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횡무진 서양사 - 남경태의 역사 오디세이 3부작 종횡무진 역사 시리즈 5
남경태 지음 / 그린비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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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를 읽는 일은 '인물'을 읽는 일일까? '사건'을 읽는 일일까?

남경태는 전문 역사가가 아니다. 그렇지만, 전문적으로 그것만을 공부해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사람과, 이런 저런 생각들로 가득해서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 사이에는 보는 시선의 차이도 생길 수 있고, 사건을 다르게 읽어내는 눈도 배울 수 있다. 사람을 보는 시각도 차이가 클 수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역사서를 써대는 남경태를 역사가라 아니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말이 좋아 팽창이지 실은 전쟁이다... 중상주의에는 문제가 있다... 이런 글을 역사서에서 읽는 일은 새로운 즐거움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로마의 역사라는 사소한 역사의 분편을 다룬 것임에도 그렇게 재미를 준 것은 그의 이야기가 체화된 그것이었기 때문이란 이유도 크지 않았을까... 하고 느끼는 나는... 한국에도 그와 같은 역사가가 있었다면... 하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다.

이덕일의 작업도 재미있는 작업이지만, 남경태의 작업도 기대가 크다.

남경태의 서양사를 읽으면서, 비잔티움에 대한 공부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건과 사람의 중심에 가까이 서 있으면서도 마치 까치밥으로 몇 개 남겨둔 감처럼 고향같은 생각이 든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그 사건과 사람들은 모두 '현재'를 살고 있었던 것이니까, 고대-중세-근대-현대라는 축이나 뿌리-줄기-꽃-열매라는 비유는 모두 틀린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구에게 물어본다면, 현대를 인간이 활용하여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열매'로 여기는가에 대한 질문에 엄격하게 도리질을 칠는지도 모를 일 아닌지...

현대를 사는 게 아니라, 현재를 사는 인간에게 과연 '역사'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사건'들 속에서 살아온 '인간'들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곰곰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하루를 사는 일은 결코 이 무거운 서양사 한 권을 읽는 일보다 가볍지 않다.

지은이가 더 나이 들면, 더 깔끔한 필력으로 중학생들이 읽을 만한 서양사를 집필할 힘을 얻기를 기대한다. 솔직히 이 책을 독자에게 들이미는 일은 역사를 너무 무겁게 들이대는 일이 아닐까? 날조된 역사서나 희화화된 야사에만 익숙해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더욱...

서양사만이 전쟁사인 것은 아니겠으나, 동양의 역사에 비한다면 전쟁사의 측면이 훨씬 어마어마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남경태가 왜 비잔티움에 관심을 갖는지를 생각하였다는 게 가장 큰 소득이었다. 나도 좀 관심을 가져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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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는 지켜야 할 자존심 인터뷰 특강 시리즈 4
진중권.정재승.정태인.하종강.아노아르 후세인.정희진.박노자.고미숙.서해성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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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겨레 강연 시리즈 네번째 권이다.
해마다 내가 가장 기다리는 책이 되어버렸다. 지승호의 인터뷰집이랑 함께...

올해의 강연 주제는 '자존심'이었다.
한국에선 '자존심'이 부정적 의미로 영역이 <축소>되어 쓰이는 듯 하다.
쓸 데없이 '자존심'을 세우고 있네... 하는, 개인적인 주장을 조금 세우면 일축하는 말로 쓰인다.

그러나, 사실 '스스로를 높이는 마음'이란 뜻의 '자존심'은 결코 부정적으로 쓰일 수 없는 말이다.
개인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라면 '자존심'만큼 그 사람을 정의하기 적절한 말도 없을 것이다.
자존감을 세워주기 위해, 자존심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모든 일이 돌아간다.
결국 모든 생활의 중심은 '자존심'인 것이다.

요즘 학교에 학부모들이 가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교사가 학생을 과도하게 지도(?)하여 뉴스 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 핵심엔 모두 자존심 싸움이 있어보이는데, 사실은 지켜줘야 할 자존심을 지켜주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다. 초등학교 1학년생이 오줌을 쌌을 때, 담임으로서 이런저런 행사 준비를 하는데 좀 짜증 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아이의 인격을, 그 자존심을 생각한다면, 오줌 싼 아이를 한 시간 세워둘 수는 없는 일이다.

