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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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군대를 다녀온 남성이라면 누구나 '치욕스러움'을 참아야 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중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그 꼴을 겪었을 수도 있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잔인함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워커가 더럽다고 혀로 핥으라거나 변기를 깨끗이 닦지 못했다고 찍어 먹으라는 정도는 귀여울 정도다.

왜 군대에서 일년에 수백명이 자살, 타살로 죽어가는지... 그 답은 바로 홀로코스트가 벌어지던 수용소 안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아우슈비츠 안에서는 인간이 득시글거렸지만, 인격은 없었다. 그 안의 유대인들은 오로지 관리 대상으로만 여겨졌을 뿐, 그들을 인격적으로 대할 필요도 없었고, 그들이 인간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길도 없었다. 오로지 죽음을 향한 수용소였고, 죽기 싫어 어떻게든 잔머리를 굴려서 삶의 줄에 서 보려는 안간힘만 있었을 뿐.

그래. 이런 것이 인간인 모양이다.

가진자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못가진 자들은 전쟁터에서 빡빡 기어야 하고, 적어도 가진자들은 가지 않아도 되는 군대를(가더라도 사령부에서 근무를...) 못가진자들은 가야하는 것이 세계화의 일환인 모양이다.

그런데 꼭 군대 처럼 꽉 닫힌 조직에서나 그런 비인간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일은 아닌 모양이다.

sbs에서 방송하는 어떤 프로를 보니까 사회의 구조적 그늘의 틈바구니 곳곳에서 아직도 노예만도 못한 삶을 오로지 유지하기 위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는 감옥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이나 '양심수'들에게 가하는 린치 이야기는 아우슈비츠보다 덜하지도 않다. 박노자가 그렇게 치를 떠는 '양심적 병역 기피자들'에게 권하는 감옥도 치사스럽고 수치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군대 대신 종교적 신념에 따라 감옥갈 것을 고민하던 중학생 시절의 제자들에게 나는 해줄 말이 없었다. 아, 우리반에서 1,2등 하던 재영아... 넌 그래서 결국 감옥엘 다녀 왔는지...

세계적으로 보나, 지역적으로 보나... 인간은 말종인 모양이다.

오로지 눈치만을 살피고, 잔머리를 굴리고, 졸거나 잠자고 배곯기 싫고 아무튼 살아나가야 하겠다는 퀭한 유태인들의 눈을 생각하면, 아직도 이 지구 곳곳에서 신음하는 인간이란 종족의 암울한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군대를 3년은 가야 한다는 철부지 여자애의 발언을 텔레비전에 내보낸 선정적인 방송인도 또라이지만, 그 여자애에게 온갖 욕설을 퍼붓는 남자애들도 모자라기는 마찬가진데, 이 와중에 힘을 얻는 것은 늘 가진자라는 것이 무섭다.

정말 군대라는 곳이 신성한 곳인지... 군인들에게 물어보면 알 것이다. 전혀 신성하지 않은 곳임을... 월급 2,3만원으로 휴가비도 되지 않는 그런 곳이 아직도 우리 곁에 상존함을 생각하면... 인간에 대해 회의적인 나는 더욱 욕이 나온다. 지구가 싫어하는 인간종을 지구는 언젠가 멸종시키지 않을까? 두려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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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3-20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대는 가지 않아야해요...군대는 군대 자체로도 문제지만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군대식으로 바꾸어서 사회전체를 병영화하는 경향이 있어요.오죽하면 권인숙 선생은 '대한민국은 군대다'라고 까지 했겠습니까...
학교도 군대고 회사도 군대고.....모병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거라고 봅니다.

antibaal 2015-01-05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용소 얘기와 우리 사회 얘기를 잘 비교해 주셨네요. 공감이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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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란 푸른 별에서 인간이란 종이 하는 짓은 참 해괴하기 짝이 없다.
하느님께서도 연구 대상일는지도 모르겠다.
요놈들 노는 꼬라지를 갈데까지 가라고 두고 보시는지도...

