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SF - 조남준의 소셜 판타지
조남준 지음 / 청년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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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 보통 과학 픽션을 일컫는 말인데, 작가는 그걸 비틀어서 소셜 판타지란 말을 쓴다.

사회를 비꼬는 그림과 이야기면서 판타지가 가득하기 때문에 꿈속같기도 하다.

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정치가, 기업가 이런 양심없는 넘들이다.

24나누기8 같은 만화도 재미있다. 하루를 셋으로 나눠서 하나는 일하고, 하난 쉬고, 하난 자는 데 써야 하는데, 현대 기업은 일하는 데 나머지 두 가지를 착취하는 구조라는 그림.

획일적인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시각이 신선하고 재미있다.

한겨레 21에 8년간 연재한 만화다. 기대되는 작가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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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
홍은택 지음 / 창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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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에서 소수자 의견을 마이너리티 리포트라고 한단다. 동명의 영화 제목에서 배웠다.

이 책을 도서관에 신청해 두고도, 또 빌리러 가서 책의 등짝을 몇 번 보면서도 <아메리카>란 말이 두려워서 선뜻 빌리지 못했더랬는데, 이번엔 베트남을 읽고, 캄보디아를 읽고 있고, 남미를 읽고 나서는 아메리카도 한번 읽어볼 생각을 냈다. 역시 돌아다녀봐야 발품 팔기도 쉽다.

미국이란 주제임에도 뜻밖에도 이 신선한 자전거 여행가는 그 잘나가는 사회의 메이저를 말하지 않고, 마이너를 바라보려고 했다.

레드와 블루는 대통령 개표 방송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을 상징하는 색이란다.
레드는 공화당인데 세계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성공한 계층의 지역이어야 함에도 선거판에서 붉은 지도의 지역들은 성공과 거리가 먼 <못사는 농촌이거나 쇠락한 공장지대>란다.
블루 아메리카가 선거철만 되면 레드가 되는 기현상.
나중에 이 기현상의 한 이유를 저조한 선거율(30%)과 흑인의 배제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대선때만 레드이고, 본질적으로 블루인 지역을 돌아다닌 기록이다.

미국을 '성공의 나라' '화려한 백인의 나라'로 그린 책들에만 익숙해있던 독자에게 신선할 수 있는 기획이란 생각이다. 그렇지만, 역시 이 책을 평균적인 한국 독자라면 싫어할 법도 하겠다. 아름다울 미자를 쓰는 美國을 폄훼하는 글이라고 볼 수도 있으니...

그렇지만, 이 책에서 유일하게 두 번이나 등장하는 마지막의 조싸이티스 이야기는 미국의 마이너 지역에 대한 리포트가 비극이지만은 않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역설의 역설이랄까?

포커스 써머 호프의 창립 사명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든 인간이 아름답고 존엄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우리는 인종 주의와 빈곤, 불의를 넘어서기 위해,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조화롭고 신뢰와 애정 속에 살 수 있는 메트로폴리탄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영리하고도 실용적인 행동을 취할 것을 다짐한다. 검든 희든 노랗든 갈색이든 빨갛든 디트로이트와 그 교외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경제적 지위와 출신 국가, 그리고 종교적 신념을 떠나 이 다짐을 함께 한다.

이런 것이 미국의 희망이라면 희망이다.

그렇지만 그 블루 아메리카를 다니는 홍은택의 시선에 밟힌 것들은 주로 유색인종의 비애였다.
역사적으로 오래된 인디언들의 슬픔의 강을 아직도 눈물로 흐른다.(체로키국이란 것이 있음을 새로이 일았다.) 인디언은 말한다. "법이 있었지만, 우리에게 해로운 법 뿐이었고, 우리는 미국의 법정신에서는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었다."고.

