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의 대중심리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3
빌헬름 라이히 지음, 황선길 옮김 / 그린비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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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사'책은 정조의 죽음(1800)가 마지막이다.

한민족의 역사 흐름은 정조가 죽으면서 '세도 정치'로 일컬어지는 혼란기와 '개화기'로 일컬어지는 근대화 실패의 시기, '식민지 시대'로 불리는 암흑기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폐기, '이승만과 박정희'로 대표되는 독재 정치의 시기까지 그야말로 각종 불합리한 정치 기제는 한반도에서 실험되지 않은 바가 없을 정도로, <부조리 정치의 종합 선물 세트>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또 많은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는 '개화기의 선각자들'과 '식민지 시대의 독립 투사들', '이승만 박사'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 참으로 존경의 염을 품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를 공부하다 보면, 한국의 '국사책'이 얼마나 반쪽의 비루한 것인지를 알게 되는데, 아직도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에 이승만의 흉상이 선 곳도 있고, 박정희의 딸은 수구꼴통을 규합하는 핵심이 되기도 한다.

황우석이 나오면 난자를 와르르 기증하고, 무식한 대통령은 국익을 위한다면서 파병을 결정한다.
월드컵이 열리면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두 시간 동안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얼싸안고 뜀을 뛰고 발광이 장난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특이한 기제인데, 이런 것들을 파시즘의 대중심리로 설명한 빌헬름 라이히란 젊은이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이 책은 지루한 부분도 많고, 라이히를 잘 모르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이 조합되어 있어 읽는 데 두어 달이 걸린 책이다. 사진이 재미있어서 한참을 보게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파시즘이 판을 치는 그 1930년대에 출판한 것은 그가 천재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파쇼 국가들의 특수한 현상이나 히틀러, 무솔리니의 정신병적 행동이 아닌, <대중의 비합리적 성격 구조의 표현>으로서의 파시즘을 설명하는 그는 다분히 과학자적 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론을 장황하게 펼치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의 말들에 고개가 끄덕여 지는 부분도 많지만, 공상적 이론을 펼치는 그를 보면서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 아닐까 하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인류 현대사의 두 천재인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두 사람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성정치'란 개념을 만들기도 한다.

성적 억압과 가부장적 구조화된 사회경제적 억압이 대중의 비합리적 성격 구조를 형성한다는 것이 그 요지다.

한국 사회야 말로 성적으로 강하게 억압된 사회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성경험이 있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사창가에서 군대가기 전에 총각딱지를 뗀다.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은 처녀들도 숱하게 많은 것이 한국 사회다. 그렇지만, 돈을 주고 여자를 사기에 한국처럼 편리한 국가는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밤거리에는 유리창 안에 전시된 아름다운 여인들과, 보도방에서 제공하는 중고 아줌마들의 도우미들은 돈만 주면 '꿈의 궁전' 모텔로 입성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가부장적 구조도 아직 파괴되려면 한참 멀었다. 아직도 추석과 설 명절엔 시댁에 가서 찌짐을 뒤집어야 하고, 친정이 멀면 못 가는 경우도 생긴다. <시>자만 봐도 욕이 나오는 희한한 풍토병인 '화병'도 공인된 국가.

이런 억압적 국가이다 보니 <비합리적 대중>이 넘쳐나는 것은 당연할는지도 모른다.

'민족과 국가'라는 신비화된 권위에 기반하여 '우리'와 '너'를 구분하고, 우리가 아닌 모든 것들을 적으로 규정하는 획일적인 공격성을 가진 나라에 사는 일은 참 피곤하고 괴롭기도 하다.

한국에서 '적'을 만들기는 아주 쉽다.

박정희 욕하면 세상에 적이 수두룩 하다.
노무현 칭찬하면 요즘엔 적이 더 많아지려나.(난 노무현이 좋다. 아무 것도 못하는 대통령이 한국엔 정말 많이많이 나와야 한다. 한 50년은 무능한 대통령이 권좌를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발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이명박은 유능하다. 그는 다시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탄압하고, 수치적 발전을 꾀할 것이다. 그렇지만 교육과 복지에 들어가는 돈은 확연하게 줄어들 것이다. 복지담당 공무원들은 앞으로 할 일이 없어질 것이다. 노무현보다 더 무명의 무지렁이들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김근태도 정동영도 너무 잘 났다. 유시민도 안 된다. 정말 멍청한 대통령이 자리를 잡아도 되는 나라에 살면 좋겠다. 결정적인 것은 박정희나 전두환을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던 신문들이 대통령을 욕해서 그가 폄하되고 있기도 하다.)
월드컵 때, 그 공을 파키스탄 어린이들이 몇백원 만들고 꿰맨다는 이야기 꺼내면 적이 쉽게 생긴다.
학교에서도 '전교조' 교사라면 백안시하고, 특히 인터넷에서 전교조 교사라고 말하면 적은 빽빽한 리플을 달아 준다.

