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지은이는 경제학자이다. 그렇지만 장하준은 여느 소설가 못지않은 필력을 가지고 있다. 더더군다나 이 책은 영국에서 영어로 발간된 책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자랑스런 한국인은 이럴 때 쓰는 말 아닐까?

잘 사는 나라들은 개발도상국가에게 <자유 무역>을 들이댄다.
그걸 저자는 여섯 살 난 아들 진규에게 공장가서 일하라 시키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물론 진규가 지금 당장 가서 일하는 것은 그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는 일에 비하여 '돈'이 된다. 지금 당장은.
그렇지만, 아이를 차근차근 공부시켜 일꾼을 만든다면 지금 버는 돈쯤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데... 남의 돈으로 부자가 된 나라들은 개발도상국을 진규처럼 <한창 자라는 청소년>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개도국들은 이미 다 자란 <난쟁이>일 수도 있다. 아니, 그러기가 더 쉽다.

신자유주의 광풍은 교육 시장에까지 밀어 닥치고, 인수위원장이란 할머니 한마리가 지껄인 '사견'에 이 땅의 '공교육(사실, 별로 공적인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지만)'에 일파만파를 불러 일으킨다.
미국도 앞장서지 않는 FTA를 국회에서 빨리 비준해야 한다고 발광들이고, 또 혼란스런 틈을 타서 유럽과의 자유무역을 준비하고 있다.

사마리아인들은 '이교도'를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은 곤경에 빠진 이들을 구하기는 커녕 이용하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나쁜 사람들로 쓰인다.
그렇지만, 성경에는 노상강도에게 약탈당하는 한 남자가 '착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받는 사건이 등장한다. 이교도지만 착한 사마리아인도 있다는 것인데, 이 책에선 착한 사마리아인이 아님을 명백히 하려는 강한 의지로 나쁜 사마리아인이란 강조점을 찍었을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역사를 통해 모든 부자 나라들이 자국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보호, 보조금, 규제 정책을 혼합하여 사용한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그렇게 <사다리 올라가기>에 성공한 것이다.

그들이 이제 개도국에게 <신자유주의>의 자유 무역을 들이대는 일은 정말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자유' 무역 정책은 역설적으로 그 정책을 실행에 옮기는 개도국의 '자유'를 축소시키는 것(120)임을 그는 분명히 보여준다.

'평평한 경기장'에서 '자유'로이 경쟁하자는 아름다운 조건에 왜 저자는 반대하는가. 특히 불평등이 심화되는 분야가 <특허를 비롯한 다양한 지적 소유권의 보호를 강화하는 무역 관력 지적소유권 협정>이다. 미국이나 영국의 대학에서 발간되는 저서와 한국에서 발단되는 저서, 아주 작은 못사는 나라에서 발간되는 저서가 가진 '포스'가 같지 않음은 당연한 일 아닌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고, 이수근과 최홍만의 '자유 경쟁'임에랴.

잘사는 나라에서 보자면 못사는 나라 사람들이 '게으르거나 느린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문화도 변화한다. 조선의 팔자 걸음이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경제 개발의 파시즘 아래서 '빨리빨리' 민족으로 그 문화를 바꾼 사례도 있지 않은가. 문화는 그 나라의 경제적 성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경제적 성과가 문화를 바꾸기도 하는 것이다.

몇몇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한 나라의 경제적 성공이나 실패를 문화의 측면에서 설명하지만, 이것은 가능하지도 유용한 일도 아니다.(306)

못사는 나라들은 게을러서 산업이 낙후된 것이 아니다. 잘 사는 나라들이 결코 그들의 산업이 발전되도록 도와주지도 이끌어주지도 않는 것이 그 이유이고, 잘사는 나라들은 사다리를 걷어찬 후에 올라오라고, 그러려면 프리 트레이드를 해야 한다고 썩은 동앗줄을 드리운다.

