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 - 신자유주의와 한미 FTA 그리고 분단체제 뛰어넘기 새사연 신서 1
김문주.김병권.박세길.손석춘.정명수.정희용 지음 / 시대의창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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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과 노무현의 집권으로 수구 친일 세력의 집권을 저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진보로 일컬어지던 김대중과 노무현의 <대안 없음>만 확인하고는 정치에 염증만 깊어진 현실.

올해 대선에선 이명박이란 비정치적 티켓 외엔 경쟁자도, 대안도 없는 희대의 무관심한 선거판이 조장되고 있는데...

진보란 자들이 집권한 정권 하에서도 경찰은 노동자를 탄압하고,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을 탄핵하려했으며, 미국의 압박이 심각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는데 파병을 서둘렀고, 비정규직 법안이 실시되면서 심각한 사회 양극화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차분한 분석을 드러내고 있는 훌륭한 책이다.

이 사회엔 너무 어른이 많다고 한다.
그것은 사상의 자유, 자유 토론의 훈련이 너무도 부족하다는 말과 같다.

박정희를 욕하면, 마치 매국노를 보듯 싸늘한 시선에 둘러싸이기 십상이다.
노무현을 비호하는 발언을 해도 마찬가지로 철부지 보듯 눈을 돌린다.

진보의 대안은 이것이다.

노동 주도형 경제 모델을 만들어 정착시키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
노동 주도형 경제는 근본적으로 상위 1%가 50% 이상의 땅을, 상위 5%가 82.7%의 땅을 소유한 기형적 부의 편중과 빈부 격차를 완화시키려는 최소한도의 노력을 해야할 것이란 이야기다.
가진 자를 위한 정책, 늘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면서, 사실은 외국 자본에게 야금야금 다 빼앗기고 마는, 그래서 국민 경제란 것이 아예 없어져 버리는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지적은 옳고 또 옳다.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통일 지향 경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북한에 퍼주기를 한다고 난리를 쳤지만, 결국 원조 액수는 너무도 보잘 것 없는 현실에서, 적극적인 통일 경제 모델은 고 박현채 선생의 민족 경제론과도 많이 통하는 듯 하다.

마지막에선 정치적 풍토 개선을 위한 제도 수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정치를 더 늘려야 한다는 것.
가장 못 믿는 정치 집단인 국회의 권한이 지극히 크다는 것.

날마다 텔레비전을 켜면, 사채업자들이 돈 빌려 준다는 광고거나, 늙어 병들면 나라에서 안 고쳐준다고 보험들라는 광고거나, 아파트 잘 지어놨으니 하나 사 가라는 광고가 판을 친다.  경제 코너에선 주식인 펀드로 돈버는 기술을 열강한다.
사채업자의 광고에 유명 연예인들이 너도나도 나서는 나라가,
미래를 믿을 거라곤 보험회사밖에 없는 나라가,
지어 두지도 않은 아파트를 평당 수천 만원에 파는 나라, 그래서 돈을 불리는 유일한 방법은 부동산 투기뿐인 나라가,
돈 놓고 돈 먹기의 주식 투자와 재테크에 초딩부터 노인까지 매달리는 나라가,
과연 자본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이건 국가가 아니다. 이건 그야말로 정글의 법칙만이 통용되는 무자비한 살생혈투의 현장이다.

뭔가 비전을 가진 정치가를 기대하기엔 아직도 이 땅에선 레드 컴플렉스가 너무도 큰 걸까?
민주 노동당이 무상 교육, 무상 의료 외에 더 세밀한 대안을 내 놓기를 바라는 것이 한갓 망상일까?

국가와 민족을 팔아 자기들의 부와 권력을 유지한 세력들이 더이상 득세하고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가 자명한 경제 원리인 사회에서 아이들을 기를 순 없다.
그러니, 세계 최하위의 출산율을 자랑하고 있을 수밖에...

이 책을 읽어 본들, 막연한 정책들이긴 하지만, 이런 정책들을 각종 선거에서 들을 수 있다면 선거를 치르는 국민들도 좀더 진보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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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와 구더기 -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현대의 지성 111
카를로 진즈부르그 지음, 김정하.유제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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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이 뇌쇄적이다. 아주 죽인다는 뜻이다.
치즈와 구더기. 치즈에서 구더기가 꼬이듯이... 하나님의 세계로 정의된 질서를 비웃는 듯한 제목이 글의 내용을 상당한 상징으로 함축하고 있다. 결국 천사나 인간의 존재를 구더기처럼 지저분하게 구물거리는 물적 존재로 파악한 개인은 전통적 종교의 질서를 파괴하려는 '불순분자'로 처단되게 마련이었다.