체로키국 추장 콘터셀(옥수수 수염)의 연설 중 "체로키국의 목표는 100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삶의 질은 <둑방에서 낚시하는 것. 호화보트를 타고 알래스카로 원정 낚시를 가는 것이 아니다. 삶의 질이란 우리의 아들딸과 손자들이 조그만 공을 갖고 마당에서 노는 것을 지켜보는 것. 메이저 리그 야구경기를 구단주 특성에서 보는 것이 아닌...>...<우리가 지구상에 있는 순간들을 사랑하고 즐기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삶의 질. 불평하고 남을 탓하는 불안정한 함정에 빠지는 것이 아닌... 삶의 질은 존재하는 것이며 행하는 것이지 소유하는 게 아닙니다.>

미국의 농촌 지역을 다니면서 <수요가 늘어날수록 그 물건이나 써비스를 생산하는 사람들의 생활이 궁핍해진다>는 자본주의의 역설을 그는 합성의 오류에 빗대 설명한다. 맥도날드의 황금 아치를 빛낼 닭고기 소비량이 늘면, 기업농이 들어서고 소농들은 폐가가 된다는 것. 개인적으로 타당한 행동을 모두 다 같이 할 경우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되는 것이 합성의 오류란다. 적게 먹고 적게 싸는 것이 다 같이 잘 사는 길임을 이미 세계화가 이뤄진 농업 분야에선 모르쇠가 최강이다.

아직 노조가 하나도 없는 미국의 월마트. 노조에 대한 인식이 대한민국과 비슷한 수준의 후진국 어메리카. 미국에서 노조 탄압은 형사 처벌 대상이 아니니 돈만 있으면 무서울 게 없다. 왜 한국은 이런 지랄같은 나라에 의해서 해방을 맞은 것이란 말이냐! ㅠㅜ

비만의 피해자는 소수인종과 저소득층이란다. 값싼 칼로리의 최대 피해자가 저소득층, 흑인, 히스패닉.
연간 소득 5만 달러 이상은 흑인 27, 히스패닉 18, 백인 20%가 비만인 반면,
연간 소득 1만 달러 이하는 흑인 33, 히스패닉 26, 백인 19%가 비만이란다. 히스패닉들의 사회적 문제가 커질 만도 하다. 중노동에 의한 여가 부족이 그 원인이란다. 한국이나 별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아이들도 위험해서 나가 놀 수 없단다. 그것도 한국이랑 비슷하다. 살찔 수밖에...

미국은 인구 10만명당 715명이 감옥에 있다는 세계기록을 갖고 있다. 한국이 133명이니 살기 좋은 나라인 셈. 일본은 48명. 그런데 법무장관이란 넘은 이런 말을 한다. "폭력범과 누범자들이 좀더 강도높은 형량을 선고받고 감옥에 있는 동안 법을 지키는 미국인들은 전례없는 안전을 누리고 있다."고... 그렇겠지, 전두환도 돈있으니 사형죄목 7개를 간단히 제치고 나오더만... 형님나라 미국이야 말할 것 없겠지. 유전(有錢)무죄이고 무전유죄인 것이 인생유전(流轉)의 유전(遺傳)법칙인 것을...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복권>과 <카지노>로 긁어 모아 세금을 만드는 나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오직 <사행>심의 드림만을 주는 나라.

요즘 도심에 있던 미군부대가 외곽으로 나간다. 그 터를 수십 년간 점유하면서 세금 한 푼 내지 않은 것은 그렇다 쳐도... 우리 동네에 '금융단지' 부지로 지정된 곳이 아무 공사도 하지 않고 풀만 자라고 있다. 파헤치면 거의 <유전> 수준이라고 한다. 도대체 미군 새끼들은 왜 군부대 땅에 기름을 퍼붓는 걸까? 정말 받는 것 없이 주기만 하였으니 미울 법도 하건만, 미운 짓은 골라가면서 하는 새끼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돈이 될 때는 원주민들이 살던 땅을 <프런티어 정신>을 가지고 왕창 빼앗아 놓고는 거기다 공장이니 집이니 널찍널찍하게 지어들 놓고 살다가 단물 쏙 빠지면 인간만 쏙 빠져나가 폐가들로 즐비한 도시를 만들어 버리니, 너 아메리카여, 제발 그 따우로 살지마라! 이런 충고를 해 주고 싶다. (속마음 같애선 귀쌰대기라도 확 쥐어패고 싶다. 이빨이 와장창 빠지도록 빡세게!)