이주 노동자들은 그 피부색으로 이미 한국에서 충분히 고통받고 있다.
시골에 다니다 보면 '베트남 처녀와 결혼' 하라며 몇백 만원만 있으면 처녀를 부를 수 있다는 프래카드가 수두룩하게 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혼혈화되는 현실에서 <순수, 순결한 혈통>을 중시하는 파시스트적 인종 이론이 한국에서 판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으로 이 책을 읽었다. 나치의 두려움을 미국의 인종주의자들도 갖고 있었다는데, 한국은 그런 것도 수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한 사진에서 <나는 발정난 암퇘지라서 유태인과 정을 통했다> <나는 독일 여자를 침실로 끌어들인 유태인이다>는 팻말을 목에 걸고 길거리에 서있던 두 남녀를 보았다. 이것이 인간들의 생각일까? 정말 인간은 만물의 영장일까?하는 좌절감이 들기도 했다.

물론 한국에는 이주 노동자를 돕는 사람들도 많고, 그들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이들도 많으며, 베트남 처녀와 알콩달콩 잘 사는 농촌 총각들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현대 한국 사회의 구조는 아이는 여성을 구속하는 구조에 불과함을 극명하게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미래의 해방된 사회에서는 자유로운 개인이 연합체를 만들어 노동 민주주의의 천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라이히의 공상적인 생각은 참 아름다운 것이었다. 이 장으로 그의 이 책은 동화가 된다.

자주적 공동 생간과 공동소비, 사회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성격 구조의 대중을 형성하고, 어떠한 정치나 사실에 어긋나는 불합리한 선동도 거부한다는 그의 글은 어쩌면 잭 런던이 강철 군화에서 그리던 <형제 인류애 시대>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요즘 자주 꿈을 꾼다. 억압이 없는 세상, 순수함을 따지지 않는 세상. 아름다움은 모든 것에 들어 있을 수 있는 세상... 어쩌면 이 책은 사회 과학 서적 코너 보다는, 존 레논의 <이매진>과 함께 공상 과학 미래 소설 코너에 있는 것이 더 어울릴는지도 모르겠다.

소유도 없고, 국가도 없고, 종교도 없는... 나를 꿈꾸는 사람이라 여길는지 몰라도... 너희도 우리와 함께 할 거라고...

Imagine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as one

Imagine no possessions
I wonder if you can
No need for greed or hunger
A brotherhood of man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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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민중사 1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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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이란 영화가 있다.
단테의 신곡과 초서의 캔터베리 서사시를 근거로 하여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인간을 파멸에 이르게 한 일곱 가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차례로 살해한다.
일곱 가지 범죄는 탐식, 탐욕, 나태, 음란, 교만, 시기, 그리고 분노다.
그런데 그 수법이 너무나 치밀하고 잔혹하며 계획적이다. 마지막 부분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구역질이 치밀어 오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영화 ‘세븐’을 보고 있는 것같은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어메리컨 대륙의 발견부터 시작된 살상과 우악한 착취 구조는 인디언이란 편견어린 이름으로 불린 ‘어메리컨 원주민들’부터 시작해서, 흑인 노예들, 그리고 노동자들과 식민지의 국민들에게까지 확대되는 것을 확인하게 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표준적인 역사책을 읽다 보면 그 나라 인구의 절반은 잊어버리게 될 가능성이 있다.(189)는 하워드 진의 관점에 적극 동감이다.
한국의 국수주의를 외치는 우익 꼴통들이 늘 하는 소리가 <국사>를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교과서가 얼마나 <우익을 위한 지배자의 관점에서 작성된 것>인지 그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우리끼리만 은밀하게 하는 얘길세만, 나는 거의 어떤 전쟁이든 환영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네. 이 나라에는 전쟁이 필요하기 때문이네.”라고 한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507) 이것이 미국의 본질을 극명하게 말해준다.

탄압과 착취의 구조를 영속하기 위한 끝없는 전쟁만이 <미 제국주의>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혈액 속의 유전자의 원형인 것이다.

