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자녀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 - 자녀의 인생을 형통하게 만드는 최고의 선물
김병태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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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전해 주는 선물

  자녀를 가진 부모마음이 자녀의 불행을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자라나는 자녀가 보다 나은 삶을 살고 사람들에게 축복받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빈부와 지역과 문화에 관계없이 공통된 마음입니다. 하지만 모든 부모의 마음이 언제나 결실을 맺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의 마음과 달리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상처받기도 하며 자녀들은 부모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기도 합니다. 자녀를 위해서 일생을 헌신했던 부모가 '나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 이냐'라는 질책에 눈물 흘리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자녀 양육에 문제는 없는지 한번쯤 생각해 봅니다. 

엘리트의 몰락: 약한자를 강하게 쓰시는 능력

  기도하는 부모 밑에서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분명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는 기도하는 부모를 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기도하지만 실패하는 사람도 많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도하는 부모가 되기를 요구 받습니다. 실패와 성공은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목사님들은 기도하는 부모가 되라고 권면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기도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순종과 믿음의 그리고 경험의 종교 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말씀은 부모에게 기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요구하는 성경의 가르침은 부모가 자녀에게 전할 것이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과 경배하는 것 그리고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약한자를 강하게 하고 강한자를 약하게 하며 지식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능력이 요구하는 것은 순전한 믿음으로 바쳐지는 가족입니다. 위기의 순간 사회엘리트일지라도 한 순간에 몰락하는 지도계층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위기를 극복하며 나아가는 풀뿌리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녀를 위한 기도는 단지 축복의 기도가 아닌 하나님을 경험하며 더불어 먹고 마시며 살아가기를 소망하여야 할 것입니다. 

자녀를 위한 기도의 눈물

  눈물 한방울에 담겨진 간절한 마음이 아이에게 전해지기를 소망하신다면 자녀를 위해서 흘린 눈물이 진정 기쁨으로 수확하는 단의 거름이 되기를 소망한다면 우리가 먼저 경험하여야할 것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칠 수 없는 것처럼 기도하는 부모는 기도로 자녀를 양육하기 위한 기도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녀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브니엘,2011)는 단순히 부모에게 기도하라는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의지할 수있는 기도의 신실함을 전하며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하는 부모에게 필요한 신앙의 밑거름을 가르치는 것이 책의 내용입니다. 자녀에게 무엇인가를 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상대적인 박탈감에 빠지는 부모들에게 신실한 믿음의 기도자가 되는 것은 어리석음과 시간낭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어리석음과 시간의 낭비가 성경이 가르치는 바이며 믿음의 공동체이자 축복의 삶을 살아가는 가족들에게서 나타나는 원리임을 책을 통해서 확인해봅니다. 한 방울의 눈물이 모여 한 잔이 되고 다시 모여 병이 되고 그리고 모이는 눈물과 기도를 자라나는 자녀는 눈물과 기쁨 뒤에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또 다른 기도자가 됩니다.

  어린 싹에서 자라나 익은 곡식이 되어 단이 되는 자녀의 모습을 보면서 기도의 능력과 기쁨을 맞이 할 수 있는 부모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제공 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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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기도 - 길 잃은 모든 영혼에게 내미는 손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 지음, 송경용.진영종 옮김 / 함께읽는책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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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기도의 지혜서

  질문을 먼저 던져 봅니다. 묵상, 기도, 지혜의 말들을 생각할때 여러분은 어떠한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질문을 통해 떠오르는 이미지는 분명 다양할 것입니다. 하지만 질문을 통해 떠오르는 이미지는 곧 여러분 자신이 믿거나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이미지임에는 분명합니다. 묵상과 기도 그리고 지혜의 말들은 어느 특정 종교에만 국한되거나 전유물은 아닙니다. 그것은 보편적인 행동이며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나아감의 발로 입니다.
 저자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는 미국 목회자들이 뽑은 최고의 설교자 10인에 선정된 여성입니다. 그녀의 <세상의 모든 기도>는 2009년 뉴욕 타임스가 선저한 베스트 셀러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을 말하면서 동시에 눈에 보이는 것들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있는 균형적인 사고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감동과 따뜻함을 느낍니다. 그 대상은 종교인일 수도 있으며 비 종교인일수도 있습니다. 종교인이 쓴 책이라는 선입견은 책을 읽는 가운데 이내 부끄러움으로 사라지고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추구해왔던 신성의 빛을 만나게 됩니다.