독일의 절멸수용소에서 생존했고, 증언 문학을 남겼지만 1987년 4월 11일 자살하고 만 쁘리모 레비의 묘소를 찾아서 가는 서경석의 단상들을 레비의 글들과 잘 섞어 쓴 멋진 책이다.

이 멋진 책을 읽으면서 마음은 심난하고 처참하다.

인간의 이성은 인간을 동물 이상의 존재로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인간의 이성 때문에 또한 인간은 상처받고 버림받는다.

아우슈비츠만 만행이었나? 미국의 베트남은? 일본의 위안부는? 이런 질문이 반성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이성의 긍정적 측면일 수 있지만, 아리안족의 잘난 점을 자랑하던 게르만족에게서 이런 질문이 나오는 일은 우울한 일이다.

같은 이야기라도 서경식이 던지면 우울함이 배가되는 것 같다. 그는 재일 조선인이다. 더군다나 다카키 마사오의 시대에 간첩 양산 정책에 서승, 서준식 형제는 조국을 배우러 왔다가 그놈의 조국에 배반당하고 간첩이 되어 참혹한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서경식은 일본에서 재일 조선인이란 아웃사이더로 살아왔고, 그의 형제들은 아우슈비츠의 만행에 버금갈만한 조국의 감옥 생활을 버텨 냈다. 그에게 쁘리모 레비는 곧 그의 형제들에 다름아닌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시대는 흐르고 흘러... 21세기의 한복판으로 치닫고 있지만, 세상은 별로 변한 것이 없다. 그의 형제들은 감옥에서 나왔고, 그 서간집들이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지만, 인간의 세상이 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긍정의 눈길을 담그기에는 지구별이 너무도 추악하고 초라하다. 그래서 레비의 죽음이 더욱 섬찟하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가 추악한 삶과 비교해 본다면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책.

레비의 아내의 강한 거부감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시리게 한다. I'm very alone... can't receive anyone...  레비의 죽음이 가진 의미가 그런 것 아닐까? 그의 죽음은 개인적인 목숨을 끊은 사적인 사건이 아니다.

그를 살게 한 것은 인간이 떨어질 수 있는 나락의 최악의 현장을 증언해야한다는 필사의 이성이었다면, 그를 살지 못하게 한 것은 인간의 무관심과 무책임, 그에 따른 시대 정신의 실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이란 종족에 대한 희망을 버린 것이 곧 그의 추락에 담긴 의미가 아닌지...

쁘리모 레비, 또리노 등의 경음이 등장하는 것이 외래어 표기법에는 틀린 것이지만, 재일 조선인 서경식을 다소 낯설게 하는 데는 성공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내 주관적인 생각이고 그럴 의도였다면 어딘가 한 마디 적어 주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님 표기법에 좀 맞춰 주든지...(그렇지만... 싯점, 댓가처럼 그닥 복잡하지 않은 맞춤법도 틀리게 표기한 것은 창비사 답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책값은 열라 비싸게 매겨 놓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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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색 - 한국인의 인간관계에 대하여
강준만 지음 / 개마고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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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은 좀 난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꼼꼼하고, 그는 비판적이고, 그의 글쓰기는 독보적이다.
혹자는 그를 짜깁기 수준이라고 폄하하지만, 그것은 꼴꼴난 한국의 학자들이 연구도 하지 않으면서 논문이랍시고 내놓은 것들의 짜깁기 수준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강준만의 짜깁기 솜씨가 얼마나 오묘하고 절묘한 것인지를 말할 것이다.

