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 유재현의 역사문화기행
유재현 지음 / 창비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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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들을 인도차이나라고 부르기 시작했을까?
무식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
원래 있던 대륙을 "발견"했다고 생쑈를 하더니, 거기 사는 사람들을 "인도인"으로 착각하고 '인디언' 부르는 것들이, 인도와 중국 언저리에 있다고 부른 이름이 인도차이나.

그 이름만큼 언저리의 역사를 지니고 살았으면 좀 좋았으랴만...

불운하게도 인도차이나는 슬픈 열대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많은 자원을 수탈하려고 달려드는 각다귀같은 서양 제국주의자들에 의하여, 그 후 전쟁에 나선 일본과 미국에 의하여 인도차이나의 역사는 누더기처럼 지배자가 번갈아 바뀌는 역사였다.

20세기 후반, 연쇄 공산화를 두려워한 도미노 이론의 저지를 위한 <최전방>으로 선택된 인도차이나는 반공 일색이었던 우리의 똥종이 윤리 교과서를 치장하곤 했다.

흔히들 베트남전쟁으로 알려진, 미국이 베트남전쟁으로 알리고 싶어한, 그 전쟁의 이면에는 공산화가 진행된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대한 무차별 폭격도 포함하고 있는 인도차이나 전쟁이었다. 아, 전쟁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처참한 일방적 폭격이었다고 해야겠지. 그러나, 그러나, 1975년 베트남은 역사상 거두기 힘든 승리를 미국으로부터 빼앗아 내었다.

그렇지만, 유재현은 베트남의 호치민을 일방적으로 칭찬만하지 않는다.
베트남의 역사는 침략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숱한 지역 민족국가들을 유린한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국가라는 근대적 개념이 참으로 많은 민족을 분열시켰으며, 엄청 많은 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정말 무정부주의자들이 생길 만도 하다. Imagine...에서 no countries...에 나도 얼마나 동감인지...

이 책에서 가장 땀흘리며 읽은 부분은 꾸찌터널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국인보다 체구가 작은 그들이기에, 미국인은 도저히 들어올 수 없는 작은 구멍(동굴이라기 보다는)을 파고, 그 속에서 벌레처럼 기어다녔던 터널. 그 터널은 인도차이나 전쟁의 <비인간적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제는 <미안해요, 베트남>이라고 말해야 하고, 한국이 베트남에 저지른 죗값을 치러야 한다.
일본놈들이 반성하지 않고 사죄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나쁜 것을 보고 배울 필요는 없지 않을까?
왜곡된 역사를 배운 후손들은 불행하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꼼꼼하게 읽어주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만큼 그가 가진 애정이 크다는 이야기겠다.

메콩강... 하면 왠지 목이 '메일 듯한' 슬픔이 어리는 듯 하다.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에서의 목이 조이는 듯한 어두운 긴장감이 그랬고,
숱한 베트남 전쟁을 묘사한 소설에서의 치사한 삶들이 그랬고,
오로지 돈을 바라고 몸을 파는 숱한 여성들이 가득하다는 아픈 이야기들도 그렇다.

유재현의 인도차이나에 대한 애정을 좀더 찾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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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6-07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바람돌이 2007-06-07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꾸찌 터널에 대한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그들의 생존이 어떻게 위협받았는지, 얼마나 두려웠을지.... 이 책의 다른 내용은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져 가는데 그 부분만은 잊히지 않고 또렷이 남네요.

홍수맘 2007-06-08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 볼께요. ^ ^.

글샘 2007-06-08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오랜만에 아뒤를 바꾸셨군요.^^ 좋은 책입니다. 읽어 보세요.
바람돌이님... 그렇죠!! 꾸찌터널 읽으면서 참 가슴이 먹먹했답니다.
홍수맘님... 꼭 읽어 보세요^^
 
쇼핑하기 위해 태어났다 - 텔레토비에서 해피밀까지, 키즈 산업은 어떻게 아이들을 지배하게 되었나
줄리엣 B. 쇼어 지음, 정준희 옮김 / 해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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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소비적인 나라 미국 안에서 그 '소비지향'에 대한 문제 제기, 그것도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판매전략, 즉 키즈 마케팅의 현실과 문제점을 밝히는 유익한 글이다. 아쉬움이라면, 대안이 별로 없다는 것.

돈 놓고 돈 먹기의 나라에서 이미 중독되어버린 아이들에게 텔레비전을 꺼라!, 게임을 덜 할 수 없겠니? 콜라나 과자를 끊자!고 하긴 너무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나온 책이지만 단순히 미국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이 문제 제기의 유익함이 있다.