미국의 죄악 1-2. Gluttony(탐식)과 Greed(탐욕)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에게 혁명은 어떤 의미였을까? 인디언들은 독립선언서의 고상할 표현에서 무시당했으며, 자신들이 지금껏 살아온 아메리카 영토를 통치하게 될 자를 선택할 수도, 유럽 백인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수세기에 걸쳐 추구해왔던 행복을 찾을 수도 없게 된 채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이제 영국을 몰아냄으로써 아메리카인들은 인디언을 그들의 땅에서 몰아내고 이에 저항할 경우 죽여버리는 무자비한 과정에 착수할 수 있었다.(161)

국무성의 목록을 보면 1798-1895년 사이에 다른 나라의 문제에 103차례나 개입했음(509)을 알 수 있다. 미 제국주의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 국가들은 아르헨티나, 니카라과, 일본과 류큐 열도, 중국, 하와이, 스페인과 멕시코 등이다.

큰아버지(백인)는 홍인종 자식들을 사랑했고, 이렇게 말했다. “내 발에 밟히지 않도록 조금 멀리 떨어져라.” 형제들이여! 나는 큰아버지로부터 아주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러나 큰아버지의 말은 항상 시작과 끝이 똑같다. -- “조금 떨어져라. 너무 가까이에 있어.”(243)

우리는 남부 개척지의 얼마 되지 않는 초라한 땅에 인디언 부족들을 밀어 넣었습니다. 이 땅이 한때 끝없는 숲 속에서 살았던 그들에게 남겨진 전부입니다. 그럼에도 만족을 모르는 우리의 탐욕은 말거머리처럼 “달라! 달라!”라고 외칩니다... 여러분... 정의에 대한 의무감이 피부색에 따라 달라지는 겁니까?(248)

이런 상원의원도 있었구나. 그 이름 시어도어 프릴링히전. 정복으로 차지한 땅은 하나도 없다... 다행히도.(멕시코를 1500달러에 산 후... 299)

미국의 죄악 3. Sloth(나태)

미국의 독립 선언서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명제를 넣었다는데, <정부의 정치적 권리에 관해서는 언급하고 있으나 현존하는 재산상의 불평등에서 눈을 감았다. 도대체 부에 있어서 명백한 불평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진정으로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었을까?>하고 저자는 반문한다.(141)

건국의 아버지들은 당시 지배세력간의 균형을 제외하고는 관심이 없었다. 노예, 무산자, 인디언, 여성들의 권리엔...(186)

미국의 죄악 4. Envy(시기)

백인들이 도망쳐 인디언족에 가담하거나 전투에서 사로잡혀 인디언들 틈에서 살곤 ?는데, 이런 경우에 백인들은 떠날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인디언 문화에서 머무르는 쪽을 택했다. 똑같은 선택권을 줄 경우 인디언들은 대부분 백인과 함께 살려고 하지 않았다.(108)

전쟁은 장군에게는 명예를, 사병에게는 죽음을, 상인에게는 부를, 빈민에게는 실업을 가져다 줬다.(118)

노예가 없는 백인들이 흑인에 대한 동정심에서라기보다는 부유한 농장주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가난에 대한 분노에서 노예들의 불복종과 반란을 부추길 것이라고 의심... 때로는 백인들이 노예의 반란 음모에 연루되기도 했으며,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두려움이 다시 피어올랐다.

미국의 죄악 5. Lust(정욕)

이 책에서 개인적인 정욕을 채우기 위한 보고는 드물다. 아무래도 역사서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남성>들의 역사관이 두드러지므로, 여성들의 피해는 기록되지 않았을 뿐이지, 고난의 역사는 함께했을 것이다.

미국의 죄악 6. Pride(교만)

하나님의 개입은... 내가 보기에는 우리 전쟁의 성공과 일치하는 것 같다. 인류에게 만연한 모든 악덕으로부터 700만 영혼을 구제하는 일이 표면상의 목적이라느 사실이 분명해진다... 전쟁은 지고한 현명함을 지닌 관장자에 의해 인류의 향상과 행복이라는 위대한 목적을 성취하는 대행자의 역할을...(277)

흑인 참정권이라는 검둥이 아이는 너무 추해서 그렇게 중요한 날에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손님이 찾아오면 불구의 자식을 보이지 않는 구석에 처박아두는 것처럼 흑인 역시 감춰졌다.(334)

남북전쟁에서 인구 3천만 명의 나라에서 양쪽 합쳐 62만 3천이 죽고 47만의 부상을 입어 모두 100만 이상의 사상자가 나왔으니 이것은 엄청난 살육이었다.(412)...