강준만은 오버한다. 잘난 사람은 오버할 수밖에 없다. 오버하는 사회라는 좀 어쭙잖은 책도 있지 않은가.
강준만을 보면서 다만 안타까운 점은, 강준만이 왜 욕을 먹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 사회 안에 숱하게 많은 지식인 중에 한 명일 뿐인 강준만이라면 그가 욕을 먹을 일은 드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좁은 사회 안에는 지식을 팔아 먹고 사는 지식상인의 기득권자들과, 현실을 밝히고 비판하고 미래를 탐색하려는 홀대받는 지식노동자들이 몇 되지도 않는 판에, 이 지식 노동자들은 기존 기득권자들로 이뤄진 권력의 세계에서 욕을 듣기도 하고 잡스럽다고 폄하되기도 하는 듯 하다.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한국에서 남성으로, 아버지로, 어머니로, 할머니로, 노동자로, 사장으로, 이주노동자로, 창녀로, 애인의 남성,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 다양한 역할들 중 수십 가지를 한 사람이 떠맡아 살아가는 것이 삶일진대, 모든 페르소나를 완벽하게 소화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다만 한국의 특성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 사색'으로 제목을 정하지 않고 '인간 사색'으로 정한 것은 조금 모순이거나 오류다. 하긴, 우린 한국인만 인간으로 취급하는 특성도 가진 특이한 민족이기도 하다.

한국의 급격한 농촌 경제와 공동체 의식의 붕괴, 식민지 이후 독재 정권 하에서 모질게 이어져온 무의식 교육, 그러다 보니 '민주 공화국'이라는 국가의 정체 중, 민주주의는 형식적으로나마 이루어졌지만, 그 공화국의 공공성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 나라. 그래서 '개인'의 영달을 위한 진학과 출세가 국가의 가장 큰 화두가 되어버린 나라...라는 복잡 다단한 특성을 가진 한국 사회에서 '인간'으로,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페르소나를 뒤집어쓴 인간으로 산다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이 기획된 것이다.

이 책의 장점, 재미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이 책의 단점, 재미없는 부분도 상당히 있다. -_-;; 이런 리뷰란...

역설의 틈바구니를 헤집고 드는 강준만의 시선은 날카로우면서도 끈질기고, 한국의 현실과 역사를 종횡무진 씨실과 날실을 아우르면서 생각의 천을 짜내는 선수다.

1장은 사랑의 이야기를 한다.

고등학생에게 섹스가 닫힌 사회, 그러면서도 세상에서 성매매가 가장 쉬운 사회.
윗사람을 깍듯이 대접해야 하는 사회, 그러면서도 뒷담화가 무성한 사회.
음지의 돈으로 각종 회식이 만연하는 사회,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청렴한 선비를 표방하는 사회...
온갖 러브호텔이 한국처럼 많은 나라도 있을까? 그렇지만, 길거리에서 뜨거운 키스 아니라 가벼운 키스라도 하는 사람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한국인은 음습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일까?

2장에선 욕망을 이야기한다.

이놈은 사랑이란 주제와는 달리 광신주의 물질적 욕망, 뜨거운 한국인과 쿨한 세태, 각종 정치 이야기가 뒤섞이면서 아주 어수선한 책으로 변주되기 시작한다.(이맘때쯤 많은 독자들이 강준만의 짜깁기를 욕하리라.)

3장은 청춘이란 주제다. 1,2장에 비해 생뚱맞은 주제라고 보인다.

청춘이라기 보다는 한국의 나이문화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어의 특징인 높임말, 젊어 보인다면 무조건 좋아하는 현 세태와 노인 인구의 급증에 따른 노인 부양의 문제... 제목을 청춘으로 붙인 것은 좀 어색하다.

4장은 진실이란 주제를 다룬다. 이 장은 주로 정치적 가십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 책이 인간 사색이란 제목으로 거창하게 시작한 데 비하여 꽤나 실망스런 부분이다. 강준만의 여느 책들과 차별성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숱한 '추상명사'를 화두로 두고 온갖 이야기를 끼워 넣은 후반부는 다소 실망스럽기도 하다.

강준만의 글쓰기가 좀더 단단하게 다져졌으면 좋겠다. 그의 책을 집에 사서 두고두고 보고 싶도록...
아직도 그의 책은 사두기엔 좀 본전 생각이 나는, 그렇지만 도서관에서라도 찾아 읽게되는 수준의 좋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던 부분은 '신념' 파트에서 러셀의 말을 인용한 부분이었다.
인칭의 변화에 따라 같은 내용이라도 표현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정의에 따라 분노한다, 너는 화를 낸다, 그는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날뛴다.'는 식이다.
'나는 그것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너는 변심했다. 그는 한 입으로 두 말을 했다.' 이런 것.