요즘 허생전을 가르치고 있다.
조선 시대, 그것도 병자호란이 지난 시기, 청나라라는 세계적 제국의 현실을 부정하고 오로지 명나라라는 명분에 얽매이다 조선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김훈은 '남한산성'에서 명분에 얽매인 양반 관료들의 모습과 현실에 눈뜬 민중들의 모습을 어슴푸레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또렷한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진 못하다. 전형적인 민중의 모습을 지닌 등장 인물이 안타까웠다.
박지원의 허생전은 당시 발설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만약 조선 시대, 그 북벌론이 승하던 시기에(힘도 없는 것들이 용심만 남은 북벌론) 청나라와 적극적인 교류를 펼쳐야 한다는 허생전을 양반들이 읽었다면, 그도 역시 모가지가 남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역사 책에서는 거짓말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정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살아 숨쉬고 있었는지는 읽을 수 없다.
그저, 권력을 잡은 자들 중심으로 모든 정치, 문화, 사회, 예술, 경제의 흐름 등을 엉성하게 얽을 따름이다.
소설 속에선 사람이 살아 숨쉰다.
조정래가 태백 산맥에서 숱한 민중들에게 '죽산댁, 외서댁, 소화, 염상진, 염상구...'등과 같은 이름을 부여하여 그 역사를 살아 꿈틀거리게 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허생전의 허생도 조선의 허술한 경제적 유통 구조, 명분만에 매여 당쟁을 일삼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대안 제시 등을 살아있는 목소리로 보여주고 있다.

카를로 진즈부르크의 치즈와 구더기는 '미시사'에서 유명한 작품이란다.
역사 전공은 아니라서 그의 책이 얼마나 큰 상징을 띠고 인용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러한 역사 탐구는 역사 복원에 큰 밑바탕이 될 것 같다.
이 책에서 주인공 메노키오는 방앗간 주인으로 종교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당시 민중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그런데, 미시사란 것이 한 사람의 역사를 복원하는 상세한 과정이다 보니, 마치 메노키오란 주인공을 둘러싼 소설처럼 읽을 수 있다.
마치 김성한의 '바비도'를 읽는 기분이다. 6차 교육과정 고교 교과서에 '바비도'란 소설이 실렸다가, 특정 종교의 반발로 다음 해 삭제된 일이 있었다. 남의 나라 종교가 이 땅에 들어와 부리는 기승이란... 그저 웃어 넘기기엔 지나치단 느낌이 많이 든다.

메노키오는 법정에서 '라틴어와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탄압하는 것을 비난하면서 "제 생각에 라틴어로 말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신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소송때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지 몰라 좌절하기 때문"이라고'(84) 기술한다.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 법전을 읽고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모든 사람은 성령을 가지고 있다. 종교적 제의는 '인간의 발명품'에 지나지 않으며, 장사에 불과하다.(86) "여러분은 사제와 수사에게 가느니 나무에게 고백하러 가는 게 낫다."는 말은 지금 교회나 그 때의 교회나 인간의 삶에서 얼마나 지배적이고 착취적인 입장에 섰던 것인지를 보여준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 속에 계신 위대한 주님에게 고백하고 자신의 죄 사함을 간청하는 일"이라고 하여 종교 자체를 부정하지 않지만, 형식적이고 고압적으로 변질된 종교의 개혁을 암시한다.

