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의 별 8 (완결)
김혜린 지음 / 길찾기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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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북해 옆에 보드니아란 나라가 있었단다. 그 나라엔 멋쟁이 유리핀 멤피스가 있었고, 그는 역사를 읽을 줄 알고 민중을 사랑한 귀족이었다. 결국은 혁명에 성공하고 멋지게 은퇴하여 삶을 살아간다.

20년 전에 북해의 별을 읽을 때는 얼마나 가슴 졸이며 봤는지 모른다.
아마도 전두환 각하의 덕택이었을 게다.

무슨 집회만 잡히면 원천 봉쇄하던 무단 정치 시기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환상에도 잡혀있던 대학 새내기였으니...

이제 다시 김혜린을 읽는 일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감정을 갖게 한다.

혁명이 뒤집어진 시대, 제국주의의 엄포만 횡행하는 시대.
어두웠던 과거에는 <별>이나마 있었지만, 이젠 별도 잃어버린 중세와도 같은 암흑의 시대.
중세의 크리스트교란 독단과 21세기의 미국이란 독선은 맞먹을 만한 블랙홀이 아닐까 하는 생각.

유리핀처럼. 인간을 믿을 수 있을까?
김혜린 나이도 나랑 비슷할 텐데... 이제 그린다면 그런 격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을 그릴 수 있을까...

고불고불 유려한 선들로 그려진 꽃들과 머리카락 선들 사이에 얽힌 뜨거운 인간의 감정과 혁명의 의지를 읽는 동안 나는 행복하였다. 비록 내가 나이를 먹어 순수함을 잃어가고 있거나 시대가 다시 암흑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이 있더라도, 김혜린을 읽을 수 있는 책벌레인 인간이란 존재로 사는 것이 즐거웠고, 그 즐거움에 이름붙일 <문학적 생산성>에 엔돌핀이 발생하여 즐거웠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이란 나라가 생길 무렵 유럽의 정치 상황을 세계사 책은 빼먹고 있다. 유럽에는 독일과 프랑스와 몇몇 공국들이 있었다고 나온다. 과연 그랬는가? 소련이 무너지고 독립국가 연합에 속한 숱한 나라들의 역사를 역사가들은 고의적으로 빼먹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역사의식의 방기라고 할 수 있겠다. 직무 유기랄까. 그렇게 생각하면 한국의 역사 따위야 세계사 책에 속하지도 못하리라. 그러니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세계사 책에 없더라도 뜨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존재 자체가 잊혀지고, 때론 부정당하더라도 뜨겁게 껴안고 사는 사람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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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5-15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영만의 식객과 더불어 제 가난한 서재에 꼭 소장하고픈 책입니다.
글샘님의 뽐뿌질로 또 가슴이 미어지는군요.

몽당연필 2007-05-15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글샘님이 만화, 것도 순정만화를????

글샘 2007-05-15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저는 서재에 책 모으는 거 진즉에 포기했습니다.^^ 학교 도서관에 적당히 사 두고 보고, 동네 도서관서 빌려보기로... 가끔 너무너무 심장이 쏠리는 책만 급하게 사 보려구요. 가슴을 미어지게 해서 죄송합니다. ^^
몽당연필님... 왜요, 순정만화 보면 안 되나요? ㅋㅋ 저는 만화 중에도 순정 만화가 젤로 재밌던데... 얼마전에 본 25권짜리 <대사 각하의 요리사>란 만화도 요리보단 로맨스에 더 관심이 가곤 했죠. ㅋㅋ 북해의 별은 순정 만화라기 보담은 역사관을 고민하게 해 주는 책이 아닐까 해요.

마노아 2007-05-16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해의 별이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충격이었어요. 이후 테르미도르에서 혁명을 다시 한번 비추는데, 이 작가 너무 대단한 것 같아요. (>_<)

글샘 2007-05-16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이런 대작을 스무살 초반의 나이에 그것도 데뷔작으로 그려낼 수 있다니... 테르미도르도 재미있나요?^^

마노아 2007-05-16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지 심각한데, 그래도 재밌어요. 결말은 슬퍼요.ㅠ.ㅠ
 
길에서 만난 세상 -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를 찾아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박영희 외 지음, 김윤섭 사진 / 우리교육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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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덟 살부터 지금까지 삼십 사년간을 학교를 다니고 있다. 중간에 군대에 일년 반을 머물렀던 기간을 제외하면...