한양대 교수 권혁웅은
'나는 용감하고 순수하며 세심하고 열정적이고 절제하며 불의를 참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무모하고 단순하며 소심하고 욕정적이고 억압돼 있으며 분노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 된다."
중요한 것은 덕목이 아니라, 누가 주인인가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덕목을 고르는 일이 필요한 때다...

똑같은 것이라도 보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을 찾게 되는 것.
이런 걸 보면서, 내 행동을 돌아 본다. 나는 당연하다고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남들이 보기엔 얼마나 우습게 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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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2-23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어떤 책에 대한 이야기라도
그것이 모이는 한 곳이 느껴집니다.
강준만에 대한 소견은 저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본인 스스로가 겪어야 할 성찰부분을 제외하면
우리 사회에 이런 사람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새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봄의 약속이 마음 속 한구석에 있군요....
술 한 잔 기회되면...

글샘 2007-02-23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럽시다... 기회되면... 근데 봄방학이 너무 짧네요^^
 
당신들의 대한민국 2 - 박노자 교수가 말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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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식회사 대한민국에는 '기업'만이 있다. '인격'은 없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가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모토다. '사람살기 좋은 나라'로서의 '민주 공화국'은 허상임이 백일하게 까발려졌다.

박노자가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처음 썼을 때, 상처에 소금을 친 듯, 몹시 쓰라렸다.
온 국가의 모든 기관에 파고든 병영 체험, 거기서 나오는 비인간적인 증오심.
가진자들의 이권만을 보호하려는 법률, 그 아름다운 현실, 국가보안법...
세계 제일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 생산국...

상처에 소금을 뿌리면 쓰라리지만, 상처가 바닷물에 들어가면 덧나지 않는다. 소금은 소독과 치유의 효과를 가진다. 그렇지만... 우리 속담에 '게 등에 소금 치기'란 속담이 있다. 게 등딱지는 정말 딱딱하다. 갑에 들었다고 해서 갑각류라고 하지 않던가. 거기 소금 뿌려 봤댔자, 소금만 아깝다. 이 두번째 권이 그런 느낌이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아름다운 나라라고 그가 아무리 되뇌어 주어도, 가진자들의 나라, 가진자들은 언제든지 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나라, 가진자들의 공평하고 평화로운 공화국, 주식회사 대한민국은 철저하게 가진자들의 나라로 공고화되어가고 있다.

수도 이전, 토지 공개념, 사학 개혁 등 개혁의 시도들을 모두 무화시킬 법적 효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런 것들이 정당하고 노무현만 병신이라는 여론을 만들어낼 힘도 있으며, 20:80의 나라를 10:90의 나라로 만들면서도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준다는 냉혹한 현실을 광고하는 나라... 그런 나라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 80의 돈을 빼앗아 가는 원흉이 마치 '노조 빨갱이'와 '철밥통 공무원'인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며, 도심 한복판에 수돗물을 쏟아붓는 '막가파 개발'만이 박정희 시대의 급성장 신화를, 그 한강의 기적을 불러올 수 있다는 한심한, 오류임에 분명한 꿈을 대통령 선거에 임박하여 심어주는 데 온갖 힘을 다 쏟는 나라.

박노자가 경험한 대학 사회가 얼마나 곪았는지... 얼마나 자정 능력이 없는지... 황우석 사태가 이 나라에선 왜 가능했던지... 황우석이 아직도 뭔가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불쌍한 국민(사실은 별로 국민 자격이 없는 사람들)들이 얼마나 많은지... 씁쓸한 회한만을 가득 부어주는 책이다.

단일 민족이란 자랑거리(?)를 색깔 짙은 노동자들 탓에 오염되었다고 착각하는 희한한 사람들, 그들을 모두 범죄자 취급하여 외무부 산하가 아닌, 법무부 산하에 출입국 관리소를 설치한 나라. 나와 다름을 조금도 용서하지 못하는 나라. 당신들의 대한민국... 박노자 당신은 좋겠다. '당신'들의 나라가 그렇게 지랄 같아서...

