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4 - 세종.문종실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4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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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낼모레면 한글날.

세종은 정말 성군이었을까? 한글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게 된 것일까?
그가 많은 인물들과 일을 했는데, 황희, 장영실, 정인지 등의 인재들과는 어떤 관계였을까?

궁금증을 해소할 순 없겠지만, 만만한 만화로 된 조선 왕조 실록을 뒤적여 본다.
한겨레 그림판을 그렸던 박시백이라면 세종 만세 투로 그리진 않았을 것이라 믿고...

역시 세종도 인간으로서 한계가 많은 인물이었다.
어쩌다 보니 초딩용 국어 교과서에 그는 한없이 성군으로 그려져 있었을 따름이겠지.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이야기는 실록에도 뜬금없이 튀어나온다.
집현전 학자들과 만들었단 이야기는 초딩 국어책에 나오던 이야기일 뿐.

세종은 임금으로써 국가의 독립을 생각한 사람도 아니었고, 철저한 사대주의자일 뿐이었다.
두 형들이 거절한 임금 자리를 차지한 세종의 화폐 유통에 대한 집념 같은 것도 앞뒤를 가리지 않고서는 어떻다 말하기 어렵지만...

실록이란 기록 체제가 갖는 한계는 어디까지나 왕조 국가의 한계와 비례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실시간 역사 기록을 가진 역사가 어디 있을까.
왕조 실록을 무시한 야사 위주의 드라마와 동화책 편찬이 세종을 지나친 성군으로 몰아간 탓도 크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명군의 자질을 가진 문종이 단명하는 대목도 아쉽다.
태종을 상왕으로 모신 상황에서 태종의 장인뿐 아니라 세종의 장인, 제 자식의 장인이니 사돈아닌가. 심온까지 죽여버리는 무자비한 정치판에서 세종은 과연 어떤 처신을 했을 것인지... 그가 공부로 도망가고 싶어한 것도 일리는 있으리라.

조선 초기의 피비린내 가득한 역사 상황이 세종 실록 안에까지 가득하다.
오죽하면 세종이 태종 실록을 '임금은 보아서는 안 된다'는 규율을 어기면서까지 보고자 했을까. 그것도 두 번이나... 모두 거절당하고 말았지만, 아마 보았다면, 역사 고쳐쓰기가 진행되지 않았을는지...

용비어천가를 세종 말년에 지었다. 훈민 정음으로 가장 먼저 쓴 책이 이 책이다.
용비어천가는 태종, 태조, 그 할아버지들의 업적을 뻥튀기 한 책이다.
각하의 애비와 애비까지 만만세하던 그런 황당무지개로 가득한 책이다.
훈민 정음을 만든 목적은 조선 개국의 정당하지 못함을, 그 피비린내의 역사를 덮어버리기 위한 것일 듯 싶다.

이 책에서 재미있는 점은, 세종이 사민 정책 등으로 인심을 잃은, 그야말로 성군만은 아니었다는 점과 함께, 명재상으로 알려진 황희 정승이 여러 추잡한 비리에 연루되었던 이였단 이야기와, 동화나 만화에 세종께서 그토록 사랑했다고 그려진 장영실도 가마가 부러지는 통에 바로 모가지 되었다는 비정한 역사적 사실이었다.

요 책, 처음부터 읽어보고싶은 욕심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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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10-07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소 실록이죠. 세종편 감동이었어요. ^^

글샘 2007-10-07 21:54   좋아요 0 | URL
저는 세종이 궁금해서 이걸 먼저 읽었는데요...
처음부터 읽어야겠습니다. ^^ 완소 실록 맞아요.

순오기 2007-10-07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10권 선조실록부터 9권 인종.명종실록 거꾸로 구입했는데...건너 뛰고 세종실록으로 갑니다! 저, 눈이 작아서 이 작은 눈에 들어오면 바로 질러버린다는...