내가 사는 학교는 그래도 비교적 많이 민주화된 편이다. 교사들의 성별이 절반이상 여성으로 바뀌면서 윽박지르고 야단치기 보다는 꾸짖고 상담하는 쪽으로 변화된 면이 많다. 아이들의 용의 복장 등에 대한 규제도 많이 완화된 느낌이다. 그렇지만 학교 내에서 '인권'이 설 땅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학교는 미래를 준비하는 아이들이 있는 곳이고, 미래가 싹트는 희망의 공간이어야 하는데, 한국의 꼬마들은 오후가 되면 봉고차를 타고 특기적성을 기르러 부리나케 달린다. 자칫 놀다가는 제 밥벌이도 못할지 모른다는 강박 관념은 아이들을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기를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0교시든 야간 보충이든 스스럼없이 교육이란 이름을 걸고 아이들의 생명력을 짓누른다. 각국의 입시 제도는 이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침몰하고 융화되어 새로운 억압의 기제로 태어나게 된다.

학교에서 짓눌린 탓일까...
아직도 못사는 나라인 탓일까...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이 사회에는 너무도 소외받는 이들이 많다.
인권의 사각지대...

이 책에선 외국인 이주 노동자, 어린 비혼모들, 코시안(아시아계 코리안)들의 삶, 도시의 노인들, 광부, 국보법에 물린 사람들, 무슬림들, 어부들, 농촌 청소년들, 한센인들, 일본인처와 동대문 미싱 노동자들을 발로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다.

인권은 다만 머리카락을 잘리기 싫어하는 데서 비롯되지 않는다.
인권은 <인간>이 수단이 아닌 <목적>임을 알고, 공유하고, 실천하려 노력하는 <현상>이 있어야 인간의 기본권은 지켜질 수 있을 것이다.

코시안 이야기를 읽다가, <쌀 씻는 그릇이 쌀을 씻지 않는다. 쌀과 쌀이 서로 부딪히면서 씻긴다.>는 말을 만났다.

아, 쌀은 저희들끼리 서로 부딪히면서 서로를 씻는 것이었구나.
쌀씻는 손이나 쌀담긴 그릇은 보조 역할에 불과하구나...

인권이 자리잡기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구나...
그렇지만, 쌀끼리 가만히 두어서는 씻어지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쌀끼리의 부딪힘이지만, 살살 흔들어 주기라도 해야 부딪히고 정화될 일이다.

이주 노동자, 이주 신부들에 대한 신기한 감정은 많이 누그러 졌건만, 아직도 여수 출입국 관리소의 화재 현장의 불은 꺼질 생각도 않고 외국인 신분의 노동자들을, 우리 경제의 큰 받침돌인 그들을 위협하고 있다.

십시일반... 이후로 국가인권위원회가 멋진 책을 기획했다.
앞으로도 국가인권위원회의 고충스런 활동들은 더욱 활발해져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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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5-14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가기관중에서 요즘 맘에 드는데 여기 한군데예요. 십시일반도 그렇고 이책 그리고 영화 여섯가지 시선도 그렇고....

향기로운 2007-05-14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두었던 책인데 먼지털어줄 시기가 온 것 같은데요.. 고맙습니다~

프레이야 2007-05-14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쌀과 쌀이 서로 부딪히며 쌀이 씻긴다는 말, 담아갑니다...

몽당연필 2007-05-14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과 사람도 서로 부딪히며 씻겨진다면 좋을텐데....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읽는 건 굼뱅인데 눈은 자꾸 높아가고....큰일입니다. ㅠㅠ

글샘 2007-05-15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맞아요. 국가란 것이 해야할 일이 뭔지를 생각해보는 이들이 있는 것 같더군요. 아직 힘이나 파급력은 모자라지만, 이런 공적 기관이 꾸준히 노력해야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애요. 오늘 뉴스에 보니깐, 교육부는 5.18을 폭도들의 저지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더라구요, 한심한 것들.
향기로운 님... 뽐뿌질을 했군요. ㅋㅋ';'
배혜경님, 책 안에 있던 말인데 참 인상적이어서 베껴 두었습니다. 제 리뷰의 목적은 주로 이런 거죠. ^^ 메모장 같은...
몽당연필님... 굼벵이도 눈 낮으란 법이야 있나요. 사람도 부딪다 보면 씻기기도 하고 닳기도 하고 하겠죠^^
 
오늘의 세계적 가치 - 세계의 지식인 16인과 하버드생의 대화
브라이언 파머 지음, 신기섭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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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점수는 학생의 실력이 아닌 부모가 몰고 다니는 자동차를 더 정확히 예측한다.!"