강호동의 스타킹을 가끔 보는데, 재미있는 재주꾼들이 나오면 패널들이 한번씩 따라한다. 대부분 실패하지만 간혹 성공하는 경우가 있어 재미를 더한다. 그렇지만 대부분 심하게 위험한 경우 붉은 경고문이 뜬다. <절대 따라하지 마시오.> 이런 것을 장하준은 '집에서 해볼 필요'라고 이야기한다. 사다리를 걷어찬 넘들을 부러워하기만 할 게 아니라, 집에서 자꾸 해 봐야 스타킹에 나간다는 것.

물론 브라질, 인도, 차이나, 러시아의 브릭스 그룹처럼 맹렬하게 달려오는 국가들이 있지만, 저자의 시나리오를 보면 그들도 사다리를 걷어채이는 일에 처하게 될 거라고 한다.

개도국에게는 <기울어진 경기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태도를 바꿀까? 저자는 바꾸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결론을 짓는다. 설득하기 어려운 이데올로그까지도 케인즈처럼 <사실이 바뀌면 생각을 바꾸는> 일이 생기기를 기대한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큰 이익을 얻어서가 아니라 가장 쉬운 일이어서 저질렀던 일들은, 균형잡힌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할 때 나쁜 사마리아인들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임을 그는 기대한다는 것이다.

아, 민족이니 뭐니 하는 걸 웃기게 생각하려 하다가도, 이런 멋진 사람과 같은 민족이고 같은 나라 사람이고, 같은 말을 쓰는 사람이라는데 행복할 때도 있다. 월드컵 축구공 만드는 파키스탄의 어린이 노동을 비판하다가도, 축구는 재미있게 보는 것처럼...

장하준, 그의 글은 쉬우면서도 명쾌하고 쌈박하면서도 논리적으로 단단하다. 그가 영어로 글을 쓰는 이유를 알겠다. 고맙습니다. 장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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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1-29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하준 교수의 '신자유주의비판'에는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그렇다면 글샘님은 그의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삼성이 뉴스를 수놓고 있고 금산분리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라..좀 그렇긴 하지만.

글샘 2008-01-30 01:32   좋아요 0 | URL
박통의 경제 개발이 '성공'한 부분이 있는 것은 분명하죠.
그 부작용으로 재벌이 이만큼이나 횡포를 부리게 된 거구요.
한국의 독특한 경제 양식인 재벌과 사회적으로 대타협을 벌여 나갈 수 있을는지는... 글쎄, 좀 회의적이죠.
재벌이란 문어는 식탐만 있을 뿐, 양식은 없는 넘이고,
정치가란 넘들도 국익이란 이름으로 가진 자의 단기적 이익만을 귀히 여기는 세상이라...
IMF 이후로 '인간'이란 존재의 가치가 갈수록 무시되고 있는데, 재벌을 사회적으로 제약하거나 스스로 반성하게 만드는 일은 멀고도 먼 일로 생각합니다.

혜덕화 2008-01-29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입니다. 모르고 사는 것이 너무 많구나, 새삼 느끼면서.....

글샘 2008-01-30 01:33   좋아요 0 | URL
저도 경제학 같은 분야는 워낙 밑바닥이라죠. ^^ 공부하는 맘으로 읽는 거죠. 그래도 장하준 선생은 워낙 비유와 사례 제시가 출중하여... 읽는 이에게 큰 도움을 줍니다.

바람돌이 2008-01-30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하준씨 책이 요즘 진짜 많이 나오던데 한번쯤은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들게 하네요.

글샘 2008-01-30 15:30   좋아요 0 | URL
이책은 부분부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글 참 잘 쓰더군요.

2008-01-30 0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30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8-12-29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글샘님..ㅎㅎ
허접한 이벤트에 참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네요.ㅎㅎ
글샘님께서 추천해 주신 시비돌이님의 리뷰가 2007년 10월 8일 작성된 것으로
애초에 정했던 2008년 1월 1일~12월 30일까지 작성된 리뷰를 대상으로 한다는 규정에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송구스럽지만, 다른 리뷰를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ㅎㅎ
 
다른 세상의 아이들 - 세계화 시대의 야만, 어린이 노동
제레미 시브룩 지음, 김윤창 옮김 / 산눈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이렇게 물으면, 우문인가?
그렇지만, 이런 대답도 있다. 당근, 꼭 필요하다.