연습은 나아감의 시작이자 진행형입니다. 

  <세상의 모든 기도>(함께걷는책,2011)는 다음과 같은 12개의 연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로 깨어나는 연습, 주의를 기울이는 연습, 살을 입히는 연습, 땅 위를 걷는 연습, 길을 잃는 연습, 낯선이들과 만나는 연습, 목적을 가지고 사는 연습, '아니요'라고 말하는 연습, 물을 나르는 연습, 고통을 느끼는 연습, 하느님께 바치는 연습, 축복을 드리는 연습 이 모든 연습은 인생에 있어서 매일 매일의 하루에서 발견되어진 영성과 관련한 나아감을 배경으로 전개되어집니다. 
  매일의 반복되는 삶 속에서 숨쉬며 말하고 느끼며 생각하는 모든 행위 가운데 접하는 소중한 것들을 다시 살펴보며 그 속에서 자신이 해야할 역할과 그 역할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소중한 메시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휘몰아치는 폭풍과 굽이치는 물결과 같은 억세고 위압스러운 느낌보다는 저자의 기품과, 현명함 그리고 통찰력이 느껴지며 그 속에서 우리는 신성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합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

  종교적인 색채에 대한 선입견은 종교인이나 비종교인이나 서로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이분법에 극단적인 한국인 뿐만이 아닙니다. 다양한 사회와 종교가 자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적인 추세는 자신들의 진실과 정의를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미화시키는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말하고 읽는 가르침에서 비롯된 행위라고 말하지만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자세 또한 그들의 가르침 가운데 분명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성은 가장 고귀한 분과의 만남이자 우리의 일상에 늘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가 바라보고 느낀바를 전하는 수많은 연습들 또한 신성함을 담고 있습니다. 형이상학적인 것만을 신성시 하며 형이하학적인 것들을 버리는 어리석음이 자리하지 아니하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것들을 영적인 불가시적인 것을 포함하여 기도하며 묵상하며 깨달은 지혜 가운데 살피어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저자가 말하는 세상의 모든 것이 기도이자 신성함이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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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예찬 열린책들 세계문학 182
에라스무스 지음, 김남우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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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풍자와 웃음

  지금으로부터 500년전 영국을 방문했던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는 'cosmopolitan'이라고 불리우는 최고의 '기독교 인문주의자'로 평가받고 있었습니다. '중도'와 '관용'으로 대변되는 에라스무스의 삶은 '무엇과도 타협하지'않으며 '학문'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올바른 기독교 신앙의 회복을위해 평생의 삶을 바쳤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011년은 에라스무스가 남긴 문학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자 사랑받는 작품인 <우신예찬>의 500주년 되는 해입니다. 시간과 장소를 넘어서 수많은 독자들에게 웃음을주는 풍자 문학인 <우신예찬>을 통해 에라스무스의 삶과 신앙 그리고 교회의 개혁을 위한 노력을 살펴봅니다.


<출판된지 500년이 되는 2011년, 국내에도 10여종이 넘는 번역본으로 소개되고 있다.>

우신, 광우, 바보 매력적인 여신 <MORIAE>

  먼저 <우신예찬>은 국내에서 이미 수차례 번역되어졌으며 2011년에도 다수의 번역본이 나온 작품입니다. 단지 작품의 제목이 독특한데 <광우예찬>,<우신예찬>.<바보예찬>을 비롯해서 예찬은 그대로이지만 앞에 쓰여지는 제목은 역자가 작품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에 다른 작품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여신의 이름인 Moriae는 중음이어 즉 하나의 음가를 가진 다중적 의미 해석을 담고 있기에 제목이 잘못 번역된 작품은 없습니다.) 
  군중들 속에 자신의 조력자들인 그리스-로마 신들과 함께 방문한 '여신 모리아'는 매력적인 여신입니다. 그녀는 지상의 진리를 깨달은듯 보이면서도 동시에 지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존재이며 자신의 세치 혓바닥위에 지상에서 존경받는 모든 대상을 올려놓고 그들을 조롱하고 깍아내리며 가장 낮게 평가되는 자신을 가장 위대한 존재로 탈바꿈 시키기도 합니다. 우스꽝스럽고 특이한 복장을 가진 그녀가 군중 속에서 예찬하는 내용은 세상을 향한 조롱이자 비판으로 채워져 있지만 그 속에는 비참한 현실 가운데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한 연민과 그들의 삶에 위안과 기쁨을 주고자 하는 모습이 함께 합니다. 제목처럼 다양한 여신의 모습은 연극의 수많은 가면을 들고 나타나서 다양한 연기를 표현하는 배우처럼. 고정되어진 이미지가 아닌 다중적인 이미지를 반복하여 작품을 더욱 재미있게 이끌어 나갑니다.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에 관한 재평가 