한국 전쟁에서는 같은 인구 3천만 명의 나라에서 300만명이 죽었으니(다친 사람은 빼고) 가공할 노릇이 아닐까. 19세기가 저물 무렵, 필리핀을 스페인에게서 빼앗는 태도는 제국주의자로서의 미국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필리핀인들 손에 넘겨줄 수 없다. 그들은 자치를 감당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곧 무질서한 무정부상태가 되어 스페인 지배때보다도 상황이 악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필리핀을 전부 우리가 차지해 필리핀인들을 교육시키고, 그들의 정신을 앙양하고, 개화시키고, 기독교로 개정시키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저들을 위해서도 목숨을 바치셨으니, 하나님의 은총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같은 인간인 저들을 돕기”로 기도하고 잠자리에 든다.(532)

참으로 교만스럽기 그지없는 인종이 아닌가. 이 때, 필리핀을 먹는 대가로 일본에게 조선을 이양하는 가스라-태프트 조약이 맺어지게 되니, 참으로 미국의 태동은 세계 평화에 암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시대는 솔직함을 요구합니다. 필리핀은 영원히 우리 것... 필리핀 바로 너머에 중국이라는 무한한 시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우리 민족의 사명, 세계를 문명화한다는 사명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태평양은 우리의 바다입니다. ... 우리가 잉여생산물의 소비자를 찾아 어디로 가야 하겠습니까? 중국은 우리의 당연한 고객입니다.(533)

이 때부터 그들의 제국주의는 ‘경제적 침탈’의 목적임을 분명히 한다.

미국의 죄악 7. Wrath(분노)

 ... 불을 피해 집밖으로 뛰쳐나온 사람들은 칼로 난도질 당했다. 몇 명은 도끼질에 온몸이 갈갈이 찢어졌고 또 몇 명은 칼에 정통으로 찔렸으며, 재빨리 해치웠기 때문에 도망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불길 속에서 인디언들이 튀겨지고 피가 냇물을 이뤄 불이 꺼지는 광경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으며 코를 찌르는 냄새 또한 오싹하게 만드는 것이었다...인디언들은 피쿼트 전쟁에서 세 가지 교훈을 이끌어냈다. (1) 영국인들은 가장 엄숙하게 한 서약이라도 그에 따른 의무가 이익에 배치될 때면 언제나 깨버린다. (2) 영국인들의 전쟁 방식에는 양심의 가책이나 자비라고는 전혀 없다. (3) 인디언의 무기는 유럽인들이 대량으로 제조한 무기에 비하면 거의 아무런 쓸모가 없다. (42)

좋아질 가능성이 없으면 죽여 버려야만 한다. (237)

물론 역시 우리 국민들 사이에도 모든 호전적인 정서의 압력을 어느 정도 인식해야 했는데, 그런 것은 인기 있는 정부가 갖는 본성...(282)

아, 이 책을 읽는 동안 맡은 살 타는 냄새와 피비린내는 지구의 공기를 모두 오염시키고도 남을 만큼 지독한 것이었다. 세포들이 그 냄새를 기억한다면 분노해야할 때도 분명히 기억하리라. 지배자의 입장에서 쓰는 역사와 민중의 시각으로 본 역사는 분명히 다르다. 그래서 왕조 중심의 역사관으로 쓰인 우리 <국사>책이 한계가 너무도 빤한 것이다. 이 책은 민중의 시각으로 미 제국주의의 팽창하는 모습을, 그 피비린내 진동하고 시신 태우는 냄새로 가득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악업을 분명하고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역작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미국의 지배자들이 벌이는 죄악들 속에서도 건강하게 피어났던 민중 의식과 견결한 투쟁들을 높이 사고 있다.

19세기 후반, 셀 수 없이 많은 투쟁에서 놀라운 점은 파업 노동자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쟁취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토록 커다란 역경을 뚫고 감히 저항했으며 패배하지 않았다는 사실.(460)이었음을 기록하는 것. 이런 것이 역사의 할 일이다. 승리하지 못했더라도, 승리를 향해 감히 저항하였음을 기특하게 여기고 기리는 것이 역사의 할 일인 것이다.