당신이 쓴 '당신들' 속에 들어가는 나는 그 나라가 싫어도 '우리'란 말을 애써 외면할 뿐, 당신들의 대한민국으로 부를 순 없는데 말이다.

부제로 차별과 폭력을 넘어,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향해... 하고 붙이긴 했지만, 앞의 것은 그 실체가 너무도 또렷하게 각인되어 나의 미래를 어둡게 그늘지우고 있건만, 뒤의 것은 이 책에서 과연 얼마나 성공하고 있는 것인지... 불투명하다.  나도 제발 '넘어 버리고' '향해 갔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아직도 고비를 넘으려면 얼마나 남은 것인지, 그리고, 넘을 고비가 있기나 한 건지... 인류라는 종족에 낙관적 희망을 가져도 좋은 것인지...를 모르겠다.

마지막 장에서 '진보'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당신들의 주식회사에서 진보 정당은 엄청난 싸움을 벌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강요당하고 있으며, 온갖 '진보'는 (주)한국의 '국익'을 가로막는 '노조, 좌익, 매국노'로 일반화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는 사회주의 인간상의 아름다움을 읽으며 눈물흘리고 있지만, 아직도 이 회사에선 다카키 마사오의 '혼령'이 사람들의 망상을 사로잡고 있다. 그 발전의 시대가 다시 도래할는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가지고... 다카키 마사오가 일본과 손을 잡고, 독재를 했고, 온갖 살해와 부정을 저질렀으며, 베트남에서 학살을 했는데도, 그것이 (주)한국의 힘이었다고 생각하는 망상. 하긴, (주)일해라는 하청업체도 인정하는 너그러운 국민성을 보면,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어떻게든 살아남을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어 보면, 온갖 저널에서 모은 책임을 알게 되는데, 형식은 마치 한 권의 단행본인 것처럼 되어 있다. 물론 신문, 잡지에서 긁어모은 것들에 가필을 하고 덧붙인 글이 많을 수도 있지만, 분명히 본인의 글이라도 출처를 밝혀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아주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박노자의 정확한 눈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바라볼 수 없는 '거리'를 그가 갖고 있음에, 그리고 (주)대한민국에게는 이 책이 게딱지의 소금일지언정, 그 속에 사는 90의 사람들에게는 '생채기에 뿌려진 소금'처럼 치유의 효과를 기대하게 하는 책이기에 거리낌없이 별 다섯을 붙인다.

브레히트의 시가 떠올라 덧붙인다.

책을 읽는 친구여, 이 책을 내려놓지 마라.
몇 명의 사내들이 임시 야간 숙소를 얻고
바람은 하룻밤 동안 그들을 비켜 가고
그들에게 내리려던 눈은 길 위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으로는 이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착취의 시대가 짧아지지 않는다.

책을 내려놓지 않으면... 그러면, 착취의 시대를 짧게 할 수 있을 성 부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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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탄생 -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
전인권 지음 / 푸른숲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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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국의 남성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윗사람들에게 복종적이고, 군대 이야기와 축구 이야기를 즐겨 하며, 여성을 자연스런 파트너쉽으로 대하지 못하고 물질적으로 접하기 쉽다는 것. 남자들끼리 술 마실 때 가정사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으며, 끊임없는 진급과 학벌 사회란 망령 속에서 배회하는 외로운 영혼이라는 것.

이런 특이한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 배경은 어떤 것일까?
가부장적 사회에서 길러진 사회성?
아니면 군대와 수직 사회에서 얻어진 본능?
그것도 아니라면 혈액 속에 끈적하게 흐르는 보이지 않는 진한 유전자의 힘?

그런 것들을 정말 쫀득쫀득한 이야기로 풀어내서,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듯이 보이는 언설로 '한국 남성의 정체성'을 정치적 언어로 도출시켜내는 새로운 이야기법을 쓰는 작가를 만났다. 이름도 좀 별난 가수 같은 전인권이다.

