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세계 - 사회적 기업가들과 새로운 사상의 힘
데이비드 본스타인 지음, 나경수 외 옮김 / 지식공작소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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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섹터, 시민섹터, 독립섹터, 비영리 섹터... 사회적 기업가란 흐름을 일컫는 말이다.
정부가 제1섹터, 민간기업이 제2섹터, 비정부기구나 비영리기구가 제3섹터에 대응하는 말이다.

企業家는 enterpriser, business man인데 이윤을 위해 비즈니스 기업을 움직이는 사람이다.
여기서 말하는 起業家는 영어로 entrepreneur이고 사업아이템을 만들어 사업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쓰는 말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돈이 안 될 것 같은 사회적인 사업을 벌이지만, 분명히 거기서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엄청난 이윤들은 기업가에게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발전을 이끌고 있는 것들이다. 20세기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의 유령'을 만났다면, 21세기의 자본주의는 '사회적 기업가'에게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다.

미국처럼 영원할 것처럼 보이던 군산복합체도 한순간 휘청거리는 것이 이 시대라면,
사회적 기업가처럼 수많은 예비군을 가진 기업체야말로 미래의 기업이라 할 수 있다.

빈곤층을 위한 사업들이 점차 확산되어 기업이 되는 기업가. 아, 얼마나 멋진 일인가...
"무엇을 하든, 무엇을 꿈꾸든, 지금 시작하라.
대담함은 그 자체로 비범함과 힘과 마법을 가졌다. 지금 시작하라." 괴테의 글귀란다.

진학의 기회가 없는 유색인종 아이들에게 진학의 기회를 만들어 주는 교사.
"우리 지도가 없다면 그 학생은 주차요원 같은 것을 할 겁니다. 주차요원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 학생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겠지요..."
아, 그들이야말로 기업으로 혁명하는 사람들이 아닌지...
현대 사회에서 젊은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자신감, 정보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그룹에서 일하기 위한 감수성이 필요(233)하다. 그걸 가르쳐야 하는데, 우리 학교는 뭘 하고 있는지...

사회적 기업가의 가장 큰 특징은 이들이 인간의 행동에 대해 현실적인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317)
그렇다. 제3 섹터의 일들은 상당부분 이상적이고 이론적이고 탁상공론이기 쉽다.
여기서 제4섹터의 존재 이유가 발생한다.
그들은 장애인이 외면당하는 현실, 에이즈 환자가 당장 1,2달러가 없어서 죽어가는 '현실'에 대응하기 위하여 뛰어다니는 기업가들인 것인데, 그래서 그들은 쉽게 지치지도 않고 정부와 맞대결 양상을 보이지만은 않는다. 많은 경우 정부가 비협조적이지만 결국 동의하기도 하는 것이다.
"장애 자체는 저주가 아니죠. 진짜 저주는 장애인들이 장애 때문에 다른 수천수만 가지 일을 못하게 되는 상황입니다."(327)

빌 드레이튼은 아쇼카 재단에서 펠로들을 찾아내서 도움을 준다.
펠로들을 찾아낸다는 말은 그만큼 세상에 펠로가 될 만한 사회적 기업가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아쇼카 펠로처럼 "지원"을 하는 것은 소중한 의미가 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총,균,쇠의 저자)는 '아이디어의 유포, 혹은 난반사'가 가장 지식을 전달하는 비효율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겨우 아이디어 정도를 물려받아서 세부사항을 다시 만들어야할 때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지식 전달의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청사진 카피하기다.
청사진을 그저 카피하거나 적용 가능한 세부사항만 조금 변경하여 사용하기 말이다.
아쇼카 펠로는 그런 역할을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빌 드레이튼은 아이디어와 조직 구성의 놀라운 건축가죠.
우리들은 그저 파편이나 조각만 보는데,
빌은 유형시너지를 찾아내요.
그리고 빌은 사람이 행동하도록 동기화하는 법을 즉각 압니다."
이것이 아쇼카 재단의 힘이고, 의미다. 사회적 기업가들의 힘인 것이다.