노동자들의 건강한 의식은 “우리가 아무리 먹을 빵이 필요하더라도, 사나이로서 우리 동료 노동자들의 입에 들어갈 빵을 빼앗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임을 깨닫고 단결한다.(461) 사회주의 국가를 표명했던 소련 등의 국가들의 몰락으로, 이런 건강한 삶을 한달음에 부정하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면서 보수 반동화 하고 있다. 그렇지만, 역사를 쓰고 읽는 일은 삶의 등대를 밝히는 일과 연관지어볼 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미국 민중사를 통해서 느끼게 된다. 건강한 의식을 일깨우는 역사라야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을 건강한 한국인들과 미국인들, 세계인들이 널리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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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12-26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성이 좋은 리뷰네요.^^ 올해 다가가기전에 보려했는데...200여 페이지를 남겨놓고 답보상태..넘 바쁘군요.레이건의 시대로 가고 있는데..올해가 5일 남았는데 부지런히 보면 다 볼 수 있을 듯 하기도 하구.

파란여우 2006-12-26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하기에 좋은 책이죠. 리뷰도 공책 줄칸처럼 정리하셨군요^^
근데, 1권 2권 나눌 생각을 하시다니 놀랍습니다.
음, 역시나 샘님은 다르셔~~^^

글샘 2006-12-27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전엔 날카로운 지적도 해 주시더니... 요즘은 너무 친해진 거 아닌가요? 저도 2권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여우님... 정말 공부하는 거 같애요. 두 권을 한번에 리뷰 쓸 능력이 도저히 안 돼서요. 암튼, 미국은 무서운 나라예요.

드팀전 2006-12-27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나요.(* *)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알라딘이 내집단의 '인정주의'로 치닫고(?)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던게 아마 파란 여우님이었을 거에요.^^ 글샘님의 진정성은 진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듯 합니다.페이퍼에 쓰신 평가서를 보다가 뭔가 프로젝트가 떠오를 듯 ..가능할까 ? 이게 될까? 뭐 이런 저런 생각이 마구 마구드네요.조만간 만나 뵐 일이 생기길 바랍니다.^^

글샘 2006-12-27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프로젝트, 이제 겁이 납니다. 학교엔 프로젝트 보다는 조용한 물결같은 교육이 필요해요. 조만간... 뵐 수 있음 좋겠네요.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2권 -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4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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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멍청이가 그랬는지, 마흔이 넘으면 혹, 하지 않아서 '불혹'이라고 했고,
젊어서 사회주의자가 아니면 가슴이 뜨겁지 않지만, 나이 들어서도 사회주의자면 바보라고 했던지...

그 놈도 멍청인지 모르지만, 나도 멍청한 건지도 모르겠다.
50년대를 읽으면서, 아직도 핏줄이 펄떠덕거리고 입에서 욕이 불뚝거리고 나와서 견딜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씨바, 어째서 이 나라의 가진 자들 중, 인간 같은 놈이 어찌 이리도 없단 말이냐. 그리고 어찌 이 땅은 이토록 비극적인 땅이었단 말인가... 몰랐던 것이 부끄럽지만, 그걸 감추며 살았던 역사가 끝없이 가증스러웠다.

베트남 전쟁을 가장 추악한 전쟁이라 하지만, 베트남은 사진, 방송 등 기술의 발달로 널리 알려진 전쟁일 따름이었다. 제1세계와 제2세계가 맞붙은 최초의 전쟁인 한국 전쟁은 국민의 1/3이 죽어갔지만,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고, 베트남 전쟁은 베트남 인민의 승리로 올바른 정리를 밟을 수 있었지만, 한국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 이데올로기의 시녀가 된 두 땅덩어리로 분단되어, 아직도 국민을 짓누르는 현재 진행형으로 시퍼렇게 살아있다.

"살상 무기를 앞세워 공세와 응사를 교환하는 인간들은 똑같은 몽골반점의 종자였지만 밀어붙이는 탱크에는 소련 표지가 새겨져 있었고, 다급하게 뿜어대는 기관총에는 미국 표지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것은 단순한 상표가 아니라, 전쟁 그 자체에 새겨져 있어야 마땅한 폭력의 본적지에 대한 표시였다."(39)

이렇듯 한국 전쟁은 한반도에서 일어났으므로 <한반도 전쟁>일 수 있지만, 그것은 분명 미,소 전쟁이요, 소,미 전쟁이었다. 이 와중에 때리는 시에미보다 미운 인간이 말리는 시누이도 아닌 때리는 시누이였다. 리박사란 애칭으로 불리는 그자식은 미국의 핵을 이용해서라도 자기 이익을 얻으려는 모리배에 불과했다.