그럴 법한 이야기다.

하버드 대학에서 16명의 인사들을 모시고 진지한 인터뷰 형식의 강의 결과를 책으로 내 놓았다.
그 강의 명은 <개인의 선택과 전 지구적 변화>이며 이 책을 여는 순간 진정 '변화'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이야기들은 전혀 각도가 다른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지만, 정말 진지한 멘토링을 펼친다는 느낌이 들었다.

만일 서울대에서 이런 강의를 연다면 거기 어떤 인물들이 등장할까?

신지식인의 대명사 용가리 심형래? 영화를 100편 찍었다는 임권택? 박지성같은 스타? 부자 삼성맨 이건희나 아니면 시골의사 박경철의 경제학 강의?

기호 2번이 대통령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 10년 가까이 지났다. 과연 기호 2번 대통령들이 보여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국 사회의 '변화'를 추구한 사람들은 결국 가진 자들의 편에 선 사람들이었음을, 그 한계가 너무도 잘 드러나는 것임을, 그리고 한국 사회의 '변화'는 정말 이제 시작에 불과하며 그 갈길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명백하게 보여주었던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미국 내에서 '세계에서 가장 악한 나라'라고 스스로 비판하며, 미국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꼬집어 내며, 어렵긴 하지만 미국이 나아가야 할 모습을 제시하는 데 훌륭한 교과서가 되었을 것이다.

대학생 시절에 이런 책 몇 권은 밑줄 치면서 심사숙고하며 밤을 새워 읽을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

"민주주의는 인민이 행동하는 것이지 정부가 행동하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군산복합체 미국의 실체 구명에 주력하는 하워드 진 선생님의 글도 인상적이지만,

나눌 줄 아는 기업 지도자 에런 퓨어스턴과,
뛰어다니는 언론인 에이미 굿맨의 전화 통화도 정말 인상 깊다.

한겨레에서 매년 진행하는 "21세기의 교양, 상상력, 거짓말~~" 시리즈 같은 대담과 유사한 경향을 띠는 이런 강연이 <주류> 강단에서 울려퍼지지 않는 한, 아무리 수재들을 스카이 대학에 보내 봤댔자, 이 나라의 앞날은 '꽝'임을 생각한다.

대학은 <공교육>이어야 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국립대학들을 무상 교육으로 시켜 줄 필요도 있다. 교육의 질도 높이고... 그렇지만 한국의 대학들은 <사교육> 기관이다. 중고등 학교도 마찬가지... 개인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노력만 하는 곳이 바로 한국의 학교들이다.

교육부는 제대로 된 고민은 하지 않고, 북한 돕기 성금 모금하지 말라는 둥, FTA 흉보는 수업 하지 말라는 둥, 이딴 소리나 지껄이는 동안, 아이들은 멍청해 진다. 오로지 외우는 기술만 통달할 뿐.

오랜만에 대학 강의실에서 받아쓰기하며 강의 듣는 기분이었다.
이런 재미있는 책 또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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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겉과 속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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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책을 읽는 것은 재미있다.
강준만의 꼼꼼함이 그 시대의 변화를 잘 읽어줄 정도로 배어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짜깁기에 불과한 글쓰기라고 비판하지만, 짜깁기만 하고 자기 생각이 드러나지 않을 때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 적절하게 짜깁은 다음 제 의견이 알맞게 들어간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다. 오히려 아무리 독창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명백한 위조이거나 뻥일 경우 그것이 정말 문제가 될 것이다. H 모 교수처럼. 그런데 사람들은 정치가들의 명백한 거짓말을 믿듯이 서울대 교수의 말은 잘 믿으면서도, 강준만처럼 지방대 교수의 말은 우습게 본다. 강준만이 서울대 교수였다면 아마도... 훨씬 그의 말발은 셀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이미 철지난 책이 되어 버렸다.
언제 한 번 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철지난 바닷가를 걷노라면 느끼게 되는 쓸쓸함을 느끼게 된다. 이미 가수들이 다 죽은 지금 이런 책을 읽으니 요즘 나온 책들이 궁금하다.

대중 문화는 그 속성상 상업적이고 저속하고 어린아이들 취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텔레비전을 파괴할 수는 없다면 대중 문화를 올바로 향유하도록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이 책을 쓰게 된 것이, 대중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가장 적극적인 향유 계층인 청소년들을 위한 책이 없다는 꾸중을 듣고 나서였다는 것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우리 젊은이들은 사치를 너무 좋아한다. 그들은 버릇이 없고 권위를 무시한다. 그들은 어른을 공경하지 않으며, 교훈 대신 잡담을 좋아한다. 젊은이들은 또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손님 앞에서 떠들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그들의 선생 앞에서 횡포를 부린다...