사회적 기업가는 이 세상의 개혁에 불을 붙이는 데 필요하며 그들만이 사회의 심각한 질병들을 퇴치하는 묘약과 같은 존재라고 아쇼카는 말한다.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 의욕을 가진, 독창적이면서 참을성이 강한 존재들이다.(409)

여성 권리의 불충분함, 환경의 파괴, 빈곤, 인종 문제, 질병과 전쟁...
이런 것들의 만연함이 지구를 뒤덮고 있기에 사회적 기업가의 일은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이 땅에서도 농촌 문제, 환경 문제, 교육 문제, 빈곤 문제, 노인 문제, 장애인 문제 등에 대한 사회적 기업가들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가.
지구가 망하지 않는 길은 제4섹터의 거품이 21세기에 붐을 이루는 길뿐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보내주신 지식공작소에 감사드린다.(내가 받은 책은 정오표가 붙은, 조금은 어수선한 책인데, 439쪽의 2007년에 일어난 9.11 테러는 바로잡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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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간의 평화수업 - 소년원에서 명문대학 로스쿨까지, 감동적인 교실 이야기
콜먼 맥카시 지음, 이철우 옮김 / 책으로여는세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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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온통 폭력이 난무하는 곳이다.
이 땅도 마찬가지다.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폭력이다.
평화는 어디로 간 게 아니라, 이 땅에 평화는 있었던 적이 별로 없다.
참여 정권이 민주주의를 앞당겼다고 착각하는 이들은 대추리의 폭력을 잊은 게다.
이라크에 군인들을 보낸 정부가 바로 '전쟁 참여 정부'였다.

평화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으로 소년원에서 로스쿨까지 다니면서 평화를 강의한 저자.

간디와 톨스토이의 평화부터,
온갖 평화주의자들의 이야기를 아이들과 나눈다.
처음엔 강하게 반발하던 아이들도 세상의 폭력성에 금세 수긍하고, 평화를 위한 발걸음에 동참한다.

74쪽의 목록은 참 무서웠다.

1945-46 중국
1950-53 한국
1950-53 중국
1954 과테말라
1958 인도네시아
1959-60 쿠바
1960 과테말라
1964 콩고
1965 페루
1964-73 라오스
1961-73 베트남
1969-70 캄보디아
1967-69 과테말라
1983 그라나다
1986 리비아
1980 엘살바도르
1980 나카라과
1989 파나마
1991-99 이라크
1998 수단
1998 아프가니스탄
1999 유고슬라비아

여기까지만 적혔지만, 2001년의 파키스탄과 이라크 침공은 여기 없다.
위의 나라들 가운데 미국이 참전한 직접적인 결과로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고 인권 상황이 좋아진 나라는 몇 개일까요?

1. 0개
2. 없다.
3. 하나도 없다.
4. 전혀 없다.
5. -1과 1 사이의 정수

단순한 지식 전달, 기계적으로 외우기, 그리고 그 외운 지식을 뱉어내는 방식으로는 제대로 배울 수가 없다.
진정한 배움은 진리를 억지로 집어넣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스스로 찾아낼 때 이루어진다. 촘스키...

학교에서 내가 하는 것이 이것이다. 단순한 지식을 기계적으로 외우기...
진리를 토론하고 나누는 경험을 갖도록 하지 못하는 나의 한계란...
고3 교실에선 숨막힌 문제풀이의 쳇바퀴를 벗어나기 어렵다.
더구나 평화를 논하는 것조차 혼자 몇마디 되뇔 뿐...

의미있는 배움을 평가하기 위해 성적을 따져보는 것은
마치 집이 얼마나 튼튼한지 알아보기 위해 페인트 칠 상태를 살펴보는 것과 같다.(141)

역사에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폭정에 맞선 사례가 많다.
파업, 불매운동, 선전, 여러 독창적 투쟁...(195)
다른 나라, 같은 이상(196)... 이것이야말로 평화의 구호다.

영속적인 평화를 세우는 것이 교육의 몫이다.
정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우리를 전쟁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몬테소리...

촛불 정국에서 이길준 의경 생각이 난다.
군대, 그것도 전투경찰이란 정권의 시녀 집단에서 평화로운 집회의 탄압을 거부했던 청년.
그가 어제 3년 징역을 구형받았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그를 민주주의를 해친다는 언질로 구형한 법원은 이미 죽었다.