"애당초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으로 한반도에 진주했던 미군에게 있어 한반도와 한국민은 단지 전투 수행을 위한 작전 대상물에 불과"했던 이 전쟁에서 이승만이 얻은 것은 권력이요, 잃은 것은 정의였다.

'코리아 국제전범재판'의 램지 클라크 수석 검사는 한국 전쟁의 본질을 <인종 말살 정책>이라고 일갈했다. 살리기 위한 폭격이 아니라, 말살을 위한 폭격이었다는 말이다.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폭격을 일삼은 원산의 경우 700일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래도 한민족은 gook(미군들이 한국인을 부르는 경멸적 속어)으로 있어야 했던 것이다.

전쟁 중, 많은 민간인들이 '골(짜기)'로 가서 학살 당했고, 휴전 후 유골을 발굴했다가 리승만에게 시껍을 했고, 다시 박정희에 의해 연좌제로 일가 친척이 빨갱이 낙인이 찍힌 불행을 등에 짊어진 나라. 그 나라의 전쟁으로 가장 회복을 얻은 것이 일본이며, 세계 경제가 일어났다는 아이러니는 <모든 전쟁의 본질은 유색인종 말살과 백인종의 부흥>이 그 목적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오로지 멸공만을 외치는 모리배 이승만 도당에 붙어먹은 것들 중에 40년 만에 세계 50대 교회에 23개나 드는 위업을 차지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도 한건 올렸고, 불신사회의 골은 점점 깊어졌다.

사바사바가 통하고, 빽이 아니면 되는 일이 없으며, 적당주의와 요령주의는 안심입명의 필두에 선 복지부동의 아버지였다.

제가 모른다고 맞춤법까지 뒷걸음질 치게 할 뻔한 모리배 리승만. 그의 밑바닥엔 과연 무엇이 들었을까? 미군들조차 불안에 떨게 한 그의 반공과 원폭에 대한 외곬 의지는 국가의 모든 면면을 썩어들어가게 하고 곪아 터지게 한다.

예술원에 염상섭, 김동리, 유치환, 서정주 등이 들어가자, 모윤숙, 김광섭 등이 자유문인협회를 만들고, 변영로, 백철 등은 펜클럽을 만든다. 아직도 이 인간들이 국어 교과서의 주요 등장 문학가라는 것이 애통하고 비통할 따름이다.

현대의 성자, 이승만 박사... 노구를 이끄시옵고 친히 만기를 총람하사 주야로 전념하심을 우러러 뵈오니 참으로 황송함을 이기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연년 익수하사 정정하신 기력을 뵈오니 국민된 기쁨 이에 더함이 없나이다... 희신 터럭은 이 나라 이 겨레 때문이옵고... 우리 한국의 창건자, 세계의 민주 선봉, 민족을 위하여 형극의 길을 걸어오신 현대의 성자... 고은의 말대로 <남산 이승만 임금님>의 나라였다.

임진왜란이 나자 제일 먼저 달아난 선조 임금과 그 꼬락서니가 비슷한 것으로 보거나, 양녕대군의 후손이라는 프린스 리의 핏줄로 보거나, 그가 왕족인 것은 분명한 모양인데, 어찌 하는 일은 그토록 비겁하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것인지...

이 책을 읽는 일은 참으로 불쾌하고 참담하고 우울한 역사를 곱씹는 일이어서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차라리 미국 민중사의 인디언, 흑인, 노동자를 짓밟는 인종들은 최소한 '다르기에 억압한다. 그들과 우리는 다르다.'는 이유나마 있었다. 차라리 미국의 노예가 속편할 일일 정도로 열통터지는 역사도 과연 역사일까? 이 책은 <상부 구조를 차지한 인간들>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다. 이 시대 한국 민중들의 삶을 오롯이 기록한다면, 이 책에 비하여 얼마나 더 피비린내와 굶주림의 역겨운 풍경으로 가득할 것인가.

오, 역사에 자비 있을진저. 다시는 리승만 같은 짐승만도 못한 인종이 이 땅에 발붙이지 않기를... 간~곡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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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 6색 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 인터뷰 특강 시리즈 2
한겨레출판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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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원초적 지점엔 이놈이 있을 것 같다.
호모 이매지네투스...라고나 할까.

동물도 상상할 수 있을까? 인간이 달에 가기를 상상하고, 제 자리에 앉아 천리 밖을 보기를 상상했으며, 신분과 어울리지 않는 사랑을 상상했듯이... 동물들은 힘없는 수놈은 포기하고 말지 않던가.