아이를 기르는 집에 가보면 집집마다 토이박스가 몇 개씩 된다. 그 안에는 한 번 갖고 놀다가 부숴버린 잡동사니들이 그득그득 들어있게 마련이다. 내가 어린 시절 장난감이 없어 빨래집게를 가지고 시뮬레이션 게임을 상상하며 놀던 시절에 비한다면 행복한 고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결과는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아이들은 종일 텔레비전과 비디오를 보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으며, 용돈이 있으면 써버릴 수 있는 정크 식품(패스트 푸드는 빨리 나오는 음식이란 의미가 그리 부정적이지 않으나, 정크는 쓰레기, 잡동사니 식품이란 의미가 강해 훨씬 자극적이다. 고칼로리에 영양가 없는 식품을 이렇게 이른다.)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다 보니 운동은 부족하고 비만은 심각하게 된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 아들의 이야기다.

어려서부터 토이 스토리를 여러 번 보고, 처키의 악마 시리즈도 자주 보았는데, 그만큼 상업적 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파트에서 무료로 틀어주는 투니버스를 종일 틀어놓고 있으며, 영양 상태는 늘 과체중과 경도 비만의 경계선을 줄타기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 아이들의 소비 문화가 한국 아이들의 그것과 많이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 앞이나 어린이 공원 같은 데 가보면, 비만 어린이들을 발견하기는 너무도 쉽다. 오히려 비만 어린이들을 만나지 않기가 더 어렵다.

아이들은 독서와 놀이 시간이 급격히 줄었고, 상업적 환경의 영향으로 부자가 되기를 늘 바라지만, 노력하는 훈련은 덜 되어 있어 불안증에 시달리기 쉽다. 특히 한국의 아이들은 학원에 가 있거나 아니면 투니버스 앞에 앉아 있어서 놀이터는 텅텅 비어있지 않은가.

아이들의 샴푸, 수저, 학용품, 먹을거리 등에서도 항상 장난감을 만날 수 있다. 영어로 Eater-tainment라고 한다는데, 굶어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먹을거리로 장난감을 만든다는 게 비도덕적이란 지적은 십분 동감이다.

탄산 음료, 초콜릿, 사탕, 스낵류 등이 비만 가능성을 50% 이상 증가시키며, 아이들을 중독시키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환경뿐 아니라 이런 식생활이 아이들의 아토피 피부염, 알러지 같은 질병들을 야기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성공적 마케팅을 위한 '바이러스적 요소' 탓으로 미래의 인류는 변종 바이러스에 의해 멸종하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긴, 그것이 신의 뜻일 수도...

적게 일하고 적게 쓰며 간편하게 생활하는, 의도적으로 소비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다운 시프터 downshifters>라고 한다는데, 그들을 관찰해 보면, 그들에겐 자녀를 키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역으로 자녀를 키우면 다운 시프터가 될 수 없다는 슬픈 이야기...

아이들을 '생화학적 괴물'로 만드는 식품 문화와 소비 지향적 문화는 아이들에게 파괴적이고 고통받게 만드는 미래를 제공할 것이다.

어린이 대상의 광고가 과연 속이는 일인지, 결정권을 주는 것인지... 쉽지만은 않은 문제지만,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할 문제임엔 틀림없다.
어린이 산업이 어린이들을 탐욕적이고 폭력적이며 살찌게 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고, 어린이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가하는 정책 결정의 복지 정책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이론과는 정 반대로, 학교 앞 문구점에선 오늘도 아이들이 중국산의 정체 불명 100원짜리 제품을 빨면서 등하교를 한다.

독슬레이 지역의 비교적 우수한 공립 아이들과, 보스턴의 비교적 소득이 낮은 아이들을 비교해 보니,
보스턴 아이들이 텔레비전과 비디오를 많이 보며 게임에 많이 매달린다고 한다. 특히 미디어 사용과 용돈 사용에 부모와의 갈등이 적다는 '상관 관계'가 드러난 연구가 실려있다.

물론 이 상관관계 - 소득이 낮은 아이들이 소비 문화에 그대로 노출되기 쉽다는 - 가 소득이 낮은 부모의 자녀들이 실패한 인생을 살거나 건강을 해칠 확률이 높다는 인과관계로 이어질는지에 대한 결론은 뒤로 미루고 있지만, 상관관계가 고착화되면 곧 인과관계가 됨은 명약관화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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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의 옥중 19년
서승 지음 / 역사비평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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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재일 조선인으로 태어나 조국에 유학을 왔던 두 형제를 박정희 정권은 간첩단 사건을 조작하여 감옥에 쳐넣게 된다.