강의석도 생각난다.
미친 정부 들어서, 되살아난 전투의 망령이 테헤란로에 전차를 굴러가게 할 때,
그 앞에 맨몸으로 탱크를 세운 청년.
과연 전차가 위험한 걸까, 강의석이 위험한 걸까?

평화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강의석과 이길준을 욕한다.
그것이 바로 폭력이다. 평화를 적극적으로 가르치지 않는 일은,
평화를 방기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가르치는 일에 동조하는 "지름길"에 서 있는 것이다.

이길준 의경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카페에 들어가서 오랜만에 글을 남겼다.
그에게 면회갈 때, 메시지를 인쇄해서 들어간단다.
혹,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아래 카페에 들어가서 힘을 주는 글을 남겨 주시길...

http://cafe.daum.net/resistjun

"이길준과 함께하는 저항" 카페... 응원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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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 - 21세기를 사는 지혜 인터뷰 특강 시리즈 5
김용철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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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가을을 우울하다.
아이들 입시도우미로 상담하느라 바쁜데, 그 일이 아이들 미래에 희망을 주는 게 아니어서 우울하고,
연구학교를 맡아 이제 일덩어리에 시달리느라 매일 지쳐서 우울하고,
뭣하나 즐거운 뉴스가 없어 우울한데, 5년만에 탱크는 큰길을 활보하고,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서 우울하다.
최진실까지 자살한 세상은 온통 우울하다.
부와 명예까지 거머쥔 미녀가 자살하도록 세상은 우울한 모양이다.

인문학 파티가 열리는 한겨레 신문사.
이번 파티엔 명사들이 총출동했다.
김용철 변호사, 진중권 교수, 정혜신 교수, 정태인 박사, 조국 교수

주제까지도 절묘하다. 배신.
사람들은 이명박이 국민을 배신했다고들 하는데, 나는 전혀 그에게서 배신감을 느끼지 않는다.
분노한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엉뚱하고 멍청해서 화가 난 것이다.
황우석에게서 배신감을 느꼈던 사람들만큼이나 이명박에게서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듯 한데, 그는 누구도 배신하지 않았다고 본다.

오히려 내가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노무현이고, 진보적 인사들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배신을 때린 것은 교과서들이었다.

한때 법조인을 생각하기도 했던 나는 고딩때 정치경제 교과서와 국사 교과서를 달달 외었더랬다.
그랬는데, 대학에 가고 보니... 그게 다 거짓말 투성이고 억지더만.
사회는 정치경제 교과서랑은 완전 딴판으로 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배신감이란... 아직도 모골이 송연하다.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그런 사회는 결코 건강한 미래를 보장받지 못한다.

전태일이 죽던 시절에 사회책에는 노동 3권이 실려 있었고,
이한열이 죽던 시절에도 교과서에는 언론 집회의 자유가 실려 있었다.

애인의 배신에서 역사의 배신까지...
배신이란 주제는 2008년 촛불 정국에 어울리는 주제인 듯 하면서도,
이 국민은 아직 배신이 뭔지 모르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배신한 사람은 배신했다는 죄책감을 갖지 않을 것인데,
그리고 자기합리화를 통하여 잘도 살고있을 것인데,
배신당했다고 억울해하는 사람은 원망만 하며 눈물흘릴 일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배신으로 점철된 역사였다.
박사라고 일컬어지는 초대 싸이코부터 그다음 독재자, 군바리들까지... 정치권은 오로지 돈을 좇아 헤매는 불나비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그 미친갱이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 이 땅값비싼 한반도일 따름이다.

돈이 되는 곳이라면 교회도 있다. 예수를 팔아 돈을 벌어들인 유다같은 먹사들.
그나마 배신을 주제로 인문학 파티를 벌이는 곳이 있고, 그곳이 목마른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데 희망을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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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0-05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네요 글샘님, 여전히 바쁘시고 힘들고 우울한 나날이라니~~ ㅜㅜ
대학에 가서야 비로소 세상이 교과서와 다르게 돌아간다는 걸 제대로 알게 되죠.
생각보다 훨씬 더 멍청하고 엉뚱한~~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그래도 희망을 걸어볼 곳이 있으니 다행이지요.