70년대 한국을 일으킨 사람들은 어린이들이었다.
10대 소녀들의 농촌 교실에 사장님들이 들어간다.
고등학교 공부시켜주고 월급 줄테니 우리 공장으로 오라고...
어린 소녀들은 바로 서울 구로공단으로, 마산 수출자유지역으로, 부산의 신발 공장으로 밤봇짐을 쌌다. 그리고 남동생 하나쯤 대학 공부 시키는 걸 삶의 희망으로 삼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것들도 모두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행복한 꿈이었다고나 할까.

지금 중국의 소년 소녀들이 그렇지 않을까?
중국을 여행하던 때, 발 마사지를 무료로 받을 기회가 있었다.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까지의 청소년들이 모두 이성 성인의 발을 정성스레 마사지 해 주었다. 한 푼의 대가도 없이. 물론 곰이 부린 재주로 뗏놈이 발에 좋다는 약을 팔았음은 당연지사다.

한국에 멀리멀리 노동력을 팔러 온 노동자들은 그래도 행복한 축인지도 모른다. 제 나라에서 희망도 없이 하루 몇 백원을 받으며 축구공을 꿰매고 돌가루 펄펄 날리는 채석장에서 돌이나 깨고 있는 아이들에 비하면... 꽤나 배운 이들이 이주 노동자라도 할 수 있다.

19세기 영국의 어린이 노동은 지역을 옮겨 가면서 아직도 성행하고 있다.
그 어린이들의 손으로 이룩한 부는 대부분 선진국의 아가리로 들어가고 있다.

수입된 후 9년 넘게 생존하는 노예는 거의 없었다... 노예무역상의 이야기.
20세기 초, 코카콜라 초대 회장의 이야기는... 어린이 노동은 지구상의 어느 나라에든 최상의 성공을 안겨준다. 실제로 보다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한 소년일수록, 그의 삶은 더욱 아름답고 유용해 진다. 아이구, 그렇구나.

많은 피고용 어린이들의 노동이 가정과 국가에 도움을 준다는 주장들이 있다. 그리고 국가가 잘 살게 되면 어린이 노동은 사라진다는 주장도 한다.
일면 옳아보이는 이런 논리들은 글로벌 시대의 노동 순환을 무시하고 지껄이는 소리다. 한편의 국가가 조금 잘 살게 되면서 어린이들의 노동 대신에 학습과 소비를 조장하는 반면, 또 다른 국가에서는 마찬가지 일들을 마찬가지 아동들이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십자군 전쟁부터 세계 대전까지 모두 어린이들이 치른 전쟁이다. 참전 군인들은 3,40대 성인이 아니라,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의 청소년들이었던 것은 크게 외쳐지지 않는 진실이다. 당장 지난 몇 년간 이라크에서 죽어간 미국의 군인들도 20대 초반의 아이들일 것은 불문가지다.

한번 감옥에 들어가면 그곳이 자신들의 생활환경보다 훨씬 더 편안하다는 사실을 알고 그곳에 되돌아가기를 반복하는 사람이 있다는 현실은 생지옥이 아닐까?

피파에서 15만원짜리 피버노바에 어린이 노동은 없다고 하던 뻥이 있었지만, 진실은 아이들의 작은 손가락이 축구공 꿰매기에 더 적합하다는 것으로 밝혀졌던 일도 있다.

아, 노년을 가난한 나라에가서 편안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 이야기 중에, 그 나라 아이들을 가정부로 몇 명을 써도 한 달에 몇 백원만 주면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욕심을 재생산하는 욕망의 자본주의 구조가 팽창하는 한, 어린이와 노인까지 노동 구조는 더욱 고도화 될 것이고, 자본이 살찌고 노동자는 피폐해지는 고용 구조도 더욱 심화될 것이다.

