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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민중사 2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06년 8월
평점 :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부럽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다. 부러웠던 것은, 민중이 중심된 역사서를 펼칠 수 있는 학문적 자유에 관한 것이었고, 아쉬움은 한국에 이런 역사서가 없는 것에 대한 생각이었다. 88년 올림픽을 계기로 많은 납북 작가들의 작품이 해금되었고, 이 기회에 북한에서 제작한 문화사, 역사서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그러나... 기대를 갖고 보았던 북녘의 역사책들은 또다른 편향의 하나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어쩜 그렇게 양쪽이 똑같은 모양새로 못난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남쪽의 역사서가 지나치게 왕조 중심 서술이라면, 북쪽의 역사서는 왕조 폄하 서술에 불과했던 것 같다.
미국의 역사야 200년 남짓이니 기록으로 남은 것들도 많이 있겠지만, 한국의 경우 끝도 모를 역사의 시원을 가지고 있으며, 기록이 남은 삼국 시대의 역사부터 치더라도 천오백 년 이상이 되었고, 지금 남은 자료들은 대개 왕조 사관으로 기록된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나마 7차 교육과정에 들어서면서 한국근현대사란 선택과목이 개설되기도 했지만, 국사 교육의 강조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 <국사>책을 <근현대사>책과 위치바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미국의 역사는 모두가 근현대사다. 그렇지만 우리는 국사라고 하면 단군부터 시작해서 태고내고(태조왕,고이왕,내물왕, 고대국가) 소침눌불(소수림왕,침류왕,눌지왕, 불교전래)... 뭐, 이런 완존 암기 과목으로 전락해버린 친일 사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박정희 욕하는 국사책은 아직도 멀었고, 김대중 욕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공과를 기록하기엔 아직도 미약한 듯 하다.
2권을 붙들고 씨름한 것이 한달 쯤 되는 것 같다. 노트에 필기도 하고, 생각도 하고, 하루에 한 챕터 정도 읽으려 했지만 더 재밌는 책에 밀리고 밀리고... 도서관에 대출하러 갈 때마다, 몇 달 전에 빌린 이 책이 맨 위에 떡하니 찍혀 있어 좀 민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충 읽고 가져다 주기엔 아까운 책이어서 야금야금 읽다가 마침내 오늘 부시를 쫑쳐버렸다.
멋진 책에 멋진 후기가 없을 수 없는 법. 하워드 진은 말미에 붙인 후기에서 이렇게 쓴다.
한 세기에서 다음 세기로, 한 천년에서 다음 천년으로 넘어가면서 우리는 역사 자체가 달력처럼 극적으로 변화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언제나 그러하듯이, 역사는 화려하게 통일되어 있는 한쪽과, 초라하지만 고무되어 있는 다른 한쪽의 세력이 경쟁하는 가운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여기 끊임없는 끔찍한 일들로 얼룩진 과거가 있다. 폭력, 전쟁, 생김새나 피부색, 이념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편견, 소수에 의한 전 세계 부의 독점, 거짓말쟁이와 살인자들의 수중에 놓인 정치 권력, 학교 대신 감옥을 짓는 현실, 언론과 문화 저반의 타락, 이런 과거를 보면서 사람들은 쉽게 낙담하게 마련인데, 특히 신문과 텔레비전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과거가 온통 이런 것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표면적인 순종의 이면에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변화 역시 존재한다.... 아, 우리 역사에서 이렇게 계급의 이념에 충실한 역사책을 쉽게 만나볼 수 있었던가?
오늘 아침 출근길에 뉴스를 통해 인혁당 사건이 고문으로 인한 조작이라는 말이 흘러 나왔다. 이미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들을 향해 무죄라는 말이 당키나 한 것일까? 법복을 입은 판사들이 그들의 묘소에 뒤늦게나마 참회의 술잔이라도 바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들은 한 사람에 대해 '집행 유예' 판결을 내렸다. 사형 집행은 그렇게도 신속하게 이루어졌는데, 32년이 지난 이제서야 집행을 유예하는 법을 도대체 어디서 배웠단 말인지... 인혁당 사건은 한일 회담 반대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조작된 역사란 것을 세계가 알고 있는데, 한국 사회만 이제서야 밝히면서 그렇게 부끄럽게 처리해야 하는 것인지... 부끄럽기만 하다.
세계대전의 시작으로 여는 이 책에서는 <세계를 착취하는 자가 이제 국가, 즉 단합된 자본과 노동으로 이루어진 민주주의 국가>임을 분명히 한다. 그 중심에 선 미국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나라였다. 1861년 남북전쟁을 초래한 원인이 400만 노예제가 아니었듯이, 2차세계대전에 뛰어든 이유도 유태인에 대한 히틀러의 공격이 아닌 진주만 기습이었다. 자국의 <국익>을 위한 철면피같은 행위는 이 책에서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 책의 109쪽에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 영,미는 국제 환시세를 조정하기 위해 IMF, IBRD를 설립한다. 이미 미국 정부는 전후의 경제 원조까지를 계산한 것'이란 구절이 나온다. 끔찍하다.
흑인, 원주민, 노동자, 약소국의 국민, 특히 유색인종은 무조건적인 탄압의 대상이었다.
트루먼이 "세계는 최초의 원폭이 군사기지인 히로시마에... 가능한한 민간인의 살상을 피하고자...' 하고 거짓을 말했지만, 미전략 폭격조사단의 공식보고서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목표물로 선정된 이유는 경제 활동과 인구가 집중된 도시이기 때문"이란 명백한 기록이 진실을 밝힌다.
