 따름이다.

십자군이란 이름은 <제국>이 없는 자리를 메웠던 <서양인>들의 <동양인> 탄압, 또는 <무색인종>의 <유색인종> 살해의 역사에 다름없다는 사실을 이 만화는 잘 그리고 있다.

아이들이 보기엔 그닥 쉽지만은 않다. 고교생 정도면 읽어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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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12-07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6 최고의 책 중 하나이죠. 저 역시 책이 안 나와 안달복달중. *^^*

글샘 2006-12-07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정말 멋진 책이죠. 너무 천천히 나와서 다 까먹을 만하면 또 한권 나올까 그게 무섭습니다.^^

김창엽 2006-12-14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1 2 권 다 소장하고 있어요 옛날에 1권 부분은 디씨인사이드 만화 갤러리에서 연재했었는데 그떄 '김태'(작가)님은 본좌라고 명성이 자자 했었지요 ㅎ 근데 이거 책 발행하면서 부터 무료 사이트에 연재 안하시든데 너무 연재 속도가 느리네요..ㅠㅠ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의 말과 삶
허영철 지음 / 보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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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을 읽는 일은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한반도가 특이하게도 온갖 산들과 강들로 굽이굽이 휘어진 강산의 모양을 갖고 있듯이, 그의 삶은 직선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주름살처럼 곡절로 가득한 아홉 굽이 양의 장처럼 굽어 있었다.

그렇지만, 허영철, 그 사람의 '삶'은 오로지 '하나의 신념'으로 올곧은 것이었다.

여느 장기수의 이야기들이 다소 감상적으로 0.75평 감옥 안의 삶을, 그 인간답지 못한 살이를 이야기하는 데 그쳐서 좀 식상하기도 한 반면, 이 책은 그의 삶이 오롯이 펼쳐져 있고, 오히려 장기수로서의 삶에서는 이야기 대신 사료로 뒷받침하고 있다.

역사가 그를 한 번도 비껴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가 역사를 한 번도 비껴가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그의 감옥 생활은 길게 소개되지 않았지만, '도대체 어떻게 35년의 삶을 감옥 속에서 오로지 자기 사상을 굽힐 수 없다는 신념만으로 버틸 수 있었을까?'하는 나의 의문을 풀어주기에 이 책은 참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여느 종교가 오로지 '믿음' 하나로 삶의 목적을 삼는 반면, 북조선이란 나라에 대한 믿음은 그들이 살아왔던 짧은 삶, 짧은 역사에 대한 믿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해방 후, 남조선에 들이닥친 미군정의 강포한 폭압정치와 대조적으로 북조선의 정치 체계는 민중에게 땅을 주고 희망을 주고 삶의 이유를 주는 것이었다.
북조선에서는 '인민'을 위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공화국'으로서의 국가 정체를 갖추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장기수들은 그 국가의 정체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분단이 되고 어언 60년이 흘러 가건만,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이름에만 '大'자를 써 붙였을 뿐, 민주주의 나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연대에서 비롯한 공화국이란 정체에서도 멀어져만 가고 있다.

시절이 흐르고 흘러, 소련은 망했고, 북한은 가난에 시달리며 핵폭탄으로 미국의 압박에 저항하는 극단적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허영철 옹 같은 장기수들이 꿈속에나마 그리던 인민의 조국은 그들의 마음 속에 그득할 것이다. 추억을 먹고 사는 것이 노인이라면, 공화국의 추억을 지니지 않고서는 그 장기수들이 '독종'인 인간이어서 그 전향 공작의 광풍을 이겨낼 수는 없었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지금의 남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그것 아닐까? 국가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단 하나의 비전을 보여주는 일. 자본가로 이루어진 '국익'이 아니라, 국가는 미국과 맞서는 한이 있더라도, 국민의 복지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나라. 민주주의와 공화국이라는 정치 체제를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나라.