미국도 대선 후보들이 한미 FTA에 부정적이라는데, 한나라당은 빨리 국회에서 비준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이건 숫제 친미 정권이 아닌, 골수 미국 정권이 아닌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서 미국으로 성큼 걸어가고 싶은 욕망이 부글부글 용천을 하는 나날이다. 어린이 노동이 한국에선 많이 사라졌지만, 세계는 좁고 나비는 많다. 방글라데시의 돌깨는 아이의 눈물이 한반도에서 폭우가 되어 쏟아지기도 할 나비효과를 곰곰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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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1-23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문제지만...글샘님은 점점 더 한 숨만 깊어지시네요...한숨 또 한숨...
희망을 가지세요 ^^ ...저 아이들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글샘님이 희망을 갖지 않으신다면 곤란하겠지요.욕망의 자본주의를 인정하시구요..^^ 그 곳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욕망을 추구하라는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존재 토대를 헛되게 부정하지 말고 직시하자는게 제 생각입니다.화이팅!!

글샘 2008-01-24 23:12   좋아요 0 | URL
글쎄요. 희망을 이야기하긴 힘들 것 같구요. ^^
근원이 욕망의 자본주의인 것은 맞는데, 그 욕망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을 실현시킬 방안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일' 뿐이라서 좀 민망하죠.
아이들과 교실에서 함께 희망을 찾아봐야겠습니다.
꽃피는 봄이 오면...
 
카불의 책장수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지음, 권민정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밀착 취재란 면에서 '르뽀 문학'에 가깝다. 그런데 작가의 글을 읽노라면 그 문체가 여느 소설 못지않게 매끄럽다.

전쟁 기록가인 작가가 아프간에서 우연히 중산층인 책장수 술탄 칸을 만난다.
그리고 그의 가정에 들어가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걸 각자의 시점에서 재구성한 이야기다.

특히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아프간 여성들의 삶은 지난 역사에서나 현재의 역사에서나 불편하고 막막하다.

삼십 여년의 전쟁으로 팍팍한 사막으로 변해버린 나라.
그 먼지날리는 삶 속에서도 사랑이 싹트고 꿈이 일렁거린다.
그렇지만 레일라의 삶에 대한 막막하지만 새싹처럼 움트는 희망이 이뤄지기를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그녀는 교착 상태에 빠져있다. 사회라는 진흙과 전통이라는 먼지가 만든 교착 상태. 수백 년 된 전통에 뿌리내린 체계 속에서, 그리고 인구의 절반을 불구로 만드는 체계 속에서 그녀는 옴짝달싹 하지 못한다. 교육부는 30분 거리에 있다. 도저히 갈 수 없는 30분. 레일라는 무언가를 위해 투쟁하는 일에 익숙지 않다. 오히려 포기하는 일에 익숙하다. 하지만 틀림없이 어딘가에 탈출구가 있다. 그녀는 그것을 찾아야만 한다." 레일라가 그 길을 찾아 가기를...

그들의 오랜 전통으로 알려진 '부르카'에 대해서 새로운 것을 알았다.
"한 세기 전의 아프간 여성들은 부르카 따위를 본 적도 없다는 사실을 아는 이도 거의 없었다. 부르카가 도입된 시기는 1901년부터 1919년까지 하비불라 국왕의 후궁 200명에게 부르카를 쓰도록 명했다는 것." 부르카는 이렇게 민중의 시선에서 상류층 여인을 감추는 상류층만의 의상이 되었고,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상류층 여성들이 부르카를 벗어 던질 때, 하녀나 가정부들은 안주인의 부르카를 주워서 쓰게 된다. 비극의 악순환.
중국의 전족도 이렇게 해서 온 나라를 뒤덮었다고 하더니만...

남성 중심의 사고 방식이 온 나라를 뒤덮은 나라. 마치 2,30년 전의 한국 사회를 보는 듯 하다. 그 당시 축첩하는 남성들도 많았다 하니 과연 비슷할 만도 한 것인지...

소련군과 미군의 개입과 무자헤딘과 탈레반의 점령 등으로 오락가락하는 속에서 전쟁의 포화 아래 아프간의 먼지는 잠잘 날 없었다.