글샘 2007-10-07 21:54   좋아요 0 | URL
눈이 작아서 ㅋㅋ 저도 눈이 작은데요...
내일 열심히 읽을까 합니다. 학교 도서관에 잘 사뒀거든요. ^^
 
이탁오 평전 - 유교의 전제에 맞선 중국 사상사 최대의 이단아
옌리에산.주지엔구오 지음, 홍승직 옮김 / 돌베개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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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焚書)란 이름의 책이 있었다. 이탁오의 글에는 감추어야할 책 장서, 속분서도 있다. 기회가 되면 그 책들도 읽을 수 있으리라.

왜 알지도 못하던 그에게 중국 제일의 사상범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몹시 궁금했다.

책을 읽고난 지금 그를 다시 그려 보자면... 열린 마음의 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한다.
그가 닫힌 마음의 시대에 살았으니 결국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중국 역사상 도전 정신과 진취 정신이 가장 풍부한 사상가이자 중국 역사상 최초의 순수 사상범인 이지(547).라고 지은이는 이탁오를 평했다. 중국 사상사에서 학술 문제로 죽음을 당한 유일한 사상가(36)라고도 했다.

그가 반대한 것은 문화 전제였다. 그가 추구한 것은 정신의 자유였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다. 불경에서 나온 말이다.
이지는 공자를 만나서 공자를 죽인 이였다. 결국 공자아닌 공자의 후예는 이지를 죽였다.

고대의 사상가, 교육자, 학자로서 이지는 공자를 존경했다. 하지만 그를 신성불가침의 우상으로 떠받들면서 살아 있는 천만 사람의 입을 틀어막는 주술로 삼고, 중생의 성령을 조여 죽이는 법보로 삼는다면 이는 가증스러운 것으로... 차라리 머리가 깨져서 피를 흘리는 한이 있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 으로 이지가 공격하려던 공자는 춘추 시기의 공자가 아니라 '백가를 배척하고 오로지 유가의 학술만 존중'한 후대의 공자(143)...라고 함으로써, 이지의 뜻을 잘 드러내고 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던 이의 주장도 이지의 입장과 다르지 않으리라.

유교 문화를 주체로 한 중국 문화는 줄곧 사회질서를 강조하여 개체는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의 나사 하나에 불과하여 놓인 자리에 만족하게 (198) 하였고, 개인의 자유는 말살되었던 것이다. 그걸 보고 배운 조선이야 말해 무엇하리오...

옛것을 보고 베끼는 문화에 대하여, 하늘이 한 사람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으면 그 사람의 쓰임이 있다. 망령 뒤를 따라다니며 그대로 걷고 뛰는 것은 너무 맥빠지는 일...(284) 이라며 유령 세계 같은 유학자들의 허상을 깨우치려 했다.

공자가 남겼다는 말을 책으로 엮어서, '그들의 말을 암송했을 뿐'이면서 '그들을 안다'고 착각하는 이들에게 이지는 '나는 대중을 따라서 공자를 숭배한다'는 말을 남긴다.(376) 희한하게 비꼬는 투가 있다.

용담이란 곳에서 오래 머물게 되는데, 용담이라면 바로 동학의 발원지의 지명 아닌가.
유교에 얽매인 양반들의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한 동학의 철학이 열매맺은 곳이 이탁오의 용담과 같은 곳이었던 것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었던 듯 하다.

인격은 독립된 것이다. 이것이 이지의 자유주의다.
부모에게 얽매인 것도 아니고, 어느 한 사상에 얽매인 것도 아니다.
명분을 지키려고 '성을 지키느라 사람을 먹느니 차라리 항복하여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 낫다.'는 대목에선 남한산성에서 고민하던 인조와 명분에 얽매인 양반들을 향해 한 대씩 주먹을 날리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공감이 갔다.

그가 반대한 것은 공자의 후예들이 만든 '명분을 앞세운 개인 압살'이었던 것이다.