재판은 그가 도대체 어디서 이런 불량스럽고 이단적인 생각을 주워들었는지를 심문하지만, "저는 결코 이단자와 교류한 적이 없"으며 "생각할 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보다 숭고하고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원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그의 지식은 '몇 권만의 책을 우연한 기회에" 읽었을 따름이라고 한다. (168) 사실 인간이 세상을 파악하는 방식은 책을 읽고 눈이 뒤집혀서 그리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독재 하에서 눈을 뜬 대학생들의 대부분은 리영희 선생의 '우상과 이성'이나 한완상 교수의 '민중과 지식인'에 노출되어 그리 된 것이 아니었다. 도도하게 흐르는 하부 문화의 저류가 인간을 눈뜨게 만드는 것이다. 한 권이 책이 인생을 바꿀 수는 어찌해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하부 문화에 자기가 노출된 것을 깨닫지 못하고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한 권의 책이 자기를 바꿨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런 면에서 메노키오의 몇 권의 책은 심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국가의 수가 많듯이 어느 계율이 옳다고 할 수 없다.(177)는 상대주의적 항변은 16세기 '종교 개혁과 민중 문화의 변화'라는 하부 문화와 가톨릭 교회의 권위 사이에서 고뇌하는 당시의 민중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듯 하다. "그대는 어느 법이 옳다고 말할 수 없"느냐고 묻는 자와 "어느 법이 옳다고 말할 수 없"다고 답하는 자의 싸움은 결국 어떤 형상으로 돌아갈는지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묻는 자는 답하는 자를 벌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결국 묻는 자는 답하는 자에게 이길 수 없다.

루나르도와의 대화(291)에서 메노키오는 수사가 되기를 원하는 루나르도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라고 전한다. 그 이유는 "그건 동냥아치들이나 하는 짓"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것들이 미시사를 읽는 재미다.
개인의 삶을 유추해 가면, 거기엔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역사 담론이 가득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 시기가 오면, 온갖 개인들의 미시사가 담긴 '자서전 류'가 판을 치게 되는 모양이다. 문제는 그 미시사가 객관적이지 못하고 '아전인수'식의 오류를 지나치게 범해버리면, 독자를 기분나쁘게 만들거나 독자를 눈멀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겠지만...

치즈에서 구더기가 만들어진 것과 마찬가지로...(193)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신의 개입에 의존하지 않고 혼돈과 무질서하고 거대한 <물질>로부터 탄생하였다는 설명을 하는 메노키오의 입을 통해 이 미시사가가 보여주는 역사는 어떤 것인지... 알 것도 같다.

'성스러운 권위'에 앞서는 '혼돈'과 '자연스럽게 생겨난 존재인 인간들'의 이야기는 신화에도 원용된 바 있는 소재로 "치즈와 구더기"라는 원형적 심상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미시사를 통하여 당시 역사를 가진자의 것에서 '인간적인 것'으로 시점 전환하는 아름다운 책으로 치즈와 구더기를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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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 근대 망령으로부터의 탈주, 동아시아의 멋진 반란을 위해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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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 유럽에서 보기로, 가장 대륙의 멀고 먼 동쪽이었을 게다.
왠지 far east에서는 야만의 냄새와 미개의 악취가 풍긴다.
그래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백인들이 원자탄을 터트릴 수 있었던 곳이 거기였다.
극동에서도 제일 동쪽, 섬나라.
1945년 8월이면 히틀러가 자살한 몇 달 뒤인데, 꼭 BomB!!! 할 필욘 없었다는데...

그리고 극동의 세 나라는 특이한 나라들이다.
아직도 '중화'의 자존감을 가지고 내년 올림픽으로 세계 국가를 꿈꾸지만, 너무도 가난한 이들이 많은 세계의 중심 차이나.
근대화에 성공하였지만 잔인한 학살과 전쟁으로 인심을 잃은, 그렇지만 반성할 줄 모르는,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다시 재기에 성공한 니뽄.
그리고 식민과 전쟁을 극복하고 경제대국으로 일어섰지만, 너무 부실성장을 하여 곪은 곳이 너무 많은 한국.

나는 박노자가 처음에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내놨을 때, 좀 별로였다.
코쟁이 백인이 치부를 그렇게 잘 아는 것도 별로였고, 사회 비판서는 워낙 넘치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젠 박노자가 한국인이어서 정말 기쁘다.
그의 공부가 깊어지고, 그러면서 박노자를 읽는 일이 미래의 공부에 등불이 될 것 같아서이다.

왕에게 절할 필요 없다던 승려 혜원의 당당함, 국가주의에 엿을 날리는 통쾌함이 있다.
이지를 읽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공자는 남에게 공자를 학습하라고 말한 적이 없다. 자신에게 어짊을 구하라고 말했을 뿐이다... 백성들에게 획일적인 도덕과 예의를 강요하려고 국가의 형벌을 남용하려는 탐욕스러운 가짜 인자...'등의 구절을 읽다 보니 빨리 '분서'를 읽고 싶어졌다.