샘물 교회에서 좀더 생명수를 뿌리고 왔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멘...
세계 최극빈국, 최고의 유아사망률, 문맹률, 최대아편 수출국... 가난과 전쟁의 나라가 그 붉고 탐스런 양귀비 꽃밭처럼 희망의 꽃을 피울 날이 꼭 오기를 바란다.

Mogozarad! 카불의 어느 찻집 벽에 쓰인 낙서에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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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사람들 - 하종강이 만난 진짜 노동자
하종강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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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2004년까지 한겨레 21에 하종강이 실은 인터뷰를 모은 책이다.

그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진짜 '운동'하는 사람들이다. 주역이 아니면서도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는 아름다우면서도 슬프다.

자기 자리에서 꾸준히 일하는 사람들. 자기를 위해 맹목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이 사회의 모순을 조금이라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하종강이 적고 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렇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많은 사람을 감옥에서 괴롭힌 '장기수 배출 최우수국'이다. 이 책에 실린 강용주 같은 분들은 '계속 온 몸으로 말해오고 있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민노총의 멋진 총각 한혁씨 이야기에서
돈이건 내 몸뚱이건, 능력이건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 모든 것은 이 더러운 자본가 세상을 뒤엎기 위한 투쟁에 쓰여야 할 소중한 혁명의 자산이며, 혁명이 내게 잠시 관리를 위탁한 것이다...는 말을 읽으면서, 이런 사람도 있어 세상은 완전히 썩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단지 몇 명의 학생들에게 희망을 걸고, 계속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할 수 있는 훌륭한 교사가 될 자신이 없더라고, 그렇게 참교육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계속 해야지. 그렇지만 나는 도저히 자신이 서질 않는거야. 이게 도대체 수업인가 싶은 생각만 들고... 자신이 없으면서도 적당히 수업을 하면 월급은 꼬박꼬박 받을 수 있지. 그렇지만 그것은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더라고..."
이렇게 교단을 떠나서 버스 운전을 하는 이병식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다. 수업 듣기를 원하지 않는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하는 것보다, 버스 기사는 최소한 사기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는 양심가. 그에 비하자면 나는 얼마나 양심불량인지...

80년대의 열악한 운동 상황과 연관지어 황정란씨의 일갈을 매섭다.
본인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으면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하겠다는 좋은 뜻으로 들어왔던 젊은 실무자들이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옳은 게 아니라는...

이 다음에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이 되어야지요.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모르지만, 꼭 해야하는 일...이라는 풀꽃 세상의 정상명의 이야기는 옳고, 또 옳다.

남들이 보면 대단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자신은 결코 대단하지도 않고 투철한 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며, "그냥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겸손한 사람들...을 하종강은 많이도 만난다. 풀무학교 정민철에서 나온 이야기.

간호사 김용금 이야기에서 "어느 시인이 그랬지요. 짐이 무거워 투정을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짐때문에 자기가 바르게 중심을 잡으며 걷고 있더라고... 노동조합은 내 인생에 그런 의미"라는 이야기엔 뼈가 있다.

협박으로 정신병에 걸린 권기한씨가 그 고통을 이겨낸 단 한마디는 이 책의 모든 인터뷰의 골간을 꿴다.
"내가 하는 일은 잘못이 아니라, 잘못을 뜯어 고치는 일이니까요.
동지들을 두고 떠나는 것, 그것이 나에겐 더욱 힘든 일이에요."

이 어두운 사회가 그나마 이만큼 환해 진 것은 이런 빛과 소금같은 분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겉만 보고 썩은 내 진동한다고 코를 돌릴 것이 아니라, 내가 소금으로 녹아 들어야 할 자리에서 도망가지 않는 용기를 내어야 함을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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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1-13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서 미루고 또 미루는 책인데요.

글샘 2008-01-14 12:46   좋아요 0 | URL
부끄럽죠. 많이 부끄럽죠.
그래서 매일 성경 읽듯 뭔가 읽어얄 것 같네요.

순오기 2008-01-18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놓고 펼치지 못하는 책이에요.
글샘님 말씀처럼 읽어야 할 것 같군요. 섬김이 뭔지 제대로 배우려면... 감사합니다!
 