미국의 그늘을 읽어주는 책은 드물다. 그 드문 틈새를 잘 읽은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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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의 나라 럭셔리 코리아
김난도 지음 / 미래의창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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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과 유행의 거리, 프랑스에도 다 없다는 세계 유명 화장품 브랜드들이 서울에만도 즐비하단다.
어쩌다가 이 나라는 잘 살지도 못하는 주제에, 여성들은 얼굴에 화장품을 떡칠을 해야 하고, 수십 만원 짜리 양복과 넥타이를 매고 다녀야 신사 축에 드는 단정한 복장이 되어버린 것인지...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라는 사람이 "한국의 명품 현상"의 원인을 주로 분석한 책이다.
책 표지에 심층 인터뷰를 통해 알아본 대한민국 '명품 소비 증후군'이라고 부제가 붙어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웃음이 난다.
심층 인터뷰는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것부터 사치가 아닐까? 서울대 교수라는 사람이 책을 내는데,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제를 쓰도록 냅두다니...
열두 명을, 그것도 상류층(월 1000만원 이상 가계 수입), 중상류층(800만원 이상), 중류층(400만원)이라는 특이한 기준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 것을 (이런 것은 인터뷰도 아니다. 인터뷰라면 대화의 방향을 가지고 논의를 이끄는 것이어야 한다.) 대학원생들에게 작업하게 해서 책으로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대략 개요를 맞춰 두고, 자료를 끼워 넣은 듯한...

그렇지만, 이 사람의 논리는 꽤나 명쾌하다.

'보이지 않는 잉크' 이론을 이야기한다. 음악, 시, 놀이, 춤, 등 상류층의 소속기호로 삼는 은밀한 표지라는데 계급성이 사라진 현대에선 사치품의 높은 가격만이 지위를 상징하는 '잉크'가 된다는 것이다. 사치품은 단순한 사물의 자리를 뛰어넘어 '물신'이 되어버린다. 그 물건은 '사용하는' 물건이기에 앞서 '이야기하는' 물건이라는 것.

특히나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최근까지 '신분제'가 엄격하게 적용된 사회였다. 오죽하면 아직도 '쌍놈 = 상민 = 평민'이 욕으로 자리잡고 있는 나라다. 가진자 = 양반 = 우월한 인간, 이었으며, 못가진자 = 쌍놈 = 저열한 인간의 두 세계를 명쾌하게 살아냈던 역사가 우리 유전자에 남긴 것은 쌍놈이 되어선 안된다...는 지상 명령이었는지도 모른다.

텔레비전도 명품이고, 가방, 손수건, 양복 하찮은 액세서리까지도 다 명품이다. 그것이 보이지 않는 잉크 역할을 해서 쌍놈을 양반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상품이 지위의 대리물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한국은 왜 부자를 존경하지 않는지도 잘 밝히고 있다. 신분제가 혁명을 통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일제에 의해 강제로 근대국가 이행을 요구당했고 해방 이후 부의 재분배에서 극도의 실패한 것이 한국 사회이기 때문이다. 친일파의 후손은 땅부자로, 독립운동가의 후예는 거지로 살아온 현대사가 그것을 말해준다.

파노플리 효과라는 것도 있단다. '세트'를 일컫는 불어라는데, 아이들이 부엌놀이 세트, 병원놀이 세트를 갖고 놀면 잠시 그 신분이 된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외제 고가 사치품의 선호를 설명하기에 이 논리도 맞아들어간다.

상품의 로고는 100가지도 넘게 알지만 나무의 종류는 열 가지도 알지 못하는 존재('어플루엔저'의 저자 존 더 그라프)
"천국을 표현하라고 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백화점을 묘사할 것"(에리히 프롬)
소비자는 정말 스스로를 보호할 힘이 없는 것일까?

그가 인용한 '박남수의 새'는 그래서 어쩌면 현대 인간 욕망의 비극을 가장 잘 표현한 시인지도 모르겠다.

새의 3 부분.

......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 매양 쏘는 것은 /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그 갈망의 결과물이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에 지나지 않음은, 소비가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음을 힘주어 말하는 것이다.