바람돌이 2008-10-05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랜만이에요. 많이 바쁘신가봐요. 연구학교 발표가 대개 이즈음에 몰려있죠? 저희는 11월... 그래도 저희는 하는게 힘들었지 발표준비는 뭐 그리 어려운게 아니라서 좀 낫습니다. ㅎㅎ 교과서에 대한 배신감 정말 지독했죠? 세상에 대한 믿음이 확 없어져버리는...

BRINY 2008-10-06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좀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그런 시기가 올 거 같아서 답답합니다.
 
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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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석의 만화다.
자기 가족들을 인터뷰한 뒤,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꼭지들을 그린 책이다.

대한민국에서 살고있다는 것은...
지독한 과거를 잊어버린 체 하고 살고 있다는 것이고,
그 과거보다 더 지독한 현실에서 고개를 돌리며 살고 있다는 것이고,
빛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애써 눈감으며 살고 있다는 것임을 그는 애써 보여주려 한다.

불과 30년 전, 한국의 초등학교 교실에선 '도시락 검사'가 행해졌다.
쌀밥만 싸온 아이는 선생님한테 혼나기 일쑤였는데, 보리밥을 싸올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서 그 아이들은 보리쌀을 빌려다가 쌀밥 위에 박기도 했다. 선생님은 모른체 넘어갔다.
그리고 한 열댓 명의 아이들을 졸졸 꽁무니에 달고 선생님은 가정방문이란 걸 다녔다.
이층 양옥에 사는 아이의 집에 가면 제법 오래 머물었고,
우리가 마당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는 집에서는 금세 나오곤 했다.

이 당시의 아버지, 어머니, 이웃 사람들, 우리 형제들에 대한 기억은...
애써 잊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내 기억에서도 까마득히 멀다.
가뭇없이 사라져가 버린,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그 사람들을 최규석은 '원주민'이란 적실한 말로 표현한다.

어메리컨 원주민은 각기 다른 '언어'와 '풍습'을 가진 종족이었지만, '인디언'이란 한마디로 통폐합되면서 잊혀져갔다. 어디에나 있던 원주민은 어디에도 없는 존재, 아니 존재의 부정을 겪고 말았다.

한국의 전통, 도 그렇게 단절되어 갔다.
전통적인 농촌의 짚풀 문화를 이어오던 사람들은,
60년대 산업화 도시화의 바람 속에서, 짚검불 날리듯 허무하게 삶의 뿌리를 날려버리고,
가난한 사랑 노래 읊조리며 슬피 고개 숙이는 도시인이 되고 말았다.
대가족 제도는 세계 1위의 출산율 저하국으로 발전(?)하였다.
아직도 코리아하면 ????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 작은 나라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열 개 넘게 따는 겉보기 등급은 제법 높은 사회임을 자랑한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 안에는 세계 10위를 자랑하는 국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니 영원히 따라갈 수 없는 '원주민들'이 가득하다.

그 원주민들은 어디나 가득한데도...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주말 연속극에는 늘 전문직 여성이 나오고, 재벌들의 사랑 놀음이 등장한다.
밥은 먹고 살지만... 아직 세계 10위의 '풍요로움'은 당신들의 천국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

행복은...
가난하다고 적은 것은 아니었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행복이 저절로 키를 낮추어 찾아든다.
부유한 이들에게 행복은 키높이 구두를 신고 비죽이 고개를 들이밀어, 로또의 장대 높이뛰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것.

최규석의 원주민 들여다보기는, 자기 가족의 미세사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리얼리즘'의 승리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이데올로기를 '거시적'으로 들여다보는,
그래서 전형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만화에 비하여
'미시적인 삶'을 그대로 '리얼'하고 드러내 보여주는
이런 만화들이 심금을 징~~~~~~허게 울린다.

그의 만화를 보면서 금발의 미녀가 표지에 찍힌 레코드 판 표지도 떠올랐고,
가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했던, 부모님과 누나, 나의 옛날도 떠올랐다.
책상도 하나 없이 재봉틀 위에서 공부하면서도 '밥상'에서 공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좀더' 행복했던 나의 키낮았던 어린 시절이...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다람쥐 쫓던... 전형적인 농촌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지닌 60대들에 비하자면,
도시의 골목길에서 전쟁 놀이를 하고, 술래잡기, 학교 놀이를 하며 딱지치기를 하고, 골목길을 돌아돌아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외등도 없던 컴컴한 소년기를 지닌 40대들은 추억의 노스탤지어가 더 적을지도 모르겠다.