만남 - 서경식 김상봉 대담
서경식, 김상봉 지음 / 돌베개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철학자 김상봉과 디아스포라 서경식의 만남이 이뤄졌다.

김상봉은 서로 주체성이란 개념을 이야기한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주체적인 존재이면서 영향을 미치는 사회를 바라는 뜻인 듯 하다.

서경식은 일본 내의 타자이면서, 한국내에서도 '우리'에 들지 못한 삶을 이야기한다.

'우리 나라'는 왜 지금 여기에 와 있는가...
한국 내의 수많은 '그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한국의 '우리'는 누구이며 '그들'은 누구인가...

질문과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계속 되지만,
김상봉의 5.18 이야기는 심정적으로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으로 한계를 노정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과연 한국 사회가 5월과 6월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언론이 툭하면 '폭력'으로 몰아붙이는 그 '정신'이 다시 분출되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고통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함석헌의 '뜻'과 '씨알'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뜻'은 의미 meaning 에 부가적으로 의지 will의 의미가 들어있다.
씨알은 민중에 비하여 훨씬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단어다. 민중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모자란 존재처럼 보이는 반면, 씨알은 가능성의 총합이고 힘을 내정한 존재로 읽혔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변혁을 주도하던 사람들은 이미 가진자의 편에 서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국가보안법 철폐나 탄핵 반대, 파병 반대, FTA 반대 등에 힘을 모을 수 있던 사람들의 세력이 너무도 미약한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지 두렵기도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생각 많은 사람들'의 뜻대로 굴러가는 것이 아님을 생각하면서 다시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김상봉이 말미에서 이야기한 '고통에 대한 경악과 절망에서 시작하는 철학'만이 인간의 편에서 존재를 생각하게 한다.

이런 철학적 대담을 나누기에 서경식 일가만한 슬픔을 가진 이들도 드물지 않을까. 디아스포라로서 '한국'이란 국적을 가지고 '일본땅'에 살면서 '한국 학교'에서 간첩으로 잡혀 20년 가까운 기간을 형제가 감옥살이를 한 그런 지겨운 일가의 비극을...

서준식 씨가 유럽으로 훌쩍 가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내심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가끔 홍세화씨의 강연 모습을 보면, 그도 빠리의 택시 운전사 시절을 그리는 꿈을 꾸지 않을까...하는 몽상도 해 본적이 있다.

서경식 씨의 고통에 대한 천착이 김상봉과 어울려 한국 사회의 지금을 읽어주는 대담은 <가슴 답답한 한국인>들이 반드시 어울려 들어야 할 이야기다.

가슴 답답함에서 온 슬픔은 치료되는 것이 아니다.
그 슬픔은 낯을 찡그리고 피부를 상하게 하지만, 그 고통에 대한 인식에서 김상봉이 이야기하는 <서로 주체성>을 회복하게 할 것임도 자명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세상이 하루하루 밝아오는데,
학벌사회, 자본신권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일은 무섭기만 한데,
섬진강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는 덩치 큰 서경식 선생님과 깐깐한 몸매의 김상봉 선생님의 따로 또 같이 걷는 걸음이 '우리' 안에 있음에 낮게 한숨을 쉰다.

섬진강가 그 찻집에, 나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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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1-1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너무 밝은 면만 보시네요.글샘님답게..신자유주의도 어둡고 학벌사회도 어두운데 우문인가요?

만약 '타자'가 지옥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옥만은 아니겠지만..)만약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을숙도 하구언처럼 이미 '나'와 '타자'가 도대체 구분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르한 파묵의 <하얀성>의 주인공들처럼..
재미있는것은 이미 "우리"의 정체성이라는 '집단'의 정체성이 또다른 '집단'의 정체성을 만나는 제목이네요.

글샘 2008-01-12 19:24   좋아요 0 | URL
현답을 듣기 어려운 시대이니 우문일 밖에요... ㅠㅜ
서경식 선생님을 모신 이유가 바로 그 '우리'아닌 '우리', 한국인 아닌 한국인의 경계선을 철학적으로 논해보려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밝은 걸 봤나요? 요즘 밝은 게 도통 안 보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