두꺼운 평전을 띄엄띄엄 읽으면서 그의 삶의 족적을 밟아나간 독서로는 그의 사상을 읽어내기 역부족이었지만, 이지를 안 것만으로도, 또 그의 자유로운 개인을 읽은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뻘겋게 불타오르는 그의 분서와 속분서(한길사에서 간행되었다.)도 빌려다 볼 날이 올 것이다.
아직 그의 '장서'는 번역되지 않은 모양인데, 그의 장서도 읽을 기회가 있으리라.
요즘 꼬리를 비추지 않는 파란 여우 같은 이가 읽으면 좋아라 할 책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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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4-20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을 주문하려고 하다가
글샘님의 리뷰를 읽었습니다.
녜, 분부대로 딱 저 같은 할랑바가지 이단아들이 혹 할 책입니다.ㅎㅎㅎ

글샘 2008-04-21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낚이셨군요. ^^
 
여럿이 함께 - 다섯 지식인이 말하는 소통과 공존의 해법
신영복 외 지음, 프레시안 엮음 / 프레시안북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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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상엔 참 많은 인간이 산다.
그 인간은 모두 같은 권리를 가지고 살지 않는다.
한국 영토의 52%에 대한 권리를 가진 사람은 불과 1%에 불과하다. 여기서 젠장, 이다.

그래서 그 젠장할 세상을 바꾸는 것은 '여럿'의 힘이고, '함께'의 순리다.
그런데 살다 보면, 별로 이론적 토대가 없고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으면서도 의견이 수렴되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상당히 의견이 비슷하고 지향점이 같아 보이면서도 중구난방으로 의견이 진동하거나 발산하는 경우도 있다.

도식적으로 생각하면, 외부적 억압이란 시대적 환경이 열악하면 열악할 수록 그 억압을 뚫으려는 작은 힘들을 '좁은 곳'에 집중해야 힘이 커지기 때문에 '수렴'의 모습을 보일 수 있고, 억압의 환경이 느슨해질수록 작은 힘들은 분산되어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되어 '발산 내지 진동'의 결과를 낳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책에선 신영복이란 상징적 지식인부터 김종철, 최장집, 박원순, 백낙청 들이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한다.

책을 읽으면서 갑갑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어제 남쪽의 대통령이 최초로 걸어서 군사 분계선의 노란 선을 넘어갔다.
오늘부터 정상 회담이 열리기는 하지만, 이제 대선을 두달 여 남긴 상황에서 그 대통령의 힘이 어느 정도일는지... 기대하는 바가 크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몇 분의 어르신들이 통일 논의를 하는 글을 읽자니 해법은 없고, 가슴이 답답했다.

말이 사물에 앞서던 시대가 있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모두 환상에 빠져 살았다.
양반이라는 말에 인간 존재는 껌뻑 죽어야 했다. 선생님이란 말도 꽤나 매력있는 말이었다.
사물의 존재 가치에 비해서 말이 갖는 프리미엄이 컸던 시대다.

이제 가치가 전도되어 사물이 말에 앞서는 시대가 되었다.
특히나 이 땅처럼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세상,
사람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부르짖는 세상이...
명품 에르메스를 헤르메스라고 읽는다고 인간을 비웃는 세상이...

생태학에서 다양성이 사라지면 생태계 전체의 안전성이 깨진다는 김종철 선생의 이야기는 사뭇 두렵게 들린다. 사물 일변도의 세상에서 다양성이란 없다. 명품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니깐.

전우익 선생님도, 권정생 선생님도 모두 조용히 하늘나라로 가셨는데,
펀드를 사 모으고, 재테크의 기술을 늘려 나가며, 미래형 지식인을 준비하라는 공병호의 '돈 연구소'만이 사람들의 황황한 마음을 수렴하고 있는 듯한 세상이 두렵다.