'집단'이 강조되면 '자존심'은 설 자리가 없다.
집단의 '자존심'만 강조되면 그건 쇼비니즘이 되고, 내셔널리즘이 된다.
나치즘이 그거고, 전체주의가 그거고, 군국주의가 그거고, 신자유주의가 그것이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는 '대한 민국'이라고 '집단의 자의식'을 강조하던 시대가 있었다.
동방에 아름다운 대한민국 나의 조국, 반만년 역사 위에 찬란하다 우리 조국이라고 '애국심이 곧 자존심'이던 가난한 시대도 있었다.
좋아졌네 좋아졌어...로 스스로를 위안하던 새마을 운동 일념 자존심도 있었고,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세계로 뻗어가던 시대의 자존심도 있었다.
월드컵때 상대 선수들을 퇴장도 시키고, 페널킥도 얻고 해서 어쨌든 4강까지 올라간 붉은 자존심도 있었다. 모두 집단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이 집단 자존심은 한 순간에 썩소와 함께 사라질 수 있다.
외환 위기가 닥치자, 모두 '네 잘못'이라며 국민의 자존심을 깎아 내렸다.
민주화의 자존심을 세우기도 전에, 놈현스러운 국가로 부자 노동자들이 데모해서 기업 못 해먹겠는 나라로... 전락시킨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세력은 '진보 세력'이고 '못 가진 세력'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이야기는 정희진의 여성이야기였다.
정재승의 과학 이야기도 맘에 들었다.
정태인의 FTA 이야기는 정말 공부해야하게 만든다.
진중권이 차지한 자리야말로 '자존심'의 자리다. 무식하고 말 못하고 권력욕 가득한 '넥타이 맨' 지식인 세계에서 '라운드 티'를 입고 나와서 전사 소리를 듣는 진중권은 지식인의 '자존심'인지도 모르겠다. '영구'는 '없다'고 말하거나, '황우석의 말'은 '황'임을 밝히는 일은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임을 밝히는 일이나 '벌거벗은 임금님'을 바로보는 일이다.

하종강과 후세인의 이야기에서 이주 노동자와 이주 결혼이 얼마나 인격의 자존심을 깎아내리고 있는지 마음 아프게 읽었다.

자존심을 살리며 사는 일.
직업적으로 아이들의 자존심을 생각하며 가르치는 일.
교사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을 당당히 하고,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은 단호하게 하지 않는 일.
이런 것이 자존심과 연관된 일인데, 사회 분위기의 영향이 아주 큰 부분이다.
'인권'을 이야기하면 '배부른 소리'로 치부하는 분위기는 '못배우고 못가진' 사람들더러 '빨갱이나 전라도'소리 듣지 않으려면 찍소리말고 있으라는... 너희가 무슨 자존심이 있기에 인격과 인권을 운운하느냐... 하고 어른 행세를 하려 든다.

공자가 죽어야 한다는 말은 어른을 죽여야 산다는 말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란 말이다.
오늘, '자존심'을 만난 한국 사회에서, 이제는 '자존심'에 눈 떠야 할 일이다.
결코 '자존심'은 죽여서 될 일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에게... 그리고 소수자에게...

엊그제 수능을 마친 성인 준비생이나, 대학생들에게 꼭 읽기를 권하고 싶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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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11-17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도 나왔네요. 저는 성인 준비생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니지만 읽어도 되죠? ㅎㅎ

글샘 2007-11-17 11:19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은 안 읽으셔도 될 것 같은데요^^
이 강연의 문제점은... 안 들어도 될 사람들은 굳이 찾아다니며 듣고, 정말 듣고 마음을 바꿔야 할 사람들은 귀를 굳게 닫아 두고는... '많이 배워서 아는 체' 한다는 데 있죠. 홍세화씨 말마따나 '자기 신분을 배신한 결정'을 하기도 하죠.