  신학을 공부하거나 인문주의에 관심이 있는 이들 가운데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출생지를 포함한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를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를 특별하게 만들었던 종교개혁가 루터와의 '자유의지'와 '노예의지'론의 대립은 신앙논쟁의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루터를 비롯한 많은 종교 개혁가들이 그를 신앙의 변절자로 말하며 카톨릭으로부터도 배척당했던 에라스무스는 구교와 신교 모두로부터 비판의 대상이자 흠모의 대상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인물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며 종교의 부패와 신앙의 변질을 고쳐나가고자 노력했던 그의 신념인 '중도'와 '관용'은 대립과 갈등으로 연결되는 개혁과 거리가 먼 '평화적 개혁'이라는 형태를 표방합니다. 신앙의 본질을 바로 잡고자 노력했던 에라스무스는 <우신예찬>을 통해 사람들과 대화하며 민중들의 인식에 개혁의 필요성과 시대변화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즉 에라스무스는 개혁의 토양을 중세의 유럽을 비롯해서 오늘날 까지도 만들어 나가고 있는 작품을 작성한 인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흑백의 논리와 사람을 돌아보지 않는 개혁의기치를 진행하여 사회적 갈등과 이념의 대립이 난무합니다.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연일 방송되는 뉴스를 보면서 <우신예찬>을 한번 더 읽어봅니다. '중도'와 '관용'을 받아들이고 개혁의 기치를 살릴 수 있는 '시대의 변화'는 언제쯤 올 수 있을까요?
  아직 우리는 개혁에 관한 두 개의 태양과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에라스무스가 보낸 세상을 향한 미소가 머무는 그자리에는 희망과 신의 사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야말로 '평화적 개혁' 우리가 간과했던 진리의 온전한 파편들이 있다고 믿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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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경제학
이홍구 지음 / 두란노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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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당당히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뉴스의 한켠에 등장하는 목사, 장로, 집사들은 좋은 일로 나오면 좋겠지만 불미스러운 사건과 관련해서 자꾸만 등장하고 있습니다. 종류도 다양하지만 오늘의 주제인 경제적인 부분은 빠지지 않는 단골 손님입니다. 교회의 재정을 착복하거나 교회관련 기업의 부적절한 처신은 종교인이 가지지 말아야할 탐욕에 지배된 모습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부의 문제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작은 암이 몸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 우리의 경제분야에서의 처신과 생각은 성경에 기록된 바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라는 사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윤택한 삶의 시작과 끝은 어디에 맞춰져야 하는가?>

그리스도인과 경제

  돈보다 하나님을 알아야 하며 우리의 윤택한 삶은 돈이 아닌 믿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이 우선이며 하나님의 가르침이 삶의 방향을 결정해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르침과 믿음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경제에 있어서만큼은 이중적인 태도와 자세를 가집니다. 많은 목사들이 경제적인 빚을 지고 살아가면서 부익부 빈익빈 모습이 교회 목사들 사이에서도 나타나는 가운데 성도들 또한 경제적인 것을 믿음의 삶 가운데서 우선시 하며 예외의 삶으로 구분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행복을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댓가는 바로 물질의 축복이라고 말하는 믿음의 고백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경제로부터 분리되어야할 까요? 온누리 교회에서 수많은 경제인을 비롯한 지식인들과 신앙인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나섰던 저자는 기독교인의 신앙과 경제의 기초인 자본주의 관계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성경에 기록된 바는 우리에게 어떠한 삶이 올바른 삶인지를 가르치고 있는지 경제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면서 그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함을 가르치는 글에서 그리스도인과 경제의 관계를 생각해봅니다.