소비라는 목발을 짚고 서지 않고는 바로 설 수 없는 장애인으로 현대인을 그린 프롬.
물건을 사는 買 정열을 행복한 삶을 사는 生 열정으로 바꾸어라! 행복한 삶이 명품이다! 하는 지은이의 주장은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나라"에서 그닥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사람살기 좋은 나라>가 아닌 <기업하기 좋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그가 소비 사회의 물질 문화의 특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바람에, IMF 이후 급부상한 명품의 문제점을 '한국의 특수성'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워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선진국의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말해버리면 이 못사는 나라의 물신 숭배의 광풍은 '티파니 보석점의 그림의 떡'을 우러르는 거지들만을 양산할 따름이다.

외제 사치품 공화국으로서의 '럭셔리 코리아'는 소비자의 문제만이 아니다. 저자도 마지막에서 잠시, 너무도 짧게 언급하듯이 정부가 '경제 부양책'으로 내놓은 카드 경제의 소산이지, 개인의 허영에 그 원인을 두기엔 너무도 구조적인 문제이다.

아, 그러나... 구조적 문제라는 말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은 '해결책이 없다'는 말을 동어반복하는 것과 다름없어 보여서 언제나 가슴이 먹먹하다. 물건에 둘러싸인 인간이 물건을 파괴할 순 없는데...

세계화의 정글 속에서 약육강식, 적자생존만이 정글의 법칙이라면,
럭셔리 코리아는 '약한자의 고기'가 되어 '강한자의 식사'거리로 전락하게 되어버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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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6-11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비자본주의 라는 말 자체가 이미 소비가 한국적 특수성을 벗어나 있다는 뜻 아닐까 합니다....'나는 소비한다.고로 존재한다'

글샘 2007-06-11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네요^^ 예찬이랑 잘 놀고 계시죠?
근데, 과도한 소비가 한국의 특수성의 한 측면이기도 한 것 같지요. 명품이란 이름의 외제 사치품들이... 정말 소비해야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걸까요?

혜덕화 2007-06-11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는 명품 하나도 없는데, 그런데도 세상에서 제일 부자 같다고 느끼니, 저 명품족들이 보면 저도 쌍놈일까요?^^ 그래도 대한민국 제일의 럭셔리한 삶은 권정생, 전우익 같은 분이 아닐까, 싶네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_()_

글샘 2007-06-11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간데 모르는 소비지향의 세계를 이미 거꾸로 돌리기엔 늦은 듯 싶습니다.
그래도 전에는 권정생 선생님, 전우익 선생님처럼 서늘한 죽비를 내리치는 분들도 간혹 계시곤 했는데요... 미디어가 갈수록 저질스러워져서 걱정입니다.

드팀전 2007-06-11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품소비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은 아니라고 봅니다.그건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이라고 보여지구요.우리가 한국에 사니까 그 부분을 조금더 민감하고 실제적으로 바라보는 것이겠지요.명품소비를 소비자 의식과 윤리 문제로만 보기에는 어려운지점이 생각보다 많다는게 제 생각이랍니다.
권,전 선생님들처럼 체제로부터 탈영하는 것이 답인데..실제 그분들을 추앙하는 사람들중 많은 이들은 여전히 그 체제를 향유하며-달아날 수 가 없으니까- 그 분들의 '탈영'만을 소비하는 건 아닌지도 의문이 생깁니다.
 
소금꽃나무 우리시대의 논리 5
김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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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이 책은 첫머리에서부터 내 상처를 헤집기 시작하는 것인지...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상처인 줄은 알았지만, 그래서 더욱 잊고 살아왔던 상처였는데...

생일 선물로 아들 녀석에게 이 책을 사달라고 했다.
아들은 무슨 책인줄도 모르면서 사다 주었다. 생일 축하한다는 편지와 함께.
나중에 아들 녀석도 노동자가 될 것이고, 그러면, 이 책을 다시 읽혀 주리라.
아니, 대학생 정도 나이가 되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하는 열일고여덟의 청춘을 김진숙에게선 읽을 수 없었다.
그저 파리하게 마른 여자애가 늘 잠에 쫓기고 일에 짓눌려 직장을 전전하는...
멋도 모르고 대기업에 취직한 것만 좋아하던 기숙사 생활과,
치욕스러움이 일상이던 버스 안내양 생활.(돈을 만지는 일이었기에 온갖 치욕스런 일들이 뉴스거리였다.)
그리고 한진중공업의 조선소 그 험하던 일과 해고 이후의 투쟁으로 일관한 삶.