웽스북스 2007-11-17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희진님의 글은 참 명쾌해서 좋아한답니다. 이번 책에서 가장 기대하고 있는 분중 한 분이기도 한데, 글샘님 글을 보니 더욱 기대가 되네요 ^^

글샘 2007-11-17 21:51   좋아요 0 | URL
그렇죠? 가장 명쾌한 이야기 중 하나였습니다.^^
근데, 정말 읽어야 할 사람들은 읽지도 않은 주제에 엄텅 비판조로 이야기하죠. ^^ FTA 찬성하는 무뇌아들 대부분이 전혀 공부하지 않고 좋아한다는데 문제가 있듯이 말이죠... 공부합시다!

순오기 2007-11-18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능을 본 딸에게 알라디너 한분이 책 선물 주신다니 이 책을 선택했어요. 교육대 입학을 앞두고 있으니 필히 봐야겠죠? 님의 리뷰 읽으니 아이가 선택을 잘한거 같아요 ^^ 감사

글샘 2007-11-18 21:23   좋아요 0 | URL
아 책 잘 고르셨네요^^
선생님...이란 직업은 지식인이라기 보다는 '몸'으로 뛰는 직업이랍니다.^^
몸 건강하게 관리하라고 전해 주세요. 그래야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체육을 실내에서 안 할 수도 있겠죠.
좋은 선생님이 되어 달라고 전해 주세요~

순오기 2007-11-19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딸이 운동을 싫어해서 고1때 체육이 7등급. 체육복 안 가져갔다고 수행점수 엉망으로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그러잖아도 '체육시간 교실에서 하는 선생님 될거야?' 이러면서 준비기간에 운동하러 다니라고 했는데 태권도, 탁구, 헬스...어디를 가야 할까요?

글샘 2007-11-19 08:36   좋아요 0 | URL
^^ 헬스나 수영처럼 본인 건강에도 도움이 되면서, 학생들에게도 스트레칭 등 가르칠 게 많은 게 좋지 않을까요?

비로그인 2007-11-19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다리던 책이랍니다. 빨리 읽어봐야겠어요. 한겨례출판에서 나온 <<21세기...>> 3권처럼 이 책 역시 기대를 팍팍하게 하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글샘 2007-11-19 09:19   좋아요 0 | URL
기대만큼 멋진 책입니다.^^

진쪼다는 싫다. 2007-11-24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주둥아리만 떠벌리는 인간들을 나는 혐오합니다. 자신의 글은 진실인양 쓰는 인간들.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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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すぎ-さ·る [ぎ去る] (시간이) 지나다. 과거가 되다. 

원 제목이 '스기사라나이 히토비토'...니깐, 과거가 되지 않는 사람들... 지나칠 수 없는 사람들... 같은 뜻이겠다.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란 제목이 왠지 내용을 적실하게 담보할 수 없단 생각을 읽는 내내 했다. 그래서 부제를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이라고 붙여 두었을 것이지만... 그래도 못내 제목이 주는 '포스'가 원제에 비해 약해 아쉽다.

이 책의 표지에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실려 있다. 척 보고 알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역시 맨 첨의 김구 선생 정도다. 자세히 봐도 알아볼 수 있는 모습은 안네 프랑크 정도일 뿐.

그런데 이 구도와 똑 같은 사진들이 '파이'를 이루어 있는 책이 있다. 바로 중,고등학교 도덕 교과서이다. 극우파의 우편향적인 보수성을 고리타분하게 가득 담은 국수주의적 표본의 교과서. 

도덕 교과서의 사진들과 이 책의 사진들을 비교해 보다가 깜짝 놀랐다.
도덕 교과서의 사진들에서 보이는 인물들은 초등학교 시절, '위인전집'에서 배웠던 그 인물들이었다. 세종대왕, 나폴레옹, 예수,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이순신, 원효, 간디... 위인전에서는 숱하게 많은 장군들과 부자들(록 펠러, 강철왕 카네기 같은...)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서경식의 이 책에 수록된 20세기의 인물들의 면면을 본다면...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만들어낸 도덕 교과서에 수록될 만한 사람은 김구와 안중근 정도일까? 그렇지만... 이 책이 만약, 만약에... 30년 전에 한국에서 읽혔더라면... 하는 상상을 해 봤다. 파블로 네루다와 살바도르 아옌데... 체 게바라와 프란츠 파농, 그리고 아직도 안갯속에 묻힌 이극로와 김사량 같은 납북된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내가 대학 시절 단편적으로 만나지 않고 이런 책으로 만났더라면...