형 서승은 고문 과정에서 고문에 굴복하고 말 것을 두려워하여 경유를 뒤집어쓰고 불이 잘 붙지도 않는 상황에서 분신 자살을 기도하여 온 몸에 화상을 입는다.
동생 서준식의 옥중 서한도 두툼한 책으로 나온 바 있고, 그 동생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등은 한국 안에서도 많이 알려진 책이다.

70년대의 정치범, 특히 간첩으로 장기수가 된 이들의 책들을 읽어 보아 인간으로서는 있을 수 없었던 그 곳의 상황을 많이 읽곤 했지만, 서승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인간이란 것이 부끄러운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특히 전향 공작에 대항하여 굳센 마음을 먹고 있는 서승이 결국 19년만에 비전향으로 감옥에서 나온 것에 대한 자부심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만델라 대통령 정도야 한국의 장기수들에 비한다면 중간내기도 안 될 정도로 혹독한 곳이 한국의 감옥이었다. 그곳엔 굶어죽지만 않을 정도의 적은 식사와, 불결하기 그지없는 뺑끼통, 가혹한 폭력과 고문, 단식에 대한 강제 배식, 너무도 모멸감이 들어 목을 매단 이들이 부지기수요, 잔인하기 그지없는 전향 공작에 눈물을 머금고 도장을 찍은 이들이 7,80%가 넘는다.

그 와중에도 끝끝내 비전향으로 온 인생을 감옥에서 썩은 장기수들을 생각하면, 인간에게 자존심이란 무엇인가를 곰곰 생각해 보게 한다.

목숨을 내 놓아도 지켜야 할 것이 '사상의 자유'일까?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목숨까지 질기게 빼앗아야 할까?

어떤 청소년이 만든 '한국의 학교는 많이 바뀌어야 한다.'는 동영상을 보았다.
아이들의 머리를 밀고, 교문에서 아이들을 검열하며, 몽둥이로 매질을 하고, 남학생들의 성기를 아프게 잡아당기는 교사들의 모습이 부끄럽게도 가득 담겨 있었다.

군사 독재 정권의 그림자는 아직도 이 사회 곳곳에 가득하다.
아직도 변절자, 독재자 박정희를 칭송하는 목소리 높고, 그 딸래미 박공주를 이용한 '아무 이유 없는' 정치가 아직도 성공하고 있는 모양이다. 여차하면 박공주 얼굴에 칼집났다는 황당한 쌩쑈를 한 번 더 하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무서운 것은 미국이 아니다. 
무서운 것은 전쟁도 아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내 안에서 음흉하게 자라고 있는 독버섯, 
이 사회 안에서 꿈틀대고 있는 '나 살기 위해서 다 죽어도 좋은' 노예 근성이고 식민지 백성의 근성이 정말 무서운 것이다.

하루 아침에 학교에서 군사 독재 시절의 기억이 일소될 리 없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군인식 거수 경례를 문제시 했더니, 많은 교사들은 아무 문제 없는데 그런 걸 걸고 넘어지는 나를 벌레 보듯 했다. 난 그런 사람들이 무섭다.
변절의 기억, 그 벌레보다도 낙인보다도 화끈거리는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계속 부끄럽게 살 확률이 더 높다는 서승의 말을 곱씹어 본다. 내가 바로 그 벌레가 아닌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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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6-03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신념이 외부적인 폭력에 의해서 꺾인다는 것. 자신에 대한 자학으로 이어지겠죠.
이 형제들의 얘기는 항상 저를 죄스럽게 만듭니다.

글샘 2007-06-04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성은 해도 자학해선 안 되지만, 위인들을 볼 때 너무도 작아지고 작은 일에 연연해하는 평범한 사람임을 느끼지요. 이 형제들... 정말 한국 현대사가 빚어낸 비극의 소용돌이 한 복판을 살았던, '광장'에 나오는 부채의 <사북>에 선 김명준 같은 삶들을 산 것 같애요.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우리시대의 논리 2
하종강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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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이상스레 퍼져있는 개신교의 붉은 십자가들보다도 더 필요한 것이 바로 하종강같은 노동운동 선교사가 아닐까 한다.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하면서도, 한없이 비관적인 나락으로 떨어지는 나날을 경험하는 나를 담금질하는 책이었다. 이 책을 학교의 조합원 수만큼 사서 읽힐까 한다. 노동조합원이면서도 노동교육을 받지 못하는 동지들에게 내가 강연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관심을 갖도록 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 언더 서클에서 소위 '의식화 교육'을 받던 팀이 있었는데 어느 여름 날, 우리 팀 선배라면서 공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막걸리집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 이후 나는 혼자서 끙끙대고 고민하다가 결국 그 팀을 나오고 말았다. 노동자의 아들로서, 내가 공장 노동자가 될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그 때는 속세를 버리고 중이 되면 됐지, 공장 노동자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선배들의 투쟁 덕택으로 이제 노동조합은 일상적인 조직이 되어있다. 많은 회사들에 노동조합이 있고, 파업도 하고 그런다. 파업한다고 경찰이 진입하는 뉴스가 실리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꽤 진보 성향이었다고 착각했던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면서 오히려 대규모 사업장의 파업에 대하여 더욱 답답한 반응을 보이는 꼴을 보면서, 운동이란 무엇인지를 혼자서 끙끙대고 있었다. 온 나라가 비정규직, 파견노동자로 가득한데, 오히려 IMF 당국에서 비정규직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나쁘다고 할 정도로 엉망 진창인데, 이 나라는 오로지 시장 개방에만 열을 내고 있으니 미래가 두렵기만 하다.