그 상상력의 자리에 문학과 철학과 기술이 모두 자리하게 되었고, 인간의 특성의 하나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고있는 나라, 사회는 상상력을 말살하는 시간과 공간을 거쳐왔다.
말로는 반도였지만, 실제로는 분단으로 인해 섬나라였으며, 빨갱이로 몰리지 않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최대한 죽이며 쉬쉬하고 살아왔다.

상상력이 허여되는 집단은 권력과 금력을 가진 자들 뿐이었다. 그들이 상상하면 누구나 간첩이 되기도 하고, 누구나 죽일 놈4이 되기도 했으며, 어떤 짓이든 '나쁜 짓'이 될 수도 있었고, '금지곡'이 될 수도 있었다.

그 후유증으로 장발이 아직도 학교에서는 처벌 대상이고, 미니스커트도 학교에선 입을 수 없다. 70년대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 당했던 세대가 상상력 말살 세대가 되어버려 새싹들의 상상력도 자르려 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의 교양, 상상력, 거짓말 중 상상력을 가장 나중에 읽게 되었는데 세 권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 같다.

그중 한비야와 한홍구의 글이 제일 재미있었다. 입담도 보통이 아니지만 많이 움직이는 사람은 늘 많은 이야깃거리를 몰고 다니게 마련이다.

한비야의 부탁 :
1. 세계를 보자.
2. 꿈을 위해 노력하자.
3. 힘 있는 쪽 말고 힘 없는 쪽에 힘을 보태자. 일리가 있는 부탁들이다.

한홍구의 "에비"가 상상력을 짓밟았던 시대 이야기는 요즘 내가 많이 읽고 있는 무서운 시대들을 짓밟았던 가치였다.

홍세화 씨의 강연은 올해 3번 들었는데 이 책의 이야기는 비슷한 것이었다. 교육의 문제, 자기 처지를 배반하는 의식을 지배하는 헤게모니의 문제. 그래서 자아 실현의 끈을 놓지 말고 자기 성찰을 늘 모색하자는 제언.

늘 날카로운 박노자의 이야기는 늘 불편하다. 중국, 일본에 대해 저항할 때, 일본을, 일본의 모든 사람을 동질 집단이라고 착오하는 것이 <민족주의>의 병적 징후라는 이야기는 새삼 생각할 바를 던진다. 미국에 반대할 것이 아니라 부시와 그 전쟁광들을 미워할 일이고, 일본의 우익과, 중국의 지배계급을 미워해야 할 일이란 것.

한겨레 21이란 컨텐츠를 만든 오귀환씨. 그는 가장 참신한 상상력의 <보고>다. 이 책에서 가장 덜 유명한 사람이지만, 사실은 이 사람이 가장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 같다.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지혜롭고 영리할 필요가 있다. 닫힌 사고를 열고 지지 않는 싸움을 할 필요가 있고, 그 내용을 늘 새로운 것으로 채워야 한다. 한국의 모든 운동가들이 깊이 숙고해야할 지점이 아닐까?

노무현이 왜 바보가 되었나? 전교조가 왜 신뢰를 잃었나? 386세대가 왜 허수아비가 되었나?
모두 지는 싸움을 해왔기 때문이고, 그 컨텐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따지자면, 장기수들도 마찬가지고 지난 민주화 투쟁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지만, 이제는 운동권이 정말 진지하게 반성을 할 때다. 조급해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이윤기의 신화이야기는 역시 세상을 추상화한 느낌이 든다.

나의 상상력의 한계를 깨나가는 좋은 시발점이 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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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2-10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담아둡니다.^^

글샘 2006-12-10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각에 안 주무시고 뭐하세요? ㅋㅋ
 
삼색 공감 - 사람, 관계, 세상에 관한 단상들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정혜신의 글을 읽으면 뭐랄까, 국물 맛이 푹 우러난 뜨끈한 콩나물 국을 '어, 시원하다'하면서 쭉 들이키고 나서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힌 채 정말 속이 시원해 지는 그런 느낌이 든다.

이 책은 어디 쓴 칼럼들을 모은 글 같은데, 사람, 관계, 세상에 대한 생각들이란 파트로 나누어 두었다.