그리고 각각의 짧은 평전 말미에 붙어있는 참고 도서를 부지런히 찾아 읽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람을 보는 눈이 이렇게 다르다. 제 한몸 분신하여 세상을 일깨우는 횃불이 되려던 전태일 열사의 죽음이 37년 전 내일인데, 아직도 분신하는 이들을 욕되게 하는 세상은 밝아지지 않았다. 패리스 힐튼처럼 돈으로 온몸을 치장하는 사람들이 와서 시시덕거리고, 가수도 없는 나라에서 비욘세라는 외국 가수가 와서 공연을 펼치곤 하는 세상에서... 그들에 환호하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지만, 90%의 서민들의 생활이 팍팍해지는 세상 돌아가는 게 허무해서 시청앞에 모여든 이들더러 '차 막힌다'고 불평하는 시선들을 가진 세상...

서경식이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그가 바라본 '위인'들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디아스포라의 슬픔, 그리하여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을 펄럭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이야기다.

그렇지만, 그들의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 나부끼는 곳에서는 왠지 슬프지만은 않은, 슬픔으로 슬픔을 이겨내고 죽음으로써 죽음을 극복하는, 승화의 경지를 만날 수도 있음이 이 책의 가치일 것이다.

재일조선인이란 디아스포라의 시선은, 
두 형이 극복하려던 노스탤지어의 한계가 끝이 보이지 않던 감옥살이로 아스라하게 사라지자, 
조국이란 혐오스런 짐승이 갈기갈기 존재를 발겨버리려는 처지를 바라본다.
도덕 책에 실린 위인들과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이들의 차이...
그 차이가 바로 제목에서 이야기한 <지나쳐버려선 안 되는>, <과거로 치부해서는 안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도덕 책에 실린, 그리고 우리가 위인전에서 숱하게 읽었던 이야기들은 <문명>의 편에 선 자들의 이야기였기때문에 굳이 <기억>하려고 할 필요가 없는 이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책에 실린 49명의 삶은 아스라한 향기만을 남긴 삶들이다. 그들은 <야만>이 저지른 횡포에 묻혀져가기 십상인 사람들이다. 그래서 <스기사라나이...>해야하는 차이를 강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굳이 <기억>하려고 하지 않으면 <지나쳐 버리고 마는> <한낱 과거로 치부되고 마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민족이기도 하고, 자유이기도 하며, 투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의 자유로운 정신이 가진 것은 <어린 아이의 순진 무구함>이 깃들인 <노스탤지어>의 동경, 향수... 그런 것들로 보인다.
권력을 쟁취했거나 '성인'으로 추앙받거나 '거부'가 되어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긴 이들이 남긴 말들은 <어른들의 지당한 말씀>으로 그 말씀을 배우는 이들은 '네, 그렇습니다.'하고 따르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서경식의 탐구의 한계가 유럽, 남미, 동아시아...에 머무른 느낌이 강하다.
그의 탐구가 <잊혀져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한발짝씩 옮길 때,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은 더 힘을 얻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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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소수자운동
윤수종 외 지음 / 이학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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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읽으면... 한국 사회의 척박한 역사가 맨살로 드러나 쓰라리다.

원래 극빈자는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싸움에서 비겁하게 가진자 편을 들게 된다.
조선처럼 양반과 쌍놈의 대립에서 쌍놈은 늘 양반의 편이 되도록, 그게 윤리에 맞는 일인 듯 가르쳐 온 것이 문화 아닐까.
그렇지만 조금 살게 되면, 조금 사는 사람들, 시민 사회의 부르조아 같은 중산층은 너그럽게 못가진자를 응원한다.