학교 안에도 영양사, 교무보조교사, 전산보조교사, 식당 종업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득하다. 그들이 어떻게 고용되는지, 어떻게 해고되는지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별로 없다. 아직도 노동에 대한 인식이 많이많이 바뀌어야 할 듯 싶다.

노동자들의 파업을 보면, "빨갱이가 쳐들어 올 것 같은" 착각이 들도록 교육받은 나같은 세대가 다 죽고 나면 뭔가 바뀌려나? 아니지. 지금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올바른 노동교육을 하지 않으니 더욱 답답한 세상이 오겠지.

하종강이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이라고 한 것은, 우리 모두가 노동자임을 인정하고, 올바른 노동교육을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양적인 축적이 질적인 전환을 가져 오는 것이 운동의 법칙이지만, 양적인 축적을 위한 기반이 되는 것은 <노동 교육>임을 그는 늘 강조한다.

나쁜 짓 하면 안 된다는 <시민법>만 공부한 법관들이 노동 분쟁같은 <사회법>에 대해선 무지한 주제들이 범죄자를 다루는 시각으로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사회. 그것이 결국 가진자들이 노린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이주 노동자들의 경우, 우리 시민도 아니라는 생각을 가진 자들이 과연 얼마나 그들의 인권에 대해 생각할는지는 보지 않아도 훤한 노릇이다.

산재사망 만인율이 3이나 되는 나라.
대부분의 선진국은 0.1 수준에서 머뭇거린다는데...
감추고 가르치지 않는 것은 더이상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동운동을 드러내 가르치고 스스로 노동자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이 후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한 방편이 될 것란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읽는다.

하종강의 글들을 읽으면서 참 고맙고, 고맙다.
이 사회의 밀양, 숨은 빛은 바로 이런 이가 아닐까? 이런 숨어있는 빛이 있어서 아직 이 사회가 썩지 않고 살아 숨쉬는 것이 아닐까...

갈수록 어린 아이부터 "상품화"에 내몰리는 세상이 되어가는데, 물신 사회의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바로 <노동 교육>이라고 해야겠다.

그래, 나는 <노동자>다.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진짜 노동자... 가 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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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6-01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경제 성장은 성공할 수 없다... 세계 공황의 교훈이랍니다...

해콩 2007-06-01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후마니타스의 또다른 책 [소금꽃나무]를 보고 있는데 역시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하느님, 우리에게 김진숙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에고에고.. 내 삶은 너무 부끄럽구나..' 이런 느낌이 자꾸 자꾸 드는 거예요. ㅠㅠ

글샘 2007-06-01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진숙 님의 글을 읽으려고 신청해 두고 있습니다. 저도 내 삶은 너무 부끄럽구나... 이런 생각 많이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사 4 - 386세대에서 한미FTA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4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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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숫자 문화는 독특하다.

부처님 오신 날, 석가 탄신일 대신에 4월 초파일이란 말도 있지만,
3.15 부정선거, 3.1운동, 4.19 혁명, 5.16 군사 정변,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유월항쟁, 6.15 남북회담, 6.25 전쟁, 7.4 공동성명, 8.15 해방, 10.26 사태, 12.12 사태 등... 사건을 숫자로 둔갑시키면 그 사건에 대한 <좋아하고 싫어함>의 감정이 삭제되어서 화자의 평가가 들어가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5.18을 광주 항쟁으로 부르는 것과 광주 사태로 부르는 것은 천지간의 차이가 나듯이.