정혜신을 읽다 보면, 표지 날개에 드리운 어여쁜 사람의 얼굴 위로 강한 <페르소나>가 중첩된다. 그 페르소나의 색깔은 <남자>라는 색깔이다. 그 자신이 정신과 의사니 이 글을 읽는다면 뭐라고 할는지 모르고, 또 이 글을 읽을 확률은 1/100도 안 되겠지만(전에 이랬다가 저자가 글을 읽고 뭐라고 댓글 단 적이 있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내 맘대로 느낀 느낌이 그렇다는 거다. 물론 남자의 시선과 여자의 시선의 달라야 한다는 것은 편견일 수 있지만, 크게 구분하면 그렇다는 거다. 내가 남자면서 뒤집어쓰는 페르소나는 <여자>이듯이.

그의 표현들은 적나라하고, 시원시원해서 공감이 가는 측면이 많다.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영역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공권력은 <사이코패스>와 다를 바 없다.
사이코패스란 정신병질자란 의미로 반사회적 성격의 소유자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 심지어 가족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제심, 양심, 도덕성 등 통제기제가 미약해 순간적인 충동으로 반도덕, 반사회적 행위를 저지른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나는 국보법 관련 발언 중 이렇게 시원한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국보법 폐지 반대에 올인하는 듯한 놈들의 행동을 정치적 관점이 아닌 <콤플렉스에서 기인한 강박적 행동>의 일정으로 본다. 툭하면 그들은 <국가의 정체성> 운운하지만, 홍세화 님 말대로 한국의 정체성은 반공국가가 아니라 <민주 공화국>이다. 임금만 없으면 되는 나라가 아니라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힘써야 하는 나라란 뜻이다.

그는 지역 감정을 '감정'의 차이가 아닌 '망상'이라고 규정한다. '망상'은 잘못된 신념으로 평소의 인품이나 교육 정도와도 전혀 관계없이 나타나며 어떠한 논리적 설득에도 망상을 포기하지 않는 특징을 가진다. 지역감정 문제가 바로 그런 체계화된 망상이란 것이다. 지역 감정이 아니라 사고 장애를 일컫는 <지역 망상>이란다.

'진도간첩단 행방불명자가족사건'에서 <아무런 증거도 없는 것을 가지고 채고향까지는 너무나 가하지 않읍니까. 넓으신 마음으로 못난 소인을 한번 살려 주세요. 판사님 형법에 의한 벌만 주싶시요. 판사님... 1984년 11월 15일 피고인 김정인...> 이런 소장을 올렸으나 이금해 김정인은 47세의 나이에 사형을 당한다. 이미 죽은 그에게 명예 회복은 불가능하지만, 이런 아픔을 가진 사람이 이땅에 수백만에 달하지 않겠는가... 정말 공감하며 읽게 된다.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는 <마술적 사고>란 개념을 들이댄다. 마술적 사고란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직면한 인간이 이러한 알 수 없는 힘을 달래기 위해 동원하는 원시적 사고를 일컫는 정신과 용어다. 예를 들면 병에 걸려 죽어가는 엄마를 둔 아이가 '내가 하루에 책을 백 페이지 읽으면 엄마가 죽지 않을 거야'하고 생각하듯.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것같은 극단의 불안이 마술적 사고를 불러온다. '우리가 이라크 파병을 하면 한반도에서 전쟁을 피할 수 있을 거야.' 이런 마술적 사고...

파병에 관해서 또 이런 예를 든다. <오빠 믿지?>하는 장면. 열차도 끊어진 외딴 마을에서 오빠는 말한다. '오빠 믿지?' 망설이던 여자가 새끼손가락까지 내밀며 오빠의 다짐을 받아내지만, 그날 밤은 날 샜다. 이렇게 말해야 한단다. '오빠, 나를 꼭 지켜줘야 해요...' 가 아니라, <아주 지랄을 하세요.>라고. 미국한테 해 줘야 할 말이다. 나를 지켜줘야 해요... 가 아닌, 아주 지랄을 하세요! 하고 말이다. 공감의 수준을 넘어 통쾌한 구석이 있다.

정혜신의 글들은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의 용어들을 낯설지 않게 해 준다. 그러면서 그 분석의 틀들을 적절하게 들이대서 한국 사회와 거기서 설치는 남성들을 '공감'가게 해부한다. '사람 대 사람' 이 그랬고, '남자 대 남자'가 그랬다.

이런 책들이 갖는 한계가 있다. 그 시점에서 읽지 않으면 시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미 파병도 벌써 했고, 탄핵도 우습게 됐고, 노무현도 우스운 대통령이 되어버렸지만, 그 시점에서 바라본 한국 사회의 틀은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므로 그의 글을 읽는 일은 유쾌하면서도 교훈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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