인권 변호사에서 사회 운동가로 활동하시는 박원순 선생의 이야기는 새롭다.
이런 세상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너무 좌절할 것 없다는 이야기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 공공 영역은 빈틈이 너무 많습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다 보면 나중엔 분명히 자기가 먹고사는 길이 됩니다. 저는 우리가 이 거대한 블루 오션을 내버려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미 FTA가 가지고 올 무서운 세상이 못 가진 이들에겐 명약관화한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집중해서 막아낼 수도 없는 국가. 그리고 도저히 그걸 기대할 수 없는 '국회'를 가진 가엾은 나라.

백낙청 선생의 통일 논의는 공허하기만 하고...

프레시안의 의지적 기획으로 만들어진 첫 번째 책인데, 왜 이렇게 읽기가 힘든지 모르겠다.
날씨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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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시 꼬옥 만나요 - 비전향 장기수들의 남녘 생활, 신동필 사진집
신동필 사진,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외 / 창 / 2001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책이되 책이 아니다.

사진집이되 작품 사진들을 실은 것이 아니다.

요즘 뉴스에 보니 배두나란 배우가 영국과 일본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로 책을 냈는데 뭐 그게 몇 만 부  팔렸다고 그러더라만...

이 책은 돈이 안 되는 곳에서 일가견이 있던 분들의 굳은 얼굴들을 찍어 두었을 뿐이다.
이 책은 그런 기록물이고, 각인된 역사다.

세계에서 가장 장기수들이 많은 나라...

만델라도 한국에 오면 장기수 축에 끼지도 못하는 무시무시한 나라...

내가 어렸을 때 듣던, 이마에 뿔났고, 부리부리한 눈매에 음침한 표정으로 접선을 시도하는 그런 간첩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는 망연자실하던 기억이 난다.

분단의 역사는 이 땅을 뒤틀릴대로 뒤틀린 사고 구조와 사회 구조의 결과물로 규정지었다.

송환을 택하신 어르신들...
평생을 오로지 '인간의 신념' 하나로 삶을 포기하셨던 분들.

그 높은 정신에 인사를 드리게 되는 사진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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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9-29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을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지킬 수 있는 신념이 있는 사람들..
그럴 수 있음이 존경스럽습니다. 한번 보고 싶은 사진집이네요.

글샘 2007-10-01 11:47   좋아요 0 | URL
삶을 포기한다는 것은 곧 모든 것을 건다는 건데...
인생의 모든 것을 짓밟으려는 국가 권력이란 것도 허망하기 짝이 없죠.
그래도 이 분들의 모습에선 삶의 그림자가 더 또렷하신 듯 해요.
정말 존경스러운 분들입니다.
 
내 이름은 임마꿀레
임마꿀레 일리바기자 외 지음, 김태훈 옮김 / 섬돌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르완다...
후투족과 투치족이 싸웠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어떤 일이 있었던지는 읽은 적이 없었다.
마치 보스니아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지 알지 못했던 것처럼...

임마꿀레는 한참 재밌던 대학생활을 접고, 단지 투치족이란 이유 하나로 좁은 화장실에서 숨어지내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이다.

그 생환기록은 인디언 멸절사나 호주의 원주민 학살에 버금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처절하다.
보스니아의 종교 전쟁과도 또 다른 민족간의 참극...

민족이란 이름으로 악마에 물들어버리는 사람들...
이 책을 읽으면서 못내 미심쩍은 부분은 하느님에게 기대는 간증이 지나치게 강조된 것 아닌가 하는 부분이다. 끝부분의 용서를 운운하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르완다에서 일어난 소수민족 투치족의 학살극은
아름답던 그의 나라 르완다를 처첨한 피바다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났고, 유엔에서 취직까지 하게 된 소설같은 이야기는 이 책의 증언과 사회성을 반감시키고 있어 아쉬운 점 크다.
그렇지만 르완다 참극의 증언 문학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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