그들이 국제 기금으로 지원하는 '원조'의 대부분은 약소국의 인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익 독재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고 혁명을 저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과테칼라, 레바논, 쿠바를 비롯한 중남미 숱한 국가들과 한국등에서 잘 드러나듯이.
176페이지에 실린 흑인들의 '앉아있기 운동'에서 조롱당하는 시위대에게 오물을 퍼붓는 인간들을 보노라면, 아, 인간이 과연 만물의 영장인가... 슬픔이 우러난다. 그러나, 이런 것은 약과다.
사진으로도 실릴 수 없었던 한국 전쟁, 한국 전쟁은 그 규모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전쟁으로 이 책에서도 별로 기록이 없다. 미국에서 반전 운동도 그닥 없었다. 베트남 전쟁은 그 피해나 반전의 규모에서 널리 알려진 전쟁이다. 거대 기업과 고위 정치가들의 결탁에 대한 고발로서의 역사. 그것이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역사, 소수자들의 삶에서 바라본 역사라고 할 것이다.
인민의 친구이자 평화주의자연하던 카터도 백만장자인 땅콩재배자였으며 각종 전쟁의 옹호자였고, 우너조를 반대한 인물이었다. 그 잘못된 시각을 교정시켜줄 반례들은 이 책에 수두룩 빽빽 하다.
레이건과 조지부시(父)의 당선은 카터의 희미한 자유주의를 불식시키고 형편없는 국가 정책으로 일관한다. 복지의 삭감과 국방 증대로 환경을 오염시키고, 오로지 석유에만 관심을 쏟는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방어'의 명목으로 국방예산은 늘어만 갔으며, 각국의 민중들은 미제 소총, 미제 폭탄으로 멸종되어 갔다. 조지부시는 파나마와 이라크에서 전쟁을 수행한다. 미국에는 2만개나 있는 핵폭탄을 이라크가 소지했을 지도 모른다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레이저 유도폭탄이 군사 목표물만을 완벽하게 조준, 폭격한다는 확신에 찬 발언과 텔레비전의 친절한 레이저 쇼를 통하여 국민들을 속인다. 무식한 언론은 비판없이 그대로 방송하고, 한국의 청소년들의 1991년 당시 최고 희망 직종은 <동시 통역사>였다. 그 결과 2001년 9.11 테러 직후 한국의 동시 통역 수준은 월등하게 향상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1991년 '사막의 폭풍' 작전의 40% 이상이 빗나간 폭탄으로 수천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지만 걸프전 이후 부시는 "베트남의 유령은 이제 아라비아 반도의 사막에 영원히 묻혔"다고 거짓을 말했다. 그 아들 녀석이 그 유령을 다시 쫓게 된 것은 그 집안이 귀신에 씌인 집안이란 증거가 되었다. 미국이 전쟁을 벌이며 지키려는 '미국인이 생활방식'이란 미국인들이 전 세계 석유의 25~30%를 소비할 권리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라고 하니 암담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대부분의 역사책은 반란을 과소평가하고, 정치가의 역할을 과대평가하여 시민들의 무력감을 조성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의 '국사'책도 그러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은 아직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무기 감축을 거부하는 나라이며, 매년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지뢰 제거 협정에 100여국이 서명했지만 미국은 거부하고 있다.(한국도 동류 아닐까?) 한국 전쟁의 트루먼, 베트남 전쟁의 존슨, 걸프전의 부시, 소말리아, 코소보 사태의 클린턴 등은 외교적으로 해결이 가능한 때에 군사적 해결을 선택한 탁월한 지도자들로 기록되고 있다. 참으로 영광스러울 일이다. 이라크의 경우 아동을 위한 의약품, 식료품 지원을 거부하여 "이라크에 대한 제재의 결과 50만의 어린이가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히로시마에서 죽은 아이들보다 더 많은 수지요... 그런 대가를 치를 가치가 있는 건가요?..."란 TV질문에서 올브라이트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아주 어려운 선택이지만, 그 대가를 치를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521)"라는 짐승만도 못한 대답을 한다. 이것이 미국의 얼굴을 보여주는 뚜렷한 예가 아닐까 싶다.
하워드 진은 민중의 눈으로 본 역사를 서술하면서 이런 질문을 한다.
정치, 노동 현장, 문화 곳곳의 다양한 항의와 저항의 흐름들이 새로운 세기에 하나로 결합되어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권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
스스로 답하는 내용은 이렇다.
어느 누구도 예상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우 어떤 예상도 우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가운데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라고...
지난 역사는 하나의 길잡이를 제공한다고... 민주주의란 시민들의 운동을 통해, 교육하고, 조직하고, 선동하고, 파업하고, 보이콧하고, 시위를 벌이고, 권력자들이 필요로 하는 안정을 파괴함으로써 그들을 위협하는 시민들의 행동을 통해 도래하게 될 것이라고...
미국의 학교들이 '요코 이야기'를 읽는 대신 이런 좋은 책들을 읽혔으면 좋겠다. 아마 미국의 학교들에서도 이런 책은 억압받지 않으려나? 깨인 교사들은 이런 책을 편집해서 가르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천 페이지가 넘는 책이라 힘들었고, 세계 역사의 '악의 축'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사탄의 제국사를 읽는 일은 충분히 가슴이 터질 듯했지만, 맥도날드의 나라, 어메리칸 드리밍의 나라의 추악한 역사를 바로볼 수 있는 시각을 얻게 되어 가슴 뿌듯한 책이기도 하다. 하워드 진 선생님께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