386 문화라는 말도 희한하다. 90년대 후반,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김대중이란 2번 대통령이 탄생하던 그 무렵, 30대의 나이로,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60년대 출생한 사람들, 곧 사회 개혁의 선봉에 서야 한다고 만든 조어가 386이란 조잡한 조어다. 컴퓨터 치고는 펜티엄으로 진화하기 이전의 버벅대는 버전에 불과하지만...

그 386에 걸었던 기대감은 컸지만, 김대중 정권이 IMF를 지혜롭게 돌파하지 못하여 카드빚에 몸을 던지는 가족을 양산했고, 러*앤 캐*같은 사채업자들만 득세를 한다. 급기야 2번이 대통령이 되는 두 번째 카드인 노무현도 많은 개혁 정책을 제시했지만 발목을 잡혔고, 불행하게도 이라크 파병, 한미 FTA 체결 등으로 이완용 버금가는 인물로 거론되기도 한다.

현대사, 알면 다쳐~ 하던 시대가 바로 386의 시대였다. 그러나 386의 뜨겁던 시대엔 전두환처럼 무식하게 밀어붙이는 공공의 적이 있었기에 그 대척점의 스펙트럼들을 묶어서 재야든, 민주든, 진보든, 개혁이든 뭐로든 하나가 된다는 착각을 할 수 있었다. 그 코 앞엔 광주의 피비린내 진동하는 비디오 테이프가 놓여 있었고... 날마다 벌어지는 투석전과 구속, 간첩단들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한홍구 같은 이가 과거사의 진실을 밝힌다고 국가 기관과 일을 하는 이런 판국에, 정말 미치겠는 것은 앞의 그 스펙트럼이 완전 흐려졌다는 것이다. 재야란 말은 사라진 지 오래고, 통일 세력, 민주, 진보, 개혁 세력은 늙어 돌아가시거나, 딴나라당으로 편입되거나, 잘해야 열우당의 멍텅구리로 전락해 버린다. 그 스펙트럼은 '무지개'가 아닌 허상이었던가...

역사이야기 4권은 비교적 최근의 이야기여서 읽으면 읽을수록 혈압이 오른다. 그렇지만 한홍구의 글맛은 읽는 이의 눈길을 쫀득하게 잡아 당겨 금세 끝까지 내달려 읽게 한다.

군대 문제에 대한 비판들은 끝도 없지만, 국립 현충원과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의 차이는 한국 사회의 봉건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같은 크기의 미국 묘지와는 천양지차로 동작동 국립묘지엔 상놈과 양반과 귀족의 무덤 차이가 휘번덕하게 크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양극화가 커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원래 친일파부터의 양극화를 해소하지 못했고, 이승만과 박정희의 양극화를 조금도 치유하지 못했던 것, 그래서 최소 생계비도 안 되는 29만원으로 문어대가리 살인마는 잘도 살아가는 것이다. 정말 더럽다! 퉷!!! 니들 무덤에 침을 콱, 뱉는다.

아주 사소한 거지만, 한홍구가 실수한 게 있다. ㅋㅋ 162쪽에 '민나 도보로데쓰'의 도둑놈은 도보로가 아니라 '도로보'다. 왜 내 눈엔 요런 사소한 것만 보이는 거냐!!! 한홍구처럼 지랄같은 세상은 무섭기만 하고...

광주를 읽는 눈도 상당히 넓어졌다. 미국을 보는 눈도 많이 차가워졌다. 그렇지만 갈수록 미국은 내 곁에 아늑하게 누워있다. 그 따스한 미국의 품은 언제 내 모가지를 조를지 모르는 농부 아낙의 낟알 주는 손과도 같이 우리와 함께 한다. 한국 정부의 사법권을 이기는 미국 기업의 권리를 적은 'FTA  문건'을 비밀이라니... 낟알만 받아 처먹다가 뒤지란 소린지...

아직도 국가 보안법이 튼튼하니까, 미국의 따스한 손길이 우리 모가지를 낚아채기까지는 충분한 마취제가 되리라. 한홍구의 대한민국 史는 정말 희망일까? 희망이 있다고 믿어야 할까? 역사가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 양녕대군의 후손이라던 프린스 리란 *새끼가 초대 대통령이었고, 전쟁 7년만에 혁명을 일으킨 민족이라고? 20년 해먹은 박통의 유신공주 박공주가 아직도 설쳐대고 그 얼굴에 칼을 댔는지는 몰라도 소문만 났던 지모씨는 징역을 살고 있고, 그래도 김대중과 노무현이 대통령이 돼서 희망이 있다고?

모르겠다, 모르겠다. 나는 정말 모르겠다... 희망이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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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5-22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었습니다. 저의 우리 역사에 대한 무관심에 반성을 하고 있답니다. 그러면서 답답함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