그저 미국에게 굽신거리며, 국민을 조선일보란 기관지를 이용하여 분열시키고, 사리사욕을 채우다, 나라야 망하든 말든 자기들 돈은 스위스 은행에 모셔두는 <그들>의 나라, <밀실>의 나라가 아닌 <공화국>으로 만들기엔 이미 첫 단추가 너무 오래 전에 잘못 끼워져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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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의 종말
제프리 삭스 지음, 김현구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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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를 읽었는지 모르겠다. 실증적인 이야기들이 많아서 이야기가 술술 읽히는 부분들도 있지만, 책이 너무 두꺼워 한번에 읽기엔 부담스런 책이었다.

인류의 일부는 풍요롭고 안락하게 사는 반면, 인류의 절반이 하루 2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는 세계는 결코 정의롭지도 안정적이지도 않다. 발전의 반경을 확대하며 이 속에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포함시키는 것은 도덕적 명령일 뿐만 아니라 미국이 국제 정책을 세울 때 최우선으로 고려해야할 사항 가운데 하나다.(미국 국가 안보 전략 중)

제프리 삭스의 글은 명쾌하다.

가난한 나라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빈곤의 악순환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인종, 종교등으로 인한 전쟁, 인구의 증가, 사막지대 증가, 제국주의의 수탈 등... 게다가 질병까지 만연하고 있다.

이에 미국을 필두로한 유엔이 이 빈곤과 질병 퇴치에 앞장설 수 있다는 순진한 논리다.
순진한 건지 무지한 건지는 이 책을 읽고도 알 수 없다.

많은 미국인들은 미국이 필요한 실제 원조보다 더 많이 원조하고 있다고 착각한단다.
미국의 원조는 가난한 나라들의 경제 성장을 돕는 데 실패해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위대하고 존경스런 세계의 대통령, 부시 놈의 TV 연설을 인용한다.

"우리나라는 자연의 재앙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세계를 이끌 수 있습니다."

제프리 삭스는 유엔의 일원이 되어, 분배를 잘 하고, 경제 성장의 동인을 제공하기만 한다면 빈곤을 수십 년 안에 종식시킬 수 있다는 발언을 한다. 그게 이 두꺼운 책이다.

지나치게 커진 군비 예산의 일부를, 경제 개발을 통한 세계적 안보 확립이라는 의제로 이전시키고,
최고의 부국들에게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라고 요구하라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이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한다.

이 책에서 제시한 지도들을 보면, 한국은 마치 섬처럼 등장한다. 북한의 자료들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 정말 제프리 삭스의 의견대로 될 수 있는, 세상이 그렇게 순진하고 아름다운 곳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진정, 그의 조국 미국은 원조가 아니라 <군산복합국가>로서의 돈벌이에 관심이 있고,
질병 퇴치가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든 미국의 유일한 권력>을 유지하려는 나라라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한국인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었다고 축제분위기가 되는 순진한 사람들과,
미국이 앞장서서 빈곤의 종말을 기대한다는 순진한 사람들을 딛고 우뚝 선 나라.
코카콜라와 맥도날드를 필두로, 미친 소와 카우보이를 앞세워 착취의 날을 번득이는 나라.
<米國> 이외에 핵무기를 개발하면 모두를 <공공의 적>으로 몰아붙이는 나라.
그 무서운 나라의 공포 속에서 이런 순진한 주장을 내세우는 책들은 과연 무지한 결과라고 해야할까?

2025년에는 극단적 빈곤을 끝내기로 약속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높이며, 미국의 역할을 회복하고(이것 보면 그 저의가 드러난다.) IMF와 세계은행이 결정적 역할을 하며, 유엔을 강화하고, 세계적 과학을 활용하고, 개발을 촉진시킨다.

이 책을 읽고 미국의 역할과 유엔의 역할에 희망을 거는 사람들이 생길까 두렵다.
북한의 핵 실험을 증오하며, 퍼주기를 중지하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곧 미국에 의존하는 환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난독증의 결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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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천자문 2006-12-05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리에, 오웬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보고 자본가들의 선의에 기대어 세상을 바꿔보려다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죠. 근본적으로 인간의 사악한 욕망을 부채질하고 증폭시키는 자본주의 체제를 끝장내지 않고 잘사는 나라들의 호의에 기대어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자는 발상은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봅니다.