아, 이제 오십줄을 바라보는 김진숙, 그의 이야기를 어찌 눈물 없이 읽을 수 있으랴...

작년 가을, 홍세화 강연을 들으러 가던 길에 부산일보 엘리베이터에서 그를 본 적이 있다. 자그마한 키에 후질근한 색을 하나 메고 있었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이 책의 페이지마다에는 눈물이 가득하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흘린 땀이 바래서 소금꽃이 되어버린 그 삶들이 펼쳐져있다.

군사 독재 정권은 노동자들을 짓밟아 재벌을 키웠고, 재벌과 정권은 개미와 진딧물처럼 서로를 키워왔다.

하느님도 썩은 디를 포크레인으로 파다파다 못 파서 도로 덮어 버린 데가 우리 나라...라는 농섞인 노동자의 목소리는 노동 현장의 모습을 지옥으로 그린다.

87년 쌍팔년... 생각을 하면서, 그 때만 혀도 우리 힘이 너무 많응께 나 같은 건 으디 낄 자리도 읎었지라. 참말로 그 때가 봄날이제. 그때 겨울을 준비혔어야 되는 거인다. 사시사철 봄만 있을지 알았제. 요로크롬 찬바람 씽씽 부는 겨울이 올지 누가 알았간디... 하는 이야기는 삶을 너무 많이 살아버린 사람들의 달관도 느껴진다. 사실, 89년 전교조 탄압을 필두로 공안 정국이 계속되지 않았던가...

아직도 학교에선 교사가 노동자냐?하는 배부른 소리들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교사는 전문직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지금 당장 교육부에선 예체능 교과를 성적에서 제외하겠다고 하는 판국에...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어떻게 한줄로 평가를 하겠다는 건지, 그 의도는 분명하다.
경쟁을 붙이면 결국 노조의 힘은 극도로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교사는 국가공무원의 신분을 잃고, 지방직화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과 대동소이한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지방직화 된 공무원의 신분은 곧 비정규직에 다름아니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점점 줄고 있는데, 올해가 무슨 황금돼지핸지 뭔지 떠벌여서 잠시 출산율이 높아지곤 있지만,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회적 불임>은 시대적 대세요, 국가적 패인이 될 것이다.

이 나라가 굴러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교회라도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고 국가보안법은 탄탄하게 유지될 것 같고,
붉은 줄 좍좍 긋는 뉴스들은 시도때도 없이 줄을 타며,
이 땅덩어리의 훌륭한 인물들이 예전엔 모조리 군인이었는데(우리 초, 중딩때 교과서엔 무슨 장군과 애매한 독립운동가들이 수두룩했다. 김구도 왜곡된 인물 중 하나이지 않은가.),
이제 이 땅의 위인들은 스포츠 선수들 뿐이다. 이승엽과 박세리, 박찬호와 김연아, 그리고 박지성과 박태환, 이영표, .... 아, 스포츠 참 싫어하는 나도 이렇게 많은 운동 선수를 외우다니...

이 나라 국민들은 월드컵때 축구 안 보면 마치 '신자 아닌 사람'을 보는 교회 사람들 같다.
자기들끼리 똘똘뭉쳐 무슨무슨 모임에 정말 부지런한...

김진숙의 글들을 읽으며 오래 오래 부끄러웠고, 많이많이 반성한다.
하종강의 노동 운동이 거시적이고 원론적인 것이라면,
김진숙의 노동 운동은 온몸으로 때운 그것일 것이다.
그것이 인텔리와 노동자의 출신 차이에서 온 것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는 권영길이 87년 6월에 에펠탑 앞에서 특파원으로 찍은 사진을 보면서 그래서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는 말도 하지만, 이젠 이 땅에서도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그런 찬란한 하늘 말고,
'노동자'도 '사람'인...
그래서 '공고'에 자식을 보내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하겠다.