장렬하게 배를 갈랐다는 거짓말로 널리 알려진 이준 열사의 진실도 깜짝 놀란 일이고,
조병옥이 미국 사랑도 새로운 읽기 재미를 준다.

민족을 배반하는 민족 자본에 대한 비판과 건강하지 못한 국민이 스포츠에 미친 사실을 비판한 대목에선 간담이 서늘하다. 선진국 아이들은 주말이면 스포츠에 빠져 정신이 없는데, 한국 아이들은 공부 안하는 운동 선수 뿐이다. 미래가 없다.

가부장적 독재와 남성 우월주의로 가득 덮인 사람들의 시선을 걷어주기엔 충분해보이지 않지만,
성적 담론도 읽을 거리를 준다.

티베트가 중국의 압박을 받는 나라로 알고 있었는데, 박노자를 읽다 보니, 미국 CIA의 간섭이 그렇게 티베트를 웬수로 만들었단다. 미국편인 걸 보면, 그 지도자란 넘들의 봉건적 착취의 정도도 알 법 하다.

박노자를 읽노라면, 한국의 근대에 그가 있어서 참 다행이고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여느 학자들은 근대를 공부하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무식한 국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할 노력을 하지 않는지, 능력이 안되는지 자료를 제대로 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밥그릇 싸움하느라고 국사 교육 운운 하는 꼬락서니라고는...

동아시아의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면, 권위에 대한 복종이 아닐까? 지나치게 어른의 권위가 컸던 과거가 아직도 이 나라들의 언로를 막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공자가 죽었는데 나라가 안 사는 이유는, 아직도 모택동이 살아있고, 김일성과 박정희가 살아있고, 천황 폐하가 살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우승열패의 신화는 읽기가 힘들었는데, 이 책은 새로운 내용이 많음에도 쉬이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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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9-10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는 외국인의 낯설게 보기여서 좋았어요.또한 시의적절했구요...학계 일각에서 과대평가받는 다는 말을 하던데...일정 정도 그런부분도 있다고 봐요.약간은 그의 인기에 대한 학계의 질투어린 시선의 냄새가 좀 나지요.그의 탈근대론적 해석에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에요.그러나 그가 대중적인 글을 쓰고 있고 그게 호소력을 불러 일으킨다는 생각에는 동의해요.
아마 한국의 상아탑 내부에서는 크게 먹히진 않을겁니다.그가 주장하는 바들도 학문적으로는 새로운 것들은 아닐테고...학자들이 공부를 안하지는 않지요.^^그들의 언어가 대중과 친하지 않을 뿐이고 별로 친할 필요를 못느끼는 분들도 많을거고.

글샘 2007-09-11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노자의 장점이자 단점이 그것 아닐까요?
일반 대중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글들을 쓸 수 있는 능력,
사학자들이 내지않는 책들을 내는 사회학적 역사적 저작들,
그리고 한중일러를 넘나드는 근대에 대한 새로운 시선들...
한국에서 '이지'를 칭찬하는 사학자들 거의 없잖아요.
조선인들의 지혜를 칭찬하고 한국의 얼을 본받자~ 이런 애국주의와 국수주의, 국가주의가 역사학과 너무도 긴밀한 밀월을 맺고 있지 않나요?
한홍구의 글처럼 현대사를 조명하는 글도 필요하지만, 고대, 중세조차도 우리는 너무 '신화' 속에 살고 있단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모르면서 존경하는 모든 인물들 - 세종, 김구 등- 을 읽어보면, 그닥 존경하지 못할 면들도 많거든요. 그런데 우린 유독 세종에게 대왕을 붙여 주고, 김구는 민족 통일을 염원한 지도자인 것처럼 착각하는 무지속에 살고 있죠.
박노자는 그런 면들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코끼리 엄니 뽑아다 만든 제국주의자들의 상아탑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들만의 세계에서 지나치게 놀고 있지 않나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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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에는 온 인류가 먹고 남을 만큼의 생산력이 있는데,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가...

한쪽에서는 '욕망'만이 점점 부풀어오르는 기형이 되고, 한쪽에서는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어 굶어 죽고, 기아와 영양 실조에 연관된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 책은 어린 아이에게 기아의 여러 원인들을 설명해주는 형식으로 되어있어, 쉽게 읽을 수 있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기아의 끔찍함을 만날 수 있다. 슬픈 사진들이 수록되어있지 않은 점은 오히려 마음에 든다. 아이들의 인격을 지켜주고 있는 것 같아서...