글샘 2006-12-07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빈곤 타파 프로젝트가 베푸는 단비는 몇 사람은 살릴 수 있을는지 몰라도, 미국의 세력을 강화하는 데 더 큰 도움을 줄 듯 합니다. 호의가 아니라 악의를 감추기 위한 가면이라고 보여요.
 
비치 : 음탕한 계집
엘리자베스 워첼 지음, 양지영.손재석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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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탤런트가 마약인지 최음제인지를 먹었는지 맞았는지, 한동안 이야깃거리가 되었는데, 문제는 그가 무슨 일을 했는가가 아니라, 그의 순백 청초한 이미지가 한순간 음란의 대명사인 <최음>과 연결되며 남성들의 말초 자극을 자극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은 많은 여성을 <비치 : 음탕한 계집>으로 만들면서, 은근히 그걸 즐긴다.

마돈나로 대표되는 유혹과 욕망의 상품화는 음란 전화, 포르노 시장, 야동 사이트 등으로 상품화되며 진화해왔고, 수요를 은밀한 방법으로 만들어 낸다. 이 모든 것들의 목적은 판매 가능하고, 남성들의 욕구 만족에 봉사하는, 실질적으로 남성들의 성적 욕구 만족에만 초점을 둔 것이다.

남성은 행동이 우상화 되지만, 여성은 그녀 자신이 하지 않은 행동(외양, 이미지)로 인해 우상화되어왔다는 사실은 저자 엘리자베스 위첼은 명백히 하고 있다. 이런 모든 사고가 여성성의 수동화, 대상화의 결과를 낳은 것이고, 남성을 파멸시키는 팜므파탈의 캐릭터로 존재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스스로 윗옷을 벗고 표지 모델이 되어 치렁치렁한 머리칼을 드리우고 온 세상과 남성 우월의 세상에 ‘빠큐’를 먹이는 표지는 그래서 통쾌하기까지 하다.

한 달쯤 전, 두 미혼 여성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한 분은 동료 교사였고, 하나는 오래 전 제자다. 그 여선생님 반이었던 제자와 셋이서 한참을 떠드는데, 듣다 보니 이야기는 신랑감과 ‘선본 이야기’로 흘렀다. 독신은 선택이 아니라, 선고가 되는 세상. 이것이 여성들이 살고있는 세상이다. 여성으로 하여금 배우자를 향하여 <니는 내 운명>임을 명확히 인식하게 만든 세상의 힘.

니체가 이랬단다. “사랑의 복수에 있어서, 여자는 항상 남자보다 더 야만적이다.”고. 이것은 악녀 영화의 교훈이리라.

이 책은 미국의 영화와 노래를 거의 모르는, 미국인이라면 톰크루즈와 리차드 기어를 구별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읽기 어려운 책이었다. 그래서 연속극 이야기, 영화 이야기가 나오면 건성건성 건너뛸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이 책을 1/10이나 읽었으려나.

그렇지만, 책을 펼칠 때마다, 표지 모델이 되면서까지 엿먹이고 싶던 세상의 현실이 너무도 적나라함에 마음이 아팠다. 한국 사회는 미국 사회보다 더 마초적인 기질이 강한 사회이기도 하다.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나 ‘칠공주’의 나상사처럼 강하기만 한 남성의 뒷모습은 늘 쓸쓸하다. 그렇지만, 그 아내는 쓸쓸함을 넘어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안고 평생을 살아간다.

인간 해방이란 말 앞에 던져지는 <비치>의 이미지는 언제나 약자의 그것이고, 남성들의 노리개로 전락하고 만, 굴종을 강요받은 악녀로서의 여성 이미지였다는 작가의 말은 말세를 향해 달리는 지구에서 아직도 유,효,하다.

부산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을 초빙했는데, 여성 장학관님이 발탁되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여성의 승리라고 착각할는지 몰라도 아는 사람은 안다. 그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더 워크홀릭인 일중독자였으며, 그것이 여성의 해방에 끼치는 악영향에 대해서... 여성의 적은 여성일 수 있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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