아, 어쩌면, 방학인데도 학원에서 학원으로 뺑뺑이를 쳐야하는 요즘의 초등학생들은, 어른이 되고 노년을 맞아도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란 애초에 '노란 봉고차' 외엔 가지지 못하게 만드는 몹쓸 사회에 우리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원주민들의 언어도, 삶의 지혜도 모두 잊어버린 채...
노란 봉고차를 서너 번 갈아타며 하루를 잊어가는 어린 '센'들과,
마을버스와 지하철과 시내버스가 환승이 되어 다행이라며 쳇바퀴 도는 어른 '센'들과,
연금도 박탈당하고, 사회적 시스템도 불안하여 인간 장수 100세의 미래가 마냥 두려운 노인 '센'들로 가득한 무미건조하고 몰개성한 '가오나시(얼굴없음)'의 울렁증 가득한 세상에서 원주민들은 표류하고 있는 것일까?

원주민들이 논밭에서 보여주었던 푸근한 인정과 때되면 씨뿌리고 때되면 거두어들이던 공동체 사회의 미풍양속을 '치히로'에게 '절대 네 이름을 잊어서는 안 돼.'하고 속삭여주던 하쿠처럼, 우리에게 되돌려줄 동화 속 주인공은 없는 것일까?

세계화의 파도가 신자유주의의 해류를 타고 원주민들에게 밀어닥칠 때,
이미 잊어버린 것도 많은 원주민들은, 이제 잊어버릴 것도 없는 하루하루를 팍팍하게 살고 있을 뿐이란 생각으로 아득한데, 최규석의 만화는 그 잊혀진 '향수'에 '대한민국 원주민'이란 오마주를 되살려 내어 그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오마주 [hommage][명사]<연영> 영화에서, 다른 작가나 감독의 업적과 재능에 대한 경의를 담아서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모방하는 일. 표절 [剽竊][명사]시나 글, 노래 따위를 지을 때에 남의 작품의 일부를 몰래 따다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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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
아고라 폐인들 엮음 / 여우와두루미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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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지성... 이란 말이 있다.
아고라엔 이게 있다. 집단 지성과 알바.

거기엔 법률 전문가도 있고,
뉴스를 재빠르게 해석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뜨거운 마음들이 가득하고,
힘든 하루하루에 서로 힘을 주는 동지들이 있다.

매일 숙제거리가 있고,
집회 홍보가 있고,
토닥거리는 응원의 메시지가 있고,
삼양라면에 보내는 연애편지들이 있다.

찬성, 반대 글처럼 '중립'을 가장한 '탄압'이 들어와서 잠시 당황했을 때도, 집단 지성은 '반대 꽝!' 부탁으로 슬기롭게 넘겼고,
논쟁중인 글들이 주로 알바들에게 넘어가자, 이 글은 '찬성과 반대를 같이 해서 논쟁중'으로 보내달라는 지혜도 나왔다.
알바들의 발호에 <아고라 웹>1.6을 개발하기도 했고, [명박퇴진] 말머리를 달아 그들을 조롱하기도 했다.

맨날 들어가서 사는 아고라를 굳이 책으로 읽을 게 뭐, 있을까?

하시는 분도 한번 읽어 보시길 권한다.

읽을 것이 분명히 많이 있다. 그리고, 촛불과 아고라에 몰려든 시점이 다들 다르기 때문에, 처음부터 차근차근 아고라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무엇보다, 촛불에 별로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촛불 좀비'들의 실체를 알려주는 엄청난 책이다.

오늘, 양심선언을 하는 전경 이야기를 읽었다.
그가 당할 고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그의 양심 선언은 촛불의 가장 뜨거운 곳에 그가 섰음을 보여준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에게 예약되어 있다. 단테의 말이란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유시민이 인용한 네크라소프의 말이란다.

아고라를 책으로 읽으면, 매스컴과 미디어, 사회, 정치에 박식해 진다.
젊은 생각을 수혈받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른 생각, 상식이 무엇임을 알게 해 준다.

주변에 마구마구 권해줘야 할 책이다. 인근 공공도서관에 주문을 해야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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