이것은 요즘 뉴스에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2500년도 더 전에 소크라테스가 한 이야기다. 요즘 아이들 욕할 일 하나도 없다.

정말 금자씨 말씀대로 “너나 잘 하세요!” 소리 듣기 십상인 사람이 소크라테스다.

그래서 그는 말했지. ‘나 자신이나 알자, 나나 잘 하자.’ 역시 그는 똑똑한 사람이다.

대중문화를 정말 잘 읽고 있는 시가 한 편 있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텔레비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박정숙(1997, 현대)

내가 말을 걸면/ 어머니는 시끄럽다 하시며/ 텔레비전에만 귀를 기울여요.

나는 텔레비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머니가 자주 나를 보실 테니까요

내가 텔레비전이 된다면. 어머니는 분명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실 거예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형들이 옆에서 뭐라고 해도/ ‘조용히 하렴’ 하고 말씀하실 거예요

내가 정말 텔레비전이 된다면/ 어머니는 매일 내 앞에서/ 내 얼굴을 들여다 보며/ 내 표정과 내 말소리를 하나 빠뜨리지 않고/ 밤 늦도록까지도/ 귀기울여 들어 주실 거예요.

아, 나는 정말/ 텔레비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텔레비전이 되어/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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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전면개정판) -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조지 리처 지음, 김종덕 옮김 / 시유시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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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는 햄버거를 만들어 파는 회사다. 그런데 그 회사는 미국의 자본을 의미하고, 서비스 산업의 폭발적 확충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대는 서비스의 시대다.
더 맛있는 것을 더 싸게 더 대중적으로 맛볼 수 있는 서비스의 시대.
그런데, 거기서 인간적인 측면의 서비스는 제거되고, 다만 속도와 가격에서만 서비스가 강화된다.
사람의 따스한 접대를 기대할 수 없고, 품질이나 맛은 제거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패스트 푸드다.

이렇게 <패스트푸드점의 원리가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많은 부분들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의 변화 현상>을 맥도날드화라고 이름붙였다. 적절한 표현이다.

이 책에선 주로 맥도날드화의 속성을 부정적으로 짚은 데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1955년에 시작한 프랜차이즈가 1998년말에 24800개의 맥도널드 황금아치를 세웠다.
저자가 주로 짚어낸 맥도날드화의 특성은 <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자동화를 통한 통제>라고 읽는다.
이것들은 프랜차이즈의 후발주자였음에도 관료제, 과학적 관리, 조립 라인의 기법을 결합하여 20세기 전반에 진행된 일련의 합리화 과정의 결정탄으로 <맥도날드제이션>을 읽어낸 것이다.
사회를 읽는 탁월한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맥도날드의 효율성은 운전자용 창구, 손으로 먹는 음식, 고객에게 각종 일 시키기 등 끝도 없다. 저자는 효율적이라면 뼈없는 닭이라도 사육하려 할 것이라고 비아냥거리지만, 맥도날드의 효율성은 상당부분 성공하고 있다.

계산 가능성은 질보다 양을 우선한다. 그 사회 현상은 단순히 맥도날드 매장 안을 뛰어넘어 의료, 학교, 스포츠에서도 나타난다. 질을 저하시키고 수량화에 대한 강조를 우선하다 보니 서비스의 질도 떨어지고 건강에도 나쁜 결과를 빚게 된다. 이것이 <fast food>의 본모습인 것이다.

예측 가능성에서는 영화 트루먼 쇼를 빗대어 멋진 말빨을 펼친다. TV 프로그램이 어느 방송사나 그게 그것인 것들이나 영화 등의 속편이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같은 결과를 손쉽게 얻을 것이라는 예측이 들어맞고 있음을 보여준다. 냉동 식품과 방부제를 팍팍 쓰는 것은 고객의 예측을 빗나가지 않게 한다. 몸에는 치명적인 해를 끼칠지라도...

마지막, 정확한 통제는 인간을 로봇같은, 최소한의 지능을 가진 숙련공이 될 것을 요구한다. 유니폼의 색상, 인테리어가 같은 것은 사람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오래 머무르지 못하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제의 기법이라고 한다. 불편한 의자와 불안한 음악, 옆 사람의 대화가 다 들리는 구조는 통제의 일환이었다. 요즘 대학생들의 새내기 기합주기도 맥도날드화된 통제의 일환이 아닐까?