윤택한 삶은 어떠한 삶인가?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갖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갖기에 풍요로운 삶이 함께 합니다. 어느말이 맞는듯 싶습니까? 전자를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이 오늘 우리의 삶입니다. 한달에 50만원을 버는 사람과 200만원을 버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서로 같을수도있고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알고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 비결이 열려 있습니다. 비밀스러운 진리의 말씀은 모두에게 공개된 말씀의 가르침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안다 안다라고 말하지만 알지 못하는 이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윤택한 삶을 위해 경제적 우위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윤택한 삶의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 물질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잘못된 출발점에 기인한 윤택한 삶과 올바른 출발점에 기인한 윤택한 삶 천국 곳간을 여는 크고 비밀한 하나님의 경제학에서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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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은 사랑 - 톤즈의 돈 보스코 이태석 신부의 강론 모음집
이태석 지음, 한국천주교살레시오회 정리 / 다른우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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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즈의 돈 보스코 이태석 신분의 강론 모음

  아프리카 수단 남부 지역에 속해있는 톤즈라고 불리우는 곳에서 수년간 사랑의 밀알을 뿌렸던 이태석 신부가 하늘의 부름을 받은지 어느덧 1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국내에 <울지마 톤즈>로 알려진 이태석 신부의 톤즈에서의 삶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그리고 알 수 없는 지역에서의 숭고한 삶의 흔적들을 남겨 놓았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사랑>(다른우리: 2011)은 이태석 신부의 활동당시 남겨놓은 강론을 위해 준비한 묵상의 글들을 형제들인 살레시오회 수도자들이 정리한 글입니다.
  성 요한 보스코의 삶과 사명을 가슴에 이어받아 실천한 이태석 신부의 강론에서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땅의 젊은이들과 아이들에게 필요한 사랑의 필요성과 베푸는 삶이 가져오는 영향력의 중심을 발견해 봅니다.


<가장 낮은 곳에 임하셔서 그들도 가장 높은 곳의 영광과 사랑을 경험케 하소서>

Da mihi animas cetera tolle!

  톤즈의 돈 보스코가 된 이태석 신부의 삶의 불꽃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대로 사랑의 삶입니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젊은이들과 아이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을 위하여 학교를 세우고, 운동장을 만들고, 브라스 밴드를 조직하고 척박한 땅에서 농사를 짓고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던 그의 삶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에게 영혼을 주고 다른 모든 가져라가는 외침과 호소처럼 그의 삶은 영혼의 살아 숨쉬는 현장에 넘쳐나는 사랑을 보여주고 가장 낮은 곳에 임한 가장 높은 곳의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분이셨습니다. 이태석 신부의 삶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우리가 살아 숨쉬는 이 땅 모든 곳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도구로 사용된 이태석 신부의 삶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미소짓던 모습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사랑: 우리가 나누어야할 당신의 이름입니다. 

  <당신의 이름은 사랑>는 이태석 신부의 묵상의 실타래를 네개의 주제로 묶어 놓았습니다. 톤즈 지역에서 메마른 사람들의 마음에 단비가 되어 땅을 적신 그의 강론을 정리한 글에서 우리는 이태석 신부가 뿌리고자 했던 씨앗의 정체를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내포된 의미는 삶의 현장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고통과 비극 그리고 애통함이 넘쳐나는 척박한 땅 톤즈 조차도 사랑은 결코 막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나누고 전하여야할 이름앞에서는 인종, 국가, 체제, 문화, 언어 조차도 장벽이 될 수 없습니다. 씨앗은 한사람의 희생을 통해서 더욱 기름지어진 토양에서 열매맺어 다음으로 전달되었습니다. 강론의 핵심은 삶과 일치하는 사랑에 대한 나눔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많은 도움의 손길을 원하는 낮은 곳에서 쓰임 받을 사랑의 도구에게 <당신의 이름은 사랑>이 희망과 용기를 더해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소속된 곳을 다를지라도 필자는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동경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사용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깊은 감사와 사랑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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