내일부터 가난하고, 부모가 못 배우고, 관심이 없어서,
또는 아이들이 머리가 나쁘고, 성질이 게을러서 '공고'에 오게 된 내 아이들에게,
'처지가 공고생'이지만 '인종이 공고생'인 것은 아니라고 또 한동안 핏대 올려 떠들어 보겠지.
우리 아이들의 부모들은 뻔뻔스럽게도 수학여행비 19만원 중 10만원을 넣어 보내며, 나머지는 담임이 알아서 하라는 둥, 1년에 밥값이 천 만원 이상 미납이 되는 현실은 어떻게도 바뀔 수 없는데도...

노동자가 될 아이들에게 '노동자는 자랑스런 것'이라든지,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말할 용기가 내겐 별로 남아있지 않다.
'노동자는 투쟁만이 살 길'이고 '단결만이 그 긍지를 지켜낼 수 있다'는 원칙을 이야기하기에는 내 주변에는 너무도 비정규직이 많아져 버린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단 말인지...

그래. 한국엔 없는 '근로기준법'이지만, 그 속에는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이 있다.
평화시장 앞에서 온 몸을 횃불로 밝힌 청년 노동자가 죽은 지 37년이 지났지만, 이 어두운 땅엔 아직도 근로기준법이 없고,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사장(요즘엔 씨이오라더만, 빌어먹을 씨이오)도 없고, 근로기준법에 맞춰 재판하는 법관도 없다.

오로지 노동자의 힘은 똑같이 못난 노동자들 사이에서 나오는데, 이놈의 빌어먹을 나라는 IMF가 걱정할 정도로 비정규직화가 급격히 이행되고 있어, 노동자들 사이가 하늘과 땅만큼 벌어지고, 서로 낯을 바라보기가 어색하게만 변해가는 시절을 읽는 일은 눈물겨운 일이고, 서글픔만 가득한 일이다.

어제는 밤새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김진숙 때문이었다.
오늘도 곱게 잠자긴 글렀다. 6월에 길바닥에서 썸머타임때문에 길어진 해를 원망하며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쳤던 그 날이 20년이 지났는데, 노동자들의 삶의 질은 갈수록 나빠만 지는 현실을 원망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대학 시절로 시간이 되돌아간다면... 아마 스스로를 포기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시대는 다시 그 시절로 거꾸로가는 열차를 탄 것이 아닌가 하는 무섬증이 든다.
박공주가 설치고 다니고, 개발 독재를 꿈꾸며 운하를 판다는 삽질맨도 목청을 돋운다.
그들의 본색은 '빨갱이 적출'과 '노동자 탄압'을 모토로 한 '경제 개발'을 표방하는 재벌 살찌우기인데 말이다.

아, 정말 내가 빨갱이가 아니며, 노동자를 돕지도 않고, 나는 노동자도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 전교조를 탈퇴하고 교회라도(산업 선교회 같은 무서운 빨갱이 교회 아닌) 독실하게 다녀야 할 시대가 오고 있는 걸까?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대학 물먹은 표'내는 '학번' 운운하는 일은 없도록 주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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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6-11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퍼갑니다~

드팀전 2007-06-11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힘내삼!!
<사기>에 보면 그런 말이 나옵니다.
"치솟아 오른 용은 떨어지기 마련이고 달은 차면 기운다."
...20년전 항쟁은 역사적의미를 갖는 만큼 또 역사적 한계를 갖는 시위였다고 생각이들어요.그 임계점에서 다시 숨을 고르고 성찰하고 사유해야 하는데 .....
호헌철폐와 직선제라는 과실을 얻었으돼 사회문화적 변화로 이어지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물론 한 방에 모든 걸 해결할 수야 없겠지만...그래서 혁명은 역시 영구적인 듯 합니다.

글샘 2007-06-11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퍼가서 모하게요? ㅎ
드팀전님... 요즘 날씨 탓인지... 별로 힘이 안 나네요.^^
87년 이후로 벌써 네 번째 맞는 대통령 선건데, 기호 2번이 두 번이나 당선됐는데... 이 사회는 그 가열찬 시대를 거슬러 오르는 '반동'과 '비정규직'의 기운으로 가득한 것 같아 갑갑합니다. 언제 소주나 한 잔 합시다.
 