그러나... 이것은 꼭 얼마나 가진 나라인가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 같다.
사회가 겪어온 역사가 얼마나 민중의 그것이었는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처럼 왕의 모가지를 자르고 피를 통한 중산층의 세계로 진입한 국가와,
한국처럼 아직도 대통령을 왕으로 착각하는(얼마 전 읽은 유시민이 그랬다. 그 잘난 체하는 유시민이...) 그리고, 서민 주제에 중산층이라고 착각하는, 불과 얼마 전까지 최빈국에 처했던 국가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을 듯 싶다.

이 책에서 말하는 소수자는 성적 소수자, 성매매 여성 연대, 이주노동자 운동, 장애여성 운동, 수형자의 저항, 넝마공동체의 변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운동... 들을 살피고 있다.

홍석천의 커밍 아웃으로 '커밍 아웃'이란 단어를 처음 접할 정도의 나라. 하리수를 성상품 이상으로 보지 못하는 나라. 중,고등학교에서 남녀를 분리한 남녀칠세부동석의 윤리가 아직도 사회를 짓누르는 사회, 여자대학도 인기가 좋고, 남자들끼리 뒹구는 군대란 사회가 지배이데올로기가 되는 날...

한국에서 성적 소수자 문제를 이야기하기는 '왕따'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만큼 성에 관해 민감하고 폭력적인 사회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실태는 매체에서 접할 때마다 무섭고 두렵다. 아직도 구석구석 남아있는 베트남 처녀 인신매매에 대한 쪽지들이 한국을 부끄럽게 하는 것인데... 방송에서도 부끄러운 일을 부끄럽다고 하지 못한다... 미녀들의 수다에 베트남 여자들은 없으니깐... 거긴 '바나나 되기' 좋아하는 인간들이 미치도록 좋아하는 나라의 못생긴 여자들만 있으니깐... 방송의 차별은 너무도 모욕적이다. 어쩌다 이주노동자가 나와도 거기엔 평화와 즐거운 노동이 있고... =3=3

병역 거부도 얼마 전에 대체 복무 인정으로 판결이 났는데...
분단 국가의 병역 문제는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종교적 이유로 어려서부터 공무원을 대학 교수를, 대기업 사원을 포기해야하는 재능있는 아이들의 눈물을 보면... 분단 국가의 '헌법에 등장하는 자유'는 모두 '수사'에 불과하단 생각이 든다.

소수자 문제... 소수자 운동...
어제 한국의 천오백만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민노총, 전국 농민 등이 서울 시내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언젯적 이야기처럼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대회 참가를 막고, 애초에 불허한 서울 시청 앞은 경찰차로 도배를 해 버렸다.

1%가 52%의 땅을 차지한 나라에서,
천 오백만 노동자는 소수자이다.
5%가 85%의 땅을 차지한 나라에서,
나머지 95%는 15% 땅을 쪼개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이는 똥개들이고, 철망 속 원숭이들이다.

대한 민국은 '소수자의 나라'다.
상위 10% 정도, 먹고 살다 죽는 일에 걱정 없는 넘들은 '다수자'가 되어 횡포를 부리고,
나머지 하위 90%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루하루가 걱정인 '소수자'가 되어 살기가 어렵다.

그 소수자의 '공화국'도 아닌 '왕국'에서 소수자는 인권도 투표권도 없다.
소수자가 진정한 투표권이 있다면... 왜 민주노동당이 왕따당이 될까?
진정한 투표권은 '공화국의 공교육'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노동당'을 두려워하는 교육을 받은 '소수자'는 가진자들의 '한나라당'이 가진 아름다운 무지갯빛 이념의 세례를 받고 싶어하는 것 아닐까?

소수자 왕국의 소수자... 그 인권 찾기의 지난함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마음아프다.
한 편 한 편의 글들이 '인터뷰' 처럼 생생한 의견들을 다루었으면 더 좋았겠단 생각을 한다.
지나치게 원론적인 이야기들은 재미도 없을 뿐더러, 독자를 늘리고 이해를 넓히기엔 역부족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런 책들도 없는 수준이니, 이런 의견들을 묶는 것이 가치가 있을 정도로 이 분야는 척박한 것이기도 하겠지.