그렇지만, 정말 죽어가는 아이들에게 인격이 있을까?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동물만도 못하게 죽어가고 있는데 그 아이들을 인격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굶주린 나라들은 거의 과거에 식민지로 오랜 동안 착취당하면서 비민주적이고 가진자들만을 위한 정부가 집권하고 있는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온갖 지원들이 오히려 비민주적으로 가진 자들만 배불리는 역할밖에 못하는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란 착각을 버릴 때가 왔다.
갈수록 심화되기만 할 가난이 '신자유주의 광풍'을 타고 기아를 확산시키는 모습을 확인하는 이 책은 표지에 나온 아이의 말라붙은 검은 눈물처럼 나를 서글프게 한다.

아이들에게도 많이 읽혀야 할 책이다.

이 땅도 기아선상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서울로 서울로만 몰려드는 삶의 양태는 한없는 문제점만을 노정하는 비민주적인 과정이긴 매한가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진리는 현대자동차 회장님을 감옥에 보내지 못했다.
하긴 초대 대통령을 외국으로 내쫓았지만, 결국 현충원에 모셔 두었듯,
회장님을 감옥에 보내기엔 법관들의 용기가 부족했겠지.
선교를 목적으로 천이백명이 아프간에 몰려들었다가 강제출국당한 것이 한 해 전인데,
올해 다시 쌩 쑈를 해서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곤 했지만, 그 썬글라스맨은 소말리아처럼 해적들이 판치는 나라엔 '감히' 갈 생각도 못한다. 이해가 가기도 한다. 아프간에는 미군도 있고 하지만, 소말리아에 억류된 선원들을 구해내기는 난망한 일이란 것도...

하지만, 오늘따라 국가가 국민에게 뭘 하고 있는지,
수요집회에 참가하는 할머니들이 죽어갈 때마다 국가는 흐뭇한 웃음을 흘리는 거나 아닌지,
소모품인 국민들이 무뇌아가 되어갈수록 국가는 부유한 자들의 자산을 불리는 데 관심을 돌릴 수 있는 것이나 아닌지...
가난한 자들이 억류되면 내몰라라 하다가,
부유한 자들이 피랍되면 졸라 열라 구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매진...에 나오는 노 칸트리...를 상상해 본다.

이 가을에도 북녘 동포들은 극심한 수재에 굶주림이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나아진 거라면, 10년 전에는 학생들이나 교사들의 모금을 금지하는 공문이나 내려보내던 정부가, 수재의연금을 모금한다는 공문을 내려보내는 정도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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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18 21:35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갈라파고스 2007년 11월 도서목록에 있는 책으로 2007년 11월 8일 읽은 책이다. 관심분야의 책들 위주로 읽다가 알라딘 리뷰 선발 대회 때문에 선택하게 된 책인데, 이런 책을 읽을 수록 점점 내 관심분야가 달라져감을 느낀다. 총평 물질적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이 책에서 언급하는 "기아의 진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막연하게 못 사..
 
 
 
禁止를 금지하라 - 지승호의 열 번째 인터뷰집
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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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멋지고 도발적인 제목이란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는 한 마디로 지나치게 '도덕적인' 사회다.
그래서 빨갱이도 안 되고, 좌익이나 좌파도 안 된다.
그 도덕은 '가진자를 지켜주는 도덕'에 불과한 것이다.
너무 도덕적이어서 '헐벗은 자'에게 돈을 팍팍 뿌리는 룸싸롱이 성업중이고,
도덕적으로 '욕망의 카타르시스'를 도와주는 '도우미'들도 숱하게 뛰어다닌다.
이른바 보도방(보*도매방이라는)이란 것들도 실존하는 프리섹스의 나라...

'성매매금지법'이 있다는 것은 '성매매'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반증 아닐까?

지승호는 '상식을 두루 꿰는 교양인'을 지향하는 인터뷰어다. 철학책같은 인터뷰를 지향한단다.
그의 지향은 맥락을 잘 잡고 있다. 우선은 그가 택하는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각 포스트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인물이어서 그렇다. 철학이 나올 법 하다.
칼럼은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까는' 글이기 쉽지만, 인터뷰는 사람을 대하는 것이어서 '긍정적으로 접근하는'글이어서 좋다는 그는, 강준만이 자료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하듯, 인터뷰이들이 대신 말해주는 것으로 자기 주장을 강하게 펴는 사람이다.