이 책은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지나치게 많다 싶을 정도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
그렇지만, 글을 읽어가는 도중에 자기도 모르게 지은이가 의도하는 구도의 형상을 떠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한번 잡으면 놓기가 힘든, 성장 소설을 닮은 사회학 책이다.

이 책의 표지에는 저자의 사진을 타이포그래픽으로 그린 글자 그림이 있다.
이 글들을 읽어 가노라면 저자의 사진을 느낄 수 없지만, 글자들의 번짐을 의심하며 좀 멀찍이서 보는 순간 그의 얼굴을 느끼게 된다. 이야기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전경화되도록 배치해 둔 것이다.

한국 남자들의 '집단성'은 남다르다. 학연을 따지고, 지연을 따진다.
그것보다 '위계성'은 더 유별나다. 학번을 따지고, 나이를 따진다. 존대에서 금세 나너들이로 넘어간다.
그리고 '남성성'은 정말 우스울 지경이다.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은 수이 나오고, 술자리에서 불쾌할 정도의 음담패설도 서슴지 않는다.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연,놈들이라고 했어도 괜찮다는 판결도 나올 정도로 남성에게 관대한 사회다. 우스울 정도로...

이 사회의 가부장제란 여성의 무한한 비루함을 딛고 선 가부장제였고, 신분제의 아랫사람들의 부단한 희생 위에서의 가부장제였다. 욕설에도 '니기미, 니에미'가 붙은 욕설은 흔하지만, '니 애비'가 붙은 욕설은 드물잖은가. 기껏 애비 없는 '호로시키' 정도가 있을 뿐.

그렇지만, 자고나면 초라해지는 술자리에서 갖가지 가오를 잡아 보지만, 한국의 남성들은 초라하다.
수직의 계급 사회에서는 언제나 아랫사람이 많게 마련이고, 가오를 잡고싶은 윗사람일수록 더 윗사람에게 꼼짝도 못하는 법이다. 회사에서 퇴근하고도 '과장님', '부장님'으로 대접해야 하는 '공과 사가 구분되지 않는, 아니 구분해선 안 되는 사회'다.

난 내가 선택한 교사란 직장이 가장 좋은 점은 '진급'이 없다는 점이라고 생각해 왔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내가 발령받았을 때, 호적 나이가 만 22세였는데, 퇴직할 만 62세까지 진급이 없다고 해도 상관이 없는 직장. 이 직장 밖의 사람들은 그 매력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비교적 위아래 없이 열댓살 윗사람도 '형님' 대접하며 잘 지낸다. 맘에 안 내키면 '쌩까면' 그만이다.

이 책에서 제일 멋진 말. 진정한 예술과 학문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란 말이다. 이 사회는 참 뒤틀려 있어서 있는 그대로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있는 그대로 보다가는 크지도 않은 코가 박살이 날 정도로 무서운 본때를 보여주는 지독한 사회다. 아직도 이 사회는 '사랑'에 대해서 관대하지 않다. 중고생들이 손을 잡고 다니는 것도 용인하지 못할 정도로...

권위주의로 무장한 국가.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 사회. 말이 많으면 빨갱이란 무지막지한 비논리로 '있는 그대로 보는 이'들을 탄압한 역사를 가진 사회.

그 사회에서 남자의 정체성을 갖게 된 자신의 이야기를 가족으로 외연을 넓히고 결국 국가와 사회까지 연결시킨 수작이다.

의아한 것은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이 '박정희 전기'일진대, 175쪽의 주에 '한국은 미국이 협조를 요청해야 하는 하위 파트너'라고 한 것에 물음표를 붙이고 싶다. 저자가 이 글을 읽을 확률은 극히 적지만, 박정희가 케네디에게 밉보였던 것을 만회하려고 '오버 액션'을 해서 베트남 참전을 하게 된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렇게 얼버무려 표현해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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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4 1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7-02-04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지금 찾아보니 재작년에 타계하셨군요. 왜 좋은 분들은 일찍 가시는 걸까요... 아쉽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방과 제국,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