소수자들의 작은 목소리가,
결코 우리가 소수자가 아님을 깨닫는 순간 큰 목소리가 된다.
아직, 한국 사회는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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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
송두율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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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 대통령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구나... 정동영을 지지하는 10%대는 크게 늘지 않을 거라 나는 생각했다. 권영길이 새로워보이지도 않는다. 권영길과 민노총과 전교조를 '대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왕따'당할 것 같다. 그런데... 이회창이 나왔다. 뜬금없이...

이회창이 내세운 기치는 단 하나인 것 같다. 이명박으론 안 되겠다... 뭐, 이런 거. 한국 정치판과 선거가 어차피 정치적 견해란 없는 이전투구판이고 세력 싸움이긴 했지만, 아무 '정책'도 없이 3수에 뛰어든 이회창의 정치적 행보는 한국 정치판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4년 전, 송두율이란 '징그러운 이름'이 온갖 매스컴을 뒤덮던 때가 있었다.
아마 송두율이란 이름을 듣고 온 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사람이라면 '피디수첩'을 들어도 비슷한 느낌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민노총, 한총련, 전교조'는 어때? 비슷한가? ㅎㅎㅎ

송두율이 어떻게 감옥 생활을 하다가 독일로 돌아갔는지... 그 사건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었는지...
그렇지만, 그 사건이 국가보안법의 야만적인 모습을 얼마나 잘 보여주었는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사건으로 당당하게 떨쳐 일어선 <보수를 참칭한 훌륭한 가진자들>의 세력이 그 해 겨울, 국가 보안법을 얼마나 힘겹게 지켜냈는지를... 이 책은 보여준다.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을 겁도 없이 쓴다. 뭘 잃어버렸단 거지? 뭘 되찾겠단 거지?

<한 개인이, 그것도 37년이나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던 학자가, '민주 인사'로 초청되어 간첩이라는 부당한 혐의로 10개월간 반인권적 구속 상태로 있으면서 쓰레기 신문들의 근거없는 유죄판결과 인격적 모욕을 뒤집어쓴 사건>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이런 야만적인 사건이 백주대로에서 일어난 것은 '국가보안법'의 형형한 눈빛 때문이다.

2심 판결문에서 '40%가 확신이고 60%가 심증인 간첩 내지 친북행위자'라는 말을 읽고 눈물이 나려 했다. 이런 판사도 있었구나. 확신과 심증 100%로 간첩을 만드는 법. 송두율씨가 저명한 학자였으니 하버마스란 스승도, 귄터 그라스도 구명 운동을 벌였지... 일반인이었다면 언제 사형당했을는지도 모를 일이지...

외국의 학제도 모르면서 '대 학자'를 '시간 강사' 운운하고, 대학 도서관의 사서의 지위도 모른 채, '가난한 사서 아내...'운운한 엘리트 검사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이 나라의 치부가 너무도 벌겋게 드러난다.

생태 철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개구리 법칙이 오래오래 마음에 남는다.
상온의 물에서 헤엄치는 개구리는 물이 서서히 데워지는 줄도 모르다가 죽지만, 그 개구리가 뜨거운 물에 던져지면 뛰쳐나갈 것이라는... 환경 오염의 결과는 서서히 데워지는 물과 같은 결과를 낳을 거라던...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의 의식 세계를 마취시켜온 '지식'은 사람들을 천천히 마비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이게 국보법의 무서운 점이다. 레드 컴플렉스의 장구함...

'다름의 공존', '과정으로서의 변화'같은 '경계'의 철학을 연구하던 학자에게, 정말 경계에서 얼쩡거리다 너 한번 죽어 볼텨? 뜨거운 맛을 볼래? 꼭 죽어 봐야 지옥을 알겠어?하며 달려들던 악머구리들이... 송교수가 독일로 돌아가고 나서는 찍소리도 없는 걸 보면... 이 야만의 나라의 썩은 신문들은 참 너그럽기도 하다.

새삼 송두율 교수에게 미안한 마음 가득 느끼게 만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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