가 보지 않아도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거기서 거기다.
방이 세 개 정도 있을 것이고, 거실에 화장실과 부엌이 붙은 형태. 베란다는 안방 옆에 있고, 안방에 부부욕실 하나 정도. 우리 위아랫집은 우리집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구조에서 살아갈 것이 당연하지.

FTA라는 것이 결국 우리것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자유 무역으로 인해 더 싸게 더 많은 물건들이 들어오겠지만, 건강에 치명적이거나 방부제, 농약으로 칠갑한 상품들을 규제할 방도는 더이상 없어 보인다.

내가 근무하는 지역의 교육청은 늘상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의 평가에서 1위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 비결이 바로 맥도날드화다. 질보다 양을 추구하는 교육. 그러면 1등한다. 한국 사회의 맹점을 이 책은 잘 짚어주는 것 같다. 결국 한국 사회는 미국 사회의 축소판에 불과한 것일까? 수업도 질보다 양을 우선시하는 시대가 온다. 각종 대회를 마일리지로 관리하겠단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따스한 시선을 교환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질은 환상으로 취급하겠다고하니 복장 터질 노릇 아닐까.

뒷부분에 가서는 맥도날드의 효율성의 비효율적임을 짚기도 한다.
빨리 가는 것이 늦게 가는 것의 역설과도 같다. 빨리 가려고 자동차를 탔는데, 그래서 교통 체증이 생기고 결국 늦더라는 이야기. 맥도날드는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보다 더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종업원들의 웃음은 거짓 친근감에 불과하며, 질의 아름다움을 상실하게 되고, 영양가는 없고 칼로리만 높은 사회. 환경 오염과 비인간화에 가속이 붙는 사회.

맥도날드화는 스스로 증식, 확대되는 현상이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적용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이 산부인과에서 태어나는 시대가 되었고, 엄마나 할머니의 보살핌 대신 산후조리원의 업무적인 규격화된 돌보기로 자란 아이들의 감성이 과연 어떨는지. 죽으면 같은 관에 들어가, 일사천리의 장례 절차를 밟으면 그만이다. 제왕절개는 출산 시간까지 예측 가능하게 하여 산부인과 의사가 퇴근하는 일을 가능하게 해 준다. 등산하기 싫으면 산악도로를 내고, 리프트나 케이블카를 만들면 된다.

문화 제국주의의 대행자로서의 맥도날드화는 전쟁까지도 속성으로 정감없이 해치우는 일을 아무 거리낌없이 저지른다. 어느 무식한 넘이 인터넷에 불쌍한 영국 여성 병사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진을 보니 한숨이 포옥 나온다. 이라크의 수백만 민중의 죽음에는 아랑곳없던 인종들이...

우리의 심장혈관을 막는 맥도날드화가 인류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위협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 책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의 작업은 남은 사람들의 몫으로 돌리고 있지만...

이 두꺼운 책은 400페이지에 달하지만 별로 지루하지 않다. 많은 사례들과 비유들은 책을 재미있게 만들었다. 그 문제의식은 두텁게 우리 머리 위를 덮고 있지만... 무릇 책은 이렇게 쓸 일이다. 무겁지만 무겁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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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11-22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보관함에 넣어놓고 있습니다.FTA를 한 단어로 말하자면 '미국화'겠지요.맥도랄드화의 문제점은 크게 두가지로 지적되는 듯 합니다.하나는 '합리성' 또 하나는 '패스트푸드의 비건강성'...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대량생산 사회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보입니다.수치가 숨기고 있는 많은 가치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합리적으로 조절되는 것이 가진 단점뿐 아니라 장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지점이 있다고 보입니다.사람들이 시장에 가지 않고 마트를 이용하는 이유와도 비슷합니다.시장가라고 당위론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말고 왜 마트를 가는지 실증적으로 물어본다면 합리적 관리,양질의 서비스,편의성 등이 지적될 것입니다..
패스트푸드의 반건강성은 또 하나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물론 그것도 거짓말이긴 하지만 부모들의 귀찮음과 여가를 위해 상궤될 정도로의 영향력은 보입니다.웰빙버거..트랜스지방제거 감자튀김..해서 가격이 조금 더 올라가더군요.
'의식의 전복'아니면 방법이 없나 궁금합니다...궁극적으로는 그렇게 되긴 하겠지만'의식의 전복'이 너무 거창하고 무책임해보이며 좌파적으로는 가장 편안한 방법인 듯해서 다른 길은 없나 생각해 봅니다.무리한 도전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