아직도 온통 <금지 세상>인 이 땅에서 힘들고 멀기만 한 사회운동의 길을 '긍정적인 생각'이 세상을 바꿔가는 원천이라고 믿는 박원순.

문학은 인간의 존엄을 가장 높고 크게 세울 수 있는 것이라는 20세기 최고의 작가 조정래.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연세대 교훈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란다.) 하는 자유주의자 마광수. 유림에선 그를 체제 전복적 인물이라한다는데, 문화 독재의 피해자들이 가득 모인 이 땅에서 마광수같은 자유주의자가 정말 필요하다. 입으로는 세계화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봉건적 민족주의에 파묻혀 있는 나라(145)에서 마광수가 글을 쓰면 자꾸 누가 팔을 건드린다. 제발 그와 장정일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있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

길위의 신부 문정현의 '남은 자'가 되겠다는 말씀은 시린 폭포로 쏟아진다.

멕시코가 나프타 이후 양극화가 심화되어 미국과 높은 수준의 에프티에이를 맺는 것은 위험하다는 경고를 계속 발하던 정태인. 공병호 식으로 스스로 알아서 해라~ 보험이나 많이 들든가, 펀드를 하든가~ 하는 것 자체가 '자산'을 가진 자들의 방식이라고 깐다. 교육이 자산의 분배상태를 개선하던 시대는 가고, 거꾸로 재산 재키기로 작용하는 시대를 잘 읽어준다. 사는 게 무섭다.

삼성 엑스 파일을 까발렸다 엄청 피곤해진 이상호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지나치게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어른이 많다'는 거란다. 그래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전부 철없는 행위로 치부한다. 모든 운동권은 쉽게 매도된다. 황우석은 그 어른들이 감싸주었듯... 삼성은 그 자체가 어른 행세를 하려 드는 자유주의의 적이다.

사람들이 하나도 진지해지지 않고,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너무도 행복해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물, 분노가 느껴지지 않아서 그게 너무 가슴아파요. 온갖 문화의 야들야들한 벨벳처럼 소프트한 양식으로 결박하고 있기때문에 정치적 구호로는 절대 풀리지 않을 이 땅의 문제들이 이제 고착회되어가는 양태를 그는 또렷이 바라본다.

최승호, 한학수 팀은 새로운 것은 별로 없다. 그저 황우석 신드롬의 두려움은 이 땅에서 언제든 마녀사냥에 나설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아 무서울 따름이다.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
이런 미친 책을 쓴 넘이 있고, 그 책을 알라딘의 바탕 화면에 확 깔아 뒀더만.

사람이 돈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이건희는 하지 않겠지?
이 땅의 어른스럽고 근엄한 사람들은 어른스럽게 '질서가 있는 자기 주장'을 하라고 공익 광고를 통해 말한다.
돌던지고 머리띠 매는 노동 조합이나 농민 조합 같은 막돼먹은 주장은 '쌍스런' 거라고...
점잖게 타이르신다.

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지만, 돈은 그 사람보다 꽃보다 아름답기 때문이겠지?
돈으로 사람도 살 수 있고, 돈이면 명예 박사도 얻을 수 있는...
그래서 명.박(어, 이거 누구 이름이삼?) 주려는 대학에서 반대하는 소수의 학생들을 그 삼성에 취업하려는 많은 학생들이 막았다는... 역시 돈이 사람보다 꽃보다 아름다운, 그래서 장윤정은 '나는 당신의 꽃이 될래요, 오늘 처음 만났지만 내 사랑인걸요~~~'하면서 퇴폐 천민 저질 하류 자본주의 만세 송을 부른다.

'그들이...... 있어...... 진실은...... 외롭지... 않았다'는 부제가 붙어 있지만, 중간에 찍힌 스물 네 개의 말줄임표가, 금지의 송곳으로 찌르는 듯 하다. 느낌표 하나 붙이기가 그토록 어려운 '진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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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 교정 하나!

怒는 '성낼 노'자다. '로'로 소리나지 않는다.
다만 희노애락은 발음이 껄그러워서 '희로애락'으로 변형시켜 쓴다.
'천인공노'에서는 '로'로 적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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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6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7-09-06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도서관에서 사줘야 읽으니 늦게 읽게 되네요.
즐건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