지리 교사들, 남미와 만나다
지리교육연구회 지평 지음 / 푸른길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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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학교에 '지리'는 없다. 아, 있긴 하다. 수능 선택 과목에 한국지리, 세계지리, 경제지리의 세 과목이 있다. 그렇지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국민공통 교육기간의 교과목에는 '사회'만 있을 뿐이다.

문학, 역사, 철학의 근본학문에도 역사가 있었고, 지리학은 고대부터 문명의 기초 학문이 되었다. 문명은 자연의 도전에 대한 '지리학의 응전'의 역사였다고도 볼 수 있다.

이제 그 지리학은 GPS의 손아귀에 들어왔고, 지구를 비행기로 한 바퀴 도는 데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는다.
우리네 수퍼에는 남미산 과일들과 포도주가 그득하다. 그러나 아직도 남미는 멀기만 하다.

우리와 계절이 반대인 남미. 그래서 그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교역을 트게 된 세상.

그들의 삶을 사회적으로 읽으려는 노력들은 체 게바라나 미국의 전쟁 개입 등의 이야기를 통해 많이 있어 왔지만, 그 땅을 지리 교사의 눈으로 읽는 일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지리는 우선 땅의 생김새를 살핀다.
어떻게 튀어나왔고, 들어갔고, 활동하고 있으며, 뒤틀어졌고,
그 땅이 무엇으로 생겨먹었으며, 그 땅에선 무엇을 생산하고 있는가.
그 땅에 살고 있는 식생과, 동물들은 어떤 놈들인가.
과연 사람이 살기에 얼마나 적합한가...

그러나... 표지에서 말해주듯, 남미의 대표적인 잉카 문명('타완틴수요'가 원래 이름이란다.)의 마추픽추와 사라진 문명에 대한 아련한 아쉬움이 지리 교사들을 남미로 이끈 것은 아니었을까?

남미의 역사는 그 찬연했던 고대사는 모두 잃어버리고, 콜롬부스 이후 포르투갈과 에스빠냐의 침략사에 다름아니었고, 근대 이후로는 '민족 민주 정부'를 '아름다운 나라 미국'과 '정의롭지 못한 반군'이 무너뜨린 역사였다.

그 삶의 결과 빈익빈 부익부가 극대화되고, 환경은 파괴되며, 사람들은 점점 가난해지고 있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볼리비아의 소금 사막 우유니와 티티카카호의 안데스 산지,
아르헨의 팜파스와 브라질의 셀바스, 상파울로와 리우데 자네이루의 아름다운 항구들과 커피 농장의 팍팍한 삶을 읽는 동안 남미의 지도를 따라 마음도 즐거움과 무거움의 널뛰기를 하면서 배멀미가 난다.

역사 교사아닌 지리 교사와 답사를 하는 일도 재미있는 일이란 경험을 하게 해주는 책.

아빠따라 남미까지 간 중딩 주형이의 이름이 표지에선 '주영'이라 나와서 괜히 내가 미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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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6-08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많이 궁금해요.

글샘 2007-06-08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습니다. 한번 읽어 보시죠~

소나무집 2007-06-09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으로 보거나 듣는 것하고 직접 가보는 것하고는 정말 다르더라고요.
제가 이 시골에 와 살면서 남쪽 지방을 좀 돌아다녀 보니 지도가 그려져요.
그 전에는 막연히 지도 속 어딘가에 있던 지명들이 이젠 살아서 움직이는 걸 느껴요.
지리가 없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네요.

글샘 2007-06-09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이 '사회'만 있대요. 미국은 사회 통합이 중요한 나라라나요?
미국엔 역사랄 게 없다 보니, 그리고 그 역사란 게 모두 살육의 역사다 보니 역사 과목이나 지리학이란 게 없다더군요.
근데, 정말 지리는 돌아다녀봐야 돼요. 그쵸?

pur456 2007-06-12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형'이가 '주영'이로 나와서 제일로 미안한 사람입니다. 빨리 재쇄 들어가서 고치고 싶습니다. 글샘 님 리뷰-책 속으로 사람을 끌고 들어가는 맛있는 글이네요.

글샘 2007-06-12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ㅍㅎㅎㅎ 이런 일이 생기다니
반갑습니다.^^ 님은 왜 미안하신 거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